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아시아 히말라야산맥이남,인도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한 인도는 우리에게 "매혹과 신부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신들과 신앙의 나라"라고 하는 반면 "소음과 빈곤의 나라"라고 불린다. 인도란 말은 "힌두"의 어원으로 알렉산드로스의 군대가 인더스강 연안에 도달했을 때,그 곳에 살던 "힌두(인도)"라고 부른데서 유래되었다. 당시 인도인들은 자신들의 땅을 "바라트(Bharat)로 불렀다. 바라트라는 의미는 북인도인 갠지스강 중류지역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현재의 공식 국명으로는 인도(Republic of India)로 지정되었다.

인도의 미래를 이끌고,정치의 중심지인 뉴델리는 인도의 수도로 영국 지배시절에 건설된 신시가지이다. 국토 면적은 3,165,596㎢로 세계에서 7번째로 넓으며,인구는 967,613,000로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나라로도 유명하다. 인종은 많은 이주민이 정착하여 산 후 섞인 결과 현재,백인종·황인종·흑인종·오스트랄로이드로 구성되어 있다. 북서쪽으로는 파키스탄,북동쪽으로는 중국ㆍ네팔ㆍ부탄,동쪽으로 미얀마,북동부는 방글라데시를 3면으로 둘러싸여 있다. 남동쪽 면은 벵골 만,남서쪽 면은 아라비아 해와 접하며,남동쪽 앞바다에 섬나라인 스리랑카가 있다.



면적 : 316만 6414㎢


수도 : 뉴델리

인구 : 10억 2999만 1000명

정치형태 : 공화제

종교 : 힌두교 80.3%,이슬람교 11.0%,그중 수니파 8.2%,시아파 2.8%,그리스도교 3.8%,그중 개신교 1.9%,로마 가톨릭교 1.7%,정교회 0.2%,시크교 2.0% 불교 0.7%,자이나교 0.5%,조로아스터교 0.01%,기타 1.7%로 구성된다. 인도는 힌두교ㆍ불교ㆍ자이나교ㆍ시크교의 발생지이고,회교와 배화교 그리고 기독교가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어 다양한 종교를 가지고 있어 종교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많다.


주요민족 : 인도는 유럽인의 모습을 한 아리안계인과 신드와 푼자비,두툼한 느낌의 용모를 지닌 벵갈리,중앙 아시아 사람들과 비슷한 카시미리,작고 검은 비하리,몽골리언계인,티벳과 네팔의 혈통을 이어 받은 나닥과 씨킴,포르투갈 피가 섞인 고아 사람들,흑인을 방불하는 검은 피부의 까랄라 사람들,용모가 좋은 드라비디언족인,타밀 나두 일대의 사람들로 많은 인종으로 구성된다.


주요언어 : 공용어로는 영어와 힌두어로 지정하였으나 아삼어·벵골어·구자라트어·힌디어·칸나다어·카슈미르어·말라얄람어·마라타어·오리야어·펀자브어·산스크리트·신드어·타밀어·텔루구어·우르두어 등 15개 주요 지방어로 구분하지만 세분하면 1,652종의 언어가 있는 것으로 예상한다.


경제
인도 경제성장은 느린 편이나 정교한 행정조직ㆍ관료제도ㆍ양호한 교통ㆍ통신망ㆍ우수한 인력ㆍ정비된 공업기반으로 일반적인 개발도상국들과는 달리 현재 20위로 다른 공업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인도는 농림ㆍ수산업에 GNP의 약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약 80%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수산업은 해안선과 큰 강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발전하지 못한 가운데 있다.

기후
인도인들은 6개로 기후를 나누는데 봄철은 바산타로 3월 중순-5월 중순,무더위철 그리쉬마로 5월 중순-7월 중순,장마철은 바샤로 7월 중순-9월 중순,가을철은 샤라다로 9월 중순-11월 중순,겨울철을 헤만타로 11월 중순-1월 중순,선선한 철을 쉬쉬라로 1월 중순-3월 중순으로 나누고 있다.

3월이면 뜨거워지기 시작하여 4월이면 절정에 달하여 45℃에 이르며,6월이면 남쪽으로부터 장마철이 시작되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큰 재해를 가져온다. 그러나 나닥 지역은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다. 9월초에는 북쪽에서 장마철이 벗어나,선선한 기후를 보여 푸른색의 초목과 산천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히말라야산맥은 이 시기에 아주 멋있는 경관을 볼 수 있다. 10월초에는 델리 등의 산지라도 11월부터 일교차에 의해 밤에 서늘한 기온을 보이고,12-1월경에는 얼어죽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지리
인도 북부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고산지대인 히말라야 산맥지역이 있으며,해발 8,000m이상인 수십 개의 봉우리들이 자리잡고 있으며,눈으로 뒤 덮여 있다. 그리고 인도 갠지스 평원으로 길이는 2,400km,너비 240∼320km로 면적 100만㎢인 충적평야지대로 인더스ㆍ갠지스ㆍ브라마푸트라 강이 북쪽 산지와 남쪽 고원지대에서 많은 토사를 운반하여 퇴적하여 넓은 평야지대로 저지대가 위치하고,인도에서 오래된 지층으로 데칸고원이 있는데 동고츠ㆍ서고츠 산맥은 서쪽 끝에서 남북으로 뻗어 아라비아 해 사면과 벵골 만 사면의 분수계를 이룬다.


간단한 현지어
현지어 : namaste 나마스떼
의 미 : 안녕하세요.
현지어 : han ji/ji ha 한 지/지 하
의 미 : 네.
현지어 : ne hin/ne hi 네 힝/네 히
의 미 : 아니요.
현지어 : kam karo,na 깜 까로,나
의 미 : 깍아주세요.
현지어 : kon hai? 꼰 해?
의 미 : 저것이 무엇이에요?


역사
BC이전 역사 개요
인도는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 중의 하나로 기원전 3000년부터 모헨조다로와 하라파 등지의 유적들을 통하여 인더스 문명은 약 500여년간 메소포타미아나 수메르에 버금가는 세련된 청동기문명을 꽃피운다. 그러나 인더스문명은 전설처럼 전해진다.

기원전 100년경 북방유목인아리아인들이 이란 고원을 넘어 인도로 침입해 왔다. 이들은 갠지스 강 유역,지금의 델리 근처에 정착하여 도시를 건설하여 가기 시작하였다. 베다 신앙에서 힌두교가 파생되었고,산스크리트가 발전해 2000여 년 동안 인도의 언어로 사용되었다. 그 후 자신들의 문화적 우월성을 보였고 "카스트"라는 계급제도를 도입,토착민과의 혼혈을 통해 인도민족의 중심으로 형성된다. 기원전 3세기경 마가다국의 찬드라 굽타의 통치 하에 최초의 힌두 왕조인 마우리아 왕조로 통합되었고,불교진흥과 세계화에 공헌하였던,아소카왕이 죽자 급속하게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AC 1년 - 1900년 까지의 역사
기원전 2세기 멸망하고 12세기까지 인도는 강력한 통일 국가를 형성하지 못하며 왕조의 흥망을 되풀이한다. 이슬람교도들의 침입은 AD 1000년경에 시작되어 14세기초에 모하마드 이븐 투글루크가 델리 술탄국의 세력을 확장하는 등 이슬람 지배는 16세기 초까지 계속되었고,남인도에서는 이슬람계인 바만 왕조가 성립되어 1527년까지 명맥을 유지와 함께 힌두 왕국인 비자야나가르가 1336-1556년에 남부지방을 양분하여 통치하였다.

