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유럽 동쪽에서부터 아시아 북부에까지 걸쳐 있는 나라이며,전세계 육지의 1/6을 점유하고 있다. 21개 공화국과 6개 지방(krai), 49개 주(oblast), 1개 자치주, 10개 자치구(okrug), 2개 시(모스크바,상트 페테르부르그) 등 총 89개로 나누어져 있다.
러시아는 넓은 영토를 점유하는 까닭에 북쪽의 사막지역, 툰드라,산림툰드라,산림,스텝,산림 스텝 등 다양히 분포되어 있으며, 석유, 철, 가스, 철광석, 인회석, 칼리염, 인광석, 금등이 매장되어 있다. 전세계 천연자원의 1/4을 보유하고 있으며, 가채 매장량은 엄청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러시아하면 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많이 남긴 국가로서 유명한데,특히 문학 부문에서는 러시아만의 독특한 문학을 가지고 있다. 이미 많이 알려진 '죄와 벌','전쟁과 평화'로 잘 알려진 러시아 문학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으며, 많은 작품들이 해외에 소개되었다. 고대 러시아 초기에 연대기와 성자전 문학을 시작으로 하여 18세기에 이르러서야 시로 대표되는 운문 문학이 자리를 잡았으며, 19세기 초반에 산문 문학의 체계가 잡힌 러시아 문학은 그 짧은 역사에 비하여, 전 세계인들에게 어느 서구의 문학보다도 지명도가 높다. 또한,19세기 초 푸쉬킨에 의해 발아된 러시아의 리얼리즘 문학은 벨린스키와 고골리를 거치면서 그 내용과 형식이 더욱더 발전되어 갔으며 투르게네프를 포함한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 시기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이하였고 세계 문학의 정상에 서게 되었다.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의 형성기인 19세기 전반기의 대표작들로는 푸쉬킨의 '대위의 딸'을 비롯하여 고골리의 '외투', '죽은 혼' 등이 있으며, 러시아 문학의 전성기인 19세기 후반에는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부활' 등의 작품들이 있다. 19세기 말~20세기 초에는 희극과 시가 인기를 얻기 시작하였다. 당시의 주요 희극 작가로는 안톤 체호프를 들 수가 있는데,그의 작품인 '벚꽃 동산'에는 쇠퇴해 가는 러시아 귀족 사회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고리키라는 걸출한 작가의 등장은 소비에트 시기를 대표하는 문학 사조인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탄생을 예고하였으나,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가진 문학적 경직성과 비자율성은 결국 솔제니친, 브로드스키 등의 망명 작가들을 탄생시켰다.
제정 러시아 초기의 음악은 주로 이탈리아와 서유럽으로부터 들어온 것이었다. 유명한 음악가로 차이코프스키를 들 수 있으며 국민 악파 5인조의 사상을 이어 받아 발레곡 '백조의 호수'와 교향곡 제 6번인 '비창'을 남겼다. 혁명 초기에는 쇼스타코비치와 프로코피예프가 러시아 음악계를 주도하였다. 특히 쇼스타코비치는 정부의 음악 관계자들과 심각하게 대립했지만 실내악,오페라,발레곡,교향곡 등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발표했으며,그 가운데 `15번 교향곡'은 매우 유명하다. 비교젹 최근의 대중 가수로 한국계 록 가수 빅토르 최의 인기는 사후인 지금도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러시아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발레인데 러시아에 처음 들어온 것은 18세기 초 표트르 대제 때였다. 발레에 대한 러시아인의 관심은 매우 컸으며 19세기에는 서양 무용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차이코프스키의 발레곡들은 러시아 발레의 전망을 한층 더 밝게 해주었다.
면적 : 1707만 5400㎢
수도 : 모스크바
인구 : 약 1억 4441만명
정치형태 : 공화제
종교 : 러시아 정교, 이슬람 교, 기독교 등
주요민족 : 러시아인이 85%, 그 외는 소수민족이 15%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소수 민족은 오랜동안 소련세력에의해 점령당했던 민족이 많아 자연스레 민족간의 갈등이 잦은 편이다. 간혹 민족분규가 매스컴을 장식한다.
주요언어 : 공용어는 러시아어이지만 다양한 민족구성 만큼이나 다양한 언어가 사용된다. 취학후 일정기간까지는학교에서도 소수민족의 언어를 배운다.
기후
러시아의 기후는 그 위치와 면적, 지형 등에 따라서 크게 달라진다. 광대한 영토의 대부분이 중위도 또는 고위도에 위치하고 한랭한 지역이 많을 뿐 아니라 해양의 영향도 많이 받고 있다. 러시아는 동서로 길 뿐 아니라 남북의 폭도 극히 넓어 남북의 기온차도 현저하게 크다.
흑해 연안의 얄타 지방은 1월의 평균 기온이 3.7℃인 반면,북쪽 끝의 첼류스킨 곶 지방은 더운 날이 거의 없다. 특히 베르호얀스크에서는 기온이 -67.8℃까지 내려간 일이 있어 북반구의 한극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대륙성 기후로서,모스크바 부근은 겨울 평균기온 영하 10도,여름 평균기온은 영상16도에 이른다.
서쪽의 유럽 러시아 지역은 여름인 7월의 경우 등온선 분포는 거의 위도와 평행하는 양상을 보이는데, 북극해 도서지방은 0 ℃,북극해안은 5∼10 ℃,시베리아 일대는 15 ℃ 전후, 유럽 러시아 지역은 20 ℃에 육박하는 기온분포를 보인다.
강수량 분포는 북위 60 ° 부근을 정점으로 하여 남북으로 갈수록 강수량이 떨어지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대서양 기단의 진로가 북위 60 °선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지역의 강수량이 500 mm 이하인 가운데, 유럽 러시아와 동 시베리아에서는 500 mm,시베리아 중부 400 mm,북극해,카스피해 부근에서는 250 mm 이하의 강수량 분포를 보인다. 우랄산맥에는 지형성 강우가 빈발하는 편이며,지중해성 기후와 유사한 흑해 부근에서는 겨울 강우량이 많다. 또한 극동지역은 몬순성 강우가 많다.
러시아에서 여행하기 가장 좋은 계절은 5~7월의 초여름이다. 거의 매일 상쾌한 날씨에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무르만스크에서는 백야도 볼 수 있다. 시베리아의 경우는 7~8월이 아주 좋다. 최상의 아름다운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때이다. 러시아는 여름다운 여름, 겨울다운 겨울을 느끼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이런 계절의 묘미를 즐기기 위해 여름여행과 겨울여행을 러시아에서 즐겨보자.
지리
러시아의 국경은 과거 소비에트 연방에 속해 있던 현 독립 국가 연합(CIS: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 구성 공화국들과 동구 유럽 여러 나라 및 중동과 우리 나라를 포함한 수많은 유라시아 국가들과 마주하고 있다. 동경 19,서경 169.5,북위 44°- 82°사이에 위치해 있는 러시아의 영역은 북동유럽에서 우랄 지역을 거쳐서 시베리아와 극동 지방에 이른다.
