15세기 말엽부터 16세기에 걸쳐 포르투갈인 등 유럽인이 내도하여 기독교 문화를 처음으로 나이지리아에 심었다. 영국은 노예무역 대신 상업 무역을 개척하기 위해 1861년 라고스를 무력 점령, 그 후 1890년에는 북부 나이지리아 보호령을, 또 1900년에는 남부 나이지리아 보호령을 각각 설치하여 1914년에 남북 보호령이 통일되어 영국령 나이지리아가 성립되었다.
그 후 연방 각료회의의 성립을 거쳐 1960년 10월,독일령의 카메룬 북부를 병합하면서 나이지리아는 영연방의 일원으로서 독립하였다. 독립 후 3년을 거쳐 나이지리아는 1963년 10월 북부, 동부, 서부, 중서부의 4주로 구성되는 연방 공화국이 되었다.

주요 농산물은 코코아, 코코넛, 낙화생, 야자 열매, 면화, 천연 고무 등으로 주로 수출되고 있다. 삼림은 국토 면적의 약 30%를 차지하고 사바나 삼림과 남부의 열대 다우림이 있어 원목의 산출량은 아프리카 제일이라 일컬어져 목제는 많이 수출되고 있다. 수산업면에서는 좋은 어장이 있어 어족 자원도 풍부하고 기니아만 어업외에 내륙부 하천,호수에도 담수어가 많다. 특히 기니아만의 나이지리아 앞바다의 새우자원은 서아프리카 제일의 자원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획득된 새우는 냉동되어 주로 일본,유럽에 수출되고 있다.

항공
우리나라에서 직항으로 오는 항공편은 없으며 유럽 대도시나 다른 지역을 경유하여 여행할 수 있다. 유럽의 경우 독일항공이나 영국항공, 네덜란드 항공, 혹은 나이지리아 항공을 이용하면 된다. 나이지리아의 국제공항은 라고스, 아부자, 카노, 포트 하코트에 있다.


면적 : 92만 3768㎢

수도 : 아부자(Abuja)

인구 : 1억 2663만 6000명 (2001년 기준)

종교 : 회교도가 약 45%(주로 북부 지역),기독교인이 약 35%(주로 라고스를 포함한 남,동부지역)를 차지하고 있으며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주요민족 : 위치상 대륙 횡단 이주로의 합류점에 놓여 있어, 민족과 문화가 매우 다양하며 전국에 250여 종족이 살고 있다. 각 종족 마다 고유의 관습과 전통, 언어를 갖고 있다.
전체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종족이 하우사, 요루바, 이보, 풀라니, 이비비오, 카누리, 에도, 티브, 이조, 누페족으로 그중 풀라니 족, 요루바 족이다.

주요언어 : 나이지리아는 공용어로 영어, 하우사어, 요루바어, 이보어의 4개 언어를 정했지만 각 종족은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초등교육에선 각 부족의 언어로 교육이 인가되어있지만 고등교육은 영어로만 진행된다.

기후
남부 해안 일대의 기온은 32℃를 넘는 일이 드물지만 습도가 매우 높고,장마철이 거의 1년 내내 계속된다. 내륙지방은 4∼10월이 우기이고 11∼3월이 건기인데,여름 기온은 38℃를 넘을 때가 많다. 북부지방의 건기는 거의 8개월간 계속되는데, 이때 하마탄(harmatan:열풍)이라는 뜨겁고 먼지가 많은 사하라 사막의 바람이 계속 분다. 평균강우량은 지역에 따라 격차가 심해 해안 일대에서는 1,800∼3,000㎜ 이상이며, 북쪽 국경지대는 약 500㎜이다.

사회문화
나이지리아는 대가족 중심제이며 가족관계에 있어서의 의무를 매우 중시하고 있다. 연장자를 공경하고 각 계층의 지도자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을 자제하며 어떤 조직에서나 가급적 합의를 이루려고 하는 전통이 있다.

하지만 국민의 보건위생 상태는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와 마찬가지로 열악한 편이다. 주정부 소관인 공공의료, 보건 서비스는 대체로 미흡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대부분의 병원이 충분한 의료진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으며, 약품 또한 만성적인 부족현상을 보이고 있다. 상당수의 국민이 아직도 말라리아와 각종 수인성 질병, 결핵, 뇌척수막염, 기타 예방 가능한 질병들로 죽어가고 있다.
20세기 말 현재 나이지리아의 평균수명은 남자가 51세, 여자가 54세로 비교적 낮은 수준이다.

