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CUBA]
쿠바는 1492년 부터 400년간 스페인의 식민지였고,1901년부터 1959년까지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카리브해에서 가장 큰 섬나라로서 건기의 일정한 기온과 높지않은 습도,공해 없는 대기 등으로 환자 요양에 가장 적합한 환경을 간직하고 있다. 이에 쿠바는 자신들만의 독특한"의료관광"을 실시하고 있으며,당뇨병과 야맹증치료에 그 탁월한 효과를 보이고 있다. 의료관광을 원할시에는 충분한 여유를 두고 신청해야 한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쿠바의 국기는 1850년 나르시소 로페스 장군이 뉴올리안즈에서 원정대를 이끌고 칼레나스를 공격했을 때 사용하던 군기(軍旗)와 모양이 같다. 1902년 5월 쿠바정부가 수립되면서 국기로 사용되기 시작하여 1906년 1월 법률로 제정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국기는 3개의 청색 줄과 2개의 흰색 줄이 혼합 배열되어있고 국기의 왼쪽에 붉은색의 정삼각 안에 흰 색의 별이 한 개 있다. 국기의 붉은 색은 독립을 위해 흘린 피를 즉,정의를 상징하고,흰색은 독립 전쟁의 순수성를 표시하며,흰색의 별은 쿠바의 장래가 찬란히 빛날 것을 의미한다. 3개의 청색 줄은 독립 당시 동부,중부,서부의 3개 지역을 상징하며 붉은 색의 삼각형은 자유,평등,박애를 나타낸다. 문장(紋章)의 방패 위에 모자가 있는데 이는 자유와 평등을 나타내며 방패 상단에는 태양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열대를 상징한다. 방패 좌측 아래에 국기가,우측에는 쿠바의 풍경이 그려져 있다. 방패는 승리를 의미하는 월계수와 평화를 의미하는 올리브로 둘러쌓여 있다. 쿠바 국가 〈데 베야메 세즈〉의 작곡자와 작사자는 헤도로 후이구레도이다. 베야메 세즈는 쿠바의 도시 '베야모(Bayamo)의 시민'을 뜻한다. 원래 가사(歌飼)는 1868년 10월 구베노 리가레 〈자유쿠바신문〉에 수록된 것으로 베야모의 전쟁이 가사의 배경이며 작자는 전쟁의 지도자라고 전한다.
면적 : 11만 861㎢
수도 : 아바나
인구 : 1119만 명(2001)
정치형태 : 공화제
종교 : 로마카톨릭 85%(카스트로집권전)
주요민족 : 전주민의 약 60 %가 물라토(흑인과 에스파냐계 백인의 혼혈),약 25 %가 에스파냐계 백인,약 15 %가 흑인이며 그 밖에 소수의 메스티소(백인과 인디언의 혼혈)가 있다.
주요언어 : 공용어는 에스파냐어(語)(스페인어)를 사용하나 도시에서는 영어도 통용된다.
기후
북위 20∼23.5 ° 사이에 있으므로 섬 전역이 열대성기후를 나타낸다. 겨울에는 북동무역풍,여름에는 동풍 또는 남동무역풍이 분다. 연평균기온 25.5 ℃,1월 평균기온 22.5 ℃,8월 평균기온 28 ℃로서 기온의 교차가 매우 작다. 따라서 계절적 기후 변화는 강수량에 의하여 결정된다. 11~4월은 건기,5~10월은 우기에 속하는 전형적인 열대성 사바나기후를 나타낸다.
연평균강수량은 1,400 mm 내외로 6∼9월이 비가 많은 시기이며,허리케인의 내습이 잦은 북서부 지방은 풍수해의 피해를 자주 입는다. 기후관계로 식물의 종류가 많고 수림이 무성하여 ‘자연식물원’이라고도 불린다. 임야를 개간하여 사탕수수 ·커피 등 플랜테이션 작물을 재배하여 산림황폐와 토양침식이 심했으나 최근의 조림사업 결과 국토의 20 %가 다시 훌륭한 임야로 바뀌어 마호가니 ·흑단 ·소나무 등 고급목재를 생산한다.
지리
서인도제도 총 육지면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쿠바섬은 동서길이 약 1,300 km,남북길이 약 70∼200 km의 기다란 섬으로,국토의 1/4이 산지이고 대체로 평야와 구릉지가 발달되었으며 해안선은 굴곡이 심하다. 주요 산지는 남쪽 해안의 마에스트라산맥(山脈),북서부의 오르하노스산맥,중앙부의 트리니다드산지(山地) 등이다. 마에스트라산맥은 해안까지 접근하여 급경사의 암석해안을 형성하며,투르키노산(1,972 m)을 최고봉으로 하여 동서 250 km에 걸쳐 뻗어 있다. 하천은 마에스트라에서 발원하여 과카나야보만(灣)으로 유입하는 카우토강(250 km)이 가장 길며 급류를 이루는 소하천이 많다.