서부 및 서시베리아는 평원지역이며, 동시베리아는 산악지대를 이루며 중간의 우랄산맥을 제외하면 러시아의 지형은 남동쪽으로 험준한 산악지대가 발달하였고, 북서쪽으로는 광활한 평지가 펼쳐져 있어 흡사 커다란 반구형의 극장과 같은 형상을 이루고 있다. 지형적 특성에 따르면 러시아는 콜라-카렐리야 지역, 러시아 평원, 카프카스 지역, 우랄산맥, 서(西)시베리아 저지, 중앙 시베리아 고원, 남부 산악지대, 동부 산악지대로 구분된다.
콜라-카렐리야 지역은 핀란드 국경을 접한 유럽 러시아의 북서부 지역이다. 카렐리야 지역은 고원지형을 이루나 해발고도는 낮다. 대부분 200 m 이하의 구릉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며, 곳곳에 빙하호와 늪지가 발달하였다. 콜라반도에는 히비니산(1,191 m)을 제외하고는 해발고도 300 m 미만의 낮은 구릉이 발달하였다.
러시아 평원은 서쪽 국경선으로부터 동으로 우랄산맥까지, 북극 해로부터 남으로 카프카스 지방과 카스피해까지 펼쳐진 대평원이다. 광활한 평원의 서쪽과 남쪽으로 발다이구릉, 스몰렌스크-모스크바고원, 중앙러시아고원,프레몰가고원 등 400 m 미만의 저산지가 분포해 있다. 이 고원들 사이로 드네프르강, 돈강, 드비나강 등이 흐르면서 그 주위에 범람원을 이루고 있다. 특히 발다이 구릉은 해발고도 300 m 내외의 빙하성 산지로서 볼호프강, 드비나강, 볼가강 등의 분수계 역할을 하고 있다.
카프카스 지역은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쿠반저지와 쿠마저지 및 카스피해 연안저지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으며 북쪽으로 러시아평원과 연결된다. 특히 카스피해 연안은 해수면 이하(-27 m)의 낮은 저지대이다. 쿠반저지와 쿠마저지 사이에는 평균 해발고도 400 m의 스타브로폴고원이 있다. 한편 카프카스 지역 남단에는 험준한 카프카스산맥이 동서로 발달해 있어, 러시아와 그루지야, 아제르바이잔 사이의 국경선 역할을 한다. 우랄산맥은 북극해 연안에서 카자흐스탄에 이르는 총 길이 약 2,080 km의 습곡산맥으로서 러시아평원과 서시베리아저지를 구분해주고 있다. 북쪽의 나로드나야산(1,894 m)을 비롯해 해발고도 1,500 m이 넘는 산은 소수이고 그 사이로 낮은 산들이 이어져 있다. 그래서 우랄산맥은 큰 교통장애 요소가 되지 못하며, 일찍부터 주요 교통로가 발달해 왔다. 서 시베리아저지는 우랄산맥에서 동쪽의 예니세이강까지,북극해에서 남쪽 알타이산맥까지 펼쳐져 있는 광활한 지역이다. 이 저지는 오브강과 이르티슈강이 형성한 거대한 범람원으로서 늪지가 많다.
중앙 시베리아 고원은 예니세이강과 동쪽의 레나강 사이에 발달한 고원지대로서 대부분 해발고도 400∼700 m의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니세이강과 레나강의 지류가 고원 사이로 흐르면서 골짜기를 이룬다. 중앙 시베리아 고원 북쪽으로는 비랑가산맥과 푸토란산맥이 있으며, 남쪽에는 바이칼리아 산맥이 있다. 이들 산맥은 비교적 높은 산들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에는 야쿠티아분지가 형성되어 있다. 남부 산악지대는 카자흐스탄의 동쪽 국경선에서 바이칼호에 이르는 지역으로, 알타이산맥, 동, 서 사얀산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산맥들은 해발고도 2,700∼4,200 m의 험준한 산지로서, 정상부에서는 평탄한 고원을 이룬다. 또한 정상부의 만년설이 녹으면서 예니세이, 오브, 이르티슈강에 물을 공급하고 있다.
한편 바이칼호는 단층작용으로 형성된 거대한 호수로 최대 수심이 1,616 m에 이른다. 동부 산악지대는 동쪽의 바이칼호로부터 야블로노비산맥, 스타노보이산맥, 주그주르산맥, 콜리마산맥, 추코트 산맥으로 이어져 베링해까지 연결된다. 한편 베르호얀스크 산맥과 체르스키산맥은 남북으로 뻗어 각각 주그주르산맥,콜리마산맥과 만난다. 이 산맥들은 해발고도 2,000∼3,000 m 사이의 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고대 유럽 지괴와 북아메리카 지괴가 충돌하면서 형성된 습곡산지이다. 한편 동부산악지대의 동쪽지역은 화산이 집중 분포해 있다. 특히 캄챠카반도와 쿠릴열도는 활발한 화산활동이 일어나고 있는 환태평양 화산지대의 일부이다.
간단한 현지어
현지어 : 스까쥐쩨 빠좔루이스따,까또르이 차스?
의 미 : 몇시 입니까?
현지어 : 다이쩨,빠좔루이스따,드바 빌레따 다 세울라 .
의 미 : 서울행 표 2장 주세요.
방문적기
러시아의 여름여행
러시아는 대륙 자체가 넒기에 지역에 따라 다양한 기후가 있다. 러시아의 여름은 우리 나라처럼 30℃ 이상이 되는 때도 있다. 하지만 시베리아의 경우기온이 10℃ 아래로 내려가는 경우도 있다. 특히 비가 온 후에는 기온에 더 떨어져서 겨울날씨와 같이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추워지기도 한다. 따라서 속내의는 기본으로 준비하고 긴팔이나 스웨터 또는 두껍지 않은 잠바를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한가지 더, 러시아의 모기는 여행을 하는 내내 성가신 존재들이다. 간팔이나 긴바지를 입거나 모기향을 준비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만원 정도 투자해서 방충망을 준비해 모기 때문에 오는 여행중 스트레스에 미리 대처해 보는 것도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러시아의 겨울여행
세계에서 가장 추운 베르호얀스크(시베리아)가 있는 러시아의 겨울은 -40℃는 거뜬히 넘고 그 외 기역도 우리 나라의 추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살은 에는 듯한 추위"에 대한 두려움으로 겨울 중 러시아 여행을 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방한 대책을 단단히 세워둔다면 겨울 중 러시아에서의 좀 더 색다른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추운 지역을 여행할 때는 무조건 두꺼운 옷을 입는 것 보다는 얇은 옷으로 여러 겹 겹쳐 입는 것이 보온에 효과적이다. 그리고 셔츠나 바지, 스웨터는 울제품으로 입는 것이 좋다. 신발은 가죽으로 만든 가벼운 등산화가 좋고 두꺼운 양말을 신고 습기가 차지 않도록 자주 갈아 신을 수 있게 양말을 넉넉히 준비해 두자. 장갑은 가벼운 장갑을 먼저 끼고 털장갑을 끼면 좋다. 이밖에 털모자, 목도리 등으로 몸을 따뜻하게 유지해야 한다. 덧붙여 안경을 쓰는 여행자의 경우 차가운 곳에서 더 차가워 질 수 있는 메탈소재의 안경테는 삼가는 것이 좋다.
