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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03 동남아 인도네시아 [INDONESIA]

인도네시아의 정치체제는 현재 많은 대내외적 문제를 겪고 있다. 정치 노선이 한국과 많이 닮아 있는데 인도네시아는 판차실러(Pancasilla)라는 5개항의 기본이념을 정치적 바탕으로 삼고 있다. 이는 신앙의 존엄성, 인간의 존엄성, 통일, 인도네시아 대의 정치, 사회정의 구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혼합경제체제를 가지고 있는 인도네시아 경제는 농업과 광업에 바탕을 둔 개발도상국으로 국내총생산 1/4를 차지하는 농업부문에 노동력의 절반이 종사하고 있다. 또한 천연고무의 주요생산국으로서 고무가 주요수출품이며, 커피ㆍ차ㆍ담배ㆍ향신료ㆍ기름야자나무제품 등이 주요 수출품이다.

교통·통신 및 우편제도를 살펴보면 교통수단으로 택시 및 버스 그외 특색있는 바자이나 베짜라는 삼륜 자동차와 마차 수준의 교통편이 있는데 택시는 타기 쉬운 편이며 요금도 그다지 비싸지 않으나 간혹 외국인에게 미터기가 있는데도 흥정을 하려 들기도 하고 바가지 요금이 많다. 버스는 요금에 따라 여러 레벨에 버스가 있는데 간혹 강도들이 외국인들을 노리는 경우가 있어 현지사정에 밝은 사람들조차 대부분 버스는 이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외 한 지역이나 구역 내에서만 운행하는 바자이라는 재밌는 교통수단이 있는데 싸고 빠르고 조금은 위험하다. 현지인들은 중산층 정도 돼야 이 교통수단을 이용한다. 그러나 사고가 나면 하늘에 맞길 수 밖에 없다.

인도네시아에는 염색이나 회화 등의 유적관련 관광상품들이 굉장히 많다. 회화역사는 약 5쳔년 이상된 것으로 추정되는 인간과 동물의 형상을 그린 동굴벽화가 남부 술라웨시 이라얀자야 등에서 발견되었고, 남부 수마트라 등지의 대규모 고분에서도 AD 100년경의 천연색 벽화가 발견된 점으로 보아, 인도네시아 회화 역사는 아주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고 생활 속에도 많이 찾아 볼 수 가 있다. 특히 양초와 염색을 이용한 바틱기법은 일종의 그림장르로서, 초기 자바인 문학에서는 바틱을 만드는 사람들이 화가로 명명되고 있으며, 현재 중부 족자와 발리가 바틱으로 유명하며 장인으로 칭송 받는다.

2억 2백만명의 인구를 가진 인도네시아는 중국, 인도, 미국에 이어 세계 4위이며, 300여 종족이 사용하는 언어도 500여종에 이르고 종족별로 상이한 문화와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면적 : 1,919,317㎢
-국가대비 면적비교: 남한의 약 19.30 배

인구 : 201,300,000명('1997)
-국가대비 인구비교: 남한의 약 4.234 배

종교 : 인도네시아는 무슬림 국가이지만 다양한 종교를 가지고 있다. 네덜란드 통치 하에 띠모르, 플로레스, 수마트라, 또라자 지역에 기독교가 전파되었고, 이슬람이 퍼지기 전 수마트라에 불교, 자바에는 힌두교를 신봉하고 있다. 무슬림을 믿는 자바인들은 아직도 힌두의 전통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국민의 약 4/5가 이슬람을 믿고, 힌두교, 불교, 전통적 애니미즘 등의 색채를 가지고 있다. 중국인들은 불교와 유교를 믿고 있다.

종교적으로는 이슬람교를 비롯한 불교,힌두교,기독교가 서로 충돌과 갈등을 빚기도 하나 상당히 안정적이며,인니 국민의 9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이슬람 문화가 사회생활의 저변을 이루고 있다

주요민족 : 민족은 250여 종으로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300여 개의 민족집단들로 이루어져 있으나 국민 대부분은 말레이인이다. 그 다음 큰 민족집단은 자바인이다. 인도네시아는 세 집단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 자바와 발리 섬 내륙에서 벼농사를 짓는 자바인ㆍ순다인ㆍ무두라인ㆍ발리인등을 포함하여 인구 전체의 2/3을 차지하고, 두 번째, 수마트라 섬의 말레인과 셀레베스 남부의 마카사르족 세 번째, 다야크족ㆍ소수 부족 집단들이 있고, 최대 민족집단은 중국인이다.

