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불교성지순례]붓다의 발자취를 찾아서..
붓다의 나라 인도, 부처님이 지나오신 발자취를 찾아 떠나는 전통불교성지순례-붓다의 발자취를 찾아서...
DAY1-2 기원정사와 사위성터의 스라바스티(사헤트마헤트)  
 


스라바스티- 기원정사(Sateth)

고락푸르에서 서북방으로 약 160km 거리에 발람푸르가 있고 발람푸르에서 반나절 코스로 스라바스티를 다녀올 수 있다. 기원정사(Sateth)와 사위성터(Maheth)를 합하여 사헤트마헤트(Saheth Maheth)라 부르며 앙구리마아라의 개종 등 일화가 많다. 옛날에는 7층 석탑이 있어 이곳의 중심이었으나 오늘날은 공원이 되어 보리수, 사원, 승원, 거탑등의 많은 기단이 있다.
* 기원정사(Sateth)
기원정사는 중인도 교살라국의 도성이었던 사위성{스라바스티(Sravasti) 또는 마헤트(Maheth)} 에서 남서쪽으로 약 800미터 지점에 있으며 당시 교살라국의 상인 급고독 (수탓타) 장자가 부처님께 귀의하고 도시 남쪽에 정사를 세우기에 적당한 땅을 발견하고는 국왕의 태자인 기타왕자의 요구대로 그 토지에 황금을 깔기도 하는 열의를 보여 건립하였고 여기서 부처님은 24회의 우안거를 지내시며 설법을 하셨다. 이곳은 부처님께서 제자 스우부티(수보리)에게 최고의 대승경전 금강경을 설하신것과 여러 기적을 행하신 것으로 유명하다.부처님께서 설법하신 대좌 (가우닥티)가 남아있고 후대에 생긴 많은 절터가 있다.

 
  DAY3-4 붓다의 탄생지 룸비니, 입적지 쿠쉬나가르와 마지막 하안거 장소 바이살리  
 


룸비니(Lumbini)- 마야데비 사원(Mayadevi Temple)

약 2600년 전 석가족의 왕국이 이 지방에 있었고 국왕 정반왕(슛도다나 왕)의 부인 마야데비 왕비가 산일이 가까워지자 친정을 향해 길을 가던 중 그 일행이 카필라성과 콜리성 근처의 룸비니동산에 이르러 휴식을 취하게 되었는 바, 이 때 백화 만발한 꽃동산을 거닐던 성모 마야데비 부인이 꽃이 만개한 무수나무 가지를 잡는 순간 갑자기 오른편 옆구리로 아기가 탄생하였다는 부처님 탄신 설화의 고장으로 불교성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 마야데비 사원(Mayadevi Temple)
붓다가 태어난 곳에 세워진 사원으로서 붓다 탄생의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는 힌두 사원으로 숭배되고 있는 이 사원에는 붓다의 탄생 모습을 새긴 돌 조각이 있어서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4세기경에 조각된 것으로 추측되는 이 돌 조각은 아쉽게도 1600년의 세월 탓에 마모가 심해져 윤곽만을 확인할 수 있다.


룸비니(Lumbini)- 아쇼카 석주(Ashok Pillar)

BC249년 아쇼카 대왕이 붓다의 탄생에 존경을 표하며 세운 기둥이다. 석주에는 다섯 줄의 아쇼카 대왕의 명문이 있는데, 그것은 ‘많은 신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아쇼카 대왕은 왕위에 오른지 20년 만에 친히 이곳을 찾아 참배하였다. 여기가 붓다가 탄생하신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로 말의 형상을 만들고 석주를 세우도록 했다. 위대한 분의 탄생지임을 기려 이 지역은 조세를 면제하고 생산물의 8/1만 징수케 한다.’


쿠쉬나가르(Kushnagar)- 열반당(Nirvana Mandir)

45년간의 가르침의 여행을 계속하시어 80세에 달하신 부처님께서는 열반에 드시던 그해의 우기에 병을 얻어 죽음이 가까원진것을 아시고는 아난존자만을 데리고 마지막 여행을 떠나시는바, 풍요로운 도읍 바이샬리를 지나 파마마을에서 대장장이의 아들 춘다가 공양한 식사로 이질의 증상을 얻으셨다. 병을 헤아리신 부처님은 당시 마라족의 도읍인 쿠시나가르로 발을 옮기시다 (고향인 카빌라바투스 방향을 목표) 쿠시나가르의 교외에서 45년동안의 끝없는 설법전파의 활동을 마감, 제자 아난다가 지켜보는 가운데 두 그루의 커다란 사라나무 사이에서 80년의 생애를 마치고 입적하셨다.그 옛날에는 수많은 거탑과 방승이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없고 유적에서 발견되는 불상등이 미얀마의 불교도가 이곳에 건립한 마하팔리니르바나 사원에 모셔져있다. 이 사원주변에 열반탑, 절터 등의 많은 유적이 있으며 동쪽 1km지점에 있는 라마바르 흙무덤(높이 46km의 벽돌탑)은 부처님의 유해가 화장된 터로 유명하고, 이 흙무덤의 서북방에 부처님이 마지막 목욕을 하신 히라니야바티 강이 흐르고 있다.
* 열반당(Nirvana Mandir)
붓다가 입멸한 자리에 세워진 사원으로, 길이 6.2m에 달하는 열반상을 감상할 수 있다. 편안한 자세와 표정으로 누워서 입멸을 한 붓다와 스승의 죽음에 비통해하며 안타까워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상당히 대조적으로 묘사되어있다.