역사
10세기 중엽 스뱌토슬라프 공후는 하자르족과 볼가불가르족을 원정하여 승리하고 비잔틴 제국과 도나우불가르족과의 전쟁에 개입함으로써, 동유럽에 새로운 정치 세력이 출현했음을 알려 주었다. 그의 아들 블라지미르는 최초의 법전을 반포하고, 그의 일족을 종가로 하는 왕조 체제를 이룩하였으며,988년 비잔틴 정교를 국교로 선포하였다. 또한 그는 키예프의 영토를 동서남북으로 크게 넓혀 나갔는데,그 경계는 서쪽으로는 카르파티아 산맥,동쪽으로는 볼가 강에 이르렀다. 그러나 블라지미르의 후계자들은 그 광대한 영토에서 오래도록 안정된 정치를 펴지는 못했다.
키예프가 쇠퇴하자 당시 가장 중요한 상업 중심지였던 노브고로드 공국은 키예프 대공의 지배권에 대항하여 독립을 선언하면서 키예프 공국의 주도권을 잡았으나 곧바로 블라지미르 공국에게 그 자리를 넘겨 주었다. 블라지미르 공국은 1108년 블라지미르 모노마흐에 의해서 건설되었으며 그의 아들인 유리 돌고루키와 손자 안드레이 보골류프스키의 통치에 이르러 정치적, 문화적으로 꽃을 피웠다. 그러나 수세대에 걸쳐 류릭 가문의 여러 공국들이 분열되어 서로 다툰 것이 원인이 되어, 1223년 키예프의 군대는 칼카 강변에서 몽고군 정찰대에게 궤멸, 1240년 키예프 공국은 몽고군에게 정복되었고,1480년까지 몽고의 지배를 받았다.
또한, 모스크바 공국 시기의 모스크바 공국(Grand Principality of Moscow)은 13세기 초 블라지미르 공국 내 하나의 왕자령으로 창건되었고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미하일 호로브리트 등의 공후들을 거치면서 영역을 넓혀 나갔으며, 14세기 초 이반 1세의 통치 시기에 이르러 그 세력이 크게 확장되었다.
이후 15세기 초 모스크바는 러시아의 맹주로 부상했는데, 이반 3세는 몽고군을 러시아 땅에서 완전히 몰아내는 데 성공하였으며,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동슬라브의 전 영토를 통일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였다. 그는 효과적으로 군사·외교 활동을 펴 모스크바의 영토를 크게 확장하였고, 체계적인 관료 정치와 토지 제도도 발전시켰다.
1533년 왕위에 오른 이반 4세는 러시아 역사상 가장 난폭한 폭군으로 알려져 있는데, 스스로를 `짜르'라 칭하고, 대러시아 제국의 황제임을 자처하고, 구소련 시대 KGB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오프리츠니나(Oprichnina:이반 4세의 친위대)'를 자신의 직속 기관으로 두어 공포 정치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이반 4세 이후 러시아는 혼란의 시기로 결국 1613년 류릭의 후손이 아닌 미하일 로마노프를 짜르로 선출하기에 이른다. 이로써 862년부터 왕조를 이어 온 류릭 가문은 551년 만에 로마노프가에 그 지위를 양보하게 된다.
로마노프 정부가 정치적인 안정을 이루고 경제와 사회의 질서를 회복하기까지는 10년 이상이 소요되었다.1649년에는 대법전이 만들어졌는데, 이 법전은 교회를 국가의 관할하에 두었고, 농노제를 법제화하여 농민을 지주의 영원한 소유 재산으로 성문화하였다. 하지만 러시아도 종교 개혁의 소용돌이를 벗어날 수 없었으며 러시아 정교회의 분열, 구교도의 업악등 시련을 겪었다.
러시아 제국 시기 표트르 대제와 예카체리나 여제의 치세(17세기 말~18세기 말) 17세기 말 러시아는 대제 표트르 1세의 등장을 맞이하게 된다. 표트르는 스웨덴으로부터 획득한 땅에 새 수도 상트페테르부르그를 건설하고 그것은 러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 서유럽 쪽으로 옮겨 갔음을 상징하였다. 표트르는 공식적으로 모스크바 공국의 짜르 체제를 바꾸어 러시아 제국을 선포하였으며, 그 자신은 스웨덴과의 강화 조약 체결 때 황제의 칭호를 받았다. 표트르는 자신의 개인적 역할보다는 공적인 기능을 강조하고 근대적인 행정 체계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를 유럽의 강대국으로 부상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으나 강압적인 개혁은 민중의 강한 반발을 샀다.
표트르 대제 이후 1762년 궁정 혁명을 통하여 독일 태생의 러시아 황실의 며느리인 예카체리나가 남편인 표트르 3세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그녀의 재위 기간에 동부 폴란드, 옛 리투아니아 지역, 흑해연안, 크림반도 등 러시아 제국의 영토가 상당히 확장되었다.
18세기를 통해 전제 정치와 농노제의 토대를 확고히 한 러시아 제국은 19세기에 들어서,특히 나폴레옹을 물리친 이후 그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며 농민반란과 새로이 등장한 지식층(인텔리겐차)으로 인해 혼란이 가중되면서 혁명이 일어나고 1차대전을 맞는다. 계속된 패전과 혼란 속에 레닌이 볼세비키혁명을 수립 임시정부를 타도하고 1917년 소비에트 정부를 수립하였다.
소비에트 정부는 전면적인 공산화를 시행하고 레닌 사후 스탈린으로 정권이 옮겨가면서 독재체제를 수립, 미국과 대치되는 강대국을 자리잡는다. 그러나 1953년 스탈린 사후 흐루시초프와 브레즈네프를 거치면서 기득권층의 부패와 모순이 지속되었으며 이들 사후 1986년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페러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를 선언 민주화의 길로 접어든다.
그러나 재건되기 힘든 소련의 경제상태와 소수 민족국가들의 독립요구, 보수파와 개혁파와의 갈등은 깊어지고 1991년 보수파의 쿠테타로 소련 연방이 무녀졌다. 1992년 소련은 러시아를 비롯한 연방 약 15개국가가 독립하였다.
국제전화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공중전화나 우체국의 전화에서는 상대방의 음성이 들리면 3번을 누르거나 수화기 모양의 버튼을 눌러 주어야만 통화가 된다. 전화국마다 약간씩 다르니 통화 전에 안내서를 잘 읽어보아야 한다.
*8-10-82(한국 국가번호)-지역번호(0제외)-전화번호
호텔에서 전화를 이용할 경우
*0 또는 9번(호텔마다 확인)-8-10-82(한국 국가번호)-지역번호(0제외)-전화번호
러시아의 국제전화카드를 사욜할 경우
국제전화카드는 지하철 근처의 가판대에서 구입할 수 있으며 사용 시간에 따라 종류는 여러가지이다. 국제전화카드를 이용하는 것이 우리 나라로 전화할 수 있는 가장 편리하고 저렴한 방법이다.
전압 및 주파수
전압은 220V, 50Hz지만 우리나라 전기제품의 코드는 맞지 않아 현지에서 구입하거나 빌려서 쓴다.
치안
러시아는 치안상태가 양호하지 않은 편으로 늦은 밤 혼자 외출이나 외진 곳은 다니지 않도록 한다.
급격한 자본주의의 영향으로 빈부의 차가 심해져 여행객을 노린 강도와 같은 범죄가 심심치않게 일어나고 있으니 소지품 관리에 주의를 기울인다. 호텔에서도 간혹 빈방을 터는 좀도둑이 있다고 하니 귀중품은 프론트 안전금고에 맡기도록 한다.