16세기 초에 이슬람계 왕조인 무굴 제국이 인도 전역을 지배하였고,1526년 티무르의 5대 손인 바베르에 의해 회교왕국인 무굴제국이 건설되었으며 150여 년 간 구가하며 인두역사의 중세를 장식한다. 16세기 초 바바아낙에 의해 이슬람과 힌두교의 절충형인 시크교도 바로 이 때의 산물이다.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여행을 기점으로 포르투갈인들이 상륙하여 인도와 유럽 사이의 무역을 독점하였으며 17세기 포르투갈인ㆍ영국인ㆍ프랑스인ㆍ네덜란드인들 간에 경쟁관계를 형성하다가 세력을 키워온 영국동인도회사는 차츰 경쟁관계에 있던 식민 세력을 몰아내고 영국의 식민지 진출이 본격화되었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영국동인도회사를 통한 영국의 통치는 세포이항쟁 이후인 1858년에 영국정부가 인도를 직접 통치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하지만 인도민중들은 국민회의를 중심으로 반영독립투쟁에 돌입하여 간두와 네루를 대두로 국민회의 과격파들은 1919년을 기점으로 "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여 커다란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영국은 1919년과 1935년 인도 행정법을 통해 인도에 제한된 범위의 자치권을 허용하였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로 영국의 애틀리 노동당정부는 인도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약속하였다. 간디를 비롯한 인도인들은 완전독립을 요구하였고 그 계기로 1947년 8월 15일 독립을 획득하였으나 힌두교와 이슬람교도 사이에서는 통합을 이룩하지 못하였다.

이런 분열은 힌두교의 인두와 이슬람교도 대다수인 파키스탄으로의 분열을 일으켰다. 펀자브와 벵골은 주민들의 종교성향에 의해 2개로 분해되어 양국에 포함되었으며 카슈미르는 아직도 분쟁이 계속되는 상태에 있다. 인도는 자와할랄 네루를 총리로 1952년 선거를 통하여 국회를 구성하였다. 하지만 확정되지 않은 국경선을 두고 중국과 파키스탄은 구경분쟁을 일으켰으나 1967년 네루의 딸 인디라 간디가 의회에서 지지를 받고 취임하였고 인디라 간디가 암살된 다음해 라지브간디가 총리에 취임하였다. 1971년 파키스탄은 국경 2곳에 전쟁이 일어났으며 그 결과 동 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독립을 하였다.


유용한전화번호
대사관/영사관 관련사항
주인도 대사관
-주소 : 9 Chandragupta Marg,Chanakyapuri Extension,
New Delhi - 110021,India
-전화 : (91-11) 688-5412,5419,688-5374/76
-Fax : (91-11) 688-4840,687-8554
주뉴델리 코트라사무소
-주소 : 15,Malcha Marg,New Delhi -21
-전화 : (91-11) 410-7235 / 7237
-Fax : (91-11) 401-7235
주뭄바이 총영사관
-주소 : Kanchan Junga Bldg.,9th Floor,72 Peddar Road
Mumbai 400 026,India
-전화 : (91-22) 388-6743,6745/Fax : (91-22) 388-6765
주캘커타 명예총영사관
-주소 : Nicco House,Hare Street,Calcutta - 700 001
-전화 : (91-33) 248-8220/Fax : (91-33) 220-9443

긴급연락처(경찰서,병원 등)
경찰서 : 100
소방서 : 101
앰블런스 : 102,1099
전화안내 : 197


전압 및 주파수
220V,50HZ,3P콘센트를 사용하자 전선은 상태가 좋지 않으며 전압의 변화가 심하다.


치안
대도시의 버스ㆍ기차 등 대중교통을 이용 할 때에는 소매치기와 날치기에 항상 주의해야 한다. 날치기는 기차를 무대로 일어나고 있는데,잠든 사이 창문으로 물건을 집어내고,기차가 출발할 때 물건을 잡아채는 경우가 많이 있다. 버스에서는 짐을 어디에 두었는지 확실히 확인한 후 항상 주시하거나 잡고 있어야 한다. 또한 의자나 고정물에 쇠줄이나 줄을 연결하여 들고 갈 수 없게 한다. 화장실이나 잠시 자리를 비울 경우 같이 여행 간 동행한테 짐을 맡긴 후에 다녀오도록 하자.

캐시미르,푼잡,아쌈주를 중심으로 도처에서 종교 및 종족 분쟁,지역갈등 등 국지적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미치기 어려운 일부 내륙 및 국경지역 여행시 주의를 해야 한다. 잠무.캐시미르 지역 -파키스탄과의 휴전선에 가까운 Kashimir Vally 지역은 인도 군대가 주둔하고 있으며 양측 군에 의한 소규모 접전이 산발적으로 벌어지는 한편,무장요원들이 출몰하여 민간인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테러를 일삼고 있어 특히 외국인 관광객은 표적이 되기 쉽다. 99.12월 인도기 납치사건이래 인.파간의 긴장고조로 폭발물 테러가 빈번하며 치안이 매우 불안한 바 우리국민은 이들지역 여행을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동북부 국경지역 -Hill States 라고 불리우는 동북부 8개주 (Arunanchal Pradesh,Assam,Sikkim,Nagaland,Manipur,Tripura,Mizoram,Meghlaya)는 분리주의자들 및 반정부 무장단체들의 소요와 테러가 빈번하므로 여행지의 정세를 사전 점검함이 필수적임. 여행제한지역 -상기 동북부 8개주중 Nagaland,Manipur,Mizoram 3개주는 사전 내무부 허가를 얻어야 하며 기타 특별사건 발생 지역 경우 외국인 여행시 내무부 허가를 요하는 경우가 있음. 기 타 -일반 지역의 경우도 종교,종족 또는 계급간 분쟁이 유혈충돌로 발전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여행전 치안상태를 사전 확인할 필요.


통화
인도 통화단위는 루피(Rupee=Re)와 파이사(Paisa=P)로 부르며 루피는 단수로 Re,복수로 Rs로 쓰이며,파이사는 P로 사용하고 있다. 동전의 종류는 1,2,3,5,10,25,50파이사가 있으며 지폐는 Re1,Rs2,Rs5,Rs10,Rs20,Rs50,Rs100,Rs500가 있는데 500Rs는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1997년 말 기준으로 1USD=36.17Rs이다.


한국으로 전화
전국 어느 지역에서나 STD/ISD라고 TM여진 가게들이 있는데 여기는 국제전화,시외전화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이것은 전화시간과 요금이 자동적으로 인쇄되어 나오므로 편리하다. 00+82(국가번호+0을 뺀 지역번호+상대방번호 수신자 부담 전화를 이용할 때는 000-8217을 이용한다.


현지로 전화
001+91(국가번호)+지역번호+상대방전화번호 수신자 부담 전화를 이용할 때는 000-8217을 이용한다.


주의사항
외국인 금기사항
악수를 할 때나 선물을 줄 때에는 반드시 오른손을 사용하고 식사 전후에는 손을 씻도록 한다. 힌두사회는 쇠고기를 먹지 않고,음주ㆍ도박ㆍ마약ㆍ싸움을 부정시 여기고 있으며,이슬람교도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주의하여야 한다. 사원에 들어 갈 경우에는 신발을 벗은 후 들어가야 하는 것이 예의이다. 물은 석회질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생수를 사거나 호텔에서 정수 된 물을 마시도록 하자. 인도인들은 화장지를 사용하지 않기에 화장지를 준비하여 가져가는 것은 필수 준비물이다.

복장 및 의복 관련사항
여행하기 편한 옷을 준비하여 가져가는 것이 좋다. 인도는 형식을 따지지 않으므로 간편한 복장도 괜찮지만,노출이 심한 옷은 피하는 것이 좋으며,남성들도 털난 정강이를 보이는 것도 별로 바람직하지는 않다. 인도는 더운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여름옷을 준비하여 가져가는 것이 좋다. 두툼한 옷은 부피만 차지하고,필요 이상의 옷은 준비하지 않도록 한다.


