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
우리나라에서 남아공으로 직접 들어가는 노선은 없지만 국제적인 많은 항공사들이 남아공에 취항하고 있다. 남아공 인접국가로 들어가서 남아공으로 입국하는 방법이 가장 간단하면서도 쉬울 것이다.
남아공의 주요 국제 공항인 요하네스버그 국제공항은 요하네스버그에서 30 킬로미터, 프레토리아에서 60 킬로미터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남아공 항공(SAA) 터미널까지 공항 버스가 매 30분마다 운행한다. 프레토리아 왕복 버스도 있다. 택시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케이프 타운과 더반에 있는 공항들도 국제 공항이다. 양 공항에서도 버스와 택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보통 공항을 떠날 때 R60의 출국세가 항공료에 포함되어 부과된다. 국적 항공사인 남아공 항공사외에도 Comair나 Sunair와 같은 소규모 항공사들도 매일 국내 주요 도시를 연결한다.
면적 : 22만 5,772㎢
수도 : 행정수도는 Pretoria 이며 입법수도는 Cape Town이다.
인구 : 약 4,517만명 (2002년 기준
정치형태 : 공화제
종교 : 카톨릭과 성공회를 비롯한 기독교가 대부분이며 소수가 이슬람과 유대교를 믿는다.
주요민족 : 남아공의 종족별 인구 구성비는 흑인(76.7%), 백인(10.9%), 아시아인(2.6%), 혼혈인(8.9%), 기타(0.9%)으로 되어있다.
주요언어 : 아프리칸스, 영어
기타 부족언어가 사용된다.
기후
아열대성 기후로 동부지역이 서부보다 온난다습(연평균 기온 17도)하다. 1년은 크게 여름(11월-3월)과 겨울(6월-9월)로 나눠지며,여름과 겨울 사이에 봄,가을이 짧게 지속된다. 여름은 우기로 비가 많이 내리며,겨울은 건기로서 강우량이 극히 소량에 불과하다.(연평균 강우량은 드라켄스버그지역 1,500mm로부터 칼라하리지역의 100mm까지 큰 폭의 차이를 보이며 분포되어 있다.) 지역에 따라 기후가 많이 다르나 수도권은 대체로 청량한 기후로 일조시간이 길며 여름은 20。∼30。C,겨울은 0。∼20。C이다. 남단 Cape Town은 지중해성 기후로서 연중 10。∼25。C 의 쾌적한 상태를 유지한다.
북동부 고지대(highveld)는 일년 내내 화창하다. 여름에는 덥고 천둥이 많이 친다. 겨울은 건조하고 춥다. 케이프 지역은 여름과 초가을,즉 1월-5월 사이가 관광 적기이다. 겨울은 습하고 쌀쌀하다. 콰줄루-나탈 지역의 여름은 덥고 천둥이 많이 치며 습기가 많다. 콰줄루-나탈에 위치한 더반과 더반 근처 해안은 6,7월이 관광 적기이다.
지리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남위 22도-35도,동경 17도-30도)에 위치하고 동쪽으로 인도양, 서쪽으로 대서양을 낀 동고서저 지형을 가진 천혜의 자원 부국이다. 고원지대로 된 좁은 해안대로 구성되어 있으며,고원 동쪽으로 Drakensberg 산맥이 솟아 있다. 주요 강으로는 Orange, Limpopo,Kei강이 있다.