오르하노스산맥과 트리니다드산지는 모식적인 카르스트 지형을 이루는데 가파른 석회암 산지,싱크홀(sinkhole),석회암 동굴 등이 도처에 나타난다. 주변의 구릉지는 석회암의 풍화토인 마탄자즈 토양으로 덮여 있으며,비옥하고 배수가 양호하여 재식농업지(栽植農業地)로 적합하다. 해안지방은 사주(砂洲) ·만(灣) ·맹그로브숲 ·산호초 ·습지 등 매우 다양한 경관을 나타낸다. 섬 주변은 약 7만 km에달하는 수심 200 m 이하의 대륙붕을 이루며 수많은 산호초가 발달해 있다. 북위 20∼23.5 ° 사이에 위치하고 있고 플로리다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간단한 현지어
현지어 : 올라
의 미 : 안녕하세요
현지어 : 꼬모 에스따스?
의 미 : 당신은 어떻게 지냈습니까?
현지어 : 부에노스 디아스
의 미 : 좋은 아침이에요
현지어 : 무이 비엔
의 미 : 나는 좋아요
현지어 : 아씨 아씨
의 미 : 나쁜..
역사
BC이전 역사 개요
쿠바에 있던 원주민은 시보네이족,과나아타베이족,이들보다 뒤에 정착했던 아라와크(타이노)족 등의 인디언이었다.
AC 1년 - 1900년 까지의 역사
콜롬부스는 쿠바를 스페인 영토로 선포했고 1511년 디에고벨라스케스가 바라코아에 최초의 유럽인 영구정착지를 세웠다. 스페인인들은 쿠바를 7개의 자치제로 나누고 멕시코 진출을 비롯한 스페인의 중앙아메리카 탐험의 근거지로 만들었다. 식민지 시대에는 신대륙과 스페인 본국을 연결하는 교역의 중개자로 번영하여 금은보화를 운반하는 스페인의 배가 통행하였다. 그로인해 마이그스,모오간(H. Morgan) 등의 유명한 대해적이 횡행하여 여러도시가 파괴되었다. 16세기 초부터 에스파냐인들은 아프리카의 흑인 노예를 수입,담배 ·사탕수수 재배에 종사시켜 막대한 이윤을 거두어들였는데 19세기까지 쿠바에 수입된 흑인 노예수는 100만 명에 이르렀다. 더욱이 쿠바는 에스파냐와 아메리카 대륙을 잇는 교통의 요지에 해당하기 때문에 에스파냐는 이곳을 총독령(總督領)으로 만들고 신대륙 경영의 기지로 삼았다. 그러나 본국의 중상주의(重商主義) 정책으로 쿠바는 경제적 발전을 이루지 못하였고 정치적으로도 권리를 갖지 못한 상태였다. 17∼18세기에는 흑인들이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켰으나 에스파냐의 가혹한 탄압으로 끝을 맺었다. 19세기 초 아메리카 대륙에서 일어난 독립전쟁의 영향이 이곳에도 파급되어 1812년에는 아폰테의 지도 아래 대규모 흑인반란이 일어났다. 그 후 노예제도 폐지,농민혹사 금지와 독립을 요구하는 세력이 점차 확대되어 68∼78년의 ‘10년 전쟁’에 돌입하였다. 이 독립전쟁 기간 중 공화제 헌법이 공포되고 데 세스페데스의 공화정권이 수립되었으나,78년 정치 ·경제의 개혁과 노예해방을 약속한 ‘산혼조약’이 체결되어 전쟁은 일단 종결되었다. 그러나 에스파냐의 약속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자,95년 쿠바 혁명당을 결성한 호세 마르티를 중심으로 제2차 독립전쟁이 시작되었다. 이어 98년 아바나항(港)에 정박 중인 미국 선박 메인호(號)에서 원인 모를 폭파사건이 일어나 미국은 에스파냐에 선전포고를 하고 이 전쟁에 개입하였다. 그 결과 전쟁은 4개월 만에 미국의 승리로 끝나고 ‘파리평화조약’이 체결되어 에스파냐는 쿠바의 독립을 승인하였다. 그러나 종전 후 3년 동안 쿠바에서는 미국 군대의 군정(軍政)이 실시되었으며,1901년 공화제 헌법 제정과 때를 같이하여 미국의 내정간섭과 군사기지 설치를 인정하는 ‘플래트 수정조항(修正條項)’이 추가되어 1903년부터 99년 예정으로 관타나모만(灣) 등에 미국의 해군기지가 설치되었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미국의 군정 종결과 함께 1902년 5월 E.팔마를 수반으로 하는 공화제 정부가 수립되었으나 양질의 토지,사탕산업,교통수단 등 쿠바 경제의 중추적 기능은 미국자본이 장악하였다. 한편 정치적으로는 수뢰(收賂) ·부패 ·실정(失政) ·무책임으로 상징되는 고메스(재임 1909~13) 정권에 이어 가르시아(13~21),사야스(21~25),마차도(25~33),바티스타 이 살디바르(34~44,52~59),마르틴(44~48)의 독재 ·부패 정치가 계속되었고 12년에는 아프리카계 쿠바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3,000여 명이 살해되기도 하였다. 특히 미국의 지지로 정권을 장악한 마차도와,33년 쿠데타로 마차도 정권을 전복시킨 바티스타는 속임수 ·군대 ·암살을 통하여 권력을 유지한 인물로 악명이 높다. 더욱이 33년 직접 ·간접으로 쿠바의 정치를 좌우해온 바티스타는 52년 대통령 선거에 당선될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쿠데타를 일으켜 독재체제를 구축하였다.