공식적으로는 6년간의 의무교육이 실시된다. 초등학교 취학률은 일반초등교육(UPE) 프로그램으로 대변되는 교육개발 정책을 추진한 결과 1970∼80년에 크게 높아졌다. 중등학교 취학률은 여전히 낮은 수준인데, 그것은 중등교육 부문이 UPE 프로그램을 이수한 학생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발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기술인력과 교사양성을 목적으로 한 종합대학과 단과대학들이 설립되었다.
대부분의 나이지리아 신문은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연방정부나 주정부 소유이며, 몇몇 민간신문은 개인용이거나 당기관지의 성격이 짙다. 그러나 언론·출판의 자유는 나이지리아의 확고한 전통으로서, 정부의 검열 절차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의사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텔레비전 및 라디오 방송 또한 정부 소유로 되어 있다.

지리
남북 길이 1,050km,동서 길이가 1,130km이다. 서아프리카 연안 국가들 가운데 가장 큰 나라이며,아프리카 국가들 가운데 인구가 가장 많다. 수도는 1990년대 초까지는 라고스였으나,그뒤 연방 수도권 지역에 위치한 아부자 신도시로 이전되었다. 나이지리아는 서남쪽으로 베냉 만,동남쪽으로 비아프라 만과 접해 있는데,이 둘은 모두 기니 만에 속해 있다. 한편 북쪽으로는 니제르,북동쪽으로는 차드 호,동쪽으로는 카메룬 그리고 서쪽으로는 베냉과 접해 있다.

아프리카 대륙고원은 남쪽과 동쪽에서 북쪽과 서쪽 방향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데,나이지리아는 바로 그 거대한 대륙고원의 아랫부분에 자리잡고 있다. 나이지리아의 지형은 해발 600∼1,200m의 높은 고원지대와 그 사이에 있는 낮은 지대들이 침식된 지표 형태로 나타나며, 그 대부분이 주요 강 유역에 자리잡고 있다. 기니 만을 따라 발달된 해안지대는 완만한 기복을 이루는 평원으로 되어 있다. 서부 및 중북부 지역에는 높은 평원들과 그 사이에 발달된 얕은 계곡들이 넓게 나타나는데, 이들 곳곳에는 둥근 지붕 모양의 수많은 구릉과 길다란 산등성이들이 산재해 있다. 그 밖에 특히 눈에 띄는 기복 지형으로는 중부의 조스 고원과 동북부의 비우 고원을 꼽을 수 있으며, 두 고원은 모두 수많은 사화산이 점점이 흩어져 있는 광대한 용암지표로 되어 있다.
전 국토의 3/5을 이루는 나이저, 베누에 강 유역은 나이지리아 수자원의 절대적인 몫을 차지한다. 차드 호 저지의 약 1/10이 나이지리아에 있다. 주요 강은 나이저 강과 나이저 강의 가장 큰 지류인 베누에 강이며,그밖에 소코토 강, 카두나 강, 공골라 강이 있다. 토양은 고원지대의 결정편암(結晶片巖)과 퇴적암에서 생겨난 침투성이 좋은 홍토(紅土)에서 해안 일대의 모래, 습지성 토양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대부분의 토양이 다공질이어서 비옥도가 낮은 것이 흠인데, 특히 강우량이 무척 많은 남부지역의 토양은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나이지리아의 자연식생 분포는 남에서 북으로 올라가면서 습지대, 열대우림지대, 그리고 나무가 곳곳에 산재한 사바나 지대로 구분된다. 나이지리아에는 침팬지, 고릴라, 아프리카 야생개, 표범, 코끼리, 기린, 사자, 악어, 뱀 등 다양한 야생동물이 살고 있다.
국토의 약 1/3이 경작 가능한 땅이며,2/5는 목초지로 이용 가능하다. 나이지리아의 석유매장량은 20세기 말 현재 아프리카 총매장량의 거의 1/3에 해당된다. 천연가스 매장량은 아프리카 대륙에 묻힌 천연가스의 거의 1/3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철광석도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


