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명칭은 알바니아공화국(Republic of Albania)이며, 알바니아인(人)은 '슈키페리야'(독수리의 나라)라고 부른다. 발칸 제국 중에서 작은 나라의 하나로, 동쪽으로 마케도니아, 남쪽으로 그리스, 서쪽으로 아드리아해(海), 북쪽으로 몬테네그로, 북동쪽으로는 세르비아의 코소보메토히야 자치주, 남서쪽으로 이오니아해에 면한다. 알바니아계 주민이 90%에 달하는 세르비아의 코소보메토히야 자치주를 둘러싸고 1998년의 코소보 사태 등 알바니아와 세르비아 양국 간에는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행정구역은 12개주(qark)로 되어 있다.

알바니아는 유럽의 공산주의의 마지막 요새였다. 잔인했던 독재자 엔버 호자(Hoxa)의 철권으로 다스려진 스탈린주의 국가인 알바니아는 지나친 폐쇄성과 외국인을 기피하는 성향으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영공을 지나는 국제 항공기에 대한 비행 허가를 내주지 않던 나라이다. 동유럽의 막스주의 정부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린 후에도, 알바니아의 지도층은 이 현상을 막으려고 애썼지만 폭정 체제는 1991년에 막을 내렸다. 알바니아가 '독수리의 후예'를 의미하는 것처럼 이 나라의 지형은 울툴불퉁한 산악 국가이다. 로마군대의 주둔지였으며 비아 이그 나찌아(The Via Ignatia)라 불리던 교역의 요충지로서 지정학적 위치가 이 나라를 수많은 전쟁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그래서 이 나라의 역사는 정복당하고 다시 점령당하는 기록으로 가득하다. 또한 이 나라는 오스만 터키 제국이 오백년 이상을 지배해 온 탓으로 유럽에서는 유일한 모슬렘 국가이다. 사도 바울이 알바니아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했지만, 기독교는 이슬람과 공산주의에 의해 위축되어 현재 알바니아의 그리스도인은 18%에 불과한데 그것도 정교회와 로마 카톨릭이 대부분이다. 지금 이 나라는 복음 사역의 문이 활짝 열린 상태이며 서구 그리스도인들이 쉽게 입국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나라가 서구 민주주의로 전환되기에는 아직도 많은 어려움이 있다.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된 이후 수 십만의 알바니아인들이 보트로 탈출하여 이탈리아로 가려고 시도했으나 그들 대부분은 다시 본국으로 강제로 송환되었다. 국민 대다수가 심각한 정신적, 영적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 나라는 유럽에서 가장 개발되지 않은 국가에 속한다.


이곳의 수도는 '티라나'(Tirana)인데, 이곳은 알바니아 최대의 도시로서, 1920년 이래 알바니아의 수도로서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인구는 약 23만명 정도이고, 티라나는 알바니아 정치, 경제 중심지로 전체 산업생산의 30%를 차지한다. 또한 티라나국립대학교를 두고 있어 교육과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듀레스'(Durres)시는 알바니아의 제2의 도시로 기원전 627년에 세워졌으며, 1914년까지 알바니아의 수도였다. 휴양지와 관광지로 유명한 항구도시이며 알바니아의 주요 항구가 있어 해상관문의 역할을 한다. 전체 산업생산의 10%를 차지한다. 인구수는 약 7만 9천명 정도이다. 이 외에도,'엘바산'(Elbasan)의 경우는 알바니아의 남동쪽에 위치한 공업도시로, 특히 철강공업이 발달하여 알바니아 전체 철강의 1/5을 생산한다. 인구는 7만 8천명 정도이다. 그리고,'슈코데르'(Shkoder)는 북알바니아의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로 주요 케이블선, 시멘트, 종이, 식품류를 생산하는 호반도시로 유명하다. 전체 산업생산의 8%를 차지하고 있고, 25만 KW의 발전소 시설이 있다. 인구는 7만 6천명 정도이다. '블로레'(Vlore)는 알바니아의 남부해안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화학제품, 시멘트, 식품류 등을 생산한다.