러시아 여행시 주의사항
-러시아 지역을 여행할 때에는 가급적 단체로 행동하고 개인행동은 자제한다. 단체일 경우에는 남녀가 혼성으로 다니는 것이 좋다.
-어두운 시간의 외출, 산책 등을 자제하고ㅡ 역, 카지노 및 호텔 주변 등 우범지대 방문을 자제한다.
-범죄발생 시에는 본인 또는 아내인을 통해 인근 경찰서 또는 대사관(총영사관)에 즉시 신고한다.
-노상에서 집시들이 접근할 떄는 아이라고 할지라도 쉽게 생각하지 말고 피하는 것이 좋다.
-사람이 혼잡한 곳에서는 가방 등 소지품을 옆구리 또는 등 뒤에 두지 말고 몸 앞으로 놓아야 한다. 특히 여권 및 사증을 분실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런 서류들은 허리에 차는 작은 백에다 넣어두면 가장 안전하다.
-택시를 이용할 때에는 대기하고 있는 택시보다는 우연히 지나가는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안전하며, 만일의 경우에 대비 차량번호를 메모해 두는 것이 좋다.
통화
러시아 화폐 단위는 루블(Rouble)이며 미화 1달러는 31루블 정도이다.
환전요령
환전은 미국 달러로 하는 것이 좋다. 공항, 은행, 호텔내의 환전소에서도 환전 가능하며 환전을 할 때에는 여권을 제시해야 한다. 러시아에는 암달러상이 많은데 안전상 은행 또는 전문 환전소에서 환전하는 것이 바람직한다. 낡은 지폐, 손상된 지폐 및 낙서가 있는 지폐는 현지에서 루블로 환전이 불가능하니 주의하도록 하자.
환전의 단위는 100달러와 50달러 지폐를 기준으로 하되, 잔돈은 10달러짜리 약 10매, 5달러짜리 5매, 1달러짜리 30매 정도를 준비한다. 불법적인 환전을 하는 경우는 추바오디거나 형사처벌을 받을 수 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
한국으로 전화
러시아에서 해외전화 연결번호는 810번이다. 호텔에서 전화할 경우엔 외부 접속 번호(주로 0이나 9로 호텔에 따라 다르다)를 누른후 810번을 눌러 사용한다.
따라서 우리나라로 전화할 경우엔 810 - 82 - 0을 뺀 지역번호 - 전화번호 순으로 누른다.
현지로 전화
한국에서 러시아로 전화할때
*국제전화 사업자번호(001, 002 등)-7(러시아)-지역번호-전화번호
주의사항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출입국 신고가 까다로운 편이다. 신고서에 적은 것과 실제 소지 내용이 다른 경우 벌금을 물게되며 여행객의 짐을 조사하는 일도 자주 있는 편이다. 따라서 세관 신고서는 정확히 기재하고 특히 카메라나 컴퓨터등 고가 장비는 입국시 날인을 받아 두어야 출국시 문제가 없다.
비자
우리 나라와 러시아는 비자면제협정이 맺어 있지 않아 러시아에 입국을 하려면 반드시 비자를 받아야 한다.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사전에 주한 러시아대사관 또는 부산총여사관을 통해 입국비자를 발급 받으면 된다. 러시아는 다른 나라에 비하여 비ㅣ자발급이 다소 까다로운 편이며, 관광비자를 발급 받으려해도 초청장이 있어야한다. 러시앙의 비자는 2001년부터 여권에 씰을 붙여준다. 비자의 확인할 내용은 러시아어로 표기되러 있응며 비자도 사람이 발행하는 것이라 실수가 있을 수 있으니 미연에 문제발생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반드시 확인해 두어야한다.
※러시아 비자 특이사항
- 단수비자로서 지정된 입국일로부터 한 달간 유효
- 비자 발급 필요 서류
사진 1, 주소, 연락처, 여권(실사용여권-6개월이상 잔여기간, 2페이지 이상 잔연사증란)
-VISA FEE
2주 45,000원/ 1주 90,000원/ 1박 2일 140,000원/ 당일 160,000 (실제 소요 시간은 이클정도가 더 추가 된다)
* 수요일 , 토,일요일, 법정공휴일- 러시아 대사관 휴무일 (수요일은 초청장 발급이 가능)
전철
러시아 지하철의 특징은 지하의 깊은 곳을 운행하므로 플랫폼까지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상당히 길며, 오르고 내려가는 속도가 빨라서 발을 디디는 데 조심해야 한다. 역 내부는 유럽 다른 국가의 지하철 역과는 다르게 정말 아름답게 만들어 놓았다. 지하철 입구에는 M이라는 표시가 있다. 들어가고 나오는 문이 항상 정해져 있으므로 나오는 문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지하철 역 내부에서 표를 파는데 한번 들어가서 타고 나오는 데 7루블이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얼마나 멀리 가느냐는 요금과 상관없다. 무조건 티켓을 구입하여 표를 넣고 들어가면 나올 때까지 어느 거리의 역이든 갈 수 있다. 나오지 않으면 하루 종일 타고 다녀도 된다. 정액권처럼 5번, 10번 사욜할 수 있는 표를 살수도 있다.
개찰구는 우리 나라와 마찬가지로 표를 넣고 통과한다. 나올 때는 표가 필요 없다.
지하철을 탈 때 주의할 점은 문이 급하게 열리고 닫힌다는 것이다. 오르내리는 에스컬레이터와 마찬가지로 잘못하다가는 가방이나 옷, 다리 등이 문에 끼이게 된다. 그럴 경우 당황하지 말고 얼른 닫히는 문을 양손으로 힘을 줘 받치면 문이 다시 열린다.
차내에서는 다음에 정차할 역을 한 역 전에 러시아어로 방송한다. 러시아어를 모르면 정거장 수를 헤아려서 내릴 수밖에 없는데, 실수 하여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더하도 당황할 필요가 없다. 한번 표를 넣은 이상 얼마든지 되돌아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시간적 여유를 두고 지하철을 타도록하자.
지하철을 갈아타는 경우에도 오는 길과 가는 길이 명확하게 구분돼 있으니 무질서한 한국처럼 오는 길과 가는길을 혼동하지 말자. 한국보다는 지하철 에티켓이 엄격하게 살아 있는 곳이니 주의해야 한다.
러시아의 기후는 그 위치와 면적, 지형 등에 따라서 크게 달라진다. 광대한 영토의 대부분이 중위도 또는 고위도에 위치하고 한랭한 지역이 많을 뿐 아니라 해양의 영향도 많이 받고 있다. 러시아는 동서로 길 뿐 아니라 남북의 폭도 극히 넓어 남북의 기온차도 현저하게 크다.
흑해 연안의 얄타 지방은 1월의 평균 기온이 3.7℃인 반면,북쪽 끝의 첼류스킨 곶 지방은 더운 날이 거의 없다. 특히 베르호얀스크에서는 기온이 -67.8℃까지 내려간 일이 있어 북반구의 한극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대륙성 기후로서,모스크바 부근은 겨울 평균기온 영하 10도,여름 평균기온은 영상16도에 이른다.
서쪽의 유럽 러시아 지역은 여름인 7월의 경우 등온선 분포는 거의 위도와 평행하는 양상을 보이는데, 북극해 도서지방은 0 ℃,북극해안은 5∼10 ℃,시베리아 일대는 15 ℃ 전후, 유럽 러시아 지역은 20 ℃에 육박하는 기온분포를 보인다.
