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국가명은 슬로바키아 공화국(The Slovak Republic)으로 2차 세계 대전 후 체코와 통일국가를 형성하였으며 1993년 슬로바키아 공화국으로 분리하였다.
슬로바키아는 1989년 '벨벳혁명'이라 불리우는 무혈시민혁명에 의해 공산정권이 퇴진하고 시민포럼(Civil Forum)중심의 연립 과도 정부가 구성되었다. 이에 따라 1946년 이후 최초로 실시된 1990년 6월의 자유총선에서 벨벳혁명을 주도한 '시민포럼'과 '반폭력대중운동'이 각각 체코 공화국과 슬로바키아 공화국에서 제1당으로 부상하였으며, 벨벳 혁명에 의해 탄생한 구연방의 신정부는 클라우스 당시 재무장관이 중심이 되어 급진적인 경제개혁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슬로바키아는 석유화학 등 중공업부문에 편중된 산업구조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시장경제로의 이행이 용이하지 않았고, 구 코메콘 체제의 해체로 인해 경제적 타격을 받게 되었다. 이에 슬로바키아에서는 급진적 개혁에 대한 반발과 독자적인 개혁을 지향하는 일종의 민족주의가 대두되었고, 이는 1992년 총선에서 이러한 민의를 불러일으킨 민주 슬로바키아가 제1당이 되었으며 1993년 구 체코 슬로바키아 연방에서 분리 독립되었으며 당시 코바치 대통령이 취임했다.

항공
우리나라에서 직항으로 운항하는 항공사는 없지만 체코 항공 체코 및 프랑스 항공과 합작으로 운영하고 있다. 분리 독립후 브라티슬라바 국제공항을 중심으로 유럽 및 북미 대륙을 연결하는 새로운 항공노선을 개발하고 있다. 또한 비엔나 국제공항-브라티슬라바 국제공항간 을 연결하는 복합 운송망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그리고 국내 주요도시간 항공기가 운행중이다.

현재는 슬로바키아는 체코와 분리 전의 국영항공사가 계속 운항하고 있는데, 주로 프라하의 루지네 공항에서 브라티스라바 공항을 연결 운항하고 있다. 일단 프라하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는 것이 편리하다.그밖에 시카고, 몬트리올, 뉴욕과는 1주일에 2회 운항하고, 모스크바와는 1주일에 1번 연결 운항하고 있다. 슬로바키아 내의 공항은 Poprad Tatry, Kosice 에 운항하고 있으며, 프라하의 루지네 공항에서도 이들 지역으로 연결되어 있다.



면적 : 20,273㎢

수도 : 브리티스라바

인구 : 약 5,400만명 (2003년 기준)

종교 : 대부분이 카토릭을 믿지만 개신교 신자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주요민족 : 슬로바키아인 85.7% 헝가리인 10.7% 집시 1.5% 체코인 1.1%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폴란드인 0.5% 기타 0.2%에 달한다. 약 60만명의 헝가리인은 대부분 슬로바키아의 남동부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

주요언어 : 공식언어는 슬로바키아어. 약 80%가 체코어와 비슷 체코어와 헝가리어등이 쓰이고 있다.

기후
슬로바키아는 사계절이 뚜럿한 대륙성기후의 나라이며, 우리나라와 같이 겨울은 춥고 건조하며 여름에는 무덥고 습하다.
수도인 '브라티스라바(Bratislava)'의 1월 평균 기온은 섭씨 3°C ~2°C 이고, 6월에는 16°C~ 26°C 이다. 대체로, 산악지대로 갈수록 차가운 기온분포를 보인다. Bratislava의 연평균 강수량은 650mm정도이고, 고산지대에서는 연간 130여일 동안 눈이 내린다.