알바니아인들은 자기 나라를 슈키페리야(Shqiperija) 즉 '독수리의 나라'라고 부르는데, 국기(國旗)도 이를 반영하여 붉은색의 바탕에 머리가 둘인 검은 독수리가 가운데에 그려져 있다. 두 개의 독수리 머리 사이에는 파란색의 별 문양이 있어 용맹성ㅇ르 더한다. 1944∼90년에 알바니아는 사실상 스탈린주의를 정치이념으로 표방한 1당제 공산주의 국가였으며, 알바니아노동당(1991년 사회당으로 개칭)이 인민의회의 승인 아래 모든 주요 정책을 결정했다. 1991년 이후로 공산당원이 아닌 사람도 인민의회에 진출하게 되었고, 이듬해 비공산계인 민주당이 140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승리를 거두었다. 의회에서 선출한 대통령은 총리와 각료를 선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다.


자연환경은 지형적으로 국토의 3 /4을 차지하는 산악지와 모든 농경지가 집중되어 있는 서부 해안지대로 구분된다. 산악지대는 다시 알프스산맥지대, 중부고지대, 남부고지대 등 3개지역으로 구분된다. 알바니아는 해안을 끼고 있는 나라이면서도 이처럼 내륙이 산악지이기 때문에 국토의 평균 고도가 700m나 되며, 이는 유럽의 평균 고도보다 2배나 높다.알프스산맥지대는 알바니아 북쪽에 위치하며 높이가 2,700m에 달하는 석회암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고, 중부고지대는 북부의 드린(Drin)강에서 남부의 오슘(Osum)계곡에 이르는 지역으로 해발 2,751m에 달하는 알바니아에서 가장 높은 코라브(Korab)산과 오흐리드(Ohrid)호, 프레스파(Prespa)호 등이 있다. 남부고지대는 오슘(Osum)계곡의 남쪽 지대로 다소 낮고 완만한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리스 북부와 연결된다. 해안지대는 북쪽의 알프스 산기슭에서부터 시작하여 약 200km정도 뻗어 있고 폭이 15-35km 정도로 이 해안지대에 알바니아의 모든 농경지가 집중되어 있다. 식생(植生)은 산악성 지형의 영향을 받아서 저지대에는 지중해 지방의 관목인 마키로 이루어져 있고, 해발 1,000m 지점까지는 참나무가 많고, 그보다 높은 산지에는 떡갈나무와 너도밤나무가 식생하며, 더이상의 고지에서는 침엽수가 나타난다.


알바니아는 1991년 이전까지 국가가 모든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사회주의 경제체제하에서 개발되어 왔다. 1992년 정부는 사유화와 시장자유화에 중점을 둔 경제 개혁 조치를 취했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유럽에서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경작이 가능한 땅은 총국토면적의 약 1/4이며 그 중 1/2가량에서 곡물을 재배하고 있다. 그 밖에 영구적인 목초지가 전체 면적의 15%, 삼림지대가 38%를 차지하고 있다. 농경지 가운데 1/2 이상이 관개되며 옥수수·보리·귀리·콩류·사탕무·면화·해바라기씨·담배·감자·과일 등이 재배된다. 주요가축으로는 양·염소·소·돼지 등을 꼽을 수 있다. 산악지대에는 광물이 많이 매장되어 있으며, 물살이 센 강들을 훌륭한 수력발전 자원으로 이용하고 있다. 에너지용 광물자원인 원유, 갈탄, 천연 가스, 천연 아스팔트 등이 생산되며 금속성 광물로는 세계 최대 채굴량을 보이는 크롬철광을 비롯하여 니켈을 함유한 철광석, 동 등이 채굴된다. 원유와 천연 가스의 매장량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국내 수요를 충족하고도 남아 여분을 수출하고 있다. 수력발전에 의한 전기공급량이 전체 공급량의 9/10 가까이 차지한다. 공업으로는 정유, 철강제품, 제련된 크롬·동, 석유화학제품, 플라스틱, 질소비료, 과인산석회 등의 제조업이 이루어진다. 소비재는 전반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그리고, 1945년 이전에는 간선도로나 표준 철도망이 전혀 없었다. 1980년대 중엽에 이르러서 티라너에서 시작하여 국내 모든 주요도시들과 유고슬라비아로 이어지는 철도 체계가 완성되었으며 도로망은 외진 산간마을로까지 연결되었다. 아드리아 해 연안에는 4개의 항구가 있다. 알바니아의 수출품은 광석연료·크롬광·철광석·철·강철·동제품·과일·야채 등이며 기계류·장비·예비부품·광물·금속제품을 수입한다. 주요 무역 상대국은 유고슬라비아·불가리아·루마니아·이탈리아·독일이다. 알바니아에서는 사회보장제도가 실행되고 있다. 의료혜택은 무료이며 국민들의 건강상태는 1951년 이후 크게 향상되었으나 유럽의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보면 여전히 뒤떨어진 편이다. 7∼15세까지의 의무교육을 포함한 모든 교육 역시 무상으로 이루어지며 1957년에 설립된 티라너대학교가 대표적인 이 나라의 주요 고등 교육기관에 속한다.

