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패망후 동서독으로 분리되었던 국가가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통일되면서 다시 통일 국가로 정착되었다. 통일되면서 정치 경제적으로 혼란을 겪기도 했지만 기존의 튼튼한 경제구조를 바탕으로 세계 선진국의 선두권에 랭크되고 있다.
기차
유럽 내에서는 기차를 이용해 독일 각 도시로 쉽게 들어오고 나갈 수 있다.
항공
현재 우리나라에서 독일까지 가는 방법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 독일항공이 프랑크푸르트 까지 직항으로 연결하고 있다. 그외 다른 도시는 프랑크푸르트나 주변의 다른 도시를 경유하여 여행한다.
면적 : 35만 7021㎢
수도 : 베를린
인구 : 8천 2백 50만명 (2004년 기준)
종교 : 신교와 구교로 구분되며 주로 구동독 지역은 신교, 서독지역 및 남서부는 구교의 성격이 강하다.
주요민족 : 민족 구성은 현재 게르만족(91.5%), 터키인(2.4%), 이탈리아인, 그리스인, 폴란드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언어 : 공용어, 상용어 모두 독일어지만 영토가 넓은 편이고 주변의 국가의 영향을 받아 지역적으로 방언도 있다.
기후
독일의 기후는 우리나라보다 위도가 높지만 멕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비교적 따뜻하지만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일조량은 지극히 적다. 사계절의 구별이 정확하지만 온도차이가 그리 큰 편은 아니다.
독일의 여름은 혹독한 더위가 별로 없고 습도도 낮으며, 밤 9시가 넘어서도 어둡지 않아 여행을 하기에 적당하지만 아침과 밤에는 기온이 내려가므로 긴소매 옷이 좋다. 겨울에는 오히려 여름보다 습도가 높고 비가 오는 일이 많으므로 주의한다.
지리
남북으로 870km,동서로 640km로 뻗은 크기를 가지고 있는 독일은 전반적으로 남고북저(南高北低)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나라이다. 먼저 남쪽은 알프스 산맥과 연결되어 3000m 급의 큰 산맥이 이어져 있는 반면,북쪽은 북해(Nordsee),동해(Ostsee)와 연결된 비교적 평탄한 지형을 띄고 있다. 특징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낮은 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갈수록 지형의 특성답게 점차 높아진다는 것이다. 독일은 일반적으로 가장 낮은 북쪽지방의 일명,Tiefland에서 부터 가장 높은 남쪽의 Alpen 지방까지 5단계의 지역으로 나누고 있다.
독일의 지형은 남부의 산악지대,중부의 구릉지대,북부의 평야로 구분지어 생각할 수 있다. 즉 알프스 산맥 외곽 능선으로부터 북쪽으로 독일 중앙 고원의 여러 지역과 북독일평야 등 유럽 대륙의 주요 자연 경계선을 가로지르며 펼쳐져 있다. 바이에른 알프스에 자리한 고원호수 보덴호에서 발원한 라인강은 이 나라의 역사와 함께 흘러온 게르만민족의 젖줄로 전후 '라인강의 기적'으로 일컬어지는 독일의 부흥의 상징이다. 중유럽에 위치하며 북쪽으로 발트 해,덴마크,북해,서쪽으로 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프랑스,남쪽으로는 스위스,오스트리아,동쪽으로는 체코,폴란드와 접경한다. 위도상으로는 북위 47도에서 55도 사이에,지리적 좌표는 51.00 N / 9.00 E에 위치하고 있다.
방문적기
독일 날씨는 변덕스럽기 때문에, 일년 내내 다양한 날씨에 대비하는 것이 가장 좋다. 가장 쾌적한 시기는 5월에서 10월 사이로, 이는(스키 여행을 제외한) 일반 관광 시즌과 겹치는 때이다. 늦봄과 늦가을인 3월말에서 5월, 9월, 10월에는 관광객은 적지만, 날씨는 놀라울 정도로 쾌적하다. 캠핑 시즌은 5월에서 9월까지이다.
쇼핑
독일의 상품은 디자인보다는 기능적인 면이 충실하다.
품질이 좋은 대신 가격이 다소 비싸며, 대부분의 상점이 정찰제다.
*도자기- 독일 도자기는 상당히 비싼 편. 세계적으로 유명한 메이센(Meissen)을 비롯하여
로젠탈(Rosenthal)과 남펜부르크(Nymphenburg)등이 유명하다.
*칼, 스테인리스 스틸 제품- 칼 중에는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쌍둥이 마크의 J.A Henckels가 유명한데, 우리나라에서 사용하기 좋은 선물용 세트도 있다. 스테인리스 스틸제품은 WMF가 널리 알려져있다.
특히 휘슬러 압력솥은 주부들에게 인기 있는 제품
*피혁제품- 오래 쓸수록 가족 특유의 분위기가 나는 제품으로, 골드 파일(Gold Pfeil), 아이그너(Etienne Aigner), 엠시엠(MCM)등이 유명하다.
역사
AC 1년 - 1900년 까지의 역사
375년경 중앙 아시아의 유목 민족인 훈족의 게르만족인 동고트족 공격으로 본격적인 이동이 375년에 시작되었다. 게르만족의 한 분파인 서고트족은 382년에 로마제국 영내로 진입하여,410년에는 이탈리아 반도로 들어가 로마를 약탈하고,415년에는 반달족을 압박하여 에스파냐에 고트 왕국을 건설하였다. 프랑크족은 갈리아 북부,부르군드족은 갈리아 남부,반달족은 에스파니아에 왕국을 건설하고 429년에 반달족은 서고트족에 쫓겨 다시 아프리카로 건너가 카르타고에 왕국을 건설하였다. 476년에 서로마는 반달족의 약탈을 받아 쇠약해진 상태에서 게르만 대장 오드아케르(Odoacer,434∼493)의 침입에 의해 멸망하였다. 그 후 메로빙 왕조와 카롤링거 왕조가 세워지면서 프랑크 왕국의 흥망이 엇갈리게 된다. 메로빙 왕조(481∼511)의 창시자인 클로비스(481∼511)는 프랑크 부족을 병합하고 갈리아 지방을 통합하나,클로비스 사후 분열이 계속되어 왕권은 유명무실해졌다. 이로 인해 정치의 실권은 귀족 대표인 궁재의 수중에 들어가게 된다. 대표적인 궁재가 732년 투르푸와티 전투에서 이슬람군의 침입을 격퇴한 카룰루스 마르텔이다. 751-870년까지는 카롤링거 왕조의 시대가 펼쳐 지는 데,카롤루스 마르텔의 아들 피핀(751∼768)이 메로빙 왕가의 마지막 왕인 킬데리히 2세(742∼752)를 폐위시키고 즉위하였다. 피핀의 손자인 카롤루스 대제(768∼814)는 여러 차례에 걸쳐 남부의 롬바르디아족을 정벌하고,동으로 바이에른 작센족을 토벌,에스파니아로 원정하여 사라센을 토벌하는 등 프랑크 왕국의 전성기를 이룩하였다. 800년에 이런 성과로 교황 레오 3세로부터 서로마 제국 황제 지위를 받았다. 프랑크족 고유의 분할 상속에 따라 카롤루스 대제 사후,골육상쟁이 전개되었으며 이에 따라 지방 제후들이 실권을 장악하는 등 왕권이 급격히 약화되었다. 카롤루스 대제의 장남 로타르가 이탈리아 및 지금의 네덜란드,라인란트 등을 장악하고,차남 카롤루스 2세가 서 프랑크를,삼남 루드비히 2세가 동 프랑크를 차지하고 이에 대해 843년에 베르덩 조약을 하게 되었다. 870년 메르센 조약을 맺어 이로 인해 루드비히는 이탈리아만을 영유하고 나머지 지역은 동,서 프랑크로 귀속되어,오늘날의 독일(동프랑크),프랑스(서프랑크),이탈리아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동 프랑크왕이었던 하인리히 1세의 아들 오토대제(936∼973)가 왕권을 강화하여 카롤루스 대제에 이어 또 다시 중부유럽의 패권을 확립하고,그에 따라 교황 요하네스 12세(955∼963)는 신성 로마황제의 왕관을 962년 오토 1세에게 수여하는 등 신성로마제국을 수립하였다. 크리스트교 보호자를 자처한 신성로마제국 황제들은 국내 문제보다 이탈리아 문제에 깊이 간여함에 따라 제후들이 독립하려는 경향이 촉발하고,후에 제후세력이 강해져 제후들간의 알력으로 새로운 황제가 선출되지 못하는 등 17년간의 대공위 시대(Interregnum,1256∼1273)를 초래하였다. 1483년 이후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그가가 황제권을 세습하였지만 1806년 나폴레옹에 의해 해체되었고,라인동맹(라인동맹은 1815년 비인회의 결과로 독일연방으로 변경)으로 대체하였다.프로이센은 원래 13세기경 독일 기사단이 개척한 곳으로,15세기에 호엔촐레른가가 신성 로마 황제 지그리스트에 협력한 공으로 브란덴부르크를 영유하게 되고,17세기 초에는 라인 강변에 영토를 얻어 급속히 성장하기에 이른다. 따라서,30년 전쟁 이후부터 국가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면서 등장하였다. 18세기 초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1713∼1740)때 가부장적 전제정치와 군국주의에 입각한 통치 이념으로 관료제와 상비군을 바탕으로 한 절대왕정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18세기 중엽 프리드리히 2세(1740∼1786)는 계몽 전제 군주를 자처하며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고 사법제도 개편하였고,상비군의 증강을 도모하였으며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과 7년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프로이센이 유럽 강대국으로 발전하는 기틀을 마련하면서 발전하게 되었다. 1862년 프로이센의 총리가 된 비스마르크(1815∼1898)는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프로이센 중심의 통일(소독일주의)을 주장하고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및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독일통일을 이룩하였다. 1866년에는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이 발발하였다. 1864년 비스마르크는 오스트리아와 결탁하여 덴마크의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을 점령하여,비스마르크는 프랑스와 밀약하여 중립을 지켜 줄 것을 약속 받고 오스트리아를 공격하였다. 1866년 7월,오스트리아 군대를 쾨니히그뢰츠 전투에서 전멸시키면서 프라하 조약으로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 지역을 독차지하였다. 프로이센은 1867년 오스트리아와 남북 독일의 4개국(바바리아,뷔르템베르크,바덴,다름슈타트)을 제외한 21개국을 결속하여 북부 독일 연방을 결성하여 맹주가 되었다.1868년에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일어났고,비스마르크는 1868년 에스파니아에 혁명이 일어 여왕 이사벨 2세가 추방되자,에스파니아 왕위 계승문제를 이용하여,전쟁 을 도발하기에 이른다. 참모총장 몰트케의 전격 작전으로 프로이센군은 메츠를 함락 하고 6주만에 스당에서 나폴레옹 3세의 항복을 받고 파리를 정복하였다. 파리 교외의 베르사유궁에서 프로이센왕 빌헬름 1세(1871∼1888)가 황제로,비스마르크가 재상으로 취임하여 통일된 독일제국이 수립하였다. 1890년 비스마르크 은퇴 후,젊고 모험적인 새로운 황제 빌헬름 2세(1888∼1918)는 범 게르만주의를 표방하고 "신항로 정책"이라 불리는 적극적인 세계정책을 추진하여,국제적 긴장을 조장하였다. 시효가 다 된 러시아와의 재보장 조약 갱신을 거부하고,1898년에는 영국의 해군력에 도전하면서,치열한 경쟁을 촉발하였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국제적 긴장은 세르비아인의 오스트리아 황태자 페르디난공 암살사건으로 폭발하여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 발발로 연결되었지만,1차 세계대전 패배후 독일제국은 붕괴되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성립하였다. 1918년에는 혁명이 일어나 호엔촐레른 왕가의 빌헬름 2세가 네덜란드에 망명하고,독일은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바뀌게 되었다. 1919년 2월 독일은 바이마르 헌법을 제정하여 18개 공화국으로 구성되는 연방 공화국임을 선포하고,초대 대통령으로 사회 민주당의 프리드리히 에베르트(1871∼1925)를 선출하였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좌익과 우익 양쪽에서 공격을 받는 등 공화국 출범 초기부터 시련에 봉착하게 되었다. 좌익 스파르타쿠스단이 소비에트를 조직하고,1918년 말부터 1919년초 까지 혁명을 기도하였으나 무력 진압을 하였다. 또한 지주,관료,산업자본가,군부 등의 우익도 제 1차 대전 패전책임을 바이마르 공화국에 참여하고 있는 자유,평화주의자들 탓이라고 공격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시련에도 불구하고 바이마르 공화국 정부는 통화 개혁(슈트레제만 개혁) 등 일견의 적극적인 전후 복구책 실시로 독일 재건의 기틀을 마련 하였으며,외교적인 측면에서 볼 때도 로카르노 조약으로 1926년 국제연맹에 가입하고,1929년 부전조약에도 서명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또한,농민을 포함 중소 시민 층과 국수주의자,대자본가의 지지를 받는 아돌프 히틀러(1889∼1945)가 이끄는 나치 당이 전후 독일의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대두되면서,1933년 히틀러는 재상 겸 총통이 되어 바이마르 공화국을 해체하고,제 3제국을 수립하였다. 1938년 3월에 오스트리아를 병합하고,그 해 9월에는 뮌헨 회담을 통해 수데텐란트를 합병하였으며,1939년 3월에는 체코슬로바키아 영토 점령 및 단치히 자치시를 병합하고,그 해 8월에는 독·소 불가침 조약을 비밀리에 체결한 후,9월 1일에는 폴란드를 침공하였다. 영국,프랑스는 기존의 유화정책을 포기하고 1939년 9월 3일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1941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에 이르기까지 독일에 승세였지만,1942년 여름부터 연합군의 총반격이 시작되면서 수세에 몰려 1945년 5월에 마침내 항복하였다. 패전후 독일은 미·영·불·소 4대 전승국에 의해 분할 점령되었다....
국제전화
-1.1(신년)
-3.29(성 금요일)
-4.1(부활절)
-5.1(노동절)
-5.9(예수승천일)
-5.20(성령강림일)
-10.3(통독기념일)
-12.25-26(성탄절)
미용실
전화 등을 통해 미리 시간약속을 해야 함.
Nassschneiden 또는 Trockenschneiden중 하나를 선택함.
Nassschneiden은 먼저 머리를 감은 후에 자르는 것이고, Trockenschneiden은 그대로 머리를 자름.
머리를 자른후 모발 세척은 별도로 하지 않고 털어내기만 함.
면도는 특별히 주문하면 되지만 통상적으로 하지 않음.
Nassschneiden의 경우 15EUR 정도가 소요되고 10-15%의 팁을 줌.