역사
AC 1년 - 1900년 까지의 역사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의 땅 남아공화국이 백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488년 바돌로뮤 디아즈(Bartholomew Diaz) 휘하의 포르투갈 탐험대가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 인도양으로 나가는 항로를 발견하면서부터이다. 그 9년후에는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의 탐험대가 인도까지 항해를 하는 중에 희망봉 근처에 내려서 원주민들과의 교환을 통해 식량을 공급받았다. 이 지역에 백인들이 본격적으로 정착하게 된 것은 1652년 네덜란드 東印度會社(The Dutch East India Company)가 인도 항로의 중간 정박기지 건설을 목적으로 100여명의 남녀 대원들을 파견하면서부터이다. 이들은 모두 이 회사의 피고용인들이었으나 차츰 회사로부터 독립해 목축과 영농으로 경제력을 키워 나갔다. 이들은 지금의 케이프 타운(Cape Town) 근처에 백인사회를 건설했다. 백인들이 들어오기 전에 이 지역의 해안지대에는 주로 두 부족의 흑인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코이코이(Khoi Khoi) 또는 호텐토트(Hotentot)라 불린 부족은 주로 목축을 영위하고 있었으며,부쉬맨(Bushman)으로 불리는 산(san)族은 수렵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리고 북쪽의 내륙지방에는 반투(Bantu)語를 사용하는 줄루(Zulu)族,코사(Xhosa)族 등이 대규모 집단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초기에 백인들과 흑인들은 대체로 우호적인 관계에서 물물교환을 했으나 차츰 목축지를 놓고 대립하는 관계로 변해갔다. 특히 보어(Boer)人들로 불린 네덜란드계 백인들의 상당수가 목축에 종사하면서 내륙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흑인들과의 대결은 필연적으로 되었다. 결국 백인들은 여러 차례의 전쟁을 통해 대체로 19세기초까지는 흑인사회를 완전히 정복하게 되었다.
남아프리카의 백인사회는 네덜란드 본토에서 보내는 식민 이주자들과 종교적,경제적 목적으로 이주해 온 프랑스계,독일계 등의 이주민들로 꾸준히 확대되었으며,18세기말에는 영국계 선교사들도 들어와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부족한 노동력을 조달하기 위해 인근 서부 아프리카와 東印度 등지에서 노예들을 수입하는 한편 자신들이 정복한 흑인들을 노예로 삼았다. 한편 18세기말부터는 유럽 본토에서 발생한 프랑스혁명의 영향으로 남아프리카의 백인사회에도 커다란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혁명에 잇따른 나폴레옹 전쟁의 와중에 네덜란드의 왕정이 무너지자 영국은 1795년,1806년 두 차례에 걸쳐 남아프리카 식민지를 강제로 점령하였다. 이후 이 지역은 1814년의 비인회의 결과 케이프 식민지(The Cape Colony)로서 영국의 지배령이 되었다. 영국은 1806년 두번째로 케이프 식민지를 점령한 이래 이 지역의 영구지배를 목적으로 본격적인 식민지 정책을 실시하였다. 우선 인근에 일부 보어인들이 독립하여 만든 여러개의 군소 공화국들을 즉각 합병하는 한편 기존 정착민들에 대한 유화정책으로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무역과 노예거래에 대한 규제를 모두 해제하였다. 남아프리카의 역사를 특징짓는 인종차별정책의 전형적인 틀은 거의 영국지배초기인 이 시기에 마련되었다. 1809년 영국이 보어인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만든 "유색인종의 노동에 관한 칙령"(The Colored Labour Ordinance)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칙령은 모든 유색인종의 토지 소유를 금지하는 한편 주거지역을 제한한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것이었다.
1833년 영국의회가 자유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大英帝國 영토내의 모든 노예에 대한 해방을 선언하자 케이프 식민지의 백인들은 크게 반발하였다. 특히 이 지역 백인들의 다수를 이루는 보어인들은 노예 해방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과 자신들의 신앙에 따른 독특한 선민의식으로 영국인들의 지배에 큰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 결과 이들은 대규모로 케이프 식민지를 떠나 내륙지방으로 이동하였다. 1836년부터 시작된 보어인들의 집단 이동은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계속되었다. 