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마이엔펠트는 꿈과 영감을 주는 마을이다. 취리히에 살던 소설 「하이디」의 여류작가 요한나 슈피리가 영감을 받은 곳도 마이엔펠트다. 마을은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추억으로 가득하고, 동화적인 이미지는 잊혀진 꿈을 자극한다

스위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알프스와 하이디다. 만화, 영화로도 소개된 ‘알프스 소녀 하이디’. 하이디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인기를 얻은 동화이자 만화였다. 70~80년대 오후 6시쯤 노을이 마을 뒷산을 붉게 물들 무렵이면 쪼르르 TV 앞으로 달려가 하이디를 만났다. 눈 덮인 얼음 봉우리들이 우뚝한데 들판이 푸른 것도 신기했고, 산과 산 사이에 펼쳐진 드넓은 초원도 아름다웠다. 그때 그 하이디의 모습이 너무도 선해서 90년대 초 스위스를 처음 찾았을 때 하이디 마을은 어디쯤 있을까 궁금해한 적이 있다.

동화 속 풍경 그대로, 마이엔펠트
하이디가 탄생한 마을이 스위스의 마이엔펠트다. 취리히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다. 마이엔펠트는 작고 아담했다. 마을 어귀는 산마을 같지 않았다. 아랫마을엔 드넓은 포도밭이 펼쳐져 있다. 조금 더 올라가면 야트막한 경사 위에 4~5층짜리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다. 아마도 가게를 기웃거리지 않았다면 ‘여기가 진짜 하이디 마을 맞아?’라고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돌이 촘촘히 박힌 도로를 따라가다 만난 상가는 모두 하이디의 이름이 박혀 있다. 하이디 과자점, 하이디 모자점, 하이디 기념품점…. 마을은 모든 게 하이디와 연결돼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만화에서 보던 푸른 초원은 시가지를 벗어나자마자 펼쳐졌다. 뒤에는 벼랑이 날카롭고, 산들은 우뚝했다.
“정말 만화영화 속 마을과 비슷하게 생겼네. 만화 보면 뒤편에 산들이 우뚝하고 초지엔 염소가 뛰놀잖아. 그런 집하고 비슷해 보이지 않아”

한 한국인 관광객이 이제야 하이디 마을을 제대로 찾았다는 듯이 환하게 웃었다.
하이디 마을엔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이 많다. 부모들도 어렸을 때 알프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하이디 만화와 동화를 보고 자랐고, 아이들에게 그곳을 보여주고 싶어 한단다. 스위스 관광청 김지인 소장도 “독일에 있을 때 아버지와 함께 하이디 마을에 간 적이 있다”며 “그때 그 모습이 선하다”고 했다.

‘하이디의 침대는 다락방에 있는 건초 선반 위에 있습니다. 창문을 열면 아름다운 골짜기가 한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밤에는 별이 방 안을 엿보고, 달빛이 은은하게 방 안을 비춥니다. 집 뒤에 있는 전나무 세 그루는 바람이 불 때마다 휘파람 소리를 냅니다. 그리고 저녁 때에는 눈 덮인 산들이 빨갛게 물들지요.’(중앙동화마을의 「알프스 소녀 하이디」)

마이엔펠트는 동화 속의 그 풍경과 다르지 않다. 하이디와 피터가 함께 뛰놀았을 법한 초원에는 염소가 풀을 뜯고 있었다. 미국, 일본 등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은 동화 속에 나온 염소에게 직접 풀을 먹이고 하이디의 집을 둘러봤다. 집은 초라했지만 관광객들은 하이디를 담느라 연방 카메라플래시를 터뜨렸다. 건초를 얹어놓은 동화 속 그 침대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이들은 동화 속 하이디처럼 염소에게 풀 먹이고, 닭을 쫓으며 들판을 뛰놀며 즐거워한다.

꿈과 영감의 도시, 그리고 소설 「하이디」
소설 「하이디」가 발표된 것은 1880년과 1881년 사이다. 취리히에 살던 요한나 슈피리란 여류작가가 요양차 마을에 머물다가 영감을 얻어 하이디를 쓰게 된 것이다. 슈피리는 1827년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의사였고, 어머니는 신앙심 깊은 시인이었다.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기독교 집안이었다.

슈피리는 겉만 보면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유복했던 것 같다. 남편은 변호사였고, 신문 발행인이었으며 나중에는 시의회 서기로도 활동했다. 서기가 돼 관사에서 살았다는 것을 보면 지금으로 치면 의회의장쯤 된 것으로 보인다.
남편은 시의 유력자였고, 자신은 취리히에 사는 문인들과 교류하는 데 열중했다. 이 정도면 남부럽지 않을 만한 위치지만 정작 슈피리는 도시 생활에 찌들어 몸은 쇠약해졌고, 마음에 우울증이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요양을 위해 찾은 곳이 바로 마이엔펠트다.

산 아래에는 드넓은 포도밭이 펼쳐지고, 마을 뒤편으로는 초지가 펼쳐진 마이엔펠트는 산들은 각이 져서 날카로웠지만 슈피리의 마음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이 마을에서 슈피리는 하이디를 창조했다.

부모가 모두 죽은 하이디는 이 마을의 완고한 노인에게 맡겨진다. 마을 주민들은 노인이 하이디를 맡았다는 것을 알고 놀랐을 정도로 노인의 성격은 괴팍했다. 웃음도 잃어버린 할아버지는 마이엔펠트 뒤편 얼음산처럼 차가웠다. 하나, 하이디의 웃음은 쇳덩이 같은 노인의 마음도 녹일 수 있었다. 고집쟁이 영감은 하이디에게 마음을 열고, 하이디는 피터 등과 함께 알프스를 맘껏 뛰어다니며 자란다.