유용한전화번호
- 주 독일 한국대사관(베를린)
전화 : (030)260 650
Fax : (030)260 6551
- 주 베를린 한국영사부
전화 : (030)885 9550
Fax : (030)885 9526
- 주 프랑크푸르트 한국총영사관
전화 : (069)956 7520
Fax : (069)569814
- 주 본 영사부
전화 : (0228)267 960
Fax : (0228)223 943
- 한국관광공사지사(프랑크푸르트)
전화 : (069)233 266
Fax : (069)253 519
- 긴급연락처(경찰서,병원 등)
경 찰 : 110
화재,긴급구조 : 112
의사요청 : 19292
앰블란스 요청 : 652211
전압 및 주파수
독일의 전기는 220볼트/50Hz이며, 구멍이 2개인 유럽 표준 플러그를 사용한다. 도량형 역시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미터법을 쓴다. 천 단위에 콤마를 찍으며,10진법을 사용한다. 음식류와 치즈에는 '푼트'(Pfund)라는 단위를 쓰는 데,1푼트는 약 500g이다. 전압은 가정용과 영업용은 대개 220V,50Hz로 콘센트도 한국의 것과는 다르므로 한국 전기제품은 그대로 쓸 수가 없다. 백화점 등의 해외여행용품 매장에서 어댑터 등을 구입해 두는 것이 좋
치안
독일의 범죄발생률은 유럽 이외의 대부분의 나라보다는 낮다. 이것은 법률을 순수하게 존중하는 분위기를 갖고 있다. 그 이유는 경찰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주간 외출과 야간 외출시 특별히 문제 될 것은 없지만,현지인들은 대부분 저녁 퇴근후 외출을 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실업률 상승이 소규모의 절도사건과,특히 이민을 대상으로한 폭력사건 증가를 초래하고 있기는 하다. 야간에 역주변을 혼자 배회하거나 지하철을 혼자 탑승하는 것은 삼가하는 것이 좋다. 신나치주의자들의 외국인에 대한 테러가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기 때문이다.
또한,독일의 정치는 깨끗하다고 알려졌지만,최근에는 부패사건으로 이미지가 많이 실추된 편이다. 그대로,공무원의 부정은 거의 없다.
통화
독일은 현재 EU 회원국으로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다. 2004년 1월 현재 1유로는 1534원이다.
한국으로 전화
우리나라로의 전화방법
호텔 객실에서 전화 할 경우에는 외부 접속 번호(주로 0, 9, 7등)를 누르고 공중전화에서는 International 이라는 표시가 붙은 곳에서 할 수 있다. 국제전화 통화 번호인 00을 누르고 82+0을 제외한 지역번호+전화번호를 순서대로 누르면 된다.
수신자 부담 전화는 0130-13-0820을 누르면 서울의 교환원이 나오고 원하는 전화번호를 말하고 통화한다.
주의사항
1. 독일은 잘 알다시피, Kalk(석회)가 물에 떠서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수도물은 그냥 마실 수 없으므로 식수는 미네랄 워터를 사 마신다. 때문에 독일인들은 더욱 맥주를 자주 물처럼 마시고, 맥주 산업이 번창했다. 독일 뿐만이 아니라 전 유럽에서 상수도물을 그냥 먹을 수 있는 나라는 드믈다.
2. 유럽 전 지역에는 유료 화장실이 많으므로, 항상 약간의 잔돈을 준비해 두는 것이 좋다. 독일 화장실의 남녀 구분은 신사(Herren), 숙녀(Damen)로 표시되어 있으며, 문에 남, 녀의 상징 그림 없이 간단히 H와 D로도 표기되어 있는 곳이 있으므로,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3. 독일은 금연을 철저히 지키는 나라이다. 금연 표지가 있는 곳에서는 절대로 담배를 피워서는 안된다.
4. 집시나 부랑아들에 의한 절도를 주의한다. 아주 노련한 솜씨로 여행객의 주머니를 노리므로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일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귀중품은 호텔 금고에 맡기도록 한다. 하지만 비교적 독일은 치안이 안정되어 신변의 위험이 크지 않다.
5. 여행시 옷차람에 주의한다. 대부분의 유럽국가는 격식있는 레스토랑이나 카지노, 오페라극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정장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한 일정이 없는 여행일 경우에도 여름엔 아침 저녁으로 쌀쌀하므로 방한의류를 준비하고 여름 이외의 기간에는 비가 자주 내리므로 보온에 주의한다.
6. 구동독 지역은 실업자가 많아 외국인에 대한 혐오감이 있을 수 있으므로 이 지역을 여행하는 경우
안전에 더욱 유의하여야 함.
비자
60일 이내 체류시에는 비자 없이 6개월 이상 유효한 여권만 있으면 된다
버스
장거리를 여행하려면 독일의 장거리 여행버스인 코치를 이용할 수 있다. 로만틱 가도, 고성 가도, 검은 숲 지방을 여행하려면 유로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고 매년 4~10월까지 운행한다. 산악지대에는 국철버스와 우편버스가 운행하고 다양한 종류의 투어버스가 있어서 여행하는 데 편리하다.
철도
외국인 여행자를 위한 철도 패스를 이용하면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다. 독일의 철도 패스는 1개월 안에 4일동안 사용할 수 있는데 1등석과 2등석으로 구분되며 최대 6일을 더 추가할 수 있다.
독일의 기후는 우리나라보다 위도가 높지만 멕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비교적 따뜻하지만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일조량은 지극히 적다. 사계절의 구별이 정확하지만 온도차이가 그리 큰 편은 아니다.
독일의 여름은 혹독한 더위가 별로 없고 습도도 낮으며, 밤 9시가 넘어서도 어둡지 않아 여행을 하기에 적당하지만 아침과 밤에는 기온이 내려가므로 긴소매 옷이 좋다. 겨울에는 오히려 여름보다 습도가 높고 비가 오는 일이 많으므로 주의한다.
시차 : -8시간
▶ 가르미쉬-파르텐키르헨 [Garmish-Partenkirchen
해발 2,964m, 독일에서 가장 높은 산 추크슈비체로 가는 관문입니다. 가르미쉬-파르텐키르헨에서 톱니바퀴열차로 75분이면 추크슈비체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방법은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아입제 케이블카 역에서 10분내로 정상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정상에 오르면 오스트리아, 스위스, 이탈리아, 독일의 수천 개에 이르는 산봉우리가 만들어내는 장관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한 한 여름에도 눈과 얼음을 볼 수 있는 독일 유일의 만년설 빙하가 있고, 레스토랑이 자리잡고 있어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식사를 즐길 수 있습니다.
▶ 드레스덴 [Dresden]
드레스덴은 통독이전 옛 동독 제 3의 주요도시로서, 북쪽으로는 덴마크, 서쪽으로는 네덜란드, 프랑스가 자리잡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폴란드,체코,오스트리아가,남쪽으로는 스위스로 나아갈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지형적으로 마이센과 엘베강 상류 골짜기의 드넓은 분지 위에 위치한 이 드레스덴이 속해있는 이곳 작센주는 연방공화국에 편입된 주들중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곳이다.
'백탑의 도시' 로 불리던 드레스덴은 중세에는 엘베강의 수로를 이용한 상업도시로서 발전하였고, 16세기 이후에는 작센의 수도로서 번영하였다. 작센주는 새로이 연방공화국에 편입된 주들 중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고 가장 산업이 발달되어 있어 독일 통일의 진원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작센에는 산업만이 발달한 것이 아니라 문화사적으로도 라이프니츠, 바하, 렛싱, 바그너 등과 같은 유명한 인물들과 유물들이 많다. 18세기 전성기를 구가했던 아우구스트 대왕시절, 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궁전이나 교회,귀족들의 주택들이 나란히 늘어서 있던 이 도시는 '엘베의 피렌체', '바로크의 진주'라 불리울 만큼 예술과 문화의 도시로 유명했다.
그러나, 이 도시는 제 2차 세계대전의 공습으로 약 90% 정도가 며칠 사이에 잿더미로 변한 아픈 상처를 지니고 있지만, 전후 충실히 재건되어 지금은 과거의 영화롭던 작센왕국의 수도로서의 위용을 되찾고 있다. 1985년 음악의 전당인 젬퍼 오페라가 되살아났고, 기와 조각들로 산을 이루고 있던 르파우엔 교회도 동서통일 후에 복구작업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배경속에 올해 노벨 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귄터 블로벨(63)교수는 노벨상 상금을 2차대전 중에 연합군의 폭격으로 파괴 되어진 이곳 드레스덴의 복구를 위해 기증하는 일까지 행해졌다. 이제 드레스덴은 공작기계,정밀기계,식품공업 등이 성행하는 공업도시로 뿐만 아니라 역사깊은 예술과 문화의 도시로서 자리매김을 단단히 하고 있다.
또한,드레스덴은 쉬츠가 평생동안 칸토르로 봉사했던 독일 음악과 문화의 중심지였다. 그 도시의 성 누가교회의 십자가 합창단(Dresdner Kreuzchor)은 루돌프 마우어스베르거가 쉬츠의 전통을 이어받아 독특한 개성을 풍기는 합창단으로 성장시켰다. 이 합창단의 특색은 빈소년 합창단이나 퇼쯔 소년 합창단처럼 예리하고 맑은 훈련된 세련된 미성을 내지는 못하지만,자연스러운 발성속에 다소 거칠고 애상적인 음조를 띤 심금을 울리는 음색이 단연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그들이 노래하는 쉬츠의 '십자가 상의 일곱 말씀'이라는 곡이 유명한데,이 곡에서는 예수가 테너로, 좌우의 강도가 베이스와 알토로 등장하며 선율이 아름답고 웅장한 곡으로서 감동을 준다.
그 밖에 드레스덴하면 빼어 놓을 수 없는 것이 452년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인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이다. 이는 1548년에 설립된 작센 궁정악단이 모체가 되었고,요하네스 발터를 초대 악장으로 시작하여 베버와 바그너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음악가들이 이곳에서 지휘자 또는 음악감독으로 활동했다. 1차 대전 후에 수석지휘자가 음악감독을 겸임하는 전통이 생겨나 켐페,주이트너,블롬슈테트 등 당대의 마에스트로를 거쳐 현재 주세페 시노폴리가 그 화려한 전통을 이어 나가고 있다.
단연 미술사적인 측면에서도 '다리파(Die Brueke 1905-1913)'라는 독일 표현주의의 혁신적인 신개념을 만들어 낸 곳이기도 하다. 당시 드레스덴의 고등 공업학교 학생이던 키르히너,헤켈,시미트-로플루프 등 세 사람이 창립자로서 등장한 이 파는 안이한 중산층의 도덕의식과 물질문명에 반발하고 새로운 인간시대를 지향하는 사회 개혁적 의지를 담아 현대 인간의 심리적, 사회적 의식을 작품 주제로 삼아 구현해 냈다.
교육
독일의 경우에는 종합대학(Universitaet)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특수 공과대학이나 교육대학,또 종합대학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 학교들이 많이 산재해 있다. 공과대학에서는 본래 기술분야의 학과만을 공부하게 되어 있지만 오늘날에는 여러가지 다양한 학과가 신설되어 종합대학과 유사한 교과과정을 다루기도 한다. 그 예가 독일 내에서 공대로 이름이 난 이곳 드레스덴 공대의 경우이다. 드레스덴 공대(Technische Universitaet Dresden)에서는 공학뿐만 아니라 철학,심리학,경제학 등을 전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물론 자연과학과 공학분야가 핵심을 이루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또한, 종합대학(Universitaet)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 특수 전문대학들(Hochschule)도 존재하는데,드레스덴에 있는 의과대학(Medizinische Akademie)이 그러한 위치에 있는 대학이다. 그 밖에도 드레스덴에 위치한 드레스덴 음대의 원서마감은 여름학기는 4월 30일,겨울학기는 12월 1일이다. 이 학교의 주소는 Hochschule fuer Musik "Carl Maria von weber",Wettiner Platz 13. PSF 120039 01001 Dresden이다.
산업
이곳은 전자산업과 정밀,광학 공업이 유난히 발달한 도시이다. 특히, 오늘날 전자산업 부문에서 큰 역할을 주도하고 있는 AMD제품 제조공장은 썬더버드(Thundertbird)라는 고성능 애슬론 프로세서의 개발과 함께 컴퓨터 업계에서 큰 시장 점유율을 나타내고 있다. 이 썬더버드는 기존 미국 오스틴 공장 제품처럼 알루미늄 회로가 아니라 전기 전도율이 높고 열에 더 강한 구리 회로로 만들어져 있다. 크기 또한 기존제품에 비해 작고,패키지 비용이 저렴하여 소비자 및 기업시장까지 판로를 확대할 예정에 있다. 따라서,이곳 드레스덴 AMD공장의 생산증가는 곧 더 큰 이 기업의 시장 점유율 확대로 연결되어 질 것임에 틀림없다.
동쪽의 산업 중심지 역할을 해 왔던 드레스덴은,오늘날에도 계속해서 발전의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지멘스 AG가 드레스덴에 마이크로 전자 공학을 위한 고도 성과와 기술 혁신 센터를 세우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그 밖에도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도자기제 식기인 사기그릇이 이곳에서 만들어지고 있을 정도로 정밀 도자기 제조업 또한 성행하고 있다
유라시아 내륙을 향해 평야가 펼쳐지는 동쪽으로 점차 갈수록 강수량은 감소하며,가장 따뜻한 달과 추운 달의 평균 기온차는 커진다. 비교적 사계절이 뚜렷하여 여름은 건조하고,겨울은 비가 많은 편이다. 또한,이곳은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겨울의 기온이 높은 편에 속한다.
▶ 라이프치히 [Leipzig]
라이프치히는 현재 사회적으로 큰 변화를 겪고 있다. 도시 곳곳에서 전통과 진보가 공존하고 있으며 과거의 화려했던 흔적을 보여주는 뛰어난 건축물에는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다. 출판물 인쇄와 교역을 통해 라이프치히는 중세 시대 후반 유럽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도시에서는 언제나 교육과 문화, 과학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라이프치히에는 일찍이 1409년에 대학이 설립되었고 라이브니츠, 괴테, 실러 및 바흐 등은 모두 이 도시의 매력에 이끌려 이곳에서 활동하였다.
▶ 로텐부르크
살아있는 중세의 도시이며,중세의 보석이라고 불리워 지는 로텐부르크는 로만틱 가도에서 관광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도시의 정식 명칭은 'Rothenburg ob der Tauber'이다. '타우버 강 위의 로텐부르크'라는 이 이름은 강 위에서 보면 지대가 매우 높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붙여졌다.
