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한 줄기 불어오는 스산한 바람이 날카롭게 콧등을 스쳐간다. 옷깃을 여미며 아침 전철에 올라 앉으면 차가운 철제 의자 때문에라도 따뜻한 방바닥과 뜨끈한 국물이 간절하다. 온몸을 따끈한 물에, 그것도 효능 좋은 물에 담근다면 금상첨화, 미용과 건강을 위한 온천에 나서보자. 그것도 온 동네가 노천 온천이라면… 솔깃하지 않은가.
  1. 치히로가 사는 온천 마을
  2. 큐슈 섬의 한 가운데, 구로가와는 20개가 넘는 노천 온천과 전통 가옥의 온천장들이 모여있는 온천 마을이다. 피어 오르는 온천의 온기와 희미한 연기는 마을의 분위기를 더하고, 짙은 숲은 노천 온천의 은밀함을 전한다. 으리으리한 건물들이 들어서지 않은 작은 거리는 모두 역사 꽤나 깊을 듯한 목조 가옥들이 늘어서 있다. 작은 문 옆으로는 등을 내걸고, 상호와 문장이 찍힌 천을 드리워 내부를 살짝 가렸다. 대나무로 창문과 대문 옆을 장식 한 온천 여관들은 자꾸만 문 앞을 기웃거리게 만든다. 마치 만화 속 치히로가 길을 잃고, 이름도 잃어버린 그곳이 아닌가 하는 착각과 함께.
    구로가와로 온천욕을 하러 오는 이유는 단순히 따뜻한 물 때문만은 아니다. 노천 온천들은 제각각 좋은 효능들을 갖고 있어 몸의 피로를 풀어주는 데다, 한적한 기운이 남다른 정취를 풍기기 때문이다. 온천 여관들은 투숙객만 사용할 수 있는 온천탕도 있지만 투숙객이 아니더라도 입탕 요금만 내면 이용할 수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온천 마을의 분위기에 푹 빠지려면 온천 여관의 다다미방에서 숙박을 하면서 여유롭게 탕을 유람하듯 이곳 저곳 가보는 것이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다. 물론 과감하게 유카다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며.
  1. 자연에 푹 파묻힌 구로가와만의 스타일
  2. 이곳의 노천 온천은 자연 그대로의 온천이다. 옆으로 계곡이 흐르고, 강물 소리를 들으며 온천욕을 즐긴다. 봄이면 꽃잎이 날려와 물 위에 떠 있고, 가을이면 낙엽이 물 위에서 온천욕을 즐긴다. 비가 오면 몸은 따끈한 물 속에, 머리는 그대로 차가운 가을 비를 맞는다. 겨울에도 좋다. 머리카락 위로 눈을 쌓으며서 온천에서 올라오는 김에 물에 닿기도 전에 녹아 내리는 눈을 본다. 머리는 차게, 가슴은 뜨겁게!
    구로가와의 온천장에서는 몇 가지 독특한 형태의 온천을 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동굴탕과 입탕이다. 동굴탕은 말 그대로 동굴이 미로처럼 이어지는 가운데 온천을 할 수 있는 곳으로 한적함과 함께 가벼운 공포도 밀려온다. 하지만 독특한 분위기 만은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다. 입탕은 서서 즐기는 온천탕, 깊은 곳은 사람 키를 훌쩍 넘는 곳도 있다. 잡고 서 있을 수 있는 장치들이 되어 있으니 걱정은 없다. 또한 누워서 혹은 엎드려서 편안한 상태로 온천욕을 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적당한 위치에 베개 역할을 하는 통나무를 놓아 온천장을 꾸며 놓았다.
    이 지역의 온천은 조합을 형성해서 온천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일종의 패스, 마패처럼 생긴 입탕표를 판매하는데 잠시 다녀가는 여행객들 혹은 숙박을 하더라도 이곳 저곳의 온천을 경험하기에 편리하고 저렴하다. 나무를 잘라 만든 입탕표로 하루에 총 3곳을 갈 수 있는데 들어갈 때마다 붙어 있는 온천 표시를 떼어내고, 각 온천탕 고유의 마크를 찍어주면서 표시한다. 다시 반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곳을 찾은 이들의 기념품이 된다.
