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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02 동남아 아프카니스탄 [AFGHANISTAN]

아프간의 땅,아프간은 파쉬툰 종족의 이름이다. 아프가니스탄은 북위 29도와 38도 사이에 위치하며 서남아시아에 속한 나라로서 서쪽의 이란 동쪽의 파키스탄 그리고 위쪽에 중앙아시아의 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중국 등의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면적은 683,760 평방Km이며,인구는 약 2000만 정도이다. 종교는 회교(다수파 수니),국가의 공용어는 아프간의 페르시아어인 다리어와 다수종족의 언어인 파쉬투어이며,수도는 카불(Kabul)로 1828m의 고지에 자리잡은 인구 약 200만의 도시이다. 국토는 한국의 2.9배로 전 국토의 75% 가 고산 지대,인구의 9% 가농,목축업에 종사하고 있다.

수도 카불은 한때 아름다운 도시였으나 지금은 폭격으로 황폐화되고 지뢰가 집 근처에 묻혀 있는 것으로 유명한 도시가 되었다. 수도 카불외에 각 도마다 도청소재지가 있는데 그 중 동서남북의 4개 도시가 유명하다. 남쪽의 칸다하르(Qandahar)는 현대 아프간의 첫 번째 수도였으며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탈리반의 본부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며 파쉬툰족의 중심부와 같은 곳이다. 북쪽의 마자리 샤리프 (Mazar-i-Sharif) 이슬람의 성도(聖都)로 선지자 모하메드의 사위인 알리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이곳은 우즈벡 민족이 살고 있으며 98년 8월 탈리반이 점령하기 전에는 현 반탈리반 연합세력 가운데 하나의 주축세력인 도스텀(우즈벡족)장군의 지역으로 알려져 있었다.

1997년 5월에는 탈리반 4000명이 집단 살해되어 한 웅덩이 속에 공동 매장되었던 것으로 그리고 최근 탈리반 점령시는 탈리반에 의해 하자라족 8000명이 학살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도시이다. 서쪽의 헤라트(Herat)는 이란과 가까운 도시로 카페트로 유명하다. 95년 9월 큰 도시로는 처음으로 탈리반에 점령당하여 탈리반의 정책이 외부세계로 알려지기 시작한 도시이다. 동쪽의 잘랄라바드(Jalalabad)는 96년 9월 탈리반에 의해 점령당하기 전까지는 정치적으로 비교적 중립을 지키는 세력이 차지하고 있고 파키스탄과 가까운 지리적 요소 때문에 많은 외국 NGO들이 사무실을 두고 있던 곳이다. 공용어인 다리어와 파쉬투어가 함께 쓰이던 곳이나 현재 파쉬투어로 Language shifting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예로부터 아프카니스탄은 유라시아 대륙의 동서를 연결하는 요충지였으며 기원전부터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알렉산더 대왕의 원정으로 전파된 그리이스 문화,인도로 부터 전래된 불교 등에 의해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 1세기에 쿠샨왕조가 건국되어 불교 문화를 형성하였고 그 후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3세기 이후 이르칸국,티무르제국,무갈제국의 지배하에 있다가 18세기 초에 독립했다. 19세기에 영국 의 보호국이 되었고 1921년 재 독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면적 : 64만 7,500㎢


수도 : 카불


인구 : 2681만 3000명

정치형태 : 공화제

종교 : 99%가 보다 자유로운 하나피 수니(Hanafi Sunni)이슬람교도이다. 전통적인 이슬람교의 휴일과 축제들이 있다. 많은 지엽적인 전 이슬람교적 관습과 믿음들이 그들의 이슬람교에 널리 퍼져 있다. 그들에겐 많은 성자들의 사당이 있다. 물라(Mullahs)라 불리는 이슬람교 선생들은 종교적 지도자로서 여러 전통적 예식들과 축제들을 집례한다. 이들 물라들은 정치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행 사한다. 어떤 유목민들은 그들 자신의 물라들을 갖기도 한다. 대부분의 아프칸 사람들처럼 그들은 외세의 도전을 받을 때까지는 그들의 종교적 신념에 무관심하다.

