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는 적도 바로 이남 아프리카 대륙의 한가운데 위치한 내륙국가(중부아프리카)로 아프리카 최고의 인구밀집국 중의 하나다. 수도는 키갈리(kigali)이며,기후는 적도를 낀 열대성 적도기후이다.

항공
국내노선은 키갈리(Kigali) 케이반다공항(Gregoire Kayibanda) 에서 북서쪽의 기세니와 남서쪽의 창구구에 운항하고 있다. 키갈리 시내에어 르완다 사무소에서 예약과 티켓을 구입할 수 있다.
외국에서 르완다로 들어갈 때는 브뤼셀과 파리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이 많다. 브뤼셀에서는 사베나항공 SN편이 있으며 소요시간은 약 9∼10시간이다. 파리에서는 에어프랑스(AF) 편이 있으며 소요시간은 약 10시간 30분이다.


면적 : 2만 6338㎢

수도 : 키갈리

인구 : 731만 3000명

정치형태 : 대통령 중심의 공화제

종교 : 로마 톨릭교 65%, 기독교 10% 가량이며 그외 이슬람과 토착신앙을 믿는다.

주요민족 : 반투계의 후투족이 약 88%을 차지하며 나일계의 투치족이 10% 소수의 피그미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후투족과 투치족의 종족간의 갈등이 심한 편이다.

주요언어 : 영어, 불어가 쓰이며 키냐르완다(Kinyarwanda)어가 공식 언어이다. 그러나 스와힐리어도 일상적으로 사용되는데, 특히 아랍인 지구 또는 아랍의 영향을 많이 받은 지구에서 그렇다.

기후
대부분의 영토는 구릉과 산지이다. 북서쪽에 위치한 가장 놓은 산은 활화산이다. 키부(Kivu)호수와 루시지(Rusizi)호수가 서쪽 국경을 이루고 있다.
카레라(Kagera)강이 동쪽 국경, 아칸야루(Akanyaru)강이 남쪽 국경이다. 키부호수를 주변으로한 서쪽은 지형이 비교적 험준하여 키부호수가 해발 2,700미터, 북서쪽의 비룬가(Virunga)산이 해발 4,510미터이다.

동쪽의 평야지대는 해발 1500미터에서 2,100미터에 이르고 계속 서고 동저의 지형을 이룬다. 동쪽의 평지는 과거에 우거진 숲이었으나 현재는 거의 대부분이 농업을 위해 개간되었다. 서쪽지역은 연평균기온 17도,평균 강우량 147센티미터에 이르고, 동쪽의 평지는 20도의 평균기온,119센티미터의 평균강우량을 가지고 있다. 강우량에 따라 1년은 크게 소건기(1월∼ 2월),대우기(3월∼ 5월),대건기(6월∼9월),소우기(10월∼12월)로 구분된다. 2번의 대우기가 있기 때문에 2모작이 가능하다. 높은 지역인 서쪽에서 내리는 많은 양의 강우가 동쪽의 평지를 비옥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지리
아프리카 중동부의 내륙국으로 동쪽으로 탄자니아,서쪽으로 자이레,남쪽으로 부룬디,북쪽으로 우간다와 인접해 있다. 총 면적은 2만 6,338㎢로 한반도의 1/10 정도의 소국이다. 국토는 해발 1,000m 안팎의 고지대이며 나일 - 콩고 분수계의 일부에 해당된다. 카리심비 산(4,507m)을 비롯해 해발 3,000m급의 고봉이 많고 아름다운 산들에 둘러싸여 일찌기 이곳을 찾은 독일 탐험대는"아프리카의 스위스"라는 기록을 남겼을 정도이다. 서쪽으로는 국토의 약 1/10을 차지하는 면적 약 2,667㎢의 키부(Kivu) 湖가 있으며 이 호수에서 갈라져 나온 루지지 강이 자이레와 국경을 이루고 동쪽은 높은 고원이 낮아지면서 탄자니아와 동쪽 국경을 이루는 카게라 강의 낮은 늪지대 평원으로 이어진다. 남동쪽에는 호수가 여럿 흩어져 있으며 북쪽에는 비룽가 산맥의 화산 봉우리가 솟아 있다. 그중 가장 높은 산은 카리심비 산이다. 국토의 2/5가 경작지이며 1/5은 목초지로 염소,소,양 등을 기르고 있다. 서쪽에는 산이 많아 국토의 1/10 정도가 수목으로 뒤덮여 있으며 더 높은 북서쪽 화산지대에는 대나무숲이 있고 나머지는 대부분 나무가 우거지거나 풀이 있는 초원지대이다. 르완다에는 코끼리,사자,고릴라,침팬지,물소,영양,사마귀,멧돼지,얼룩말 등 야생동물이 많다. 최근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하여 마구 삼림을 채벌해 마운틴고릴라는 멸종 위기에 놓여 있으며 현재 르완다 북부에서만 서식한다. 북동쪽의 카게라 국립공원과 무투라 금렵지에서는 여러 종의 야생동물들을 보호하고 있다. 주요 광물자원은 주석과 텅스텐이며 코탄,콜롬보-탄탈석,녹주석,금도 매장되어 있다.


