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밀도는 71.4명/㎢(2001)이고 공용어는 캄보디아어이다.
북동쪽으로 라오스,동쪽과 남동쪽으로 베트남,북쪽과 서쪽으로 타이에 접하며,남서쪽으로 시암만(灣)에 면한다.






면적 : 18만 1035㎢

수도 : 프놈펜(Phnom Penh)

인구 : 1272만 명

정치형태 : 입헌군주국

종교 : 캄보디아는 98%가 불교이며 정령숭배적인 요소가 매우 강하다. 소승불교가 캄보디아에서는 가장 널리 퍼져 있으며 1975년 까가지는 국교였다. 1980년대 후반 소승불교는 국교로 복귀했다. 1975-1979년 사이 수많은 캄보디아 승려들이 크메르루즈에 의해 살해 당했으며,3천개가 넘는 절들이 파괴되었다. 1990년대 많은 절들과 모스크가 복원되었으며 스님들의 탁발이 다시 일상적인 모습이 되었다. 대부분 크메르족은 불교 신앙에 곁들여 초자연적 존재인"네악 타"(neak taa)를 믿는다.'네악 타'는 죽음의 영도 될 수 있으나 항상 살아있는 영으로 간주된다. 그 영은 적절한 경의를 표하면 해를 받지 아니하나 그렇지 않으면 질병이나 가뭄을 가져온다고 믿어진다. 크메르족들은 석가의 생애를 경축하는 여러 가지 행사를 가지고 있다. 폴포트 정권의 붕괴이후 종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불교의 부흥이 일어나고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동남아의 여타 국가와 마찬가지로 모슬렘이 부흥하고 있고,힌두교도 서서히 증가하고 있다.
타일랜드에 있는 크메르 난민촌 피난민들이 기독교에 대하여 열린 자세를 취하고 있다. 지난 15년동안 캄보디아의 기독교인들은 박해를 받아왔다. 크메르족은 기독교를 서구의 종교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전쟁과 사회적 혼란으로 인한 민족주의와 불교사이의 괴리현상으로 인하여 학생들과 지식인들은 기독교에 대하여 개방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1954년에 전체 성경이 크메르 언어로 번역되었다. 크메르어로 된 신앙서적이 있으며 영화'예수'가 크메르어로 번역이 되어 있다. 크메르족에게는 무엇보다도 현재 그들의 육체적,정서적 요구를 채워줄 수 있는 사역이 요구된다. 20년이 넘도록 그들은 전쟁에 시달려 왔기 때문이다.

주요민족 : 캄보디아인(크메르족)이 전 인구의 95%를 차지하며 그밖에 중국인·베트남인(人)·참족(族)·고산족 등이 있다. 주로 상업에 종사하는 중국계는 5.1%를 차지하는데,출신지는 차오저우[潮州]·광둥[廣東]·푸젠[福建]·하이난[海南] 등이다. 베트남인은 1977년까지 4.5%를 차지하여 어업 외에 목수,미장이,이발,기계수리 등의 기술적 직업에 종사하였으나,1977년부터 베트남-캄보디아 분쟁으로 대부분 베트남으로 도피하였다.
이밖에 크메르이슬람이라는 소수의 참인(人)이 어업에 종사하며,크메르루(상부크메르)로 총칭되는 쿠이족·스첸족·프놈족·자라이족 등 소수민족이 화전농업을 영위하고 있다.