'독일에도 이런 도시가 있구나'하고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중세풍의 작고 예쁜 마을이다. 로만틱 가도상의 도시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도시중의 하나이지만, 그 규모만 볼 때에는 도시라고 보기에는 너무 작은 감도 드는 곳이다. 로만틱 가도와 고성가도가 만나는 교통의 요충지로 해마다 백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마을에는 갖가지 볼거리가 풍성하며,건축물들은 모두가 전통적인 독일의 가옥들이다.
이 도시의 기원은 9세기로 소급되어 질 수 있는 데,최초의 성벽이 12세기에 만들어 졌다고 한다. 1274년에는 ‘자유 제국 도시’라는 명칭까지 얻었으며,도시의 외곽은 탑이 있는 성벽으로 둘러 싸여 있다. 특히,중세의 아름다움이 거의 완벽하게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도시로도 유명하다.
시청사의 꼭대기 전망대에서는 보존된 중세 성곽 안의 멋진 건물들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으며,좁고 삐그덕 하는 낡은 나무 계단을 오르는 것만으로도 무척 운치 있는 여행이 될 수 있는 곳이다. 이 도시의 대표적인 명물로 여겨지는 인포메이션 센터 건물의 와인 마시는 시장 시계인 'Meistertrunk'는 볼 만한 가치가 있으며, 60m의 종루가 우뚝 솟아 있는 시청사와 리멘슈나이더의 걸작인 '최후의 만찬'의 나무 조각이 걸려 있는 성 야곱 교회, 중세 범죄 박물관과 인형,완구 박물관 등은 꼭 가 볼만한 명소들이다.
이곳은 타우버 천이 휘어흐르고 있는 강변,녹음이 짙은 전원지대의 구릉지 위에 자리잡고 있다. 남부 독일 바이에른 주에 속한 도시이며,타우버 강 계곡 기슭에 있는 로텐부르크는 뷔르츠부르크에서 퓌센에 이르는 350km의 로만틱 가도의 일부 도시중의 하나이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가도 중에,타우어비쇼프스 하임 아래에 위치하며,도나우뷔르츠와 아우구스부르크의 위쪽에 자리하고 있다.
교육
로텐부르크에는 6세부터 10세의 아이들이 다니는 'Luitpoldschule Rothenburg odT'초등학교가 있는 데, 이곳은 중세 시대에 유명했던 규율학교의 이름이었던 OdT와 Luitpold 왕자의 이름을 따서 학교명을 지었다. 이곳은 1902년에 만들어진 전통깊기로 소문난 곳이며,약 19반에 490명의 학생들이 재학중이다. 그리고,공림의 실업계 중학교인 'Oskar-von-Miller-Realschule'는 1954년에 창립되어 진 학교로서, 총 7개의 학급이 운영 중이며, 일주일에 의무 시간제로 30시간씩을 공부하고 있다. 또한, 학교 자체의 관현악단과 악기부 등이 있어 교외 활동도 활발히 할 수 있게 지도하고 있다.
이 외에도, 1951년에 처음으로 세워 진 '괴테 인스티투트(The Goethe-Institut)'가 이곳에도 마련되어 있는 데, 이는 전 세계에 올바른 독일어 교육을 전파시키고 알리는 데,큰 역할을 주도해 온 고급의 어학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기관이다. 이곳은 세계 76개국에 127개의 문화원을 설립하여, 여러 가지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과 독일어 강의,현대 독일 정보 등에 중점을 두고, 실력있는 교사진을 공급하여 독일어 실력의 증진에 도움을 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산업
독일내 최고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바이에른 주는 경제규모가 큰 곳으로서,1998년도 주내 총생산(GDP) 규모를 보면 6,430억 마르크로 화란과 비슷하며 이는 EU 15개국 전체와 비교할 때 6위에 해당한다. 1인당 GDP도 53,000마르크로 프랑크푸르트가 있는 헤센주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고도의 기술이 발달한 독일 최대의 공업지역이며,전기전자,통신,기계공학,자동차,항공우주,의료기기 및 환경산업이 발달하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동차 회사인 BMW,AUDI,전자통신회사인 지멘스,항공의 다임러크라이슬러 에어로스페이스(DASA),고속철도 이체에(ICE)를 개발하고 있는 아트란츠(ADTRANZ) 등의 본사도 모두 이곳에 위치하고 있다.
로텐부르크에는 미학적인 대비를 이루며,현대적인 건축물들이 많이 자리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건축물이 바로,굴지의 자동차 회사인 다임러 클라이슬러사의 건물(KunstKulturKorn)과 상업의 중심지인 ZentRo,뮌헨의 올림픽 주 경기장을 건축한 Behnisch의 체육관 건물 등이다. 구시가지의 유일한 현대적인 예술 작품으로는 괴테 인스티투트 바로 앞에 위치한 1998년,Peter Nedwal의 계획하에 이루어진 괴테 강당이 눈에 띤다.
또한, 기술개발과 연구의 요충지로서 바이에른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11개의 막스 프랑크(Max Plank) 연구소와 6개의 프라운호프 연구소,환경 및 건강관련 연구소인 GSF Research Center 등 35개의 유명 연구소가 집중되어 있다. 연구개발 종사인력이 68,000여명에 달하는 유럽내 최고의 연구투자 집중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로텐부르크는 독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 코스인 낭만 가도의 일부 도시로서,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풍부한 문화유산 덕분에 오늘날 매우 인기있는 관광지로 해마다 많은 외국인들이 찾고 있다. 중세의 도시를 그대로 재현시킨 듯한 이 도시의 아름다움은 실로 가 본 이들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 밤베르그 [Bamberg]
밤베르크는 인구가 약 78,000명 밖에 안 되는 작은 도시이지만 하우스맥주집이 10곳이 넘을 정도로 하우스맥주의 메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맥주는 다른 지방에서 맛볼 수 없기 때문에 매년 많은 관광객이 오고 있습니다. 특히 훈제맥주(Rauchbier)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독특한 맛과 향이 있는 흑맥주, 밀맥주, 필스 등 약 60여 종류의 맥주 맛을 보실 수 있습니다.
도시의 역사는 1007년 도시가 건설되어 올해로 1000년이 되었으며, 구 시청을 비롯하여 마을 자체가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1993년 12월 11일 유네스코에서 ‘세계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1000년 고도에서 마시는 맥주는 누구나 동경하는 모습 이라고 할 수 있겠죠?
또한 밤베르크에는 1677년부터 330년 동안 맥주제조기계를 생산하는 ‘Kaspar Schulz’ 회사와 125년 전통의 맥아제조회사 ‘Maelzerei Weyemann’이 있을 정도로 맥주에 대한 자부심이 큰 도시입니다.
▶ 뮌헨 [Munich]
독일에서도 가장 중요한 도시 중의 하나인 뮌헨은 알프스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독일에서 베를린과 함부르크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도시인 뮌헨은 하이델베르크와 더불어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모이는 대표적인 도시이며,남독일 문화의 중심지로서 12세기 이래 바이에른 공국의 수도였다. 독일에서 가장 큰 자치주인 바이에른주의 수도이기도 하며,인구 130만명으로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더불어 예술적으로도 많은 매력을 지닌 곳이기도 하다. 바이에른 왕국시대의 훌륭한 건축 예술을 자랑하며,남부 특유의 낙천적인 생동감이 살아 넘치는 대학 도시로서,바이에른의 어머니와도 같은 도시이다. 게다가 뮌헨은 독일문학의 중심지이면서 남부 독일에서 가장 번성한 상공업 도시이다.12세기 중엽 바바로사 황제가 주요 산물인 소금을 거래하고 이웃 도시와의 상업계약을 이곳에 끌어들인 후부터 상업도시로 발달하기 시작했으며,현재에 이르러서는 독일 남부의 문화, 교통, 상공업의 중심지로서 날로 번창하고 있다.
'뮌헨'이라는 이름은 원래 '작은 수도승(Moch)'이라는 뜻으로서,건설 당시 이곳이 수도원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수도승(Moch)이라는 단어에 '귀엽다' '사랑스럽다'라는 뜻을 함유한 chen을 붙여 오늘날의 '뮌헨(Muenchen)'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곳은 바이에른주 최대의 공업도시이며,세계적으로 유명한 맥주 양조업을 비롯하여 자동차,광학 정밀기기,전기,화학,직물,제지 및 인쇄 등의 공업이 다양하게 발달하였다. 또한,남부 독일의 철도 요지로서 3개의 아우토반(고속도로)이 지나고,국내는 물론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로 통하는 국제열차가 발착한다. 시의 동쪽 10 km 지점에 있는 리임 공항은 거의 모든 국제선과 연결되고 있다.
이외에도,막스-플랑크 연구소와 핵 연구용 원자로를 갖춘 학문 연구의 중심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으며,독일 최대의 종합대학인 현 뮌헨대학의 전신인 루트비히-막시밀리안대학을 비롯하여 공과대학,정치대학,조형미술대학,주립음악대학,바이에른 과학 아카데미 등이 있다. 그리고,2개의 음악당과 45개의 박물관,약 42개의 극장이 있는 뮌헨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물과 초 현대식으로 발전한 시장이 조화를 이루어 나가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로서,이곳의 뮌헨 필하모니 관현악단과 바이에른 관현악단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라이온 퓨쳇 바그너,토마스만,프랑크 베데킨트와 루드빅 토마 등이 이곳 뮌헨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혼합된 이 도시를 깨어있게 하고 온화한 기후와 밝은 거리,명랑한 시민의 표정은 이 도시를 더욱 활기차게 만들고 있다.
다소 개방적인 분위기의 뮌헨은 세계적인 박물관과 멋진 공원,건축물,놀라운 활기를 자랑한다. 이 도시에는 님펜브로이성 등의 바로크 양식의 유명 건축물들과 도이치박물관,알테·노이테피나코테크미술관,올림픽파크,BMW공장,슈바빙 거리 등의 관광 명소들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이 도시에는 많은 교회가 있는데,그중에서도 후기 고딕양식으로 세운 여성교회와 상트페터 교회,17세기 중반에 건축한 테라니어 교회,18세기 중반에 세운 아잠교회 등이 매우 유명하다. 그밖에도,신,구 시청사가 자리잡고 있는 마리엔 광장과 각각의 양식으로 세워진 건물들이 많은 루드비히 거리,뮌헨의 명물로 알려진 호프브로이하우스와 시청의 벽면 시계인 글로켄쉬필 등이 관광 명소로 손꼽힌다.
우리에게 뮌헨은 맥주의 본고장으로 친숙하며,1972년의 올림픽 개최지로 잘 알려져 있다. 뮌헨의 대표적인 축제로서,10월에 열리는 맥주축제인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에는 세계의 관광객들이 한꺼번에 몰려들기도 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크게 벌어지고 있는 이 축제는 유명한 맥주 제전이라고 할 수 있는 데,이 축제에서는 매년 대략 5백30만ℓ(5백cc로 1천 6백만잔)의 생맥주와 60만 마리의 닭,생선 17t 과 110t의 소시지 등이 순식간에 소비된다고 한다. 이외에도, '리하르트 바그너 축제', '모차르트 축제' 등이 열리며,각종 박람회와 국제회의가 수시로 개최되고 있다.
교육
뮌헨에는 독일 최대의 종합대학인 루트비히-막시밀리안대학(뮌헨대학)을 비롯하여 뮌헨 공과대학,정치대학,조형 미술대학,주립 음악대학,바이에른 과학 아카데미 등이 있으며,막스 플랑크 연구소를 비롯하여 많은 연구소가 있다. 특히,계열별 대학평가 시리즈 완결편에서 포쿠스誌는 주요 20개 학과를 교수진,교과내용,학습공간,도서관,컴퓨터 보유 등의 기준에 따라 평가,계열의 대학별 점수를 매겼는 데,뮌헨 工大(TU)가 물리와 화학에서 1위,전자·지리·정보학에서 2위를 차지해 종합 2위에 올랐으며,3위는 의학과 심리학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뮌헨 루트비히-막시밀리안大(LMU)가 차지했다고 한다.
특히, 뮌헨 공대는,1923년 과학자 프라운호퍼 등이 기술대학의 설치권고로 인해 1933년 뮌헨대에 소속되었다가,1968년 독립되어 현재의 건물에 설립되었고,1970년 뮌헨기술대학으로 승격되었다. 약 21,000명의 학생이 재학중에 있으며,240명의 교수,9315명의 직원,캠퍼스는 메인캠퍼스 외에 4개 지역에 산재해 있다. 수학,물리학,화학·생물학·지구과학 및 경제학·사회과학,토목 공학·측량,건축,기계공학,전기공학·정보기술,정보학,그리고 농업· 원예학,양조·식품기술·낙농학,약학 등의 학과가 조직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타시설로는 어학센터,언론미디어센터,학생상담소,국제관계청 등이 있다. 이외에도,뮌헨 EF(International School of English)는 Herzogstrasse의 조용한 터에 위치하고 있는 데,비디오 시설이 완비된 밝은 강의실과 어학실습실,컴퓨터실,도서열람실과 인터넷 시설 등의 교육시설을 갖추어져 있고,흥미진진한 사교활동 프로그램을 진행시키고 있다. 무엇보다도,바바리안 민박 가정의 환대속에 생생한 살아있는 독일어를 배울 수 있고,독일어 시험과정도 가능하므로, 국제적으로 일급 랭귀지 학교로서 인기가 좋다.
산업
과거 독일의 최대 농업 중심지이기도 했던 뮌헨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현대적인 산업과 서비스 부문에서 큰 발전을 보였다. 따라서,전후 바이에른주 최대의 공업도시이며,세계적으로 유명한 맥주 양조업을 비롯하여 광학정밀기기,전기,자동차,기계 및 화학,직물,제지,인쇄 등의 공업이 다양하게 발달하였다.
이렇듯 바이에른의 주 수도인 뮌헨은 온갖 기관이 있는 메트로폴리스이며, 활동적이고 역동적인 경제생활을 유지하는 대표적인 곳이다. 독일을 대표할 만한 자동차 회사인 BMW를 위시로 하여,항공기 산업,전기와 전자 산업,보험회사와 출판 상사 등이 산재해 있으며,과학과 연구의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뮌헨의 기후는 서유럽 해양성기후와 동유럽 대륙성기후의 중간형이며,연평균기온 7.9℃,연강수량 910㎜이다. 비교적 독일에서 밝고 온화한 기후를 느끼게 하는 남부 지역은 한국의 북쪽지역과 비슷한 기후 경향을 나타낸다. 비교적 쾌적한 기후이지만 기후가 변하기 쉽다는 점과 여름에는 밤이라도 피부에 찬 기운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야간에 오는 추위를 주의하면 된다. 대체로,겨울은 춥고,찌푸린 날씨가 계속된다. 여름에도 가디건이나 스웨터가 필요하며 레인 코트는 연간 필요하다.
