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공식국명은 필리핀 공화국(Republic of the Philippines)이다. 필리핀은 마젤란이 스페인 국왕의 명을 받고 항해하던 중 1521년 사마르 지방의 호몬혼섬(Homonhon)에 상륙하면서 유럽에 알려졌으며,그 당시 스페인 국왕이었던 필립 2세의 이름을 따서 "필리피나스(Filipinas)라 명명,오늘날 필리핀이란 국명이 생겨나게 되었다. 필리핀은 마젤란에 의해 발견 된 후 스페인(1571년~1898년),미국(1905년~1946년),일본(1941년~1945년)의 식민지로 오랜 통치를 받아야했으니,그 이름에는 비애가 담겨져 있다. 필리핀은 일본의 항복과 함께 1946년 7월 4일 독립국가를 형성하였고. 그 후 라모스 대통령의 경제정책으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였으나,5%미만의 상류층이 경제권을 쥐고 있는 극심한 빈부격차로 물가는 상승하는 반면 노동력에 대한 임금은 동아시아에서 최저수준을 기록하는 등 사회적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필리핀은 아시아 대륙의 동남쪽에 위치한 섬나라로서 크게 필리핀 북쪽의 가장 큰 섬 루손(Luzon),보석처럼 흩어진 아름다운 섬들로 이루어진 비자야(Visayas),태고의 자연을 간직한 민다나오(Mindanao)의 세지역으로 나뉜다.

루손지역 - 수도인 마닐라가 속해있는 루손은 필리핀 정치,경제의 중심지이며 다양한 문화유적과 때묻지 않은 순수한 관광요소를 지닌 지역이다. 루손은 북부 루손(Northern Luzon)과 칼라바존(Calabarzon)지역으로 나뉜다.
북부 루손은 16세기 스페인 시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일로코스(Ilocos),태고의 자연과 문화가 그대로 숨쉬는 마운틴 푸로빈스(Mt. province)의 사가다(Sagada)와 바나우에(Banaue),서해안의 비치리조트 라 유니온(La Union)과 팡가시난(Pangasinan),역동적인 산업지대로 발돋움하는 수빅자유항(Subic Bay Freeport)과 클라크 특별경제구역(Clark Special Economic Zone)이 있다.
남부 칼라바존은 필리핀 예술의 고향 리잘(Rizal),호수가에 자리한 수공예의 고장 라구나(Laguna),아름다운 해변리조트 바탕가스(Batangas),500여종의 형형색색 열대어의 푸에르토 갈레라(Puerto Galera)·민도로섬(Mindoro),환상적인 신혼여행지 엘리도(El Nido)로 나뉘어져 있다.

비자야 - 마치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흩어진 섬들이 풍부한 해양생태계를 이루고 따뜻한 해수,눈부신 포구,절경의 해안과 야자수 그늘 등 남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비자야에는 필리핀의 11개의 큰 섬 중 6개의 큰 섬(파나이,네그로스,세부,레이트,사마르)이 속해있다. 대표적인 휴양지로는 스페인시대의 역사와 현재가 공존하는 세부(Cebu),에메랄드빛 바다와 베이비파우더 같은 모래사장의 보라카이(Boracay),스쿠버다이버의 천국 보홀섬(Bohol)등이 있다.

민다나오 지역 - 민다나오지역은 필리핀의 국교가 카톨릭인데 비해 회교를 신봉하는 고유민족이 많이 살고 있다. 우뚝 솟은 회교사원과 마롱을 입은 여인들이 있고 기둥 위에 위태롭게 얹혀 있는 수상가옥들 사이로 빈타스(Vintas)라고 하는 큰 줄무늬의 돛단배가 정기왕복하는 풍경. 이것이 민다나오의 모습이다.
만다나오는 상업과 농업의 중심지이며 관광의 출발점인 다바오(Davao),멸종위기에 처한 필리핀독수리가 서식하는 필리핀 최고의 산 아포산(Mt. Apo),펄팜리조트가 있는 사말섬(Samal Island),사시사철 꽃이 만발하는 전원도시 잠보앙가(Zamboanga)등이 있다.


면적 : 약 300,400㎢ - 한반도의 1.3배 ,710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도서국

수도 : 마닐라 (Manila)

인구 : 약 7천 6백만명 - 대부분이 말레이계

정치형태 : 대통령제,양원제

종교 : 천주교 (83%) ,신교(9%),회교(5% : 필리핀 남부의 민다나오 지역)

주요민족 : 인종은 말레이계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네그리토,인도네시안,중국인,메스티조,모로 등 여러 종족 간 혼혈인 등이 살고 있다. 산악지대인 오지에서는 아직도 말레이인이 도래하기 전부터 살고 있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기도 하다.

주요언어 : 전체인구의 1/3을 차지하는 마닐라 일대에서 사용되는 언어로 타갈로그어를 기초로 한 필리핀어를 공식 언어로 지정되어 있으며 상용언어로 영어를 사용한다. 필리핀은 다양한 지방어ㆍ방언들이 통용되고 있어 인구의 90%가 사용 언어를 조사해 보면 약10가지정도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된다. 미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은 영어를 상용언어로서 중등학교의 언어로 채택하고 있어 여행자들은 영어를 통한 의사소통이 가능하여 편하다. 또한 전체인구의1/4이 사용하는 세부아노어를 기본으로 일로카이노어·힐리가이노어·비콜어 등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

경제
필리핀 경제는 농업ㆍ경공업ㆍ서비스업을 토대로 하고 있으며 20세기말에 정부의 간섭이 있지만 시장경제체제가 지배적이다. 물가는 상승하는 반면 노동력에 대한 임금은 동아시아에서 최저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기후
지역에 따른 차이는 있지만 연평균 26℃,연평균 습도 77%로 열대성 기후. 우기와 건기로 나뉜다.
* 3월~5월: 22℃~32℃,덥고 건조하다. 선글라스나 모자를 준비한다.
* 6월~10월: 우기. 우산 또는 우비를 준비한다.
* 11월~2월: 22℃~28℃로 쾌적한 날씨

산업
필리핀은 2/5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농민의 대부분이 소작농으로서 국터의 1/4를 차지 하고 있으나 관개시설은 부족한 편으로 정부ㆍ국제기구가 관개농지를 넓히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자급자족의 이르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이 쌀을 재배하고 있으며,옥수수를 재배하는 섬들도 있다. 코코넛 생산국으로 코코넛ㆍ코프ㆍ코코스야자유를 수출하며,사탕수수ㆍ바나나ㆍ파인애플도 재배되어 수출을 늘리고 있다.
필리핀은 이동농경방식으로 삼림은 계속해서 고갈되어 가고 잇다. 질 좋은 목재ㆍ베니어판이 영국ㆍ미국ㆍ일본으로 수출되고 있다. 제조업은 식품가공,음료ㆍ석유제품ㆍ신발 등의 생산을 들 수 있다.

지리
태평양에 둘러싸여,동쪽은 필리핀 해,남쪽은 셀레베스 해,남서쪽은 술루 해,서쪽은 남중국해와 접하고 있다. 주요 섬은 루손섬과 민다나오 섬이고,필리핀 중부의 비사얀 제도는 파나이ㆍ네그로스ㆍ세부ㆍ사마르ㆍ세부 섬으로 구성되며,민도로 섬은 루손섬 근처 남쪽에 위치,팔라완 섬은 서부에 떨어져 위치하고 있다.
큰 섬들은 휴화산으로 다양한 지형을 보인다. 바이 호를 빼곤 루손 섬ㆍ민다나오 섬의 큰 호수들은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것으로 라구나데베이 호는 922㎢로 필리핀에서 제일 큰 호수로 마닐라 남동쪽의 위치한다. 루손 섬 중부에 산계가 합쳐진 중부에는 카가얀 하곡과 그 이남에 면적 1만 9,200㎢의 비옥한 중앙평원지역이 있다. 남부에는 나선형 반도로 고립된 화산ㆍ산괴ㆍ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솟아 있는 민다나오 섬은 5개의 산계로 만과 반도로 긴 해안선을 이루고 있다.


간단한 현지어
현지어 : Salamat 살라마트
의 미 : 감사합니다.
현지어 : Hindi 힌디
의 미 : 아니오.
현지어 : Oo 오오
의 미 : 예.
현지어 : Puwede bang magtanong? 퓌데 방 마그타농?
의 미 : 물어봐도 됩니까?
현지어 : Ano ito? 아노 이토?
의 미 : 이것은 무엇입니까?

관광제안
필리핀 관광은 크게 리조트 휴양지, 생태관광, 역사탐방으로 요약할 수 있다.

* 리조트 휴양지
- 마닐라 근교의 해변과 화이트 비치와 에메랄드빛 바다의 보라카이, 일곱빛깔바다를 지닌 세부, 다이버들의 천국 보홀과 태고의 자연을 간직한 팔라완

* 생태관광
- 다양한 동식물과 원주민들의 생활 탐방

* 역사탐방
- 루손지역에 위치한 일로코스주와 마닐라, 세부시의 스페인 역사유적지, 기독교와 민족문화가 가미된 축제 등


역사
BC이전 역사 개요
필리핀의 역사는 발견된 화석에 따르면 기원전 2만년대인 호모사피 엔스시대로부터 시작된다. 1000년 전에는 필리핀 여러 섬을 방문하는 중국 상인 방문,거주하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AC 1년 - 1900년 까지의 역사
1521년에 페르난두 마젤란이 필리핀에 도착하면서 유럽인들에게 발견,스페인의 식민지배가 관철되었다. 그 당시 15세기 초 바라가이라는 부족단위로 이동농경ㆍ사냥ㆍ고기잡이 등으로 생활을 하였다. 1527년 스페인의 빌리로보스가 마젤란의 뒤를 이어 민다나오에서 레이테에까지 탐험하였으며,당시 스페인 국왕이었던 필립 2세의 이름을 따 "필리피나스(Filipinas)라 명명하게 되었고 오늘날 필리핀이란 국명이 생기게 되었다.

스페인은 군대를 파견하여 루손섬과 비사얀 일대를 정복하였고 1571년에 마닐라의 중앙정부는 19세기까지 중세적ㆍ독재적 경향을 지니고 있으며,16세기 말에 민다나오 섬 지역에 이슬람교가 전파되었고,필리핀 북부와 중부에 스페인 식민지배가 되면서 명목상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종교 중심지로서 여러 섬들을 지배하였고,상업 중심지로서 중국의 비단과 멕시코의 은의 중계항으로서 역할을 하였다.

1830년에는 마닐라가 외국문물에 대한 문호를 개방하고,설탕ㆍ마닐라 삼에 대한 유럽의 수요를 충당함으로서 상업적 농업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고 19세기말에는 민족주의 사상에 고무된 유학생들에 의해 1896년에 폭동사건을 일으키지만 스페인 군에 진압 당한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스페인의 식민통치는 1989년 미국ㆍ스페인 전쟁 후 미국에 할양되었으나 독립운동 열기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1935년 독립을 꾀하기 위하여 필리핀 연방이 수립되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의 침략과 점령으로 지연되었고 1944-45년 미군에 의해 해방을 맞아 1946년 7월 4일 미국 정부를 모방하여 필리핀 공화국을 수립한다. 초기 대통령으로 마누엘 로하스가 선출,1965년 마르코스가 대통령이 되면서 1969년에는 재선되었다.


공휴일/축제
1월
1일
NEW YEAR'S DAY

4월
4일
HOLY THURSDAY -매년 달라짐
5일
GOOD FRIDAY -매년 달라짐
9일
BATAAN DAY

5월
1일
LABOUR DAY

6월
12일
INDEPENDENCE DAY

11월
1일
ALL SAINTS DAY
30일
BONIFACIO DAY

12월
25일
CHRISTMAS DAY
30일
RIZAL DAY

유용한전화번호
투어리스트 경찰 501728,501660로 연락하며 24시간 가능,경찰 166,안내는 114,화재 신고 816-2553(마닐라),범죄 신고 818-0293/1732(마닐라) 마닐라 시내의 병원은 Makati Medical Center ☎ 815-9911,Manila Doctors Hospital ☎ 503011 가게는 08:00-10;00영업을 시작하고,사무실,은행,관공서는 주 5일 근무하며,몇몇 사무실은 일요일 오전에 일을 한다. 은행은 09:00-15:00 또는 15:30까지 근무한다. 사무실과 관공서는 17:00에 문을 닫는다. 백화점,슈퍼마켓은 19:00에 영업을 끝내지만,22:00 정도까지 문을 연다.

전압 및 주파수
전압은 220V이나 콘센트 모양은 십일자입니다.

치안
필리핀은 어느 지역이나 도둑들이 많이 있으며,최근에도 많은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친절하게 접근하여 도와준다든가,가짜 경찰로 행세하여 위조지폐를 검사한다고 하여 돈을 보자고 한 경우 일부 돈을 빼돌리고 돌려주는 경우와 자신의 집에 초대한다고 커피에 약을 탄 후 귀중품을 가져가는 경우 다양한 수법으로 도둑질을 하고 있다. 또한 마닐라 지역,버스에서 소매치기를 조심한다. 깜짝할 사이에 돈을 빼돌리기 때문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회교 반군(Moro National Liberation Front 등)의 분리주의 운동과 납치,살인 강도 등 각종 범죄의 창궐로 치안이 불안하고,사법 등 공안기관의 효율성 부재로 해이한 사회 기강을 바로 잡지 못하고 있다.

통화
통화 단위는 필리핀 페소(Peso=P,타갈로그어로는 Piso)이며,100센따보(centavos=c)로 나눠진다. 1페소는 100센따보이다. 통화의 종류는 1,5,10,25,50센따보,1,2페소로 동전은 7종류이고,지폐 종류로는 2,5,10,50,100,500,1,000페소로서 7종류가 통화되고 있다. 1,5,10 센따보는 여행자에게 별 필요를 느끼지 않으며 25센따보는 관광 시에 쓰인다. 지폐는 크기가 똑같아 구분하기 힘들지만 디자인이 다르기 때문에 잘 분별해서 지불하는 눈을 가져야 하겠다. 필리핀페소 1USD=34.95로 1997년 10월 기준이다.

한국으로 전화
필리핀에서 전화를 발견하기란 힘든데,응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경찰서를 이용하여 통화를 한다. 국내전화를 할 때에는 연결되는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아니라 감도 좋지 않다. 국제전화를 할 경우에는 호텔이나 필리핀 장거리 회사(PLDT)를 이용하면 된다. 00+82(한국국가번호)+0을 뺀 지역번호+상대방전화번호 105-87을 이용하여 수신자 부담을 이용하여 전화를 이용할 수 있다.

현지로 전화
우리나라에서 현지로의 전화방법
001(국제자동전화식별기호)+63(국가번호)+지역번호+상대방전화번호 105-87을 이용하여 수신자 부담을 이용하여 전화 이용할 수 있다.


주의사항
외국인 금기사항
우리나라도 어른들을 보면 먼저 인사를 하는 것이 예의인데 필리핀도 어른을 보면 존경의 뜻으로 먼저 인사를 하며,초대를 받았을 경우에는 약속시간에 정확히 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며 진정한 공손한 손님이라면 30분 정도 늦게 가는 것이 예의이며,집안에 들어 갈 때에는 신발을 벗고 들어간다. 또한 음식을 먹을 때 못 먹겠다 하더라도 맛은 봐야 예의이며,음식을 맛있을 경우는 음식을 조금 남기는 것이 충분히 먹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필리핀 인들은 외국인들이 신기해서 빤히 쳐다보는 경우가 많으므로 계속 쳐다본다고 해서 화를 내거나 얼굴을 찌푸린 행동은 하지 않도록 한다.