주요언어 : 크메르족의 공용어인 캄보디아어(語)를 사용하며 중국계는 여러 언어를 사용하나 중국인들간의 공통어로는 광둥어가 우세하다. 50대 이상의 장년층은 프랑스어,청년층은 영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경제
캄보디아는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중에 하나로,그들은 주로 공무원,어업,농업,소규모 무역상,식당경영,상점주인,자동 판매기업등에 종사한다. 인구의 80% 이상이 농업활동에 종사하며 15%가 경제분야에서 봉사한다. 주 수입원은 잉여농산물 판매,어업,원목,보석,채광 및 판매,소매사업등을 통해서 얻어진다. 생산물로서는 고무,쌀,콩,담배,시멘트,제지,생선,옷감,바스켓,비단생산과 직조등이며,무역상대국은 러시아 동구유럽,싱가포르,타일랜드,홍콩,일본,베트남 등이다. 고무,원목,콩,담배등은 수출하고 식량,원유,소비재,원자재등 수입한다. 현재 프놈펜에 4개의 전력발전소가 있고 그 외에 몇 개가 더 있다.
모든 연료와 대부분의 원료,자본재,소비재를 수입해야한다. 최근에 주 수출품이 고무에서 목재로 바뀌었다. 목재는 현재 캄보디아 수출액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이외 금과 담배의 적환이나 외국의 원조가 경제를 지지하는 주요 재원이 되고 있다.

기후
전형적인 열대몬순기후로 10월 중순∼5월 초의 건기와 5월 중순∼10월 초의 우기로 나누어진다. 건기는 비교적 서늘한 11∼2월과 더운 3∼5월로 나누어져 앙코르와트를 방문하는 관광객은 12∼1월에 많다. 강수량은 주변 산지에 많고 몬순의 영향이 미미한 중앙평원에서는 적다. 연평균강수량은 1,000∼1,500mm이나 남서부 산지의 바다쪽 경사면은 5,000mm 이상이다. 따라서 식생은 주변산지에 밀림이 우거져 있을 뿐 다른 지역은 관목과 초원이 혼합하는 사바나의 경관을 이룬다. 중앙평원은 제1의 농업지역으로 대부분은 논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기후가 자연식생에 적합하며 동물로는 코끼리,야생 물소,호랑이,퓨마,표범,곰 등과 수많은 작은 짐승들이 있으며 특히 코브라,왕코브라,줄무늬크레이트(코브라의 일종),러셀 등 위험한 독사가 많다.

사회문화
캄보디아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아시아에서 최저인 49.7세이다. 전 인구의 5%만이 안전한 식수를 공급받을 수 있다. 기본적인 에너지원은 땔 나무이다. 크메르 건축은 앙코르 시대에 그 정점에 이르렀다. 이 시대의 훌륭한 건축물들 중 일부가 앙코르왓 (Aagkor Wat)과 앙코르 톰 (Angkor Thom)이다. 뛰어난 크메르 조각품의 다수가 푸놈펜에 있는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타이댄스와 비슷하고 원류도 같은 앙코르 댄스로부터 채택된 전형화된 캄보디아의 고전춤이 전통악단과 여러 사람의 이야기꾼을 동반해서 공연되고 있다. 프놈펜과 시엠립 (Siem Reap)에서 고전춤을 볼 기회를 쉽게 가질 수 있다. 힌두 서사시에 기초한 민속무용,극,민속음악 등이 있다.

지리
캄보디아는 인도차이나 반도 남동부 캄보디아평원을 차지하며 메콩강(江)이 중앙을 관류하는 평원국가이다. 지형은 남쪽을 제외한 3방향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산지의 중앙에는 넓은 평원이 전개되어 있어 마치 얕은 대접 모양의 지형을 이룬다. 주위의 산지는 가장 높은 남서부의 카르다몸(크라반)산맥도 해발고도 1,000∼1,500m에 불과하다. 이들 산지는 중앙부를 향하여 완만하게 경사져 있으며,서부에서 가장 움푹 팬 부분이 톤레사프(‘큰 호수’라는 뜻)이다. 중앙의 캄보디아평원은 처음에는 해저지역이었으나 충적작용에 의해 평야로 바뀌었고,해발고도 20m부터 수백m에 이르는 작은 구릉(프놈)이 산재하여 단조로운 평야의 경관을 깨뜨린다. 국토의 약 3/4은 삼림으로 덮여 있다.