그러나 AP통신은 최근 ‘아시아내의 이슬람’이라는 제목으로 특집을 내고,우즈베키스탄에서 필리핀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에는 이슬람이 광범하게 분포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보도했다.아시아에서 이슬람이 이토록 확산된 것은 각국의 문화에 타협하는 현지 토착화 전략으로 수세기동안 생존을 모색했기 때문이라고 AP는 분석했다.실제로 이슬람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아시아 각국별로 다르다.엄격한 종교주의자,세속적인 신자,독재자,반군,민주주의자 등 실로 다양하다.최근 간음죄를 범한 여인을 숨질 때까지 돌로 쳐죽이도록 한 아프가니스탄은 대표적인 엄격한 종교주의 국가다.아프가니스탄은 코란에 위배된다며 최근 공중 목욕탕 폐쇄조치를 내릴만큼 체제가 경직됐다. 그런 반면 아시아에서 이슬람교도 수가 가장 많은 인도네시아의 경우 나이트클럽의 출입은 물론,공공장소에서의 음주가무가 허용된다.이슬람반군이 6개월 넘게 서방인을 상대로 인질극을 벌였던 필리핀에서는 이슬람은 반군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이슬람 자치사회 건설을 위해 30년 넘게 대정부 투쟁을 벌이고 있는 이들은 16세기에는 스페인 정복자에 싸웠던 반골들이다.아시아의 이슬람은 이처럼 다양한 형태를 띠고 확산돼 있지만 그동안 세계는 물론,아시아 각국으로부터도 별달리 주목을 받지 못해왔다.발원지인 중동 지역이 아랍 이스라엘 분쟁,이란 이슬람혁명 등 세계의 화약고로 떠오르면서 아시아의 이슬람은 주목받을 틈이 없었다.사실 세계 이슬람 교도의 절반 이상이 파키스탄 카라치 동쪽인 아시아에 모여 있다.세계에서 이슬람 교도 수가 많은 나라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인도 등으로 죄다 아시아 국가다.이슬람 문제에 정통한 조지 조페 영국 런던대 교수는 “아시아에서 이슬람이 별다른 마찰없이 이처럼 급속히 확산된 것은 정복자가 아니라 문명 전달자로서 파고 든데다 힌두 불교 등 기존 토착신앙과도 잘 융합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하고 있다.실제로 최근 인도네시아 중앙정부로부터 분리투쟁을 하고 있는 아체주의 경우 이슬람 특유의 복장이나 이슬람법이 없지만 주민들은 하루 세 차례 빠짐없이 기도하고 있으며 다른 신앙을 지닌 이들과도 큰 마찰없이 지내왔다.외신들도 아시아에서 이슬람이 강세를 보이는 이유가 바로 현지화라고 지목하고 있다.일단 현지화 전략으로 적응한뒤 어느 정도 뿌리 내리면 바로 그들만의 이슬람 사회 건설을 꿈꾸거나 사회를 이슬람 분위기로 변화시키려 한다는 것이다.그 대표적인 국가가 바로 인도네시아다.압둘라흐만 와히드 대통령은 지난해 인도네시아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적 절차에 따라 대통령에 선출됐다. 기실 와히드는 이슬람 성직자이자 3000만 이슬람 당원을 대표하는 정치인이기도 하다.지난해 인도네시아 이슬람교도들은 서방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소화해내는 선진국민으로 칭송받았다.중동의 이슬람이 과격하다는 선입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과 너무도 다르다.아시아의 이슬람 확산은 아시아선교의 사명감을 가진 한국교회에 도전이 아닐 수 없다.(국민일보)