역사
18세기 르완다에는 예로부터 Twa족이 살고 있었으나 7∼10세기에 걸쳐 농경민인 후투족이 이주해 점차로 Twa족을 삼림쪽으로 몰아내고 르완다를 건설하였다. 그후 13∼16세기에 유목민인 이디오피아계의 투치족이 북쪽에서 들어와 봉건왕국을 형성하고 다수족인 후투족을 지배하였는데,16세기에 건설한 르완다 최초의 왕국이 그것이다. Mwami 왕은 추장회의를 통한 통치방식으로 독자적인 습관과 전통을 가진 3부족을 공통의 언어를 가진 단일민족으로 성장시켰으며 이 때 확립된 봉건제도는 1950년대말까지 계속되었다.1890년 독일령 동아프리카의 일부로 편입되고 1899년에는 부룬디(Burundi)와 병합돼 르완다 - 부룬디 독일 식민지가 되었다.

1890년대 독일세력이 미쳐 부룬디화 함께 독일령으로 1899부터 1916년까지 17년간 부른디와 함께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 식민지 지배는 계속되어 제1차 세계대전 후 국제연맹 위임통치령,제2차 세계대전 후는 국제연합 신탁통치령으로 콩고(지금의 자이레 포함)와 함께 벨기에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 벨기에의 간접 통치정책하에서 투시족의 전통적 왕국은 도리어 견고하게 이어지고 왕과 여러 추장의 권력은 그대로 계속되었다. 투시족은 식민지 하에서 권력을 누리고,카톨릭 교회가 경영하는 교육도 독점하였다. 후투족은 이에 반발하였으며 불만도 가중되었다.