북부·서부·남서부의 산지에서 흘러내리는 강은 모두 톤레사프호(湖)로 유입하며 호수의 동쪽 끝에서 톤레사프강이 되어 남동쪽으로 향한다. 동부 구릉의 가장자리로는 메콩강이 흐르며 북동부 산지에서 흘러내리는 지류가 유입된다. 메콩강은 라오스 국경의 콘폭포로부터 캄보디아평야를 남쪽으로 관류하면서 세콩강·세산강의 지류를 합하여 강폭을 넓히고,다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톤레사프강과 합류한다. 갈수기에는 톤레사프호의 물이 톤레사프강으로 흘러 프놈펜 부근에서 메콩강에 합류하고 여름의 용수기에는 프놈펜으로부터 물이 역류하여 호수로 들어가 유량 조절지의 역할을 한다. 톤레사프호의 호안선(湖岸線)은 지도상에 나타난 것보다 훨씬 넓은 지역까지 확대된다.


간단한 현지어
현지어 : 초모리아푸 수아
의 미 : 안녕하십니까?
현지어 : 타라이 퐁만
의 미 : 얼마입니까?
현지어 : 솜투
의 미 : 실례합니다
현지어 : 오쿤 추란
의 미 : 고맙습니다
현지어 : 타라이 낫
의 미 : 비쌉니다


역사
BC이전 역사 개요

기원전 2000년에서 1000년사이에 현 캄보디아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했으며,1~6 세기경에는 중국과 인도사이의 무역로를 차지하고,번성을 구하하던 후난 (Funan) 왕국이 있었다. 건축과 조각에서 두각을 나타낸 앙코르 시대는 800년 경 자야바르만 2세(Jahavarman II)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의 재위 기간에 정교 일치의 권한을 가진 데바라자(Devaraja; (신왕) 의 크메르 통치가 성립되었다. 앙코르 주변에 관개 시설을 이용한 집약적인 농사가 이루어졌으며,그 결과 크메르 인들은 고도로 중안집권화된 국가에서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AC 1년 - 1900년 까지의 역사

1863년부터 90년 동안 프랑스가 캄보디아와 베트남을 식민지 통치했으며,1953년 캄보디아는 독립을 선언 했다. 그후 15년 동안 노로돔 시하누크(Norodom Sihanouk) 왕이 캄보디아 정치를 좌지우지 했다 (후에 그는 수상,국가 원수를 거친 다음 다시 왕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그는 좌우 세력을 오가며 연합전선을 펴는 변덕 스러움과 억압적인 정치 스타일 때문에 1970년 군부에 의해 쫓겨나 중국으로 망명했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1969년부터 캄보디아는 베트남 전쟁에 말려들었다. 미국은 캄보디아 내에 있다고 의심되는 공산군 기지를 부수기 위해 비밀 융단 폭격을 실시 했으며,1970년 쿠데타후에 미국과 월남군은 월맹군의 뿌리를 뽑기위해 캄보디아를 침공했다. 그들의 침략은 실패했지만 캄보디아의 자체 혁명 세력인 크메르루즈 (불어로 루즈는 붉은색을 뜻한다) 를 내륙 오지로 몰아내게 되었다. 이후 캄보디아는 전체가 참혹한 싸움에 빠져들었으며 사이공이 함락되기 2주 전인 1975년 4월17일 크메르루주가 프놈펜을 점령함으로써 전쟁이 끝났다. 곧 크메르루즈의 지도자 폴포트 (Pol-Pot)의 지휘아래 지금까지 행해진 것 중에서 그 어떤 것보다 급진적이고,잔인한 사회개조가 시도되었다. 목표는 캄보디아를 농민이 지배하는 사회주의 농업협동조합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후 4년동안 식자층을 포함한 대부준의 도시인들이 농촌 지역으로 재배치 되었으며,고문을 당해 죽거나 처형당했다. 크메르푸즈의 정책 때문에 적어도 백만명,많게는 2백만명의 캄보디아 인들이 1975-1979년 사이에 죽었다.
1978년 말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했으며,그 결과 크메르루즈는 태국과의 국경지대에 있는 캄보디아 서쪽의 정글로 쫓겨 갔다. 1970년대 후반 부터 1980년대에 걸쳐 크메르루즈는 중국과 태국 (간접적으로 미국이 지원)의 도움을 받아 베트남의 조종을 받는 프놈펜 정부에 대항하여 게릴라 전을 전개했다.
1993년 중순 유엔의 관리하에 캄보디아에서 선거가 치뤄졌다. 새로운 헌법에 의해 노로돔 시하누크가 다시 왕이 되었다. 현 정부는 독립연합전선 (United Front for an Independent)으로 노로돔 나나리드 왕자 (Prince Norodom Ranariddh) 가 이끄는 FUNCINPEC (Neutral and Free Cambodia) 당과 훈센 (Hun Sen)이 이끄는 캄보디아 민중당 (Cambodian People's Party)이 합쳐진 연정이다. 캄보디아 정부와 연정 수립을 위해 많은 협상에도 불구하고 크메르루즈는 여전히 제도권 정치 밖에 있으면서 캄보디아의 안정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러나 1998년 8월 UN의 감시하에 치른 선거에서 훈센이 승리를 거둠으로서 2원 집정체제의 문을 내리고 1원 집정체제로 정치적 안정을 되찾으면서,그동안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많은 혼란을 야기 시켰던 크메르 루즈군도 이제 거의 투항하여 극 소수의 일부를 제하고는 이제 정부군으로서 혹은 사회에 복귀함으로서 정치와 사회적인 안정을 되찾고 있다.


