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국화는 순박함을 자랑하고 있는 데이지 꽃이다. 폴란드 국민들은 데이지꽃 외에도 카네이션도 많이 사랑하고 있으며, 축하와 기쁨을 나타낼 때 주로 이용하고 있다. 수도는 바르샤바(WARSAW)인데, 이 도시에는 약 200만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폴란드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동유럽의 파리’로 불려지고 있고, 동유럽에서 제일 가는 도시이다. 폴란드는 동유럽에서 가장 큰 국토를 가지고 있으며 총면적을 세계적으로 비교해 보면 멕시코보다 조금 작은 국토를 가지고 있다. 폴란드의 국경의 길이는 총 3,114㎞ 에 달한다.
폴란드에는 삼림이 국토면적의 25%를 차지하고 있는데, 서유럽의 활엽수림에서 동유럽의 침엽수림으로 옮겨가는 중간 지대에 위치하고 있어서 수목의 종류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주요 수목으로는 소나무, 낙엽송, 너도밤나무, 참나무, 자작나무, 고도가 높은 곳에는 가문비나무가 있다. 카르파티아 산맥 중에서도 고지대에는 아고산성, 고산성 식생이 분포되고 있다. 식생은 폴란드 남부 지역의 타트라 산지는 알프스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으며, 동부 지역에서는 스텝 지역이 나타나게 된다. 폴란드의 북부 지방은 최근까지도 빙하 지대였고 일부가 사구(砂丘)로 되어 있다. 남부 지방은 빙하에 의해서 생긴 퇴석(堆石)과 호소(湖沼)가 여러 곳에 나타나 있다. 중부와 남부의 일부 지역은 토양이 비옥하며 포드졸 토양으로 되어 있으며 원래 소택지로 비옥한 토양이 형성되어 있다.
폴란드의 경제정책은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되고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되면서부터 안정적인 경제정책을 실시하게 되었다. 폴란드는 생필품의 가격의 안정을 위하여 노력하였고, 육류와 일부 식료품의 수입을 자유화하였으며, 임금을 인상하고 가격을 인상하는 인플레 억제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외환보유고의 증가가 통화를 팽창하게 하는 주요인이 되었기 때문에 폴란드 정부는 금리를 인하하고 환율을 조정하는 정책을 주요 정책으로 하고 있다. 폴란드는 세부적으로는 경제구조를 사유화시키고 국영 기업의 비율을 50%이하로 줄이고 1995년까지는 20%로 줄이려 하고 있다. 임금과 고용을 안정시키고 노동시장을 활성화시키려 하며, 농경지를 사유화시키고 국가 보조금을 GDP의 6%에서 5%로 하향 조정하였다. 그리고, 사회 간접시설을 늘리고 도매업 부문을 사유화하며 식품가공업의 독점을 해제하는 것을 진행하고 있다.
폴란드는 역사적으로 보면 많은 외침을 받은 수난의 역사였지만, 예술적으로 보면 자존심이 강하고 자유를 사랑하는 민족임을 알 수 있다. 폴란드는 소련의 스탈린에게 반기를 처음으로 든 나라로 사회주의 국가였을 때도 종교적으로 가톨릭교를 확고히 믿고 발전시켜 나갔다. 폴란드는 역사 이래로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고 있으며, 유명한 인물들이 많이 나왔다. 폴란드에서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음악분야에서 세계적인 작곡가인 쇼팽이 있으며, 과학분야에는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와 라듐을 발명한 퀴리부인이 있고, 문학분야에는 노벨상을 받은 헨리 시엔키에비츠, 레이몬트, 체스와프 미와시가 있고 종교에서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있다. 폴란드의 교육적인 면을 볼 때, 대학생들은 수학과 철학분야에 뛰어난 인재들이 많았으나 현재는 경제와 기술분야에 인재들이 많이 몰리고 있으며, 종합대학이 11개, 기술대 학이 18개, 의과 대학이 11개, 사범 대학이 10개, 농업 대학이 9개, 경제 대학이 6개, 예술 대학이 17개, 체육 대학이 2개, 해양 대학이 2개, 가톨릭 대학이 2개가 있다. 폴란드의 의대생들의 2/3는 여성이고, 치과나 약학과는 대부분이 여성이다. 폴란드에서 유명한 대학은 바르샤바대학으로 1818년에 설립되었으며, 전통이 매우 깊은 학교이다. 야키엘로대학은 1364년에 설립되었고,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중의 하나이며 과학자인 코페르니쿠스가 공부하였다. 폴란드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의 56%는 초등교육을 이수하였고 전체 인구 중에서 고등교육을 이수한 사람은 33%정도이다. 한편 폴란드에는 외국인들을 위한 학교도 존재한다.