이들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전진해 각각 줄루족,은데벨레족,코사족 등 흑인 원주민들과 치열한 싸움을 거친 끝에 자신들의 국가를 새로이 건설했다. 이들이 세운 국가들 중 나탈리아 공화국(1839),트랜스바알 공화국(1852),오렌지 자유공화국(1854) 등은 비교적 국가의 틀을 갖추며 성장했다. 이후의 역사는 다시 영국과 이들 신생 보어 공화국들과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영국은 1844년 나탈리아 공화국을 점령해 케이프 식민지와 별도로 나탈 식민지를 만들었으며,1867년 이후 트랜스바알과 오렌지국에서 대규모 다이아몬드광과 금광이 발견되자 다시 이들 국가의 병합을 도모하게 되었다. 1880년 영국과 트랜스바알간의 제1차 보어 전쟁에서 영국이 패배해 트랜스바알은 독립을 보장받았다. 그러나 1895년 케이프 총독 세실 로즈(Cecil Rhodes)의 트랜스바알 정부 전복계획이 실패로 끝난 후 1899년 제2차 보어전쟁이 일어났다. 트랜스바알은 오렌지국과 연합해 영국에 대항했으나,3년에 걸친 전쟁 끝에 결국 자치를 보장받는다는 조건으로 영국의 주권을 인정하였다. 이 전쟁의 결과 1910년에는 케이프,나탈,오렌지,트랜스바알 등 4지역이 합쳐져 大英帝國내의 특수 자치령인 남아프리카 聯邦(The Union of South Africa)으로 새로이 출범하게 되었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보어인들은 결국 영국의 지배하에 다시 들어 왔으나 수적인 우세를 바탕으로 이후 남아연방의 정권을 계속 장악하였다. 1911년의 첫 선거에서 보어계의 南아프리카黨(South African Party)이 승리한 이후 1948년 아파타이드(Apartheid)정책을 내건 국민당(National Party)이 승리하기까지 남아연방의 정권은 줄곧 보어계 정당들이 장악해 왔다. 이들 보어계 정당들의 지배하에서 남아연방의 인종차별은 더욱 심화되었다. 이전의 케이프 식민지에서는 1841년 영국정부의"주인 및 하인 칙령"(The Masters and Servants Ordinance)에 따라 과거 노예였던 사람들에게도 사회적으로 동등한 권리가 주어졌으나,보어인들은 이러한 정책을 되돌려 놓았다. 1913년 보타(Louis Botha) 수상의 남아프리카당 정부는 원주민 토지법(The Native Land Act)을 입법하여 흑인들이 소유할 수 있는 토지를 전국토의 10% 이하로 제한하였다. 흑인들의 소유가 허용된 이 지역들은 리저브(reserve)라 불렸으며,훗날 반투스탄(Bantustan) 정책이라는 흑인 격리정책에 이용되었다.
1948년 말란(D.F.Malan)이 이끈 국민당이 집권하면서 인종차별정책은 극도로 노골화되었다. 국민당은 "격리"라는 의미의 아파타이드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웠으며,이것은 흑인에 대한 단순한 차별을 넘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백인과 흑인을 완전히 격리시킨다는 목표를 지닌 것이었다. 이에 따라 국민당정부는 1949년 인종간의 결혼을 금지하였고,1950년에는 인구등록법(The population Registration Act)을 통해 전국민을 인종별로 분류하였다. 이어 같은 해 지역분류법(The Group Areas Act)을 제정하고 모든 도시의 인종별 주거지역을 정해 흑인 주거지역 이외의 장소에 사는 흑인들에 대해서는 재산 몰수 및 강제 이주 등의 조치를 취하였다. 국민당은 각종 수법을 동원해 야당의 도전을 물리치고 장기집권하면서 아파타이드정책의 강도를 높여 갔다. 1960년대부터는 반투스탄 또는 홈랜드(Home Land) 정책이라는 흑인분리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이것은 흑인들을 완전히 추방해 전국토의 10% 이내로 제한된 기존의 리저브지역에 몰아넣는다는 정책이었다. 흑인들을 고향으로 되돌려 보낸다는 뜻을 지닌 이 정책에 따라 흑인들은 변방의 불모지역에 밀집되었으며,전국적으로 여러 개의 반투스탄이형성되었다. 국민당정부는 이 가운데 트란스케이(1976), 보푸타츠와나(1977), 벤다(1979), 시스케이(1981) 등 4개 지역에 대해 독립을 허용하고,이들 지역의 흑인들에 대해서는 자국의 시민권을 발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 지역의 독립은 국제사회에서 전혀 인정되지 않았다. 한편 국민당정부는 19...
유용한전화번호
▣ 주 남아공 대사관
주소 : Greenpark Estates #3,27 George Storrar Drive,Groenkloof,Pretoria 0181 R.S.A
P.O.Box 939 Groenkloof 0027,Pretoria,South Africa(우편사정이 열악하니 P.O.Box를 이용할 것)
전화 : + 27 (0)12 460 2508 팩스 : + 27 (0)12 460 1158
• 경찰긴급 : 10111
• 구 급 차 : 10177
• 무 역 관 : 011-784-2940/1
• 한 인 회 : 011-454-3197
• 상사협의회 : 011-784-1326
전압 및 주파수
220/240 볼트 50사이클 전압을 사용한다.