1916년부터는 벨기에의 신탁 통치령이 되었는데 종주국인 벨기에는 이전부터의 사회제도를 존속시켜 왕정을 통한 간접적인 식민지 지배를 유지해 왔다. 투치족은 소수 부족이지만 지배자로 군림하며 정부관리와 학교 교사 등 사회의 엘리트 계층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1950년대 종반 무렵 이들 엘리트 계층의 투치족 중에 급진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나자 동서 냉전체제 아래에서 종주국 벨기에는 르완다의 공산화를 우려해 후투족의 해방을 지향하는 그룹을 지원하며 투치족에 대항시키려고 했다. 1957년에는 후투족의 비밀결사가 조직되고,59년 르완다 왕국의 왕 마타라 3세의 서거후 후투족의 폭동이 발생하였다. 1959년 11월 농민혁명으로 일컬어지는 후투족의 폭동으로 소수 지배계급이던 투치족을 축출하고 후투족의 투치족에 대한 보복이 시작되어 수만명의 투치족이 살해되었다. 1961년에는 유엔의 감시 아래에서 국 투표가 실시되어 왕정이 폐지되고 후투족 주도의 공화제가 성립되었다. 이듬해 후투족 출신의 Kayibanda를 초대 대통령으로 독립하였다. 일련의 과정에서 일부 투치족은 후투족을 습격하는 게릴라를 조직하였으나 이는 더욱 후투족의 보복을 도발하는 결과가 되어 수천명의 투치족이 희생되었으며 수만명의 투치족이 인근 부룬디와 우간다 등으로 도망가 난민이 되었다. 1963년과 1966년에는 부룬디에 도망갔던 왕정파 투치족의 침입이 있었으나 격퇴되었다. 63년의 침입 때는 이 반발한 후투족 폭도에 의해 투치족이 상당수 학살되어 투치족의 국외망명은 더욱 늘어났다. 73년에는 국방장관인 Habyarimana의 쿠데타가 발생하여 Kayibanda 대통령은 추방되고 Habyarimana가 2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이 때 추방된 Kayibanda파의 일부도 우간다 등으로 망명했다. 1990년 10월 1일 우간다에 망명해 있던 왕정파를 중심으로 하는 투치족의 르완다 애국전선(R.P.F)이 국경을 넘어 침입했는데,이틀후 르완다 정부의 요청으로 프랑스군,벨기에군,자이레군이 르완다에 파견되어 R.P.F를 격퇴시켰다. 이 때 르완다군과 자이레군은 르완다에 평화롭게 살고 있던 투치족,투치족과 친하게 지낸 후투족 수천명을 살해했다. 그러나 1993년 드디어 양측 평화협상이 탄자니아의 Arusha에서 개시돼 양측은 르완다 정부군과 애국전선(R.P.F)군의 통합에 합의하고 R.P.F는 평화리에 르완다에 상주하게 되었다. 그후 대통령 비행기 추락사건으로 수도 키갈리에서 일부 군인들이 우윌링이마나 총리와 10여명의 평화유지군 병사들을 사살하는 등 난동으로 두 종족 무장세력간의 전면내전으로 비화되었다. 내전은 6월 튀니지에서 열린 아프리카단결기구 정상회담을 계기로 휴전,이후에도 양측의 접전은 계속됐고 반군측은 7월 4일 키갈리를 점령하고 18일 일방적인 종전을 선언했다. 지도자인 파스퇴르 비지몽구를 대통령으로 하는 새 정부를 구성하고 4개월간의 내전은 군부를 장악하고 있던 투치족의 승리로 끝났다. 1994년 11월 의회가 발족,임기가 만료되는 5년후에 대통령과 의회선거를 실시키로 결정하였다. 1996년 10월 자이르 동부지역 수용소에 있던 후투족 난민과 과격파들이 자이르군과 함께 이곳에 거주하는 투치족들을 공격하자 이에 투치족이 정부군의 지원아래 난민수용소를 공격하고 100만 후투족 난민이 탈출을 개시하였다.

1980년대 후반 세계 시장에서 커피 가격이 하락하고 심각한 가뭄으로 흉작이 들면서 르완다의 경제는 급격히 나빠졌다. 1990년 10월 RPF가 우간다로부터 침입해왔다. RPF의 대부분은 1960년대와 1973년에 인종간의 폭력을 피해 빠져나갔던 투치족이었다. 1992년 정부와 RPF 간에 협상이 시작되었고,1993년 8월 탄자니아의 아루샤에서 평화조약이 체결되었다. 아루샤 조약은 1993년말까지 RPF의 구성원들을 포함한 범과도정부의 구성을 요구했다. 그러나 극단적인 후투족 지도자들은 권력분배를 거절했고,과도정부는 수립되지 않았다. 1994년 4월 6일 하비아리마나 대통령과 브룬디의 대통령인 키프리엔 은타리아미라가 요격에 의한 비행기 추락으로 키갈리 근처에서 살해되었다. 이는 권력분배에 반대해온 르완다의 대통령 경호대의 소행으로 추정되었다. 그 이튿날인 4월 7일 대통령직을 대행하던 수상을 비롯해 많은 온건파 후투족 정치가들이 살해되었고,그후 수개월간에 걸쳐 군대와 대통령 경호대,극단적인 후투족 민병대가 적어도 20∼50만 명의 민간인을 살해했는데,그 대부분이 투치족이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RPF가 군사행동을 재개하자 후투족과 투치족 가릴 것 없이 수만 명이 인접한 외국으로 도피했다. RPF가 전투중지를 발표하고 승리를 선언한 7월말까지 발생한 난민의 수는 2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었으며,이들 중 반 이상이 콩고 민주공화국에 있었다. 이들 난민 대다수는 1996년 말,1997년 초에 르완다로 돌아왔다.