지리
중부유럽에 속하며 서쪽으로 체코, 북쪽으로 폴란드, 동쪽으로 우크라이나, 남쪽으로 헝가리, 남서쪽으로 오스트리아와 접해 있다. 슬로바키아는 산악 지대 국가이다. 카르파티안 (Carpathian) 산맥은 수도인 브라티슬라바(Bratislava)근처에서 시작하여 루마니아의 트란실바니아(Transylvania)에 이른다. 크게 두 지역으로 나누어 중부지방의 반스카 비스트리카 (Banska Bystrica) 근교로 모아지는 저지 타트리(the Lower Tatras)와 북부지방의 프로프라드(Proprad) 근교의 고지 타트리(the High Tatras)로 볼 수 있다. 몇몇의 높은 정상들로 인해 폴란드와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기도 한다.
북쪽 지역은 고원지대, 남쪽과 남동 지역은 저지대로 형성되어 있다. 북쪽 산악지대에는 슬로바키아에서 가장 높은 스트레도슬로벤스키 주의 비소케타 트리 산맥에 속하는 2,655m의 게를라흐 봉이 위치하고 있다. 이 나라의 주요 하천으로는 남쪽 경계를 이루며 흐르는 모라바 강과 도나 우 강을 들수 있고 산악지대를 흐르는 주요 하천으로는 바흐, 호론, 호르나트, 보드로크 강 북쪽으로 흐르는 포프라트 강이 있다.

관광제안
슬로바키아의 열차는 특급(Expresni), 급행(Phylik), 보통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보통열차 이외에는 추가 요금이 필요하다. 그러나 국외에서 발행된 승차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역의 창구에서는 국내의 차표만 취급한다. 국제선 차표는 국영 여행사 체도크(CEDOK)의 메인 오피스에서 취급하고 있다. 좌석 예약시 안내서나 역에 있는 오렌지 색의 출발 시각표에서 R마크가 있는 열차는 예약이 필요하고, 마크가 없으면 예약이 필요없다. 마크가 있는 경우에는 차표를 산후 예약 창구로 가서 좌석 예약권을 사야 한다. 슬로바키아사람들은 열차의 경우 기본적으로 예약을 하고 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슬로바키아의 경우는 5월과 6월, 그리고 9월이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최적기이다. 대부분의 슬로바키아 사람들은 6월과 8월사이에 휴가를 즐기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호텔이나 관광지가 관광객들로 붐빈다. 특히 타트라스산 리조트 지역의 호텔은 학생들로 꽉 찬다.
주요 행사 및 축제를 보면, '아그로콤플렉스'(Agrokomplex:농산물관련 전시회)의 경우는 매년 7월과 8월 사이에 4∼5일간 니뜨라(Nitra)市에서 개최되며, 각종 농산물, 종묘, 화훼, 동물사육, 농기계, 주류 등이 전시된다. 이는 슬로바키아에서 열리는 가장 커다란 전시회라고 할 수 있으며, 행사기간을 전후하여 방을 구하기가 힘들고, 이 행사에는 매년 10만여명 이상이 관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아우토살론'(Auto Salon:자동차전시회)은 매년 여름(8월 또는 9월)에 개최되는 슬로바키아 최대의 자동차전시회로서, Concept Car와 같은 첨단형/미래형자동차 등은 전시되지 않지만, 역시 10만여명의 관람객이 방문할 정도로 인기가 높으며, 갈수록 더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행사이다. 同 전시회는 승용차와 일반화물용 대형트럭을 주로 전시하는데, 체제전환 이후 그 규모가 커지고 있다. 1995년의 전시회에는 韓國의 4개 자동차업체들이 참가한 바 있다. '國家建國記念日 행사'는 1993년 1월 1일 舊체코슬로바키아연방으로부터 평화롭게 분리독립하여 새로운 국가를 탄생시킨 기념일이 건국기념일로서 자리를 잡았으며, '國際平和 마라톤' 행사인 이 대회는 슬로바키아 제2의 도시인 꼬시쩨(Kosice)에서 1927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기간을 제외하고 매년 개최되어온 행사이다. 즉, 이 도시를 가로지르는 정규구간 마라톤대회이다. 이 대회에는 일반인들도 참여할 수 있으며, 매년 10월초에 치루어지는 국제대회이다. 그 밖에도, 브라티스라바 음악주간 행사는 매년 10월 초 또는 중순에 약 1주일동안 국제행사로 마련되는데, 브라티스라바城이나 각 음악관(콘서트홀) 등에서 각종 초청연주회, 국립교향악단 공연 등의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여름 문화행사'(Kulturne Leto) 역시 유명한데, 여름이 시작되는 6월 중순부터 약 3개월간 치루어지는 이 행사는 포크댄스, 전통음악연주, 간이연극 등으로 시작되어 연극, 발레, 음악회 등의 공연이 열린다. 또한, 독특한 축제의 일환인 '국제 귀신 페스티발'(Medzinarodny Festival Duchov a Strasidiel)은 매년 4월말부터 약 1주일간 슬로바키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되는 세인트 보이니쩨(St. Bojnice)城에서 펼쳐지는데, 이 성에 얽힌 귀신에 관한 이야기로 관람객을 안내하며, 밤에는 이 성에 얽힌 역사를 성벽에 슬라이드와 조명을 사용하여 설명하는 행사이다.