주요민족 : 1993년 인구를 약 2170만으로 추정하는데 그것은 300만의 유목민과 600만의 난민을 포함한다. 파쉬툰-Pashtun or Pakhtun (50%): 아프간의 가장 강력한 종족으로 인도와 파키스탄에서는 파탄족으로 알려져 있다. 파쉬툰 전설에 의하면 그들은 카이스(Qais)라는 사람의 후손인데 이 카이스는 사울왕의 후손이라고 한다. 사울왕이 그의 아들 40명을 데리고 고르(Ghor)로 왔는데 이 고르가 지금의 아프간 가운데인 하자라잣이며 카이스는 아프간에 모슬렘을 전파하도록 모하메드로부터 선택받은 자라고 한다. 이들은 아리안 민족의 일파로 키가 크고 이목구비가 또렷한 것이 특징이다. 이들의 언어인 파쉬투어는 다리어와 함께 아프간의 공용어이며 탈리반이 정권을 잡는 한 점점더 이 언어의 영향은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타직-Tajik (25%): 이란계 민족으로 북쪽의 타직은 몽골인종의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들은 아프간 도시의 중류층을 이루고 있으며 이들이 사용하는 다리어(아프간 페르시아어)가 공용어이며 종족간에 사용하는 Lingua Franca이다. 하자라-Hazara (9%): 징기스칸의 후손으로 알려진 이들은 몽골인종으로 아프간 중앙의 하자라잣 산 을 중심으로 살고 있으며 유목민이다. 이들이 사는 버미얀에는 세계최대의 석불이 있다. 이들은 시아 파 모슬렘으로 파쉬툰족과는 오랜 세월 원수지간으로 지내오고 있다. 탈리반이 국토를 점령하면서 가 장 고통을 받고 있는 종족이다. 북쪽 마자르에서는 8000명이 집단 학살당하기도 했고 현재 파키스탄 으로 나가려던 하자라 난민이 잘잘라바드에서 붙잡혀 감금되어 있다. 우즈벡-Uzbek (9%): 우즈베키스탄과 국경을 대고 있는 북쪽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종족이다. 투르크 계열의 종족으로 막강한 군벌인 도스텀 장군이 이 우즈벡인으로 최근까지 반탈리반의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나 그들의 중심도시인 마자르가 탈리반에게 함락되고 나서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전까지는 우즈벡과의 국경이 열려있어 왕래가 가능했으나 현재는 우즈벡을 통한 길이 폐쇄되어 있다. 누리스타니-Nuristani: 1896년 압둘 라흐만왕이 점령하기 전까지 비모슬렘으로 남아있던 북동쪽 산 지에 사는 종족이다. 물론 이 누리스탄안에도 많은 소수종족으로 나누어진다. 이들은 이방인을 표시하 는 Kafir 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들의 언어는 Dardic계열에 속하는 언어이기 때문에 Ethnologue에는 파샤이에 함께 속하여 설명되었다. 이외에도 파샤이 아이막등 여러 소수종족이 있으며,언어로는 약 49개(Ethnologue,1996)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프가니스탄 인구는 전쟁과 난민들의 대대적인 탈출로 1980년부터 1985년에 걸쳐 연간 약 2%씩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198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인구성장률이 중앙 아시아 국가들의 평균수준으로 돌아왔다. 1994년까지 총인구는 16,903,400명이며 출생률과 사망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하는데 인구의 45%가 15세 이하의 연령층에 집중되어 있어 비교적 인구 층이 젊기 때문에 출생률은 높고 사망률이 떨어지고 있다. 인구의 4/5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며 나머지는 유목민이 차지하고 있다. 도시 거주지는 대부분 카불에서 남서쪽으로 칸다하르,북서쪽으로 헤라트,동쪽으로 마잘에샤리프를 거쳐 다시 남쪽 카불로 돌아올 수 있도록 건설된 주요 순환도로를 따라 자리잡고 있다. 농촌인구는 주로 강변에 집중되어 있다.


주요언어 : 다리어(Dari)는 아프간의 페르시아어로서 법정언어로 쓰여왔다. 종족간의 대화에 쓰일 정도로 넓게 퍼져있는 언어이며 수도 카불에서 사용되어 왔던 언어이다. 1936년 파쉬투어가 아프간의 국가어 로 선포되었으나 다리어가 문학과 무역어로 너무나 중요하게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결국 그 일은 실패로 돌아갔다. 현재 이 언어로 신구약 성경이 이란어 성경으로부터 개역되었다.