항공
자체 항공사가 없이 수도인 티라나의 인근에 위치한 리나에 국제공항이 자리한다. 1977 년 그리스와 항공협정이 체결되었고, 1992년에 알바니아 항공망을 구축하였다. 오늘날에도 미국,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 그리스, 터키, 마케도니아, 슬로베니아, 불가리아 등의 다양한 항공사가 이곳에 취항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 도착하려면 아직까지 직항로가 개설되어 있지 않아 타국을 먼저 한번 거쳐서 가야만 한다.

훼리
선박은 서방과의 교역에 중요한 화물 운송을 담당하고 있다. 알바니아에서 가장 큰 항구는 듀레스(Dures)와 블로레(Vlore)이고 그외 사란데(Saranda)가 있다. 듀레스는 알바니아 해상운송의 80%를 처리하며 화물 최대수용량은 25,000톤이다. 1983년 11월부터 듀레스와 이태리의 트리스트(Trieste) 사이에 1988년에는 사란데(Saransa)와 이태리의 코르퓨(Corfu)사이에 1991 년에 듀레스와 이태리의 바리(Bari) 사이에 페리서비스가 시작되었다.


면적 : 28,748km2

수도 : 티라나

인구 : 1995년 기준 3,521,000명

위치  유럽 동남부 발칸반도 서북부
면적  2만 8703㎢
인구  316만 6000명(2003)
인구밀도  110.3명/㎢(2003)
수도  티라나
정체  공화국
공용어  알바니아어
통화  레크(Lek)
환율  122.89lek = 1$(2003.9)
1인당 국민총생산  1,370$(2003)


종교 : 공산주의는 모든 종교를 심하게 탄압해 왔으며, 1967년 모든 종교를 완전히 금지했다. 1990년 금지령은 해제되었지만, 회교와 정교, 카톨릭 지도자들로부터의 탄압은 다른 종교에 대한 차별법으로 이어졌다. 종교적인 수치는 2차 세계대전 전의 종교센서스를 근거로 한 추정치이다. 1967~1990년까지 알바니아는 공식적인 무신론 국가 가운데 하나였다. 따라서, 종교 행사는 금지되었고, 많은 교회 건물들이 극장이나 영화관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1990년 중반께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어 국민의 70%가 이슬람교를 신봉하고 있으며, 카톨릭이 10%(거의 알바니아의 북쪽 지역에 거주), 알바니아 정교가 17%(거의 알바니아의 남쪽 지역)를 차지하고 있다.
무종교/기타가 41.9%를 차지하고, 수니파와 베크타시파를 합해서 회교는 40%에 달한다.따라서, 알바니아는 유럽에서 유일한 주요 회교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외에도, 바하이 종교는 0.12%, 기독교 18%, 로마 카톨릭 7% 정도이고, 외국의 여호와 증인과 같은 유사 기독교가 약 0.02%를 차지한다.

