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꼭 한번은 가봐야 하는 여행지, 바로 그리스 아테네다. 민주주의의 산실이자 서양 문명의 뿌리 그리고 신화의 땅인 아테네는 그 역사성만으로도 방문할 가치가 충분하다. 여기에 2천5백 년 전의 건축술도 놀랍다. 아테네는 그래서 전 세계에서 여행자들이 몰려든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는 그리스의 이상 도시였다. 거기 지어진 건축물들이 모두 그리스 신화와 닿아 있다. 게다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배출한 철학의 땅이기도 하다. 서양이라는
뿌리를 쫓아가다 보면 결국은 아테네와 닿는다. 아테네에서도 아크로폴리스는 서양 문명의 심장이다.

언덕 위에 세워진 신들의 도시
아크로폴리스는 공사 중이다. 2차 대전 이후 공사가 중단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아크로폴리스는 언덕 위에 세워진 굳건한 성채처럼 보인다. 아크로폴리스 자체가 높은 곳에 세워진 도시라는 뜻을 담고 있다. 높다는 뜻의 아크로스(Akros)와 도시국가란 뜻의 폴리스(Polis)를 합친 말이다. 아크로폴리스는 원뿔형의 언덕을 칼로 뚝 잘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높이는 190m가 조금 넘는다. 거대한 돌성이며 요새다. 여기서는 아테네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입구는 여러 곳에 있다. 여행객들은 성벽 옆을 따라 놓인 탐방로를 오르다 거대한 기둥 숲을 지나 아크로폴리스로 안내된다. 비록 무너지고 부서진 기둥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지만 아크로폴리스의 신전들은 장관이다. 대리석에 홈을 파서 세워놓은 신전의 기둥은 2천 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눈부시게 하얗다.

절벽 아래에서 올려다 본 파르테논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막상 신전 앞의 돌기둥 옆에 서면 입이 턱 벌어질 정도로 장관이다. 파르테논은 과연 누구의 신전일까? 아테나 여신을 위한 신전이다. 아테나는 제우스의 머리에서 나온 풍요의 여신이었다. 아테나는 처녀 신이었으므로 아테네 사람들은 신전을 처녀의 집, 즉 파르테논이라고 불렀다.

아테네 사람들은 아테나 여신과 포세이돈을 서로 경쟁관계로 생각했다. 아테나는 땅을 풍요롭게 해주는 신이고, 포세이돈은 물을 다스리는 신이다. 땅과 물 중 아테네는 땅의 신을 택했다. 아테네의 지형을 보면 아테네 사람들의 선택을 짐작할 수 있다. 산자락마다 올리브를 심어놓고 사는 이 도시 사람들은 포세이돈보다는 아테나 신을 더 사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신들이 인간 같고, 인간이 신 같은 곳
아크로폴리스에는 파르테논뿐 아니라 승리의 신 나이키 신전, 에레크테우스 신전도 있다.
여기서 신들에 대한 궁금증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 그리스 신들은 한마디로 ‘철딱서니가 없다’. 진리만을 이야기하는 고귀한 신들이 아니다. 그리스의 신은 오히려 인간보다 변덕스럽다. 제우스는 여기저기서 바람을 피우고 헤라는 질투한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제우스의 아내 헤라, 아테나 여신은 서로 자신이 미인이라고 싸우다 결국은 인간들을 전쟁으로 몰아넣고 만다. 트로이 전쟁의 불씨를 만든 것이 바로 세 여신이다. 신들은 이처럼 욕심이 많고, 서로 질투한다. 흠결 없이 완벽함으로 인간을 다스리는 동양의 신과는 판이하다.

그래서 신들이 인간 같고, 인간이 신 같은 곳이 바로 그리스다. 고대 아테네인들은 파르테논의 벽에 신과 인간의 역사를 새겨놓았다고 한다. 신들이 벌인 전쟁, 전설의 여 전사 아마조네스와 켄타우로스의 전쟁, 아테네 사람들과 아마조네스의 전쟁, 트로이 전쟁 등을 새겼다. 신들의 역사이자 사람들의 역사이다.