항공
폴란드는 2004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직항으로 운항하는 항공사는 없기 때문에 유럽이 대도시나 러시아를 경유하여 갈 수 있다. 폴란드의 국제공항은 수도인 바르샤바, 오테치, 그다니스크, 크라코프등에 있다.
바르샤바 공항은 제 1터미널과 제 2터미널로 구분되어 있다. 제 1터미널은 국제선 시설이고, 서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출입국 하기에 편리하게 되어 있다. 제 2터미널은 폴란드 국내선시설이지만 동유럽 국가들의 항공기가 도착하게 된다. 폴란드의 국영항공사인 LOT(폴란드 항공)은 유럽의 여러 도시와 노선이 연결되어 있으며, 유럽 각국의 항공사가 취항하고 있다.
훼리
발트해에는 그다니스크와 그디니아에 항만시설을 잘 갖추고 있고, 이곳에서 무역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폴란드의 대표적인 국제항구로는 그다니스크, 그디니아, 슈췌친, 슈비노우이쉬에가 있다.
폴란드는 선편을 이용하여 여행할 수 있는데 PLO(폴란드 항공운사)에서 선박여행을 실시하고 있으며, 세계 여러 나라의 항구나 수도의 대리점에서 관련자료를 얻을 수 있다. PZB(폴란드 선박공사)에서는 현대화된 페리호를 통하여 덴마크, 독일, 스웨덴, 핀란드와 연계되어 있다.
수도 : 바르샤바
종교 : 폴란드 민족들이 믿고 있는 종교는 가톨릭교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전체 인구 95%가 가톨릭을 믿고 있다. 폴란드 국민들 모두는 가톨릭의 영향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그 밖에는 이슬람교, 그리스 정교회, 프로테스탄교, 유대교 등이 있다. 역사적으로 가톨릭교는 폴란드인들에게 줄곧 신봉되어져 왔으며 1979년에는 크라코프의 추기경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가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주요민족 : 폴란드인이 97.6%, 독일인이 1.3%, 우크라이나인이 0.6%, 벨로루시인이 0.5% 으로 대체로 단일 민족으로 볼 수있는데 폴란드인 이외의 인종은 2차대전 이후에 유입되었다.
주요언어 : 언어는 국민의 98%가 폴란드어를 사용하며,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들은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기후
폴란드의 기후는 전국적으로 거의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보아 폴란드의 기후는 서유럽의 습도가 높은 해양성 기후와 동유럽의 대륙성 기후가 교차하고 있으며 두 기후를 동시에 영향을 받고 있다.
여름은 덥고 때때로 30℃를 넘을 경우도 있으나 밤에는 대륙성 기후의 영향으로 서늘한 편이다. 여름철의 기온은 지리적인 영향을 많이 받게 되고 중부 지방의 기온이 가장 높은 편이고 남부와 북부는 비교적 낮은 기온을 나타내고 있다.
가을은 폴란드의 사계절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절로서, 하늘이 높고 푸르며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따뜻한 편이다. 가을에도 밤에는 매우 서늘하고, 겨울은 추워서 0℃ 이하일 때가 대부분이다. 폴란드에는 눈이 많이 오는데 특히 남부 지방에는 눈이 많이 와서 남부 지역 산맥들이 겨울 내내 눈으로 휘덮히게 된다. 동부 지방에도 겨울에 눈이 많이 와서 평균 60일∼70일은 눈을 구경할 수 있다. 폴란드의 하천들은 2-3개월간 꽁꽁 얼어붙어 있을 때도 많다.
지리
중부 유럽에 자리잡고 있는 지도상에는 동유럽으로 표시되어 있다. 폴란드는 북위 49°- 54°50′이며 동경 14°7′- 24°8′에 위치 하고 있다. 폴란드와 국경을 같이하고 있는 나라들은 먼저 동쪽으로는 부그 강을 경계로 하여 리투아니아 공화국과 벨라루시 공화국, 러시아 공화국, 우크라이나 공화국이 이웃해 있으며 서쪽으로는 오데르강과 나이세강을 경계로 하여서 독일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카르파티안 산맥을 경계로 하여 슬로바키아 공화국이 위치하고 있으며 수데티 산맥을 경계로 하여 체토 공화국이 있다. 북쪽은 발트해와 접하고 있다. 폴란드의 국토의 모양은 사각형에 가까운 모양을 하고 있다.