주요민족 : 알바니아인(Albanian, 96%), 그리스인(Greek, 2.54%), 마케도니아인이 종족의 주류를 이룬다. 자세히 살펴 보면, 알바니아인은 93.5%를 차지하고 있고, 집시는 2.5%, 그리이스인들은 2.4%로서 남부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기타 종족이 1.6%에 달하며, 아르문(블라치)는 약 60,000여 명, 마케도니아인은 30,000이며, 그 외 몬테네그로인이 구성되어 있다.
40만 명이 흩어져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데, 한편 알바니아는 수도 티라나를 중심으로 토스크(Tosk)인과 그리스계 주민들이 몰려 사는 부유한 남부 지역과 게그(Gheg)인들이 집단 거주하는 가난한 북부 지역으로 분리된다. 공산당을 배척하고 정권을 잡은 샬리 베리샤 대통령과 현 정부의 주요 각료들은 대부분 북부를 근거지로 한 게그인으로 공산당의 후신인 사회당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남부 주민들로부터 불신을 받아 왔다. 따라서 1997년 3월에 발생한 알바니아의 무장 소요가 남부 지역에서 시작된 것은 북부 출신 집권층에 대한 남부인들의 반감이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주요언어 : 알바니아어는 인도 유럽어에 속하는데 고대 일리리아 방언의 하나이다. 알바니아어에는 2개의 주요 방언이 있는데 그 가운데 게그 방언이 1909년 공식 언어로 채택되었고,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알바니아 남쪽 지역의 토스크 방언이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 잘 사용되는 제 2외국어로는 영어와 이탈리아어를 들 수 있다. 그리고, 1972년 티라나에서 개최된 철자법 회의에서는 두 방언을 기초로 통합된 문어체를 만들었으며, 현재도 널리 통용되고 있다.

기후
기후는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에는 따뜻하며 맑고 건조하고, 겨울에는 연중 강수량의 40% 정도의 비가 내리며 서늘하고 습한 날씨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이 국가의 연평균 강수량은 1,300mm 이고, 지역마다 차이가 심한 편이다. 알프스 산맥지대는 2,000mm 이상인 반면 동부 국경지대는 650-700mm 강수량을 보이기도 한다. 가장 비가 많이 오는 11월의 평균 강수량은 211mm에 달한다.

지리
알바니아는 아드리아해 동쪽에 위치한 발칸 반도 국가이다. 약 300km 정도의 긴 아드리아해안을 끼고 있는 유럽의 남서쪽 발칸반도의 서북부에 위치한 알바니아는 남쪽으로는 그리스가, 북쪽으로는 몬테네그로가 자리하고 있다. 즉, 몬테네그로, 세르비아(코소바/일리리아), 마케도니아, 그리이스 등에 둘러쌓여 있으며, 국가의 총 면적은 28,748km2이고, 남북간의 길이는 약 340km이며, 동서 최대 너비는 153km이다.


역사
<BC이전 역사 개요>
알바니아인들은 고대 인도유럽계 민족인 일리리아인의 후손들로 적어도 BC 1000년부터 발칸 반도 서부 지역에서 계속 살아왔다. 알바니아 남부에 있던 부족들은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았는데, 두러스 시와 레저 시는 그리스 식민지에서 비롯된 곳들이다. 북부의 일리리아인들은 지역 군주들에 의해 여러번 통일되었다. 그중 대표적인 군주는 북쪽의 달마치야에서 남쪽의 비요서 강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슈코더르를 수도로 삼았던 아르곤 왕(BC 3세기 후반)이다. 아르곤 왕이 죽은 뒤 왕비 테우타가 정벌사업을 벌였는데, 이것이 로마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여 BC 168년에 일리리아 전체가 로마에 점령당했다. 그후 알바니아는 로마 속주인 일리리쿰의 일부가 되었다.

BC 4세기 초에는 Raulanti, Ardiaei등의 고대국가를 이룩하기도 하였다. BC 2세기부터는 로마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여 4세기말에는 동로마제국에 편입되어 비잔틴문화에 예속되었으며, 로마의 통치하에 일리리쿰은 번영을 누렸다. 395년 부터는 행정적으로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에 합병되었다. 3∼5세기에 서(西)고트족과 훈족의 침략을 받고 6∼7세기에 슬라브족의 침략을 받았지만 알바니아인들은 자신들의 언어와 관습을 지켜낸 발칸 반도의 몇 안되는 민족 중 하나였으며, 9세기에는 불가리아의 지배를 받았다.