주요언어 : 많은 종류의 언어와 방언이 있으나 말레이 인종이 사용하던 바하사 인도네시아어로서 수마트라 섬 동부의 잠비 지역에서 사용되는 말레이어 방언에서 유래한 것이다. 인도네시아어는 세계에서 가장 배우기 쉬운 언어로 손꼽고 있는데, 시제와 성의 구분이 없고, 한 단어로도 의미가 전달되기 때문에 배우기 쉽다

기후
인도네시아는 적도를 둘러싸고 있어 1년 내내 더우며, 우기에는 고온다습, 건기에는 고온건조한 기후를 나타내며 해안지방이 보통 23-31℃를 나타내며 가장 높은 기온을 보이고, 산간지역은 매우 추운 곳도 분포하여 있다. 1년 내내 비가 많이 내리는데, 우기는 남동쪽으로 갈수록 늦게 시작되며 수마트라 북부에서는 9월달에 비가 시작, 띠모르는 11월에도 비가 오지 않고 1-2월중에는 어디든지 비가 온다. 국토의 7%가 목초지이며 열대우림이 인도네시아 전국토의 2/3정도를 녹색 산림으로 뒤덮여 있다.

지리
남태평양ㆍ인도양을 동ㆍ서로 끼고 아시아대륙과 호주대륙의 중간지대에 위치한 인도네시아는 크고 작은 섬들이 약 1만 3,670개의 섬들로 이루어진 동남아시아의 섬나라로 자바와 마두라 두 섬에 총인구 65%가 집중되어 있다. 정식명칭은 인도네시아 공화국(Republic of Indonesia)며 부를 때는 Indonesia라고 부른다. 면적은 1,919,317㎢로 서쪽의 수마트라 섬에서 동쪽의 뉴기니 섬까지 약 5,100km, 남북으로 약 1,600km로 펼쳐져 있다.

지형 구조는 복잡하고 산계는 화산활동이 빈번하고, 토양은 비옥하여 곡물재배에 적합하다. 주요 섬들은 열대림으로 덮여 있고 화산성 산들로 이루어져 있다. 남쪽부터 수마트라ㆍ발리ㆍ자바ㆍ발리ㆍ롬보크ㆍ숨바와ㆍ플로레스ㆍ티모르섬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줄지어 있다. 열도 북쪽에는 "칼리만탄" 즉 보르네오 섬으로 세계3번째로 큰 섬으로 구릉과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간단한 현지어
• 아빠 까바르: 안녕하세요.
• 아빠 이니: 이것은 무엇입니까?
• 아: 예.
• 띠닥: 아니오.
• 브라빠 이니?: 이것은 얼마입니까?


역사
▣ BC이전 역사 개요
최초 인도네시아 거주인은 4백만년 전 직립보행 원인 피테간트로푸스 에렉투스(일명 자바인)인 것으로 추정되며, 그 이후 BC 3000년경 부터는 아시아대륙에서 이 주해온 몽골계 말레이인이 원주민을 구축하고 인도네시아에 정착했다고 한다. BC 1000년경 부터는 이들 몰골계 말레이인들은 인도네시아 원주민 뿐아니라 인도아리안 이주민들과도 혼인 들을 통해 자연스럽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인니에서 확고한 지위를 확보해 나갔다.

▣ AC 1년 - 1900년 까지의 역사
인도네시아 민족의 대부분은 인도 지역에 근거를 둔 말레이계에 속한다. 기원 후에는 중국과의 교역이 시작되었고, 인도로부터 힌두교와 불교가 인도네시아 여러 섬으로 전파되어 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 5세기에 서부지방에서 다르마왕국을 필두로 6세기 중국 자바, 7세기에 수마트라섬의 팔렘방에서 불교를 통하여 스리비자야왕국이 발흥되었다. 스리비자야왕국은 8세기 샤일랜드라 왕조시대 때에 동서교통의 요충지인 중부자바를 장악, 10세기까지 번영을 누렸으며, 이러한 유적으로 세계초대의 불교유적지 보로부두르사원이 남아 있다. 11세기에는 문화중심지가 중국자바에서 동부자바로 옮겨지고, 이를 계기로 불교왕국 대신 힌두계 왕국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13세기에는 인도에서 온 이슬람교도 상인들에 의하여 이슬람교가 수마트라 북부에 전래되어 2세기 동안 힌두교와 고유문화를 고수한 발리 섬을 빼고 다른 선들로 전하여졌다.