폴란드 국토의 대부분은 제 4 빙하기에 속하고 있으며 토의 대부분인 90%가 계곡이 있는 넓은 저지대로 북유럽 평원에 속해 있는 저지대이며 호 수가 여러 곳에 있으며 전체 국토면적의 75% 이상이 해발 200m 이하이다. 폴란드 국토는 전체적으로 평평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역사
6세기경, 지금의 폴란드 북서 지역에 진출하기 시작한 서슬라브인은 10세기께 폴라니족에 의해 통일된다. 그리고 이들은 966년, 폴라니족 피아스트(Piast) 왕조의 미에슈코 1세(Mieszko I)가 로마 카톨릭을 받아들임으로써 국가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025년 볼레스와프가 왕위에 올라 피아스트 왕조의 기반을 다지며 지금의 폴란드와 유사한 영토를 확보하였다. 그러나 주변 세력의 팽창으로 안정적으로 국가가 발전하지는 못했다. 게르만족은 포메라니아 지방에 진출, 정착하였으며 보헤미아 왕국은 실레지아 지방을, 프로이센(프러시아)은 북부 지역을 각각 점령하며 국가의 기반을 위협하였다. 이에 1226년 마조비아 공은 독일의 튜톤 기사단을 불러들여 북동부의 프로이센을 진압하였다. 1241년과 1259년에 연이어 타타르족의 침입을 받아 폴란드 남부 지방이 황폐화되는 등 피아스트 왕국은 1320년 통일될 때까지 외세의 침입에 따른 국권의 수호에 힘을 쏟아야 했다.
14~17세기는 폴란드의 전성기로 기록된다. 특히 피아스트 왕조의 마지막 왕이었던 카지미르 3세는 문화의 부흥과 개혁에 많은 치적을 남겼는데 크라쿠프, 루블린, 포즈난 등의 도시가 이 때 세워졌다. 왕위를 상속할 자식이 없이 카지미르 3세가 죽자 왕위는 헝가리의 야드비가 공주에게 계승되었고, 야드비가 공주는 1386년에 리투아니아의 왕자와 결혼하여 양국은 야기에워(JagieLLo) 왕조로 통합되었다. 이 결혼은 다분히 정략적이었는데, 당시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우크라이나에서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고 있었으며 한편으로는 독일 기사단의 팽창에 함께 위협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1410년에 폴란드·리투아니아·우크라이나 연합군은 그룬발트 전투에서 독일의 튜톤 기사단을 물리쳤고 1454년에 시작된 13년 전쟁에서도 승리하여 그들을 완전히 와해시켰다. 이렇게 되자 프로이센은 1525년에 폴란드의 속지가 되었고, 1490년에 카지미르 4세는 헝가리의 왕위까지 겸임하게 되었다.
16세기에 들어 폴란드는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아 문화와 종교, 사회 전반에 걸쳐 역사적 부흥기를 맞았다. 1543년에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한 저작을 내놓았으며, 종교면에서는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여 교조적인 중세의 종교 행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한편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러시아의 팽창에 대항하여 1569년에 공식적으로 합병하였는데, 이로써 폴란드는 남쪽의 흑해에서 북쪽의 발틱 해에 이르는 대국가를 건설하며 최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이 시기에 들어 귀족 계급의 권력화가 이루어져 귀족들의 투표에 의해 왕이 선출되는 등, 왕은 절대 권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그러나 몇몇 왕들은 귀족 계급과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국력을 신장시키기에 힘을 쏟았다. 스테판 바토리 왕은 군사력을 강화시켜 16세기 말과 17세기 초, 두 차례에 걸친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였고, 얀 소비에츠키 왕도 투르크 군의 빈 봉쇄를 종식시키고 퇴각시키는 공훈을 세웠다.