복장 및 의복 관련사항
필리핀은 해양성 열대기후로 연간 여름 계절을 보이기 때문에 여름옷으로 티셔츠,반바지,수영복 등을 준비하여 가져간다. 하지만 바기오 시의 겨울(22-2월)을 제외하고는 재킷,외투를 입을 일은 없다. 교회에 들어 갈 때에는 노출이 심한 옷은 피하는 것이 좋으며,필리핀인들은 옷을 잘 입는 편으로 외국인도 옷에 신경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자
▣ 국내 비자발급처
기 관 명 : 주한 필리핀 대사관
주 소 :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1376-1, 외교관 센타 9층
전화번호 : 577-6147, 571-6147
팩스번호 : 574-4286
근무시간 : 09:00-12:00 & 13:30-16:30,토요일 휴무

▣ 비자신청시 유의사항
필리핀은 관광 목적으로 입국할 경우 여권유효기간이 60일이상 남아있으면 3주(21일간)간 무비자로 입국이 가능하다.

▣ 비자신청시 구비서류
관광 비자 구비서류는 비자 신청서, 6개월 이상 유효한 여권, 여권용 사진 1장, 왕복항공권, 보증인의 인적사항 상용 비자 구비서류는 비자 신청서, 6개월 이상 유효한 여권, 여권용 사진 1장, 왕복항공권, 출장증명서, 보증인의 인적사항


지역에 따른 차이는 있지만 연평균 26℃,연평균 습도 77%로 열대성 기후. 우기와 건기로 나뉜다.
* 3월~5월: 22℃~32℃,덥고 건조하다. 선글라스나 모자를 준비한다.
* 6월~10월: 우기. 우산 또는 우비를 준비한다.
* 11월~2월: 22℃~28℃로 쾌적한 날씨




▶ 다바오

필리핀 민다나오 섬 남동부에 위치한 다바오만(Davao Gulf) 안쪽 끝부분의 다바오강(Davao River) 어귀에 자리잡고 있는 도시이다. 민다나오 섬 남동부의 중심지로서 다바오시에는 약 50개의 작은 항구가 있으며,필리핀에서 가장 높은 산인 약 3,000m의 아포산(Mount Apo)이 있다. 다바오시는 국제적인 항구 도시로서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들을 거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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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7년에 시가 된 다바오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가운데 하나로서,도심을 벗어난 대부분의 지역이 농촌이지만 주변 지역의 상업 및 행정업무의 중심지로서 국제공항과 간선도로를 갖추고 있다. 파키푸탄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앞바다에는 관광휴양지로서 유명한 사말섬(Samal Island)이 있으며,그 외에도 많은 아름다운 해변과 섬,리조트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부아노(Cebuano)어를 사용하지만 영어와 필리핀어(Filipino)도 많이 사용하며,교육이나 사업을 위해서는 영어를 사용한다.

필리핀 민다나오 섬 남동부,동쪽으로 다바오만(Davao Gulf)을 끼고 다바오강(Davao River) 어귀에 위치해 있으며,1995년 기준으로 인구 약 120만명이다. 도시의 면적으로 볼 때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중의 하나로서 약 2,212㎢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데,그 중 약 10%정도만이 도심지역이고 나머지는 산림이나 농경지이다. 인구밀도는 1㎢ 당 약 362명 정도이다.


교육
1946년에 설립된 민다나오 대학교(University of Mindanao)와 여러 개의 단과대학 및 사설교육기관이 있는데,주요한 교육기관으로는 다바오 의사 대학(Davao Doctors College),AMA 컴퓨터 대학(AMA Computer College),브로큰시어 대학(Brokenshire College),다바오 의료 교육기관(Davao Medical School Foundation),산 페드로 대학(San Pedro College) 등이 있다. 대학들의 전공은 주로 의료나 컴퓨터 테크놀러지 쪽이 많이 있다.


산업
국제적인 항구도시인 다바오는 민다나오(Mindanao)의 상업,산업,농업의 중심지로서 인근의 농촌지역에서 생산되는 천연섬유 마닐라삼을 비롯하여 코프라(copra),옥수수,쌀,바나나 등을 수출한다. 농업과 수산업이 주요한 산업이며,목재가공과 광업도 성장하고 있는 산업으로서 다바오시의 주요한 생산물로서는 마닐라삼,섬유,시멘트,합판 등이 있다. 코코넛과 쌀이 주요한 생산 작물이며,그 외에도 많은 작물 및 과일,독특한 야생란 등 무수히 많은 생산물이 있다.




▶ 마닐라 [Manila]

"메트로 마닐라"라고도 불리는 마닐라는 루손섬 남서부에 있는 필리핀의 주요 도시이자 수도이다. 마닐라가 "메트로 마닐라"로 불리는 이유는 하나의 행정 단위로 볼 때 메트로 마닐라가 공식 명칭이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서울과 수도권 도시들이 인접해 있는 것과 비슷하다. 7개의 도시와 10개의 자치구로 구성되어있는 마닐라는 6백 30평방 킬로미터의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마닐라"라는 어원은 마닐라를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흐르는 파시그 강에 피어있던"니라도라"라는 꽃이름에서 유래되어 "니라도라 꽃이 많이 피어있는 곳"이란 뜻을 가진 말이라고 한다.

또한 천연의 항구 마닐라만의 동해안에 위치하는 대도시 마닐라는 필리핀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로 아시아의 모든 도시 가운데서 가장 활기차고 유럽적인 도시의 하나이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좋은 항만으로 일컬어지는 마닐라만에 임한 항구도시로,시가지는 파시그강을 끼고 그 남북으로 펼쳐진다. 마닐라항은 파시그 강 하구를 사이에 두고 북항과 남항으러 나뉘며,내항선광 외항선이 접안한다. 북쪽에는 비옥한 중부의 루손 평야를,남쪽에는 남부 루손의 화산성 저지를 끼고 있다.

마닐라를 주변으로 한 수도권 인구수는 1200만명이 넘을 만큼 대도시이지만,빈부의 격차가 아주심하다. 호화로운 고층빌딩과 주택가가 있는가 하면,동양에서 가장 못사는 사람들이 사는 빈민층의 슬럼가도 있다. 한마디로 마닐라에서는 필리핀의 천태만상을 다 볼 수 있다. 허나 이러한 것 또한 생동감 넘치는 도시라 생각하면 나름대로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닐라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파괴되고 나서 재건한 뒤로 아주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출판 및 인쇄업,식품가공업을 비롯해서 섬유,페인트,약품,알루미늄 제품,밧줄,구두,담배,코코넛 기름,비누,목재 생산과 같은 재조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필리핀의 상업과 재정중심지로서 여러 주요 은행과 정부 또는 개인이 운영하는 보험회사들의 본부,마닐라 증권거래소 등이 있다. 마닐라는 유흥산업 또한 발달된 곳으로써 밤의 도시로 불리기도 한다.

그 밖에 건축 양식은 미국,스페인,중국,말레이시아에서 영향을 받은 흔적이 보이는데,대표적으로 산미구엘 지역에 대통령 관저인 말라카낭 궁이 있으며,인트라무로스는 16세기 건물인 산아구스틴 교회를 비롯한 역사적 유적으로 유명하다.


교육
마닐라에는 법학,의학,컴퓨터계열,토목공학,회계,경영,종교신학,산업디자인,치대,약대 등등 인문계열이나 자연계열 할 것 없이 갖가지 학과에 대하여 뛰어난 대학교가 많이 있다. 특히 법학과 컴퓨터계열은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최고 상류층대학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렇듯 뛰어난 실력과,뛰어난 시설들을 갖추고 있어 우리 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유학을 가는 편이다.

그중 대표적인 대학으로 UNIVERSITY OF THE PHILIPPINES(U P)가 있다. 주요학과는 법학,경영,경제,교육,문학,공학계열,컴퓨터,의대,치대,간호,철학,수의학,농학 등 거의 모든 학과를 개설하고 있으며,필리핀 최대 최고 국립대학으로 외국인을 위한 영어연수 과정이 개설 되어 있다. 학교가 무척 방대해서 학교내에 대중교통이 운행되고,분교가 있다. 입학할려면 필수적으로 학교자체에서 인텐시브 코스(A,B,C,D 코스)를 수료해야한다. 다음으로 ATENEO DE MANILA UNIVERSITY(A D M N)을 들 수 있다. 주요학과는 법학,경영,경제,철학,인문자연학,컴퓨터계열이다. 필리핀 최고의 상류층대학으로 법학,수학,컴퓨터분야에 필리핀내 최고이다. 필리핀 영웅 호세리살도 이곳 출신이다. 이 밖에도 아테네오 대학교와 함께 최고 상류층대학으로 경상대 및 컴퓨터계열 최고수준이라는 DE LA SALLE UNIVERSITY(D L S U),그리고 한국인 교수가 한국어를 강의 한다는 ADAMSON UNIVERSITY(A U),등등 여러가지 특징 있는 대학이 많이 있다.


산업
마닐라는 쌀,육두,금이 특산물이므로 그에따른 종류의 일을 하고 있다.

고온 다습한 아열대성기후로서 우기(6~11월)와 건기(12~5월)로 나뉘어지며,1년 내내 약 27℃로 거의 일정하다.

깔라타간 골프클럽 I 리베라 골프클럽 I 빌라모아 컨트리 클럽 I 이글 릿지 I 타트 필리피나스




▶ 바기오

바기오는 필리핀의 세 개의 섬 중 하나인 북쪽의 루존 섬 뱅게트주의 도시이고 수도인 마닐라로부터 북쪽으로 2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인구는 25만 명 정도이다. 세계8대 불가사이중의 하나인 '라이스테라스'가 있다. 이곳은 보라카이섬과 함께 필리핀의 휴양지로서 세계에 가장 널리 알려진 휴양지이다.

이 도시는 해발 1600m에 자리잡고 있는 고산도시로 항상 서늘한 기후를 지니고 있다. 필린핀의 평균 기온이 30도 이상인 것을 가만하면 이곳은 가장 더울 때도 26도를 넘기지 않고 여름에도 평균 20도 정도이다. 실제로 항상 더운 필리핀에서 여름에 유일하게 봄을 느끼고 서늘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이 곳 밖에 없다. 따라서 휴양지로써 필리핀 사람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곳이 이 바기오이고,한국에서 신혼 여행을 갈 때 제주도로 많이 가는 것처럼 필리핀 사람들이 신혼여행을 가장 많이 가는 곳이 바로 바기오이다.

바기오는 그 날씨 탓으로 인하여 주변 환경도 일반 필리핀 도시와는 매우 다르다. 우리 한국의 봄과 가을에 가까운 날씨로 인하여 여러 온대 꽃이 많이 피어있고 소나무 숲이 울창하게 이루어져 있다. 또한 쾌적한 날씨로 인하여 공부하기 매우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곳은 많은 대학들이 있고 또한 외국에서 그리고 현지에서 어학연수를 받기 위해 이곳에 많이 온다. 시내중심부는 외국인들과 학생들이 유난히 많다. 그러나 이곳이 고산 지대이기 때문에 얼마동안은 고산병을 앓기도 한다.

바기오를 또한 '여름의 수도'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필리핀 정부가 과거에 미국 식민지 시대부터 여름에만 정부기관과 바기오로 옮겨서 정부 행정을 바기오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닐라가 1976년부터 연중 내내 수도로 자리잡게 되어 지금은 여름에 공식적인 수도로인정하진 않는다.
바기오는 필리핀의 세 개 섬 중 하나인 북쪽에 있는 루손 섬 뱅게트 주에 위치하고 있다. 필리핀의 수도인 마닐라로부터 약 북쪽으로 25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이곳의 인구는 매년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교육환경이 좋기 때문에 유학생들도 많이 오고 그밖에 휴양지로써의 여러 산업과 관련하여 계속 발전하고 있는 추세로 많이 이주해 오고 있다,1989년에는 18만 명이던 것이 1993년에는 20만 명이 넘었고 지금(2000)은 약 25만 명 정도이다. 여기에 한인은 약 1000여명이 거주하고 있고 유학생은 약 300명 정도 있다.


교육
'교육의 도시'라고 불리는 바기오에는 이 이름에 걸맞게 공부하기에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많은 교육기관 특히 대학들이 있다. 필리핀에서도 유명한 대학들이 이곳에 즐비해 있는데 대표적인 곳으로써 UP(University Of Philippines College Baguio),UB(University Of baguio),BCU(Baguio Colleges Foundation),SLU(St.Souis University),파인스 의과 대학(Pines City Doctor's School),필리핀 사관 학교(PMA) 등이 있고 이외에도 많은 대학들이 있다.


산업
바기오는 여러 금은광산이 많아 채굴이 한창이고 중부 루손 평야와 바기오 고원을 잇는 간선도로가 지나고 동쪽 교외 아그노강 상류에는 수력 발전소가 있어 공업에 큰 역할을 한다.




▶ 바탕가스

필리핀의 루손섬(Luzon Island) 남부에 있는 바탕가스 반도의 자치시로서 서쪽으로는 남중국해(South China Sea)가 있으며,남쪽으로는 베르데섬(Verde Island)이 있다. 그리고 동쪽으로는 퀴존(Quezon)과 라구나(Laguna)과 접해있으며,북쪽으로는 카비트(Cavite)와 라구나(Laguna)와 접해 있는 자치시이다. 지형은 완만한 편으로서 전체 토지의 절반정도가 경사 약 15도 이하이며,그 외에는 산과 언덕으로 되어 있다.

바탕가스는 필리핀의 주요한 민족주의자들의 출생지로서도 잘 알려져 있으며,고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도시 중의 하나이다. 또한 필리핀에서 주요한 커피 생산지로서 필리핀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 중의 하나이며,다이빙의 명소이기도 하다. 바탕가스시에는 풍부한 자연자원과 아름다운 경관,수공예품,역사적인 기념물들이 있으며,마닐라(Manila)까지 연결되는 주도로가 있어 주요한 관광목적지이다.

마닐라시(Metro Manila)에서 바탕가스까지 이어지는 42㎞의 남루손 고속도로(South Luzon Expressway)가 있어 바탕가스시의 시외 교통은 매우 편리하다. 지프니(jeepney),트라이시클,버스 등은 인근 지역의 도시와 바탕가스시 사이를 운행하고 있으며,특히 지프니와 트라이시클은 렌트할 수 있다. 또한 섬지방으로는 배를 이용하여 오갈 수 있다.

바탕가스의 땅은 기름진 화산성 토양으로서 농업이 주요한 산업이다. 바탕가스의 주요한 생산작물로는 쌀,사탕수수,코코넛 등이 있으며,바탕가스는 또한 질 좋은 쇠고기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농업 이외에 어업 및 정유업과 식품가공업 등이 시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있는 산업으로서 대규모 정유공장이 있다.




▶ 보라카이

보라카이 섬은 필리핀 중서부에 있는 파나이 섬 북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그곳은 "마지막 남은 천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때묻지 않고 매우 아름답고 환상적인 경관이 어우러진 휴양지이다. 작은 섬이지만 32여 개의 서로 다른 비치와 많은 관광 명소가 있다. 이곳은 원래 일부 여행객들만의 휴양지로써 알려지지 않다가 지금은 많이 개발되고 알려져 신혼여행뿐만 아니라 유명한 휴양지로써 자리잡고 있다. 보라카이 섬의 특징 중 가장 자랑할 만한 것은 아름다운 바다와 눈처럼 곱고 깨끗한 백사장이다. 보라카이 섬의 주변의 바다는 다섯 가지 색깔로 때에 따라 바뀌는데 근거리에서 먼 곳으로 나가면서 투명한 물빛에서 옥색,에머랄드 색,형광색,잉크색으로 변한다. 그 경관이 환상적이라서 보는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고 딴 세계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보라카이의 백사장은 매우 독특한데 그곳의 해변가는 모레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곳은 매우 하얗고 부드러운 산호가루로 이루어져 있다. 눈처럼 희고 부드러운 백사장 위를 걷노라면 그 아름다운 환상에 빠지는 것 같다. 이러한 해변 가의 장점 때문에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세계3대 해변으로 손꼽히고 있다.