인도네시아는 다민족 국가답게 여러 종교가 유입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공존하고 있는데 1세기경 인도상인이 향료 금속 등의 통상을 위해 왕래함으로써 힌두문화가 자연스럽게 인니에 유입되기 시작했으며 5세기경부터 칸타리,쟘비 및 말라유 힌두 왕 국이 번성했다고 한다. 7세기 후반경 불교를 신봉하는 이주민들은 힌두왕국인 말라유 왕국을 멸망시킨 후 수마 트라 팔렘방을 중심으로 스리위자야 불교왕국을 건설, 수마트라, 말레이반도, 자바섬까지 지배권을 확장하는 한편 중국 및 인되와의 교역을 활발히 함으로써 불교문화와 상업 및 무역의 중심국가로 번성하였다. 9세기 전후 중부 자바의 족자카르타에 건립된 보르부드르 불교 사원은 1000여년 전에 새로이 발국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인 불교유적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슬람교는 13세기초 말라카를 중심으로 수마트라,자바 등 해안지방에 근거를 둔 인도 및 아랍 향료상인들을 통해 유입되었다. 15세기 초 말라카 왕국이 출법, 그후 말라카는 물론 북부 수마트라,자바등 인근 도서지역 에서 가장 중요한 무역중심지로서 이슬람 전차의 주요 역할을 했는데 인니의 이슬람교는 기존 힌두.불교문화 터전위에서 수세기에 걸쳐 정착되었기 때문에 중동 이슬람교와는 달리 다소 세속적인 특징을 띠고 있다. 13세기 말경 인니 역사상 최대의 힌두왕국인 마쟈파히트 왕국이 동부자바 중심으로 출범 전성기에는 현재 전인니 군도는 물론 말레지아와 필리핀 남부지역까지 그 영토를 확장했다. 그러나 힌두교는 15세기 후반기에 접어들어 마쟈파히트 왕국이 왕위 쟁탈전으로 쇠퇴하게 되고 신흥 이슬람교가 세력을 확장함에 따라 점차 세력이 약게 되었으며 현재 힌두문화가 지배하고 있는 유일한 지역은 발리섬으로 힌두문화가 많이 남아있다. 1602년 부터 1942년까지 인도네시아는 화란 식민지 시대를 겪는데 1511년 포르투칼이 말라카제도의 향료무역을 독점하기 위해 서구열강중 가장 먼저 말라카 왕국을 점령하였으나 말라카가 지배하고 있었던 거대한 아시아 무역망은 장악치 못하였다. 화란은 포르투칼 세력을 말라카제도로 부터 축출하고 1602년 동인도회사를 세워 향료무역 의 전권을 장악하였으며,그 이후 화란은 동인도회사를 거점으로 하여 3400여년 동안 인니 전역에 대한 식민통치를 실시하였다.

▣ 1991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1942년 부터 1945년 동안 일본 점령하에 들어 가는데 1942년 3월 일본은 화란과 전쟁상 태로 돌입,인도네시아 수도인 바타비아 (현 자카르타)를 점령,3년 반 동안 군정통치를 실시하였다. 2차 대전이 일본의 항복으로 끝나자 1945년 8월17일 인니공화국의 독립이 선포되고, 수카 르노와 하타가 인도네시아공화국의 초대 대통령,부통령으로 각각 취임하게 되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인도네시아는 4년간에 걸쳐 대화란 독립 무력항쟁을 계속해 오던 중 1949년 11월 2일 화란은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인정하는 협정에 서명하였으며 1950년 9월 인니는 유엔회원국이 되었다. 수카르노는 대통령의 건강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자 1965.9.30 인도네시아는 공산당 은 수카르노 사후에 예상되는 정세에 대처하기 위해 군부에 기선을 제압할 목적으로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당시 수하르토 전략사령관을 중심으로 하는 군부의 신속한 진압때문에 실패하고


유용한전화번호
•주인도네시아공화국 한국대사관(57, Jalan Gatot Subroto, Jakarta Selatan, Indonesia): (62-21) 520-1915
•한인회:(021) 521-2515, 527-2054
•K A L:(시내) 521-2180, (공항) 550-2394, 2389
•경 찰 서:110
•화재신고:113
•앰블런스:118, 119
•안 내:시내(108), 시외(105), 국제(102)
•국제전화신청:104

전압 및 주파수
220V/50사이클. 우리나라와 플러그 모양이 다르기 때문에 별도로 어댑터를 준비해야 한다.