▶ 베를린 [Berlin]
독일의 북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엘베강의 지류와 슈프레강의 합류점에 있는 독일의 수도이다. 즉,베를린은 바르샤바와 베를린 주곡에 있으며, 가항하천인 슈프레강이 흐르면서 하펠강과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다. 베를린의 시구역은 동서 20km, 남북으로 30km의 비교적 넓은 약 870km2로서,서울면적의 1.4배나 되는 면적을 지니고 있다. 면적으로 볼 때에는 로스엔젤레스,런던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에 속한다. 크게 두 지역으로 양분해 보면, 서베를린 지역은 대부분 녹지대로 이루어져 있는 교외 지구가 모여서 생긴 공동체이고, 동베를린은 시의 구시가지를 뜻한다.
'새끼곰'이란 뜻의 'Bearlin'을 따 이름지어진 베를린은 오랫동안 독일 역사의 중심지로 자리해 왔다. 한때는 제2차 세계대전의 희생물로 '육지의 섬'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동독 안에 갇혀 냉혹한 이데올로기가 대립했던 베를린은 15세기 브란덴부르크 제국의 수도였으며,이후 18세기에는 프로이센 왕국,19세기에는 비스마르크의 제 3독일 제국의 수도이기도 했다. '슈프레 강의 아테네'라고도 불리웠던 베를린은 통일 동독의 수도이기도 하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폐허가 되었었지만,프랑스의 꼬르뷔지 등의 유명한 건축가에 의해 현대적인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20세기에 이르러서는 독일 문화,예술의 중심일 뿐 아니라 유럽 문화의 중심지로도 인정받고 있다. 카바레의 여인 클레어 발도프,'짧은 시'의 시인인 오토 레이테르,작곡가인 홀렌더 등은 물론,현대 도시의 도안가인 하인리히 칠레 그리고 그의 동료 화가인 막스 리버만 등도 그들의 흔적과 인상을 이 도시에 뚜렷하게 남겨놓았다. 한때 이 도시는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으로 갈리는 운명에 처하기도 했으나 통일 이후 이데올로기의 둘레에서 벗어나 하나의 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며,신생 독일의 중추로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문화적인 세계 도시로서도 명성이 나 있는 베를린은 베를린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선율과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건립한 베를린 앙상블로도 역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중심부로 들어 갈수록 울창한 숲과 호수로 둘러 싸여 있어 시민들의 휴식처 기능을 하고 있다. 베를린 중앙으로 흐르는 슈프레 강을 중심으로 하는 브란덴 부르크문 서쪽에 나 있는 티어 가르텐(Tiergarten)과 같은 공원들과 수많은 나무 숲이 베를린을 전원의 도시로 만들어 주고 있으며,호수와 강,운하가 곳곳에 퍼져 있는 젊은 이들의 문화,예술 활동이 활발한 도시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19세기 후반기에 베를린은 유럽의 가장 큰 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해 왔으며,지멘스와 AEG와 같은 세계적인 상사의 고향이기도 하다. 오늘날 이 도시도 근본적인 구조 변화를 겪고 있지만,새 수도로 발전하는 이 도시는 사무와 법률 자문,기술 서비스 등에 산업의 촛점을 두어 독일의 대규모 빌딩들이 점차 들어서고 있는 실정이다. 데비스(Debis)와 소니(Sony) 회사들도 거대한 규모의 사무실 단지를 현재 건축중에 있으며,이곳의 프리드리히가에는 이미 초대형 쇼핑센터가 개장되었다. 국제 회의 장소로서도 베를린은 세계에서 여섯 번째 이며,베를린 국제 오디오,비디오 박람회는 전자 소비 시장으로 세계에서 가장 크다.
독일에서 가장 큰 대학 도시 중의 하나이기도 한 이 도시는 모든 분야의 과학자들이 연구 수행을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으로 소문이 나 있기도 하다. 대학 외에도 250여 개의 연구소들이 여기에 산재해 있으며,그 중에는 베를린 스토리지 링 신크로톤 방사능 연구소(Bessy),분자 의학 연구소,프로이센 문화 유산 연구 재단,정보 기술의 콘라트 추제 연구소 등이 있다. 루돌프 비르코프,로베르트 코흐,알버르트 아인슈타인과 카를 보슈,에밀 폰 베링,막스 플랑크와 프리츠 후버 등도 이곳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대표적인 이들이다.
영화 제작의 중심지이기도 한 베를린은 최고 권위의 베를린 영화제를 1951년부터 개최해 오고 있는데,이 영화제는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제로서,칸느 영화제와 쌍벽을 이루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들이 잘 아는 '블루엔젤'의 마를렌 디트리히(Marlene Dietrich 1901-1992)도 베를린 태생의 유명한 배우이다. 그 밖에도 신문 분야에서 경쟁력 있으며,독일 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행하는 '벨트지','베를린 조간','타게스 슈피겔','베를린 신문' 등을 출간하고 있으며,독일의 첫 라디오 방송이 1923년 여기에서 시작되었고,1931년에는 세계 최초의 TV 방송이 전파를 타고 나갔다. 그리고,역대 베를린 시장들 가운데에서는 전후 독일에서 안팎으로 큰 역할을 한 인사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이들이 바로 에른스트 로이터,빌리 브란트,리하르트 폰 바이체커 들이다.
교육
베를린에는 1948년에 창립된 베를린 자유대학(Freie Universitaet Berlin/FU)과 1799년에 공과 대학으로 창립되어 1946년에 종합 대학으로 승격된 베를린 공과 대학교 등 3개의 종합 대학과 1개의 종합 예술 대학,미술 대학과 전문 대학,교육 대학,프로테스탄트의 신학 대학,음악 대학,예술 대학 및 영화,행정 대학 등 6개의 단과 대학이 있다. 베를린 훔볼트 대학(Humboldt Uni. Berlin/HU)의 입학 서류 제출기간은 여름 학기는 1월 15일,겨울 학기는 7월 15일까지 지원해야 한다. 이 대학에서는 외국인 학생들을 위해 무료로 다른 외국어 및 독일어 강좌를 개설하였다. 강좌는 매학기마다 조금씩 다르지만,학기 초에 직접 찾아 가서 여기에 관련된 소책자를 참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베를린 자유 대학이나 훔볼트 대학들도 독일의 타 대학들과 마찬 가지로,모든 학생들에게 다양한 스포츠를 할 수 있는 강좌를 개설하였는 데,무료로 할 수 있는 운동도 있고,10마르크에서 몇 백 마르크까지 내야 되는 스포츠도 있다.
베를린 예술 대학(Hochschule der Kuenste/HdK)은 약 4400명의 학생들이 등록하였으며,그 중 600여 명의 외국인 학생이 공부하고 있다. 교수 인원은 약 260명 정도이고,이 대학은 4개의 커다란 단과(문화,창조,음악,공연 예술)로 구성되어 있으며,각 단과마다 다시 몇 개의 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외에도 구 동독 지역에 위치한 음악 전문 대학인 "Hans-Eisler"와 영화와 TV 학교로서 감독,촬영,시나리오 등을 공부할 수 있는 '독일 베를린 필름-TV 아카데미'(Deutsche Film-und Fernsehakademie Berlin) 등도 있다. 또한,1770년에 프리드리히 대왕의 명령에 의해 베를린에 광산학원(Bergakademie)와 1799년에 건설 학원(Bauakademie),그리고 1821년에 산업 학원(Gewerbakademie)이 세워져 베를린 공과 대학교의 중요한 전신이 되기도 했던 이 학교는 마침내,1946년,나치 정권하의 과거와 단절하기 위해 이름도 기술 단과대학에서 공과 대학교로 개칭하였으며,학과 내용 역시 바뀌었다. 1980년에는 베를린 사범대학이 해체되고 베를린 자유대학교(FU)와 베를린 공과 대학교(TU)로 흡수 되기에 이르렀다. 현재 베를린 공과 대학교는 독일에서 10대 대학교 중의 하나이며,공과 대학중에서는 가장 거대한 규모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독일에서 재학생 중 외국인의 비율이 가장 높은 대학교이기도 하다. 총 560 여 명의 교수진과 3만 6천명의 학생들이 재학중에 있다. 그 밖에도,경제 연구소와 29만 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 기념 도서관,본래의 프로이센 국립도서관이 1954년 이래 독일 국립 도서관으로 개칭되어 총 240만 권의 책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110만 권의 서적과 70만 5천 부의 학위 논문을 소장하고 있는 훔볼트 대학 내의 부속 도서관 또한 훌륭하기로 익히 소문이 나 있다.
사회
19세기 후반기에 베를린은 유럽의 가장 큰 상업의 중심지 였으며,세계적으로 유명한 지멘스와 AEG와 같은 큰 회사들이 처음으로 이곳에 근원지를 마련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점차 새로운 역할을 충족 시키는 수도의 발전이라는 맥락에서 볼 때,베를린의 강조점은 전통적인 산업만이 아닌 서비스 부문과 분야가 점점 커 가고 있다. 즉,사무와 법률적인 자문,재정 서비스,마케팅,소프트웨어 부문,광고,기술 서비스,기술 교육 등이 그것이다.
베를린은 기계 엔지니어링,광학 공업,화학 및 의류 등의 경공업이 주요 산업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이며,패션 중심의 주요 도시로서도 잘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도 독일 베를린의 기업인 프라이베르거사는 베를린에 있는 큰 규모의 스포츠 단체를 위하여 중요한 스폰서 역할을 하고 있다. "알베르또" 마라톤 대회는 매년 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백 만명이 넘는 관중들이 동원되곤 한다. 그 때마다 프라이베르거사는 알베르또 상표로 모든 참가자를 위하여 대규모의 파스타 피자를 제공하여 베를린시의 스포츠 행사에 크게 기여하고 있기로 소문이 나 있다. 그리고,그 밖에도 스포츠 팀의 지원에도 프라이베르거사는 매우 적극적인데,예를 들어 농구에 있어서 "알바 베를린",아이스하키에서는 "독수리 만하임" 등의 유럽 정상의 스포츠팀을 위해,이 외에도 대중적인 스포츠 분야에서도 재능있는 후진 양성과 젊은 선수들을 열심히 지원하고 있다.
하벨강과 슈프레 강은 구릉 지대에 있어서 교외 외곽으로 흘러 간다. 수 많은 자연 공원들과 경관 보호구,생물 서식권 지구의 보존이 잘 되어 있는 이 지역은 특히,농경과 삼림이 주를 이루고도 있다. 삼림 지역에서는 호밀,밀,감자,사탕무우가 생산되고 있으며,베를린 주변에서는 채소와 과일이 많이 난다. 그 밖에,이 지역의 지하자원으로는 갈탄이 대량으로 매장되어 있어,화력 발전에 주요 자원으로 쓰이고 있으며,비료 가공 역시 독일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겨울에는 그리 춥지 않으며,보통 평균 기온이 0도이하로 내려 가는 경우가 거의 없는 편이다. 대체적으로 1년을 통해 볼 때에,비교적 비가 적은 편이다. 여름은 건조기로서 쾌창한 날이 계속되며,마치 한국의 초가을을 생각케 하는 기후이다. 따라서,여름은 서늘하고 온도차가 심하므로 건강에 특히 주의하여야 한다. 베를린에서의 여름 한 낮 온도는 대개 23도 정도이며,강수량은 그리 많지 않고 미미하다. 독일 전역을 걸쳐 눈의 양은 어느 정도 내리는 편에 속하지만,너무 많은 폭설로 인해 일상 생활에 피해를 줄 정도로 내린 경우는 베를린에서 거의 없다.
▶ 리즈본 [Lisbon]
라인강이 도시를 가르지르는 본은 약 30만 명의 적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수도가 베를린으로 넘어가기 전까지는 분단시대 옛 서독의 수도이기도 했다. 본의 시내 분위기는 안정되어 있고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아 도시 전체가 평온하기만 하다. 독일 문화의 가장 빛나는 인물 중의 하나인 베토벤도 이곳 본에서 태어났다. 시내 중심의 작은 거리에 있는 베토벤 생가와 정원에 있는 기념동상은 이 도시의 가장 위대한 인물을 기리고 있다. 본은 베토벤의 생가와 더불어 여행자들을 낭만적인 분위기 속에 젖어들게 하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이 도시를 두고,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은 "내가 처음으로 이 세상의 빛을 보았던 아름다운 곳이,지금도 더욱 아름답고 확실하게 눈 앞에 떠오른다"라고 말함으로써,이 도시의 모든 묘미와 아름다움을 그대로 대변해 주고 있다. Bonn에는 유사 이전부터 켈트인과 프랑크인이 살았고,기원 전후에는 로마군이 주둔했던 도시로 역사가 2,000년이 넘는다. 그러나 이 도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1949년,서독의 수도가 되면서부터 이다. 서독 정치의 중심지로,국제 도시로 급성장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전통이 손상되지 않고 잘 조화된 아름다운 도시로 발전했다. 통일 후 독일의 수도가 베를린으로 변경되었으나 일부 기관은 본에 남아 있다.
그리고,베토벤 생가 이외에도 로마 군단의 병영지 등 관광 명소가 산재해있는 이곳은 쾰른 대주교의 거성이기도 한 역사적인 도시이다. 이전의 큰 궁전등은 오늘날 대학으로 사용되고 있고,브윌 여름별궁은 국가의 리셉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인구는 약 30만명으로 인구의 급증과 더불어 교통,통신시설의 발달하고 있다.
약 2백 년 전에 관광의 선구자였던 영국인들이 라인강을 관광명소로 찾기 시작하면서 라인강의 낭만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라인강을 따라 펼쳐지는 온갖 절묘한 풍경들,로렐라이 언덕,쾰른,본,마인쯔,코블렌츠를 중심으로 숱한 성들과 그 유적이 가득한 포도동산,오래된 포도주공장을 중심으로 발달된 크고 작은 도시들의 모습들은 정말 자못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위대한 음악가와 시인들의 노래들,그리고 문학작품만으로도 족히 하나의 도서관을 채울 수 있을 정도로 라인강변의 도시들은 독일에서 큰 역할을 해 낸다고 볼 수 있다. 이 주변은 프랑크푸르트부터 쾰른까지 이어지는 기차여행을 할 수도 있지만 마인쯔에서 쾰른까지 운항하는 유람선을 타고 라인 강의 정수를 느끼는 것도 낭만적인 일이 될 것이다.
쾰른에서 남쪽으로 15㎞ 떨어져 라인 강을 끼고 있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에 있는 도시인 본의 인구는 약 30만명 정도이다.