치안
최근 치안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특히 요하네스버그 지역은 대낮에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노상강도 사례가 많은 바, 신변안전에 특히 유의,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대낮에 강도를 당해도 지나가는 행인의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우며, 경찰력도 부족한 상황이므로 신변안전을 위한 각자의 대책이 각별히 요망된다.
통화
화폐단위는 랜드(Rand)로 R로 표시한다. 미화 1달러는 7.3R
한국으로 전화
09-82(국가번호)-지역번호-전화번호
International Collect Call(수신자부담 국제전화)-0800-9900-(국가번호)
주의사항
• 악수하는 것은 좋지만 왼손 사용은 절대 엄금, 사진을 찍을 때는 반드시 미리 허락을 받는다.
• 아프리카하면 무조건 찌는 더위를 떠올리지만 꼭 긴팔 점퍼나 스웨터를 준비하여야 한다. 강렬한 태양에 대비한 썬블럭크림, 썬글라스, 모자도 필수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 외딴 곳에서 밤늦게 혼자 다니지 말고 호텔에도 귀중품을 두지 않도록 한다. 현금을 많이 가지고 다니지 않도록 하고 주요 증명서는 사본을 만들어 따로 보관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 남아공에서는 국립공원 등을 방문하여 사파리를 할 경우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지말고 원숭이(baboon)로부터 소지품을 뺏기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할 것이며, 하루 일교차가 20도(섭씨)나 되는 날이 많으니 노약자들의 여행시 주의를 요한다.
아열대성 기후로 동부지역이 서부보다 온난다습(연평균 기온 17도)하다. 1년은 크게 여름(11월-3월)과 겨울(6월-9월)로 나눠지며,여름과 겨울 사이에 봄,가을이 짧게 지속된다. 여름은 우기로 비가 많이 내리며,겨울은 건기로서 강우량이 극히 소량에 불과하다.(연평균 강우량은 드라켄스버그지역 1,500mm로부터 칼라하리지역의 100mm까지 큰 폭의 차이를 보이며 분포되어 있다.) 지역에 따라 기후가 많이 다르나 수도권은 대체로 청량한 기후로 일조시간이 길며 여름은 20。∼30。C,겨울은 0。∼20。C이다. 남단 Cape Town은 지중해성 기후로서 연중 10。∼25。C 의 쾌적한 상태를 유지한다.
북동부 고지대(highveld)는 일년 내내 화창하다. 여름에는 덥고 천둥이 많이 친다. 겨울은 건조하고 춥다. 케이프 지역은 여름과 초가을,즉 1월-5월 사이가 관광 적기이다. 겨울은 습하고 쌀쌀하다. 콰줄루-나탈 지역의 여름은 덥고 천둥이 많이 치며 습기가 많다. 콰줄루-나탈에 위치한 더반과 더반 근처 해안은 6,7월이 관광 적기이다.
시차 : -7시간
▶ 요하네스버그 [Johannesburg]
'Jo'burg','Jozi' 또는 황금의 도시라고 불리우는 이 도시는 남아공화국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현재 상당히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경제와 공업의 중심지이며,금광업의 중심지이다. 금의 발견은 요하네스버그 생성의 촉매제 구실을 하였으며 시의 발전은 항상 금과 관련 지어졌다. 시 중심에 본을 따 만든 광산 모형은 요하네스버그의 기원을 상기 시킨다. 한마디로 이곳은 사회의 급속한 변화로 신흥부자들이 많고,기백과 활기가 넘치는 현대화된 도시이다. 다시말해,요하네스버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최대 도시이며,동시에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도시에 속한다. 도심 한복판은 다이아몬드로 잘 알려진 드비어 본사 건물들을 비롯해 최상급의 호텔과 15개의 극장 약 2,000여개의 레스토랑 등이 자리하고 있다.