통화
인도네시아 통화 단위는 루피아(Rupia)이며, 지폐 종류로는 Rp100ㆍ500ㆍ1,000ㆍ10,00ㆍ20,000ㆍ50,000의 7종류가 있으며, 동전은 Rp1ㆍ5ㆍ10ㆍ25ㆍ50ㆍ100ㆍ500ㆍ1,000로 8종류이다. 지폐의 색과 모양이 각각 다르고, 동전의 표기는 숫자로 표기되어 있다. 크기도 여러 가지로 나누어진다.
환율은 US$1= Rp8,335 정도 된다. Rp100=원화 14.20원(2004. 1월 현재)


주의사항
▣ 외국인 금기사항
머리에 손을 대는 것은 영혼의 안식처를 침범하는 행위라고 생각하며, 물건을 줄 때에는 오른 손을 이용한다. 왜냐면 왼손은 화장지 대용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열대기후에 속한 나라인데도 위생시설에 대한 관념이 희박하므로 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 편이므로 음식ㆍ물을 먹을 때 가장 조심하는 것이 좋다. 끓이지 않은 물을 먹어선 안되며 물을 생수를 사서 먹도록 한다. 왼손은 부정한 것이므로 악수를 하거나 물건을 받을 때에는 오른손을 사용하여야 하며, 대화중 허리에 손을 얹으면 안 되는데, 이는 화가 난 태도인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도네시아인들은 일본인에 대한 감정이 매우 좋지 않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인들과 외모가 비슷하여 오해 받기 쉬우므로 행동에 조심해야 한다.

▣ 상품구입시 유의사항
인도네시아에서 물건을 살때, 바가지를 부과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여러 곳을 돌아보고 사며 흥정을 하면 싸게 살수 있다.

▣ 복장 및 의복 관련사항
열대성 기후를 보이는 인도네시아의 옷차림은 티셔츠ㆍ반바지ㆍ샌들을 준비하여 가져가지만 노출이 심한 옷은 피하는 것이 예의상 좋다. 관공서, 공항 등 국가기관, 공공장소는 정장차림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자
▣ 국내 비자발급처
기 관 명 :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관
주 소 :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55
전화번호 : 783-5675/7, 783-5371/2
팩스번호 : 780-4280
근무시간 : 09:00-12:30 & 13:30-17:00 토요일 휴무

▣ 비자신청시 유의사항
2004년 2월이후 시행되는 비자법에 의하면 관광비자일 경우에는 30일이내 머물경우 도착비자로 가능하며 3일이내 미화10불, 4일~30일은 미화25불만 내면 비자를 받을수있다.

▣ 비자신청시 구비서류
30일미만 입국비자시 별도의 서류는 필요없고 미화 10불 또는 25불만 있으면 된다.
그외의 상용비자신청시는 비자 신청서, 6개월 이상 유효한 여권, 여권용 사진 2장, 출장증명서, 항공권 사본, 자국에 있는 회사의 재정보증서 2장(체류이유, 초청이유 명시) 등이 필요하며 여권의 유효기간이 최소한 6개월이상 유효하여야 한다.

-관광목적인 경우 2개월간 무사증 체류할 수 있으나, 이 경우 반드시 여권 유효기간이 최소 6개월 이상 남아 있어야 하고 귀국 항공권을 소지해야 함. 법령상으로는 잔여 유효기간 6개월 미만인 여권을 소지한자에게 5일간의 경유비자를 부여토록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입국을 허용하지 않고 있음.
-방문 및 상용 목적인 경우 해외에 있는 인니공관을 통해 2개월 체류허가를 받을 수 있으며, 인니 입국 후 추가로 2개월씩 2회 연장도 가능(최장 6개월까지 체류 가능)함.
-장기 체류 목적의 외교관, 관용 여권 소지자 또는 취업자는 무사증 입국을 할 수 없으며, 사증 없이 입국할 경우 공항에서 2개월간의 관광비자는 부여받을 수 있으나, 2개월 이내에 출국하여야 함.
-언어 소통의 어려움, 관행의 무지로 인해 사증 관련 불필요하게 금전을 제공하는 사람이 종종 있으나 인니의 사증관련 규정을 준수하여 금전제공을 삼가는 것이 바람직함.


인도네시아는 적도를 둘러싸고 있어 1년 내내 더우며, 우기에는 고온다습, 건기에는 고온건조한 기후를 나타내며 해안지방이 보통 23-31℃를 나타내며 가장 높은 기온을 보이고, 산간지역은 매우 추운 곳도 분포하여 있다. 1년 내내 비가 많이 내리는데, 우기는 남동쪽으로 갈수록 늦게 시작되며 수마트라 북부에서는 9월달에 비가 시작, 띠모르는 11월에도 비가 오지 않고 1-2월중에는 어디든지 비가 온다. 국토의 7%가 목초지이며 열대우림이 인도네시아 전국토의 2/3정도를 녹색 산림으로 뒤덮여 있다.