한편, 이 시기에 폴란드에서는 우크라이나의 코사크족이 농노제와 예수이트 교단의 카톨릭화 정책 등, 폴란드의 지배 정책에 반기를 들기 시작하였다. 결국 우크라이나 동부 지방은 폴란드의 통제에서 벗어나 러시아에 예속되었고, 1655년 프로이센은 스웨덴과의 전쟁 패배로 폴란드에 대한 세력 확장을 꾀해 왔다. 이러한 국가적 혼란은 왕권의 약화를 가져와 귀족의 동의 없이 왕은 어떠한 권력도 행사할 수 없게 되었고, 1652년에는 귀족 회의에 거부권까지 부여되어 폴란드는 정치 공황기를 맞게 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경제적 불안과 함께 러시아, 스웨덴, 터키와의 전쟁 등으로 폴란드는 강대국들의 내정 간섭까지 받으며 급격히 쇠퇴해 갔다. 한편 스타니스와프 아우구스트 왕은 정치적, 사회적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로마 카톨릭과 정교회 간의 분쟁으로 야기된 러시아와의 갈등과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개혁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를 이용하여 주변 강대국들은 폴란드의 내정에 적극 개입하였고 마침내 1772년에 폴란드 분할 조약이 체결됨으로써 폴란드 영토의 3분의 1이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에 분할되었다. 분할이 되자 폴란드 정치인들은 고질적인 귀족 회의의 거부권을 폐지하고 교육 제도를 정비하는 등 일련의 정치, 경제 개혁을 시작하였고, 1791년 5월 3일 신헌법을 공포하였다.
이러한 개혁을 초기에는 터키와 스웨덴의 침공을 우려한 러시아가 폴란드의 개혁을 지원하여 성과가 있었으나 기득권이 약화될 것을 우려한 귀족 연합 세력이 러시아에 개입 요청, 러시아는 폴란드를 침략하였다. 그 결과 폴란드는 1793년 러시아와 프로이센에 의해 2차 분할이 단행되었다.
2차 폴란드 분할이 일어난 후, 폴란드 내에서는 거국적인 봉기가 발생하였다. 특히 타데우시 코쉬치우스코(Tadeusz K ciuszko)는 농도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군대를 조직하여 러시아에 대항하였다. 그러나 러시아의 군사력 앞에는 역부족이었고, 러시아는 이를 계기로 다시 바르샤바를 침공하여 1795년에 3차 폴란드 분할을 주도하여 폴란드의 나머지 영토마저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으로 분할되었다. 이 때부터 폴란드는 1919년에 독립할 때까지 120년 동안 지도상에서 사라지는 비운의 역사를 맞게 되었다.
폴란드가 완전히 분할된 때는 독립 투쟁의 시기였다. 1797년 폴란드 군단이 이탈리아에서 창단되었고, 나폴레옹의 1812년 러시아 원정에 10만 명의 폴란드인이 가세하였으며 세 차례의 무장 봉기, 즉 러시아에 대항한 1830~1831년 혁명, 프로이센에 대항한 1848년 혁명, 그리고 1863~ 1864년에 러시아에 대항하여 일어난 1월 봉기 등이 일어났다.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의 병참 기지로 프로이센이 점령한 폴란드 지역 내에 바르샤바 공국을 세움으로써 폴란드인은 한 줄기 독립의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바르샤바 공국은 나폴레옹 군이 러시아에 패배하여 철수함으로써 붕괴되고 그 결과 1815년, 빈 조약에 의해 폴란드는 러시아 황제에 귀속되어 반자치 국가인 폴란드 왕국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세 차례의 민중 봉기를 지나고 나서 반자치 국가였던 폴란드 왕국은 붕괴되고 완전히 러시아에 흡수당하고 말았다. 1864년 봉기를 끝으로 민중 봉기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지만 농민 계층을 중심으로 민족 의식은 꾸준히 이어져 갔으며 경제·사회 제도도 부분적으로나마 발전되어 나갔다. 특히 프로이센 점령 지역은 독일의 산업화로 공업이 발달하게 되었고, 오스트리아 점령 지역은 발전은 늦었지만 갈리시아 지방에서는 자치권이 인정되어 활발한 민족 운동과 정치 활동이 전개되었다.
해외에 망명해 있던 폴란드인들도 독립을 위한 꾸준한 활동을 전개하며 점차 정파나 정당의 형태를 띠게 되었는데, 1882년에 폴란드 최초의 사회주의적 정당인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가 비밀리에 조직되었고, 1883년에는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oura)가 이끄는 좌파 그룹들이 '폴란드 왕국 사회 민주주의'를 조직하여 폴란드의 독립에 반대하고 러시아의 혁명 세력들과 협력하는 국제 공산주의의 산파 구실을 하기도 하였다.