하지만 부조물을 찾기는 힘들다. 대리석 기둥 위에는 말 조각상만 남아 있다. 중요 유물은 영국인들이 영국 박물관으로 대부분 옮겨갔다. 영국인들은 기둥까지 뽑아 가버렸다.

남아 있는 조각품도 대단하다. 2천5백 년 전에 어느 장수가 이끌었던, 아니면 신들이 타고 다녔을 법한 잘생긴 백마상은 지금도 살아 움직일 듯이 생생하다. 돌을 찰흙처럼 다룬 아테네인들의 솜씨가 놀랍다.
파르테논에 눈길을 뺏겨 다른 신전들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실은 하나같이 신화와 역사를 다루고 있다. 진입로에 있는 니케 신전은 고대사에서 아테네인들의 자부심이 담겨 있다.

페르시아 전쟁의 승전 기념물, 니케 신전
교과서에서 아테네는 민주주의가 꽃핀 곳으로 나온다. 그럼 평화의 땅이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했다. 고대나 지금이나 힘이 세상을 지배한다. 당시 지중해의 주요 국가는 아테네와 스파르타, 그리고 페르시아였다. 이들이 에게해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던 것이다. 니케는 영어로 하면 나이키, 즉 승리의 여신. 니케 신전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이긴 뒤 그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전쟁은 이렇게 시작됐다. BC 490년 페르시아의 다리우스는 아테네에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그리스 건너편 터키 지방이 당시 이오니아. 이오니아인들이 페르시아에 반기를 들자 아테네인들이 이오니아인들을 도왔던 모양이다. 페르시아는 약이 올랐다. 아테네를 응징하려 했지만 첫 번째 전투는 아테네의 승리로 끝났다. 그 유명한 마라톤 전투가 바로 여기서 나왔다. 10년 후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복수의 칼날을 갈던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가 다시 쳐들어왔다. 이때 그리스 도시국가의 동맹국을 이끈 것은 스파르타.

영화 ‘300’은 바로 이 전쟁에서 죽은 스파르타 전사들을 영웅으로 그려놓은 것이다. 영화에서는 크세르크세스를 마치 괴물처럼 묘사했다(이 영화 속에는 동양에 대한 은근한 편견이 들어 있다. 스파르타 전사는 완벽한 몸짱인데 동양인들은 괴수 같다는 발상 자체가 편견이다).

영리한 아테네인들은 도망을 가버렸다. 그래서 화를 모면했다. 나중에 아테네는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인들을 대파, 대승을 거뒀다. 이 승리의 기념관이 바로 니케 신전이다.

니케 신전은 파르테논에 비하면 초라하다. 하지만 그리스 최강국으로 떠오른 아테네는 파르테논을 세운다. 그전에도 아테나 신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페르시아인들의 공격으로 파괴된 상태. 아테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는 파르테논, 에레크테이온, 니케 신전을 지었다. 현재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시기의 전승 기념물인 셈이다.

여인들의 모습이 기둥처럼 새겨져 있는 에레크테이온은 페르시아가 아테네 신전을 파괴했을 때 신들을 모신 임시 신전이었다. 아테네 여신과 포세이돈, 아테네의 건국 시조 에레크테우스를 함께 모신 곳이다.