유용한전화번호
주 캄보디아 대사관
-주소:House No. 64,Street No. 214,Phnom Penh,ingdom of Cambodia
-전화:(855-23) 211 901/2,팩스:(855-23) 211 903
-E-mail 주소:embkorcam@bigpond.com.kh
-정무 통상:koreanemb@bigpond.com.kh
-비상시 연락처:영사 핸드폰 012-813422
-프놈펜 한국무역관(KOTRA):214465,982911

긴급연락처(경찰서,병원 등)
-경찰서
경찰 비상전화:117 / 366 842 / 720 235
교통경찰:722 067
-소방서:118 / 723 555
-병 원
구급차:119
SOS Clinic:216 911
Hospital Calmette:426 948
Raffles Medical Center:012-811 088
※ 경찰서 및 병원에 전화연결이 되지 않을 경우 또는 긴급사태 발생시 대사관이나 한인회로 연락 요망

주요기관 연락처
-한인회
사무실:300112
김용덕 회장:015-917 935
정한칠 총무:016-831 738
-외국 항공사
타이항공(TG):214394,214359
Royal Air Cambodge(VJ):428891 / 3
베트남 항공(VN):363396 / 7
실크에어(MI):364747,363443
방콕에어웨이(PG):426624
-아국인 경영 여행사
한신 투어 스타트:012-813 823
오픈 트레블:015-917 338

의료시설
이 나라의 보건 위생관계는 매우 빈약하다. 폴포트 정권(1975-1979)이 거의 모든 의사들을 죽였기 때문이다. 1989년 통계로는 1000명당 1.6개의 병원침대가 있고 10만명당 5,3명의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는 전국에 700명의 의사,치과의사,약사가 있을 뿐이다. 풍토병인 장티푸스,말라리아,이질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265명중 매달 지뢰로 인하여 지체를 잃어버린다.

