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이안 편안한 여유로움이 머무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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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이안에는 소위 ‘장기체류자’가 많다. 게으른 배낭족은 베트남의 정 중앙인 호이안에서 휴식을 취한다. 등을 기대고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동네를 베트남에서 꼽자면 그 1순위는 호이안이다. 보행자 중심의 도로와 곳곳에 여행자에게 손짓하는 노천카페가 있어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여기서라면 지루하지 않을 듯 보였다. 자전거를 빌려 타고 호이안 옛거리를 흘러다니는 유러피언은 거리 풍경과 매우 잘 어울렸다. 그네들의 동네에 있는 것인 양 보였다. 언뜻 보면, 호이안은 동양적인 맛이 깃든 유럽 소도시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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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하게 말해, 호이안은 과거의 영화를 잃고 쇠퇴한 도시다. 바닷길이 번영하던 시기 호이안에는 파란눈의 상인과 흑발의 중국상인이 말을 섞었다. 활발한 교역의 증거는 호이안 구시가의 도자기박물관, 바다실크로드박물관에서 엿볼 수 있다. 일본과의 주요 교역물이었던 도자기가 호이안에는 넘쳐났다. 최고급 실크 옷감을 쉽게 구할 수 있었고, 각종 차와 사치품을 싣고 들어온 배는 호이안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바다 교역이 점차 쇠퇴하고, 호이안을 바다와 연결하는 투 본 강(Thu Bon)강에 침니가 쌓여 더 이상 항해가 불가능해지면서, 호이안은 30km 거리의 도시 다낭(Danang)에 상업중심지의 역할을 내주었다. 그러나 전쟁 통에도 온전히 살아남은 호이안의 옛거리는 과거의 영화를 머릿속으로나마 그려보고자 하는 관광객들로 활기를 되찾아간다. 한국 사람들에게 친숙하지 않지만, 호이안이 인도차이나에서 가장 매력적인 고도시로 유명세를 떨친 건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호이안이 관광객에게 베푸는 평온함은, 호텔을 나서면 정신 없는 오토바이 행렬과 어김없이 마주치는 베트남의 타 도시들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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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이안 옛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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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안 옛거리는 기와지붕에 이끼가 그득한 중국식 집과 아치형 현관, 테라스로 대변되는 서양식 건물이 교차해가며 메워져 있다. 건물은 하나같이 노란 톤이다. 낡음의 정도에 따라 노란색의 명도와 채도가 달라진다. 세월이 만들어낼 수 있는 신비로운 색의 조화에 누구라도 반할만하다. 매력적인 옛거리의 60% 가량은 맞춤복, 맞춤신발 전문점인 듯 보였다. 눈길을 한 번이라도 줄라 치면, 줄자를 들고 뛰어나와 “Your Size”를 만들어 주겠단다. 호이안의 재단사 얘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던 터다. 온 도시에 재봉틀 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이 호이안이라는 게 과장된 설명은 아니었다. 호이안에서 요즘 가장 인기있다는 양장점 “YALI”를 찾아가 봤다. “made to measure”를 내건 수많은 가게 중 가봉을 위해 긴 줄을 서야하는 유일한 집이었다. 깔끔한 블랙 칵테일 드레스는 US$60 정도. 코듀로이 자켓류는 US$ 70~80 선이었고, 최고급 실크 정장도 US$ 200을 넘지 않았다. 해외 패션 매거진이 테이블마다 더미로 쌓여 있고, 파란 눈의 고객들은 돌체&가바나의 최신 디자인을 가리키며 똑같이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디자인과 옷감을 고르고, 넉넉하게 1박2일이면 내 몸에 꼭 맞는 수트를 손에 넣을 수 있다. 베트남의 제봉 기술은 아시아에서도 알아주는 것이거니와, 베트남 정부에서 관광 수입 창출을 위해 정책적으로 확대해 온 면도 있다고 한다. 의류뿐 아니라 가죽 신발류도 취향에 따라 만들어 신을 수 있다. 멋스러운 부츠를 맞추려는 한 관광객은 수십 개는 더 되는 가죽 원단을 이리 재고 저리 재며 호이안에서 맛볼 수 있는 색다른 쇼핑을 즐겼다. 1년 내내 외국인 관광객이 끊이지 않기에 옛거리는 테일러숍을 비롯해 대부분이 기념품점으로 점철되어 있다. 과거 바닷길의 목이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관광객들이 혹할만한 칠기(漆器) 공예품과 색색의 등갓, 논(Non, 베트남 전통 모자)을 이용해 만든 관광용 상품, 중국에서 건너온 듯한 찻잔 세트가 주를 이루었다. 어느 가게에 가나 딱히 특색 없이 대량생산된 기념품이 빼곡히 차 있을 것임을 알면서도, 옛거리를 걷다 보면 도통 진도는 나가지 않고 가게만 기웃거리게 되는 건 관광객의 관성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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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이안의 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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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숍들 사이로 호이안에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귀중한 건축물들이 촘촘히 자리해 있다. 다채로웠던 역사를 대변하듯 그 종류도 제각각이다. 옛거리의 주요 사적의 돌아보는 입장권은 75,000동(VND, 100VND=약 5원)인데, 박물관, 화교회관, 고택, 무형문화제 관람, 기타 로 분류된 사적 중 한 곳씩 방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두 개의 고택에 들어가고 싶다면, 입장권을 두 번 사야 하는 격이다. 조금은 복잡한 시스템이나 유적지를 고루 보기에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박물관으로 추천할만한 곳은 도자기박물관. 내부에 전시된 도자기도 진귀하거니와 박물관 건물이 매우 아름답다. 새카만 목조건물인 도자기박물관은 단순하면서 강한 기운을 풍긴다. 내실을 지나면 안마당이 나오고 같은 크기의 건물이 연이어져 있다. 2층으로 올라가 난간에서 내려다보는 호이안 거리는 다른 시각으로 다가온다. 도자기박물관에서 몇 걸음만 옮기면 푸젠 화교회관, 하이난 화교회관, 광동 화교회관이 보이고, 역시 중국의 영향을 엿볼 수 있는 관음사, 관운장 사당이 눈에 들어온다. 옛길 걷기에 지루해질 쯤이면 활기찬 중앙 시장에서 시간을 보내도 좋다. 호이안 구시가의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중앙 시장은 이른 아침일수록 매력이 배가되는 곳이다. 중앙시장은 각종 잡화, 기념품을 파는 곳이자, 이 지역 최대의 수산시장이다. 바다와 강에서 잡아 올린 물고기는 매일매일 이 중앙시장을 짠 내로 가득 채운다. 목청 좋은 상인들은 십 수 년 간 그래왔던 듯 왁자지껄하게 아침을 알려왔다. 논(Non)의 행렬이 시장 입구서부터 물가까지 이어지고 거칠게 흥정하는 목소리가 오가다가, 정오가 되기 전에 상황은 종료. 이곳만의 활기찬 아침 푸닥거리를 보고 싶거든 반드시 중앙 시장으로 가야 한다. 해가 뜨건 해가 지건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사적은 우선 제쳐 두고, 이른 부지런한 여행자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을 누려 보자. 해가 중천에 뜨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상인들은 달콤한 낮잠에 빠져들었다. 게으른 관광객은 그제서야 어슬렁어슬렁 걸어나가 내일을 기약할 따름이다. 여행까지 가서 왠 부지런이냐 싶겠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이곳은 활기찬 아침의 나라 베트남, 그 중에서도 호이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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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류시장의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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