쿠쉬나가르(Kushnagar)- 람바르 스투파(Rambar Stupa)

붓다의 다비식을 치른 곳. 그 뒤쪽으로는 붓다가 열반 직전에 마지막으로 목욕을 했던 히라이냐바티 강이 흐르고 있다.


바이살리(Vaisali)

부처님은 자주 이 도시를 방문, 설법을 행하셨고 쿠시나가라에서 열반에 드시기 전에 마지막 여행때는 창부 암파라비의 정성어린 대접을 받으며 귀공자들의 분개를 사면서까지 교화를 시키셨다는 등, 부처님과 관련된 일화가 많은 곳이지만 현재는 한적한 농촌에 지나지 않는다.아쇼카왕 이전에 건립한 돌기둥 중 하나가 아직도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있는데, 마우리아시대 이전에 만든 스투우파와 원숭이들이 부처님께 꿀과 과일을 공양하면서 부처님께 바치기 위하여 팠다는 넓은 못(목욕지, Ramakud)도 있는 이곳은 불교 제2의 결집지로서도 의의가 깊다. 아쇼카왕이 세웠다는 높이 7m의 네마리 사자의 석주가 있는 이곳은 자이나교의 성지이기도 하여 자이나교 사원이 있으며 자이나교 연구소도 있다.

 
  DAY5-6 죽림정사의 라즈기르, 불교대학의 나란다와 깨달음의 도시 보드가야  
 


라즈기르(Rajgir)-죽림정사 터(Venuvana Vihar)

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루시기 전 수행을 하시던 장소며 또 부처님이 되신 후 최초로 포교활동의 중심으로 삼은 곳이기도 하며 또한 말년에도 오랫동안 체재하시던 불교성지 중 매우 중요한 곳이다. 이곳의 영취산(Griddhakuta)은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법하신 곳으로 유명하고 또 당시 마가타 왕국의 국왕 빔비사라왕이 기증하여 부처님과 제자들이 우기에는 이곳에서 사람들을 모아 가르쳤다는 죽림정사터가 이곳에 있다 빔비사라 국왕이 태자 아사세에게 감금을 당해 고초를 겪으며 부처님이 계신곳을 바라보며 지냈다는 감옥터가 남아있고 태자 아사세의 마음을 돌리게한 의사 기바의 집터도 아직 전해오고 또 제1차 불교 결집이 있었던 유서깊은 칠엽굴이 있어 더욱 이곳의 의의를 깊게 한다.
* 죽림정사 터(Venuvana Vihar)
현재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지만, 스라바스티(Sravasti)의 기원정사와 함께 초기 불교의 2대 사원으로 꼽히는 죽림정사가 있던 자리이다.


라즈기르(Rajgir)-영취산(Griddhakuta)

현재는 ‘그리다꾸다’라고 불리우는, 법화경이 설파됐던 무대이다. 법화경의 무대라고 생각하여 장엄하고 웅장한 곳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조그만 바위산에 불과하다. 하지만 소박하면서도 뭔가 독특한 분위기가 있어서 붓다의 법화경 설법 장소로 최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해준다.


라즈기르(Rajgir)-칠엽굴(Saptaparni Cave)

붓다의 입멸 후 찾아온 종단 분열의 시기에 붓다의 수제자였던 가섭존자가 내부적인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회의를 소집한 장소. 바로 칠엽굴은 초기 불교사의 사상적 흐름을 정리한 1차 결집이 열였던 장소인 것이다.


나란다(Nalanda)

부처님의 제자 사리불 존자의 고향인 나란다에는 비록 회교도들의 침략으로 훼손되었기는 하나 지금도 웅장한 규모의 고대인도의 불교대학터가 라지기르에서 북방 20km 지점에 남아있다. 비록 폐허화 되었지만 아직도 그 웅장한 위용을 간직하고 그 당시의 불교의 융성이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며 사리불 존자의 사리가 모셔졌다는 사라자 스투파가 대학터에 우뚝 솟아있다. 또한 이곳의 박물관에서는 굽타왕조 시대의 불교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다.