쿠데타로 취소된 52년 선거에 대통령으로 출마했던 피델 카스트로는 53년 7월 산티아고의 몬카타 요새(要塞)를 공격하여 이른바 7 ·26운동이라고도 하는 반란을 일으켰으나 결국 실패하고 투옥되었다. 55년 감옥에서 풀려난 카스트로는 멕시코로 망명하여 정부 전복을 준비하는 한편 이듬해에 체 게바라와 함께 쿠바에 상륙,마에스트라산맥을 중심으로 게릴라 활동을 벌인 끝에 59년 1월 정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하였다. 총리로 취임한 카스트로는 그 해 5월 농지개혁법을 발표하고 대지주의 토지와 미국계 기업의 대농원을 몰수하였다. 59년의 석유법,60년의 대기업 국유화법으로 미국계의 사탕 ·석유회사를 접수하는 등 개혁을 단행하여 미국과 대립하다가 61년 1월에는 국교를 단절하였다. 같은 해 4월에는 미국 기업인들의 지원을 받은 망명 쿠바인들이 쿠바로 진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62년 10월에는 소련 중거리 미사일의 쿠바 반입과 미국의 쿠바 해상 봉쇄로 인한 쿠바 위기사태가 발생하였으며,같은 해 우루과이의 푼타델에스테에서 개최된 미주기구(OAS)의 외상회의에서 축출된 데 이어,64년 회의에서는 대(對)쿠바 경제봉쇄강화조치가 결정되어 멕시코를 제외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의 국교가 단절되었다. 그러나 70년대에 들어와 칠레에 아옌데의 좌경 정권이 등장하자 칠레와 복교한 후 73년까지 페루 ·가이아나 ·자메이카 ·트리니다드토바고 ·바베이도스 ·아르헨티나와 국교를 회복하였고,미국과는 73년 2월 항공기 공중납치 방지협정을 체결하였다. 한편 60년대 중반부터는 소련과 연합하여 아프리카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80년 5월에는 바하마를 침공하였고,81년에는 니카라과 ·엘살바도르의 좌익 게릴라들에게 무기를 공급하는 등 카리브 해역의 긴장을 고조시켰다. 미국과는 80년 4월 카터 대통령 때 처음으로 화해조치가 취해졌고,81년 12월 양국간의 긴장해소를 위한 회담이 열렸다. 82년에는 소련으로부터 10억 달러 상당의 군사장비인 SA3 지대공(地對空) 미사일 140기가 제공되는 등 이후로도 소련과 경제적 ·군사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전압 및 주파수
110V/50Hz 을 사용한다
치안
쿠바의 치안 상태는 다른 중남미 국가와 비교해 볼 때 좋은 편이다. 살인사건 등 범죄율도 낮은 편이다.
정치적 의견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제약이 엄하여 군인과 경찰의 인권유린은 일어나고 있다. 경미한 범죄자는 미국 난민으로 도망가는 경우도 있다. 혁명재판소는 공산주의 헌법에 의해 중대한 정치 범죄를 다룬다
통화
쿠바는 통화로 페소(peso)를 지정하고 있다.