강수량 분포는 북위 60 ° 부근을 정점으로 하여 남북으로 갈수록 강수량이 떨어지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대서양 기단의 진로가 북위 60 °선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지역의 강수량이 500 mm 이하인 가운데, 유럽 러시아와 동 시베리아에서는 500 mm,시베리아 중부 400 mm,북극해,카스피해 부근에서는 250 mm 이하의 강수량 분포를 보인다. 우랄산맥에는 지형성 강우가 빈발하는 편이며,지중해성 기후와 유사한 흑해 부근에서는 겨울 강우량이 많다. 또한 극동지역은 몬순성 강우가 많다.
러시아에서 여행하기 가장 좋은 계절은 5~7월의 초여름이다. 거의 매일 상쾌한 날씨에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무르만스크에서는 백야도 볼 수 있다. 시베리아의 경우는 7~8월이 아주 좋다. 최상의 아름다운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때이다. 러시아는 여름다운 여름, 겨울다운 겨울을 느끼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이런 계절의 묘미를 즐기기 위해 여름여행과 겨울여행을 러시아에서 즐겨보자.
시차 : 1 ~ -6시간
▶ 모스크바 [Moscow]
모스크바는 광대한 소비에트 공화국에서 정치, 경제, 사상의 중심이던 곳이다. 현재는 뿔뿔이 흩어져 있지만, 이 도시는 여전히 정치 및 산업, 문화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심지어는 오늘날에도 과거 소비에트 공화국들로 가는 대부분의 비행기들이 모스크바 공항을 통해서 가는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장 중요한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모스크바는 1991년 이후 러시아의 수도로 러시아에서 제일 큰 도시일 뿐만 아니라, 제일 유명한 문화기관 및 극장,영화 스튜디오를 보유하고 있다. 18세기에는 수도가 상트페테르부르크(구 레닌그라드)로 옮겨지기도 했으나 수공업과 상업의 눈부신 발전으로 러시아 혁명 후 다시 위치를 찾게 되었다. 역대 황제는 모스크바에서 대관식을 올리는 관례를 지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함께 러시아의 2대 중심지로서의 지위를 유지하여 왔다.
모스크바의 인구는 약 1,000만 명이며, 도시 주의를 둘러싸고 있는 순환도로의 길이는 109km에 이른다. 모스크바는 크렘린을 중심으로 하여, 맨 안쪽에는 볼바르노예 순화도로가 위치해 있고, 이 도로를 다시 사도보예 순환도로가 둘러싸고 있다.
마지막으로 3번째 자동차 순환도로가 불바르 순환도로와 사오보예 순화도로를 둘러싸고 있는 구조로 되었있다. 이것을 그림으로 나타내어 보면 마치 과녁판과 같은 구조가 되기 때문에, 종종 모스크바를 '과녁도시'라고도 한다.
'러시아 인이라면 누구나 모스크바를 어머니처럼 느낀다'라고 톨스토이가 표현한 것처럼 모스크바는 이방인의 마음까지 강하게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다. 러시아는 사회주의 국가로 90년에 공식 수교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와는 동떨어진 곳이라 생각되기도 했지만 모스크바를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그런 선입견을 버리게 될 것이다. 흐르는 강을 중심으로 주요 관광명소인 크렘린, 붉은광장, 레닌묘소 등이 있어 옛 제국의 모습을 상상케 하며 바실리우스 대성당, 푸시킨 박물관, 모스크바대학 등은 신선한 러시아 문화와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러시아 국부의 82%가 이곳에 밀집되어 있는 만큼 고급외제차, 도로변의 화려한 광고판등 거리에는 서방 어느 대도시에도 손색없는 활력이 넘친다. 1997년에는 정도 850주년을 맞아 크렘린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주요 건물 및 유적들의 대대적 보수공사를 하기도 하였다. 러시아 국민들은 건축상의 유산들을 잘 보존하고 있으면서도, 마천루 및 쇼핑몰, 교회 등에서 후손들에게 물려줄 새로운 유산을 만들고 있는 등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곳곳에서 개발과 재건축이 이루어지고 있다. 90년대 초만 해도 모스크바는 가장 러시아적인 도시이며 상트페테부르크(당시는 뻬쩨르부르크)는 가장 서구적인 도시라 하였는데 지금의 모스크바는 서구적인 모습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수렁에 빠진 거대한 러시아 경제를 구출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정부와 각 사업체들은 외부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으며, 외국 정부의 원조나 조언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관광객들을 위해서도 서구 자본주의의 서비스와 상품들을 제공하고 있는 모스크바는 점점 국제적 사업활동의 중심지로 각광받고 있으며, 변화의 과정에서도 정신적, 물질적인 면에서 그 확고한 정체성을 굳건히 하고 있다. 모스크바는 21세기를 맞아 제대로 재도약 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교육
모스크바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교육의 도시인만큼 많은 교육기관들이 밀집해 있다. 특히 영화, 연극, 음악등 예술 쪽에서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명문학교들이 많이 산재해 있다.
우선 러시아를 가장 대표할 만한 최대의 종합대학인 모스크바 국립대학교는(M.V 로모노소프 기념 국립 모스크바대학교는(Moskovskii gosudarstvennyi universeitet imeni M.V.Lomonosova:약칭 MGU)은 18세기 러시아 학자인 M.V 로모노소프가 러시아 학생들을 위한 고등교육기관 창설의 필요성을 원로원에 건의, 엘리자베타 페트로브나여제의 칙령으로 1755년 설립되었다. 300여년의 유구한 전통과 역사를 간직한 세계적 대학으로서 유럽 및 아시아, 아프리카의 180개 이상의 대학들과 교류하고 있다. 최초의 대학교는 붉은광장의 현재의 역사박물관 자리 부근에 위치했으며, 3개 학부(철학, 의학, 법학)로 출발하였다. 그 당시 학생은 귀족과 평민출신 지식인으로 구성되었고,학교에 관한 모든 사항은 교수회의에서 결정되었다. 대학 내에서의 강의 내용은 1756년 만들어진 대학 내 서점을 통해 세상으로 뻗어나가게 되었다. 과학적 지식이 러시아에 퍼져나가도록 하는 중대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20세기 초엽의 사회적 변혁기에는 대학 안에서도 학생운동이 고조되었으며, 정부는 이를 탄압하여 1911년 대학을 폐쇄하였고,이에 항의하는 130명의 학자가 대학을 사임하였다. 1917년 10월 혁명 이후 대학은 완전히 국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노동자 및 농민의 자녀들이 실질적으로 대학에서 배울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학부도 증폭 개설되어 82년에는 기계공학, 수학, 컴퓨터수학, 사이버네틱스, 물리학, 화학, 생물학, 토양학, 지리학, 지질학, 철학학, 역사학, 언어학, 저널리즘, 심리학, 경제학, 법학의 17학과와 아시아, 아프리카 여러 나라 연구소를 비롯한 부속연구소와 도서관을 보유하기에 이르렀다.
이 대학은 또한 몇 개의 대학 도서관을 합하면 800만 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중 200만 권이 외국어 서적이다. 일년에 평균 55,000여명이 이용하고 5백 5십만 여권의 책이 대출되고 있다. 연구소는 450여 개,대학 내 박물관이 3개,기타 대학 내 중고등 학교 과정 학생들이 모여서 추가로 수업 및 연구를 하는데 이 인원만 해도 매해 5,000여명이나 된다고 한다.