▶ 바탐

바탐은 현재까지도 매우 빠른 속도로 개발·발전되고 있는 곳으로 계획적으로 정비되어 있는 근대도시 국가 싱가포르와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약 2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에서는 이러한 지리적인 이점을 잘 살려 제 2의 싱가포르를 만들기 위해 계획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바탐은 독일에게 배운 헬리콥터를 만드는 기술을 인도네시아에게 처음으로 전해준 하비비가 관리하고 있다.
바탐은 1989년 자유무역지대로 선언되기 전까지는 습지 주변에 자리하고 있는 나고야의 판자 집들과 몇 개의 어촌만이 해안에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몇 년 동안 건물이 들어선 지금은 이전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는 곳으로 완전히 변해버렸다. 북부해안을 따라 고급 골프 리조트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지만,이에 비해 대부분의 다른 지역은 비싼 물가와 급조된 흉한 건물 등이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국경도시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 때문에 배를 갈아타는 이외에 다른 시간을 이곳에서 보낼 이유가 없기도 하다.
항구인 Batu Ampar,Nongsa,Sekupamg과 Hang Nadim 국제공항 등 네 곳이 모두 비자 없이 출입국할 수 있는 곳으로 되어 있는 등 바탐은 현재 이웃하고 있는 빈탄이 가지고 있었던 군도의 전통적인 교통 중심지 역할을 크게 빼앗고 있다.
현재 바탐에는 일본·네덜란드·싱가포르의 기업들이 진출하여 있고,현재 인도네시아 각지에서 노동자들이 계속 모여들고 있다. 또한,주말이 되면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에서 많은 관광객이 밀려들고 있으며,싱가포르와 마찬가지로 자유무역항이기 때문에 공업제품의 가격이 매우 싸다.




▶ 발리 [Bali]

발리는 "지구상의 마지막 낙원", "세계의 아침"등으로 불리우며 남태평양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인 인도네시아 군도를 구성하는 수천개 섬가운데 하나이다. 발리의 크기는 제주도의 약 2.8배 정도이며 전국토의 약 0.29%의 크기이다. 인구는 현재 약 300만 정도로 이중에 약 30%가 이방인이다. 적도에서 약간 남쪽으로 남위 8도와 115도에 위치해 있으며 열대우림 기후로 건기와 우기로 나뉘어진다. 우기인 11월에서 3월말까지는 비가 많이 오지만 대개 소낙비(스콜)가 하루에 1-2시간 정도 내린다.(넓은 지역이기 때문에 지역에 따른 편차가 있음)
발리는 "산스크리트어"로 와리(Wari)라는 말이 변형된 것으로 제물을 의미하며, 신들의 섬들로 불리기도 한다. 이슬람화된 인도네시아 지역 중에서 아직도 힌두 문화의 전통을 남기고 있는 섬으로 유명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인디아 힌두교와는 다른 형태로 지구상에서 유일한 발리 힌두교이다. 한 마을에 창조의 신, 모호의 신, 그리고 파괴의 신등을 모시는 3개의 사원이 있고 크고 작은 사원이 2만 이상이다. 또한 실제로는 주민들이 사는 집 자체가 많은 사당으로 되어 있어 소규모의 사원역할을 하고 있다.
섬의 모양은 병아리 모양과 비슷하며, 가장 신성한 장소로 추앙받는 아궁산(3.142m)을 최고봉으로 하는 산맥이 동서로 길게 펼져져 있으며, 화산지역으로 양분된 평야에서는 쌀 등의 주요 농산물이 경작된다. 발리에서의 촌락이 생활의 터전 역할을 하고 가족들의 그룹인 "반자르"는 발리 사회의 기본단위이다.
북부는 토질이 불량하지만 남쪽 비탈면에는 많은 강이 흘러내려 덴파사르에 이르는 비옥한 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발리섬 인구의 대부분이 이 비탈면에서 논농사에 종사하고 있고, 일부는 관광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발리섬은 이미 오래 전부터 관광지로 주목되어 왔으며, 현재도 세계 각국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아든다. 덴파사르는 이 곳의 중심지로 발전했으며, 서쪽 교외에는 국제공항도 있어 발리에의 입구가 되어 왔다. 경치가 아름다운 사누르 해안을 비롯하여, 북부의 바투르 화산에 있는 피서지인 킨타마니, 아궁화산의 중턱에 있는 브사키 사원, 전에 왕성이었던 쿨룽쿵, 목각의 중심 우부드, 발리 회화의 중심 마스 등이 주요 관광지이다.