    주의할 점은 온천장 중에는 여성 혹은 남성 전용이었지만 하루 중 일정 시간이 되면 서로 바뀌는 즉, 여성용이 남성용이 되고, 남성용이 여성용이 되는 곳도 있으니 미리 시간을 알아두면 좋다. 반디불이 살아 있는 자연환경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온천장에서는 샴푸를 비롯한 일반 화학 제품의 사용을 금하고 있으며 대신 무해한 제품을 제공하는 온천장들이 있다.
  1. ▲ 다양한 온천의 모습
  1. ▲ 계곡 한 가운데의 온천
  1. ▲ 꽃잎이 떨어지는 온천탕
  1. ▲ 발을 위한 족탕
  1. ▲ 온천 마을의 입탕표
  1. ▲ 보안이 완벽한 노천온천
  1. ▲ 온천은 이른 아침이 한적하다
  1. ▲ 바닥이 돌로 깔린 온천
  1. 노천 온천, 분위기 따라 Best Collection
  2. 24곳이나 되는 온천을 골라서 가야 한다는 것은 고문에 가깝다. 어쩔 수 없이 정해진 시간을 탓하며, 고른 온천이 최고이기를. 하지만 어느 곳을 선택하더라도 구로가와 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온천의 효과는 전해질 것이다.
    일본의 온천 100선에 뽑힌 이코이여관(いこい旅館)은 폭포탕과 함께 일본 온천과 정원의 정서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노천탕이 좋다. 특히 피부에 좋은 미인탕을 비롯한 여러 온천이 있어 골라가며 즐길 수 있다. 서서 온천욕을 할 수 있도록 깊은 입탕에는 대나무 손잡이가 있고, 뜨거운 물이 관을 통해 힘차게 뿜어져 나오는 증풍탕, 바닥에 잔 돌을 깔아 감촉이 남다른 상자탕, 가족탕 등이 있지만 온천장 측에서도 자신 있게 권하는 것은 미인탕으로 손만 넣어 봐도 그 매끈함과 탄력을 느낄 수 있다. 화장수가 필요 없을 정도라고 하니 여자라면 피해가기 힘들겠다.
    유모토장(湯本莊)은 가족탕을 비롯해 노송나무, 전통의 방식을 이용한 가마 목욕탕, 돌 목욕탕과 함게 노천 온천도 갖고 있다. 산속 마을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하는 노천탕은 여러 곳인데 마을을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온천을 즐길 수 있도록 커다란 통이 놓여있다. 나무통의 은은한 향과 흐르는 강물 소리를 들으면 어느새 스트레스는 잊혀진다.
    신명관의 동굴탕은 혼탕과 여성 전용탕이 있는데 굴이 이리저리 이어지는데다 한가로운 곳에서는 슬쩍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신기한 기분과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구봉관별관 (九峯館別館)의 온천은 고혈압, 근육통, 관절통 등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나무와 큰 바위로 이루어져 사계절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노천탕이다.
    몽룡탕(夢龍湯)은 차분한 분위기와 정취가 전해지는 일본식 정원을 살려서 꾸며졌다. 노천탕과 실내탕 모두 강에 인접하고 있어 강과 계곡을 바라보며 온천욕을 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약산성의 질산염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창상과 관절, 류마티즘 등에 효능이 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노천 온천이라도 사람이 복작복작하면 분위기는 반감된다. 구로가와 지역은 아직은 여행객은 적은 편이고 반면에 온천은 많아 그런 걱정은 없지만 노천온천은 분위기를 그대로 느끼려면 사람이 적은 이른 아침이나 문 닫기 전 밤 시간이 제격이다. 온 몸을 뜨끈하게 온천수로 덥힌 후에 구로가와 온천 지역에서 한정 생산되는 맥주 ‘유아가리 비진’ 한 잔 시원하게 마시는 것으로 마무리 해 본다.

출처 : 자격있는 여행전문가 - 모두투어

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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