치안
일반적으로 캄보디아내 치안상태는 양호하지 못하다. 관광객들이 준수해야 될 안전수칙은 다음과 같다. 1) 야간외출을 삼가고 단체행동을 하는 것이 좋다. 특히 야간에는 오토바이 택시 및 시클로(인력거) 탑승을 삼가야 한다.
2)범죄발생 빈도가 높은 후미진 지역 출입을 삼가야 한다.
3)집회,시위,정치적 성격의 회합장소 접근을 삼가야 한다.
4)고액권 화폐 과시하는 행위를 삼가도록 한다(범죄의 표적이 됨).
5)캄보디아는 AIDS 보균자가 증가추세에 있으므로 유곽출입을 삼가야 한다.
6)경찰복이나 헌병복장을 한 무장강도에게 폭행 및 강도를 당한 외국인이 많으므로 주의 요한다.
7)개인적으로 차량렌트 하여 관광할 경우,차량 운전자는 호텔 등에 알선을 부탁하여 신원 확실한 사람이어야 납치 등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
8)여권 및 귀중품 주의 참고로 캄보디아의 대표적 관광지인 시엠리엡(앙코르 왓트) 및 깜뽕솜(해수욕장)의 치안은 수도인 프놈펜에 비해 양호하며,외국인이 비교적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지역이다.

현재도 지방 오지로의 여행은 위험하며,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지역도 야간에는 통행을 삼가는 것이 좋다. 캄보디아에는 800만개 이상의 지뢰가 매설되어 있다고 추정되므로,인적이 드문 곳은 지뢰사고의 위험이 상존한다.

통화
리엘(Riel)
환율 : 3,835 Riel = 1달러


주의사항
현지 노천식당은 비위생적이므로 피하는 것이 좋으며,현지 식당에서 제공하는 얼음은 삼가는 것이 좋다. 수돗물은 삼가고 쉽게 구할 수 있는 미네랄 워터를 이용한다.
직사광선에 노출을 삼가고,모자 및 선글라스 착용한다.
말라리아 및 뎅기 열병의 위험이 있으므로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주의한다.
여행에 필요한 상비약 휴대 권장 1997년 WHO 발표에 의하면 주재국에는 에이즈 감염자가 10만 이상이라고 하므로 유곽 출입은 삼가야 한다.


비자
▣ 국내 비자발급처
기 관 명 : 종로구청4층 외무부 여권과
전화번호 : 731-0610-4
근무시간 : 09:00~18:00

▣ 비자신청시 유의사항
개인적인 일로 여행을 할 경우는 방콕이나 사이공 출발 적어도 60 일전에 모든 서류를 내어야 한다.  
입국시 공항에서 신청자의 요구에 따라 유효기간 30일의 여행자 및 비즈니스 비자 비자 수수료는 여행자 비자 20불, 비즈니스 비자 25불임 장기 체류시 반드시 비즈니스 비자 취득 요망(여행자 비자는 연장 불가)


전형적인 열대몬순기후로 10월 중순∼5월 초의 건기와 5월 중순∼10월 초의 우기로 나누어진다. 건기는 비교적 서늘한 11∼2월과 더운 3∼5월로 나누어져 앙코르와트를 방문하는 관광객은 12∼1월에 많다. 강수량은 주변 산지에 많고 몬순의 영향이 미미한 중앙평원에서는 적다. 연평균강수량은 1,000∼1,500mm이나 남서부 산지의 바다쪽 경사면은 5,000mm 이상이다. 따라서 식생은 주변산지에 밀림이 우거져 있을 뿐 다른 지역은 관목과 초원이 혼합하는 사바나의 경관을 이룬다. 중앙평원은 제1의 농업지역으로 대부분은 논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기후가 자연식생에 적합하며 동물로는 코끼리,야생 물소,호랑이,퓨마,표범,곰 등과 수많은 작은 짐승들이 있으며 특히 코브라,왕코브라,줄무늬크레이트(코브라의 일종),러셀 등 위험한 독사가 많다.