보라카이 섬은 그 주변의 바닷물이 너무 깨끗해서 수십 미터 아래의 물고기가 보일 정도이다. 또한 이곳 주변의 날씨가 연중 내내 일정하고 거센 파도도 불지 않기 때문에 스쿠버 다이빙,수상스키,윈드 서핑,보트 투어,세일링 등의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레저 스포츠의 낙원이다. 이곳에서 이러한 스포츠를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 보라카이 섬에 찾아오는 관광객은 매년 7만 명 정도 된다. 보라카이 섬이 가지고 있는 자연환경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옴에 따라 조금씩 훼손되고 있다. 따라서 이 곳을 관리하는 곳에서는 자연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행하고 있다. 우선 건물 높이를 그 주변의 코코넛 나무 이상으로 높게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또한 파도가 올라오는 300미터 주변에는 건물을 짓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섬내의 교통 수단으로는 매연이 없는 무동력 트라이시클만을 이용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른 측면에서의 환경보호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크다.

보라카이는 가로가 7킬로미터 세로가 약 2킬로미터 정도 되는 작은 섬이다. 따라서 섬 전체의 길이가 한 14킬로미터 정도뿐이 안되고 걸어서도 한 20분이면 섬을 횡단할 수 있다. 이 중 거의4킬로미터에 달하는 넓고 긴 화이트 비치는 세계 3대 해변으로 꼽히고 있는 이유가 된다. 이처럼 작은 섬이지만 수 많은 리조트와 관광명소가 있다. 리조트의 수는 한 300여개가 되는데 각각의 곳에서 밤마다 혹은 특정일 마다 행사를 열기 때문에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또한 관광객들이 즐길 수 있는 여러 이벤트가 거의 매일 각각의 리조트에서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즐길 거리가 매우 많다.

보라카이에서 반드시 해야 할 것 중의 하나는 코코넛 맛자시이다. 현지 여인들이 직접 해주는 이 맛사지를 하고 나면 온 몸의 피로가 한번에 가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젊은이 들이라면 한 번쯤은 스쿠버 다이빙을 해보는 것이 좋다. 이곳은 바람이 약하고 연중 내내 일기가 좋아서 스쿠버 다이빙을 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고 전 세계에서도 잘 알려져 있으며 초보자뿐만 아니라 전문가들도 스쿠버 다이빙을 하기에 매우 좋다. 또한 이곳에서는 18개 홀을 갖춘 골프장도 있기 때문에 시원하고 깨끗한 바다를 보면서 골프를 치는 맛을 느끼기 위해서 세계 전역에서 사람들이 골프를 치러 오기도 한다. 그리고 이곳의 달리 빠빠라는 재래시장을 가보면 현지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고 여러 가지 이곳의 풍취가 물씬 풍겨나는 장식품들을 살 수 있어 관광객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

보라카이의 상주인구는 약 1만명이고 필리핀 파나이 섬 북서쪽에 있는 섬으로 세로 길이가 7킬로미터 가로의 길이가 1킬로미터 밖에 안돼는 작고 길죽한 섬으로 길게 뻗어 있다. 섬의 총 면적은 1032ha이며 섬의 전체 길이는 약 12킬로미터정도 된다.


산업
이곳의 산업은 거의 다 관광 개발지로써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다른 것은 없고 그 중에서도 해양 리조트와 다이빙 포인트가 매우 성황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숙박업과 음식업이 발달해 있다.


기타
이곳에서는 자동차를 이용할 수도 없고 오직 섬 내의 교통 수단은 무동력 트라이씨클이다. 화이트 비치를 따라 있는 비치로드에서 이것을 탈 수 있고 트라이씨클은 주변 리조트에서 빌릴 수 있다.


관광제안
보라카이 섬에서는 이곳 저곳이 구경할 대가 참으로 많다. 우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담고 있는 동굴이나 섬을 구경할 수 있고 또한 해안들마다 특징이 있기 때문에 많은 비치들 하나 하나가 명소로 불린다. 여러 비치들 중 유명한 곳은 푸카쉘 비치와 화이트 비치다. 푸카쉘 비치는 예쁜 조개가 매우 많고 또한 그곳은 매우 조용해서 가게와 식당이 하나밖에 없는 곳이다. 섬 중에서는 로렐 섬이 유명한데 여기는 보라카이 섬의 남단에 위치한 아주 작은 섬으로 입장료 20페소를 내고 들어가면 화산섬의 특징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섬의 북단 쪽에 가면 동굴이 있는데 대표적인 곳이 크리스탈 동굴하고 박쥐 동굴이다. 박쥐 동굴에는 길이가 최고 1m에 이르는 박쥐가 있다. 크리스탈 동굴에는 바닥에 반짝이는 어떤 바위가 있는데 잘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박쥐 동굴 언덕 위에는 조가비 박물관이라는 작은 박물관이 있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조가비 컬렉션이 있고,필리핀 소수민족의 복장,장신구,항아리 등이 진열되어 있다. 또한 화이트 비치에 있는 비치로드도 꼭 가 볼만한 곳으로써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 모습을 감상하면서 걸어 다닐 수 있다.


여행상식
보라카이에서는 밤과 낮에 느끼는 풍경이 전혀 다르다. 낮에는 아름다운 바다와 해변을 보고 비치들을 돌아다니는 것이 매우 좋다고 하지만 밤에는 쏟아질 것 같은 별이 떠있는 밤하늘을 볼 수 있고 또한 아주 흥겨운 분위기의 축제와 행사가 여기저기에서 열리기 때문에 낮에는 느끼지 못했던 독특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따라서 보라카이에서는 밤을 한번쯤은 꼭 새볼 필요가 있다. 또한 저녁 시간에 맞추어 각 레스토랑마다 독특하고 다양한 메뉴를 즐길 수 있고 가격도 할인되는 시간이 따로 있어서 그 시간을 안다면 싸게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다. 맥주의 가격은 밤이 되면 반으로 떨어지는 것이 상례다.



즐길거리
즐길거리/활동거리 1
스노클링(스쿠버)는 보라카이에서 즐기는 수상 스포츠는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바다 속의 산호초 숲과 온갖 색을 이루는 열대어를 관찰할 수 있는 스노클링이 바로 그것인데 이 스포츠는 수영을 못하는 사람도 몇 분 간 지도만 받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해변 가까이 얕은 바다에 산호초가 자라므로 먼바다까지 나갈 필요가 없어서 저렴하고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 하루에 대여료는 약 200페소 정도 된다.

즐길거리/활동거리 2
다이빙은보라카이에 온 사람이 반드시 한번은 해보아야 할 스포츠는 바로 다이빙이다. 보라카이는 세계적으로 다이빙 코스로 유명하다. 섬 주변의 환경 때문인데 아주 맑고 깨끗한 바다와 아름다운 산호가 풍부한 보라카이의 바다에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연중 내내 이곳에서 다이빙을 즐길 수 있고 지도를 받을 때 개인지도를 받으며 누구나가 쉽게 자격증을 딸 수 있는 체계도 잘 마련되어 있고 또한 가격도 싸므로 다이빙을 배우기에 완벽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섬 주변의 바다만 조금만 벗어나도 아름다운 바다 속 환경들,산호와 열대어들을 볼 수 있어서 한 번 쯤 전해 볼만하다. 이런 스포츠 외에도 거의 모든 수상 스포츠를 이곳에서 즐길 수 있다. 또한 수상 스포츠 외에 골프나 승마 양궁,자전거 타기,테니스 등도 즐길 수 있다.

즐길거리/활동거리 3
호핑투어는 15-20인승의 방카를 타고 4시간 정도 아기자기한 주변 섬 관광을 하고 일주 및,바다 속 화려한 비경을 눈으로 확인하기에 적합한 스노클링 ,낚시를 포함한 여러 활동을 하는 투어다. 섬일주는 코랄비치 ,악어 섬 등을 포함하며 깨끗한 모래사장과 아름다운 경치를 관광하며 바다 한 가운데서 열대어들을 낚시 할 수도 있다. 그리고 푸카셀 비치와 박쥐 동굴,조가비 박물관 등을 관람한다. 요금은 한 500페소 정도이다. 그리고 또한 이곳에서는 현지 여인들로부터의 코코넛 오일 맛사지,통돼지 바베큐,오토바이 섬 일주,자전거 시티 투어 등을 즐길 수 있다.

라스 브리사스 리조트




▶ 세부 [Cebu]

마닐라 동남쪽에 있는 세부는 필리핀 군도의 거의 중앙에 위치하고,필리핀 유일의 리조트 아일랜드로서 알려져 있다.1521년 마젤란이 필리핀 상륙시 첫발을 기록한성으로 세부의 도신느 필리핀 최고의 도시이며,'퀸시티'라 불리고 있다. 세부지역의 해안선을 따라 수많은 휴양지가 들어서 있는데,그 중에서도 막탄섬은 휴양시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다.

마닐라 동남쪽 560km로 비사야 섬들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세부는 길이가 300km로 인구 약 250만명이고,서쪽으로 네그로스섬과 동쪽으로 보홀섬을 두고 있으며,크고 작은 167개의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면적은 4,411㎢이다.

산업
필리핀의 내항선과 외항선의 기항지로서 산물의 집산과 거래가 성하며,코코야자,마닐라삼,사탕수수 등 주요 농산물의 수출항으로 발전하였으며,근래에는 공업 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샹그릴라 리조트 I 세부컨트리클럽 I 스쿠버다이빙 I 알타비스타 골프 클럽 I 요트 아일랜드 호핑투어 I 제트스키 I 플렌테이션베이리조트 & 스파 I 힐튼리조트




▶ 수빅

미군의 해외 최대의 해군기지가 위치했던 곳으로 동양의 캘리포니아라 불리울만큼 다양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이 기지 터는 필리핀에 반환된 뒤 일반에 공개되고 리조트로 다시 조성되고 있는 곳으로 지금도 이곳에는 미군 시설로 사용되었던 사무실 건물과 점보기도 이착륙할 수 있는 공항 등이 남아 있다.특히 클락의 유일한 단점인 바다가 없다는 것을 커버한 지역으로 수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어 필리핀 정부에서 주력으로 개발해 나가고 있는 지역입니다.




▶ 엘리도

마닐라에서 남서쪽으로 약 430km쯤 떨어져 있다. 엘리도(El Nido)란 이름은 스페인어로 '제비가 있는 섬'을 뜻한다고 하는데,옛날에 스페인의 모험가들이 이 곳을 방문하여 제비가 대리석 섬들 사이를 날고 있는 것을 보고 엘리도라고 붙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뒤로는 아무도 이곳을 방문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 요리 가운데서 특히,고급요리로 알려져 있는 제비집스프의 제료인 제비집을 구하기 위해 중국인 들이 이곳을 찾았으나,제비집이 비싸게 팔리기 때문에 이곳을 아는 상인들은 절대 다른사람들에게 이곳을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 덕택일까,엘리도는 사람의 손으로부터 보호될 수 있었으며,자연의 아름다움을 한껏 발휘할 수 있었다.

또한,엘리도의 석회석 절벽은 약 2억 5천만년 동안 형성되어온 것으로 다른 어떤 곳에서도 이같은 모습은 볼 수 없다고 한다. 석회석 절벽에는 크고 작은 구멍들을 볼 수 있는데,이것은 동굴들의 입구로서 수천년 동안 빗물이 스며들면서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엘리도의 석회석 절벽 가까이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어류와 산호초,바다 거북이가 살고 있으며,다양한 해초가 살고 있다. 뿐만아니라,돌고래와 고래,상어 등도 발견되며,망그로 숲에는 1백여종이 넘는 조류가 서식 하고 있다.

엘리도는 신의 섬인 미니록섬과 태양의 섬인 팡갈루시안 섬과 라겐섬이 대표적이다. 흔히 엘리도 하면 이 세 섬을 말하는 것이다. 다른 섬은 리조트가 개설되어 있지 않고 그의 무인도라고 할 수 있다. 미니록섬,팡갈루섬,라겐섬 중 어느 섬이 제일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각 섬마다 제각기 빼어난 리조트와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어느 섬에 들어가든지 현지 종업원들의 진실어린 친절을 받을 수 있다. 물론 팀은 절대로 받지 않으며,만약 팁을 주려 했다간 부끄러움을 당할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그들은 손님들의 미소만이 자기들에게 있어서 최대의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그 밖에 엘리도의 바쿠잇 만(Bacuit Bay)에서 북서쪽 남지나해(South Sea)쪽으로 수 많은 천혜의 섬들이 있는데 이 지역은 엘니도 해양 보호구역(EMRA:El Nido Marine Reserved Area)으로 지정되어 있어 일반인은 절대 들어갈수 없다. 그러나 이중 몇몇 섬들은 최근 리조트로 개발되고 있는데 모두가 철저히 자연보호를 우선으로 할 뿐만아니라,특별법에 따라 어떠한 상업목적의 행위도 금지되고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귀중함 때문에 엘리도는 장기여행 자들에게 비경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 뿐 아니라,다이빙 명소로서 새로운 엘리도의 매력이 소개됨으로 일반 여행자들과 함께 배낭 여행자들도 엘리도를 방문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그러나 교통수단이 불편하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비경으로 알려진 지금도 여행자들이 동경하는 것에 비해 여행객수가 매우 적은 편이다. 어쨌든,태양의 빛을 받아 번뜩이는 대리석의 모습을 비추는 푸른바다와 소박하고 친절한 사람들 등 엘리도는 팔라완 섬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섬이다.




▶ 이사벨

마닐라의 남서쪽에 위치해 있는 이사벨섬은 클럽노아 리조트로 최근에 한국시장에 많이 알려지면서 휴양지로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인공적인 멋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곳,자연과 인간이 동화되어 평화롭고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어 내는 곳,이 곳이 바로 그런 곳이다. 깍아 세운듯한 바위산에다가 녹음이 아름다운 이사벨섬이 물 위에 떠있는 모습은 그림을 그려놓은듯한 착각을 할 정도이다.

이사벨섬이 클럽 노아 이사벨이라로 불리는 이유는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처럼 모든 생명체들의 피난처가 되고 이세상의 유토피아를 실현하고자 한다는 의미에서 클럽 노아 이사벨이라 불린다. 또한 클럽 노아는 자연과의 교감을 꿈꾸는 사람을 위하여 언제까지나 존재한다는 모토를 가지고 '노아의 방주'라는 특이한 경영철학을 가지고 있다. 이 지역 뱃사공들이 그들의 배를 가리켜 천국으로 가는 '노아의 방주'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클럽 노아 이사벨에서는 노아의 방주에서처럼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 사람을 포함한 여러 동물과 식물들이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다. 초가지붕의 소박한 방갈로 밑에서는 수많은 줄무늬 물고기들이 노닐고 있고,해변에는 장난기 많은 수달과 사향 고양이가 뛰놀고 있으며,별빛이 빛나는 한밤중에는 풀벌레들이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검정 대리석 절벽에는 보겐빌리와 하이비스가 온 리조트를 만개하고 있다. 이 밖에 리조트 주위의 작은 섬들은 아직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평화롭게 존재하고 있다.

또한,섬내에는 모든 레포츠와 여가 활동을 할 수 있는 시설들을 갖추고 있다. 다이빙,윈드서핑,카약,사이클링을 비롯하여 별 관찰이나 하이킹,그리고 캠프 등과 같은 자연과 어울릴 수 있는 여러가지 메뉴가 풍부하다. 클럽노아 리조트의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전망 역시 훌륭하며,식사 또한 매우 훌륭하여 한번 찾은 이들이 다시한번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신혼 여행객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으로 뽑히고 있다.