교육
발리의 교육은 우리나라와 같은 6.3.3제로 1984년 7월에 초등학교까지를 의무기간으로 정하여 문맹률을 많이 낮추었으나 아직도 경제적인 형편이 좋지 않아 학업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
발리의 대표적인 학교로는 1960년에 정부의 예술 문화 협회 후원으로 설립된 3년제 국립 음악 예술 고등학교인 코카르 무용 학교가 있다. 이 곳에서는 발리 댄스를 비롯해 자바댄스까지 다양한 무용을 가르치고 있다. 각지에서 재능 있는 소년·소녀들을 뽑아 가르치는데, 이들은 졸업 후 다시 출신지로 돌아가 무용 선생님이 된다고 한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꾸따 해변에서 가장 가까운 응우라 라이공항 Bandar Udara Ngurah Rai로부터 꾸따&러기안까지는 차로 약 15분정도 걸리고 누사 두아·사누르·덴빠사르까지는 약 20분이 소요된다. 공항에서의 교통편으로는 택시와 베보(합승 미니버스) 두 가지가 있다.

발리는 적도 부근에 위치한 연중 20-30도를 유지하는 전형적인 열대성 기후의 섬으로 일년 내내 무덥다. 하지만 깐따마니나 브두굴 등의 고지대에서는 아침과 밤의 기온이 생각보다 낮아서 스웨터가 필요하다. 11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는 몬순 기후인 우기로서 다습하고 소나기인 스콜이 내리며, 6월부터 9월 또는 10월까지는 건기로서 밤에는 서늘함을 느낄 수가 있다. 우기에는 두리안이나 망고 등의 열대과일을 맛볼 수 있으며, 비 갠 후의 청명함과 화창함으로 일부러 우기 때 방문하는 관광객들도 있다.




▶ 빈탄

인도네시아의 리아나주에 속해 있는 약 3,200개의 섬들 중 하나인 빈탄은 평화와 휴식의 낙원이며 싱가포르의 해협에 면해 있어 해상교통로의 요충지라 할 수 있다. 또한 싱가포르로부터의 이러한 짧은 접근성 때문에 인도네시아 관광객들보다는 싱가폴의 관광객들이 더많이 몰리는 휴양지다. 싱가폴에서 페리로 40분밖에 소요되지 않고 거리도 45km안팎이라 좁은 땅의 싱가폴 정부가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임대하여 세계적으로 세계적인 휴양지 리조트로 개발이 한참인 곳이다.

소박하고 서정적인 휴양지인 빈탄은 특히 고요함을 필요로하는 비지니스맨들에게 최적의 장소이다. 울창한 숲과 깍아지른듯한 절벽이 있으며, 하얀 모래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열대구릉위로 아름다운 건축물과 짙푸른 목초지, 그리고 맑은 해안은 마치 한폭의 그림과 같다. 또한, 건축물은 울창한 수림과 이국적인 동식물군, 그리고 휘청거리는 코코넛, 야자수들을 배경으로 한 최신식 건축양식이다.

지형적으로는 말레이반도의 연장부에 해당되며 해안선이 복잡하고 산호초가 발달해 있으므로 비지니스와 휴가를 함께하기에 더없이 안성마춤이다. 더욱이 북쪽으로 130km에 이르는 해안은 아직도 개발되지 않은 자연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도시생활의 압력으로부터 짧은 휴식을 찾는 이들에게 아주 매력적이다. 그래서인지 고풍스러운 이국의 역사광을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약간 실망스러운 곳인지도 모르지만 깨끗한 해변과 투명한 물, 이국의 태양을 원하는 관광객들에게는 분명 파라다이스 같은 곳이다.

무엇보다도 이곳의 매력은 순진하고 겸손한 사람들이다. 타고난 친절함이나 부드럽고 여유있는 삶의 방식들은 관광객들에게 엣 시절로 돌아간듯한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현재 빈탄은 싱가폴과 인도네시아 양국가의 관광진흥국에 의해 운영되고 있으며 땅은 인도네시아이지만 경영은 싱가폴에서 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싱가포르와 빈탄은 둘이자 하나이다. 싱가포르는 빈탄으로 가는 관문이자 빈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코스다. 싱가포르를 체험하지 않았다면 빈탄 여행의 재미 절반은 놓친 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소 빡빡한 일정이 되더라도 꼭 짬을 내 싱가포르 여행을 즐겨보길 바란다. 중국인, 말레이인, 인도인 등 다양한 인종이 어울려 사는 나라, 싱가포르의 독특한 문화와 화려한 명솓ㄹ에 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자카르타 [Jakarta]