파쉬투어(Pashtu)는 파쉬툰족의 언어로 각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게 사용되고 있다. 특히 파키스탄의 파 쉬투와 아프간의 파쉬투는 점점 그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 이 언어는 1964년 다리어와 함께 공용어로 선포되었다. 신약만 번역되어 있고 현재 구약성경번역을 위한 위원회가 구성되어 있다.


기후
아프가니스탄은 몬순 아시아보다 이란이나 중부아시아의 기후와 흡사하다. 이 기후의 특징은 건조한 여름과 극히 작은 강우량에 기온차가 큰 편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인도와 매우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인도와는 달리 폭우가 내리지 않는다. 연중 강수량은 서부와 북부 저지대,사막지역인 경우 100∼150mm 정도이며,동부지역은 250∼400mm 정도가 내린다. 수도인 동부지역 전형인 카불에는 연평균 330mm 정도 내리며 서부지역의 전형인 헤라드에는 연평균 125mm 정도인데 거의 4월에서 12월 사이에 내린다.

아프가니스탄의 중부 산악지대는 아(亞)북극기후로 겨울에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 아주 춥고 여름에 는 더운 반건조 스텝지대이거나 사막지대이다. 연 강수량은 남서부 사막지대의 75mm 미만부터 힌두 쿠시 산맥의 1,270mm 이상에 이르기까지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분포한다. 저지대는 6월 평균 기온이 43℃에서 49℃까지 이르며 해발고도가 1,800m인 수도 카불은 평균 38℃이 다. 고원지대에서 겨울은 매우 춥고 건조하며 -22℃에서 -26℃까지 내려가며 많은 산에는 눈보라가 친다. 이때 카불의 기온은 -4℃ 정도이다.


지리
아프가니스탄은 아시아 중남부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내륙국가로 남북으로 약 970km,동서로 와칸지역을 포함해 1,300km가량 뻗어 있다. 와칸은 북동쪽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중국을 잇는 약 241km에 이르는 좁다란 회랑(回廊)지대로 남쪽과 남동쪽은 파키스탄과 면해 있고 서쪽은 이란,북쪽은 투르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을 경계로 한다. 1979년 소련군 침공 이후 약 500만 명의 주민이 이웃나라로 망명했다. 면적은 652,225㎢이다.


역사
BC이전 역사 개요
BC 6세기경에 페르시아 키루스 2세(아케메네스 왕조의 일부)의 지배를 받았으며,BC 4세기에는 알렉산드로 3세에게 정복되었다. 알렉산드로가 죽은 후 일부 지역은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또 일부는 인도 북부에 근거를 둔 마우리아 제국에 넘어갔다. 셀레우코스 왕조의 박트리아(지금의 '발흐' 지방) 총독통치령에서 박트리아 왕국이 생겨나 그리스와 인도의 문화가 융합된 독특한 문화를 선보였다. BC 2세기에는 쿠샨 왕조의 카니슈카 왕(78∼144경)에게 정복되었다.