입학경쟁이 치열하지만 학비는 무료이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정부로부터 생활보조금을 받는다. 이 대학교는 10월 혁명 이후 크게 발전하여 지금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
그 외 차이코프스키 모스크바 국립음악원, 러시아 국립 영화학교, 그네신 국립 음악대학,러시아 민족우호대학,푸쉬킨 언어대학교, 모스크바 국립항공대학교 등등 나열하기 힘들정도로 많은 대학들이 있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를 비롯하여 모스크바 국립음악원, 러시아 국립영화학교,푸슈킨 연극전문대학,러시아 민족우호 대학, 모스크바 항공대학등에는 많은 한국의 유학생들이 수학하고 있다.
통화
러시아 화폐의 단위는 루블(Rouble),1루블은 100코페이카(Kopeck)이다. 현재는 1,5,10,50 코페이카와 1,2,5루블짜리 주화 5,10,50,100,500,1000,5000 루블 지폐가 유통되고 있다. 하지만 코페이카는 우리나라의 1원이나 5원처럼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대륙성 기후로 해마다 기후변동이 심하다. 겨울은 10월 말 첫눈이 내리면서 시작되어 4월 초까지 계속된다. 햇빛을 보기 거의 힘들고 쉴새없이 눈이 내린다. 보통 눈이 내리는 날은 영하 15 ∼ 20℃이고, 해가 나는 날은 그보다 더 춥다. 1월 평균 기온은 -11℃정도. 상대적으로 봄·가을이 짧으며 4월 말부터 기온이 올라가 서서히 여름에 들어선다. 하지만 모스크바의 날씨는 워낙 변덕스럽기 때문에 방심은 금물. 이러다 갑자기 눈이 오기도 한다. 심지어 5월에도 눈이 날릴 정도이다.
5월은 본격적인 봄이다. 추위의 기습, 또는 이상기온을 대비해 따뜻한 외투를 항상 입고, 안엔 차근차근 벗고 다닐 수 있도록 짧은 소매 옷과, 스웨터를 입고 다니는 것이 좋다.
6, 7, 8월은 가장 행복한 계절이다. 사람들은 긴 휴가를 떠나고 소나기를 뿌리고 지나가지만 청명한 하늘과 구름들을 볼 수 있다. 기온은 이상기온이 아니라면 18 ∼ 25℃ 정도이고 가장 더울 때는 30 ∼ 31℃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7월 평균 기온은 19℃정도이다. 연평균 기온은 4.4℃. 연간 강수량은 570㎜,여름과 가을에 많은 비가 내린다. 적설량은 400㎜정도이다.
▶ 블라디보스톡 [Vladivostok]
'동방을 점령하라'는 뜻을 지닌 블라디보스톡은 러시아의 중요한 항구 도시이다. 1860년 6월 20일에 창립되었고 1880년에 시의 명칭을 부여받았다. 표트르 벨리키(포트르 대제)만을 아루르스키만과 우수리스키만으로 나누는 좁고 긴 산악 반도의 남쪽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종착역으로 개인사업과 국제 무역, 관광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국제 심포지움과 학술 회의가 자주 열리고,태평양 함대의 모함이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해군함들이 친선 사절로 온다.
지금은 거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지만 시내 중심에 예전에 일제 시대 때 한국인들이 이주해서 산 장소가 있으며 그곳을 지금은 '페르바야 레치카'라고 부른다. 연해주와 블라디보스톡은 한국 근대사와 많은 관련을 맺고 있어서 지금도 각 대학의 도서관 문서 보관소에는 이와 관련된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시차는 GMT보다 10시간 빠르고 모스크바보다는 3시간 빠르다. 따라서 우리나라보다 1시간 빠르다
블라디보스톡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러시아 땅으로 북한의 최북단과 인접해 있는 항구도시다. 이곳은 극동지구 최대도시로 인구가 65만여명에 이르며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 러시아의 극동정책에 의해 생겨난 곳이다. 군항, 산업항, 어항 으로서의 기능은 물론이고 조선, 수산가공등 공업중심지로서도 중요한 위치를 자지하고 있다. 러시아혁명 직후인 1918-1922년에 걸쳐 일본군의 `시베리아 출병'이라 불리는 점령하에 수많은 러시아 주민들이 무고한 피를 흘려야만 했던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항구로서 가장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여객선과 화물선은 대개 러시아 극동지역의 다른 항구를 이용한다. 블라디보스토크 항은 무르만스크에서 러시아 북극해안을 따라 뻗어 있는 북해항로의 동쪽 종점이며,첼류스킨 곶 동쪽에 있는 북극해 연안 항구에 물자를 공급하는 중요한 보급기지이다. 1950년대초 외국 선박의 블라디보스토크 출입이 금지되어, 오늘날 국제 해상무역은 대부분 블라디보스토크 동쪽의 나홋카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주요수출품은 석유, 석탄, 곡물이며 석유제품과 생선이 주요수입품이다. 극동지역의 다른 항구에서 잡거나 가공한 생선도 블라디보스토크를 경유해서 다른 지역으로 수송된다. 러시아 북극 포경선단의 기지이기도 하다. 블라디보스톡은 러시아 연방의 행정지구인 연해주의 주도이다. 정식 행정명칭은 '프리모르스키'주(Primorsky Kray) 인데, 프리는 연안이라는 뜻이고, 모르스키는 '바다'라는 듯이다.
교육
러시아 연방 극동지역의 교육·문화 중심지로서 극동과학 센터와 극동공립대학교(1920)·의과대학·예술대학·공과대학·상과대학·선박공학대학을 비롯한 고등교육기관들이 있다. 문화시설로는 음악협회와 교향악단 및 극단,지방 역사박물관과 태평양함대 역사박물관 및 수많은 도서관이 있다.
산업
블라디보스톡의 공업기반은 공산혁명이 일어난 뒤 매우 다양해졌다. 대규모 선박 수리소 이외에 철도 공작창과 광산장비를 만드는 공장이 있다. 경공업으로는 기계, 라디오, 공장, 목재 가공공장(특히 가구와 합판공장), 도자기 공장, 의약품 공장 등의 경공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생선, 육류 가공, 제분을 중심으로 식료품 산업과 조립식 건축자재 생산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연해주의 주요 산업은 수산업, 해산물의 가공, 임산업, 비철금속공업, 건설재료공업등이며 그중에 수. 임산업은 주요한 외화 획득원이 된다. 블라디보스톡시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나흐토카(nakhodka)시가 자유경제구로 되어 있기에 그 여파로 블라디보스톡시는 무역, 금융의 중심지로 변하고 있다.
몬슨기후로써,겨울은 짧고 겨울의 평균 기온이 -12도 정도로 매우 춥다. 여름은 비가 많이 오며 평균기온이 14~21도 정도이다. 연간 강수량은 600~900mm이다. 연안을 따라 차가운 해류가 흐르기 때문에 안개가 자주 낀다. 여름철에는 바닷바람으로 습기가 자주 차며 안개와 비도 잦다.