교육
본에서 대표가는 종합대학인 '본대학교'(Bonn Universitaet)는 원래 명칭이 'Rheinische Friedrich Wilhelms-Universitaet-Bonn'이다. 이 대학의 기원은 1777년 쾰른의 대사교에 의해 설립된 아카데미까지 거슬러 올라가며,1786년 대학교로 인가되었다. 본이 프로이센에 합병되면서 1818년 빌헬름 3세에 의해 베를린 대학교에 맞먹는 규모로 재건되어 일대 발전을 이루었다. 1934년 농업전문대학을 농학부로 흡수하여 복음신학,가톨릭신학,법,국가학,의학,철학,수학,자연과학,농학의 7학부제가 되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학생수가 급증하여 현재는 교원수가 약 1,600여 명에 이르렀고,학생수가 약 4만 명에 달한다.
베토벤과 마르크스를 배출하기도 한 독일의 이 본 대학은,궁전을 연상케 하는 수려한 외관과 아름드리 나무로 가득찬 숲이 감탄사를 발하게 하지만 자동차를 갖고 간 방문객들은 곧 곤혹스러움을 느낀다. 그도 그럴것이 주차장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불편함을 모른다. 대부분 자전거로 통학 하는데다 지하철 출구가 대학구내에 있기 때문이다.
사회
산업의 핵심지와 현대 기술 센터,문화와 매체 지역으로서의 본은,여전히 행정과 과학 중심지로서 계속해서 중요한 역할을 행하고 있다. 본도시가 속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노동력의 60%가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 여기서는 재구성 과정이 항상 생태학의 혁신과 결합되어 있으며,환경 보호 영역에서 1,600개의 공장이 가동되고 있다. 이 주는 유럽에서 가장 앞서가는 환경 공학 중심지의 하나가 되었다.
독일 정부는 본을 유럽내 정보통신 중심지역 발전시키기 위한 중장기 계획을 추진 중에 있다. 독일 수도의 베를린 이전 계획에 따라 공동화 현상을 우려하고 있는 독일 본 시는,인극 지역을 함께 묶어 유럽내 정보통신 중심지역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중장기 계획을 추진키로 하였다. 특히 기업 유치가 계획 성패의 관건이라고 보고,'텔레본'(TeleBonn)이라는 슬로건 하에 정보통신 관련업체들과 각종 프로젝트를 추진해 나갈 방침이다. 이에 시당국은 또한 정보통신산업의 메카로서 시의 새로운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작업도 계획 추진에 중요한 요소로 판단하여,국제 심포지엄 개최 등을 통한 대대적인 홍보 활동도 벌여나갈 계획이다.
이곳은 전체적으로 온화한 기후에 속한다. 여름의 최고 기온이 25도이고,겨울의 최저 기온이 -5도로서,생활하기에 적당한 기후이다. 강우량은 많지 않은 편이나 1년중 평균적으로 내리기 때문에 우비가 필요하다. 봄부터 가을에 걸쳐 여행 시즌에는 낮과 밤의 기온차가 심하기 때문에 레인 코트 와 스웨터,가디건이 필수이다.
▶ 뷔르츠부르크
독일의 약 50여개의 여러 관광코스들 중에 가장 인기있는 로만틱 가도의 시발지인 뷔르츠부르크는 천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작은 도시로서,숲과 포도밭으로 온통 둘러 싸인 매력적인 도시이다. 독일 중부의 오지에 있으며,마인강가에 자리잡고 있는 이곳은 예술과 아름다운 건축,그리고 맛있는 와인으로 유명한 도시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대사교의 도시','대학의 도시','예술가의 도시'라고 불리워 질 정도로 도시 전체가 활기차고 화려하다. 8세기 중반에는 로마 대주교의 영지로 사용되면서,사제 마을로 번영 했으며,르네상스 시대때 부터는 조각가 등의 예술가들에 의해서 문화를 꽃피워 나갔다.
모차르트는 말년에 독일 중남부인 이곳 뷔르츠부르크(Wurtzburg)를 들른 적이 있는 데,`진혼미사곡'을 작곡하고 숨을 거두기 2년전인 1789년의 일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활동무대 비엔나를 떠나 레오폴드 2세의 황제 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프랑크 푸르트로 가는 길에 들린 이곳에서,잠시 지친 말을 갈아 타고 커피나 한 잔하면서 휴식을 취할 요량이었는데,그만 1년 동안을 뷔르츠부르크에 눌러앉고 말았다. 모차르트 자신이 뷔르츠부르크에 머물렀다기보다는 이 도시의 강렬한 인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뷔르츠부르크에 매료된 사람은 비일비재하다. 또한,12세기초 문인 고트프리트 폰 비에트로는 뷔르츠부르크를 `지상낙원(地上樂園)'이라고 칭송했고,헤르만 헤세 역시 1930년,"만일 내가 출생지를 선택할 수 있다면 당연히 뷔르츠부르크를 택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이 도시를 부러워했다고 한다. 이처럼 이 도시는 여름 한 철을 빼고는 잿빛 하늘로 뒤덮여 있어도,`지상낙원'으로 꼽혔던 까닭을 뷔르츠부르크에 들어서면 곧 바로 알아 차릴 수 있을 것이다. 풀잎이라는 뜻의 `뷔르츠(Wurz)'와 언덕이라는 의미의 `부르크(burg)'에서 알 수 있듯이 뷔르츠부르크는 `풀잎이 많은 언덕'이라 경관 역시 뛰어나다.
그러나,1945년 3월 연합군의 폭격으로 아름답던 이 중세 도시는 90% 가까이 파괴되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다. 파괴된 사원은 전부가 복구되지는 않았지만 레지던츠,11인의 성인상이 있는 바로크 양식의 마인 다리,마리엔부르크 요새 등은 오늘날에도 로만틱 가도의 기점에 어울리게 많은 여행자들을 유혹한다. 이러한 마인강가 언덕 위에 있는 13세기에서 18세기의 대주교의 거성인 마리엔부르크(Marienburg)요새와 환상적인 정원과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에서 최대인 프레스코 천정화가 있는 레지덴츠(Residenz)는 이 도시만의 자랑거리이다. 그리고,마리엔베르크 요새에는 리멘슈나이더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며,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 등도 이곳에서 주요 볼거리이다.
강을 끼고 양쪽으로 놓여 있는 뷔르츠부르그는,한마디로 거대한 궁전,튼튼한 요새,축제 등을 자랑하는 도시로,이곳의 와인 축제는 연례 가을축제이고 Kiliani축제는 6월에 있다. 또한,뷔르츠부르크 모짜르트 축제와 성 킬란 축제 및 아프리카 축제,그리고 12월의 크리스마스장(Weihnachtsmarkt)과 같은 다양한 종류의 축제들이 이도시에서 벌어 진다.
그리고,뷔르츠부르크는 출판 인쇄와 전자 공학 및 식품 산업 뿐만 아니라 바이에른 주에서 가장 넓은 포도 재배 단지를 자랑하고 있다. 이 단지는 주 정부의 호프켈러,율리아스 슈피탈과 뷔르거슈피탈이다. 무엇보다도,이 도시는 1896년 초 뷔르츠부르크 대학의 뢴트겐이 '새로운 종류의 광선'인 X-Ray를 최초로 발견한 곳으로서,의학 및 과학계에서도 단연 유명한 업적을 세운 곳이기도 한데,따라서,이곳에는 당시의 뢴트겐 연구실을 일반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관광 명소로 지정해 놓고 있다. 이외에도,오래된 전통을 자랑하는 뷔르츠부르크 대학을 기반으로,수많은 종류의 교육 기관들이 자리하고 있어,독일의 대표적인 교육의 도시들 중의 하나로서 각광받고 있다.
교육
역사적인 교육의 도시인 뷔르츠부르크에는 오래된 전통을 자랑하는 Julius-Maximilian 대학이 있는 데,이 대학에서는 약 2만 명 이상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이외에도,뷔르츠부르크와 쉬바인푸르트(Schweinfurt),그리고 아샤펜부르크(Aschaffenburg)를 중심으로 다복합적인 체제로 운영되는 단과대학인 Fachhochschule Wurzburg-Schweinfurt-Aschaffenburg에는 약 3,000여명의 학생들이 있고,또 국립 음악 대학과 약 108개 정도에 이르는 의학 및 사회학 분야들의 학교들도 많이 산재해 있다.
Bayerische Julius-Maximilians대학은 1402년에 세워졌으며,이 대학에서는 의학 부문이 특히,잘 알려진 학과이다. 이 대학 도서관에는 약 3백만권의 서적이 소장되어 있고,카톨릭 신학부,의학부,철학부,생물학부,예술학부 등의 12개 학부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 대학의 주소는 Sanderring 2,97070 Wuerzburg,Germany이며,전화는 0931-31-0이고,팩스는 0931-31-2600이다. 또한,Wurzburg-Schweinfurt-Aschaffenburg대학은 조각 및 공학,컴퓨터 과학,조사 컴퓨터 과학,경제 역학 공학 그리고 전기 공학 등의 다양한 분야들이 체계적으로 분과되어 있으며,Wurzburg,Schweinfurt,Aschaffenburg의 세 도시에 연계된 시스템으로 복합적인 연구 방식을 전수 받고 있다. 세 도시 모두 큰 규모의 도서관과 컴퓨터 센터가 마련되어져 있다. 이곳은 Sanderring 8,97070 Wuerzburg,Germany에 위치하고 있으며,주요 대표 전화는 0931-3511-0이다. 그 밖에,뷔르츠부르크 음대는 여름학기 원서 마감일이 4월 1일이고,겨울학기는 8월 1일이 마감이다. 이 음대의 주소는 Hochschule fuer Musik Wuerzburg,Hofstall Strasse 6-8,97070 Wuerzburg,Germany이다.
산업
뷔르츠부르크는 바이에른주에서 산업과 상업적으로 중요한 요충지로 자리잡고 있다. 예를 들면,Koenig & Bauer와 Sturtz와 같은 인쇄 공장들과 Vogel 출판사 및 Vogel 인쇄소,그리고 Mainpresse-Richterdruck 등과 같은 출판업 및 인쇄 프린트업이 발전하였다. 또한,박람회장 및 집회장들을 건설하고 꾸미는 사업으로 유명한 Mero Werke 회사와 가구 무역을 맡고 있는 Neubert,기계 공학을 담당하고 있는 Noell,그리고 Kneipp-Werke사는 조제약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와 같이 출판 인쇄와 전자 공학 및 식품 산업 등으로 이 도시는 발전하고 있지만,이외에도,바이에른 주에서 가장 넓은 포도 재배 단지를 내세우며,호프켈러,율리아스 슈피탈과 뷔르거슈피탈 등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생산된 신선한 포도를 주재료로 하여,이 도시만의 독특한 포도주인 전통적인 프랑켄 지역의 '복스보이텔'(Bocksbeutel)이라는 와인병까지 만들어 내게 되었다.
▶ 브레멘 [Bremen]
독일 북서부에 위치한 아름다운 도시인 브레멘은 옛부터 무역항으로서 개발되었고,14세기에 한자동맹에 가입하면서 번영하기 시작했으며,베저 강 아래로 65km 떨어져 있는 브레머하펜과 함께 2개의 마을로 독립된 채 독일 최소의 주를 형성하고 있다. 이 도시는 매우 깔끔하고 화사한 느낌을 주는 동화의 도시이면서 독일의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잘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산마리노>산마리노 다음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공화국 중의 하나이며,함부르크 다음가는 큰 항구도시로서,브레머하펜의 콘테이너 항은 유럽 최대의 물자 수송항이다.
무엇보다도 밑에서 부터 차례로 당나귀,강아지,고양이,닭의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는 이곳의 대표적인 베를린 음악대 동상은 총 연장 600km에 달하는 '그림 동화'의 주무대가 된 메르헨 가도의 일부도시에 온 기분을 한껏 느끼게 해 준다. 메르헨 가도는 다양하고 깊은 숲과 녹지대가 번갈아 이어지는 가도로서 동화 속의 여러 주인공들을 음미해 보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아름답다. 어릴적에 들었던'브레멘 음악대'의 배경이 된 브레멘은 실제의 도시 모습 또한 동화에서 처럼 아름답기 그지 없다.
중앙역에서 시내 중심가로 들어 오는 길목에 작은 강물이 흐르고,그곳에서 배를 타고 오가는 이들의 모습과 그 뒤로 전개되는 풍차의 모습은 동화를 실감나게 한다. 이 도시는 명소 하나하나를 찾아 다니는 것보다도 오히려 도시 자체가 일종의 명소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특별한 곳이 아니더라도,도시를 거니는 것이 관광에 더 어울릴 지도 모른다. 곳곳에서 풍겨 나오는 사람들의 순박함과 평안함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여유롭고 편안함을 자아내게 한다.
시내로 걸어가는 길목에 있는 풍차와 가느다란 시내 줄기가 무척이나 평화롭게만 보이는 브레멘은 특히,시청사가 있는 라츠켈러로 가면 사람들이 무척 많이 몰려 있다. 독일 자체에서도 이렇게 수많은 인원이 모여 드는 명소는 드물다고 할 정도이다. 시청 지하의 포도주를 파는 곳인 이곳은 와인 값이 다소 비싸지만 한번쯤은 구경해 볼만한 곳이다. 그 외에도,장크트 페트리 대성당과 뵈트허 거리,뾰족한 지붕과 파란 하늘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슈노허 거리,노천 카페와 골동품 점들 또한 빼어 놓을 수 없는 브레멘의 명소 중의 하나이다.
이곳은 브레멘 대학교를 위시로 하여 기술 및 자연 과학의 기초 분야의 연구도 활발한 편이다. 열대 해양 생태학 연구소와 해양 미생물학 중심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서는 현대적인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그 밖에도,해운 경영 연구소,브레멘 응용 빔 공학 연구소(BIAS),병참술 연구소 등이 있다. 브레머하펜 역시 독일 극지(極地)연구의 중심지로 손꼽힌다.
교육
이곳 브레멘의 초등학교는 6년간의 교육과정으로 되어 있다. 대체적으로 볼 때,독일 전 지역들은 초등학교가 의무 교육 단계로서 1학년부터 4학년까지로 되어 있는 데,유독 브레멘주와 함부르크 지역만이 6년의 과정인 것이다. 이곳에서는 학생들이 학교 수업에 흥미를 갖도록 지도하고,상급학교 진학에 대비하도록 기초 교육을 실시한다.