역사
<BC이전 역사 개요>
고대 체코슬로바키아 지역에 최초로 거주한 민족은 켈트족이었다. 그후 AD 1세기경부터 게르만인과 로마인들이 이 지역에 진출하여 켈트인들을 축출하고 이 지역의 주도권 쟁탈을 위한 분쟁을 야기시켰다. 그 후 이 지역에 슬라브인이 정착한 시기는 AD 5세기경부터이며 고대 체코인은 현재의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에, 고대 슬로바키아인은 현재의 슬로바키아에 정착하게 되었다.

<AC 1년 - 1900년 까지의 역사>
즉 슬라브족이 현재의 슬로바키아 지역에 정착한 것은 5세기 경에 속한다. 그때쯤 AVARS족이 체코슬로바키아 지역의 슬라브족들을 침략하자 이에 대항하여 SAMO가 몇몇 부족 들을 통합하여, 625년 보헤미아를 중심으로 이 지역 최초의 슬라브족 국가인 SAMO 왕국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SAMO 왕국도 658년 SAMO의 죽음과 함께 멸망하게 되었다. 9세기초 833년 모라비아의 왕자는 니트라를 점령하고 지금의 중·서부 슬로바키아와 모라비아, 그리고 체코를 포함하는 대모라비아 제국을 세웠다. 이 왕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체코와 슬로바키아인이 하나로 통일한 국가였다. 대모라비아 제국의 왕자는 서쪽의 프랑크족의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비잔틴 황제에게 선교사를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하는데, 863년에 그리스 선교사인 키릴과 메토디우스가 파견되었다. 이들은 그리스 정교로의 선교는 이루지 못했지만 예식과 성경의 전달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최초의 슬라브 문자인 키릴 문자를 만들었다. 이 왕국은 계속 성장해 보헤미아, 슬로바키아, 폴란드 남부, 헝가리 서부까지 통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비잔틴 제국의 선교사 CYRIL이 기독교 포교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고 CYRIL 위에서 말했듯이 문자 를 고안해 복음서 등을 번역하였다. 이 CYRIL 문자는 아직도 러시아인, 불가리아인, 세르비아인들이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모라비아 왕국도 907년 마쟈르족들의 침입을 받고 멸망하게 되었고 마쟈르족은 현재의 슬로바키아 지역에 헝가리 왕국을 건설하게 되었다. 이는 나중에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분리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907년 들어 대모라비아 제국은 내부 지배층의 분열과 독일과 헝가리의 압력으로 멸망하게 되었다.907년 모라비아 왕국이 멸망한후 10세기경 PREMYSLID 족이 체코 부족을 통합하여 보헤미아를 중심으로 중앙집권적 보헤미아 왕국을 건설하였다. 보헤미아 왕국은 1029년 모라비아 지역을 완전히 병합하는 등 그 세력이 갈수록 커져 갔다. 침입자인 헝가리인은 슬로바키아 남부에 정착하여 1000년에 헝가리 왕국에 병합시켰고, 1018년에는 슬로바키아 전역이 헝가리에 통합되었다. 이 때 헝가리의 군주는 서구의 라틴 문명을 흡수하고자 로마 카톨릭교로 개종하게 되었다.
13세기 들어 타타르인의 침입을 받은 후, 헝가리 왕은 독일인들을 동쪽 국경(현재의 동슬로바키아)에 정착시켜서 차후의 침략에 대비한 완충 역할을 맡겼다. 이 때 슬라브어에서 분리된 슬로바키아어가 탄생하게 되었다. 14세기부터 PREMYSLID 왕조가 단절되고 룩셈부르크 왕조가 지배한후 모라비아 왕국은 체코슬로바키아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맞게 되었다. 이후 슬로바키아는 동슬로바키아 지역의 스피시가 1412년부터 1772년까지 폴란드에 귀속된 기간을 빼고는 1918년까지 헝가리의 지배를 받게 된다. 16세기 초반 투르크가 헝가리를 침공했을 때 헝가리는 수도를 부다에서 브라티슬라바로 옮기기도 하였다. 이후 합스부르크가에서 헝가리의 왕위와 영토를 맡게 되자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9세기 이래 처음으로 하나의 통치권 안에 놓이게 된다. 1526년 모학(MOHACS)전투에서 룩셈부르크가가 오토만에 패하고 페르디난드 1세가 체코와 헝가리의 왕이 된후, 보헤미아와 슬로바키아는 합스부르그가의 통치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 후 보헤미아와 합스부르그가의 30년 전쟁 결과 보헤미아가 패하게 되자 합스부 그가의 체코에 대한 지배가 확고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30년 전쟁이 종결되고, 보헤미아 왕국이 합스부르그가의 왕가로 합병되었다.