▶ 씨엠립 [SIEM REAP]

시엠립의 인구는 주 전체가 약 70만 시엠립 시가 약 7만이다. 시엠립 시내는 좁기 때문에 외각 지역을 제외하고 주요 시가지는 걸어서 20∼30분이면 이디든 갈 수 있다.
세기의 역사학자 토인비는 캄보디아 앙코르지역의 유적을 더듬어 보고는 감동을 감추지 못하고 “이곳에서 이 경이로운 유적과 더불어 남은 생을 살고 싶다”고 했다는 앙코르유적지. 인구 16만의 이 도시는 세계적인 유적지로 유명한 도시로 과거 앙코르왕국은 세계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엄청난 건축물을 조성하였다. 앙코르의 전성기에는 인구 1백만으로 추정되는 세계 최대의 대도시였지만 13세기 이후 쇠퇴의 길을 걸었다. 자야바르만 7세의 과중한 토목공사와 집권층의 부패로 점차 국력이 쇠퇴하였고 틈을 노리고 있던 태국의 야유타야족은 1431년 마침내 앙코르를 함락시켰다. 이에 앙코르왕국은 앙코르지역을 포기하고 수도를 프놈펜으로 옮겼다.
이후 태국의 영향을 받은 불교 스님들이 힌두교사원의 일부를 파괴하거나 불교사원화하여 유지하기도 하였다. 이후의 앙코르 유적들은 이곳에서 태어나서 죽은 원주민과 몇몇 승려와 더불어 정글에 묻혀 전설의 왕국이 되고 말았다. 이 묻혀진 왕국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점 벗어나다가 1860년 프랑스의 여행가 앙리 무오에 의해 탐험되고 보고된 이후 급격히 부상되기 시작하였다. 1908년부터 정글을 제거하고 부서진 건축물을 복구하기 시작하였다.
현재도 일반 농가에서는 야자 나뭇잎으로 지붕을 만들고 다리발을 세워 집을 만들고 있습니다. 도시지역의 경우에는 90여년간의 프랑스 지배의 영향으로 주택이 형성되어 있는데,내부는 더운 지방이니만큼 벽지와 장판의 개념이 없고 대부분 타일을 이용하여 마무리를 하는 형태입니다. 그러나 더욱 특이한 점은 화장실 구비의 미비로 외곽지역의 경우 집 앞마다 조그만 웅덩이를 만들어 놓고 있다는 점입니다.


산업
일반적으로 캄보디아의 제조업은 규모가 적고 영세한 실정으로 97년 기준 제조업이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8%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가운데 건설업은 GDP의 9.8%를 자치하고 있으며,97년 한해동안 11.4% 감소 성장한 바 있음. 97년 7월사태 및 IMF로 인한 인근국의 직접투자 감소등의 영향을 받습니다. 봉제.섬유업은 98년말 현재 약 111개사가 진출해 있으며,약 90,000명의 인력이 종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봉제업은 캄보디아의 전략산업으로 93-98년 기간동안 제조업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합니다.
97년 기준 서비스업이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7.2%에 달하고 있으며,93-96년 기간동안 연평균 8.5%의 성장율을 보인 바 있습니다. 운송 및 통신분야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7년 기준 3.5%이며,93-96년 기간 연평균 성장율은 9.9%에 달하고 있습니다. 관광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2%임. 92년 UNTAC이 들어오면서 290%에 달하는 급성장을 하였으나,95-96년에는 약 20%의 성장율을 나타냈습니다.
97년 기준 농업분야는 전체 GDP의 42.8%,총 고용인구의 85% 차지하고 있으나 93-96년 기간동안 성장율은 3.4%에 불과합니다. 주요분야별로는 쌀이 63%,축산업 25%,어업 8%,산림업 3.4%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의 농업발전 저해요인
①관개시설 및 영농기술 열악,②유통구조의 전근대화,③주요 경작지 지뢰(약 19억 S/M) 잔존 등


전형적인 열대몬순기후로 우기와 건기로 나뉘어진다. 우기는 5월에서 10월까지로 습도가 높고 무덥다. 습도가 가장 높은 곳은 태국만에 위치한 지대이다. 10월이 가장 습한 달로 월평균강수량은 256㎜이다. 건기는 11월부터 4월까지로 기온이 높고 1일 평균 8시간은 햇빛이 비치는 것이 특징이다. 가장 건조한 달은 1월로 월평균강수량이 8㎜에 불과하다. 중앙평원은 주변의 산지에 의해 남,서 몬순이 가로 박히기 때문에 연강수량이 1,500㎜ 전후이고 기온의 변화가 거의 없어 연평균 27∼37℃ 수준을 보인다. 10월부터 4월까지는 북,북동풍이 5월에서 9월까지는 남동풍이 분다.