<AC 1년 - 1900년 까지의 역사>
14세기에 들어와 투르크의 침략이 시작되었다. 투르크인들은 후에 민족의 영웅이 된 계르기 카스트리오티를 교육시켜 이슬람교도로 개종시키고 스칸더르베그라는 이름으로 불렀으나, 그는 오히려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물리쳤다. 1443년에 그리스도교를 다시 받아들인 그는 알바니아에 대한 투르크족의 지배에 성공적으로 대항했으나, 그가 죽은 이후 투르크의 지배가 강화되어 알바니아의 경제는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878년 러시아와 터어키 사이의 전쟁이 발발하자 민족지도자 압둘 프라셰리(Abdul Frasheri)를 중심으로 프리즈렌(Prizren)연맹을 결성하여 터어키에 대항하였으나 1881년에 터어키에 의해 해체되었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알바니아는 1912년 독립을 선언하기까지 외부로부터의 끊임없는 외침의 역사를 지니고 있었으며, 1944년에 공산당 정권이 수립된 이후 고립정책을 고수하여 오늘날 유럽에서 가장 후진국이 되었다. 그러나 뒤늦게 개혁의 물결을 타고 후진성과 고립주의를 벗어나고자 노력하고 있다.유럽의 기타 국가들이 이미 19세기 초에 시작한 민족주의가 알바니아에서도 대두되어 19세기 중엽부터 민족문화 부흥기에 접어들어 알바니아어 교육과 서적, 신문을 통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고자 하였다. 제 1차 세계대전 후 1915년에 열린 런던 비밀조약에 의해 북부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가, 남부는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분할 통치하게 되었다. 알바니아는 이같은 결정에 반발하여 1918년에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1920년에는 티라나를 알바니아의 수도로 선언하여 이탈리아로부터 독립했다. 1920년 12월에는 독립주권 국가로서 국제연맹에 가입하였다. 1925년에 알바니아 공화국을 선언하고, 유고의 지원을 받아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으며, 1928년 왕으로 즉위한 보수주의자 조구(Ahmed Zogu)는 대내적으로는 독재체재를 강화하고 대외적으로는 이태리의 원조를 받으면서 독립국으로서의 기반을 굳히고자 하였다. 그러나 1939년 4월 무솔리니의 침공으로 이태리에 합병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동안 외부의 군사적 지원을 받지 않고 다만 유고의 전략적 지도만으로 공산화에 성공하는데, 1941년 엔버 호자(Enver Hoxha)는 자신을 주축으로 하여 3개파로 나뉘어진 공산주의파를 통합하고 당 중앙위원회 의장으로 선출된다. 1943년에는 독일군이 침공하였고, 1944년 5월 민족해방전선을 결성하였으며, 1944년 11월 민족해방전선의 주도하에 공산정권을 형성하였다. 공산정권은 1946년 1월 11일 단일 후보를 내세운 선거를 치러 알바니아 인민공화국을 수립하고 그해 3월 신헌법을 채택하였다. 1946년 7월, 11월에는 유고와 상호협력조약과 경제협약을 맺어 합자회사 설립, 관세폐지와 양국의 화폐 동일화 등을 체결함으로써 유고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1946년 코민포름에서 유고가 추방되자 유고와의 협약을 파기하였으며, 1948년 1월 당명을 알바니아 노동당으로 개칭하고 유고로 부터의 원조 단절과 농업집단화에 따른 경제적 난관을 타결하기 위해 소련과 기타 동구권 나라에 의존하기로 결정하고 5개년 경제개발계획을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호자(Enver Hoxha)는 스탈린의 지원을 받게 되며 1950년 9월에는 코메론에 가입하게 된다.1953년 스탈린이 서거한 후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을 격하하고 동서진영간의 평화공존을 추구하자 소련과의 유대도 불투명해졌다. 1955년 5월 바르샤바조약기구에 가입하고 그해 12월 14일에는 유엔에 가입하였지만 흐르시쵸프의 반스탈린정책은 호자(Enver Hoxha)가 구축한 스탈린적 체제의 동요와 분열을 유발하였기 때문에, 소련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갔다.