요하네스버그는 시원하게 뚫린 거리,고층 빌딩이 즐비한 시가지,넓은 정원과 수영장을 갖춘 교외의 고급주택,유럽,미국 ,일본제 시속 2백km로 질주하는 고속 도로망,그리고 풍요롭고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는 백인들로 가득차 있어서,마치 유럽이나 미국의 어느 곳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인구 약 600만명의 남아 공화국의 최대의 도시인 이곳은 1860년 버려진 농장에서 금광석을 발견하면서 본격적인 도시가 생성되기 시작하였으며,트란스빌 공화국 대통령이었던'요하네스버그 폴 크루거'의 이름을 따서 요하네스라 명명하였다. 그리고 세소투어로"금이 나는 곳"이란 뜻을 갖고 있는 가우텡은 과거 PWV 삼각지로 알려졌던 지역을 포함하고 있는 종합적인 산업 단지이다. 따라서 남아공화국 GDP의 37%를 차지하고 있는 가우텡은 남아공의 상업,금융,산업의 중심지이다. 남아공 노동인력의 70%가 가우텡에 몰려 있고 남아공 연구 개발의 약 60%가 가우텡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 도시는 1886년 금광이 발견된 후 70여년 동안에 조그만 금광 마을에서 오늘날의 현대적 도시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도시 변두리에는 폐광이 있고 시내에는 고층 빌딩이 즐비하다. 이곳은 해발 1800m 고원 지대이기 때문에 특히 강수량이 적고 남아공화국에서 가장 작은 주이면서 인주가 가장 조밀한 주에 자리하고 있다. 주도인 이곳 요하네스버그는 해발 6천 피트에 자리잡고 있으며,외국인 방문객이 이곳을 통해 남아공화국에 입국하고 있다. 요하네스버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상업 중심지로 금광회사의 본사가 대부분 이곳에 있다. 도시 남부와 남서부에 금광이 있으며,많은 중공업체를 비롯해 국내외 은행,회사,요하네스버그 증권거래소 등의 본점이 들어서 있다. 이곳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인구가 가장 조밀한 지역인데 정부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인종차별정책)에 따라 유색 인종은 서부와 남서부의 특정 지역에만 거주하고 있다. 소웨토 외에도 컬러드인(흑인과 백인의 혼혈) 거주 구역인 코로네이션빌,웨스트베리와 아시아인(일본인·중국인·인도인) 거주 구역인 레나시아 등이 요하네스버그 도시권에 포함되어 있다.
남아프리카의 경제 중심지며,케이프 타운과 함께 남아프리카의 가장 화려한 도시 가운데 하나인 요하네스버그는 대규모의 국제공항과 화려한 호텔과 쇼핑몰,빌딩들,잘 가꾸어진 주택 단지가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특히 남아공화국은 북쪽으로부터 각기 다른 부족의 흑인들이 이주하여 부시맨 대신 들어 앉았고,다시 이 흑인들은 유럽과 인도의 이주민에게 자리를 내놓게 된다. 요하네스버그는 상이한 문화적 요소를 한눈에 느낄 수 있는 세계의 만화경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의 중심지로 가면 길거리에 사람들은 온통 흑인들이 장악하고 있다. 정권이 백인에서 흑인으로 교체된 뒤부터 흑인들이 이 도시에서 대부분 거리에서 판자를 깔고 야채나 음식을 파는 장사를 생업으로 많이 하고 있는데,도시 안에 현대식 빌딩 숲이 온거리에 난잡하게 장사를 하고 있는 흑인들과 많은 대조를 이루는 곳이다. 이 도시안에 살고 있었던 백인들은 이런 부조화를 극복해 내지 못하고 도시를 빠져나와 시외에서 살면서 출,퇴근을 하며 생활하기도 한다. 정권이 교체된 뒤부터 온 국민들은 심한 범죄,도난,강간 등에 시달리면서 몸서리를 치고 있는데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마다 이 문제들 때문에 고민과 불만에 쌓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남아공화국의 매력은 자연에 쌓여 있는데 요하네스버그의 빌딩숲을 빠져 나와 시외로 조금만 가면 작은 소도시에 많은 주택가들이 있다. 이 주택가들은 나무들이 주택속에 있는지 주택들이 나무속에 있는 건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녹색 숲들이 많이 있다. 남아공의 지대는 해발 1500m에 위치해 있어 평지가 아니라 당연히 계곡이 많다. 그래서 이 나라 고속도로나 길은 위 아래로 올라갔다 내려오고,좌우로 많이 도는 편이다.