비자
▣ 국내 비자발급처
기 관 명 : 주한 인도 대사관
주 소 :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37-3
전화번호 : 02-798-4257
팩스번호 : 02-796-9534
근무시간 : 09:00-13:00 & 13:30-17:30 토요일 휴무

▣ 비자신청시 유의사항
인도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하다.

▣ 비자신청시 구비서류
비자 신청시 구비서류로서 관광비자는 비자 신청서, 6개월 이상 유효한 여권, 여권용 사진 2장이 필요하며, 상용 비자일 경우 비자 신청서, 6개월 이상 유효한 여권, 여권용 사진 2장, 출장증명서를 구비하여야 한다.


인도인들은 6개로 기후를 나누는데 봄철은 바산타로 3월 중순-5월 중순,무더위철 그리쉬마로 5월 중순-7월 중순,장마철은 바샤로 7월 중순-9월 중순,가을철은 샤라다로 9월 중순-11월 중순,겨울철을 헤만타로 11월 중순-1월 중순,선선한 철을 쉬쉬라로 1월 중순-3월 중순으로 나누고 있다.

3월이면 뜨거워지기 시작하여 4월이면 절정에 달하여 45℃에 이르며,6월이면 남쪽으로부터 장마철이 시작되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큰 재해를 가져온다. 그러나 나닥 지역은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다. 9월초에는 북쪽에서 장마철이 벗어나,선선한 기후를 보여 푸른색의 초목과 산천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히말라야산맥은 이 시기에 아주 멋있는 경관을 볼 수 있다. 10월초에는 델리 등의 산지라도 11월부터 일교차에 의해 밤에 서늘한 기온을 보이고,12-1월경에는 얼어죽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 뉴델리 [New Delhi]

뉴델리는 인도의 수도로서 야무나강을 동쪽에 끼고 있으며 올드델리와 뉴델리 지역으로 크게 나뉘운다. 올드델리는 인도가 회교군주에 의해 다스려지던 13-19세기에 중심이었다. 뉴델리는 1911년 인도를 통치하던 영국이 수도를 캘커타에서 델리 일대로 옮기며 개발한 곳이다. 인도에 들어서는 주요관문 중의 하나인 뉴델리는 인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여주는 서로 다른 면모를 지닌채 어우러져있다.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인 뉴델리는 인도의 야심가들이 꿈을 펼치는 무대였다. 거대한 대륙위에 군림함으로서 뉴델리를 장악하기 위해 펼치는 갖가지 연극들이 밤 낮을 가리지 않고 줄을 잇고 있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 뉴델리의 비중은 봄베이에 비해 떨어진다. 올드델리의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구 시가와 뉴델리지역의 도시계획에 의한 시가지가 이국의 여행자들에게 색다르고 강렬한 느낌으로 선뜻 다가서는 곳이다.

뉴델리 구역엔 2개의 기차역이 있고 올드델리 구역에도 1개의 기차역이 있다. 가장큰 기차역은 뉴델리 기차역이지만 델리 기차역이나 뉴델리의 남부에 있는 니자무딘 역을 시발역이나 종착역으로 삼고 있는 기차도 많다. 샤자한에 의한 우람한 유적들인 레드포트 등이 있고 인터스테이트 버스터미너스 등을 끼고 있는 올드델이의 기차역은 델리역이라고 지칭되고 있다.

6월에서 9월까지 우기가 집중되고 4월부터 10월까지 최저기온이 20도가 넘는 더운 기후이다.




▶ 님나라

자이푸르와 델리 사이에 위치한 님나라는 고성호텔을 소유하고 있으며 특히 고성은 호텔로 개조되어 사용되고 있다.




▶ 다람살라

티벳 망명정부가 있는곳으로 달라이라마가 거처 하는곳이며, 인도속의 티벳을 느낄수 있는 독특한곳으로 한국,일본 식당등 한국인에게는 많이 친숙한 곳이다. 고산지방이어서 날씨가 매우 선선하여 뜨거운 여름의 피서지로 유명한 곳이다.




▶ 라마유르

레에서 서쪽으로 125km떨어진 곳의 작은 마을. 나무 한 그루 없는 척박한 산등성이 위에 그림처럼 서 있는 라마유르 곰파로 유명하다.
티베트사원인 라마유르 곰파는 여행자들 사이에 일명 달나라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사원. 비하르 주에 있던 날란다 대학의 마지막 학장 나로빠가 10세기 말 경에 방문해, 토굴 수행을 통해 도를 이루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면서 부터 신비롭고 인상적인 곳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한때는 티베트의 토속 종교였던 뵌포교사원이지만 현재는 티베트불교의 한 종파인 켈룩파의 사원으로 사용된다.




▶ 마드라스 [Madras]

인도 남동부 타밀나두주(州)의 주도이며,벵골만에 면한 코로만델해안에 있는 항구도시로,남 인도를 넓은 범위에 걸쳐 여행하고 싶어하는 여행자는 마드라스를 기점으로 여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타밀나두 지방의 주도에 있는 마드라스에는 국제 공항과 항구 외에 주변의 주요 도시로의 철도망과 도로망이 완비되어 있다. 이 도시가 속해 있는 남부 타밀나두주는 서부와 동부로 나뉘어 지는데,마치 우리나라의 강원도처럼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영서/영동이 갈라지듯이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서쪽은 서고츠 산맥을 비롯한 분지로 구성되어 있으며,동쪽은 바다를 가까이하고 있어 상당히 풍요로운 평야지대를 이룬다.

인도 남부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서 이곳은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인 마드라스대학교를 비롯하여 영국식 건축물도 많이 있다. 이 도시는 다시말해,인도의 4대 도시중에 하나로서,큰 도시로 성장하게 된데에는 그리 시기적으로 오래되지는 않았다. 원래는 바다를 끼고 있는 작은 어촌마을에 불과했던 마드라스에 가면 성(聖) George fort가 있는데,이곳을 영국이 무역기지로 만들므로 해서 마드라스가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현재 국제공항까지 갖추고 있는 마드라스는 남인도를 대표하는 도시로 손색이 없으며,많은 해외 공관과 기업,은행들이 진출해 있거나 지점을 두고 있을 정도이다. 또한 뭄바이와 더불어 영화산업의 중심지로 힌디영화와는 다른 타밀영화를 제작하고 있고,그럼으로써 남부지역은 볼리우드 스타 군단과는 또 다른 스타 군단들이 만들어져 있다. 더우기 재미있고 흥미로운 사실은 이 주는 여자들을 위해서 버스운전사 뒤에 2자리를 특별히 남겨두는 배려를 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또 여자 경찰들이 많다는 것도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산업
지금은 철도· 공항로의 중심으로 면화· 면제품· 피혁· 커피 등을 수출하고 있다. 한편 자동차· 철도차량 등의 공장이 집중되어 있다.


인도의 다른 곳과는 달리 이 타밀나두주에 속한 이 도시는 여름 한차례 그리고 가을무렵에 한차례 장마가 있다




▶ 뭄바이

인도에서 가장 분주한 국제공항과 항구를 지니고 있는 뭄바이는 명실공이 인도 최대의 관문이다. 또한 인도대륙의 남서부에 위치하고 있는 뭄바이에는 인도에서 가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경제적으로 뭄바이는 인도의 최대 중심지이다.

뭄바이는 인도의 어느 도시보다 서구적인 곳이다. 중심지에 늘어선 건물들의 서구적인 면모도 그렇지만 이곳에 사는 중산층 정도의 사람들이라면 인도의 여느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다르다. 인도의 여러곳을 다녀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뭄바이는 인도가 아니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뭄바이는 인도인들이 사는곳이 분명하다. 도심에서 멀지 않은곳에 장마철이면 그 존재가 부각되는 빈민가가 자리하고 있고 그곳을 터전삼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있고 활기차게 살아가고 있다.