주의사항
쿠바는 표면적으로 느긋한 라틴아메리카 제국들과 다르다. 국가 이익에 반대되는 행동,외화의 부정판매,반혁명활동,풍기문란 행동에 대한 엄격한 규제가 있으며 감시를 받는다.군사관계 시설이나 지역 등의 촬영은 금지되어 있으므로 주의를 해야한다
▶ 하바나 [Havana]
정식 국명은 쿠바공화국(Republic of Cuba)이며,수도는 하바나(Habana)이다. 이곳은 열대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식물의 종류가 많고 수림이 무성하여 자연식물원이라는 명칭이 붙을 정도이다. 쿠바의 수도 하바나는 1519년 건설된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로서 쿠바섬 북부지역에 위치한 풍경이 아름다운 항구도시이다. 혁명전 매년 수많은 미국인 관광객들이 방문하여 '앤탤리즈의 진주'라 부를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이다. 쿠바는 고급 목재의 원료가 되는 소나무,마호가니,흑단,대왕야자,케이폭 등의 열대림이 우거져 있으며,레몬,오렌지,아보카도,파파야 등이 많이 자란다. 쿠바는 울창한 숲을 개간하여 사탕수수와 커피 등 플랜테이션 작물을 재배하여 산림이 황폐화되었었으나 지금은 다시 조림 사업에 성공하여 국토의 20%가 다시 숲으로 바뀌었다. 국토의 1/4이 산지일 뿐 나머지는 평야와 구릉지이다. 동서로 뻗은 동부,중부,서부의 3개의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동부산계는 마에스트라(Sierra Maestra)산맥의 면적이 가장 넓고 지형적으로 복잡하며 쿠바의 최고봉인 1,974m의 투르키노(Pico Turquino)봉이 있다. 중부산계는 여러개의 낮은 산맥과 알투라스라는 구릉지를 이룬다. 서부산지인 과니과니코 산계는 기복이 심한 산악지대와 카르스트 지형을 나타내는 구릉지를 이룬다.
북쪽 해안은 가파르고 바위가 많은 편이나 남쪽 해안은 지형이 낮고 거대한 늡지대가 있고 습기가 많다. 쿠바에서 가장 긴 강은 남동부를 관통하는 전장 343㎞의 카우토(Cauto)강이며 두 번째로 긴 강은 구아 라 그란테(Sagua La Grande)강으로 144㎞에 달하며 카리브해로 흐르는 110㎞의 아가바마(Agabama)강이 있다.
교육
교육은 무료로 제공되며 초등,중등교육은 의무교육제이고 국가는 학생들을 위한 광범위한 장학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쿠바의 교육은 일반 학교교육,직업훈련 교육,성인교육,청소년교육,특수학교,대학교육 등 6단계로 나뉜다. 일반 학교교육은 유아교육,초등학교(6세∼12세/6년),중등학교(12∼15세/3년),고등학교(3∼4년)로 이루어진다. 종합대학 5개,대학센터 6개 군사학교 등 총 43개의 대학이 있다.
산업
설탕이 쿠바 경제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 따라 제당공장과 제분소 등 설탕 관련 산업도 중요한 위치에 있다. 제당공장은 1920년대 중반부터 건설되기 시작하여 1960년 모든 설탕산업이 국유화되었다. 설탕산업의 적극적인 기계화 추진으로 기계설비와 사탕수수를 제당공장까지 운반하기 위한 수송시설의 투자와 현대화에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1968년 이후 모든 산업체가 국가 통제를 받았다. 쿠바 산업화 정책으로 설탕생산에 주력하는 것을 탈피하여 산업 다양화를 이루고자 하였다. 제조업 육성의 주요 내용은 해외로부터의 수입 감소와 기본 산업재의 국산생산에 있었다. 미국수출금치로 인해 구입이 불가능하거나 가격이 비싼 부품을 자체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기계 및 철강처리 공업이 다른 부문에 비해 발달하였다. 또다른 중요한 영향력은 설탕산업의 기계화로 스텐레이스 철강 생산증대에 역점을 두었다. 1992년 중반 Las Tunas에 15만 톤을 생산할 수 있는 스텐레이스 철강공장이 완공되었다.
아열대성 해안 기후에 속한다. 1-2월의 겨울이 가장 서늘하다. 아열대성 무역풍권에 속하므로 연중 미 이 분다. 겨울에는 북동무역풍,여름에는 동풍 또는 남동무역풍이 분다. 연 평균기온은 25.5℃,1월 평균기온은 22.5℃이고 8월 평균기온은 28℃로서 기온의 교차가 매우작다. 특히 6∼9월의 4개월간은 일사량이 높고 한낮의 기온이 30℃가 넘어 35℃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 동절기인 1∼2월에는 최저기온이 10℃ 이상인데 한랭전선이 남하하면서 내륙지방의 온도가 내려간다.
자격있는 여행전문가 - 모두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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