이 밖에 클럽노아 이사벨은 리조트의 수익의 10%를 환경 보호 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자연을 보존하기위해 완벽한 정수 및 정화조 시설을 가지고 있으며,바다 밑 생태계를 보존하기위해 스노클링이나 다이빙을 특정 지역에서만 할 수 있게 지정해 놓았다. 그리고 보트가 다니는 길을 따로 마련해 놓아 산호라든지 그 밖의 바다 생물이 훼손되지 않게 하고 있는 등 자연보호에 심여를 기울이고 있다.




▶ 잠보앙가

필리핀 민다나오섬(Mindanao Island) 남서부에 있는 잠보앙가 반도(Zamboanga Peninsula)의 최남단에 위치한 도시이다. 서쪽으로 술루해(Sulu Sea),동쪽으로 모로만(Moro Gulf),남쪽으로 바실란해협(Basilan Strait) 및 세레베스해(Celebes Sea)와 접경을 이루고 있는 번화한 항구도시로서 역사,문화,자연경관,경제적인 잠재력 등을 두루 갖추고 있는 곳이다.

잠보앙가시는 저지대의 산호초 해안으로 둘러싸여 있으며,내륙쪽으로 기복이 많은 낮은 언덕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필리핀 횡단 고속도로의 남쪽 맨 끝이며,커다란 항구가 있어 무역 및 교통의 중심지이다. 또한 잠보앙가시는 스페인풍의 건축물,각양 각색의 열대 꽃들,매력적인 해변 및 수중의 경치,무성한 산림 등으로 매우 아름다운 도시인데,특히 '꽃의 도시(City of Flowers)'라고 불릴 정도로 열대의 꽃들이 유명하다. 잠보앙가라는 지명은 '꽃이 있는 곳'이라는 뜻의 말레이어 잠방간(Jambangan)에서 유래하였다.

잠보앙가시는 민다나오섬(Mindanao Island) 북서부의 잠보앙가 반도(Zamboanga Peninsula)에 자리잡고 있으며,도시의 총 면적은 약 1,421㎢ 정도이다. 2000년을 기준으로 하여 도시의 인구는 약 866,390 명으로 추정되며,인구의 약 3/4이 크리스찬이다.


교육
잠보앙가에는 잠보앙가 국립대학(University of Zamboanga)을 비롯하여 여러 단과대학이 있다.


산업
잠보앙가 시는 민다나오섬(Mindanao Island) 남부의 무역 및 상업,교통의 중심지로서 고무,마호가니,마닐라삼,과일 등이 주요한 수출품이다. 또한 모로(Moro)족의 황동 및 청동제품 생산의 중심지이자 조개가 많이 생산되는 곳이다. 잠보앙가 시의 주요한 산업은 농업과 어업으로서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




▶ 팔라완

필리핀 남서부 끝에 있는 커다란 섬으로서 총 1768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팔라완섬은 필리핀 중에서 사람이 최초로 살았던 장소로 알려져 있으며,최근에는 필리핀의 자연환경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최고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남중국해(China Sea)와 술루해(Sulu Sea) 사이에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길다랗게 자리잡고 있으며,섬의 폭은 39㎞이고 섬에 길게 434㎞의 산맥이 있는 필리핀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다.

옛날에는 팔라완섬과 인도네시아의 보르네오 섬이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팔라완섬의 동식물은 필리핀의 다른 섬들보다는 오히려 보르네오섬(Borneo Island)과 더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불규칙적인 기다란 해안을 따라서는 산호초가 늘어서 있으며,수 없이 많은 작은 섬들이 있다. 또한 팔라완섬 주민들의 식량 대부분을 공급하고 있는 해안평야가 섬내에 띄엄띄엄 자리잡고 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팔라완섬에는 환경보전 및 보호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적용되고 있는데,산림보전을 위한 Bantay Gubat와 바다의 보전을 위한 Bantay Dagat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팔라완섬은 필리핀에서 섬의 면적 뿐만 아니라 보유한 자연자원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지역 중의 하나로서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한다. 팔라완섬의 관광객들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많은 사람들이 수상스포츠나 트레킹,산림탐험과 같은 활동을 위해 섬을 방문한다. 팔라완 섬에서 가장 큰 도시는 푸에르토 프린세사시(Puerto Princesa City)로서 동부 해안에 위치하고 있으며,시에는 주요한 항구와 무역 및 상업센터가 있다.

팔라완섬의 평지가 적고 열대다우림에 뒤덮힌 산림과 무수히 많은 섬과 해안가의 산호가 연출하는 자연환경 뿐만 아니라 소박한 주민들 또한 주요한 매력거리이다. 팔라완의 인구는 의외로 적어 70여 만명에 불과한데,서구화 되어버린 필리핀의 다른 도시 사람들에 비해 매우 여유있고 소박하다. 팔라완안 81가지 정도의 문화적인 부족들이 평화롭게 조화를 이뤄 살던 곳으로서 보르네오(Borneo),중국,중동의 영향을 많이 받은 문화를 가지고 있다. 진짜 필리핀을 체험하고자 한다면 팔라완섬이 최적의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산업
팔라완섬의 가장 중요한 산업은 농업과 어업으로서 주민들은 주로 화전을 일구며 생활하는데 주요한 농작물로서는 쌀,옥수수,콩,고구마 등을 재배하며,푸에르토 프린세사(Pueto Princesa)시와 타이타이(Taytay) 등지에서는 대규모 어업이 행해지고 있다. 팔라완의 어업은 필리핀에서 가장 큰 규모로서 국가내에서 소비되는 생선의 약 37%를 팔라완에서 생산한다. 또한 팔라완에서는 울창한 산림자원을 이용한 목재 및 목재를 이용한 가구,핸드백,바구니 등을 생산하며 수은,규산,크롬철광 등의 광물자원을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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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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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 7번째로 큰 나라인 파키스탄은 '신성한 나라'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으며,인도대륙 북서부에 있다. 수도는 이슬라마바드이며,남북길이 1,600km,동서길이는 880km이다. 서쪽은 이란,북쪽은 아프가니스탄,북동쪽은 중국,동쪽과 남동쪽은 인도,남쪽은 아라비아 해와 접해 있다. 면적은 약 796,095㎢(북동부 파키스탄령 잠무·카슈미르 지역 83,716㎢ 제외),인구 136,183,000 정도이다. 단,면적에서 파키스탄령 잠무·카슈미르 주민 390만 명,아프가니스탄 난민 120만 명은 제외한 것이다.

펀잡인은 인구의 56%를 차지하고 있으며 체격이 건장하고 활동적이어서 군과 관료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지아 전대통령과 나와즈 샤리프 총리는 펀잡주 출신이라고 전해진다. 과거 지아 대통령의 펀잡주 우선주의 통치 는 타지방과의 반목을 야기시켰을 뿐만 아니라 지역자치권 확대에도 장애가 되었으며,특히 베나지르 부토 출신지역인 신드지방은 펀잡인이 주도하고 있는 정부에 대해서 적대적 태도를 보여왔다. 또한,이곳의 신드인들은 손기술이 뛰어나 정교한 수공예품 생산에 능하고,발루치스탄지방에 거주하는 발루치인들은 단순 하고 정직하며 신앙심이 깊고 주로 유목생활을 한다.

세계 제2위의 고봉 K2(8,611m)를 비롯해서 5개의 8천미터급 고봉과 6∼7천미터급 고봉들이 즐비하다. 파키스탄의 주요 산들은 주로 북쪽 변두리에 몰려 있다. 동북쪽은 중국,인도와 각각 국경을 이루고 있는데,이 일대에 시아첸,발토로,비아포,히스파르의 4대 빙하가 있고 그 주변에 수많은 봉우리들이 산재해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바투라빙하 지역,후쉬계곡,그리고 카라코룸의 남쪽면에 펼쳐져 있다. 또한 비아포,히스파 빙하와 발티스탄,훈자 사이에는 등반 가능성이 높고 멋지고 흥미 진지한 봉들이 산악인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현재 파키스탄 지역은 인도,중국과의 국경분쟁으로 출입이 금지된 곳이 여러 곳 있다. 등반시즌은 5월에서 7월 하순까지를 하계로,그 이후부터는 동계로 규정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몇몇 부유층이 대부분의 농경지와 상업을 지배하고 있고,무제한적 인구증가,영토와 물의 부족,정부 수입의 40%이상을 군사비로 남용하고 있다. 아프간 전쟁과 그에 따른 난민,세계적으로 악영향을 끼치는 엄청난 부패상(BCCI은행의 붕괴) 등이 맞물려 경제가 불황 가운데 있다. 회교화 정책의 수행은 경제적 파탄을 불러올 수 있으며,실업율은 공식적으로는 3%이지만 실제로는 40%에 가깝다. 1인당 외채 $121이고,1인당 소득 $458에 달한다.
인도의 한 지역이었으나 1947년 영국에서 독립했으며 안정적이지 못한 편이다. 인도와 3차례의 전쟁을 치렀으며,어리숙한 문민정부와 독재적인 군사정권이 연이어졌다. 부정 선거로 베나지르 부토가 해임당한 이후,회교 극단주의자들의 권력이 강해졌다. 1974년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난민의 유입,회교 무장 게릴라 운동의 성장 등으로 파키스탄의 내부적인 불안정을 가중시켰고,경제 발전을 저해했으며 전반적인 분야에서 타격을 주고 있다.


항공
한국과 파키스탄 사이에 직항편은 없다. 일본에서는 파키스탄항공(PIA),일본항공(JAL),스위스항공(SWR) 등이 하루 1∼4편씩 직항편이 있다. 이밖에 방콕,델리,테헤란 등지에서도 항공편이 있다. 중국영공을 통과하는 루트를 택하면 히말라야의 설산과 광대한 중국대륙을 내려다 볼 수 있다.

국영 파키스탄항공(PIA)은 각 국내 및 국제항공노선을 운영하고 있다. PIA는 적극경영에 의한 고도성장으로 성공을 거듭하고 있고 여객수입,노선의 증가율은 국제항공수송협회(IATA) 평균을 대폭 상회해 PIA의 기적으로 불린다. 국제공항은 카라치,라호르,이슬라마바드에 있다. 주요 국제선은 카라치 경유로 되어 있지만 이슬라마바드에서 북경 경유 테헤란,런던,로마,코펜하겐 등으로 가는 노선도 있다. 또 라호르 및 카라치에서 뉴델리에 노선이 연결된다. 국내노선 주요 도시간에 다수 운항되고 있다. 카라치,라호르,이슬라마바드,페샤와르,궤타의 각 주요 공항간을 출발해서 카라치,모헨조다로,이슬라마바드에서 킬커타 및 스칼렛,페샤와르,치트랄로 가는 노선도 있다. 항공권의 예약은 Agent를 걸치는 것이 좋고 스스로 직접 항공 회사에 예약하는 것도 가능하다.


면적 : 79만 6095㎢

수도 : 이슬라마바드

인구 : 1억 4461만 7000명

정치형태 : 공화제


종교 : 약 97%의 국민이 이슬람교도이고 그 가운데 77%가 신니파,20%가 시아파이다.
이슬람교는 국교로서 사회문화는 물론 정치,경제,법률에까지 크게 영향을 미친다. 그밖에 힌두교도(1.5%),기독교인(1%)이 있다.


주요민족 : 인도 아리안계가 대종을 이루고 있으며,이외에도 드라비다족,희랍족,터키족,페르시아족,아랍족 및 모갈족 등이 있다.


주요언어 : 전국적으로 통용되는 공용어는 우르두어이지만,공공문서를 작성할 때는 모두 영어를 사용한다.
각 지방별 언어를 보면,펀잡어(펀잡지방),신드어(신드지방),발루치어(발루치 지방),세라이키어(뮬탄과 바하왈푸르 지방),파쉬토어(북서변경 지방) 등이 쓰인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파키스탄의 국어는 우르두(Urdu)어이고 비록 종족에 따라 모국어가 다를지라도 우르두어를 통해서 국민의 일체감을 갖는다.

기후
고온건조한 아열대기후로서 기온은 영하에서 50℃까지의 분포를 보인다. 대체로 3개의 계절로 구분가능하다. 12월~3월간은 비교적 건조하며,최저 4℃에서 최고 18℃의 차고 서늘한 기후이며 가장 좋은 계절이다.4월~6월간은 거조한 혹서기로서 낮 기온이 50℃까지 올라가기도 한다.(Jacobabad의 경우 최고 52℃를 기록)7월~11월간은 몬순기로서 비가 많이 오고 가끔 인더스강이 범람하기도 한다.(특히,7월 ~ 8월이 비가 많이 옴)

지리
한반도의 3배가 넘는 면적을 가진 파키스탄은 인도대륙 서쪽에,북동에서 남서방향으로 비스듬히 놓여 있으며 국토의 거의 중앙을 인더스강이 남북으로 관류한다. 인더스강의 중류에서 하류에 걸친 유역은 평야지대이지만,파미르고원을 중심으로 한 상류지역은 서쪽에 힌두쿠시·술라이만 양산맥,동쪽에 카라코람 산맥이 뻗어 세계의 지붕 일부를 이루고 있다. 남서부의 발루치스탄 지방은 약간 낮은 건조고원지대이고 나라의 심장부인 펀자브 지방은 인더스강의 지류(북쪽으로부터 젤룸·체납·라비·비아스·수틀레지의 여러 강)에 둘러싸인 충적평야이다. 인더스강 유역의 평지는 인도의 힌두스탄 평원에 필적할 만한 넓이를 가진다.
식생(植生)은 산악지방의 상록수림에서 저지(低地)로 갈수록 열대성 관목(灌木)으로 변하고 타르 사막에 가까워질수록 반사막(半砂漠)에서 사막으로 바뀐다.


역사
BC이전 역사 개요

기원전 2500∼1500년 경 고대문명 발생지의 하나인 인더스강 유역의 코트 디지(Kot Diji)에 고대인들이 정착하여 농경사회를 이루었다. 이들은 인더스문명을 이루었는데,대표적인 도시문화의 유적지로는 인더스강 상류의 펀잡지방의 하라파(Harappa)와 하류의 모헨조다로(Moenjodaro)의 유적이 특히 유명하다. 인더스문명은 약 500년쯤 지속하다가 기원전 1500년경 아리안(Aryan)족의 침입을 받고 멸망하였다. 이 아리안족은 중앙아시아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유럽계통의 종족으로 철제 무기를 사용하고 기마전술이 뛰어난 민족이었다. 아리안은 기원전 1700∼1800년경에 민족대이동을 시작하여 힌두쿠시산맥을 넘어 펀잡지방으로 내려와 현재의 인더스 평원인 샤프타 신드후(Shapta Sindhu)지방에 정착하였다. 이 아리안민족이 원주민인 드라비다족의 문화를 흡수하여 오늘의 인도문명을 이루었다. 이들은 그 후 기원전 100년경에는 갠지스강 유역에까지 이동하여 원주민과 섞여 살면서 농경생활을 하였다. 이들의 종교는 다신교였는데 기원전 1,300년경에 그들이 숭배하는 신을 모두 베다(Veda)라는 성전을 만들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리그(Rig Veda)이다. 이들의 베다종교(Vedic religion)는 힌두교의 전신이 되었다. 또 아리안족은 정복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엄격한 노동신분을 구분하는 카스트(Caste)제도를 만들었다. 기원전 5세기경에 갠지스강유역에서 석가모니에 의해 불교가 발생했는데 석가모니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반대하는 하고 인류의 평등과 자비를 주장하였다. 이리하여 대중의 환영과 지지를 받은 불교는 급속도로 발전하였고,오늘날 동남아시아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갠지스강과 이란고원 사이에 위치하고 있던 간다라왕국은 기원전 4세기에 마케돈 왕국의 알렉산더 대왕의 침략을 받았으며,이로 인해 불교문화가 헬레니즘문화가 혼합되면서 간다라 미술이라는 독특한 불교미술이 발생하였다. 간다라 왕국은 곧 마우리아왕조(BC 320∼180)에 의해 정복되었지만,그 미술양식은 이후의 쿠샨왕조(AD 78∼200)에 이르기까지 번성하였다.