브레멘에서 제일가는 '브레멘 대학'(Bremen Universitaet)은 시초가 1584년 "김나지움 아카데미"로 부터 출발하여 1810년에 신학,의학,철학 분야의 학부의 기초틀이 성립되었고,나폴레옹 통치하의 1811년에는 "브레멘 프랑스 대학"으로 불리워 지기도 했다. 1948년에는 "국제 브레멘 대학"으로,1970년에는 독일 내에서 대학의 모습을 재정비하여 마침내 교육과 연구 기관으로 새로운 방향을 추구하였다. 특히,북서 독일의 과학의 중심지로서 브레멘 대학은,연구분야에 1,700명의 학자들과 교육 부문에 18,000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으며,학과 과정으로는 물리학과 전자 공학부,생물학과 화학부,수학 및 컴퓨터 과학,생산 공학부,신과학부,그리고 법률,경제학,사회 과학과 문화 연구,언어학과 문학 연구,인문 및 건강과학,교육과학과 사회 과학이 있다. 브레멘 대학의 주소는 Bibliothekstr.1-28359 Bremen,Germany이며,대학의 대표 전화번호는 49-421-2181이다. 그리고,'국제 브레멘 대학'(Internationale Universitaet Bremen:IBU)은 사적 교육의 연구 기관으로서,신설된 대표적인 대학으로서,유럽 및 미국의 교육체제를 전수하는 최상의 프로그램을 결합시키고 있다. 이 대학은 1999년 2월에 창립되었고,2001년 가을까지 교과 분류를 재정리하고자 의도하고 있다. 이 대학의 특징적인 언론 및 교육기관은 야심에 찬 계획하에 수정을 가하면서,대학 자체 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IUB는 유럽 대륙에서도 앞서가는 사적 기관의 대학 중에 규모가 크기로 소문이 나 있다. 저명한 이 대학의 참여도와 아카데미의 선도적인 주자로서의 역할은 자못 인정할 만하다.
IUB의 주소는 International Universitset Bremen Campus Ring1,28759 Bremen,Germany이며,E-mail주소로는 iub@iu-bremen.de이다. 전화는 49-0421-200-40-49-0421이며,Fax는 49-0421-200-4113이므로 참고하기 바란다.
산업
항구와 함께 국제 무역 연결과 첨단 기술 산업에 의해 제조된 최고 품질의 생산품들이 브레멘 경제 산업 생활의 토대이다. 브레머하펜의 콘테이너항은 유럽 최대의 콘테이너 물자 수송항으로,해마다 만 척 이상의 배들이 오가며,세계의 대략 1,000개의 항구와 브레멘을 연결한다. 그리고,한해 약 83만 대의 자동차가 브레멘 하펜을 통해 운송되어 지며,품질 좋은 선박들이 이곳 브레멘의 조선소에서 만들어 지기도 한다. 독일의 대형 물류회사인 '유로게이크'(Eurogate)사는 국내 해운 및 항공 업체들과 업무 협력을 위해 적극적인 이용을 당부하기도 했다. 이 유로게이트를 이용해 유럽 대륙 및 동구 지역에 진출하면 로테르담 및 여타 지역에 의해 수송 시간을 단축시키고,비용도 절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유로게이트사는 독일 브레멘의 BLG 컨테이너 GMBH & Co.와 함부르크의 유로카이(Eurokai)사가 합병해 설립된 컨테이너 터미널 운영회사로서,브레멘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독일 자회사들과 유럽의 다양한 기업들로 이루어진 자주회사이다. 약 4천여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는 유로게이트사는 매년 약 5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컨테이너 화물 수송 부문에서는 올해 6백만톤 이상의 화물을 취급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Ketic Inc.사가 국내 연락 사무소를 담당하고 있다.
브레멘은 또한,독일 음식과 음료 산업 및 기호 식품의 중심지이다. 특히,커피와 쵸콜릿,밀가루와 유제품류,생선 가공 식품과 자체 맥주는 최고로 알려진 생산품들로 손꼽히기도 한다. 그외에도 로켓트,위성,제트 여객기의 주요 부품들이 이곳에서 발달되었고,제조되고 있다. 그리고,항공 우주 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행하고 있으며,전기와 전자 산업,첨단 기술 산업들도 이 도시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브레멘의 전문 기술을 상징하는 148m 높이의 응용 우주공학과 마이크로 중력 센터탑은 첨단 기술 영역에서도 두드러진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마이크로 중력 센터 내부에서는 무중력 상태에서 실험들이 이루어 지고 있으며,약 300년 이상된 브레멘 안전 거래소와 상품 거래소들에서 서북부 독일의 모든 상거래가 이루어 진다.
독일 체신청은 다이믈러 벤츠와 오펠,독일 Telekom,브레멘시,기타 관련 참여 기업 등과 함께 향후 차세대 전기 자동차를 테스트할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에 투입될 총 60대 이상의 전기 자동차에는 이스라엘의 Electric Fuel사가 개발한 시스템 배터리가 장착될 것으로 알려 졌으며,종래의 통상적인 전기 자동차의 주행거리가 50km인데 반해,차형에 따라 약 300-400km의 주행 성능을 가질 것으로 보고 되었다. 전기 자동차의 대량 채택이 기술적으로 경제성이 있는 지의 여부를 조사하게 될 이 프로젝트는 환경 보호 측면에서 크게 기대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 투입될 전기 자동차에 장착될 Zinc-Air-Energy 배터리의 재생을 위한 시설은 브레멘 시에 설치되었으며,이는 유독한 공해 유발 물질을 발생시키지 않고,언제라도 재생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이 프로젝트에는 총 2년간 약2,500만 마르크(약 140억원)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서부는 해양성기후이며,서부 지역은 저평야지대로서 동부 지역에 비해 겨울 날씨가 특히 온화한 편이다. 북서부의 저지대는 습한 편인데 이는 북해로부터 내륙쪽으로 진행하는 편서풍의 영향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여름에도 혹서가 없고 또 겨울에도 혹한이 드물고 습기가 많기로 유명하다.
▶ 아우그스부르크 [Augsburg]
타시투스는 아우그스부르크를 '라에티아의 모든 지방에서 가장 찬란한 도시' 라고 적고 있다. 이 도시는 기원전 15세기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그 친족에 의해 생긴 도시로 쾰른, 트라이어와 함께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이다. 이탈리아로 가는 무역의 중심이 되면서 로마제국의 문화로 채워지게 되었다. 오늘날은 로만틱 가도상에 있는 도시로서 공업과 상업의 중심지이자 르네상스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명소들로 매우 바쁜 도시이다.
원래 로마인에 의해 세워진 이 도시는 후에 루터의 종교 개혁의 중심지로 자리를 잡은 곳이다. 도나우(Donau)강과 Wornitz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작은 마을로서,중세의 흔적들이 곳곳에 배어 있는 대표적인 곳이기도 하다. 이 도시의 이름은 기원전 15년 경,로마 황제인 아우그스투스가 주둔지를 이곳에 건설하였다고 해서 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또한,카톨릭과 개신교의 화의인 아우그스부르크 화의가 이루어진 역사적이고도 종교적인 가치가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종교적인 여러 거사들이 과거에 일어났던 곳인 만큼 이곳의 성벽과 교회들의 모습은 꼼꼼히 둘러 볼 만하며,활기와 생동감 그 자체는 결코 대도시에 뒤지지 않는 도시이다. 특히,아름다운 도나우강을 따라 산책을 즐기는 멋도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 아우그스부르크는 바이에른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도시와 마을들을 이어 놓은 로만틱 가도(Die Romantische Strasse)의 이상적인 관문이자 거점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이 로만틱 가도는 독일 이 자랑하는 관광코스 중의 하나로서, 이전에 알프스를 넘어 로마에 이르는 통상로로 이용되었다고 해서 '로만틱'(Romantic)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뷔르츠부르크에서 로덴부르크,뒹켈스뷜,아우그스부르크,퓌센에 이르기까지 독일 남부 지역에 남북으로 길게 뻗은 환상적인 코스이며,중세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는 곳들을 가리킨다.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20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이 도시는 이탈리아와의 무역으로 중세에 크게 성장하였고 유럽 상업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건축되어진 최대의 고딕 양식의 건물인 아우그스부르크의 시청사와 더불어 대성당,구시가의 막시밀리안 거리,모차르트의 아버지인 레오폴드 모차르트의 생가가 잘 보존되어 잇어 이곳의 대표적인 명소로서 유명하다. 따라서 이곳에는 모차르트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여름,'모차르트 여름 축제'가 성대하게 펼쳐지며,아우그스부르크의 평화를 기념하는 '아우그스부르크 평화제'가 열리기도 한다.
더우기 아우그스부르크는 세계적으로 최초의 복지주택을 만든 도시로 이름이 나 있다. 'Fuggerei'라는 이름의 복지주택이 그것인 데,어려운 생활을 하는 시민들을 위해 16세기에 건축되어 진 것으로, 그 내부의 박물관이 볼 만하다. Fuggerei는 중세기의 거상(巨商)인 Fugger 일가의 회사명이며, 그들에 의해 대규모의 복지주택이 세워진 것이다. 이 도시에는 1970년에 세워 진 대표적인 유명한 세계적인 아우그스부르크 대학교를 비롯하여,철학-신학 대학 및 예술 아카데미 등이 있다. 무엇보다도 디젤 엔젠을 처음으로 만들어 낸 곳이라서 인지,기술 대학이 인기가 좋은 편이다.
교육
아우그스부르크는 종교적인 교육의 중심지로서 매력적인 유학의 도시이기도 하다. 따라서,도시 이름만으로도 역사깊은 이곳이 매력적인 수학의 장소가 될 수 도 있다. 이곳에는 약 1만 5천 여명의 젊은 학생들이 면학에 힘쓰고 있다.
아우그스부르크와 쉬바벤 지역은 이 지역의 대표적인 대학이라고 할 수 있는 아우그스부르크 대학교(Augsburg Universitaet)와 더불어 더욱 발전을 꾀할 수 있었다. 이 대학은 1950년대에 연구 기관의 틀을 마련하기 시작하여, 1966년 5월 20일에 Fugger von Gloett 선제후가 "쉬바벤 지역의 대학 재단 이사"로 임명되자,이를 동인삼아 마침내 1970년에야 비로소,아우그스부르크 대학이라는 명실 상부한 대학으로서 설립하게 된다. 이 대학은 제일 먼저 의과 대학분야부터 기틀이 잡아 졌었고, 그 후 경제,문화 및 교육,정치쪽에 치중을 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 대학의 철학학부 연구소(Institut Fuer Philosophie)인 경우는,언어와 사회,정치,법철학에 관한 학문과 인식 이론에서 부터,유럽의 철학 및 고전적인 형이상학에 이르기 까지의 이론 전반을 주요 논점으로 삼고 있다. 이들은 개별 학문에 기초하여 문화와 일상 생활,문화 내적인 대화를 이끌고자 노력하고 있으며,복합 기술과 연구 및 사회 발전의 배경 뒤에,정신 과학,자연 과학과 사회과학 사이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아우그스부르크에는 유명한 몇몇 개의 단과 대학들이 있는 데,1974년대에 학교의 기틀을 잡고 설립 되어져,약 1만 5천 여명의 학생들이 수학하고 있는 '딜링엔 철학-신학 대학(Philosophisch-Theologische Hochschule von Dillingen)'과 1650년 예술가 양성이라는 목적하에 세워진 'Sandrartsche Kunstakademie'가 그것이다. 이 대학의 경우는 그 후 1710년에 학교 명칭이 'Reichsstaetische Kunstakademie'로 바뀌었으며, 독일내에서 가장 오래된 단과 대학 중의 하나이다. 특히, 기술적인 측면에서 이 대학의 기술 건축학부는 예전의 디젤 엔진을 만들어 낸 종합 기술 학교로서 명성이 높다. 루돌프-디젤의 폴리 테크니즘이 1971년에 이 단과 대학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 외에도,아우그스부르크의 레오폴드-모짜르트-음악연구원의 경우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곳은 뉘른베르크와 함께 공동으로 개최되는 데,이곳에서는 전통적인 카톨릭 음악에서 부터 현대 레파토리의 음악까지 가르친다.
산업
아우그스부르크(Augsburg)는 기계제조와 섬유산업의 본고장이다. 특히,이 도시가 속해 있는 바이에른 주는 1950년 대까지만 해도 제일의 경제 분야가 농업이었으나, 그 후 점차 세월이 흐르면서 현대적인 산업과 서비스 분야가 중심이 되었다. Haindi 제지공장은 기본 작업을 아우그스부르크에서 시작하여,LWC제지 기계를 새롭게 만들어 내었으며,InterLift 전시회까지도 매년 개최하는 등 산업 부문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 쾰른 [Cologne]
쾰른은 독일의 도시가운데에서도 가장 유서깊은 고도중의 하나로서,아름다운 라인강을 끼고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ord Rhein-Westphalen)주에 속한 항구도시이며, 루르공업지대에 속한다. 중세시대의 성당과 교회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쾰른은 현대적인 모습 또한 가미되어져 있는 라인란트 지방의 수도로서,유럽에서 알아주는 상공업 도시에 속한다.
로마시대로부터의 깊은 역사로 귀중한 문화유산을 많이 지니고 있는 문화도시라고 할 수 있는 쾰른은 마인츠를 출발하는 라인하행선의 종착지이기도 하며, 이곳부터 다시 하류의 뒤셀도르프에 걸친 전지역이 독일 중공업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은 로마시대 때부터 있었던 옛 도시인 만큼 근대적인 독일의 모습과 더불어 중세 판자도시로 번영했었던 역사가 교차되어 맞물려 나타나기도 한다.
교육
Eurocentres, Cologne는 로마시대부터 라인강 주변도시의 중심지였으며 예술,상업,문화중심지인 쾰른에 위치한 학교이다. 언어연수를 목적으로 맞춰 설계된 시설을 갖춘 전문학교이다. 도시 중심에 가깝게 위치한 이 학교에는 멀티미디어 학습센터 및 휴게실 등이 있다. 여가활동은 대학도시 특유의 문화와 예술활동에 중점을 두고 계획되어져 있다.
쾰른에서 알아주는 쾰른 음대(Musikhochschule in Koeln)는 음대를 진학하고자 하는 우리나라 학생들에게도 비교적 인기가 좋은 곳이기도 하다. 또한 독일 내에서 명문대학중에 하나로 손꼽히는 쾰른 대학교의 어학강좌는 초급 se 또는 G=Grundstufe,I-II-III,중급 M=Mittelstufe 과정으로 나누어 개설되고 있다.
산업
이곳 경제력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주요산업은 기계,전기공학,전기,화학,식품 등이다. 규모는 작지만 중요한 산업으로는 정밀공학,광학 등도 있고 관광업 또한 중요하다. 모든 산업체의 반 정도가 고용인이 50 여명도 안되는 작은 규모이고,산업체 중 아주 극미한 비율만이 고용인 500명정도의 규모가 큰 산업체이다.