또한 피우스드스키가 이끄는 폴란드 사회당의 일부 세력이 1908년 로자 룩셈부르크가 이끄는 정당에 가세하여 폴란드 최초의 공산당인 '폴란드 공산당'을 창당하였다. 이렇게 끊임없이 독립에의 의지를 키우던 폴란드는 마침내 러시아 제국의 멸망,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몰락, 그리고 독일 제국의 패망과 함께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주장한 민족 자결주의 원칙에 힘입어 1918년 자력이 아닌 외부의 힘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전압 및 주파수
220V에 50Hz의 전기 규격을 사용한다.
치안
비교적 안전한 편이나, 최근 살인, 마약밀수, 인신매매등 강력 조직범죄 빈발한다. 버스나 전차등 사람이 많은 곳에서의 소매치기와 야간 기차에서의 강도 주의가 요망된다. 특히 국경을 넘는 야간 기차에는 강력한 마취제를 살포한 뒤, 강탈을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Skin Head족 등 불량배들과 마피아가 있긴 있으나, 일반적으로 거리에서는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우범지역은 기차역, 야간의 Old Town, 비스와강 동쪽 북부 프라가 (Praga)지역 등이다.
낮에는 소매치기가 많은 편이므로 혼잡한 버스나 전차, 기차안과 승하차시에 주의하여야 하고,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소매치기의 표적이 되기 쉽다. 밤에는 바르샤바 중앙역과 도심지에서 강도를 만날 수 있으므로 혼자서 다니지 않는 것이 좋으며, 한적한 거리는 다니지 않는 편이 좋다.
통화
폴란드의 통화는 졸티(Zloty)로 미화 1달러가 약 4졸티 정도 된다.
주의사항
• 폴란드를 여행하는데 별다른 제한이 없으나 국립공원에서는 환경보호를 위하여 교통규제가 있으므로 주의하여야 하고 호텔에 숙박할 경우에는 여권을 갖고 있는 것이 좋다. 또한 폴란드 졸티화를 외국으로 반출하는 것과 가지고 들어오는 것을 철저히 통제하므로 주의하고 폴란드 열차에는 여행객들을 목표로 하는 범죄조직이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 겨울철 의복으로는 두터운 외투와 모자가 필요하고, 여름에는 우의가 필요하며 밤에는 서늘하므로 긴팔의 상의가 있어야 한다. 여름에는 면직물의 의류가 적당하다.
• 석회질이 많아소 물위에 뜨는 등 수질이 매우 나쁘므로, 수돗물은 먹을 수가 없으며, 마실 물은 미네랄워터를 구입하여 마시는 것이 좋다.
• 바르샤바 역에는 화장실이 있지만 대개 잠겨 있으므로 열차안에서 해결하여야 한다. 폴란드의 화장실 표시는 남자는 빨간색이고 ▽ 표시가 있고, 여자는 파란색이고 ○ 표시가 되어 있다. 화장실에는 휴지가 구비되어 있지 않으므로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한다. 팁 제도는 일반적으로 10%정도의 팁을 주며, 주로 음식점, 호텔, 이용원, 카페 등에서 팁을 기대한다. 이 나라의 특산품으로는 폴란드의 특산품인 호박(Amber)과 전통 술 보드카가 유명하다. 그리고, 손으로 수를 놓은 폴란드 특산 식탁보도 이색적인 기념품이 될 수 있다.
철도
폴란드에서는 동유럽 철도패스를 이용할 수 있다. 동유럽 철도패스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폴란드, 슬로바키아의 철도 시스템을 1개월 동안 정해진 기간 동안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1등석과 2등석으로구분되며 5일권이 기본이며 여기에 하루씩 최대 5일을 추가할 수 있다.
1등석 5일권은 $226, 2등석은 $160이며 하루 연장할 때마다 1등석은 $26, 2등석으 $19을 추가로 지불한다. (가격은 2004년. 미국 달러 기준)
폴란드의 기후는 전국적으로 거의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보아 폴란드의 기후는 서유럽의 습도가 높은 해양성 기후와 동유럽의 대륙성 기후가 교차하고 있으며 두 기후를 동시에 영향을 받고 있다.
여름은 덥고 때때로 30℃를 넘을 경우도 있으나 밤에는 대륙성 기후의 영향으로 서늘한 편이다. 여름철의 기온은 지리적인 영향을 많이 받게 되고 중부 지방의 기온이 가장 높은 편이고 남부와 북부는 비교적 낮은 기온을 나타내고 있다.