교육
요하네스버그에 소재한 인기있는 4년제 대학교인'위트워러스랜드(Witwatersrand)대학은 세계적으로 최고의 교육을 제공하는 교육 기관으로서,약 77년간 아카데미의 연구 활동을 추구해 왔다. 이곳은 아프리카 대륙의 교육의 본거지로서 이끌어 나가는 역할을 해왔고,도시인 요하네스버그에 자리하고 있다. 이 대학은 국가의 재정의 도움으로 교육비 및 수업료 자체는 싼 편이다.
Witwatersrand(Wits)대학은 1922년에 학교의 기틀을 마련하였고,이 학교의 전신은 1896년에 세워진 남아프리카 광부 학교(South African School of Mines)였다. 그 후 1923년에는 요하네스버그 시의 중심에다 대학 건물을 신축하였으며,그 당시에는 37개의 분야에 총 73명에 달하는 대학 인원과 1000명도 채 못되는 학생들이 모집되었었다. 그러나 상황은 급변하여 점차 학생들 수는 증가하였고 현재 예술 및 환경 건축,건강 과학,법률,경영,과학 등의 6개 학과가 있다.
산업
현재 요하네스버그가 소재한 가우텡주(Gauteng) 경제 활동은 남아공 국내 총생산(GDP)의 40%를 차지한다. 경제력 집중의 문제는 개발이 미약한 지역으로 경제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억제책과 장려책을 이용한 몇 차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어 왔다. 그 결과 경제 개발이 일부 지역에 집중되어 왔다. 남아공화국은 현대적이고 다변화된 경제 구조를 갖추고 있어서 농업,광업,2차 산업,교역 및 광범위한 서비스 사업이 국가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2차 산업이 GDP의 약 32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으며,정책 입안가들은 건전한 2차 산업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남아공은 식료품,섬유류,신발류,의류,금속,화학 제품,제지류 등의 다양한 소비재를 생산하고 있으며,기계류,운송,전기 장비 등의 자본재 생산량도 세계2차대전 이후 상당히 증가하였다. 1995년 7월 26일,내각은 남아공 경제 발전계획을 설립하기 위해 특별 위원회를 임명하였다. 이 특별 위원회는 산업 발전,산회 간접시설,재화 및 서비스의 제공,인적자원 등에 관심을 집중하게 될 것이다.
남아공화국의 Rugged Plant社는 한국의 한라 중공업으로부터 140만 랜드를 들여 21톤급 굴착 장비 3대를 구입하였다. 지난 해 남아공이 한라 중공업으로부터 구입 한 중장비는 총 11대였다. 남아공은 한국산 중장비의 성능에 크게 만족하고 있어 한라 중공업의 중장비가 남아공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남아공 관세 당국은 최근에 발표한 1997년 통계를 통해 영국,미국,일본,독일이 남아공 10대 수출국의 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영국은 남아공 최대의 수출국으로 작년 한해 영국에 대한 수출액이 171억 3천 1백만 랜드에 달해 남아공 총수출량의 14.78%를 차지했다. 對美 수출은 111억 9천만 랜드로 9.66%였고,對日 수출은 96억 9천 2백만 랜드로 8.36%,對독일 수출은 69억 5천 8백만 랜드로 5.69%를 기록했다. 한편 아프리카 대륙 국가로는 유일하게 짐바브웨가 10대 수출국에 끼어 58억 2천 5백만 랜드로 5.03%를 차지하였다. 그 외 10대 수출국은 네덜란드,대만,한국,벨기에 등으로 각각에 대한 수출액은 41억 6천 2백만 랜드(3.59%),36억 9천만 랜드(3.18%),35억 2천 2백만 랜드(3.04%),34억 5천 7백만 랜드(2.98%)로 집계 되었다. 위의 10대 수출국에 대한 총수출량은 1997년 전체 수출 총액의 59.62%를 차지하여 690억 8천 3백만 랜드에 달했다.
지난 4월 19일 남아공 최초의 흑인소유 보험회사가 출범하였다. 퍼스트센트럴인 슈어런스社라는 이름의 이 보험회사는 지분의 70%이상이 흑인 소유이다. 이 보험사는 항공 분야를 제외한 모든 단기보험 라이센스를 취득하였다. 자본 규모는 7천 5백만 랜드 정도이다.