자카르타는 1,000만 명 이상의 인구가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 공화국의 수도로서, 권력과 부의 중심지이며, 현재 동남아 최대 도시로 급부상하고 있다. 정식 명칭은 자카르타 수도 특별지구(Daerah Khusus Ibukota Jakarta)이며, 줄여서 DKI(디까이) 라고 부르기도 한다. 행정상으로는 '대 자카르타 수도 특별지구'를 형성하고 있다.
시가지는 북쪽의 리웅강 하구로부터 남쪽으로 약 25km에 걸쳐 길게 뻗어 있으며, 해발고도가 매우 낮다. 그리고 머르데카 광장을 중심으로 한 주변의 관청 가, 북쪽으로 계속되는 주택 가, 문교 지구의 3개로 나뉘어져 있다. 또한 상업·금융 지구는 꼬따 글로독 거리를 중심으로 구시가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곳에는 화교의 상점과 창고 사이에 큰 저택들과 빌딩이 빽빽이 얽혀있다. 시가지에서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 보면 일반 서민이 사는 미로 같은 마을이 있으며, 운하에서 목욕을 하는 여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자카르타는 원래 순다 끌라빠라고 불리는 작은 항구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이슬람 상인과의 교역으로 번성하게 된 이슬람 왕국 스루딴이 건설되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또한 그 영향을 받은 인도네시아의 연안 지대는 점차 이슬람화 되었다. 이슬람 세력이 항구를 손에 넣자 자카르타는 자야까르따(위대한 승리)로 개칭하였다. 그 후 네덜란드가 동인도 회사의 거점을 현재의 꼬따 주변에 두자 바따비아로 개칭되었고, 인도네시아 식민지의 중심이 되고 나면서 급속히 발전했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점령에 의해 자야카르타와 비슷한 자카르타로 다시 개칭되어 현재의 대도시 자카르타에 이르고 있다. 꼬따 주변의 건물이나 운하에서 번영했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잔재를 볼 수 있으며, 현재 자카르타의 근대적인 빌딩 숲은 스디루만 거리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원래 자카르타 주변에는 부따위족이 살고 있었는데, 급작스러운 인구팽창으로 지금은 부따위 문화를 발견하기 어려워 졌다.
자카르타는 인도네시아의 정치·경제·산업·문화의 중심지로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새로운 고속도로, 대형 업무용 빌딩, 고급호텔, 쇼핑몰들이 허름하던 자카르타 시가지에 엄청나게 들어서고 있기 적어도 부분적으로 자카르타는 현대화된 아시아의 신흥 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러한 한길의 현대적 도시경관과는 대조적으로 뒷길에는 원주민이 밀집 거주하는 농촌적 경관이 나타나며, 물론 양쪽 사이에는 생활 수준의 격차도 현저하다.
자카르타는 아시아에서 가장 혼잡한 교통량과 과잉인구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도시이다. 몇 개의 흥미로운 박물관과 기묘한 공공 기념물을 제외하고도 네덜란드의 오래된 건축물을 볼 수 있으며, 항구에서는 범선 시대를 연상시켜 줄 훌륭한 선박들이 있다.


교육
자카르타의 문화생활은 많은 고등 교육기관에 의해 크게 향상되고 있다. 가장 크고 유명한 교육기관은 인도네시아대학교이다. 인도네시아대학교는 중요한 신문발행 중심지이며, 국영 라디오 및 텔레비전 방송국도 갖추고 있다.

산업
자카르타는 산업적으로는 거대한 소비도시지만, 근래에 들어서면서 외국자본의 원조에 의한 방직·식품·전기기계·약품 등의 근대공업을 시작하고 있다. 또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한 육·해·공의 교통로도 잘 정비되어 동남아시아 일대의 중심으로서 그 기능을 다하고 있다. 따라서 인도네시아 무역의 절반은 자카르타를 통하여 행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도네시아의 최대 항구인 시 동부의 탄중프리오크는 자와바라트 주의 수출·수입 품목들을 취급하며, 이 품목 대부분이 다른 여러 인도네시아의 섬으로 선적되어 옮겨진다. 금융업과 상업은 도심지에 밀집해 있고, 주요 공업시설로는 주철공장, 마라린·비누공장, 양조장 등이 있다.