자체 수요량에 충분한 천연자원은 주로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이곳 라인 루르지방에 매장되어 있고,갈탄은 쾰른근처에 많이 산재되어 있으며,포도원은 특히 이곳 근처의 라인강의 골짜기 근처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는 10여 년전부터 독일 제1의 미디어 산업의 소재지로 부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이 곳 쾰른의 역할로 연방주들 가운데 최고를 차지하는 위치를 강화시킬 수 있었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은 독일 텔레비젼 프로그램 제작의 26%를 담당하여 함부르크와 슐레스비히-홀스타인(11%),베를린-브란덴부르크(7%)를 단연 앞서고 있다. 쾰른 지방의 대표적인 거대 민간방송사인 RTL은 TV 및 영화산업을 이끄는 데 큰 발전을 꾀하고 있다.
위도상 북쪽에 위치한 영토의 대부분이 대서양의 따뜻한 멕시코 만류의 영향을 받기에는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대체적으로 온대기후의 영향을 입고 있다.
혹독한 추위가 장기간 계속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강수량이 풍부하여 농작물재배에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북해와 발트해를 향한 해안선 때문에 해양성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 지역을 비롯한 북서부와 저지대는 주로 습한 편이고,알맞은 온도를 갖춘 대기의 영향을 받는데,이 대기는 적당한 따뜻한 여름과 온난한 겨울날씨를 누릴 수 있게 하지만 높은 습도,긴 장마철,서늘한 계절에 안개가 끼는 등의 나쁜 점도 동반한다. 서쪽을 향한 비탈지역에서는 특히 해양성 대기의 영향으로 비가 많이 내리는 편이다.
▶ 퓌센
퓌센은 알프스 기슭에 있는 관광도시로 로만티크 가도의 마지막 마을이다. 겨울 스포츠의 낙원이자 휴양지인 퓌센은 레히 강을 끼고 오스트리아 국경의 알고이 알프스 산맥의 동쪽 기슭에 있다. 주위가 온통 포르겐 호수 등으로 둘러 싸여 있는 이곳은 알프스의 아름다운 자연이 퓌센의 아름다움을 더욱 값지게 하며,주위의 우거진 숲과 산,호수로 그 명성을 더하고 있다.
퓌센에는 성과 수도원,장엄한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이 있지만,주로 슈반가우 인근에서 루드비히 2세와 관련된 2개의 성을 보기 위해 이 도시를 대부분들 찾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호헨슈반가우(Hohenschwangau)와 노이슈반슈타인(Neuschwanstein)성이 그 2개의 유명한 성인데,이 성들을 본다면 당시 상태가 어떠 했는 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이 흔히들 잘 아는 디즈니랜드의 환타지랜드 성의 모델이 바로 퓌센의 노이슈반타인 성인 것이다. 이 성은 성 자체가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주위 환경과의 조화가 절묘할 정도이다. 뒤로 흐르는 폭포수와 호수의 모습 속에,뒤산으로 올라가면 성과 호수의 모습이 우아하게 자태를 드러낸다.
35km의 화려한 로만틱 가도의 피날레를 장식하듯 우뚝 솟은 노이슈반타인 성이 이곳에서는 특히 볼 만하다. 이 성은 Fuessen에서 5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바이에른 국왕인 루드비히 2세가 재권과 권력을 총동원한 로만틱의 진수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어 '동화의 나라'라 불리우는 퓌센을 더욱 신비스럽게 하는 대표적인 곳이 바로 이곳이기도 하다. 그 밖의 유적으로는 1270년부터 1505년까지 건축한 아우그스부르크 승정왕들의 이전 여름 별장이었던 '호에스 슐로스'와 몇몇 바로크 양식의 교회가 있다. 또한,독일의 대표적인 인류 문화 유산으로 손꼽히는 '비스교회'가 있는 데,이 교회는 퓌센에서 약 30km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슈타인가덴에 있는 것으로서 가치가 크다.
관광객들은 대개 성만 구경하고 가버리지만 하이킹,스키,온천 등 즐길 곳이 많아 오래 머물기에도 손색이 없는 도시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이곳은,슈반 호수 위로 높이 솟아 있는 호엔슈반가우 성과 푈라트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중심으로 한 관광 휴양지이자 겨울 스포츠의 중심지이다. 따라서,겨울이 되면 이곳에는 많은 스키어들이 방문한다.
교육
독일의 의무 교육기간은 13년으로 만 6세부터 18세까지다. 모든 공립학교는 무료교육을 실시하며 교과서 및 학습자료도 일부는 무료 배부하거나 일부는 대여한다. 독일헌법에 의하면 사립학교의 설립도 가능하나,단지 국가의 인가를 얻어야 한다. 공립학교와 동등하다는 국가의 인가를 통해 사립학교는 공립학교 규정에 설정한 수준의 시험실시와 성적증명서를 발급할 권한을 갖는다. 사립학교는 독일 각 주의 재정지원을 받는다. 그런 배경속에 사립학교를 찾는 학생수가 점증하는 추세에 있으며 ,이곳 퓌센 지역에서도 대표적인 Anton-Sturm-Volksschule Füssen이 유명하다. 이 Volksschule는 제 5학년부터 9학년에 이르는 학생들로 이루어 진 Hauptschule로서,대개 김나지움이나 미텔 슐레에 진학하지 않는 학생들이 많은 편이다.
산업
퓌센이 속해 있는 바이에른 지역은 1950년대 까지만 해도 알프스 전면 지대를 위시로 하여 농업과 삼림이 큰 역할을 해 왔었고,천해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갖춘 이 지역은 그 무엇보다도 관광 자원에 힘써 왔다. 매우 아름다운 호수들이 있는 알프스 앞지역,그 기슭의 온천수 등은 천연 자원과 더불어 대표적인 퓌센의 서비스업으로 까지 발전 시켜 나가게 해 주었다.
알프스 산록의 멋지고 웅장한 자연이 퓌센의 아름다움을 더욱 값지게 하여 주었고,숲과 산,호수 등이 그 명성을 더해 주었다. 이처럼 퓌센은 드라이브나 여행중의 여독을 말끔히 풀 수 있는 다양한 꺼리들이 마련되어져 있어,등산,스키,하이킹,행글라이더,사이클링 등의 스포츠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이러한 관광 자원과 서비스업 부문은 이 도시의 전통적인 환경과 함께 현대적인 감각으로 늘 새로이 거듭나고 있다.
▶ 프랑크푸르트 [Frankfurt]
라인 강의 지류인 마인 강 연변에 발달한 이 도시의 정식명칭은 프랑크푸르트 암마인(Frankfurt am Main)이다. 12세기부터 역대 황제를 선출했고,그 후 황제의 대관식도 이 도시에서 거행되었으며,문호 괴테가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한데,이 도시 사람들은 괴테를 '프랑크푸르트 시민의 위대한 아들'이라고 부르며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베를린 근교의 프랑프푸르트 안 데어 오데르(Frankfurt an der Oder)와 구별하여 정식으로는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이라 불린다.
프랑크푸르트는 여행자들이 목적지로 삼는 주요 관광지는 아니지만 독일의 남북과 동서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국제적인 무역도시이자 독일 상업의 중심 도시이다.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은 유럽에서 가장 큰 공항이며,프랑크푸르트 중앙역도 하루 20여만 명이 드나드는 독일에서 가장 바쁜 기차역이다. 이곳에는 연방은행을 비롯한 세계의 주요 국제회의장으로서 매년 5만 차례의 모임과 세미나,학술회의 등이 열린다. 또한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에서 가장 현대적인 도시로 포스트모던 건축물 등 세련되고도 멋있는 건물들을 여기저기서 만나볼 수 있다.
독일의 상업과 금융의 중심지이며 도시 중심가에 나란히 서있는 높은 건물은 대부분 은행 건물이다. '독일의 맨해턴'이라고 불리기도 하여 프랑크푸르트가 금융 도시임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그리고,스스로를 '영원한 러시아워의 도시'라 부르는 프랑크푸르트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어느 도시에 비해 철저히 파괴된 것도 이러한 정치·경제적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후 복구사업을 하면서 이 도시가 오늘날과 같은 현대적 외관을 갖추게 된 것 역시 정치·경제적 위치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특히,이 도시는 해마다 열리는 각종 견본시장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서 수백만의 인파가 몰려들기도 한다. 또한,봄·가을 정기적으로 국제 견본시장(見本市場)이 열리며,국제자동차쇼·소비재견본시·모피견본시 등이 자주 열린다.
또한,이곳은 독일의 최고 권위의 일간지인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이 발행되는 도시이기도 하다. 괴테의 생가와 괴테 박물관,구시청사,뢰머 광장 등 가볼만한 유적지들이 많이 있다. 참고로 매주 토요일에는 마인 강변에서 벼룩시장이 열리는데,이곳의 벼룩시장은 독일내에서 가장 큰 벼룩시장으로 잡다한 것부터 시작해서 중고 자동차까지 구할수 있다.
교육
'요한 볼프강 괴테-대학'(Johann Wolfgang Goethe-Universitaet)라고도 불리우는 '프랑크푸르트 대학'(Frankfurt Universitaet)은 시장인 Franz Adickes와 금속협회 AG의 창시자인 Wilhelm Merton의 노력으로,1901년 '사회-상업 아카데미'로 발족하게 되었다. 그 후 대은행가인 Georg Speyer의 미망인인 Franziska Speyer의 재정적인 지원과 1906년,학자이자 의사이며 훗날 노벨상 수상자가 되었던 Paul Ehrlich의 업적으로 연구소가 창설되는 등 학교의 규모가 커지기 시작하여,마침내 1914년에는 50명의 교수진과 618명의 학생들이 공부하는 명실상부한 대학으로 기초를 닦게 되었다. 이 대학의 부설기관이었던 '사회 연구소'가 바로 그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만들어 낸 모체이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1914년 시민적 자유정신의 구현을 실천이념으로 하여 설립된 프랑크푸르트 대학을 중심으로 성립되었다. 이 대학의 사회연구소는,1920년대 당시의 독일사회가 공산주의 또는 파시즘의 형태로 귄위주의화하는 시대상황에서 무엇이 인간의 자율성을 억압하고 예속하는가를 규명하는데 모든 학문적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 학파의 중심인물인 막스 호르크하이머가 지적 리더쉽을 발휘하게 되고 경제학자 플로크,문학사회학자 뢰벤탈,중국 연구가 비트포겔 등 20대의 청년학자들이 가담하면서 이 학파는 사회 연구를 위한 이론적 엄밀성과 경험성을 표방한 문화 및 사회 '이해'의 방법을 두드러지게 발전시켜간 것이다.
독일의 기술학교인 직업학교는 정해진 입학시기가 없이 자격만 갖춘다면 언제든 입학할 수 있다. 이곳 프랑크푸르트에서 유명한 직업 학교에는 미용 전문학교가 있는 데,'Landesfwchschule des friseurhandwerks'가 그것이다. 이 학교의 주소는 Schon Str. 21,W-6000 Frankfurt/ Main이다. 직업학교의 교육기간은 대체로 1 ~2년 과정인데,이 과정을 마치고 독일의 전문학교에 입학하려면 먼저 어학연수를 받아야 한다. 어학연수에 필요한 입국비자를 받으려면 만 18세이상,고졸 이상의 자격을 갖춰야 한다. 일단 이 자격을 갖춘 다음에는 해당 어학교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데 최종학교 졸업증명서,재정보증서,사진 등이 그것. 모든 서류는 독일어로 공증해야 하고 자료가 미비할 경우에는 수시로 재청구하므로 기간을 넉넉히 잡고 준비하는 것이 좋다.
어학교는 대개 두 달에 한 번씩 전형을 치른다. 좀더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싶다면 2~3개월 코스의 연수를 받을 수 있다. 이 연수과정은 직업학교 전 과정을 마친 후에만 관련학과에 한해 응시할 수 있다.
산업
프랑크푸르트는 금융 중심지의 상징이 될만한 유럽 중앙은행과 분데스방크가 이곳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는 팬암과 루푸트한자 사옥과 독일 최대의 노조 본부인 이게 메탈(IG Metal) 건물 등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나 있다. 이렇듯 이 도시는 400개 이상의 은행이 있는 국제적 자금 집중지이며,프랑크푸르트 주식 거래소,독일 연방 은행,유럽 통화 기관 등이 여기 있으며,산업과 과학기술의 유명한 지사들이 위치하고 있고,국제 무역업을 위한 많은 회의 장소도 이곳에 자리하고 있는 현대 산업의 메카이다.
라인-루르(Rhein-Ruhr)지역 다음가는 독일에서 두번째로 중요한 산업중심지이인 헤센주의 대표적인 도시인 프랑크푸르트(Frankfurt)는 국제항공 수송의 주요 거점이며,독일의 가장 중요한 금융,상업,경제의 중심지이다. 이 도시에는 라인-마인 공항이 있어서 항공 수송의 중심지이며,유럽에서 항공 화물 수송으로는 첫째가고,여객 수송으로는 두 번째로 꼽힐 정도로 규모가 큰 데,이곳은 계속해서 확장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의 경제적 성공은 항공,철도,수상 도로의 연결과 관련하여,이곳이 독일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것과 관계가 있다. 라인-마인-공항은 유럽에서 중요한 교통 요지의 하나이며,6만 여명의 고용인을 가졌으며,더 나아가 헤센주의 가장 큰 고용주 역할 까지도 행하고 있다. 이렇듯 서비스 대도시인 프랑크푸르트는 긴 전통의 현대 산업을 이끌고 있다. 화학,자동차,기계공학,전자 분야의 4가지 산업이 이 도시의 주축을 이루어,경제력에 있어 위치를 차지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에 상주하고 있는 대표적인 유명 회사로는 훽스트,데구사,뤼트거스 등이 있다.
독일 전체를 통해 이 마인강 근처가 날씨가 제일 좋은 편이라고들 한다. 프랑크푸르트의 봄, 가을은 아주 짧고 여름과 겨울이 긴 편이다. 소위 '썸머 타임'을 10월까지 하며, 6월말 쯤엔 밤10시까지 환하다. 그러나, 12월말 경이 되면, 오후 4시만 돼도 캄캄해진다. 대체적으로, 영국의 런던처럼 심하진 않지만 비는 자주 오는 편에 속한다.