전압 및 주파수
220V,50HZ

통화
르완다 프랑을 사용하며 약 450 르완다 프랑이 미화 1달러정도된다.


주의사항
외국인의 국내 행에 대해 특별히 규제하는 것은 없지만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여권이나 신분증명서를 항상 휴대한다. 르완다는 국가 전체의 치안은 문제가 없으나 좀도둑이 있기 때문에 주의하는 것이 좋다.
장기 체류자의 경우 모포와 이불시트,고무장화와 운동화는 현지에서 구할 수 있으나,웃옷,속옷류,신발류 등은 모두 여름용으로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르완다는 회교도인이 있기 때문에 음식물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시차 : -7시간



▶ 키갈리

르완다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루간와 강이 이곳을 지난다. 이슬람 교도 거주구역을 포함하여 도시의 여러 구역이 4개의 구릉 위에 자리하고 있다. 도로로 르완다의 국경지방과 연결되며,그 중 몇몇 도로는 포장되어 있다. 키갈리는 세계적으로 가장 가난한 국가중의 하나인 르완다의 수도이며,르완다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월드뱅크의 자료에 의하면 빈곤인구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1985:40%,1993:53%,1997:70%) 게다가 빈곤의 정도도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 지고 있다. 고아나 과부들은 더더욱 가난해지고 있다.

교육
교육제도는 초등학교 8년,중학교 6년,대학 3년∼6년이다. 학교는 국가나 종교단체가 운영하며 초등과정은 의무교육이다. 89년 현재 초등학생 60만명,중학생 4만명,대학생 8천명이며 수준은 전체적으로 낮은 편이다. 1963년에 설립된 르완다국립대학(Universite Nationale du Rwanda)이 있는데 Butare에 소재하며 법과대학은 키갈리에,문과대학은 루엥게리에 있다. 키갈리에는 공과대학도 있다.

산업
거의 대부분의 인구가 농업에 종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농업 인구들은 겨우 자급자족할 수 있는 정도의 식량을 생산해 낸다. 주요 농산물은 바나나,콩,카사바(Cassava),사탕수수,고구마 등이다. 일부에서는 소를 키우기도한다. 커피는 이 나라의 주요 수출품목이다. 차와 제충국(pyrethrum:살충제의 원료로 쓰이는 국화)도 주요 수출품이다. 주석과 텅스텐의 원석이 주요 광물자원이다. 이 나라의 수출의 25%를 이들이 차지한다. 약간의 공업 시설이 있다. 철도시설은 없고,주요도로는 포장이 되어 있지만,대부분의 도로는 비포장이다. 수도 키갈리에는 국제공항이 있다. 루안다(현재의 르완다)와 우룬디(현재의 부룬디) 지역은 오랫동안 서로 긴밀한 협조 하에 있었다. 르완다의 모든 수출품들은 부룬디를 통해 선적되어 탄자니아의 다레살렘이나 앙골라의 로비토 혹은 모잠비크의 베이라 등으로 수출되었다. 그러나 후투와 투치족의 내전이후에 두 나라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현재는 르완다의 수출품들은 우간다의 캄팔라를 경유 케냐 몸바사를 거쳐 선적되고 있다. 이 경로는 보다 비용이 많이 들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마찬가지로,르완다의 모든 수입품도 이 경로를 통해 들어온다.

자격있는 여행전문가 - 모두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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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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