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영화 스타일리스트 왕가위가 홍콩 출신이라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가 필름에 담아 내는 고양이 같은 새침함과 요염함, 하드보일드한 감성을 동시에 감당해낼 수 있는 곳은 명백히 홍콩이다. 이미 전세계에 두터운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는 왕가위 감독을 ‘홍콩 감독’으로 한정 짓는 건 무리다. 그럼에도 왕가위 감독이 읽어 내는 홍콩의 모습은 다른 어떤 감독들보다 멋스럽기에 오늘도 시네마키드는 그의 시선을 따라 홍콩 거리를 거닌다.
- 비밀스러운 홍콩 밤거리의 정취를 느끼다
- 왕가위 감독의 필모그라피에서 돌연변이 같은 작품 하나를 들자면 누구나 <화양연화(In the Mood for Love)>를 꼽을 것이다. <화양연화>는 정말이지, 오랜 유행가 가사처럼 ‘별들이 소근대는 홍콩의 밤거리’를 끊임없이 비춘다. 왕가위의 모던하고 미래적인 스타일을 봐 왔던 팬들은 흠칫 당황하게 된다. <화양연화>가 그린 홍콩은 1960년대. 몸에 꼭 맞는 치파오를 입고 후미진 지하 식당에 국수를 받으러 가는 리첸, 반짝거리는 무스를 발라 2:8 가르마로 말끔히 머리칼을 정리한 차우. 그 두 사람이 걷는 거리, 마주앉은 레스토랑에서 홍콩 1960년대가 뚝뚝 묻어난다. 특히 홍콩 코즈웨이 베이의 명소가 된 이 레스토랑 ‘골드핀치(Goldfinch)’. 영화 팬들 사이에는 성지처럼 여겨지며 여전히 영화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골드핀치는 실제로 60년대에 문을 연 곳이라 영화 속 장면을 억지로 꾸며낼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영화가 알려진 후 프랑스에서는 <화양연화>의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한 오리엔탈 레스토랑이 최신 트렌드로 자리잡았다고 했다. 대표적인 예가 인테리어 디자인에 있어서 가장 선두에 있는 디디에 고메즈(Didier Gomez)가 디자인한 샹젤리제 거리의 ‘무드(Mood, 화양연화의 영어 제목인 In the Mood for Love에서 따옴)’. 이 레스토랑은 이름에서부터 <화양연화>에의 오마주를 표시하며 동양적인 색감과 가구, 소품으로 내부를 꾸몄다. <화양연화>가 전 세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켰는가 하는 척도로,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왕가위가 초점을 맞춘 1960년 홍콩은 은근한 매력이 있다. 보일 듯 내보이지 않는 차우, 리첸 두 사람의 속내처럼 그때의 홍콩은 비밀을 간직한 듯 밤이 되어야 피어나는 곳이다.
<화양연화>에서 느꼈던 그 60년대 감성을 지금 2007년의 홍콩에서 느낄 수 있다고 한다면? 물론, 홍콩의 주요 상업지구는 마천루가 머리를 어지럽히는 휘황찬란한 공간이다. 하루 아침에 빌딩이 쭉 뻗어 생길 것만 같은 곳이다. 그런데 밤이 되면 시장이 열리는 템플 스트리트나 몽콕의 주거지구를 떠올리면 60년대를 배경으로 리첸과 차우가 부대꼈던 그 골목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영화의 감상에 빠져보고 싶다면 홍콩 곳곳에 심어져 있는 60년대의 단서를 찾으면 될 일이다. 발전의 흐름에서 도태된 것이라손 치더라도 30여 년의 스팩트럼을 하나의 도시에서 내보인다는 점이 여행지로서 홍콩의 강점이다.
- ▲ 자연스러운 홍콩 거리 장식
- ▲ 중경삼림의 한 장면
- ▲ 화영연화의 골드핀치
- ▲ 홍콩의 야시장
- ▲ 어수선한 템플스트리트 시장
- ▲ 명소가 된 미드레벨 에스칼레이터
- ▲ 일상적인 홍콩의 거리
- ▲ 문화행사가 자주 열리는 홍콩 시청
- 젊은이의 방황과 사랑을 그려내다
- 시간을 이동해 30년을 거슬러 올라와 보자. 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중경삼림(Chungking Express)>. <중경삼림>에서 흘러나온 음악 ‘캘리포니아 드리밍(California Dreaming)’, 그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왕정문, 임청하의 노랑머리… 이 영화를 이루는 세포 하나하나가 유행처럼 번지던 때가 있었다. 한국 CF에서 이 영화의 한 장면을 패러디할만큼 한국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기네스북에도 올라 있는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는 <중경삼림>의 팬이라면 쉬 지나치지 못할 장소다. 에스컬레이터에 가만히 서서 흘러가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왕정문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고, 그녀가 들고 있었던 국수그릇조차 기억날지 모른다. 네 남녀의 독특한 사랑이야기는 그 배경이 홍콩이었기에 어울렸다. “우리는 서로 매일 어깨를 스치며 살아가지만 서로를 알지도 못하고 지나친다. 하지만 언젠가는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중경삼림>의 명대사로 꼽히는 이 짧은 두 문장은 홍콩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말인 듯 보인다. 왕정문이 일했던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는 란 콰이 퐁에 여전히 가게 문을 열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밤을 즐기러 오는 란 콰이 퐁에 있기에 전혀 새로운 인연이 나타날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들고, 영화의 대사처럼 누군가와 마음을 터놓는 친구가 될 것만 같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잊고 있었던 30여 년 전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것 같은 곳. 홍콩. 왕정문은 홍콩에서 캘리포니아를 꿈꾸었다. 홍콩은 가깝고 쉽게 갈 수 있지만, 여전히 꿈꾸게 되는 곳이다.
출처 : 자격있는 여행전문가 - 모두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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