▶ 바라나시

바라나시는 시바신과의 연관으로 해서 더욱 성스럽게 여겨지는 갠지즈강을 끼고 3천여년 이전에
형성된 이후 오늘날까지 던절됨 없이 번잡한 도회지로 이어져 오는 곳으로 원래 '빛나다'라는 뜻인 카쉬로 불리어 온 곳이다. 바라나시라는 오늘날의 이름은 시의 북쪽과 남쪽에서 각각 흐르고 있는 바루나강과 아시강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영국이 통치하던 시절엔 베나레스라고 영어식으로 표기되어 지금도 카쉬와 함께 이곳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종종사용되고 있다.
강물에 목용함으로써 죄가 씻겨지는 것이라면 물 속에 사는 고기야 말로 최고의 성자가 아니겟냐는
빈정거림에도 불구하고 갠지즈 강가에서 정화의 의미를 품고 목용하는 사람들이 3천여년을 이어가며 매일같이 재현되고 있는 핸두의 성지로서 바라나시, 세계 그 어느 도회지도 주민들의 일상 생활이 이곳 처럼 종교적인 관습이나 의식과 완벽하게 뒤섞여 있는 곳은 없을 것이다.
종교를 토대로한 도회지로서 오랜역사를 지닌 바라나시는 따라서 학문과 예술의 중심지로 자리하여
오며 많은 인물들의 일화를 간직하고 있다. 복잡하고 어려운 범어의 단어 변화를 외우느라 고생하는
학자를 목격하게 된 상카르차르야가 그 학자에게 범어에 능통하게 되는 것은 신과의 합일을 이루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냉엄하게 일깨웠다는 일화나 깔리다사가 범어를 익히기 위해 이곳 바라나시로 유학을 왔었다는 일화 그리고 이곳에 머물며 현대 인도의 범국가적 언어가 된 힌디어의 테계를 잡고 발전시켰던 툴시다스 등의 일화는 이곳이 오랬동안 학문의 중심지였음을 말하는 것으로 널리 인용되는 것이다. 인도의 고전음악을 서구에 알리고 널리보급시킨 최고의 유공자로 꼽히는 라비상카르로 대변되는 이곳의 예술적 전통은 오늘날에도 활발하다. 해마다 겨울철이면 음악과 춤을 공연하는 크고 작은
연주회가 끊임없이 진행되며 뿌리 깊은 예술의 고장으로서의 맥을 잇고 있는 것이다.

산업
석존의 호사스러웠던 왕자 시절을 묘사하는 문헌에 그가 카시 비단으로 만든 옷만을 입었다는 대목이 나올 정도로 그 옛날부터 바라나시는 전통의 비단 산업을 위주로 하는 무역의 중심지였다. 바라나시의 이 유명했던 비단산업은 지금도 변함없이 바라나시를 방문한 사람이라면 비단접에 고용된 호객꾼들로 부터의 유혹을 한번이라도 받지 않고서는 바라나시를 떠날 수가 없을 정도이다.




▶ 방갈로르 [Bangalore]

방갈로르는 비록 인도의 남부 지방에 속해 있지만 해발 920m에 이르는 고지대인 관계로 연중 쾌적한 기후를 유지하는 곳으로 항공산업을 비롯한 첨단산업체와 연구소가 집중되어 있어 인도의 미래를 대변하는 도시로 손꼽히는 대도시이다. 그러나 카르나타카 주의 수도인 이곳 방갈로르가 처음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깊은 역사의 인도와는 달리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방갈로르에는 인도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많은 유학생들뿐 아니라 주로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온 해외 유학생들도 많이 있는데,세계각지에서 찾아드는 사업가들도 이들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갈수록 국제도시의 면모를 띠어가고 있는 방갈로르는 짧은 역사를 지닌 젊은 도시 답게 밝고 발랄한 분위기가 역력한 곳이다.

컴퓨터의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인도는 확실한 자리를 점하고 있다. 소프트웨어의 연구를 위해 이곳에 와 있는 한국 출신의 학생들도 있고,기독교 선교를 목적으로 왔는다는 사람들도 있는 등 한국인들도 상당수가 자리잡고 있어,방갈로르는 인도에서 최초의 한국음식점이 생긴 곳이기도 하다.


산업
잘 가꾸어진 가로수를 낀 널찍한 도로,도심에 자리잡고 있는 넓은 공원등을 지닌 방갈로르는 인도의 여느 도시와는 확연히 다른 면모극 보여주는데 원래 이곳의 전통적인 산업은 커피중개업과 공예산업이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항공산업체를 비롯 각종 기계,전자 그리고 컴퓨터 산업체들이 들어서고,이에 관련된 연구단체들이 자리잡게 되어 방갈로르는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고 있다.




▶ 아그라 [Agra]

16세기 중엽 무굴제국(이슬람 왕조)의 악바르 대제가 이곳을 수도로 정해,짧은 시간인 약 1세기동안 영화를 누렸던 곳이 바로 아그라이다. 악바르 대제의 아들 샤자한이 델리로 수도를 옮기면서 쇠퇴했지만,아그라는 힌두 대서사시 가운데 하나인 "마하바라타"에서도 천국의 정원이라는 뜻을 가진 아그라바나 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을만큼 그 역사가 깊은 도시이기도 하다.

이 도시는 17세기의 타지마할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며,뿐만 아니라 인도의 최대 관광지이면서,지독한 릭샤왈라며,악덕 상인들이 붐비는 곳이기도 한다. 아그라와 그에 이웃한 파테푸르는 델리에서 당일 여행도 가능하지만 숙박하는 것도 좋다. 아그라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타지마할이지만 그 외에 아그라 성과 시칸트라,람바그,이토마드,우드 다울라 묘라고 하는 것들을 볼 수 있다. 또한 아그라 남서쪽으로 무갈 제국의 유적과 파테푸르 시크리가 있다. 아그라와 파테푸르 시크리는 무갈 역사의 유산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힌두와 이슬람의 요소가 융합된 건축물의 최고 걸작으로서도 평가되고 있다.

이곳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에는 세자한기리마할과 악바르 황제가 건설한,흰 대리석의 진주(眞珠)사원(Moti Masjid)을 포함하고 있는 16세기 성채이다. 또한 대사원(Jami' Masjid)과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잘 알려진 훌륭한 능묘인. 북서쪽으로 시칸드라에는 악바르의 무덤도 명소이다.

도로와 철도의 주요 교차점으로 상업과 산업 중심지인 아그라에는 아그라대학교(1927)와 6개 부속대학이 있으며,교외에는 주립정신병원과 라다소아미 교파의 거주지인 다얄바그가 있다. 야무나 강과 아그라 운하에서 물을 공급받으며 주요농작물로는 기장·보리·밀·목화가 손꼽힌다. 아그라 시에서 남서쪽 37㎞ 지점에는 폐허가 된 무굴 제국의 도시인 파테푸르시크리도 유명하다.


교육
초등5년,중등 7년(3/4년)과 의무교육은 8년인 이곳은 영어·힌디어 및 주(州)의 공용어 등 3개 언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고등학교 교육은 주정부의 반 이상이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아그라에는 1927년에 설립되어진 아그라대학교와 6개의 부속 대학이 자리하고 있다.




▶ 아마다바드

아마다바드는 사바르마띠 강을 끼고 1411년 회교군주 아메드 샤에 의해 건설된 곳이다. 아마다바드는 인도의 아버지로 추앙되는 간디 선생이 설립하고 또 오랫동안 버물렀던 아쉬람을 지니고 있는 등 간디 선생과 많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종교간의 화합을 역설했던 간디 선생의 당부와는 달리 이곳의 회교도와 힌두교들은 충돌요소가 있을 때마다 인도에서도 손꼽히게 큰 소요사태를 일으키는 답답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화려했던 과거의 도시답게 아름다움 인도 사라세닉 건축물들이 시가지 곳곳에 자리잡고 있고 직물 산업도시의 면모를 내보이는 풍부한 색감의 풍경들 펼쳐지는 구시가지의 풍물들이 있어 인사에 남는 아마다바드는 나름대로의 매력과 활력이 넘치는 곳이다.