AC 1년 - 1900년 까지의 역사

마우리아왕조
마우리아왕조는 북부인도 최초의 보편국가(universal state)로 인정되고 있으며 그 창건자인 마우리아(Chandragupta Mauria)의 손자인 아소카왕은 불교도였다. 페르시아는 인도를 침공한 최초의 외세였다. 기원전 6세기 말 경 페르시아제국의 다리우스 1세가 신드와 펀잡지역을 통치지역으로 삼았었 다. 이후 BC 327년에 알렉산더 대왕이 힌두쿠시(Hindu Kush)에 와서 패망한 페르시아제국의 잔존세력을 없앤 후 인도 서북부를 통해 베아스강까지 진격 하였다. 알렉산더 대왕은 기원전 326년에 전쟁수행능력의 저하로 인도침략을 중지 하고 회국(回國)하였다. 알렉산더 대왕이 이 지역에 온 기간이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부족들에게는 그들이 알렉산더 대왕과 그 군대의 후손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생생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알렉 산더의 침공후 인도 는 외침에 대한 민족적 정신의 부흥에 힘입어 서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으로 부터 동쪽으로는 벵골만에 이르는 북인도를 최초로 통일한 찬드라굽타의 마 우리아왕조가 건설되었다. 찬드라굽타의 손자인 아소카왕은 북부 펀잡지방인 인더스유역의 일부를 마 우리아왕조에 편입시켰고 인더스강 양편에 걸친 나머지 지역은 그의 통치지 역으로 포함되지 않았다. 현재 파키스탄이 상당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이 지역은 4세기 굽타왕조로부터 13세기 술탄왕조가 건설되기 전까 독립되어 있었다.
쿠샨왕조
후에 중국과 인도와 로마제국간에 유리한 무역을 하였던 실크로드의 전성 기가 도래하였는데,기원 후 1세기경 이란 계통의 민족 쿠샨인이 세운 왕조 인 쿠샨왕조는 실크로드의 중앙에 위치 있었으며 페샤와르(Peshawar)에 간다라왕국의 수도를 건설하였고 이를 중심으로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 는데,현재의 티벳지역과 소련의 파미르고원지역,중앙아시아,인더스강 및 갠지스강 유역 북부지방을 포함하고 있었다. AD 2세기까지 그 은 그들의 제국이 동쪽으로 이란에서부터 중국 변경지역까지 또한 남쪽으로는 겐지스 강까지 뻗어나가 그들의 세력이 최고조에 달하였다. 쿠샨왕조는 불교도였으며 카니시카왕 하에서 많은 절과 사리탑들을 지었 다. 곧 간다라는 무역 불교의 성지로서 종교연구와 순례여행의 장소가 되 었다. 그리고 그리스식의 불교미술인 간다라미술을 남겨놓은 것으로 유명하 다. 로마와 인도 및 중국을 연결하는 무역중심지로서 번성하였던 쿠샨왕조 는 4세기경에 결국 북쪽의 훈족과 남쪽의 굽타 조,서쪽 페르시아의 샤산 왕조에 의해 정복되었다.
굽타왕조
쿠샨왕조의 쇠퇴 후 북인도는 분열로 인한 혼란이 계속되던 중,4세기에 찬드라굽타 1세가 나타나 굽타왕조를 세웠다. 그리고 찬드라 굽타 2세때에 이르러서는 전 인도를 재통일하고 대제국을 건설하여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4∼7세기에 이르는 굽타왕조시대는 힌두문화의 고전적 시대로 불리고 있다. 높은 수준의 산스크리트 문학과 천문학,수학,의학 등의 발전과 더불어 예 술이 번성하였다. 또한 인도의 서사시인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가 이 때 편찬되었고,예술도 발달하여 순수한 인도의 특색을 갖춘 굽타양식이 발전하였다. 이러한 굽타양식은 아잔타 석굴사원의 벽화와 부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회는 보다 안정되고 계층화되 으며 엄격한 사회규범을 통해 신분과 직업을 구분하 였다. 반면에 타종족과 종교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하게 대응하면서 흡수,적용시켜 나갔다. 이러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굽타왕조는 6세기 이후 중앙아 시아의 유목민인 훈족에 의하여 붕괴되었다. 이는 지배계급의 폐쇄성,정치적 분열 및 전략적 무지 등에 기인한 것이었 다. 이때부터 브라만교의 세력이 강대해져서 마침내 힌두교가 출현하였다. 힌두교는 브라만교와 불교에 인도 원주민의 민간신앙을 결합한 종교로서,많은 신들 브라만·시바·비시누 등 세 신을 숭배하였다. 또 힌두교는 민중을 상대로 한 종교적 성격을 띄어,오늘날까지도 인도의 민족종교로써 기반을 굳히고 있다. 2-3. 이슬람의 출현 7세기에 예언자 무하마드에 의해 창시된 이슬 종교는 아랍부족들에게 통 일성과 함께 군사적 팽창을 위한 도덕적 열정을 부여하였다. 8세기말에 아 랍부족들은 북부 아프리카와 스페인,페르시아 및 중앙아시아로 진출하였 고,711년에는 파키스탄의 발루치스탄과 신드에 이르렀다. 이 시기의 이 람이 미친 주요 영향은 문화적,사상적인 것으로서 주로 교역과 선교사들의 역할에 의한 것이었다. 예언자 마호메트가 아라비아반도를 중심으로 이슬람 공동체를 건설한 후 회교권에서 인도로 건너온 사람들은 아라비아해안과 걸 프만의 상인들이었다. 인도에 첫 번째로 회교인이 정착한 해는 모하마드 빈 카심(Mohammad Bin Qasim)이 신드지방을 정복한 711년이었다. 그후 우마이 예드(Umayyed)와 연합한 회교 자치국가가 등장하여 현 파키스탄의 남부와 중앙부를 통치하면서 새로운 도시가 생 났고 아랍어가 공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회교 자치국가는 후에 아브바씨드 칼리프하데외 연합하였다. 인도는 6세기에 굽타왕조가 망한 뒤 8세기에 이르기까지 다시 분열되어 대 립하고 있었다. 10세기경 이슬람교도들이 대규모로 침입 왔는데,북인도 에 침입한 맘루크는 이 곳에 가즈니왕조를 세웠다. 가즈니(Ghazni)의 마흐무드의 침공시 무슬림의 통치는 미약하나마 물탄 (Mutan)과 그 외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중앙아시아 태생인 가즈나비 드(Ghaznavids,976∼1148)와 그 후계자인 가우리드(Ghaurids,1148∼1206) 는 현 파키스탄을 이루고 있는 대부분의 영토를 지배하였다. 12세기에 가즈 니 왕조에 예속되었던 아프간족은 가즈니 왕조에게서 펀잡지방을 빼앗고,차차 인도의 북부 및 중부에 침입하여 구르(Gur)왕조를 세웠다. 이리하여 북인도는 13세기초에 인도 왕국시대가 끝나고 이슬람 왕국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가즈나비드 시대부터 공용언어는 페르시아어에서 아랍어로 바뀌게 되었다. 이슬람은 정치,경제,종교 등에 영향을 미쳐 독특한 문화권을 형성하게...


국제전화
International Subscribers Dialling(ISD)라고 하는 다이얼 즉시 국제전화 System이 구성되어 제전화가 실시되고 있다. ISD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전화기로도 먼저 0102로 교환원을 호출하고 국명,상대방의 전화번호,전화하는 쪽의 전화번호,지명 Cord할 것인가 아닌가 통화시간을 전달하고 연결할 수 있다. 머지않아 이슬라마바드 근교에 제 2지상국이 개설되면 파키스탄의 국제전화 사정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우편
항공편은 대체로 5-7일 정도면 한국에 도착하는데 겉봉에 "Air Mail"과 "Korea"를 반드시 써야 한다. 최근들어 DHL와 OCS 등의 Mail-Service도 있지만 대단히 비싼가격으로 운영되고 있다. 외국에서의 소포우편은 세관에서 검사를 받은 뒤 배달하거나 우체국에 보관하게 된다. 내용물에 의한 수입허가증,또는 면세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더 이 CBR Boor의 보유자는 이것에 기제하여 두는 것에 의해 식료품류를 일정액의 테두리속에서 무관세로 통관할 수 있다. 특히 이슬라마바드의 세관은 엄격하게 규칙을 적용하고 있다. 즉 파키스탄에서는 합계 1만 2,116 개소(도시에 2,636,지방에 9,480)의 우체국이 있다.

유용한전화번호
주 파키스탄 회교공화국 대사관
-주 소 : Street 29,Block 13,Diplomatic enclave II,Islamabad,Pakistan
-전 화 : (92-51)279385∼7

주 카라치 분관
-주 소 : 23-Khyaban-e-Hafiz,Phase-V,Defence Housing Authority,Karachi,75650 Pakistan
-전 화 : (92-21) 585-3950/1

긴급연락처(경찰서,병원 등)
-경찰 긴급 : 15
-구급차 : 115
-무역관 : (카라치시) (92-21) 561-0219,561-1659
-한인회 : (카라치시) (92-21) 587-2411,454-9145,453-0484 (이슬라마바드시) (92-51) 810154,274902∼3


전압 및 주파수
220∼240V (또는 50/60 싸이클 AC)

치안
이슬라마바드의 치안은 파키스탄 가운데에서는 일반적으로 좋은 편이지만 만일 폭동,내란,지진,전쟁 등 전혀 예기치 못한 긴급사태가 발생한 경우 우선 신체의 안전을 도모한다. 부족의식에 의한 민족적 대립,이슬람교내부에 있어서의 종교적 대립 등도 있고 정정(政情)은 반드시 안정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러한 상황하에 서는 순간적으로 과격한 행동으로 치달을 수 있다. 특히 걸프전쟁후는 경제 불안과 더불어 반정부활동이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다. 이슬라마바드의 치안 은 내무부 직할의 수도권 경찰본부가 담당하고 있고 5,600명의 경찰관에 의 해 대략적으로 양호하게 유지되고 있다.(덧붙여 카라치는 인구 900만명에 대해 3,500명이 되고 있다.) 파키스탄은 열쇠에 의한 사회이다. 일반 가정에 있어서는 외출시에는 설령 경비원이 있더라도 중요한 것을 놓 아두는 방 및 집은 반드시 열쇠를 채우고 외출하는 것이 좋다. 다행히 지금 까지의 강도,절도,폭행 등을 당한 외국인 가정은 적다고 한다. 치안문제 에 있어서 일반적으로는 아프칸니스탄 문제와 관련해서 각 도시에서 발생하 는 폭탄소동에 대한 것이 더 걱정이다. 되 록 사람이 모인 노천시장 등은 가지 않는 것이 좋다. 또 역으로 사람이 없는 적막한 장소,특히 야간은 피 하는 편이 현명하다. 과거에 피해를 체험한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특별한 방범대책을 실시하 고 있는 가정은 그다지 많지 않다.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경비원이 방문자의 제 1접촉 자가 되고 있다. 또 주위에 개를 사육하는 경우도 많다. 야간은 조명을 켜 두고 침입하기 어렵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슬라마바드에서는 경비회사가 수십개사(Intor-Risk사,Shezada Security Services사 등)가 있고 월 40∼50만원 정도로 무장경비원을 파견하고 있다. 불가피하게 강도가 침입하면 가능한 한 가해자와의 직접적 접촉을 피하고 물품 등의 피해만으로 끝맺는 것이 중요하다. 피해가 있다면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피해 발생시에 연락전화 번호는 다음과 같다.
-이슬라마바드 긴급 전화 : 823333
-아파라경찰 전화 : 828265
-코사루경찰 전화 : 812393
-마루가라경찰 전화 : 850340


통화
루피
환율 : 64.10루피 = 1달러

한국으로 전화
국제회선이 부족하여 양호한 소통에 어려움이 있으며,국제전화 요금이 비싼편이다.
00+국가코드 이하 번호 - 공중전화가 발달되어 있지 않으며,카드식 공중전화가 일부 설치되어 있다.


현지로 전화
001-92-도시번호-현지전화번호


주의사항
외국인 금기사항
특이한 것은 없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인도의 영향으로 카스트사상이 의외로 뿌리 깊이 남겨져 있다. 마루에서 청소하는 것을 전적으로 맡는 사람이 있고 세탁하는 것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있다. 따라서 이방인이 청소와 세탁을 하고 있는 경우도 가끔 있다. 또 종교에 대한 비판과 정치,외교 비판은 회피하는 편이 좋다. 이슬람교도에 있어서 이슬람의 상징에 대해 머리를 숙여 머리의 정수리를 보이는 것은 좋지 않으며 둥근 모자 등을 쓰고서 정하여진 예배를 한다.

복장 및 의복 관련사항
지금까지는 양복이 파키스탄인 비지니스 표준적 스타일이었지만 최근 정부는 정부직원에게 민족의상을 입게 하도록 통달하고 있다. 이같이 파키스탄에서는 양복을 대신하여 민족의상이 급속도로 재평가되고 있다. 전통적인 민족의상은 샤와룰 카미즈라 불리고 즈봉이라는 완만한 상의와 스루를 조합시킨 것이다. 복장의 형태와 색,악세사리의 보석류는 지방에 따라 다르다. 파키스탄의 의복은 반드시 다리를 감싸도록 되어 있다. Short-Pants,몸에 달라붙는 드레스 등 살갗을 드러내 보이는 것은 품위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 남앞에서는 착용하여서는 안된다.

공항 내에서의 유의사항
파키스탄의 공항은 공군시설과 공용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불필요한 사진촬영은 오해를 일으키기 때문에 주위하는 것이 좋고 공항에 한정되지 않는 소매치기,사기 등에 주위를 요한다. 최근 공항의 비밀유지를 위한 공항건물의 마중행위를 대폭으로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처음 도착한 사람은 초조해 하지 말고 천천히 마중나온 사람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역으로 배웅하는 경우도 탑승자 이외는 공항건물에 들어가지 못하고 마중하는 사람을 위한 옥상지역도 폐쇄하고 있다.


비자
▣ 비자신청시 유의사항
90일 동안은 양국 사증면제 협정에 의해 무비자 입국 가능하다. 30일 이상 체류 희망자는 처음 입국일로부터 30일 이내에 경찰국(POLICE HEAD OFFICE)에 출두, 외국인 등록 증명서(Certificate of Registration Form B)를 받아야 한다. 또한 상기자는 출국시 다시 동 경찰국에 가서 "NO Objection Certificate(Travel permit)"을 받아야 한다.