▶ 사할린 [Yuzhno-Sakhalinsk]
러시아연방 사할린주를 이루는 섬으로 면적 7만 6,400 ㎢이다.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북쪽에 위치하며, 남북으로 길쭉한 모양의 섬으로, 오호츠크해와 동해에 둘러싸여 있고, 대륙과의 사이에는 최단거리 약 8 km의 타타르 해협이 있다. 동으로는 길게 뻗은 쿠릴열도가 있는데, 현재 약 40여개의 활화산이 형성되어 관광자원이 많으며 인근에는 세계 4대 어장중의 하나인 북서태평양 어장이 자리잡고 있어 러시아 어업 전진기지로서 유명하며,남으로는 항공기로 불과 40-50분 거리에 일본 홋카이도가 인접하여 지리적으로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다. 남부에는 서 사할린산맥과 동 사할린산맥이 남북으로 뻗어 있으며,그 사이에 길쭉한 평야가 자리잡고 있다. 북부는 북단의 슈미트 반도에만 산지가 있다. 북부에는 낙엽송 ·가문비나무 등이 많고,중부와 남부에는 전나무류가 많다. 또 북부의 해안지대에는 툰드라가 있다.
섬의 남부는 평야지대가 많으나 중부 이후에는 산악지역으로 산림자원, 지하자원, 수산자원이 아주 풍부한 지방이다. 특히 사할린의 북쪽은 천연가스가 풍부하며, 1999년 7월부터는 원유가 본격적으로 생산되어 러시아의 보고로 통하는 지역이다.
주민의 대부분은 러시아인이며, 한국인은 소수민족 중 최대이다. 한국 교포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제에 의한 강제 징용으로 끌려가 탄광 및 군수공장에서 혹사당하다가 종전을 맞이하였다. 원주민은 아이누, 길랴크(니브히), 오로크인(人)이며, 소수의 일본인이 있다. 교통은 코르사코프와 모스칼보를 잇는 남북선이 이용되며,대안(對岸)의 바니노와 사할린의 여러 연안항구 사이에는 정기선이 다닌다.
산업
게,청어,대구,연어잡이가 해안지방에서는 가장 중요한 경제활동이며 그밖의 지역에서는 북부의 석유채굴, 남부의 석탄채광, 제지업, 제재업 등이 기반을 이룬다. 자원은 석탄과 천연가스가 주를 이루며, 산업구조는 러시아 전체 산업 생산량 중 51위로 식료품생산 46%,연료산업 20%이다.
농업구조는 러시아 전체 농업생산량 중 70위이고 사료가 71%를 차지한다. 섬의 60 %가 숲이기 때문에 목재 가공과 펄프 제조가 주요공업이며, 수산업도 활발하다. 석유와 석탄도 러시아연방 극동의 주요산업을 이루며,북부의 오하 유전으로부터 콤소몰리스크, 하바로프스크에 송유된다. 농산물은 자급자족을 할 수 없으나, 감자밭과 목초지가 많다. 축산으로는 순록, 젖소, 여우 등이 사육된다.
기후는 전반적으로 몬순기후대에 속하며,여름에는 오호츠크해의 저온다습한 기온대, 겨울에는 한랭건조한 시베리아기단의 영향을 받는다.
지리적인 위치와는 다른 특이한 기후 조건을 가지고 여름은 7월-9월(약 3개월)이며 겨울은 10월-4월 (약 7개월) 이며 나머지는 짧은 봄과 가을이 있다. 겨울에는 강풍을 동반한 폭설로 천지가 눈으로 쌓여 있어 이듬해 4월이 되어야 눈이 녹고 여름에는 한국의 가을날씨와 비슷한 기상으로 자연을 한 껏 즐길 수 있는 시즌이다. 천식과 기관지가 나쁜 사람에게는 치명적일 수도 있다.
▶ 상트페테르부르크 [St Petersburg]
러시아의 대문호 푸쉬킨이 말한 '유럽을 향해 열린 창' 상트 페테르부르크. 러시아 제 2의 도시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다양한 얼굴을 지니고 있다. 모스크바가 러시아의 힘과 영과을 차지하기 전에는 상트 페테르부르크가 그 역할을 담당했었다.1703년 피터 대제에 의해 건설된 이래 200년간 로마노프 왕조의 수도로 시작해 페트로그라드, 레닌그라드란 이름을 거쳐 다시 상트 페테르부르크가 되었다. 1703년 스웨덴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네바강 하류 습지대에 건설된 뻬뜨로파블로스끄 요새의 완공과 함께 탄생된 이 도시는 1712년 모스크바를 제치고 나라의 심장부로 등장하면서 두 세기에 걸쳐 제정 러시아의 정치와 경제, 예술, 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러시아 여느 도시들 가운데서도, 특히 수많은 외국인들로 붐비는 모스크바와는 대조적으로 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의 지역에 대한 애착과 자긍심은 가히 하늘을 찌를 정도이다.
30개가 넘는 네바 강 위의 섬을 다리로 연결하느라 생긴 수많은 운하들로 인해 북구의 암스텔담, 베네치아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다. 또한 성 페테르부르크를 찾는 여행자들은 18, 19세기 바로크의 아름답고 화려한 건축, 에카테레나 여제가 모아 놓은 수많은 예술품들을 만난다.
성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두 도시는 경쟁 도시로 흔히 비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수도인 모스크바가 유럽에서 제일 아시아적인 느낌이 강한 도시라면,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가장 유럽의 느낌이 강한 도시라 하겠다. 모스크바에 비해 도시 역사는 짧지만, 2차대전 중 모스크바가 건물 대다수가 파괴되는 곤욕을 치러야 했던 데 반해, 페테르부르크는 죽은이의 살을 베어먹어야 할 만큼 참혹한 판국에서도 독일군의 봉쇄 전략에 끝까지 대항해 도시를 지킨 시민들의 그 유명한 9백일 항전 덕분에 지금도 여전히 18 ∼19세기 바로크풍의 건물들이 예스러운 분위기를 한껏 뽐내고 있다.
이 도시는 많은 전설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86개의 강과 운하, 101개의 섬이 365개의 다리(교외까지 포함하면 623개)로 연결된 물의 도시이기 때문에 '북방의 베네치아', '제 2의 암스텔담'이라고 불리었다. 도시 면적의 1/10이 수면이고, 늪지대를 매립해서 건립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들이 붙여진 것이다. 곳곳에 들어선 공원, 광장, 궁터 그리고 질서정연한 도시계획 때문에 '북쪽의 파리'라고도 하며 백야인 여름에는 북국의 오아시스로서 사람들에게 평화를 준다.
이곳은 유럽에서도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로 남아있다. 일찍부터 유럽의 건축양식과 문화·문화, 예술, 사상 등을 가장 먼저 받아들여 러시아 제정을 붕괴한 동란의 진원지이며, 10월혁명의 발상지로서 세계사에 사회주의 혁명의 도시로 각인돼 있다. 도시의 모습은 르네상스시대이래 서구적인 도시계획의 표준형으로서 기하학적이며 직선적이었는데, 중세 풍의 도로가 구불구불하게 있는 비뚤어진 모양의 비조직적인 형태는 러시아에 있어서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격변하는 러시아 역사의 전개를 그대로 반영하듯이 이 도시의 이름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건립될 당시 조선과 항해술이 발달하고 선진국으로 흠모의 대상이었던 네덜란드에 푹 빠진 표르트 대제는 네덜란드 식으로 지은 이름을 성 삐제르부르크라고 하였다. 이 이름은 곧 독일식의 성 페테르부르크로 바뀌어 제정 시대 내내 수도로서 역할 해 왔으나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불법 침공에 저항하는 뜻으로 적국의 이름 형태를 버리고 뻬뜨로그라드로 개명하였다. 그 후 레닌이 사망한(1924) 이후 혁명운동 본거지였던 이 도시를 가리키는 뜻에서 레닌그라드로 명명되었다. 그러나 91년 11월 7일 소련연방의 해체와 함께 찾아온 사회주의 혁명과정에서 시민들의 요구에 따라 본래 이름인 상트 페테르부르크가 되었다. 제정과 사회주의 체제,그리고 공화국이라고 하는 세가지의 다른 역사와 문화를 알기에 좋은 여행지이다.