AC 1년 - 1900년 까지의 역사
에프탈 왕조와 사산 왕조를 거치면서 힌두교의 영향권에 들어섰으며,870년경 사파르 왕조시대에는 이슬람교가 튼튼히 뿌리내렸다. 1219년에는 칭기즈 칸이 이끄는 몽골족의 침략을 받았으며,몽골 제국이 무너짐에 따라 독립된 제후국들로 분리되어 18세기에 이르기까지 부분적으로 인도 무굴 제국과 페르시아 사파위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1700년대초 페르시아 군주 나데르 샤에 의해 무굴 제국으로부터 벗어났으며,나데르의 경호대장 아흐마드 칸 아브달리가 아흐마드 샤 두라니라는 이름으로 아프가니스탄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굳히고 왕위를 계승하면서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었다. 1772년 두라니가 죽은 후 부족 또는 종족 단위 사회로 회귀하려는 경향과 러시아·영국의 제국주의적 음모로 제국은 붕괴되었으나 여러 차례 전쟁(1839∼42,1878∼80,1919)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 점령을 시도한 영국에게 항복하지 않음으로써 기본적으로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군주제 아래 1930년대부터 계속 신중하고 온건한 정부가 들어섬으로써 정치적 안정을 이룩했으나,1970년대 정당정치가 안정을 잃게 되고 1973년 좌익 파르캄('깃발'이라는 뜻)당이 지원한 군사혁명이 성공하면서 군주제가 종식되고 공화국이 성립되었다. 1977년 파르캄당과 좌익 칼크('대중'이라는 뜻)당이 연합하여 PDPA를 결성했고,1978년에는 함께 정권을 잡기도 했으나 두 정파 사이에 분열이 일어나고 이들의 마르크주의적인 개혁정책으로 농촌에서 큰 반란이 여러 차례 일어나자 1979년 기존정권 수호라는 명분 아래 소련군이 침공했다.