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탄생한 후 슬로바키아는 헝가리에, 체코는 오스트리아의 각각 지배를 받게 되었다. 1900년 TOMAS MASARYK은 체코 진보당을 설립하여 의회정치와 보통선거를 주장하기 시작하였고, 슬로바키아에서는 슬로바키아 민족당이 결성되어 민족 운동의 중심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그 후에도 MASARYK은 1914년 12월 독립투쟁을 위해 런던으로 망명을 떠나게 되었으며, 1916년 EDUARD BENES 및 MILAN STEFANIK와 함께 체코슬로바키아국민회의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1918년 5월 13일 피츠버그 협정에서 체코인과 슬로바키아인의 정치적 연합을 지지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1918년에는 연합국이 체코슬로바키아의 국민회의를 승인하고, 체코슬로바키아 독립 후 정부수립을 위한 최고기구로 인정하게 되었다. 1918년 10월 체코슬로바키아 국민회의는 임시정부로 재조직되었으며, 10월 18일 MASARYK와 BENES는 워싱톤과 파리에서 각각 독립선언문을 발표하였다. 1918년 10월 28일 세계 제 1차대전의 결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된후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이 건국했다. 새로운 국가는 17세기초 오스트리아 제국에 병합될 때까지 중유럽에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지방의 체코인들과 거의 1,000년동안 헝가리의 지배하에 있던 슬로바키아인들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이 두 민족은 각각 자치단체에 결정권이 있었고 서로 이질적인 면도 많았다.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은 세계 제 1차대전과 제 2차대전 사이에 동유럽에서 유일하게 의회민주주의를 실시하고 있었던 나라이다. 이 점은 체코슬로바키아의 1, 2대 대통령이었던 Tomas Masaryk과 Edvard Benes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민주주의는 사적인 결점에도 불구하고 지켜졌으나 인종적인 다양함이 정당제도를 약화시켰다. 그리하여 이런 정당제도는 단기적으로 정당간의 연립정부의 탄생을 야기시켰고 결국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정치적 안정을 이룩하는데 실패하였다. 그러나 체코슬로바키아의 주요한 정치 불안요인은 나라의 2/3를 차지하는 슬로바키아인과 독일인들의 불만이 커진데 있었다고 한다. 1938년 이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슬로바키아 주민들의 불만은 국가의 정치, 경제적인 면에서 체코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독점한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이런 불만을 불식시키기 위하여 하나의 체코슬로바키아 국가라는 개념과 체코인들과 슬로바키아인들은 비록 다른 민족이지만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홍보하였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기는 했다. 그러나 두 민족은 비록 언어는 비슷했지만 역사, 문화, 경제적으로 다른 점이 많이 있었다. 두 나라의 역사를 보면 9세기경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모라비아 제국에 속해있었다. 그러나 그 후 중세기에 슬로바키아는 Magyar의 지배를 받았던 반면, 체코는 정치 으로 강력한 힘을 가진 국가를 건국하였다. 또 1348년 보헤미아의 찰스 1세에 의해서 중유럽에서 처음으로 프라하에 대학교를 설립했다. 그후 체코는 1620년 오스트리아에 점령당했고 바로뒤 합스부르크 제국에 합병되었다. 그리하여 로마 가톨릭의 수용을 강요당하게 되자 이에 대한 반발로 19세기 개신교는 체코 민족주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반면 슬로바키아는 로마 가톨릭교를 수용하였고 체코와는 달리 도시화·산업화를 이룩하지 못하였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그러나 이 두 민족은 수세기에 걸쳐 상호 연관되어서 살아왔기 때문에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다른 점만을 강조하는 것은 잘못이다. 예를 들어 슬로바키아인들은 교육과 학문분야에서 뛰어나 19세기 체코 민족주의운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여기엔 시인인 Jan Kollar와 고고학자인 Pavel Josef Safarik 등이 큰 역할을 했다. 많은 슬로바키아인들도 체코 못지 않게 체코슬로바키아 독립 국가를 건설하는데 열성적이었다. 그래서 슬로바키아인들의 외교적인 노력과 홍보가 세계 제 1차대전 기간 동안 벌어졌다. 또 체코와 힘을...