해발 1800m 고원지대이기 때문에 특히 강수량이 적다. 이 지역의 기후는 비가 적고 증발이 심한 아열대성 건조기후이며,평균기온은 7월에 10℃, 12월에 20℃ 정도이고,연강우량은 760㎜이다. 고지대에 위치하여, 년 평균 일일 9시간의 햇빛을 즐길 수 있는 일조량이 많은 좋은 날씨를 보인다. 흑인들이 사는 아프리카 기후는 후덥지근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지만 남아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나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의 기후는 평균 20°C 안팍의 신선한 날씨이다. 대낮의 더위만 생각하고 얇은 옷만 걸치면 밤에 감기들기가 십상이지만 1천 8백미터 정도의 고원지대에 있어 한여름의 피서지로 안성맞춤일 만큼 날씨가 좋다. 따라서 주로 아침,저녁때를 이용하는 사파리 투어에는 담요가 필수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
선시티 I 크루거 국립공원
▶ 케이프타운 [Cape Town]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의회가 있어 프리토리아와 함께 행정수도 역할을 하고 있다. 아프리카임에도 불구하고 남아공이 백인 비율이 높은 것 처럼 이곳 케이프타운 주민의 35% 이상이 백인이며 1652년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가 설립되면서 백인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후에 영국의 식민지 지재 활동의 전초기지가 되었으며 덕분에 도시의 경관은 여느 유럽도시 못지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남반구에 있어 기후는 우리나라와 반대로 진행이 되지만 지중해성 기후로 겨울인 5-8월엔 비가 많이 내린다. 한 여름인 1월에도 20도 안팎의 기온을 기록하며 연교차가 그리 큰 편은 아니다.
▶ 프레토리아 [Pretoria]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특이하게도 다른 나라들과 달리 입법,사법,행정상의 수도가 나뉘어져 있다. 즉 경제적인 수도는 요하네스버그이고,행정상의 수도는 이곳인 프리토리아, 그리고 입법상의 수도는 케이프 타운이다. 따라서, 남아프리카 공화국 동부에 있는 행정수도이며 트란스발 주의 주도인 프리토리아는 남아프리카 북부에 표고 1400m 의 고원에 위치한 도시이다. 1855년 이민 지도자인 프리토리아스에 의해 창설되어,이 나라의 수도가 되었으며,1900년 영국에 의해 점령되어,1910년 남아연방 발족과 동시에 수도가 되었다.
온화한 기후 영향으로 쟈카란다를 시작으로하는 가로수가 자랑인 아름답게 자리잡은 남아 공화국 최대의 교육 도시이고,거리는 바둑판 모양으로 정연히 구획되어 있어 단정된 이미지를 준다. 아프리카 남부의 백인문화 중심지 역할을 하며,이 도시의 중심은 처치 스퀘어로서,주요 볼만한 것으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역사를 보여주는 역사 박물관과 아프리나의 대이동을 기념하는 홧 토레카 기념비,그리이스풍의 웅장한 관청사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니온 빌딩,푸레미아 다이아 몬드 광산 등을 들 수 있다.
이 도시는 남아공화국 역사의 숨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교회당이 있고,구릉지대로 둘러쌓여 있어 정원과 관목숲으로 유명하다. 그 외에도,국립 동물 정원도 볼 만하다. 무엇보다도,프리토리아의 자카란다 거리는 마치 우리나라의 진해 벚꽃 축제만큼이나 유명한 명소이기도 하다. 이 도시는 자카란다 나무가 늘어선 거리들로 유명하며 20㎞의 처치 거리가 동서로 뻗어 있어 아름다움을 더해 준다. 따라서 프리토리아의 가로수로 유명한 이 자카란다 나무는 원산지가 브라질로 19세기 말엽에 수입한 것이라고 한다. 프리토리아 시는 이 나무 때문에'자카란다 시'로도 불린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고층건물 붐으로 처치 광장 둘레에 초고층 건물들이 들어섰으며,보어인 역사를 기리는 기념물들이 많은데 보어인 개척자 기념비,파울 크뤼헤르 동상,루이 보타 동상 등이 특히 유명하다. 파울 크뤼헤르 하우스와 국립 옥외 문화 역사박물관을 포함하여 6개의 박물관이 있다. 대규모 공원들이 시 곳곳에 있는데 특히 유니언 빌딩의 계단식 공원,베닝 공원의 침상원(沈床園),5개의 시영(市營) 자연보호구역 등이 알아 준다. 또한,성공회 대성당과 로마 가톨릭 대성당,프리토리아 대학과 남아프리카 대학 및 여러 연구소 등이 자리하고 있다.