▣ 비자신청시 구비서류
단수비자(90일 이내 체류)는 24시간내 발급 가능하다.
- 필요서류 : 비자발급 신청서 1부(사진 1장 포함), 여권, 방문목적과 관련된 관계 서류 일체.
- 발급비용 : 1350루피
복수비자(90일 이상 체류)는 본부의 승인 후 발급 가능
- 필요서류 및 발급비용 : 단수비자발급시와 동일
- 사증면제 체결 협정 국가의 신청자는 협정이 정하는 범위의 기간내비자 없이 한국 체류가능.
여행증명은 신청 당일 발급 가능
- 필요서류 : 신청서 1부, 신원확인서 3매(사진 3장 포함), 여권사본 1부, 여권용 사진 2장,증빙서류(여권의 분실 및 훼손시)
- 발급비용 : 3,015루피
- 공무 용건의 여권 발급은 한국에서 발급되는 관계로 신청후 통상 1-2개월 소요


고온건조한 아열대기후로서 기온은 영하에서 50℃까지의 분포를 보인다. 대체로 3개의 계절로 구분가능하다. 12월~3월간은 비교적 건조하며,최저 4℃에서 최고 18℃의 차고 서늘한 기후이며 가장 좋은 계절이다.4월~6월간은 거조한 혹서기로서 낮 기온이 50℃까지 올라가기도 한다.(Jacobabad의 경우 최고 52℃를 기록)7월~11월간은 몬순기로서 비가 많이 오고 가끔 인더스강이 범람하기도 한다.(특히,7월 ~ 8월이 비가 많이 옴)




▶ 라호르 [Lahore]

파키스탄 북동부에 있는 펀자브주(州)의 주도(州都)로 인구 약 295만(1981)명이다.
인더스강(江)의 지류 라비강 좌안 인더스평원에 위치한다. 무굴제국(帝國)시대에는 황족의 거처가 되면서 최성기를 맞이하여 많은 웅장하고도 화려한 건축물이 건조되었다. 시크왕국령(領) 때에는 왕도(王都)였으나,영국령이 된 이후 펀자브주의 주도가 되었다. 서부아시아와 인도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이며,파키스탄 철도망의 요지로,상업·금융 등 유통경제의 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면방적을 중심으로 제철·제강·제화·고무 등의 공업이 발달되어 있고,특히 전통적인 금·은 세공은 잘 알려져 있다. 주변 일대는 목화·밀·콩류·사탕수수 등 펀자브지방 농산물의 집산지이기도 하다. 델리·아그라 등과 함께 인도에 있어서 이슬람 지배의 중심지로서 12∼13세기 무렵부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특히 무굴제국의 자항기르·샤자한 양(兩)제왕시대의 성채와 샤리마르공원,자항기르와 그의 왕비 눌자한의 묘묘(墓廟) 등은 무굴제국 역사 제1급의 사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1882년에 건립된 파키스탄 최고(最古)·최대의 펀자브대학과 여러 단과대학 및 연구소가 있고,간다라와 무굴의 미술품을 수집한 라호르박물관이 있다. 또한 인도·카슈미르 등지와 가까운 위치에 있어 파키스탄 최대의 군사기지가 설치되어 있다. 유네스코의 세계유산목록에 수록되어 있다.
카라치에 이어 파키스탄 제2의 도시 라호르는 인구 217만 명의 대도시이다. 무굴 제국의 악바르 대제가 델리에서 이곳으로 수도를 옮긴 이래 인도 이슬람 양식의 건축물로 시가지가 장식되어 있는데다가,영국지배 당시의 빅토리아 양식의 건축물과 정원 등이 거리를 한결 아름답게 해놓았다.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인도와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는만큼,인도와의 연관성이 가장 두드러진 도시이기도 하다. 라호르는 크게 13개의 Gate로 대표되는 Old City 지역 및 그를 둘러싼 복잡한 구 도시지역과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상업 및 주거지역으로 구분됩니다. 라호르 Fort와 셰계에서 2번째로 큰 규모라는 Bad Shahi Mosque를 둘러 본 후,홍등가라는 Dansing Street를 통해서 Old City의 one of the 13 Gates로 들어가면 Old City의 적나라한 (?) 모습을 구경 할 수 있습니다. 박물관 Lahore Museum에는 Gandara 미술 중 최고의 걸작품으로 우리가 미술책에서 구경한 바 있는 Fasting Buddha를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단식으로 인하여 앙상하게 남아 있는 갈비뼈와 툭 튀어나온 핏줄 등을 실감있게 묘사하고 있는 조각입니다.) Museum앞의 도로 중간에는 1760년에 주조된 일명 Kim's Gun (Rudyard Kipling's Kim이 올라가 놀던 대포라고 하여)이라 불 리는 대포가 서 있는데 Zam-zama라고 하며,누구든 이 Zam-zama를 소유하는 자가 Punjab을 다스리게 된다는 속설이 있답니다. 그 앞으로는 Anarkali Bazzar(시장)가 위치해 있습니다. 엄청나게 번잡하지만 우리나라 남대문,동대문 시장처럼 도매로 물건을 살 수 있는 재미있는(?) 곳입니다. 복잡한 곳이지만 낭만이 서려 있는 곳이기에 소개를 드립니다. Anarkali라는 말은 '석류꽃'(Pomegranate Blossom)을 의미 하는데 Akbar대제의 아름다운 후궁이었답니다. 그런데 Akbar의 왕자 Salim과 연인 사이로 발전합니다. 어느 날 Akbar대제는 Anarkali가 Salim과 헤어져 나오는 것과 Salim이 미소를 짓는 것을 발견하고는 대노하여 Anarkali에게 극형을 처하여 그녀를 산채로 매장 시켜 버리고,두 사람의 사랑은 비극의 종말을 맞게 됩니다. 훗날 Jahangir대왕이 된 Salim이 그녀를 위하여 Taj Mahal의 전형(forerunner)라 할 수 있는 8각 dome형태의 tomb을 건설하고 그녀를 기리는 비탄의 시를 읊었다는 곳입니다.




▶ 이슬라마바드 [Islamabad]

이슬라마바드는 1959년에 파키스탄의 새로운 수도로 선정되어 계획도시로 발전했다. 이 도시는 도시조경이 양호하며 녹음이 푸르고 조용한 것이 특징이다. 위대한 지도자의 길(Khyaban-e-Quaid-e-Azam,파키스탄의 초대 대통령이자 건국영웅으로 불리우는 무하마드 알리 지나를 지칭한다)이라는 이름의 중심도로 양편은 상가 지역으로 "블루 에어리어(Blue Area)"라고 불린다. 이 양편으로 높은 건물이 조금 있고 정부기관과 각국 대사관을 비롯한 주택가와 상가지역이 네모 반듯한 구획안에 규모있게 자리잡고 있다. 한편으로 옛날부터 내륙교통과 상거래의 요지로 발전해 온 라왈핀디(Rawalpindi,현지인들은 종종 Pindi라고 줄여 부른다)의 구시가지가 접해있다. 인구 40만의 이슬라마바드와 100만의 라왈핀디는 같은 생활권으로 취급하며,Twin City로 지칭되기도 한다. 이 두 도시는 궁극적으로 하나의 광역 수도로 병합될 계획아래 건설이 지속되고 있다.
라왈핀디로부터 자동차로 20분가량 떨어진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는 전체적으로 계획적으로 세워진 수도들 중 희귀한 부류에 속한다. 몇 년 전만해도 침체되고 외진,평화로웠던 사이푸르(Saipur)의 마을이었던 이곳은 지금은 많은 현대식 빌딩과 수많은 가로수 길이 있다. 평온하고 조용한 느낌의 이슬라마바드에는 관광상품이 그리 잘 개발되지 않았지만 도시 근교에 볼만한 것들이 있다. 아쉬운 것은 조금 더 신경을 썼으면 훨씬 더 좋은 볼 거리를 제공하고 경제적인 상품으로 개발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것이다.
인구 40만(2000년)의 작은 도시로 네모 반듯한 구획으로 정리되어있기 때문에 길을 배우기에는 매우 쉽다. 북쪽으로는 마르갈라 산을 등지고 남쪽을 향해 도시가 세워져 있다. 각 섹터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면서 숫자가 커지도록 되어 있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면서 알파벳이 커지도록 되어 있다. 마스터 플랜에는 A섹터부터 표시되어 있으나 실제로 그 곳은 산지여서 아직 개발되어 있지 않으며 숫자 3이하,12 이상도 아직 개발되어 있지 않거나 일부 개발 중이다. 지도에서 오른쪽 위 방향(약 1시방향)이 북쪽이된다. 하지만 지리를 설명하는 내용에 있어서 북쪽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도상 오른쪽의 위쪽 구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윗부분을 의미한다. 동쪽이라고 함은 오른쪽,서쪽이라고 함은 왼쪽을 의미한다.
포트와르 고원,예전의 임시수도였던 라왈핀디 북동쪽 14㎞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옛 수도인 카라치가 수도로서 부적합하다는 판단에 따라 1959년 이곳으로 수도가 이전되었다. 1961년부터 전통적인 이슬람 건축양식과 현대적 양식 및 기능의 조화에 초점을 두고 건설이 시작되었다. 콘스탄티노스 독시아데스,에드워드 더렐 스톤,지오 폰티 같은 유명한 건축가들이 도시계획 및 건축에 참여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로 발전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면적 25㎢의 아담한 도시로 해발고도 450~600m에 자리잡고 있다. 제2단계 공사에서는 총무처·의사당·대통령관저·의원회관·정부청사와 국립 대(大)모스크 등이 완공되었다. 1965년 이슬라마바드대학교,1974년 국민개방대학교(지금의 알라마이크발개방대학교)가 설립되었다. 1971년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국경분쟁으로 건설사업이 일시 늦추어지기도 했다. 도심지역은 정부청사·외교관저·주택가·연구소·공업지대·상업지대·녹지대·국립공원 등 8개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공원에는 올림픽촌·정원·목장·조류사육장·식물원 등과 원자력연구소 및 국립보건 센터가 있다.
이슬라마바드에는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샤 파이잘 모스크(Shah Faisal Mosque)가 있다. 이 모스크는 1980년경에 건축한 최대 규모의 현대식 회교 사원으로 70년대 말 사우디 국왕 파이잘이 파키스탄을 방문하여 거금을 희 사해 건축하였다. 이 사원안에는 성경도서관,성경학교,지아 대통령의 무덤이 있다. 파이잘모스크는 이슬라마바드 시내 서북부에 위치하고 있는데 호텔에서 호텔 택시를 이용하면 왕복 20분이 소요된다. 카라치에서 이슬라마바드 간에는 국내 항공편을 이용하면 된다.(소요시간 편도 1시간 50분)

여름과 겨울에 우기가 있으며 우기를 제외한 여름,겨울 특히 봄,가을은 건조하다. 눈은 겨울에 산꼭대기에서나 드물게 볼 수 있다.
하절기(4월-9월) : 최고평균온도 34.2℃ / 최저평균온도 24.4℃
동절기(10월-3월) : 최고평균온도 16.6℃ / 최저평균온도 3.4℃
연평균 : 최고평균온도 28.9℃ / 최저평균온도 14.4℃
연평균강우량 : 1,143 mm
〈참고〉
최고평균온도는 Maximum Average를 번역한 것으로 해당기간동안의 평균온도 중 현재까지 가장 높았던 수치를 의미하고 최저평균온도는 Minimum Average를 번역한 것으로 해당기간동안의 평균온도 중 현재까지 가장 낮았던 수치를 의미한다.
실제 하절기 최고온도는 40℃,동절기 최저온도는 0℃에 이른다.
또한 이 지역의 8월 평균강수량은 250㎜로 200㎜이상 큰 비가 내리므로 우산등을 소지하고 비를 피할 수 있는 대비를 해야 한다.





▶ 카라치 [Karachi]

파키스탄 남부 신드주(州)의 주도(州都)로 인구 약 986만(1981)명이다.
아라비아해(海)에 면한 파키스탄 최대의 도시이다. 인더스강(江)의 분류(分流) 라야리·말리르 두 강으로 둘러싸인 삼각주에 건설된 항만도시이다. 기온은 5~6월이 가장 덥고 평균 약 34 ℃에 이른다. 때로는 열풍(熱風)이 불고 40 ℃를 넘을 때도 있다. 최한월은 1~2월이며 최저기온의 평균은 13℃이나 4℃정도로 내려갈 때도 있다. 식생(植生)은 남해안에 맹그로브의 자생림(自生林)이 있으며 시가지를 조금 벗어나면 스텝 등의 건조지가 펼쳐지는 경관을 이룬다. 말라버린 밭을 가로질러 대규모의 관개용(灌漑用) 수로가 만들어져 있다. 따라서 배후에 펼쳐진 펀자브·신드 등 농촌지대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농산물의 적출항 積出港)으로서 중요하다. 또한 바다가 없는 아프가니스탄을 위한 해항으로서도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주요수출품은 밀·보리·콩 등의 곡물 외에 목화·소금·양모 등이며,수입품목으로서는 직물·기계·금속·설탕 등이 있다. 또 발루치스탄주(州) 동쪽의 수이로부터 약 550 km의 송유관으로 풍부한 천연가스가 이송되어 제염업·제분업·시멘트공업·소비재 생산공업·기계공업·화학공업 등의 각종 공업이 발달하였다. 공항설비도 정비되어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항공로의 요지이다.

산업
파키스탄은 최근 정부의 강력한 경제회생 및 부패 척결 정책에 따라 경제 성장속도가 빨라지고 있는데,특히 가전 시장의 경우 국민들의 생활수준 향상에 따라 시장 규모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은 물론 지리적으로도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요충지에 있어 잠재수요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파키스탄에는 미국의 GE,일본의 소니 등 세계 유수 업체들이 치열하게 시장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몇몇 국내 업체들도 참여하고 있다.

카라치의 여름은 3월부터 시작된다. 기온은 4월,5월 6월 순으로 높아지고 염천 그대로이다. 6월에 들어서면 고온에 습도가 더해져서 가장 더위를 느끼는 계절이다. 7월은 몬순(우기)에 들어서 비가 많은 계절이다. 8월,9월에는 가을 기분이 난다. 8월말∼9월말 사이에 1∼2주간 정도 약간 기온이 내려가는 일도 있지만 그후에 맹더위가 돌아와서 SECOND SUMMER라고 불리우는 시기이다. 현지에서 살기 좋은 계절은 12∼2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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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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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국명은 'Kingdom of Thailand'로 타이로 불려지고 있으나 옛이름은 사이암(Siam, 1856∼1939), 별칭은 자유의 땅을 의미하는 'Muang Thai' 즉, 태국(泰國)이라고 한다.

아시아의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불교의 나라로서 중국과 인도 사이에 위치하며, 외국인들에게 사이암으로 알려져 왔다. 북서쪽으로 미얀마, 북동쪽으로 라오스, 남동쪽으로 캄보디아와 타이만,남쪽으로는 말레이시아, 남서쪽으로는 안다만해와 접하고 있다. 수도는 천사의 도시라 불리는 방콕이고 이곳은 '동양의 베니스'로 칭송받았던 물의 도시였다.

주요 도시로는 아유타야,파타야,치앙마이,나콘라치시마,푸켓 등이 있다. 태국의 면적은 513,115㎢로서 남북으로 1,500km,동서로 800km이다. 인구는 62,800,000명('2003)으로서 민족은 타이족79.5%(시암족52.6%, 라오족26.9%, 중국인12.1%), 말레이인3.7%, 크메르족2.7%, 기타2.0%로 이루어져 있다.


면적 : 513,115㎢

수도 : 방콕(Bangkok)

인구 : 62,800,000명('2003)

정치형태 : 입헌군주제. 내각책임제
정부는 수상과 각료로 구성되며 수상의 임기는 4년이며 국왕이 임명한다.

종교 : 국교인 불교는 전체 인구의 95%가 불교신도일 정도로 널리 퍼져 있으며 오렌지색 법복을 입은 승려와 금, 대리석, 돌로 만든 좌불ㆍ입불, 입불상 등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이 소승불교이다.

태국 남자들은 삶 속에서 짧게라도 승려가 되어야 한다. 이슬람교도 힌두교도 시크교도 크리스트교도가 소수 존재하며 대부분의 원주민은 애니미즘적 경향이 강하다.

주요도시 : 치앙마이(Chiang Mai, 인구 15만명), 콘캔(Khon Kaen, 인구 11만6천명 ),송크라(Songkhla, 인구11만9천명)


주요민족 : 태국의 인구는 62,800,000('2003)이고 타이어를 사용하는 타이족과 라오족 등이 태국 전체인구 중 4/5를 차지하고 있어 지배적인 종족으로 언어집단이고,중국인ㆍ크메르인ㆍ말레이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북부 지역에는 산간 부족이 살며 남쪽으로는 말레이인이 살고 있다. 인구의 약 10%가 중국인이나 태국인과 융화되어 외모상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주요언어 : 언어는 태국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상용어는 영어이다. 태국어는 독특한 알파벳을 가진 아주 복잡한 언어이지만 배워 보는 것도 재미있다. 태국 문자는 모음 32. 자음 42자로 이루어진 표음 문자이다. 호텔 레스토랑,쇼핑 센터 등에서는 영어가 통용된다.