1979년 소련의 침공으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은 80년 무자헤딘이라 불리는 이슬람교도들이 성전(Holy War)을 선포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잇는 아라비아해의 항구를 확보하기 위한 소련의 남진정책이 미국의 대소봉쇄정책과 충돌한 지역이 바로 아프가니스탄이 되었다. 무자헤딘의 계속적인 항쟁과 국내외 압박에 못 이겨 결국 88년부터 소련은 굴욕적인 철수를 단행하여 89년 12월 완전 철수하게 된다. 아프가니스탄에 친소정권인 나지불라 정권을 세우고 철수를 했다. 이것은 베트남 전쟁과 더불어 강대국의 패전 가능성을 알려주는 20세기 전사의 유명한 사건이 되었다. 소련은 결국 사회주의 체제 붕괴로 이어지며 소수 공화국들이 독립하는 상황을 맞게되었다. 아프간의 무자헤딘 동맹군은 92년 나지불라 괴뢰정권을 축출하고 라바니 대통령을 선출하면서 평화가 오는가 했더니 수상으로 선출된 굴부딘(Gulbuddin Hekmatyar)이 불복하면서 종족,종파,정파가 복잡하게 얽힌 내부 문제를 풀지 못하고 결국 내전에 돌입하게 된다. 작게는 수많은 정파가 있었지만 큰 정파로는 4개를 들 수 있다. 타직족을 중심으로한 라바니 대통령과 대소련항쟁의 영웅 마수드 장군이 이끄는 세력,총리로 내정되었으나 받아들이지 않고 내전의 불을 당긴 헤그마티야르의 파쉬툰족 중심의 정파,회교 시아파인 하자라족을 중심으로한 정파,그리고 소련군의 장군이었던 우즈벡족의 도스텀 장군이 이끄는 세력이었다. 이들은 수도 카불을 분할한 채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러한 무자헤딘의 정권다툼이 지속되자 94년 9월 아프간의 남부 도시인 칸다하르를 중심으로 '이슬람 신학생'이라는 이름의 '탈리반'(Taliban)그룹이 생겨나 정권 다툼에 끼여들게 되었다. 이들은 주로 아프간의 다수종족(50%)인 파쉬툰(Pashtun)족으로 구성되었다. 이 젊은 학생그룹은 그 동안 일종의 무정부 상태와 같은 전쟁에 싫증난 파쉬툰 지역 주민의 지지와 이들의 순수한 열정 및 결연한 의지에 힘입어 전투에서 혁혁한 성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 결과 마침내 96년 9월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계속해서 북진하여 국토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가장 큰 세력이 되었다. 97년 4000명의 탈리반 포로들이 처형되어 한 곳에 공동 매장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점령한 지역에서 이슬람법을 과도 적용하면서 시민들로부터 차츰 외면 당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남자들에게 턱수염을 길게 기르는 것과 모자를 반드시 쓸 것을 명령하고 여학교를 폐지하고 과거 공산정부시대에 직업을 가졌던 사람들은 모든 공직에서 쫓아내고 여성의 외출을 통제하는 등 서방세계로부터 인권을 유린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아프간의 주요 공용어인 다리(Dari)어 사용지역에서조차 자신들의 언어인 파쉬투어를 사용함으로 언어 및 종족상의 이질감을 나타내므로 파쉬툰지역을 제외한 다른 종족지역에서는 많은 문제를 가져왔다. 한편 이 탈리반에 의해 수도에서 쫓겨난 세력과 그 외의 여러 세력은 서로의 싸움을 멈추고 탈리반에 대항하는 연합전선을 구축하여 지금도 심각한 내전을 벌이고 있다. 이 반탈리반 연합세력은 북쪽의 마자리 샤리프에 본부를 두고 연합해 있었으나 98년 8월 결국 탈리반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결국 연합전선은 무너지고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국외로 탈출했으나 마수드 장군만이 자기의 본거지인 판쉬르 계곡을 거점으로 계속적인 전투를 벌이고 있다. 탈리반은 아프간 중심부의 하자라 본거지인 버미얀마저 점령하여 현재 전투는 탈리반과 마수드 세력간에 치러지고 있다. 지금 탈리반은 90% 이상의 국토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의 내전상황은 다음과 같다. 1994년 11월에 회교 급진 원리주의자들인 탈리반 세력이 남부지역 최대 도시인 Kandahar를 점거하고 북쪽으로 세력 확장을 펴기 시작하였으며,1995년 3월에 탈리반 세력이 남부 지역 Provinces를 점거하고 수도인 Kabul외곽까지 밀고 올라갔으나 Jamiat세력의 화기에 밀려 사정거리 밖으로 퇴각하였다. 1995년 9월에는 북부 주요 도시인 Herat을 점령함으로써 14개 주가 Taliban의 통치하에 들어왔으며,1996년 6월에는 Iran측의 주선으로 이루어진 Jamiat과 Hezb-i-Islami의 협상 결과에 의해 Gulbuddin Hekmatyar가 Prime Minister로 취임했다. 1996년 9월에 탈리반이 동부 지역으로 급진전하여 퇴각하는 Jamiat세력으로부터 Kabul을 점령하였으며,1996년 10월에 SCDA (The Supreme Council for the Defence of Afghanistan)라는 반 탈리반 연합이 Jamiat,Rashid Dostam's Uzbeks,Shia Hezb-i-Wahdat 세력에 의해 결성되었다. 1997년 5월에는 탈리반이 Mazar-i-Sharif와 많은 북부 지역을 점령하였으나 곧 이어 퇴각하였으며,1998년 8월에 탈리반이 반탈리반 세력의 본부인 Mazar-i-Sharif와 주요 북부 도시들을 점령하였다. 1998년 8월에 Saudi출신 테러리스트 Osama bin Laden의 테러리스트 거점 도시들로 알려진 곳들이 미국 Cruise Missile의 공격을 받았으며,1998년 9월에 Wahdat세력의 본부로 봉쇄되어 있던 Bamiyan이 Taliban에게 함락되었다. 1998년 8월에는 반 탈리반 세력(Iran의 지원을 받은 Shia militant소행으로 봄) Kandahar에서 Truck Bomb공격--Taliban지도자 Omar Mohammad의 형제들과 수명의 탈리반 지도자들이 살상되었으며,2001년 1월에는 탈리반 대통령이 파키스탄 군부 지도자와의 정상 회담차 Islamabad를 방문하였다.


전압 및 주파수
1 Afghani = 100 puls. 환율 : Af 3,000 : U$ 1 (Official Rate) Af 4,679 : U$ 1 (Spot rate as of End October 1999)

치안
전쟁으로 치안상태는 예전부터 나빴지만 상황이 호전되지 않고 더 나빠지고 있다.