역사
AC 1년 - 1900년 까지의 역사
11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카넴 제국이 차드 호 동서로 팽창해 하우사족 영토의 대부분을 지배했다. 13세기에는 북부지역으로 이슬람교가 전파되어 원주민 사회와 종교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4세기 말 무렵에는 카넴 제국의 세력이 약해져 보르누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영토를 잃었다. 한편 보르누 서쪽에서는 하우사족의 왕국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그중 주요 왕국은 카노, 자리아, 다우라, 카치나 왕국인데, 일찍이 고대부터 존재한 이 왕국들은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서로 전쟁을 벌이거나 상호방위를 위해 연합했다. 이들은 카넴 제국, 수단의 송가이 왕국, 보르누, 케비 왕국에 차례로 정복당하면서도 정체성을 유지하며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계속했다. 풀라니족은 오랜 기간에 걸쳐 하우사족의 영토로 이주해왔다. 그들은 대부분 유목민이었으나 일부는 도시에 정착해 하우사족과 한데 어울려 살았다.
19세기 초 풀라니족 토후들이 몇몇 지방의 지배자로 임명되었고,결국에는 서쪽의 간두에서 동쪽의 아다마와에 이르는 풀라니 제국(보르누는 제외)이 탄생했다. 보르누와 하우사 영토 이남에는 요루바 왕국과 베냉 왕국이 있었으며,이들은 지금의 나이지리아 서부지역과, 지금의 동부지역에 해당하는 이보족의 영토를 지배했다. 포르투갈인들이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나이지리아 해안에 상륙한 것은 15세기의 일이었다. 그들은 베냉족을 노예로 잡아갔다. 17세기에 이르러서는 영국 노예선들이 나이지리아 해안에 밀어닥쳤다. 대부분의 노예무역은 나이저 강 삼각주와 다른 강 기슭에 사는 여러 종족이나 소수의 족장들을 상대로 행해졌다. 노예들은 대부분 내륙지대에서 붙잡혔다.

1807년 영국은 노예무역을 폐지했으나, 다른 나라 선박들이 대서양을 통해 노예를 실어 나름으로써 계속 그 맥이 이어졌다. 당시 아프리카 서부해안에는 영국 함대가 진주하여 노예무역을 저지했으며,영국 상선들은 야자유와 기타 생산품을 거래하기 시작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나이지리아의 내륙오지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가,몇몇 유럽 탐험가들에 의해 서방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영국은 1861년에 라고스를 합병하면서부터 이 지역을 공식적으로 지배하기 시작했다. 나이지리아는 1886년 별개의 영국 식민지로 출발해,1914년 나이지리아 식민지 및 보호령의 일부가 되었다.

현재까지의 역사
나이지리아는 1960년 10월 연방 총리 직선과 형식적인 국가 수반을 골자로 하는 연방헌법을 채택하고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으며, 영국연방과 국제연합(UN) 회원국이 되었다. 그러나 1962∼63년에 실시된 말썽 많은 인구조사는 해묵은 종족·지역 간의 대립과 지역간 교육적,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문제를 표면화시켰다.
이 일환으로 정부가 붕괴되고 다시 만들어지기를 반복하는 혼란한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내전이 계속되고 자국 이익에 눈이 먼 선진국의 무기 지원으로 더욱 혼란한 양상을 띠었으며 많은 사상자를 내고 1970년 종식되었다.
그 후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당선되었지만 정치적 혼란은 끝나지 않았으며 인구문제와 경제문제등을 안고있다.


유용한전화번호
• 한국 대사관
전화 : 2615353, 2615420
주소 : PLOT 934,IDEJO ST.VICTORIA ISLAND,LAGOS
• 한인회 남규봉(회장)
전화 : 492-2503,492-3238
• 경찰서 : 610743