▶ 하이델베르크
네카 강변의 평온한 도시 하이델베르크(Heidelberg)는 1386년 이래로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하이델베르크 대학이 있는 중후한 느낌의 도시 이다. 14세기 이래 독일의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수많은 문학가, 예술가, 과학자, 철학자들이 이 도시를 거쳤다. 따라서 옛 독일의 표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유유히 흐르는 네카강을 곁에 두고 많은 예술가와 시인들이 예술적 번민을 극복하고 평온함을 얻기 위해 찾을 정도로 경관이 수려하다. 또한 16세기 종교개혁 때는 루터파와 칼뱅파의 논쟁이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하이델베르그는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 있는 도시로서, 울창한 숲으로 뒤덮인 오덴발트 구릉지대에서 운하화된 네카어 강이 빠져나와 라인 평야로 흘러드는 지점에 있다. 서쪽으로 프랑스, 남쪽으로 스위스,동쪽으로 바이에른 주,북서쪽으로 라인란트팔츠 주,북쪽으로 헤센 주와 접한다. 보덴 호수와 다양한 골짜기를 가진 라인 강변이 있는 바덴-뷔르템베르크주(州)에 있는 도시인 하이델베르크는 라인강의 지류인 네카르강의 풍부한 흐름에 성장한 고도이다. 오덴발트 산아래의 네카르강과 라인강의 합류점에 가까운 해발고도 116m 지점에 있으며, 쾨니히툴 산 기슭의 독일 남부에 위치한 고색짙은 도시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도 100Km 남쪽, 네카어강이 라인평야로 흘러드는 곳에 있는 하이델베르크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자동차로 약 1시간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대학도시이다.
유서 깊은 대학과 옛날의 영화로웠던 꿈을 말해 주는 '고성(Schloss)'과 '황태자(Prinz Carl)의 첫사랑'으로 널리 알려진 이곳은 독일 남부의 아름다운 과수원으로 덮인 쾨니히툴 산 서북쪽 기슭에 위치한 고색 짙은 도시다. 하이델베르크라는 오늘날의 지명은 독일어로 '신성한 산'이라는 뜻을 지닌 '하일리겐베르크'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 하일리겐베르크는 오늘날 하이델베르크 고성이 있는 네카어 강 언덕을 가리킨다.
기후 역시 온화한 아름다운 대표적인 대학 도시로서, 네카르 강과 라인강의 합류점에 가까이 있다. 독일에서 이름난 교육의 도시답게 오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학생들이다. 특히 이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노벨상 수상자를 일곱 명이나 낸 명문 대학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유서깊은 이 대학은 프랑크부르크 대학과 함께 독일 전체의 철학을 대표하는 곳으로 손꼽힌다. 이 오랜 대학을 무대로 하여 '알트 하이델베르크'의 희곡이 태어났고, 카를 하인리히와 괴테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하이델베르크의 추억은 교양·청춘·사랑과 시 속에 존재한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이델베르그는 오랜 전통의 대학과 고성, 그리고 아름다운 낭만이 한데 어우러져 더욱 빛을 발한다. 알테 다리를 건너 네카 강의 오른쪽에서 하이델베르그 고성을 향해 서면 폐허로 남아 있는 고성의 운치와 옛 모습을 그대로 담으면서,특히 노을이 질 무렵 석양을 등진 채,기념 촬영을 하면 가장 멋진 전경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다.
이 도시에 왔다면 반드시 보아야 할 대표적인 곳들로는 네카 강 북쪽,강의 흐름을 따라 언덕 중턱에 이어지는 산책로인 '철학자의 길'과 '학생 감옥'이다. 철학자의 길은 일찍이 괴테, 헤겔 등 많은 철학자들이 이 길을 걸으며 명상에 잠겼다고 하여 더욱 유명하며, 1712년에 치외 법권 지역으로 설정한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학생 감옥은 이 도시의 전통을 잘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카를 테오도어 다리로서 '옛 다리(Alte Bruecke)'와 선제후 박물관,하우프트 거리와 마르크트 광장 역시 이곳의 대표적인 명소이다.
교육
네카어강 연안의 라인 평야에 펼쳐져 있는 신시가지에는, 남서독일의 정신적 중심을 이루는 1386년에 창립된 하이델베르크대학을 비롯하여 하이델베르크 과학아카데미,막스플랑크 연구소,암 연구소,교육대학,음악 및 연극대학이 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유서 깊은 대학인 하이델베르크 대학은,1386년 루프레히트 1세에 의해 창립된 독일 최고의 국립 종합대학이다. 중세의 카톨릭 대학으로 발족하였으나,고대 문헌 소장으로 유명한 도서관의 기초를 닦은 1556년 하인리히의 종교개혁으로,인문주의적 신교 대학으로 전환하여 명성을 얻었다. 19세기에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며 수많은 석학들의 열띤 토론장이 되었고, 설립자의 이름을 따서 루프레히트 카를 대학이라고도 칭하는 데, 근래에도 노벨상의 각 분야에서 계속 수상자를 낳고 있는 등 학문적인 활약이 지대하다.
이 대학은 생물 공학과 특히 유전 공학에 중점 역할을 하고 있으며,약 24만 명의 학생들이 6만 5천 이상의 과학자와 교수진들에 의해 강의를 받고 있다. 인문학 분야에서 특히 중요한 곳은 네카르 강변의 마르바흐에 있는 독일 문학 문서 보관소인데, 이곳에는 무엇보다도 거의 모든 독일 작가들의 문학 유산이 보관되어 있어 가치가 크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는 이러한 미래를 향한 기술들을 위해 생산 센터 건립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이 주에 있는 9개 종합 대학교와 39개의 전문대학,카를스루에의 연구 센터,하이델베르크의 독일 암 연구소,막스 플랑크 연구소와 프라운호퍼 연구소 등 130개의 연구소들은 상호 연결을 위해 초고속 정보망을 건설 중에 있다.
산업
하이델베르크가 속해 있는 주는 산업과 무역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경제력은 단순히 대단위 산업의 생산성에만 의거하는 것은 아니라,수백 종의 중소기업이 세계적으로 요구되는 고도로 특수한 생산품을 제조해 낸다. 잘 알려진 것처럼 주민들은 타고난 만물 장인들이며,그들의 발명 재주는 신화적이다. 또한 이곳에서는 전통적인 농작물 외에 온화한 기후를 발판으로 과일, 관상식물, 채소, 홉과 담배 등 특용작물의 경작이 가능하다.
공업은 평야부의 신시가에 입지하는데 전자, 광학, 자동차, 기계, 피혁, 섬유 등 공업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하이델베르크는 정보학이나 환경공학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프랑크푸르트와 더불어 출판업의 기지로서도 활약하고 있다.
▶ 함부르크
독일 북부에 위치하여 엘베강 유역에 발달한 함부르크는 755㎢의 면적을 지닌 독일의 대도시로서,도시근교에만 무려 330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베를린 다음 가는 도시이자 시인 동시에 하나의 주이기도 한 함부르크는 유럽 최대의 항구도시이며, 멘델스죤과 브람스의 고향이기도 하다. 한국의 서울과 비슷한 면적을 가졌으면서도 인구는 서울의 1/7밖에 되지 않는 녹색의 도시인 이곳은 시 전체면적의 14%가 녹색 숲으로 뒤덮여 있고, 시면적의 8%에 달하는 호수와 강 그리고 수로가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평온함을 제공해 주고 있다. 특히 도심에 알스터 강을 막아 만든 184ha의 호수는 번잡한 도시에 아름다운 여유를 부여해 주고 있다.
14세기부터 뤼벡 다음가는 한자동맹 도시이기도 했던 함부르크는 18세기의 바로크 양식인 일명 미셸이라고 불리우는 132m 높이의 미하엘리스 성당과 5개의 교회 첨탑들이 현대적인 건물과 함께 한데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찬란한 야경의 엘베강의 모습과 함부르크 전경을 한눈에 들여다 볼 수 있는 텔레베젼탑(Fernsehturm)과 철책이 없는 하겐베크 동물원(Hagenbecks Tierpark),브람스 기념관,그리고 함부르크 역사박물관,엘베강 연안 선착장에서 일요일마다 열리는 시끌시끌한 어시장의 풍속 또한 함부르크에서 빼어 놓을 수 없는 진풍경들이다.
함부르크는 또한 북독일의 은행 중심지이며,독일의 가장 큰 보험회사의 본사이기도 하다. 95개의 영사관을 갖는 이곳은 세계 제1의 영사관 도시이다. 그리고,도시 심장부에 위치한'의회 센터'는 가장 현대적이고도 인기있는 회의장 중의 하나이며, 바로 이웃하고 있는 무역 홀들은 중요한 무역 박람회의 회의장으로 인기가 높다.
함부르크는 훌륭한 관광과 산업의 중심지이기도 하지만 이곳은 호텔잡기가 무척 힘들고 호텔 수준에 비해 가격이 터무니 없이 비싸기 때문에 숙박시설을 타지역보다도 더욱 신중히 고려해야할 곳이기도 하다. 또한,오늘날 우리들이 즐겨먹는 빵과 야채사이에 고기를 끼워 먹는 '햄버거'의 명칭이 이곳 함부르크에서 유래된 곳이기도 하며, 함박스테이크는 함부르크의 전통적인 스테이크 요리방식이기도 하다. 항구도시인 관계로 무엇보다도 해산물 요리가 특출나며, 랍스카우스와 가자미 튀김 등이 유명하다.
교육
함부르크에는 9개의 대학교가 있고, 6만 8천 여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9개의 대학교는 함부르크 대학교를 위시로 하여, 직업 전문 대학 함부르크, 함부르크 하부르크 공과 대학, 경제 정치 전문대, 연방방위군 대학교, 음악 예술 전문대, 미술 전문대, 개신교 사회교육 전문대, 공공 행정 전문대 등이 있다. 대부분이 시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그 중,1613년 '대학 김나지움'으로 뿌리를 찾을 수 있는 함부르크 대학교에는 1821년에 식물원, 1833년에 천문대, 1878년에 화학 연구소, 1885년에 물리학 연구소, 그리고 1900년에 항해병 및 열대병 연구소가 설립되었으며, 1892년에는 일반 교양 강좌 강사들이 공동으로 교수 회의를 구성했다. 1907년에는 종합 대학교로서의 바탕이 서게 되었고, 함부르크 학술 재단이 설립되었으며, 1911년 에드문트 지머스라는 함부르크의 대상이 오늘날의 본관 건물을 지어 주었다. 마침내,1919년에 종합 대학교로서 개교하였는데 서민 계급의 전문 지식에 대한 수요로서 만들어 진 대학이었다.
전쟁 이후 1945년 함부르크 대학교는 다시 부활하였고,1954년에는 전통의 법대, 의대, 철학대, 자연대의 4개 단과대를 신학대와 사회대를 포함하여 6개 단과대로 확대하였다. 1950년에 학생수는 6천명에서 1970년대에는 19,200명으로, 오늘날에는 4만 명 정도로 늘어나 독일에서 다섯 번째로 학생수가 많은 학교가 되었다. 함부르크의 대학교의 캠퍼스는 1960년대 중반경 도심의 아우쎈알스터 호수 가까이에 있는 폰멜레파크에 완공되었고 의대의 경우는 도심 북쪽의 에펜도르프에 자리잡고 있다.
특히, 이곳 함부르크 대학교의 특징은 타대학들 보다 의과 대학의 비중이 상당히 크다는 데에 있다. 에펜도르프에 있는 함부르크 의과대학은 100년전에 일반 병원으로서 세워진 것인데,19세기말 콜레라가 창궐할 때 이미 독일 전역에 그 명성을 떨쳤다. 현재 의과 대학은 1800여개의 병상과 14개의 병원, 14개의 연구소를 갖고 있으며,3전체 건물 270개 중에 120개 정도가 의대 건물이다. 이 학교의 외국인 학생 수는 약 3,400여 명으로 전체 학생의 8.6%를 차지한다. 큰 도시의 국제적인 분위기로 볼 때에 상대적으로 외국 학생 수가 매우 적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이 곳은 까다로운 어학시험으로 소문난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는 함부르크의 분위기에 외국인 학생들이 잘 맛지 않을 수도 있다.
그 밖에도 함부르크 음대도 역시 세계적으로 알아 주는 데, 이곳의 원서 마감일은 여름학기인 경우 4월 15일이고,겨울 학기인 경우는 2월 10일이다. 이곳의 주소는 Harvestehuder Weg 12,20148 Hamburg이므로 참고하기 바란다.
산업
함부르크는 독일에서 두 번째로 큰 산업의 중심지이며, 메트로폴리스의 심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대한 공원과 가로수 길, 수목원과 숲, 그리고 습지와 수풀지대는 함부르크를 독일의 가장 푸른 도시 중에 하나로써 손꼽고 있을 만하다. 약 120개가 넘는 공원에 가로수만도 20만 그루가 넘을 정도로 녹색의 산업 도시라고 칭할 수 있다. 따라서,세계 10대 항구 중에 하나로써 손꼽히는 함부르크 경제의 중점은 역시 항구업과 무역업을 들 수 있다. 오늘날에는 독일 최대 규모의 정유 산업지가 입지 하는 등 공업도시로서 다방면에 걸쳐 상업이 이루어 지기도 한다. 이곳의 상업 종사 인구율은 17%로서 독일의 도시들 중에서도 그 비율이 가장 높은 편이다. 조선,정유,차체,타이어 제조 등이 중심 공업이며,기계,전기 통신기,가구,섬유,담배,화장품 공업등이 주를 이룬다.
예전부터 이곳은 독일 최고의 신문잡지들을 거느린 독일 언론 산업의 중심지였고,지금은 3300여개의 정보 산업체를 보유한 독일 정보산업의 메카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언론 분야가 함부르크에서 가장 급성장하는 경제 분야가 되었다. 이 도시에는 독일 통신(dpa),주요 텔레비젼과 라디오 본부와 작업장 및 많은 광고회사들이 있다. 그리고,함부르크의 출판은 독일의 모든 신문과 잡지의 전체 발행 부수의 50% 이상에 해당한다. 이 한자도시인 함부르크는 CD와 음악 카세트,레코드 생산의 중심지가 되기에 이른다.
오늘날에는 새로운 중점이 정보 산업쪽으로 대체해 가고도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일본이나 한국의 대부분의 전자 정보 산업체들 조차도 이곳 함부르크에 그 지사를 마련할 정도로 국제적으로 전자계열의 교역이 활발한 곳이기도 하다.
'해외여행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럽 리투아니아 [LITHUANIA] & 십자가 언덕(Crosses' Hill in Lithuania) (0) | 2008.07.09 |
---|---|
유럽 러시아 [RUSSIAN] (0) | 2008.07.09 |
유럽 덴마크 [DENMARK] (0) | 2008.07.08 |
유럽 노르웨이 [NORWAY] (0) | 2008.07.08 |
유럽 네덜란드 [NETHERLANDS] (0) | 2008.07.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