통화
1 Afghani = 100 puls. 환율 : Af 3,000 : U$ 1 (Official Rate) Af 4,679 : U$ 1 (Spot rate as of End October 1999)


주의사항
외국인 금기사항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불법 약물 흐름을 제거하기 위해 UNDCP는 올해 이란에 사무실을 개소하였고 이란 정부와 공동으로 미화 1300만 달러의 집중적인 약물통제프로그램을 착수했다. UNDCP는 또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중앙아시아로 밀반입되는 마약류를 감소시키기 위해 타지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서 마약통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상품구입시 유의사항
샤리나우외 시내 곳곳에 있는 노천시장에서 일용품,보석 등 각종 직물을 살 수 있다

복장 및 의복 관련사항
여성은 스카프로 얼굴을 가리고 온 몸을 덮는 옷을 착용해야 한다


비자
▣ 비자신청시 유의사항
비자 면제조건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발행한 재입국허가를 지니고 있는 여행자와 유효 비행기표를 지니고 2시간 이내에 같은 비행기로 제3국으로 여행을 계속하려는 경유 여행객에 한하고 있다. 비자 종류와 비용을 보면, 단수(20 파운드), 복수(30 파운드)와 상용( 30 파운드)비자가 있다. 비자유효기간은 발급일로부터 3개월이며, 체류기간은 방문목적에 따라 달라진다.
비자 신청시 유의사항으로는 근로비자는 무료로 발급되며, 관광비자와 경유비자는 발급되지 않는다. 언론인, 사업차 방문객, 적십자 회원, 자선 단체 대표, 의학 단체 대표는 입국이 허가되며, 상용비자는 아프가니스탄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방문 목적을 적어서 제출해야 한다. 또한 출국과 재입국 비자는 아프가니스탄을 떠나기 전에 발급받아야 한다.

▣ 비자신청시 구비서류
구비서류로는 상용비자를 발급받는데 6개월 이상 유효한 여권, 신청서, 여권용 사진1장과 의뢰인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사업주의 서류가 필요하다.



▶ 카불

아프가니스탄 중동부에 위치한 카불은 1776년 이후부터 아프가니스탄의 수도로서,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경제,문화의 중심지이다. 1815m의 고지에 자리잡은 인구 약 200만의 도시인 카불은 한때 아름다운 도시였으나 1979년에서 198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오랜 내전으로 도시는 파괴와 재건을 반복하고 있다. 카불은 주로 레이온,울 등의 섬유,가구,설탕,식품기계 등의 산업 발달하였으나 전쟁으로 1979년 이후 경제적 활동이 주춤한 상태이다. 카불은 대부분의 지방 도시 및 북부 및 동부의 인접 국가와 육로에 의해 연결돼 있다. 특히 카불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산악지역을 연결하는 Khyber Pass에 근접해 있어 오랜 동안 매우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회교 근본주의 집단인 탈레반이 1996정권을 이후 수도 카불을 포함해 전국토의 70% 정도를 장악하고 있어 회교 율법을 사회 전반에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특히 여성들에 대한 차별과 탄압은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데 여성들의 취업을 일체금지 했으며 남성들도 턱수염을 자르는 것이 금지돼 있다. TV가 사회를 부패시킨다 하여 아예 소유·판매를 금지시킬 정도로 엄격한 회교 근본주의에 따르고 있다.

카불은 오랜 세월동안 경제적,정치적,문화적으로 전략상 중용한 위치에 있었으며 매우 아름다운 경관을 가지고 있었다. 카불은 과거에 무역의 중심지 였으며 다양한 종교가 만나는 곳이기도 하였다. 또한 인도로 통하는 관문이었기 때문에 무역상과 침략자들에게 항상 주목을 받았기도 했다.

흰눈으로 덮인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특히 계곡과 푸른 언덕이 있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카불은 현대적인 건물과 역사적 유물들이 공존하고 있는 도시로 과거 제왕들의 무덤을 비롯한 많은 역사적 기념물들이 있으며,시내의 바자는 관광과 쇼핑의 명소로 이름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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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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