아마다바드 시는 사바르마띠 강을 경계로 동,서로 구분되어 있는데 동쪽은 구시가지 이고 서쪽은 신시가지이다. 기차역에서 보았을때 강을 향하여 양쪽으로 길이 뻗어나가고 있는데 3km 정도에 이르는 이 두길이 구시가지의 중심도로이다.




▶ 아우랑가바드

아우랑가바드는 뭄바이, 푸네(Pune)와 도로와 철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뉴델리와 같은 기타 도시들과도 항공연결이 가능하다. 아우랑가바드는 마지막 무굴제국 황제 아우랑제브(Aurangzeb)를 따서 붙여졌으며 원래는 카드키(Khadki: 암석지대)로 불리웠었다.

아우랑가바드에는 아우랑제브황제의 아들이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비-카-막바라(Bibi-Ka-Maqbara)와 판차끼(Paan-Chakki:물방아갓) 등의 유적지와 볼거리들이 있다.




▶ 아잔타

아잔타는 뭄바이로부터 400 킬로 미터 떨어진 아우랑가바드에서 버스로 갈 수 있으며,석굴사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바위산 전체를 뚫어서 만든 세계 최고의 조각으로 알려져 있는 이 석굴 사원은 세계적인 보고로도 알려져 있으며,최고의 미술사적인 측면에서도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이 지역에는 찬란한 종교 문명의 유적이 남아있는 엘로라도 있다. 엘로라의 34개의 동굴사원은 10세기 이상 지난 것으로서,힌두교,불교,자이나교의 신앙을 보여주는 정교한 조각이 새겨져 있다.

특히 불교의 석굴 사원이 가장 많은 곳인 이곳 아잔타는 벽화와 조각 등 최고의 예술 작품 들을 감상할 수 있으며,까마득한 옛날에 구도자들이 어떤 환경 속에서 수행에 몰두했는지 짐작해볼 수 있는 곳이다. 이 독굴사원은 오래된 것은 5세기에 만들어 진 것으로 부처의 생애가 벽화나 조각으로 묘사되어 있아 큰 가치를 지닌다.




▶ 자이푸르 [Jaipur]

구시가지를 채우고 있는 분홍색 건물들로 해서 핑크시티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자이푸르는 라자스탄 주의 수도이다. 라자스타니와 힌두어를 주언어로 한다. 언덕으로 둥러 싸여 있어 아늑한 느낌과 함께 좋은 경관을 갖고 있는 자이푸르 성안 건물들의 벽이 온통 분홍색으로 칠해지게 된것은 18세기말 웨일즈 왕자가 이곳을 방문하였던 것이 그 계기이다. 당시 마하라자가 웨일즈의 방문을 기념하여 라지푸트들에 의하여 전통적으로 환영한다는 뜻으로 사용되던 분홍색을 온 시가지에 칠해버린 것으로 지금은 핑크시티로서의 성가를 지키기위한 당국의 강제적 규정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달 밝은 밤이라면 정취가 더욱 뒤어나지만 전등불에 의해 밝혀지는 밤의 정취도 분홍빛 일색의 시가지가 주는 분위기를 색다른 것으로 만들기에 족하여 이곳을 잊혀지지 않는 곳으로 만든다.




▶ 잔시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 주 잔시 행정구의 행정 중심도시로서,주요도로와 철도의 교차점에 자리잡고 있다. 잔시 행정구는 북쪽의 갠지스 평원과 남쪽의 빈디아 산맥 사이에 있는 분델칸드 구릉지대에 위치한 길고 좁은 지역으로 지면이 울퉁불퉁하다. 비옥한 흑색토가 넓게 펼쳐져 있는 북부 지방에서 목화·유료종자·곡물 등이 재배된다. 베트와 강과 그 지류들이 흐른다
아쇼카왕의 스투파로 유명한 잔시는 보팔에서 46km떨어진 아주 한적한 시골마을이다. 지나 다니는 릭샤도 드물만큼 한가한 이곳은 여러 시설들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로 지친 여행자들의 마음을 편안히 달래준다. 마을 야산위에 있는 스투파 유적지에서 조용히 자신을 돌아볼 수도 있으며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며 즐기는 자전거 하이킹도 기대할 수 있다. 잔시 시 외에도 규모가 비슷한 두 도시가 합쳐져 형성된 마우라니푸르(Mau-Ranipur)가 있는데,이곳에서 카르와(Khrw) 천이 생산된다.


교육
이곳에는 분델칸드대학교가 있다. 분델칸드의 짠델라 왕조 하에서 10,11세기에 뛰어난 건축물들이 지어졌는데,대표적인 것이 카주라호에 있는 아름다운 사원들이다. 이처럼 분델칸드 왕조 시대에 설립되어진 오래된 전통을 자랑하는 대학 교육기관이 바로 이곳이다.


산업
오늘날 농산물 시장인 이곳에는 약간의 제조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강철압연공장과 철도공작창이 있다.




▶ 카주라호

카주라호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유물들은 찬델라 왕조때 세워진 사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85개의 사원중 현재 22개만이 남아 있으며 카주라호를 유명하게 만든 미투나 상이 사원벽면에 장식되어 있다.




▶ 쿠시나가라

쿠시나가라는 고락푸르(Gorakhpur)의 동쪽 55㎞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석가모니가 열반한 곳으로 유명한 니르바나 사원과 열반에 이른 석가모니를 화장한 장소로 추정되는 람바르 스투파(Rambhar Stupa)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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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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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와 환상의 나라, 인도
타지마할..겐지스강..간디...우리에겐 아직도 이정도 밖에 떠오르지 않은 나라 인도, 늘 멀게만 느껴지는, 신비의 베일속에 덮여진 나라 인도.. 과연 그곳은 어떤곳인가? 인도는 우리 역사 속에서 보면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을 정도로 예전부터 교류가 있었던 나라이다. 현재의 인도는 한반도의 15배 ,남한 면적의 33배가 말해주듯 북으로는 히말라야(Himalaya)산맥과 중부에는 데칸고원 그리고 동과 서에는 각각 벵갈만(Bay of Bengal)과 인도양(Indian Ocean)이 위치하고 있다.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전 까지는 현재의 파키스탄,방글라데쉬,아프카니스탄일부지역까지 포함하며 서남아시아 대부분을 차지했던 대국이었다. 독립후 가난의 처절함속에 울부짖던 인도가 이제 IT 강국 세계속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솟아 오르며 세계속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Day 1-2. 인도의 관문 델리  
 


꾸뜹 미나르 유적군(Qutab Minar Complex)

델리는 지리적으로 야무나강의 서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갠지스강유역과의 교통 중심지로 고대부터 이 지방의 정치 문화 경제의 중심을 이루었던 도시이다. 현재는 인도의 수도로서 정치 행정의 중심 도시이며 이곳을 중심으로 이슬람 건축들이 많이 퍼져 있다. 델리는 모든 부분에 있어서 과거와 현재인도의 중심지로 자리잡고 있으며 현재와 미래가 같이 공존하고 있는 중심지로 명실상부한 인도의 핵심도시로 근래 역동의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선두도시라 할 수 있다.
델리에는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인 꾸뜹 미나르는 델리관광의 최고 볼거리로 여겨지는 곳으로 힌두 왕국이었던 인도에 무슬림이 처음 진출후 이슬람제국을 세우면서 승전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72.5m의 거대한 탑을 비롯한 유적군이다. 1982년 까지는 탑을 오를수가 있었지만 좁은통로로 인한 인파의 압사사고가 빈번해 현재는 아쉽게도 밖에서만 볼수 있다.