가을은 폴란드의 사계절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절로서, 하늘이 높고 푸르며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따뜻한 편이다. 가을에도 밤에는 매우 서늘하고, 겨울은 추워서 0℃ 이하일 때가 대부분이다. 폴란드에는 눈이 많이 오는데 특히 남부 지방에는 눈이 많이 와서 남부 지역 산맥들이 겨울 내내 눈으로 휘덮히게 된다. 동부 지방에도 겨울에 눈이 많이 와서 평균 60일∼70일은 눈을 구경할 수 있다. 폴란드의 하천들은 2-3개월간 꽁꽁 얼어붙어 있을 때도 많다.
▶ 바르샤바
폴란드의 수도이자 바르샤바주의 주도로 인구는 약 165만명이며 바르샤바평야의 중심부인 비슬라강의 중류 양안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바르샤바는 중요한 2개의 통로, 즉 유럽 평원을 가로지르는 동서통로와 발트 해와 남유럽을 연결하는 통로가 교차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바르샤바는 폴란드의 교통, 통신의 중심지일 뿐 아니라 동유럽으로 통하는 중요한 교통로의 요충지입니다.
13세기에 바르샤바에 도시가 건설되고, 14세기부터는 그 지방을 차지한 여러 제추령의 중심도시가 되어오다가 1596년부터 지그문트 3세에 의해 폴란드 왕국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1795년에는 프러시아에 통제를 받으며 폴란드 왕국으로 명백을 겨우 유지하였으나 나폴레옹에 의해 수도로 다시 환원되었습니다.
바르샤바는 1914년 세계 1차 대전 때, 독일에 점령당했다가 독립을 되찾았지만, 세계 2차 대전 때는 나치로부터 처절한 보복을 당했습니다. 그로인해 바르샤바 주민의 3분의 2가 살해당했고 시내 대부분의 80%가 파괴되었으나 바르샤바 시민들은 그들의 역사적인 도시를 새롭게 건설하면서 현대적인 도시로 복원해 냈습니다.
폴란드는 여전히 도로확장, 교회, 대저택의 개조, 고원 지역의 확대 등으로 도시의 현대화에 힘쓰고 있으며, 바르샤바에는 폴란드 국회와 그외의 정치기관들, 정부 단체들이 있으며 폴란드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 중심지가 바로 바르샤바입니다. 또한, 바르샤바는 폴란드의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 많은 화랑과 극장, 박물관등이 있으며 역사동후회, 쇼팽 협회같은 많은 문화 단체들이 조직되어 있습니다.
바르샤바는 교외선, 고속도로, 전차등의 대도시권과 통하는 교통망이 잘 되어 있는데, 이처럼 바르샤바는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며 철도, 도로교통의 요지이면서 볼거리가 많아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 도시입니다.
교육
174년의 역사를 가진 바르샤바 대학은 폴란드에서 크라쿠프의 야기에오 대학 다음으로 오래되었고 1818년에 창설되었습니다. 폴란드 최고의 명문대학으로 교정에는 나무와 꽃들로 가득하고 여름에는 마치 큰 저택의 정원같은 아름다움을 뽐냅니다. 대학안에는 코페르니쿠스 상과 미츠키에비치 상, 1830년에 세워진 코슈스코 상이 있는데 세계 2차 대전때 많이 손상되었다가 현재는 보건된 상태입니다.
바르샤바 대학은 거대한 도서관을 갖추고 있고, 많은 연구소와 산업체를 통해 자연과학 및 사회 과학 연구를 조성하는 '폴란드 국립과학학술원'의 활동이 바로 이 바르샤바 대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활발한 연구활동의 중심지로 특히 핵물리학과 기생충학과 분야의 연구가 돋보이는 곳입니다.
산업
산업은 다양하며 노동력의 약 3분의 1이 국영제조회사에 고용되어 있습니다. 나머지는 대부분 협동 산업체, 중소 민간기업, 국영도매상에 종사하며, 전기공학, 야금, 인쇄업, 화학제품, 섬유, 의류, 식품 등의 제조업이 경제를 주도합니다. 또한, 바르샤바는 고도로 전문화된 원예 및 채소 재배의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 크라카우 [Krakow]
크라카우라는 지명은 바베르 구릉에 요새를 구축했던 슬라브 종족의 전설적 지배자 크라크의 이름에서 유래되었으며, 1038년 폴란드의 수도로 지정된 후 558년간 바르샤바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폴란드의 수도였으며, 현재에도 폴란드의 문화와 교육의 중심지로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도시로서 1978년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 12대 유적지로 선정되었으며, 2000년에는 유럽의 문화도시로 지정되어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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