경제
▣ 국민총생산량
1,539억 달러('1997) (1인당 $2,540)

▣ 무역
수출: 555억 달러, 수입: 584억 달러('1997)

▣ 외채
929억 달러('1997)

▣ 수입동향
87년이후 외국인 투자증대에 따라 자본재,원,부자재의 수입 증가와 더불어 건설경기 과열에 따라 건축자재 수요급증으로 인한 시멘트,철강 등의 수입 증가.

▣ 주요수입품
기계류,원유,철강제품,합성수지원료,자동차,전자,전기부품 등.

▣ 수출동향
쌀,타피오카,설탕,옥수수 등의 농산물과 주석 따위의 광산물이 전체수출의 50% 점유
최근의 수출품 품목은 직물류등 섬유제품의 증가가 현저하며 최근의 외국투자기업 증가에 따른 신발류, 전기 전자제품 수출증가와 플라스틱 제품과 보석류의 수출증가

기후
고온 다습한 열대기후로 하기는 3-5월이고, 우기는 6-9월, 건기는 10-2월로 뚜렷한 세계절로 구분할 수 있으며 연평균기온은 25-29℃로 나눌 수 있다. 혹서기는 치앙마이가 방콕보다 기온이 더 올라가며 냉기에는 북부지역은 춥다는 느낌을 받으나 산간 지역에서는 상당히 추운 기온을 보인다. 우기에는 일이 완전히 중단되지 않고 언제든 여행이 가능하다.

연강수량은 코라트 고원의 900㎜에서 차오프라야 범람원의 1,016㎜ 말레이반도 서해안의 4,000㎜까지 다양한 분포를 보인다.

사회문화
태국인의 생활은 물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농작물의 풍작과 흉작은 강우량과 시기에 크게 좌우되며,하천이나 연못은 물고기,새우,게 등 단백질의 중요한 공급원이다. 중부지방에서는 농산물이 작은 배에 실려 집하되기 때문에 가옥은 끌롱(운하)연변에 있으며 자연히 수상시장이 열리게 되어 진풍경을 이룬다.

불교의 나라답게 전국에 3만여 개소의 사찰이 산재하며 승려는 18만 명 이상에 이르며 가정, 사무실, 상점에서 불상을 볼 수 있다. 옛날에는 사찰이 타이의 유일한 교육기관이었으며 지금도 사원에 학교가 설립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타이의 음악은 인도계, 중국계, 남양계의 음악과 고유음악이 합성된 것으로 인도차이나반도의 음악 중 가장 발달한 음악으로 손꼽힌다. 민간에 흘러들어간 캄보디아의 옛 궁중음악, 북부의 라오족과 사이암족 등의 민속음악, 남부의 말레이 민속음악, 중국인(華僑)의 음악으로 대별된다.

태국은 입헌군주국으로 국왕은 정치에 초연하나 모든 국민이 국왕을 존경한다. 오랜 세월동안 주변국의 침략과 지배를 받으면서도 독립을 지켜온 민족으로서 국가와 자국민에 대한 사랑과 애착이 매우 강한 편이다. 국민은 비교적 정직한 편이며 자유주의 사상하에 항상 유괘하게 웃는 인상을 소지하고 있다.

태국문화의 기조는 인도, 버마, 크메르문화가 융합된 것이며, 불교문화는 스리랑카로부터 도입되었다. 타이족은 11세기경 중국 서남단에서 현재의 타이땅으로 이민왔다는 것이 일반정설이나, 말레이 반도에서 북상을 했다는 설과 선사시대 이후 주변종족들이 계속 이주해 들어와 구성되었다는 설들이 대립하고 있어 장래의 연구과제가 되어 있다.

태국의 각종 건축, 사원, 미술, 무용 등은 불교문화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또한 불력도 사용하고 있다.

산업
태국의 산업구조는 제조업28.4%ㆍ농업11.0%ㆍ건설업7.4%ㆍ금융보험업7.6%ㆍ서비스업13.1%ㆍ운송통신업7.3%ㆍ도소매업15.5% 비율로 나타나고 있다. 세계에서 쌀 수출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로 국내총생산의 1/8을 차지하고 있으며,고무 생산량도 최고를 기록하고 있으며 제조업은 국내총생산의 1/4를 차지하고 있으며,경공업이 주를 이루며 방콕 주변에 집중되어 있다.

주요 제품으로는 맥주,오토바이,정제설탕,섬유,시멘트,화학제품을 생산한다.

지리
남한의 5배의 면적을 가지고 있는 513,115㎢로 말레이시아ㆍ미얀마ㆍ라오스ㆍ캄보디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북부 산악지대와 중부 평원지대, 북동 고원지대, 남부 밀림지대 등 4개 지역으로 나누어지고 있다. 북부 산악지대는 평균고도가 1,200m 정도의 여러 산맥들이 솟아 있으며 열대우림 무성하여 목재가 많이 생산된다.

중부 태국은 차오프라야 강 삼각주의 평평하고 습지가 많은 평야로 이루어져 있어 쌀을 생산하는데 아주 좋은 조건이다.

북동부에는 건조한 코랏 고원이 있으며 메마른 토양에 자리잡은 건조지대로 사바나형 목초와 관목으로 덮여있다.

남부 밀림지대는 완만한 산악지형에 속하는 곳으로 평평한 평지는 거의 볼 수 없다.


간단한 현지어
현지어: 씨왓디- 크랍(카) *화자가 남성일 경우 '크랍', 여성일 경우 '카'의 존중어미를 붙인다.
의미: 안녕하세요.

현지어: 컵-쿤 크랍(카)
의미: 감사합니다.

현지어: 커 톳- 크랍(카)
의미: 미안합니다.

현지어: 헝남- 유- 티-나이 크랍(카)
의 미: 화장실은 어디입니까?

현지어: 약-낀 남 크랍(카)
의미: 물을 마시고 싶습니다.

방문적기
태국을 방문하기 가장 좋은 때는 11월에서 2월의 건기로 무더위를 조금쯤 피할 수 있다. 태국의 남부지역을 방문 할 경우 무더 위가 기승을 부리는 3월에서 5월은 피하는 것이 좋으며,북부지방은 11월 중순부터 12월 또는 2월 초순경이 좋다.


역사
▣ AD1년 - 1900년까지의 역사

지난 2만 년 동안 사람이 거주해왔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타이어를 쓰는 민족이 10세기쯤에 중국에서 남쪽과 서쪽으로 이주해 왔다. 13세기 크메르 왕국이 쇠퇴하기 시작했으며,태국 민족의 두 수장은 1238년 크메르 제국 서북부의 도시 수코타이를 침략하면서 최초로 독립왕국을 건설하였다.
수코타이를 차지하고,그곳을 시암의 최초 수도로 삼았으며, 몇몇 타이 부족들은 라오스와 미얀마의 산(Shan)으로 이주하였으며, 또 다른 왕국은 라나타이가 북쪽에 있는 치앙라이에서 멩라이 왕의 영도하에 세워졌으며, 후에는 치앙마이로 이동했다.

수코타이 왕조의 세력이 약화된 후 아유타야 왕조의 라마티보티 1세는 1350년 수코타이 남쪽으로 아유타야의 땅에 새왕조를 건설하였고, 이것이 아유타야 왕조의 시초로 417년 동안 33대에 이어 뛰어난 힘을 발휘하였다.

크메르는 시암 영토 밖으로 쫓겨났으며, 수도인 앙코르는 정글속에 유기되어 20세기까지 방치되었다. 태국의 적수인 미얀마가 16세기에 다시 통일을 이룬 후, 태국을 침략하여 쑥대밭으로 만들었으며 아유타야가 흡수하지 못했던 치앙마이가 1556년 미얀마에 의해 함락되었으며 아유타야의 국가 기능이 약해지면서 점차 이웃나라인 미얀마에 의해 1569년에는 아유타야가 함락되면서 15년 동안 미얀마의 지배를 받게 된다.

아유타야 왕조의 붕괴로 나라는 어지러워 졌으며, 국내에서는 지방영주가 난립되었다. 그러나 중국인 아버지와 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로 아유타야 왕조에서 하급 관리였던 탁신은 뛰어난 군사능력을 갖고 아유타야를 탈환하고 1767년 톤부리(Thonburi)에 수도를 세웠으며 탁신 왕이 이 자리에 올랐지만 말년에 정신이상을 보여 처형당하는 비운을 맞는다.

19C에는 동남아는 유럽 강대국들에 의해 식민 경영을 당하였으나 시암은 독립을 유지하면서 교묘적으로 효율적으로 식민정책을 통하여 이익을 챙겼다.


▣ 1991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프라자디포크왕 시대인 1932년에는 쿠데타가 일어나 절대군주제가 무너지고 입헌군주제 정부로 변모했으며, 1939년 나라의 이름을 시암에서 타일랜드로 바꾸었다. 2차 세계대전에 피불 정부는 일본과 동맹을 맺고, 태국만을 사용할 수 있게 허락하므로 일본군이 태국을 점령하는 상황까지 오지만 1948년에는 권력이 피불(Phibul)에게 돌아오고,그 후에 군부가 지배를 거듭하였다.

1973년에 타놈(Thanom) 총리가 전례가 없던 학생들의 시위로 물러나고 태국에 민주주의가 정착되었다. 1976년 군부가 다시 정권을 집권하였으며 1977년 초 실패한 쿠데타가 한번 발생, 1979년에 선거가 실시되었으며 1981년 또다시 쿠데타가 발생하였다.

1988년의 민주선거는 경제 정책을 우선시 하는 차띠차이초온와한(Chatichai Choonvahan) 정부를 탄생시켰으나 이 정부가 무너지고 1991년 2월에 군부가 무혈쿠데타로 다시 정권을 잡았다. 1992년 5월 유혈 데모로 문민 정부를 출범시켰다.


공휴일/축제
1월 1-2일 신정연휴
3월 15일 불교특별선교일
4월 6일 서기1782년 현[짝끄리]왕조건립일
4월 13일 태국식 설날(쏭끄란)
5월 1일 노동절
5월 5일 서기 1946년 현국왕즉위일
6월 15일 부처 탄신일
8월 15일 불교완전 창립일
8월 16일 스님 입사일
8월 12일 현 왕비 탄신일
10월 23일 쭐라롱컨왕 기념일
11월 15일 스님 출사일
12월 5일 현 국왕 탄신일
12월 10일 제헌절
12월31일 신정전야

국제전화
국제전화는 일반전화로 가능하며 공중전화(카드전화)인 경우에는 최근 보급된 국제전화전용 노란색 공중전화로 국제전화를 이용하면 된다. 전용카드는 300바트, 500바트 짜리 카드를 근처 편의점에서 구입하여 사용하고 크레디트 카드도 가능하다.

기타 콜렉트콜 공중전화(한국어 및 특정 국가어로 이용법 표기)를 이용해 수신자부담 국제전화를 이용할 수 있다.

우편
태국에서 한국으로의 우편송부시 요금은 대개 무게에 따라 다르나 일반 편지 기준으로 12바트 정도이며 엽서는 9바트 정도이다.

유용한전화번호
▣ 태국내 유용한 전화번호
주태 한국대사관 02-247-7536∼49
한국관광공사 02-231-3895∼6
대한무역진흥공사 02-233-1322∼3
한국외환은행 02-264-0611∼4
대한항공 02-267-0982∼4
아시아나항공 02-260-7707

▣ 대한민국 내 태국 관련 기관
주한 태국 대사관
태국 관광청 02-779-5417

의료시설
모든 관광지 및 지방의 주요 도시에는 믿을 만한 의사와 간호원이 있는 병원이 있다. 응급 환자의 경우 어떤 개인병원에서든 응급차를 부를 수 있다.

전압 및 주파수
전압은 220V, 50Hz이고 콘센트는 일반적으로 동그란 두 개의 핀을 꼽도록 되어 있으나 납작한 두 개의 핀이 있을 수 있으며,두가지 다 사용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체험물가
생수 한병 가격: 10 - 50 바트 사이며 수입 생수는 더 비싼 것도 있음.
맥주 한캔 가격: 태국 맥주는 25- 30바트 이며 수입맥주는 40바트 이상

택시기사나 영화관 안내원에게는 반드시 팁을 줄필요는 없다. 그러나 서비스가 좋은 호텔의 종업원에게는 팁을 주는 것이 보통이다. 서비스 요금이 없는 레스토랑에서는 10% 정도의 팁이 알맞다. 보통 한국인 머무는 호텔에서는 1박당 $1나 1,000원짜리 한화도 잘 받는다.

치안
미얀마, 라오스, 말레이시아, 캄보디아의 국경지역에는 게릴라, 도둑, 강도 등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한다. 남부 지역은 1989년에 사라졌지만 위험지역으로 남아 있는 지역은 미얀마, 캄보디아 국경지역에도 위험요소가 아직 도사리고 있으므로, 이 지역은 여행을 피하는 것이 좋다.

또한 여행자들을 노리는 소매치기들이 많으므로 현금을 많이 가지고 다니지 말아야 한다. 면도칼을 이용한 소매치기도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태국인들은 친절한 것처럼 하면서 사기를 치는 경우가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특히 버스, 기차에서 이런 일들이 발생하므로 각별히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방콕 등 주요 대도시의 치안상태는 개도국 기준으로는 비교적 양호하나 총기, 마약이 널리 퍼져 있어 위험성은 상존하고 있다. 방콕 파타야 푸켓 등 한국 여행자들이 많이 방문하는 관광지에는 현금 여권을 노리는 소매치기 사기꾼들이 늘고 있어 주의가 요망된다. 학생 배낭여행객들이 많이 모이는 값싼 게스트하우스가 밀집해 있는 방콕 시내 카오산로드(Khaosan Road)는 여권 등 소지품 분실도난이 잦고 마약에 유혹될 염려가 있는 지역이므로 가급적 숙소로 이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방콕의 대표적인 유흥가인 '팟퐁' 지역은 외국 관광객들과 유흥업소간 바가지 요금 시비, 취중시비 등에 의한 폭행 사고 등 신변불안 요소가 상존하는 지역이므로 출입을 삼가는 것이 바람직하며, 부득이 출입할 경우 신변안전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장거리 열차 또는 시외버스 내에서 잠이 든 사이 소지품 분실도난 사례가 많아 조심할 필요가 있으며,특히 모르는 사람이 접근,제공 하는 음료수는 수면제를 탄 것일 수 있으므로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모르는 외국인으로부터 '같이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등의 권유를 받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분실 여행자수표 환전 또는 마약운반책으로 활동하다 구속되는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

통화
태국의 화폐는 바트(Baht)이며 B로 표기, 보조 단위로 사탄(Satan)으로 1B는 100사탄이다. 화폐의 동전은 1B(3가지 크기),5B(2가지 크기),10B짜리가 있으며 가장 작은 동전은 25 또는 50사탄이 있다.

지폐의 단위로는 10B, 녹색인 20B, 파란색 50B, 빨간색 100B, 자주색 500B, 베이지 1,000B로 그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다. 또한 10,000B 이상 짜리 돈도 사용된다. 1,000B이상 짜리 돈은 작은 마을, 타운에서는 바꾸기 어렵다. 산간 지역의 시장에서는 살렝(saleng)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1살렝은 25사탄을 의미한다.

한국으로 전화
▣ 호텔에서 전화를 이용할 경우
0 또는 9 번(외부전화 접속,호텔마다 확인요) + 001 + 82 + 2(0을 뺀 지역번호) + 전화번호

▣ 공항 또는 공중 전화를 이용할 경우
001 + 82(한국 국가번호) + 2(0을 뺀 지역번호) + 전화번호. 예) 서울 725-6000 으로 전화할 경우 : 001 + 82 + 2 + 725-6000

현지로 전화
001(국제자동전화식별번호)+66(국가번호)+0을 뺀 지역번호+상대방전화번호 순으로 입력하면 된다.