전압 및 주파수
220V/50 Hz

치안
브라티스라바 시내 번잡한 지역에서 소매치기가 간혹 있으니 각별한 유의를 요한다. 슬로바키아에는 우리 공관이 상주하고 있지 않으며 여권 분실시 문제가 있을 수 있으므로 여권 관리에 각별한 유위가 필요하다.(여권을 분실할 경우, 체크대사관에서 여행증명서를 발급, 인편이나 우편을 통하여 수령할 수는 있음).

통화
화폐단위는 슬로반스카 코루나(SK-Slovak crown)로, 1SK는 100할레르(Haler-halierov)이다.
지폐는 20, 50, 100, 500, 1,000, 5,000SK가 있으며, 동전으로는 1, 2, 5, 10SK와 10, 20, 50할레르가 있다. 1993년부터 체코와 다른 화페를 사용하고 있는데 미화 1달러는 약 45 코루나 정도 된다.

주의사항
슬로바키아에는 우리 공관이 상주하고 있지 않으며 여권 분실시 문제가 있을 수 있으므로 여권 관리에 유의를 해야 한다. 혹시라도 여권을 분실했을 경우에는, 체코 대사관에서 여행증명서를 발급받고, 인편이나 우편을 통하여 수령할 수도 있다.
공중화장실 이용시, 동유럽 대부분의 공중 화장실은 지하에 있으며, 화장실 입구에는 노인들이 앉아 있다. 화장지는 따로 준비되어 있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에 별도로 구입해야 하며 노인들에게 팁을 주는 것이 관례이다. 팁의 액수는 보통 시내버스 요금 정도로 생각하면 되는데, 화장실의 입구위에 있는 바구니에는 더러 지폐가 팁으로 놓여져 있는 때가 있다. 이는 선전용이므로 신경쓸 필요가 없으니 주의해야 한다. 슬로바키아어로 남자는 muz, 여자는 zena 이므로 화장실 이용시 유의하기 바란다.

철도
동유럽 철도패스를 이용하면 보다 저렴하고 계획적인 여행을 할 수 있는데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폴란드, 슬로바키아의 철도 시스템을 1개월 동안 정해진 기간 동안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1등석과 2등석으로구분되며 5일권이 기본이며 여기에 하루씩 최대 5일을 추가할 수 있다.
1등석 5일권은 $226, 2등석은 $160이며 하루 연장할 때마다 1등석은 $26, 2등석으 $19을 추가로 지불한다. (가격은 2004년. 미국 달러 기준)