자카르타의 기후는 열대성 기후로서, 높은 기온과 많은 강우량이 특징적이며, 이에 따라 습도도 연평균 75∼85%로 상당히 높다. 연평균 기온은 26.9℃로 연교차가 1℃에 불과하지만 1월과 2월에는 20℃이하가 되는 날도 있다.




▶ 족자카르타

족자카르타는 행정구역상으로 자카르타, 아쩨와 함께 인도네시아의 세곳의 특별구로 분류된 곳으로 자바 문화의 중심적 역할을 해왔던 곳이다. 자바 섬 남해안으로부터 내륙쪽으로 29km들어간 지금도 활동중인 메라피 산(2,891m) 가까이에 있다.
인도네시아를 구성하고 있는 300종족 중에서 가장 큰 그룹의 종족인 자바족의 본고장과 같은 곳으로 바른 예절과 화합이 중요시되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말을 할 때 직접화법보다는 간접적인 표현을 많이 한다. 여자들은 비교적 현실적이어서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남자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농담을 하며 지내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정확하게 일을 하려고 할 때에는 농담 때문에 당황하는 경우가 있다. 작은 일에 구애받지 않는 열대적 문화의 한 예라 할 수 있다.
족자카르타는 오랜 역사가 있는 도시이다. 불교나 발리섬에서 신봉하고 있는 힌두 문화의 전성, 이슬람교 개종(현재 90%이상이 이슬람교를 신봉하고 있음), 네덜란드에 의한 식민지 지배 등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으므로 각 시대마다의 흔적을 족자카르타와 그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도시는 조용하고 깨끗한 역사의 도시로 표현함이 어울릴 듯 하다.
족자카르타는 오랜 역사가 있는 도시이다. 불교나 발리섬에서 신봉하고 있는 힌두 문화의 전성, 이슬람교 개종(현재 90%이상이 이슬람교를 신봉하고 있음), 네덜란드에 의한 식민지 지배 등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으므로 각 시대마다의 흔적을 족자카르타와 그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도시는 조용하고 깨끗한 역사의 도시로 표현함이 어울릴 듯 하다.
족자카르타는 바틱, 그림자놀이나 인형극의 와양, 가믈란 음악, 자바 무용 등과 같이 자바 예술을 완성하고 전승해온 도시로서 잘 알려져 있으며, 편의시설, 저렴한 경비, 자바문화의 중심지 등 여러 가지 장점들이 복합되어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로 각광 받고 있다.


교육
족자카르타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교육수준이 높은 일명 교육도시이다. 이 작은 도시안에 국립대·사립대 등 모두 16개의 대학이 밀집해 있다. 그래서 족자카르타에는 대학을 다니기 위해 인도네시아 각지에서 온 지방 학생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으며, 그 숫자도 100,000명 이상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인도네시아 곳곳에서 시위 또는 데모가 있을 때에도 다른 도시와 비교해서 족자카르타는 비교적 조용히 지나갔던 것 같다.
1949년 세워진 동남아 최대의 국립대학이 바로 가자마다 국립 대학교이다. 약자로서 많이 알려졌는데 읽을 때는 영어식 발음처럼 "유지엠"이라고 하면 잘 알아듣지 못하고 인도네시아 발음으로 "우게엠"이라고 읽어야 알아듣는다. 학생수가 약 35,000명을 넘고 있으며, 모두 12개 학부에서 수학하고 있다.크기가 엄청나기 때문에 깔리우랑 거리(JI. Kaliurang)를 달리다보면 대학 캠퍼스 안을 통과하게 되는데 양쪽 모두 캠퍼스 단지이다. 술탄 하멩꾸부워노 10세(Sultan Hamengkubuwono X), 현재 국회의장인 아미엔 라이스를 비롯하여 많은 유명인사들이 이곳 출신이라고 한다. 가자마다 대학교에서는 인도네시아 어를 배우려는 외국인들을 위한 인도네시아어 연수 코스(LBIFL : Learning Bahasa Indonesia as Foreign Language)가 개설되어 있으며, 한국어학과는 아직 미개설 되어 있지만 한국학 연구센터(PSK : Puast Studi Korea)에서 한국어를 교양과목으로 수업하고 있다.


산업
족자카르타의 해안 저지대 주민들의 주요산업은 농업과 어업이며 쌀·고무·코프라·설탕을 생산한다.
인도네시아에서도 공업이 상당히 발달한 지역으로서 철도공작창·인쇄소·방직공장·무두질공장 등이 있으며, 가공식품·수송장비·종이·화학제품·전기제품을 생산한다.

자격있는 여행전문가 - 모두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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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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