교육
주요 명문 대학으로는 프리토리아 대학교와 남아프리카 대학교를 들 수 있다.
'프리토리아 대학교(University of Pretoria)' 는 1908년에 설립되어 1930년에 종합 대학교로 승격되었고,트란스발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이자 심지어 남아 공화국의 자랑이라고 까지 말할 수 있다.
'남아프리카 대학교(University of South Africa)' 는 남아프리카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대학교로서 1873년 시험적으로 설립된 '유니사(Unisa)'가 1946년 대학과정의 통신 교육기관으로 진보된 대표적인 통신 대학이다. 이 외에도,프리토리아에는 각종 공과대학과 교육대학 등이 있으며,시의 변두리에는 온더스테푸르트 가축연구소,전국 최대 규모의 연구기관인 산업과학연구위원회 등이 있다.
Golf 천국이라는 South Africa에는 Golf 전문 학교가 없었는데 최근에 Pretoria에 College가 신설되었다. 이 도시에서는 많은 젊은이들을 교육하고 있어 골프 및 골프유학도 가능하다. 프로가 되고자하는 선수들을 위해 PGA프로 Coach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가르치며, 실전 라운딩까지도 훈련시켜 준다. 방학을 이용한 특별 강좌도 열리는데,7월부터 8월중 약 1개월간 특별 지도가 가능하다. 자격은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으며,초보자도 환영이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금요일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이론 및 실기 교육을 실시한다.
산업
아프리카에서 가장 부유하고 공업화된 나라이자 세계 최대의 비석유자원 수출국인 이 나라는 특히 금,백금,크롬,다이아몬드,석탄 등이 주요 자원이다. 물의 부족과 불규칙한 강우량이 성장에 걸림돌이 되는데, 세계 경기 침체, 가뭄 구리고 인종정책에 대한 전세계적인 저항이 성장을 저해하였고 실업율을 증가시켰다고 한다. 외국기업의 투자는 1976년에 발생한 소웨토 폭동으로 선진국들 사이에 반(反)투자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감소되었고,수많은 외국기업의 소유권이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민에게로 넘어갔다. 주요 수입국은 독일, 미국, 영국, 일본 등이며 주로 기계류, 운송장비, 화학제품, 식료품 등을 수입한다. 주요 수출국은 스위스와 영국, 미국, 독일, 일본 등인데 최대 수출 품목은 금이며 그 밖에 금속류와 금속제품, 다이아몬드 등을 수출한다.
특히 이 도시는 철강,기계,식품가공,섬유,제유(製油) 등의 공업이 발달하였고, 금, 우라늄, 다이아몬드, 은,구리, 망간, 크롬, 철, 석탄 등을 산출하한다. 주요 농산물은 옥수수, 밀, 감자, 오렌지, 사탕수수이며 소, 양, 앙고라염소의 축산도 성하나 90% 이상을 백인이 소유하고,흑 인은 소규모 생산으로 10% 미만을 점유한다.
제조업도 일부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에 종사하는 인구는 전 노동인구의 1/6이하이다. 주산품은 특히 철제와 강철제인 금속제품이고 화학제품, 식음료, 전기 기구와 자동차 및 섬유류, 인쇄, 출판물 등이다.
기후는 전반적으로 반건조한 기후로서 동해안은 아열대성 기후이다. 주간에는 햇빛이 많아 화창하며,야간에는 선선한 편이다. 대체로, 아프리카 하면 무조건 찌는 더위를 떠올리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반드시 긴팔 점퍼나 스웨터를 준비하여야 한다. 이곳은 우리나라의 기후와 정반대인데,9월과 10월에 해당하는 봄에 이곳을 방문하게 되면,거리는 온통 자카란다 나무의 하얗고 자줏빛이 감도는 꽃의 향연에 매료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벗꽃과 비교할 정도로 무척 아름다우므로 이 때쯤 여행하는 것이 적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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