그리고 서방과의 협력 증진을 위해서 6월 19일에는 CSCE(全歐安保協力會議)에 가입하였다1956년 폴란드와 헝가리가 자유화하자 흐루시쵸프는 집단지도체제 확립 및 조제의 복권 등을 알바니아에 제시하였지만, 오히려 호자(Enver Hoxha)는 이를 거절하고, 스탈린을 위대한 마르크스주의자로 추앙하면서 알바니아를 스탈린주의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독자적인 사회주의 노선을 표방하여, 1961년 12월 소련과의 국교를 단절하고 1962년에는 코메콘에서 탈퇴한다. 1961년 이후 소련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나서 중국의 모택동 공산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호자(Enver Hoxha)는 1967년 알바니아를 근대화하기 위해 '소문화 혁명'을 추진하였고, 또한 종교활동을 금지하였다. 1969년 9월 바르샤바 조약기구에서 탈퇴하면서 중국과 방위조약을 결성하였다. 그러나 1970년 중국이 서방국가들과의 관계를 개선하여 실용주의 노선으로 전환하자 이를 비난하였고, 1977년에는 중국이 알바니아에 대한 모든 원조를 중단함으로써 중국과도 결별하였다. 1985년 4월 11일 호자(Enver Hoxha)가 사망하자, 라미즈 알리아(Ramiz Alia)가 신임 노동당 제 1서기로 선출되었으며, 그는 호자(Enver Hoxha)의 정책을 고수하면서도 점차적으로 서구세력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1987년에 그리스와 이태리와의 관계를 개선하였으며, 서독과 국교수립을 맺어 최초로 서방측에서 6백만불의 원조를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미온적인 개방화는 심각한 경제난, 비밀경찰의 국민 감시, 인권 탄압 등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해소할 수 없었으며, 그 결과 1989년 13월 슈코더르(Shkoder)시에서 최초의 반정부시위가 발생하였다. 이같은 국내의 상황과 소련의 개방정책, 루마니아의 공산정권에 대한 민중봉기 등과 같은 국외의 사태를 직시하여 '위로부터의 부분적이고 점진적인 개혁정책'을 추진하였다. 그 후 1990년 1월 22일 노동당 중앙위원회는 복수후보제 도입 등의 부분적인 개혁안을 결정하였고, 1990년 5월에는 국민들의 해외여행 자유화와 종교 활동의 자유를 인정하는 사항과 계획경제를 포기하고 기업경영의 자율권을 20%내에서 인정하는 사항이 민회의에서 통과되었으며, 11월 카르카니(Adil Carcani) 수상은 알바니아의 경제난을 타계하기 위해서 식량과 생필품의 수입, 국내기업들과 외국기업과의 합작사업 허용을 내용으로 하는 신경제정책을 발표하였다. 1990년 12월 12일 알바니아 최초의 야당인 민주당(DPA, Democratic Party of Albania)이 창당되었고, 12월 30일에는 대통령제를 도입하였다. 1991년 2월 20일 티라나(Tirana)에서 수천만 시민들이 호자(Enver Hoxha)의 동상을 끌어내리는 시위가 발생하였고, 2월 22일 알리아(Ramiz Alia)대통령은 나노(Fatos Nano)를 수상으로 하는 과도내각과 대통령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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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병원(사고시):225-768
일반대학병원:262-62
소아과병원:363-479
-전화 보급률은 낮은 편이며, 근래에 전화 사정이 좋아지고 있음