자마 마스지드(Jama Masjid)

타지마할을 건축한 샤쟈한의 마지막 작품으로 인도의 이슬람 사원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사원이다. 붉은성에서 도보로 10분정도 거리에 위치하며, 사원 끝에 있는 미나렛(Minaret)이라 불리는 40m의 탑에 올라가면 델리 시내를 다 내려다 볼 수 있다. 이슬람 사원의 특성상 예배시간에는 신자만 입장 가능하며 신발을 벗어야 하고 반바지 차림으로 입장할 수 없다.


인디아 게이트(India Gate)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했던 인도 군인들을 위한 위령탑으로 높이가 42m에 달하고 벽면에는 전쟁에서 희생된 8만 5천여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라즈파트의 동쪽 끝에 자리잡고 있으며 대통령궁과 마주보고 있다.


라즈 가트(Raj Ghat)

인도의 위대한 영웅 마하트마 간디가 화장된 자리에 그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검은 대리석 제단이 있는곳이다. “헤이 람(라마신이여..)”이라는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이 제단에는 쓰여져 있으며 그를 추모하기 위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곳이다. 화장터 였던곳이라 엄숙함의 무거운 느낌이 들법도 하지만 그런 느낌 보다는 그저 그를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한 기념으로 찾는곳이다.


바하이 사원(Bahai Temple)

인도의 국화 연꽃모양을 형상화 했다고 해서 연꽃사원이라고 불리기도하는 바하이 사원은 이슬람의 한분파로 시작된 신흥종교로 모든 종교의 평화와 통일을 주장하는 종교이다. 모든 종교가 서로 모여 서로 각자의 신에게 평화스럽게 기도하고 의식을 하자는 종교이다. 바깥에서 보는 바하이 사원은 연꽃모양의 화려움을 가지며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같은 느낌을 주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의자 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큰 예배실 같은 분위기를 준다. 1986년에 완공돼 20년이 넘은 사원으로 전세계 바하이 사원중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꼽히기도 한다.

 
  Day 3-4. 인도의 어머니 겐지스강  
 


겐지스강

인도여행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으로 타지마할과 함께 이곳 겐지스강이 흐르는 바라나시를 꼽을 수 있다. 인도를 한눈에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으로 이보다 더 인도를 잘 비추고 있는곳이 없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곳에서 인도인과 그들의 삶 그리고 종교가 아닌 삶의 한부분으로 여겨지는 힌두이즘을 모두 느끼고 바라볼 수 있는곳 이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아침에 나와 이곳에 몸을 담그며 누굴 위해 기도를 하는 것일까? 보기만해도 매쓰거지는 이물을 마시고 하늘을 향해 주문을 외우고 이곳에서 빨래를 하며 결국 주검이 되어 이물에 뿌려지기를 바라는 이들에게 이강의 의미는 어머니 이상으로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닐까..... 24시간 전국에서 몰려드는 주검들의 화장으로 불길이 하늘을 치솟고 있는 이곳은 죽은 영혼의 부활을 바라는 힌두인들에게는 삶의 한부분 같은 곳이기도 하다.
인도를 설명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볼거리를 가지고 있는 이곳 바라나시는 인도 여행함에 있어 이방인들에게는 낯설기도 하지만 반대로 인도인들의 삶에 한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침일찍 겐지스강에 떠오르는 일출을 보고 보팅을 즐기며 가트주변을 거닐며 저녁에는 화장하는 모습을 바라보자.


사르나트

바라나시에서 릭샤로 20-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사르나트는 불교 4대성지중 하나로 부다가 깨달음을 얻어 처음으로 설법을 한 장소이기도 하다. 각국의 절들을 볼수 있는 이곳은 한국의 사찰도 있는 곳이기도 하며, 힌두이즘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바라나시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는 이곳에서 불교의 탄생지인 인도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 볼 수 있는 곳이다.


그 외의 관광지

이 밖에도 인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규모와 역사를 자랑하는 베나러스 힌두대학과 그 안의 힌두 사원들 그리고 황금사원 또한 좋은 관광 코스로 알려져 있다.
겐지스강이 흐르는 그곳 바라나시는 인도의 거울이며 삶이 한부분인 것이다.

 
  Day 4-5. 카마슈트라의 카주라호와 고성도시 오차  
 


카쥬라호 - 세상에서 가장 에로틱한 조각사원

인도의 수도 델리에서 동남쪽으로 59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카쥬라호(Khajurho)는 우리나라 면 소재지만한 작은 마을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카마슈트라의 에로틱한 조각 사원이 22개나 있어 하루일정이 빡빡할 정도로 볼곳이 많은곳이다.
카쥬라호 사원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생명력 넘치는 에로틱한 조각들이다. 대부분의 힌두 사원에 새겨진 조각들이 신화적 이야기 장면인데 비해 카쥬라호 사원 조각들은 사원 안에 봉안된 주신과는 특별히 관계 짓지 않고 오직 에로틱하고 생명력 넘치는 조각으로 그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고대 인도인들은 육체와 성적 욕망을 신의 힘에 연결되는 것으로 보고 그것을 부정하는게 아니라 거꾸로 그것을 적극적으로 끌어내어 높여줌으로써 신의 세계, 종교적 환희에 도달하려고 했다고 한다.
인도에서 발생한 모든 종교에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는 탄트라(Tantra)에 보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은 모두 푸르샤(Purusa)라는 남성의 원리와 샥티(Sakti)라는 여성의 원리로 이루어진 이원론(二元論)에 기본을 두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남녀의 교합은 시바신(남성의 원리)와 샥티(여성의 원리로써 시바의 아내)와의 창조적인 결합으로 이해되며 그들의 교합은 곧 해탈이라는 하나의 원리로 변화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남, 녀 교합의 의례를 우주 에너지인 생명력의 근원으로의 합일이라 생각하고 그들 종교에 성적 교합을 신성한 의례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오차 - 한적한 시골의 고성도시

오차는 카쥬라호에서 아그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작은 마을로 아름다운 유적들로 가득찬 한적한 시골마을이다. 시가지에는 아름다운 벳트와 강이 흐르고 있으며, 작은 폭으로 흐르는 벳트와 강을 건너면 무굴제국 4대왕 자항기르의 방문을 위하여 1606년에 지은 자항기르 마할이 있다. 이 아름답고 화려한 건축물인 자항기르 마할 부근에는 땅밑으로 설치한 배수관에 의해 관리되던 정원을 끼고 있는 라즈프라빈 마할, 주 관광 청에 의해 숙소로 개방된 쉬시 마할, 라즈프라빈 마할 등
각기의 특성을 지닌 건물들이 모여 있다.
한편, 시가지 쪽에는 강 건너의 것들에 비하면 그 화려함 등에서 뒤떨어지는 맛이 있지만 두어 개의 건물이 있다.
오차의 매력은 이런 고성들과 한적한 시골 분위기에서 오는 여유로움으로 전형 적인 인도 시골마을을 체험할수 있는곳이다.

 
  Day 5-6. 인도의 상징 타지마할의 아그라  
 


타지마할

학창시절 세계사 교과서에서 한번쯤은 보았을 만한 타지마할.. 아무리 말해도 인도에서는 지나치지 않는다. 22년에 걸쳐 무굴제국의 5대왕 샤자한이 죽은 왕비 뭄타즈마할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는 이 건축물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지어질수 있는 건축물 중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극찬을 받고 있으며 인도의 상징으로 까지 여겨지는 유산이다. 타지마할의 건축가는 이란 출신의 이사칸으로 알려져 있고, 연인원 2만명 이상이 동원된 엄청난 공사로 전해지고 있다. 타지마할이 완성된후 건축가의 눈을 멀게 하고 손발을 잘랐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타지마할의 눈부신 아름다움을 어디에서든 다시 재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라고 한다.
한 사람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치루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타지마할이 요즘 공해로 색깔이 변하고 있어 자동차도 타지마할 주변으로 출입을 제한하고 있고 오염방지를 위해 주기적으로 맛사지도 받을정도로 정부차원에서도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이슬람 건축의 완성판이라고 불리는 타지마할은 인도에 오면 빼놓을수 없는 관광지이며 상징으로까지 여겨지고 있다.