시차 : -8시간




▶ 브리티스라바

슬로바키아의 수도로써 빈·부다페스트와 함께 도나우 강을 젖줄로 번영해 온 도시이며 슬로바키아의 행정,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그러나 급속한 현대화로 인하여 아름다운 고도(古都)의 정경을 고속도로와 공장들이 망치 고 있는 곳이다. 다뉴브강 맞은 편으로 늘어선 아파트 단지들은 보기 흉한 꼴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도 3세기 동안 헝가리의 수도였던 이 도시는 비교적 문화적 유적들을 잘 보존하고 있는 편이다. 도시의 분위기는 거리 전체가 퍽 아담하며 어딘지 착 가라앉아 있는 것 같은, 비가 어울릴 것 같은 도시이다.
1993년 1월1일 체코 슬로바키아에서 분리 독립한 후 수도로써 발전해온 이 도시는 오래된 고도시로 슬로바키아의 관광의 핵심이라고할 수 있다. 이도시를 관광하기위해서는 기차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버스 터미널은 물론 도시 안에 있지만 이용하기 불편한 곳에 있다. 브라티스라바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이곳에 도착할 수 있도록 일정을 짜는 것이 좋다. 모든 유럽의 도시가 그렇듯이 이 도시역시 우리나라의 도시의 개념과는 많이 다르게 별로 크지 않다. 그러므로 아침에 일찍 도착했다면 이곳을 구경하고 다른 나라로 가던지.. 다른 도시를 구경할 수 있다.

교육
아카데미아 이스트로폴리타나 대학 이 대학은 1465년에 헝가리 왕 마티아슈 코르빈이 창설했는데 르네상스식의 요소가 가미된 후기 고딕양식의 건물이다. 이 대학에서는 1467년부터 저명한 독일 인문주의자들과 천문학자 뮐러-레기오몬타뉴스가 강의를 하였다. 대학은 4개의 단과대학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1490년에 오아의 죽음으로 대학 발전이 중지되었던 적도 있다. 현재는 에술대학 캠퍼스로 사용되고 있다. 외국인을 위한 어학기관은 사설학원을 제외하고는 한 곳이 있는데, 이 어학원은 국립대학인 '우니베르지따 꼬멘스께호'(Univerzita Komenske(UK):University of Commenius) 부설기관으로 수도인 브라티스라바와 꼬시쩨에 소재하고 있으며, 동 어학원은 일반학생을 위한 기관이다. 그리고 세네쯔(Senec)에는 향후 슬로바키아내의 대학에 진학하여 의학이나 약학을 전공하고자 하는 외국인을 위한 어학원이 소재하고 있다. 이들 어학원은 모두 별도의 기숙사를 시내에 두고 있다. 사설학원은 주로 슬로바키아人에게서 영어 ,독일어 등의 외국어를 가르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되나, 외국인에게 슬로바키아어를 가르치는 과정을 설립한 곳도 몇군데 있다.
슬로바키아 최고 대학인 브라티슬라바 코멘스키 종합대학교(JA Comenius University of Bratislava) 이 학교는 신성 로마제국하인 1467년 헝가리의 왕 마타아시 코르비누스가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을 모방하여 설립하였다. 당시 신학, 의학, 법학, 철학 등의 학부를 가진 대학으로 발전하였으나 15세기말 종교개혁으로 교수진이 모두 이탈리아로 돌아가 1492년부 터 교육활동이 중단되었다. 1차 대전 후 1919년 체코의 국가원수인 마사리크에 의해 지금의 코멘스키 대학으로 설립됨으로써 근대적인 교육이 시작되었다. 1939년 의학, 철학, 법학부를 개설하여 슬로바키아 대학으로 개편되었고 다시 1954년 자연과학, 신학, 지리학부 등 8개 학부를 가진 코멘스키 종합대학으로 확대 개편되었다. 현재 이 학교는 슬로바키아 문화의 중심지로서 슬로바키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학으로 알려져 있고 420여명의 정교수를 포함하여 5,400명의 교직원과 1만 2천여명의 학생이 재학 중에 있다.

산업
주요산업으로는 기계, 금속,화학 등이 발달하였고 과학 연구, 교육, 문화 등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급속하게 현대화되고 발달되고 있어서 아름다운 고도시의 매력이 사라져가고있는 것이 안타가운 현실이다.

자격있는 여행전문가 - 모두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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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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