전압 및 주파수
220∼240 V,50 HZ

치안
우범지역, 사진촬영 제한구역, 기타 여행제한 또는 주의가 요구되는 지역으로는 라고스 주변 상가 및 공장 밀집지대, 시장 등 인구 과밀지대가 우범지역이며 가급적 이들 지역에의 야간통행은 삼가토록 주의 요망되며 부득이한 경우에는 가급적 무장경찰을 대동함이 바람직하다. 총기류 또는 대검,각목 등을 소지한 4-5명의 무장강도단이 교통 체증시 차량을 습격하기도 하며,금품을 탈취하거나 야간 인적이 드문 국도상에서 금품을 갈취하는 경우가 많다. 기타 각 지역의 폭력배, 소매치기, 불랑배 등이 있다(이들을 총칭 "area-boy"라 함) 다.
공항,호텔 등에서 도와주겠다고 하며 접근해 오는 사람들은 불순한 동기에 의한 경우가 많으므로 유의하여야 하며 반드시 현지거주 연고자에게 사전연락을 취하여 공항도착시 안내를 받을 수 있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각종 사기 사건이 많이 발생하고 있어 매년 상당수 외국인들이 재산상,신체상의 피해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통화
나이지리아의 화폐단위는 나이라(Naira)로 미화 1달러는 113 나이라정도 된다.

주의사항
▣ 정변,국지적분쟁 등 정세변동에 따른 안전관련 문제로는 정치적으로 과도기에 처해 있으며 경제적인 혼란,사회불안 등으로 아프리카중 치안상태가 매우 취약한 지역중의 하나이며 라고스 등 남부 대도시는 위험 하다는 것이다. 무장강도에 의한 금품탈취 사건이 많이 발생하고 있어 자동차를 이용,지방을 여행하는 일은 가급적 피하여야 하며 야간외출이나 인적이 드문 곳을 여행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테러와 관련해서는 정치적 목적을 갖은 조직화된 테러는 없으나,주로 금전 갈취를 목적으로 한 노상 강도 또는 주거침입 무장강도단의 활동이 심하다. 아울러 북한공관 주재 지역이므로 주의를 요한다.

▣ 말라리아,장티푸스 및 식중독 등이 잘 걸리며 저녁 일몰 가까이 외출시에는 긴 소매를 입어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식수는 반드시 정수 후 끓여서 복용을 해야한다.

시차 : -8시간



▶ 오그보모소

15세기 말엽부터 16세기에 걸쳐 포르투갈인 등 유럽인에 의해 기독교 문화를 갖고 있는 오그보모소는 영국의 식민정책으로 인해 종래의 개개 부족의 내부 지배체제를 온존시키는 정책을 써왔다. 그리하여 오늘날 다양한 전통문화와 부족간의 대립을 내포하는 사회구조를 가지며,또 근대화가 앞선 남부와 뒤진 북부 사이에 지역적 중간지점쯤에 위치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코코아,코코넛,낙화생,야자 열매,면화,천연 고무 등으로 주로 수출되고 있으며,수산업면에서는 좋은 어장이 있어 어족 자원도 풍부하다.

인적 자원이 풍부한 곳이지만 아직 인력을 잘 활용하고 있지 못하여 실업률이 높다. 오그보모소의 인구 성장률은 3.3%이다. 평균 수명은 50세로 아프리카 국가들의 평균 수명인 53세보다 낮으며 세계적인 수준에서 보면 평균 수명이 매우 낮은 편이다. 그리고 이 곳의 정확안 인구 추정이 불가능한데 그 이유는 몇몇 부족들이 인구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기 때문에 인구 조사에 어려움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교육
문맹률이 49 %(1990)에 달하나,교육의 보급에 힘써 1976년에 초등교육을 무상으로 하고 80년부터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오그보모소를 비롯한 나이지리아의 전지역에는 라고스대학을 포함하여 80개 대학이 있다.

산업
주요 농산물은 코코아,코코넛,낙화생,야자 열매,면화,천연 고무 등으로 주로 수출되고 있다. 합판이나 베니어판,가구 등 목재가공업은 처음부터 발달하였으나,펄프,제지공업은 비교적 늦게 발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축산활동은 비교적 활발한 편이다. 우유와 우육제품을 제외한 대부분의 축산물은 자급자족하고 있다. 나이지리아에서 생산되는 가죽은 질이 좋아서 대부분 수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본생산과 조립산업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제조업을 육성하려는 이유는 소비재의 수입 대체를 위해서다. 제조업의 주요 업종은 섬유,식료,담배,비누,세제,등 경공업 분야로 약 60%를 차지하고 있으며 식료품,제분,제지,의약품,고무,타이어 시멘트 등의 부품 가공과 전기·전자제품 가공,유리 제조,비료공업이 있다. 제조업체는 외국과의 합작형태를 취하고 있는 곳이 많다. 그 중 가장 유망한 산업은 섬유산업으로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자격있는 여행전문가 - 모두투어

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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