보드가야(Bodhgaya)

불교성지중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이 바로 이 성불의 땅, 보드가야 이다. 부처님께서 구도의 일념으로 부귀영화를 버리고 29세의 나이로 출가한 이래 고명한 선인들을 찾아 가르침을 청하였으나 만족한 답을 듣지 못하자 입산하여 6년간 모진 고행을 수행하였음에도 올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하게 되메, 육체를 괴롭히기보다는 육체를 맑게 가짐으로써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하산하셨다고 하는바, 그때 네란자라 강으로 내려가 목욕을하시고, 마을소녀 수자타가 공양해준 우유죽으로 체력을 회복하신 후 지붕처럼 드리운 큰 나무밑에 앉아 명상에 잠기시어 마침내 정각을 성취, 성불하신곳이 바로 이곳 보드가야이다.
* 마하보디 사원(Mahabodhi Temple)
붓다가 깨달음을 얻어 무상정각을 이룬 자리에 세워진 사원이다. 사원의 뒤쪽에는 깨달음과 관련이 깊은 보리수가 있다. 그 왼쪽에 있는 큰 발자국은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후 첫 발을 디딘 곳을 나타낸 곳이다.
* 수자따 마을(Sujata Village)
보드가야의 서쪽을 흐르는 니란자나 강변을 따라서 나 있는 다리를 건너가면 아름다운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이 바로 붓다에게 우유죽을 공양했던 장님 처녀 수자따가 살았던 마을이다.

 
  DAY7-8 갠지스 강의 바라나시, 붓다의 첫 설법지 사르나트와 타지마할의 아그라  
 


바라나시

인도를 생각할 때 여러 가지 이미지들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 모든 것 들이 바로 바라나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혹자는 ‘바라나시를 보지 않았다면 인도를 본 것이 아니다. 바라나시를 보았다면 인도를 보았다는 것이다.’ 라고 말하곤 한다.
* 갠지스 강의 가트 - 갠지스 강과 맞닿아 있는 계단을 뜻하는 가트는 약 100여개가 조성되어 있다. 몸을 씻는 힌두교 인들로 이른 아침부터 북적이는 가트를 보고 있노라면 경건한 분위기가 흐른다. 여행자들의 눈에 비치는 갠지스 강은 죽은 개의 사체나 여러 가지 오물들이 떠다니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이들에게는 성스러운 의식을 행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목욕을 하면 죄도 씻겨 나갈 뿐 아니라 간절한 바람까지도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 베나레스 힌두대학 - 인도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넓은 캠퍼스를 자랑하는 대학교. 힌두문화와 관련된 학문을 교육하기 위한 대학이기 때문에 철학, 산스크리트, 전통 예술 분야에 상당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사르나트-다멕 스투파(Dhamekh Stupa)

부처님께서 정각을 얻으신 후 7주간 명상에 잠기셨을때 하늘에서 제석천이 하강, 그 크나크신 깨달음을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여 주실것을 간청하매 부처님께서 첫 설법의 대상으로 녹야원(샤르나트)에서 수행중인 교진여등 5명의 수행자들로 정하시고 보드가야로부터 걸어서 샤르나트에 도착. 부처님과 최초의 5제자들이 처음 장소를 기리기 위하여 후일 아쇼카 대왕이 건립한 대탑이 있고, 부처님께서 5제자를 상대로 첫 설법(4제와 5정도)을 행하심으로써 불법의 법륜을 최초로 굴리신 바로 그 장소에 아쇼카대왕이 건립한 디메크 대탑이 건재하고 있다.
* 다멕 스투파(Dhamekh Stupa) - 정확한 용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붓다가 다섯 도반에게 처음으로 행한 설법인 초전법륜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불교 유적과는 달리 이슬람의 침입 속에서도 보전 되어 있어 그 의미가 더욱 깊다.


사르나트-다마라지까 스투파(Dharmarajika Stupa)

붓다가 처음으로 설법을 행한 자리로 추정되는 곳에 세운 스투파. 아쇼카 대왕이 스투파를 세운 뒤 여섯 번의 보완 공사가 더해졌다고 한다.


아그라-타지마할(Taj Mahal)

타지마할로 잘 알려져 있는 무굴제국의 옛 수도 아그라. 인도의 수도 델리, 핑크시티의 자이푸르와 함께 골든 트라이앵글을 이루고 있다. 인도 전역에서 가장 볼거리가 많은 곳으로서, 관광객들의 방문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 타지마할(Taj Mahal) - 인도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유적지이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리석 건물이다. 그 옛날 무굴제국의 5대 황제였던 샤 자한이 아내 뭄타즈 마할을 위해 지은 무덤이다. 아내에 대한 변치 않는 사랑을 품고 있던 샤 자한은 그녀가 출산 도중 세상을 떠나자 머리가 셀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그 후 그는 결국 역사상 유래 없는 화려한 무덤을 건설하여 그녀에게 바치게 된 것이다.


아그라-아그라 성(Agra Fort)

악바르 대제가 지은 성으로서 무굴제국의 강력한 권력을 상징한다. 건축광인 샤 자한 왕이 원래는 요새로 지어진 이 성을 궁전으로 변모시켰지만, 자신의 말년을 이곳에서 비참하게 보내게 되어 아이러니함을 보여준다.

출처 : 자격있는 여행전문가 - 모두투어

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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