아그라 포트

이외에도 아그라는 여러 볼거리들로 가득차 있다. 타지마할 외에 두곳의 세계문화유산이 더 있을 정도로 많은 유산들이 있다. 그 첫 번째가 아그라 포트로, 샤자한이 타지마할을 완성한 후 아들에게 유폐되어 죽어갔던 곳으로 델리의 붉은성과 함께 무굴제국의 대표적 건축물이다. 아그라포트의 핵심은 포로의 탑이라는 뜻의 무삼만 버즈로 샤자한이 유페되어 숨을 거두기까지 약 8년동안 보냈던 곳으로 그 이유는 샤자한이 큰아들인 다라사코의 왕위계승을 지지 했으나 동생인 아우랑제브가 형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하고 왕위를 차지하자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데에서 앙심을 품고 아버지인 샤자한을 유폐시켰기 때문이다. 샤자한은 이곳에서 타지마할을 보면서 아들의 가혹과 학대에 쓸쓸이 죽어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보는 타지마할은 왠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지며, 어떤 이들은 이곳에서 바라보는 타지마할이 더 운치가 있다고 한다.


파테부르 시크리

다른 또하나의 세계문화유산은 파테부르 시크리로 무굴의 3대왕인 악바르 대제가 수도를 이곳으로 옮기면서 14년동안 무굴제국의 수도로 쓰였던 곳이었다. 하지만 물의 부족으로 인해 수도로의 역할을 잃어 버리고 아그라로 다시 천도하면서 그후에는 유령의 도시로 전락한 곳이다.


그 외의 관광지.

이외에도 꼬마타지마할이라고 하는 이티마드 우드 다울라 와 무굴제국의 위대한 왕 악바르 대제의 무덤인 시칸드라도 좋은 관광지 이다. 이처럼 아그라는 세계문화유산 3곳 이외에도 많은 볼거리들로 전세계의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도로에 뒤엉킨 차들과 우마차들..그리고 시커먼 매연과 먼지들로 가득찬 공업도시이지만 한때는 이런 위대한 유산들을 낳고 번영했던 도시였다.

 
  Day 7-8. 힌두스탄 핑크시티 자이푸르  
 


시티팰러스

델리,아그라와 함께 중북부 인도의 골든트리이앵글 3도시중 하나인 자이푸르는 파키스탄과 국경을 하고 있는 라자스탄주의 주도로 무슬림의 지배속에서도 정치적으로 힌두왕국을 유지해온 카츠츠와하 왕조의 역사를 대변하는 도시이다.
자이푸르의 대표적 관광지인 시티팰러스는 자이싱2세가 지은 궁전으로 자이푸르 중심가에 자리잡고 있으며 궁 안에는 마하라자 만싱2세 박물관이 있는데 그곳에는 역대 마하라자(위대한왕)의 일상용품및 무굴의 세밀화등이 전시되어 있다. 시티팔레스등 자이푸르에 있는 건축물의 특징은 힌두이즘적이면서도 무굴제국의 이슬람을 가미한 독특한 양식을 취하고 있다.그 이유는 힌두제국이 무굴제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유지하려고한 친외교정책 때문이다.


하와마할

이 밖에도 바람의 궁전이라는 뜻의 하와마할은 18세기 후반에 지어져 바깥으로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여성들이 바깥세상을 구경했다고 전해져 그 시대의 여성이 얼마나 제한적이고 고립된 삶을 살았는지 대변해 주고 있으며 천문대의 역할을 했던 잔타르 만타르는 18세기 때 천문학 등의 과학분야에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음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암베르성 ( Amer Fort )

시내에서 약간 떨어진 산위에 위치한 성으로 자이푸르에선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찾아 보아야할 명물이다. 무굴황제 아크바르의 참모 출신으로 세력을 거머쥔 카츠츠와하 왕조의 만 싱이 1592년에 짓기 시작한 암베르성은 그의 후대인 자이 싱이 완성시켰다. 이 성이 얼마나 화려하고 웅장했던지 무굴제국의 자한길 왕이 이를 질시해 침입함으로써 상당 부분이 파괴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암베르 성은 당시의 장식과 벽화가 그대로 남아 있으며, 인도의 골든트라이앵글(델리, 자이푸르, 아그라) 지역을 여행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성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이 성에서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산 아래에서 성 입구까지 코끼리를 타고 올라가 볼 수 있다는 것.
짚차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코끼리가 더 저렴하기도 하고, 마치 옛날의 왕이 된 기분이 나는 코끼리를 한번 타보실 것을 권하고 싶다.

출처 : 자격있는 여행전문가 - 모두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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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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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대한 해석이 지극히 극과 극을 달린다는 것은 익숙한 이야기다. 알 수 없는 마력에 빠져 틈만 나면 인도를 찾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대체 어떻게 그런 나라가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해 흥분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인도 마니아는 늘어만 간다는 것이다. 1년 내내 찜통 더위만 있을 줄 알았던 인도에 겨울이 있고, 한 여름엔 오히려 북인도와 히말라야를 여행하기에 좋다는 것, 헐리우드 만큼이나 영화 산업이 활발하고, 세계적인 갑부들이 몰려 산다는 것… 인도에 대해 몰랐던 것은 너무나 많다. 독이 되는 선입견 보다는 차라리 모르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초보부터 모험가까지 인도 마니아가 들려주는 인도의 이야기.
  1. ▲ 인도풍의 악세사리
  1. ▲ 복잡한 델리의 모습
  1. ▲ 화려한 화와마할
  1. ▲ 자이푸르
  1. ▲ 라닥으로 가는 길
  1. ▲ 라닥 전경
  1. ▲ 인도의 대표 이미지 타지마할
  1. 인도로 가는 길