씨엔립의 8월 기상은 평균 기온이 27.1℃로 우리나라의 한여름 기온이므로 일사병과 저체온증의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어 주의해야 하며,외출시에는 모자나 선그라스,햇빛가리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8월의 최고기온은 30℃이며,최저기온은 26℃이므로 온도차가 4℃이다. 따라서 큰 기온차가 아니므로 기온변화에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나이트시티투어




▶ 프놈펜 [PhnomPenh]

한때 인도차이나의 파리로 불린 프놈펜은 메콩강 줄기인 톤넬삽강에 연해 있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프놈펜은 캄보디아의 어두운 이미지와는 달리 밝고 산뜻한 느낌을 주는 도시이며,인구는 약 110만명이다.
프놈펜은 캄보디아의 수도이며 제1의 도시로,캄보디아 중남부의 바사크·사브·메콩 강 하계의 합류점에 위치하고 1434년 앙코르톰(앙코르)에 이어 크메르의 수도로 세워졌으나 여러 차례 버려졌다가 1865년 노로돔 왕이 재건했다. 전에는 직물·약품·기계 제조와 정미업 등의 가공업 중심지 역할을 했으나 이곳의 주요자산은 문화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15세기 이전까지는 전설의 왕국 앙코르가 캄보디아의 중심역할을 담당하지만,프놈펜은 15세기부터 캄보디아의 수도로 자리잡아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프놈펜은 앙코르처럼 웅장한 멋은 없지만,전통과 현대가 결합한 독특한 향기와 아름다움을 전해줍니다. 수십년간 내전을 거쳐왔지만,다행스럽게도 소중한 문화유산은 지켜온 것이다.
왕궁과 은(銀) 타일로 된 바닥으로 유명한 프레아모로코트 파고다를 중심으로 세워진 프놈펜 시는 경관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왕궁 단지는 왕궁(1919),왕궁 박물관,베알 미엔(왕의 평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베알 미엔에서는 1년에 2번씩 국회가 열린다. 자야바르만 7세 미술관에는 크메르 보석,국립박물관에는 크메르 예술과 역사적 문서들이 전시되어 있다.
시 북부지구의 유럽인 구역은 펜 구릉 기슭에 있으며,펜 구릉 꼭대기에는 전설상의 인물인 펜 부인의 사리를 담은 불탑이 있다. 펜 부인이 이곳에서 청동 불상을 찾아내어 이 정착지가 펜 부인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왕립 발레단이 있으나 오늘날까지도 캄보디아의 왕족 앞에서만 공연하도록 제한되어 있다. 왕립 발레단의 무용수들은 진짜 보석으로 치장을 하고 고대 불교와 힌두교 전설을 무언극으로 연기한다.


교육
고등교육기관으로는 1956년 왕립크메르대학교로 세워졌던 국립프놈펜대학교가 있다. 이 대학교는 공과대학·미술대학·기술대학·농과대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농과대학은 교외 참카르다웅에 위치한다. 그 밖에 왕립농경학 대학교와 프레크레아프 농업학교가 있는데,독립된 불교대학교와 불교와 팔리어를 연구하는 학회들도 있다.


전형적인 열대몬순기후로 우기와 건기로 나뉘어지며,우기는 5월에서 10월까지로 습도가 높고 무덥다.
습도가 가장 높은 곳은 태국만에 위치한 지대이며,10월이 가장 습한 달로 월평균강수량은 256㎜에 달한다. 건기는 11월부터 4월까지로 기온이 높고 1일 평균 8시간은 햇빛이 비치는 것이 특징이며,가장 건조한 달은 1월로 월평균강수량이 8㎜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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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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