현자의 죽음 그리고 아테네의 몰락
신들은 서로 질투하고 싸워댔지만 아테네의 철학자들은 신들보다 더 점잖았다. 소크라테스를 살펴보자. 아테네 사람들은 왜 소크라테스 같은 성인을 죽였을까? 가이드의 이야기가 재밌다. 소크라테스의 추종자 중 하나인 카이레폰은 아폴론 신전에서 신에게 물었다. “소크라테스보다 현명한 사람이 있는가?” 그는 “없다”는 신탁을 받았다. 설마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한 소크라테스는 거리에 나가 많은 사람에게 “진리란 무엇인가”와 같은 주제를 묻고 답했던 모양이다. 소크라테스는 그 유명한 삼단논법으로 아테네의 ‘토론 왕’이 됐다. 소크라테스에 맞선 상대방들은 논쟁에 지고 망신만 당했다. 이들이 원한을 품게 됐고, 결국 소크라테스를 법정에 세웠다.

당시 아테네의 규율상 소크라테스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딱 두 가지였단다. 추방당하든지, 아니면 죽든지.
추방을 거부하면 죽임을 당할 수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당당하게 사형 선고를 받을 수 있는 위험한 선택을 했다. 이때 그가 남긴 명언은 바로 ‘음미하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를 가뒀다는 감옥은 지금도 남아 있다.

현자나 철학자를 죽인 나라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은 늘 역사가 증명한다. 아테네도 그랬다. 페르시아가 물러가니 이번엔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벌였다. BC 431년 터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는 스파르타에 결국 패했다. 이후 아테네는 다시는 강국으로 떠오르지 못했다.

아테네의 몰락과 함께 그리스의 시대도 저물어갔다. 스파르타의 전성기도 잠시, 이후 세계의 주인은 로마가 됐다. 후에 동로마제국은 파르테논을 그리스 정교회 성당으로 썼고, 오스만튀르크는 이슬람사원으로 사용했다.

그럼 누가 아크로폴리스를 부숴버렸는가?
아크로폴리스를 폐허로 만들어버린 사람들은 1697년 베네치아군이었다. 아크로폴리스에 머물고 있던 터키군을 공격하기 위해 대포를 쐈고, 당시 2천 년 가까이 버텨온 신전은 무너지고 파괴됐다. 근대에 와선 영국인들이 유물들을 떼어내고 훔쳐갔다.

아크로폴리스는 사실 하나의 거대한 돌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돌 속에 신화가 있고, 돌 속에 전쟁이 있다. 돌은 그냥 세워지지 않았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 같은 기법이 이미 2천5백 년 전 파르테논 신전에 적용됐다. 중간 부분을 약간 더 크게 만들어야 시각적으로 반듯하게 보인다는 것을 아테네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돌 하나가 과학이며 돌 하나가 역사이다.


여행 길잡이
그리스로 가는 직항 편은 없다. 유럽(프랑크푸르트, 암스테르담, 파리, 로마, 이스탄불)을 거치거나 두바이 등을 거쳐서 간다. 국제공항에서 시내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리며 익스프레스 버스가 다닌다. 시내에선 지하철과 트롤리버스가 편하다. 지하철은 역무원에게 아크로폴리스라고 말하면 표를 준다. 전철역에서 내려 15~20분이면 아크로폴리스 매표소까지 걸어 갈 수 있다. 택시도 다른 유럽 도시에 비해서는 저렴하다. 시내에선 5유로 이내로 다닐 수 있다. 다만 짐을 실을 때는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

신타그마 광장은 아테네의 중심 거리다. 쇼핑하기에도 좋다. 아크로폴리스에서도 걸어서 30분이면 갈 수 있다. 신타그마란 헌법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국회의사당이 있다. 국회의사당을 지키는 병사의 신발은 마치 미키마우스의 장화처럼 우습다. 사진 포인트다. 트롤리버스도 중심가를 다니는데 신문 판매대에서 표를 살 수 있다. 아테네 중심가에 있는 여행 안내소에 가면 여행 안내 책자와 버스, 기차, 페리 시간표, 호텔 리스트, 그리스와 아테네 시내지도를 제공해준다.

글&사진 / 최병준 (경향신문 기자)
출처 : http://lady.khan.co.kr/khlady.html?mode=view&code=10&artid=1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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