  2. 어느 체인점인지 베트남 쌀국수 집 메뉴판에 초보자, 중급자, 모험자를 위한 음식을 구분해 놓은 것을 보았다. 우리 음식과는 다른 맛이기에, 맛보기 수준에서 심지어 도전을 위한 모험의 음식으로 분류해 놓아 손님에게 안전한 선택을 도와주는 것이다. 비위가 약하다 싶으면, 향내가 자신 없다 싶으면 초보자를 위한 것을 고르면 된다.
    모험과 새로움의 추구에 있어서 그 선입견만큼 큰 방해요소는 없다. 그 국수집처럼 초보자라면 초보자답게, 모험가라면 모험가답게 인도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인도가 마냥 더럽고, 무질서한 혼돈의 세계라면 왜 그렇게 많은 여행자들이 인도를 향해 짐을 꾸리겠는가.
  1. 인도에 도전한다, 초보자를 위한 델리
  2. 델리는 모든 부분에 있어서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한 인도의 중심지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선두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야무나 강의 서쪽, 갠지즈 강 유역의 델리는 우선 교통의 요충지로 도시로 성장할 조건을 잘 갖추었다. 덕분에 과거부터 현재의 수도에 이르기까지 정치, 경제, 문화, 행정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이런 이유로 인도 여행시 관문처럼 여겨진다.
    델리는 12세기 이슬람 세력이 들어와 제국을 세운 곳이다. 이 승전의 기념으로 세운 승전탑인 꾸룹미나르와 무굴제국의 2대 왕인 후마윤의 묘가 여행자들이 항상 찾는 곳이다. 후마윤의 묘는 그의 왕비가 지었는데, 인도하면 바로 떠오르는 타지마할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인도 국민의 대다수가 힌두교 신자지만 이슬람 세력이 있었던 탓에 인도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인 자마 마스지드가 있고, 연꽃 모양의 바하이 사원, 웅장한 규모의 붉은 성과 인도 근대사의 아버지 간디의 화장터인 라즈가트가 델리 여행을 대표한다. 수도답게 거리는 번잡하고 행인이 많은 곳이 델리다. 델리 대학교처럼 젊은이들이 많은 곳에서 쉬엄쉬엄 여행하면 인도와 조금씩 가까워진다.
  1. 사랑의 도시 아그라
  2. 여행자들이 아그라를 찾는 이유의 절반 이상은 타지마할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인도를 찾는 이유가 타지마할일지도 모른다. 무굴제국의 5대왕 샤자한이 죽은 왕비 뭄타즈마할을 위해 지은 가장 아름답고 호화로운 무덤으로 연 인원 2만 명 이상 동원되어 22년에 걸쳐 지어졌다고 한다. 인도의 상징이자 사랑의 상징인 타지마할은 이 같은 건축을 다시 짓지 못하도록 건축가의 눈을 멀게 하고 손발을 잘랐다는 이야기도 전해 올 정도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건축의 눈 부신 흰 색은 공해로 점점 오염되어 가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적극적으로 주변으로는 자동차 출입을 삼가고, 주기적으로 관리하고 있지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타지마할을 만든 샤자한의 손길이 서린 곳이 한 곳 더 있는데, 바로 아그라 포트다. 어느 왕조나 친인척, 심지어 부모자식, 형제간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싸움은 있어 왔는데, 무굴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들 다라사코와 아우랑제브가 왕권을 놓고 싸울 때 샤자한은 큰 아들인 다라사코를 지원했으나 승리의 여신은 아우랑제브에게로 갔고,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대가로 아우랑제브는 아버지를 아그라 포트에 8년 동안 유폐시켰다. 샤자한은 아그라 포트 내부의 ‘포로의 탑’이라는 뜻의 ‘무삼만 버즈’에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타지마할이 아스라히 보인다.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죽어간 샤자한, 많은 이들은 이 이야기 때문인지 이곳에서 보는 타지마할은 왠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진다고 한다.
    아그라는 근교의 파테부르 시크리, 꼬마 타지마할로 불리는 이티마드 우드 다울라, 악바르 대제의 무덤인 시칸드 등 많은 볼거리들로 전세계의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지금은 도로에 뒤엉킨 차들과 우마차들 그리고 시커먼 매연과 먼지들로 가득 찬 공업도시지만 한때는 이런 위대한 유산들을 낳고 번영했던 도시였다. 인도에 왔으니 아그라의 타지마할을 보지 않을 수는 없는 일, 여기까지 왔으면 초급은 지난 단계다.
  1. 진정한 인도를 만나다, 바라나시
  2. 바라나시만큼 더 인도를 잘 보여주는 곳은 없다고 단언할 정도로, 이곳에서는 인도인과 그들의 삶 그리고 종교가 생의 한 부분으로 여겨지는 힌두이즘을 모두 보고 느낄 수 있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아침에 나와 이곳에 몸을 담그며, 누굴 위해 기도를 하는 것일까? 보기만해도 메스꺼워지는 갠지즈 강물을 마시고, 주문을 외우고, 이곳에서 빨래를 하며, 결국 주검이 되어 다시 이 물에 뿌려지기를 바란다. 이들에게 갠지즈는 태어나고, 자라고, 다시 돌아가야 하는 어머니 그 이상이다. 전국에서 몰려드는 주검의 화장으로 불길과 연기가 피어 오르는 모습은 여행자들을 아연질색 하게 만들지만, 죽은 영혼의 부활을 바라는 힌두인들에게는 죽음 역시 삶의 한 부분이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바라나시는 설명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볼거리를 가지고 있으며 인도인들의 삶에 한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미로처럼 이어지는 골목, 바글거리는 사람들 역시 인도의 한 모습. 바라나시야 말로 인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다. 한 도시 만으로 인도를 보고 싶다면, 바로 바라나시다.
  1. 핑크시티, 자이푸르
  2. 자이푸르에 관심이 있다면, 인도 공부를 조금은 했다고 할 수 있다. 인도에 있지만 인도답지 않은 곳 중의 하나가 자이푸르로, ‘핑크시티’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자이푸르는 인도와 파키스탄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라자스탄 주의 주도로 이슬람의 지배 속에서도 힌두왕국을 지킨 곳이다. 정치적으로 교묘하게 이슬람의 압박을 피하고, 영국의 지배 속에서 서로를 견제하기 위해 영국과도 친밀한 외교를 보였다. 그래서 영국 왕세자인 에드워드 7세가 방문했을 당시 환영의 뜻으로 도시 전체를 분홍빛으로 물들였고, 이후 핑크시티로 불렸다. 지금은 이런 독특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건물에 다른 색을 칠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자이푸르에 있는 건축물의 특징은 힌두이즘적이면서도 무굴제국의 이슬람을 가미한 독특한 양식을 취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역사적인 외교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대표적 관광지인 시티 팔레스는 자이싱 2세가 지은 궁전으로, 안에는 마하라자 만싱 2세 박물관이 있는데 그곳에는 역대 마하라자(위대한 왕)의 일상용품 및 무굴의 세밀화 등이 전시되어 있다. 바람의 궁전이라는 뜻의 하와마할은 18세기 후반에 지어졌는데, 당시 외부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여성들이 바깥 세상을 구경했다고 전해진다. 자이푸르에서 또 하나 볼거리는 상업 도시답게 번성한 시장이다. 특히 귀금속 시장은 화려하고 정교한 액세서리로 여성 여행자들이 좋아하는 곳이다.
  1. 하늘이 내린 천의 자연 북인도 히말라야, 라닥의 레
  2. 사람이 살고 있는 곳 중 가장 높다는 해발 3,500m에 위치한 레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히말라야의 오지였다. 하지만 외국인 출입이 허용되고, 많은 방송사와 여행가들이 다녀간 이후, 하늘이 내린 천의 자연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소개되었다.
    레는 티벳과 인도 사이의 왕국으로 독립을 유지해왔지만, 인도 독립 이후 행정구역상 인도의 영토로 편입되고도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언어로 살아가고 있다. 이곳을 가는 가장 큰 목적은 가는 길에 펼쳐진 자연 환경 때문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은 처음이라는 여행가가 무수히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곳으로 보는 이를 순수한 자연에 파묻히게 한다.
    레에서 2~3시간 남짓 가다 보면 ‘알치’라는 작은 마을이 나오고 거기서 2~3시간을 더 가면 ‘라마유루’라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두 곳 모두 거주인도 별로 없는 산악지방의 시골인데, 라마유루는 전기가 하루에 4시간 정도 밖에 들어오지 않고, 그나마도 마을에서 자가발전으로 쓰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문명의 손길과는 먼 오지인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 만큼 그 주변에 펼쳐진 산과 자연은 보는 이들의 감탄을 살만하다.
    북인도의 히말라야 지방은 9월 이후에는 길이 끊기고 엄청난 추위 때문에, 1년 중 방문할 수 있는 시기는 6월~8월 정도다. 대부분의 관광객이 이때 몰리며, 한 여름 인도 전체가 다 죽을 듯한 더위로만 가득 찬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한 번은 꼭 방문해 볼 만한 곳이며, 현지 투어에 참여하면 다양한 히말라야의 자연을 만날 수 있다. 자, 이제 이 정도라면 진정한 모험가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출처 : 자격있는 여행전문가 - 모두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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