통화
알바니아의 화폐는 lek(Lk)를 사용하며 1lek는 100 qindarka이다. 현재 환율은 100Lk가 1$이다. 통화단위는 lek(Lk)이며 1lek는 100 qindarka이다. 1 US Dollar = 135.50LK 1LK=\8.83 (1999. 9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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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의 통신은 아주 초보적인 수준이며 1993년 현재 인구 1,000명당 전화보유수가 13대이다. 알바니아정부와 함께 스위스, 이태리, 오스트리아, EU, EBRD가 총 34,000$을 지원하여 통신시설을 재구성하고 있다. 주요도시에서 IDD를 이용할 수 있다. 알바니아의 국가코드는 355이며, 주요도시의 지역번호는 Tirana 42, Durresi 52, Elbasan 545, Shkodra 224, Gjirokastra 726, Korca 824, Vlora 63, Berati 62, Kavaja 574 이다.


주의사항
알바니아에서는 식사 뒤에 빵으로 접시를 닦으면 불만족의 뜻을 표시하므로 조심하여야 하고, 결혼식 초대를 거절하는 것을 상당한 결례로 여긴다.

영적 움직임의 시간대라고 할 수 있는 축제와 순레의 예를 들면, '라마단'과 '에이드 알 피트르'라는 금식과 기도의 달로서, 이어지는 이틀간의 축제가 있고, '신년축제'인 헤지라를 축하하는 축제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매 5년마다 7월 여름에 행해지는 '지로카스테르 축제'는 전통적인 알바니아의 민속 문화의 축제이며, 연중 내내 '미라호리트 모스크로의 순례'의 경우는 모슬렘 축하절기에 더욱 붐비며 행해진다.
공산정권 시절의 언론은 정부의 감시하에 공산주의 사회건설과 선전에 이용되었고, 개혁화 이후 1990년 12월 28일 언론통제가 폐지되었다. 알바니아에서 발행되는 신문은 여덟 종류이며 대부분 정당들이 후원하고 있다. 사회당의 『제리 포풀리트 Z i i popullit』(국민의 목소리), 사회 민주당의 RD(민주주의의 르네상스), 공화당의 『레푸블리카 Republika』등이 있다. 한편 『가제타 쉬퀴프타레 Gazeta Shqiptare』는 알바니아어와 이탈리아어로 발행되며, 『드리타 Drita』(빛)는 작가, 예술가, 시인들을 위한 주간 정기 간행물이다. 또한, 텔레비전은 `티라나 방송(TV Tirana)', 라디오는 `라디오 티라나(Radio Tirana)'가 있으나 텔레비전 수신기를 구입할 수 있는 부유층들은 이탈리아 및 유고 방송의 시청이 가능해 국내 방송보다는 외국 방송을 선호하고 있다.

시차 : -8시간



▶ 티라나 (Tirana)

우리나라의 경기도와 강원도의 크기를 합친 면적 정도로 한반도의 1/8에 불과한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Tirana)는 17세기에 터키 장군 바르킨자데프 술레이만 파샤에 의해 건설된 터키 기원의 도시로, 페르시아(지금의 이란)에서의 터키 승리를 기념하여 처음에는 테헤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던 곳이고,1920년 이래 알바니아의 수도가 되었으며 알바니아 최대의 도시가 되었다. 라틴어로 "백색"을 의미하며, "백색의 나라"라는 뜻을 지닌 알바니아는 옛부터 수많은 침략과 지배를 받아 왔으나, "독수리의 자손"이라는 용맹스러움을 그대로 살려 자신들의 국기에다 쌍두의 독수리를 그려 넣기에 이른다. 57년 설립된 알바니아 최초의 종합대학을 비롯하여 여러 교육 및 연구기관이 있어 학술·문화의 중심을 이루어 이 나라 교육의 핵심지 역할을 하는 티라나는 정치,경제,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티라나 도시의 창립과 더불어 그 이후의 발전은 비옥한 옥토와 삼림과 해안, 그리고 아드리아해와 동부 알바니아의 십자로 역할을 해 왔던 지리학적인 형세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발칸 반도 내에 유유히 흐르는 슈쿰빈(Shkumbin)강의 모습 또한 이 도시의 아름다움에 한 몫을 하고 있다. 도심지는 넓고 시원하게 탁 트인 거리들과 고대의 석조 건물 및 현대적인 감각의 구조물들이 한데 어우러져 신,구의 만남이 티라나 전역을 감싸고 있는 듯 하다.중심부 스칸데르베그광장에서 방사상으로 뻗은 6개 도로를 골격으로 시가지가 잘 정돈되어 있으며, 스칸데르베그광장 부근에 이탈리아 건축가에 의해 세워진 정부청사가 있다. 이 도시의 고유 지역번호는 42이다.
16세기 까지만 해도 작은 마을에 지나지 않았고, 20세기 초까지도 인구 1만 5000 정도에 불과한 비교적 새로운 도시였던 티라나는 17세기 이후 터키의 지배하에서 더욱 발전을 가하기 시작했으며, 기후가 온난하고 교통편이 좋아, 1920년 수도로 선정된 뒤 급속히 발전하여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곳에서는 금속제품, 석유, 식품가공 및 담배, 직물, 제화, 농업기계 등의 공장이 많이 산재해 있어, 알바니아 전체 공업생산의 1/5을 생산한다.
그 밖에도 이 도시는 국립 발레단과 극장, 오페라, 도서관과 역사 박물관 등의 문화적인 면에서 매력을 한껏 발산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도심의 문화 궁전은 알바니아의 공산주의자들의 공간으로 쓰였던 잔재가 남아 있다.
오늘날 이곳에는 알바니아의 최초 민간 사기업인 Dardanian 은행을 비롯한 Lufthansa, Compaq, Trussardi 등의 비지니스 센타들이 속속 새로이 들어 서는 등 빠른 발전을 보이고 있다.