산업
19세기 후반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화려한 궁정문화와 함께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을 향하는 산업도시로서의 본격적인 성장을 했다. 그러한 성장은 무엇보다 당시의 새로운 교통·통신수단의 발달에 힘입어 이루어졌다. 1813년에는 러시아 최초의 증기선이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건조되었고,1837년에는 지금의 푸쉬킨 시와 여름궁전을 잇는 최초의 철도가 부설되었다. 그 뒤 1841년 모스크바까지의 철도가 개통되었으며 1862년에는 러시아 내륙과 유럽을 연결하는 철도망이 부설되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이러한 성장은 1861년 알렉산드로 2세가 단행한 농노해방에 힘입은바 크다. 농노해방에 형식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봉건지주의 속박에서 벗어난 농민들은 일자리를 찾아 당시러시아 최대 공업도시이자 수도인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도시의 인구는 1864년 53만 9,400명에서 1900년에는 150만으로 늘어났고 10월 혁명이 일어났던 1917년에는 250만으로 급증했다. 이러한 인구급증은 당연히 공업발전에 필요한 값싼 노동력의 공급을 원활하게 했고,도시의 산업발전으로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챠르의 전제 정치에 대한 혁명의 온상이 되었다. 국가 기간산업의 집중과 공업의 발달로 1914년에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공장 노동자가 25만에 달했다. 이들의 작업 환경은 더럽고 비위생적이었으며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 이상 일해야 했다.
현재 러시아 연방에서 가장 중요한 공업도시로 전체 고용인구의 절반 이상이 공업과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다. 공업은 기계공업과 화학공업의 비중이 큰데,특히 기계공업 분야가 발달하여 시 공업생산의 1/2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화학공업은 비료·타이어·합성고무·페인트·플라스틱·약품 등을 생산한다. 그밖에 냉장고·라디오·텔레비전 등 가전제품 중심의 소비재공업과 자동차공업 및 조선 업이 발달하였다. 반면에 에너지의 기반이 미약하여 멀리 떨어진 북방의 보르쿠타·페초라탄전의 석탄,에스토니아의 석유·가스,모스크바 방면으로부터의 파이프라인에 의한 송유, 볼가 및 우랄 방면으로부터의 장거리 송전 등에 크게 의존한다.
위도상 상당히 북쪽에 있지만, 대서양의 영향으로 남쪽에 있는 모스크바보다 오히려 온화한 기후를 보인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봄과 여름은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6월 하순 백야제가 개최될 무렵에는 한밤중에도 하늘에 빛이 남아 있어 밖에서 신문을 읽을 수 있을 만큼 밝으며 새벽 3시가 지나면 다시 태양이 떠오른다. 7월 평균 기온은 17℃정도이고, 북극권에 가까운 까닭에 겨울철에는 밤이 길지만 여름 초기에는 백야가 계속된다.
가을은 봄과 마찬가지로 짧고,10월이 되면 겨울을 알리는 추위가 시작된다.
1월 상순에서 2월까지가 가장 추운 시기로 1월 평균 기온이 -7℃정도로 영하 10 ∼ 20℃까지 내려가는 경우도 많다. 눈이 덮여 있는 날이 연평균 132일 이나되고 이 도시에서 흐르는 네바 강은 보통 11월에 얼어붙기 시작해서 이듬해 4월이 되어서야 풀린다. 연평균 강수량은 약 58m로서 여름철에 비가 가장 많이 내린다.
피의 사원
▶ 이르쿠츠크 [IRKUTSK]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불리우는 이르쿠츠크는 앙가라 강과 이르쿠트 강의 합류지에서 앙가라 강변을 끼고 있다. 1652년 러시아가 이 지역을 처음 식민지로 만들 당시에 세운 월동 야영지에서 비롯되었으며, 1661년에는 요새가 건설되었다. 이곳은 시스바이칼리아와 러시아에서 중국과 몽골로 가는 무역로의 중심지로 급속히 성장했다. 1686년 시가 되었으며 1898년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들어선 뒤 그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었다. 앙가라 강의 이르쿠츠크 수력발전소가 이 도시 내에 있으며 그 저수지는 위로 바이칼 호에까지 이어진다. 강변의 제방이 아름다우며 가로수가 줄지어 있는 거리에 많은 목재 가옥들이 남아 있다. 동시베리아와 러시아 연방 극동지방의 행정·문화의 중심지인 이 도시에 이르쿠츠크국립대학교(1918)와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의 시베리아 지부를 비롯하여 많은 교육·연구 기관들이 있다.
아름답게 정돈되어 있는 이르쿠츠크 거리에는 구형 자동차와 신형 자동차,시가 전차가 거리를 걷는 사람의 마음을 경쾌하게 만든다. 최근 들어서는 외국 투자 자본이 많이 들어오면서 물가 상승률이 많이 올랐다. 일본과 프랑스,미국 합작 자본으로 지하자원을 개발한다는 러시아의 공식 발표에 외국인 또한 상당히 많이 체류하고 있다. 한국과 시간대가 같다.
특히 여름철에는 러시아의 부호들이 지중해성 쾌적한 기후와 고풍스런 중세기풍의 분위기에 이끌려 이 곳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으며,1997년 이후 몽골을 경유하여 이곳을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혹심한 대륙성기후로 11월 부터 3월까지의 날씨는 가히 살인적이다라고 할 만 하 다. 6월부터 8월까지의 평균 기온은 약 15도 정도이고 전체적으로 강수량은 매우적다. 1년 중에서 가장 많이 내린다는 7월에도 겨우 100mm정도이다. 그리고 특히 겨울에는 평균 20mm미만이 강수량을 보인다.
데카브리스트 기념관
▶ 하바로프스크 [khabarovsk]
러시아 연방 동쪽 말단에 있는 하바로프스크 지역의 행정중심도시. 아무르 강이 우수리 강과 만나는 지점에서 약간 하류 쪽에 있다. 17세기 중엽 아무르 강 유역을 여러 번 탐험했던 러시아 탐험가 E.P. 하바로프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현대적인 도시는 1858년에 군사전초기지로 세워졌다.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아무르 강을 가로지르는 길목에 있는 요충지로서 소비에트 체제하에서 줄곧 극동 지방의 중심지였으며,한때는 베링 해협까지 이르는 극동 지방 전역을 관할하기도 했다.
아무르 강 쪽으로 가파르게 경사진 산등성이 및 작은 골짜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름다운 강변 공원과 산책로를 갖추었으며,단층 목조 주택들이 나란히 있어 독특한 경관을 형성한다. 주요한 산업 중심지로서 대부분의 산업은 상류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기계 및 기계조립,정유,목재,가구제작,경공업 등이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종합기술대학·농업대학·의과대학·사범대학·철도공학대학이 있으며,과학연구소가 여럿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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