하지만 하이디는 병약한 소녀 클라라의 말동무가 되기 위해 반강제로 프랑크푸르트로 보내진다. 고향의 푸른 초원을 그리워한 하이디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몽유병에 걸리고 만다. 친구의 병을 고쳐주기 위해 갔다가 오히려 마음의 병을 얻은 것이다. 결국 하이디는 알프스로 다시 돌아오게 되고 클라라까지 알프스로 초청한다. 클라라와 하이디가 친하게 붙어 다니자 심술이 난 피터는 클라라의 휠체어를 절벽에 던져버린다. 휠체어를 잃어버린 클라라는 하이디의 도움으로 혼자 걸을 수 있게 된다.

동화 하이디는 작가 요한나 슈피리의 인생을 떠올리게 한다. 정치·경제의 중심인 취리히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맘고생을 했던 슈피리의 모습이 동화 하이디의 내용과 유사하다. 알프스를 동경했던 마음은 하이디와 같고, 알프스에서 홀로서기에 성공했던 것은 클라라와 비슷하다.

마이엔펠트에 왔을 때 슈피리는 그리 잘나가는 소설가는 아니었다. 20여 편의 소설을 발표했지만 유명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53세 때 「하이디의 수업 시대와 편력 시대」를 발표하면서 유명해졌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하이디와 함께 그는 스타 작가가 된 것이다. 이듬해에는 제2부인 「하이디는 배운 것을 쓸 줄 안다」를 발표했다. 이 두 책의 제목은 그가 좋아했던 괴테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괴테의 작품 중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와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란 작품을 그대로 본땄다.

어쨌든 슈피리는 하이디와 함께 유럽 최고의 인기 작가로 떠올랐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는 지금까지 전 세계 50개 국 언어로 번역되어 2천만 권이 넘게 판매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슈피리의 인생은 하이디처럼 그리 행복하지 않았나보다. 자신은 스타 작가가 됐지만 2~3년 뒤인 1884년 남편과 외아들을 병으로 동시에 잃었다. 그녀는 이후 창작 활동에만 전념하다가 1901년 7월에 눈을 감았다.

슈피리가 세상을 뜬 뒤에도 하이디는 끊임없이 영화, 만화 등으로 제작돼왔다. 1937년에는 셜리 템플이 주인공을 맡았다. 한국에서 방송됐던 만화영화 하이디는 1974년 다카하타 이사오가 감독한 작품이다.
사족인 것 같지만 한마디만 더 하자. 알프스는 때론 엄청난 영감을 준다. 영국의 계관시인 워즈워스는 알프스를 여행하고 누이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이 수많은 풍경들이 내 마음 앞에서 둥둥 떠다니는 지금 이 순간, 내 평생 단 하루도 이 이미지들로부터 행복을 얻지 못하고 지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기쁨이 몰려온다.’(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중에서)
알프스, 거긴 어린이건, 위대한 작가건 간에 꿈을 불어넣어주는 곳이라는 것은 틀림없다.

▲여행 길잡이

마이엔펠트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다. 하루 코스 여행지로 딱이다. 아이들이 성금을 통해 만든 하이디 우물, 농가를 개조해 만든 하이디의 집, 드넓은 포도원 등 볼거리가 많다. 이 지역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 중 하나는 하이킹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이다. 피터의 집에서 하이디의 집으로 이어지는 길은 스위스관광청이 꼽은 스위스 최고의 하이킹 루트 52 중 하나다. 코스는 모두 2개. 붉은색 표지판을 따라 걸으면 1시간, 파란색 표지판은 4시간 거리다. 포도주도 유명하다. 이 마을 포도주는 스위스 국내에서 전부 소비돼 수출은 하지 않는다고. 하이킹을 하다 포도원에 들러 시음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스위스관광청(http://www.myswitzerland.co.kr/)은 하이커를 위해 트래블 트레이너 시스템도 운영한다. 트래블 트레이너는 스포츠생리학을 전공한 운동치료 전문가로 여행에 동행하면서 건강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다. 이들과 함께 걸으면서 여행 후유증을 없애거나, 피로를 없애는 등 걷는 방법과 노하우에 대해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스위스는 아직도 스위스 프랑을 쓴다. 관광지에선 유로도 받긴 하지만 아무래도 스위스 프랑이 더 유리하다. 스위스에서 가장 대표적인 교통수단은 철도다. 스위스패스로 이용하는 게 편리하다. 스위스패스 1등석 티켓은 박물관이나 미술관 입장료 할인도 된다. 철도역에서 짐도 부칠 수 있다. 스위스에는 베르니나 익스프레스, 글래시어 익스프레스, 골든패스라인, 빌헬름텔 익스프레스, 초콜릿열차 등 다양한 열차가 있다. 다만 관광열차의 경우 예약해야 하며 예약 수수료를 받는다는 것도 명심하자. 레일유럽(http://www.raileurope-korea.com/)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스위스패스를 파는 여행사들의 연락처가 나와 있다. 레일유럽 한국지사에서 직접 표를 판매하지는 않고 서울항공여행사(02-755-1144), 리얼타임 트래블 솔루션(02-3704-2800), 하나투어(02-2127-1325) 등 판매 대행사를 통해 티켓을 사야 한다.


글&사진 / 최병준 기자(경향신문)

출처 : http://lady.khan.co.kr/khlady.html?mode=view&code=10&artid=1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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