교육
현재 티라나에는 총 1700 여명의 교수진과 약 2만 5천 여명의 학생들이 있으며, 티라나 국립 대학교를 비롯하여, 2개의 농업 대학과 3개의 사범 대학, 체육 대학 그리고 예술 대학 등 총 8개의 대학이 있다. 1991년에 슈코더르에 의해서 설립되어진 Luigi Gurakuji University of Shkoder와 Higher Institute of Agriculture와 1991년, 티라나 농업 대학교로 개칭한 티라나 농업 대학교(Tirana Agricultural University)도 이곳에서는 유명하다. 알바니아의 대표적인 지적 상아탑 역할을 한 티라나 국립대학교(Tirana State University)는 1957년에 설립 되었으며, 처음 개교 당시의 학교 명칭은 Enver Hozha University of Tirana였지만, 1991년 부터 티라나 국립 대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대학에는 1천 여명의 교수와 1만 3천 여명의 학생이 있으며, 개설학부에는 역사학과 철학학부, 정치학 학부, 지질학과 광물학 학부, 자연과학 학부, 엔지니어링 학부, 의학 학부 등의 총 8개 학부제로 운영되고 있다.
그 밖에,"티라나 국제학교(Tirana International School)"는 1991년 9월에 설립되어진 사적인 비영리 재단의 학교로서, 3세부터 13세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을 위한 고급 영어 교육을 목표로 세워진 곳이다. 학교시설들은 최신의 흐름에 맞춰 잘 갖추어져 있고, 학생들을 위한 넓은 운동장도 준비되어 있다. 교사진들도 학교 인근에 거주하고 있으면서 학생들의 생활 지도를 맡아주기도 한다. 이 학교는 정통한 지식의 교수법으로서, 학생들의 교육에 임한다는 교육 철학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최상의 학습 환경 속에 학습 의욕을 고취시키고자 한다. 티라나 국제학교의 수업료로는 1년을 기준으로 할 때, 3-4세의 경우, 교육비로 $5000, 등록비로 $100 , 시의 기금료로 $1600 정도가 들며, 5세의 경우에는 교육비가 $8300, 등록비는 $100, 시의 기금으로 $1600 이, 그리고 6-17세 연령의 아이들일 경우에는 $10800의 교육비가 들고, 마찬가지로 $100의 등록비가 들어 간다. 이 외에도 국제 사회에 걸맞는 어린이 영어 교육을 전담하는 QSI(Quality Schools International)가 있다. 여기에서는 이곳의 시민인 학생들이 다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1년 이상 이곳에 머무르는 외국 부모의 자녀들이 다니고 있다. 이곳의 학습과정은 영어 학습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행동, 문화적 인식, 환경적인 이해 등의 커리큘럼이 잘 자여져 있다.

산업
중공업 위주의 정책에 따라 화학, 전기, 기계에 우선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알바니아는 1960년대와 1980년대 사이에 산업의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금속제품, 섬유, 식품가공 및 제화, 직물, 농업기계와 유리, 담배 등의 소비재 부문의 공업이 들어서 있어, 티라나의 제조업은 알바니아 전체 공업생산의 1/5을 차지하기도 한다.
농업이 주가 되고 있으나, 크롬을 비롯한 석탄, 철광석 등과 같은 다양한 광물자원은 매장량이 풍부하여 단연 앞서가는 산업이 되었다. 이곳을 위시로 하여크롬 같은 경우에는 약 3천 7백만톤이 매장되어 생산량이 세계 3위를 자랑할 정도이고, 니켈 같은 경우는 약 100년간 채광이 가능할 정도이다. 95년 부터 기계류 장비에 대한 세금을 감면하고, 광물에 대한 세금을 축소 시키는 등의 광업을 부흥시키고자 하는 법안이 새로이 마련되어져, 더욱 광업의 발전은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한,오늘날에는 내륙의 유전 개발을 위해 미국과의 협상을 진행중이기도 하다.
1993년 관광객에 의한 수입으로 총 GDP의 5% 정도를 차지한 알바니아는 관광산업을 주요 산업으로 내세우고자 앞으로도 관광객 5십만 명 유치에 힘쓰고자 하지만, 실제로 이전까지의 방문객 수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티라나를 중심으로 한 기존 시설의 정비와 서비스 향상, 그리고 넉넉한 자본금으로 외국 회사와 합작을 통해 관광산업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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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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