주의사항
▣ 외국인 금기사항
군주제와 국교인 불교는 태국에서 귀중히 여기므로 태국인들 앞에서 모욕하는 언행을 하는 것을 삼간다.

▣ 복장 및 의복 관련사항
태국은 연중 평균기온이 28℃를 유지하므로,우리나라의 여름기온과 같으므로 여름옷을 준비하여 가져가는 것이 좋다. 하지만 남쪽 나라이지만 북부지역은 춥고, 호텔 야간열차에는 에어컨이 달려있어 냉방시설이 철저하게 되어 있으므로 스웨터나 재킷을 준비하여 가져가면 효율적일 것이다. 또한 신발은 얕은 것을 신어서 넘어지지 않도록 하는 비치샌들을 신으면 좋다.


비자
▣ 국내 비자발급처
기 관 명 : 주한 태국 대사관
주 소 :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653-7
전화번호 : 02-795-3098/0095
팩스번호 : 02-798-3448
근무시간 : 09:00-12:00 & 13:30-17:00, 토요일 휴무

▣ 비자신청시 유의사항
사증면제 협정국으로 90일동안 무비자로 체재가 가능하다.

▣ 비자신청시 구비서류
대한민국 여권소지자는 관광이나 기타 비영리.비취업 목적의 방문일 경우 체류기간 3개월까지는 사증이 필요 없으며, 영리.취업 목적으로 방문하는 경우에는 주한태국대사관에서 비이민사증(non-immigrant visa)을 사전에 발급 받아야 한다. ※체류기간 초과시에는 1일당 200바트씩 벌금을 낸 후 출국이 가능


버스
버스는 방콕에서 태국내 모든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태국의 버스는 등급에 따라 VIP 버스에서 에어컨 버스,그리고 일반 완행버스 등 여러 종류로 나뉘며, 종류에 따라 시설과 서비스가 차별화 되어 있다.
버스 예약은 일반 여행사나 호텔 및 터미널에서 할 수 있다.

전철
교통체증이 심하기로 유명한 방콕에서도 걱정없이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스카이트레인이다.

매일 아침 6시에서 자정까지 이용할 수 있는 스카이트레인은 싸얌 스퀘어(Siam Square)를 중심으로 수쿰빗 라인 (Sulhumvit Line)과 실롬 라인 (Silom Line) 두 노선이 있는데,요금은 구간에 따라 10바트에서 40바트 정도이며 BTS사가 운영하고 있다.

철도
태국의 열차는 푸켓을 제외한 태국내 모든 지역으로 향하는 노선을 갖추고 있으며,총 네 개 지역을 연결하는 북부, 북동부, 동부 그리고 남부형태로 운행하고 있다. 기차의 종류는 가장 빠른 스페셜 익스프레스 및 익스프레스, 고속열차 그리고 일반 열차 4가지이다.

스페셜 익스프레스(Special Express)와 익스프레스(Express)에서 즐길 수 있는 1등급 열차는 에어컨 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개인 객실로 구성되어 있다. 2등급 열차는 커튼이 부착되어 있는 좌석이 개조된 침대,선풍기나 에어컨 중 택일 할 수 있는 개인 별 좌석이 있다. 3등급 열차는 각 의자에 2~3명이 앉을 수 있는 나무 의자로 되어있다. 3등급은 탑승 가격이 싼 것이 장점이지만 단거리 여행객에게 권하는 열차이다. 화장실과 세면대는 각 열차의 맨 마지막 칸에 있다.

탑승 가격은 목적지와 열차 등급에 맞춰 나누어져 있으며, 1등급 열차의 경우에는 식사와 더블 침대같은 특정 서비스 이용시 추가 요금이 부가된다. 20일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승차권은 2등급과 3등급 열차에만 적용된다.

후아람퐁(Hua Lamphong,방콕역)은 서울역과 같은 방콕 최대 기차역이며 라마 4세(Rama IV)와 끄렁 까셈(Krung Kasem) 교차로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라마 4세 로드(Rama IV Road)에 위치한 사셈 (Sasem)역에서도 승차할 수 있다.

택시
태국의 택시는 35바트를 기본요금으로 하며 가고자 하는 목적지의 길이 및 운행 시간 등에 비례해서 요금이 매겨진다. 급한 경우에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으로는 오토바이 택시가 있다.


고온 다습한 열대기후로 하기는 3-5월이고, 우기는 6-9월, 건기는 10-2월로 뚜렷한 세계절로 구분할 수 있으며 연평균기온은 25-29℃로 나눌 수 있다. 혹서기는 치앙마이가 방콕보다 기온이 더 올라가며 냉기에는 북부지역은 춥다는 느낌을 받으나 산간 지역에서는 상당히 추운 기온을 보인다. 우기에는 일이 완전히 중단되지 않고 언제든 여행이 가능하다.

연강수량은 코라트 고원의 900㎜에서 차오프라야 범람원의 1,016㎜ 말레이반도 서해안의 4,000㎜까지 다양한 분포를 보인다.




▶ 방콕 [Bangkok]

크룽텝(Krung Thep). 태국인들이 방콕을 표현하는 말이다. 우리말로 '천사들의 도시'란 뜻을 가진 방콕은 광활한 평야지대로 18세기까지는 중국 상인의 취락에 지나지 않았으나,1767년 미얀마인들에 의해 아유타야왕조가 멸망한 후 1781년 탁신왕이 미얀마인들을 몰아내고 차오 프라야강(Chao Phraya River) 서쪽 톤부리에 수도를 정하였으나 1782년 챠크리(Chakri)왕조의 초대왕 라마(Rama)1세에 의해 현재 태국의 수도가 되었다. 그 후 200여년동안 꾸준한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날의 거대 도시가 되었다.

소도시와 촌락들로 이루어진 국가 태국에서 하나뿐인 세계적 거대도시인 방콕은 현재 태국의 곳곳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정치, 경제, 문화, 교육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태국의 주요 항구 도시로 현대적인 빌딩들이 곳곳에 들어서고 태국 전체인구의 약 10%가 거주하는 이 도시는 동서양을 잇는 아시아의 관문이며 세계 50여개의 항공사들이 취항하는 세계적인 관광도시이다. 현재의 방콕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통체증과 매연, 번잡함과 소란스러움으로 더욱 유명해졌지만 전통적인 역사 유적과 태국인의 미소와 여유가 방콕이 여전히 국제적인 관광도시로 자리잡을 수 있는 기틀이 되고 있다.

교육
1870년 선교사에 의한 교육을 시작으로 공공교육기관이 설치되기 시작하였다. 출라롱콘왕이 왕자 및 귀족의 자녀 교육을 위해 왕궁내에 학교를 설치하였으며, 1884년 일반 대중을 위한 최초의 학교가 설립되었다.

1917년 최초의 대학인 출라롱콘대(Chullalongkorn University)설립되고,국민의 의무교육기간을 6년으로 제정하였다. 방콕내에는 900여개의 초등학교,330여개의 중학교,290여개의 고등학교가 있으며,대학은 185개가 있다. 방콕시청 관할 특수교육기관은 Medical College, Nursing College 두 곳이 있다.

그 중에서도 출라롱콘대학(Chulalongkorn University)는 라마 5세,출라롱콘왕이 설립한 태국의 최초의 대학이자 최고의 명문대학이다. 학생의 대부분이 상류층 자녀이며 교풍은 상당히 보수적인 편으로 알려져 있다. 풍부한 자금력으로 어학센터, 부속 병원 등 부대설비가 충실하며 수많은 고급 관료와 비즈니스맨 등 태국의 엘리트를 배출하고 있다.

출라롱콘대학과 쌍벽을 이루는 태국의 또다른 명문대는 1933년에 설립된 타마삿대학(Thamasat University)이다. 사회과학 분야에서 많은 정부요원을 배출하고 있다. 1974년 학생 혁명 때에는 혁명의 중심지였으며,1976년 군사 쿠데타때는 압제에 항거하는 등 전통있는 학교이다. 대학임에도 교복을 입고 있으며 교정은 방콕아시안게임 주경기장이었던 제 2 캠퍼스에 비해 굉장히 작은 편이다. 그러나 학교내 식당 음식 값이 매우 싼 편이며 국립박물관과 국립극장이 근처에 있다.

산업
방콕은 예로부터 상업의 중심지로 번영하였으며 차오프라야강이 있는 태국의 주요항구로써 외국무역이 매우 발달하였는데 여기에서 태국의 거의 모든 수출입이 이루어지고 있다. 주로 상업 및 공업에 집중되어 있는데,식품가공,섬유,건축자재 생산 등이 주요산업이다. 전국적인 상거래도 방콕에서 이루어지며,공장건설도 방콕과 그 주변지역에 집중해 있다. 태국 제1의 무역항이었던 방콕항은 차오프라야강의 수심이 앝아서 선박의 운항이 자유롭지 못하여 약 20km 하류에 있는 사무트프라칸과 사이암만 연안의 코시찬이 와항의 역할을 하고 있다. 주요 수출품은 쌀과 티크재이고,수입품으로는 기계류와 섬유제품 등이 많다.

방콕은 근대에 와서 경제발전과 더불어 크게 변모하고 있는데, 금제품과 잡화류, 섬유제품 등의 상점이 즐비한 야와라트가와 중국인 거주지구인 삼펭가는 상업의 중심지로 번영해 왔으나,근대적인 도시계획에 의한 공업 및 도시화가 발전함에 따라 남부의 차오프라야강 연안에는 제재,정미,기계 공장이 들어선 공업지대로,동부의 방카피 방면에는 공공기관과 주택가로 발전하게 되었다.

또한 태국의 금융 중심지이며 여러 보험회사들의 기지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 청사들이 왕궁 주변에 자리하고 있으며 국제연합 아시아 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ESCAP) 본부를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들이 들어서 있어 행정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수식어
천사의 도시


전형적인 열대몬순기후로 1년 내내 덥고 습도도 높다.
1년중 가장 더운 4월의 평균기온이 30도, 최저기온인 1월의 평균기온이 26도로 연교차가 불과 4도이며 1년 내내 고온이 계속된다. 그러나 일교차는 하루 최대 10도나 된다.

연 강수량의 대부분은 5~10월의 우기에 집중되며, 이 기간에는 남쪽 해상에서 불어오는 남서 몬순의 영향을 받는다. 11월~2월의 북동 몬순의 계절에는 강수량이 극히 적고,대기는 서늘하고 건조하여 1년 중 가장 쾌적하다. 3월~4월에는 지배적인 계절풍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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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클라

방콕에서 남쪽으로 약 1,000k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송클라는 태국 송클라 주의 주도로 싱고라(Singora)라고도 불린다. 싱고라는 야위(Yawi)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현재는 '카오 댕(Khao Daeng)'이라고 불리는 항구 맞은편에 있는 사자 모양의 산을 부르는 이름이었다고 한다.

타이만과 접하고 있는 송클라는 태국 남부 최대의 도시 핫야이에서 차로 30분 가량 걸리는 곳으로 핫야이가 활발한 상업도시라면, 송클라는 남부지방 최대의 교육도시로 대학과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는 아주 평화로운 작은 항구도시이다.

송클라 주 내에는 타이만과 연결된 송클라 석호가 있으며, 이러한 지리적 위치로 인하여 송클라는 매우 편리한 연안 교통이 발달한 도시였다. 따라서 송클라는 핫야이의 외항으로 발전하면서 옛부터 외국과의 문물교류가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져 중국풍의 유물들이 곳곳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의 송클라는 아름다운 해안과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해변 휴양지로 알려져 있다.

태국 최대의 담수호를 자랑하는 송클라는 요 섬을 비롯한 작은 섬들이 위치해 있는 도시로 들새 관찰지의 최적의 장소로 꼽히고 있다. 녹남 공원은 약 140여 종의 새들이 서식하고 있는 서식지로 유명한 곳이다. 또한 사미라 해변은 파도가 약간 높기는 하지만 깨끗하고 환경 정비가 매우 잘 되어 있는 해변으로 한가롭게 바다를 즐기고자 하는 관광객들이 많은 찾는 곳이다. 또한 송클라 시는 송클라 호수 주변이나 항구 주변에 형성되는 생선 시장에서 일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교육
송클라 대학교는 남부 지방 최대의 명문대학으로 태국에서 네 번째로 한국어 센터가 개소될 예정에 있는 명문대학이다. 이는 방콕의 출라롱콘 대학과 찬드라카셈 사범대학과 치앙마이 사범대학에 이어 네번째이다.

태국내에서 지방대학으로는 치앙마이 사범대학에 이어 두번째로 명문대학으로 꼽하는 송클라 대학교는 전문적인 여러 연구활동을 비롯해 태국 남부에서 유능한 인재를 배출하고 있는 대학이다. 우리나라의 전주대학교와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산업
타이만 연안과 태국 최대의 담수호를 끼고 위치하고 있는 송클라는 옛날부터 연안 교통이 편리한 상업중심지로 발달한 도시이다. 특히 연안과 석호에서는 송클라 시민들의 주요 생계수단인 어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호수 주변과 인근 항구에서는 생선 시장이 형성되어 어업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많은 해산물 요리가 즉석에서 판매되고 있다.

주변에서는 쌀과 코코야자,파인애플,땅콩과 고무 등이 재배되고 있다. 이외에도 주석이 채굴되어 송클라 시민들의 경제 발전에 도움을 주고 있다.





▶ 수랏타니

방콕에서 약 677k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수랏타니는 사무이 섬과 팡안 섬 등 태국 남부의 섬들과 내륙을 연결해 주는 작은 항구 도시이다. 옛날에는 시윗차이 제국이 위치하던 수랏타니는 반돈(Bandon)이라고 불리던 곳으로 현재는 수랏타니의 항구를 의미하는 별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타피 강(Tapee River)을 따라 발달한 수랏타니는 대부분 태국 남부 섬으로 가기 위해 잠시 거치거나, 역사도시 차이야(Chaiya)로 가기 위한 중계 지역 역할을 하는 도시이다.

스리비자야 제국(Srivijaya)의 중심지였던 수랏타니는 선한 사람들의 도시(City of Good Peole)라는 뜻을 가진 도시로 태국 남부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타피강 삼각주 윗부분에 자리잡고 있는 수랏타니는 방콕과 싱가포르간 철도선의 경유지로,태국 남부의 주요 섬들과 내륙을 연결하는 항구도시로 중요한 교통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주변지역에서는 주석과 같은 광물과 해산물, 쌀, 코코넛 등의 생산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산업
수랏타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생계수단은 항구도시답게 어업이 주를 이루고 있다. 바다에서는 많은 생선들이 어획되고 있으며, 내륙에서는 쌀과 코코넛 등이 생산되고 있다. 코코넛은 훈련받은 원숭이가 코코넛 나무에 올라가 따는 묘기를 선보여 더욱 유명해졌다. 이외에 수랏타니 주변에서는 주석과 같은 광물들이 채취되고 있다.




▶ 수코타이

타이족 최초의 독립국가 수코타이는 방콕에서 북쪽으로 약 37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태국의 고도이다. 현대도시 수코타이시에서 서쪽으로 13k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수코타이 왕조의 유적지는 태국의 오래된 역사와 시암 문명의 발상지로서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차오프라야 강의 한 지류인 욤강이 바라보이는 곳에 위치한 수코타이시는 태국 중북부 수코타이주의 주도로 인구가 희박한 쌀 재배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수코타이시를 중심으로 주변에 많은 수코타이 왕조의 많은 유적이 있으며 궁전, 사원 등의 폐허가 넓은 지역에 걸쳐 분포해 있다.

9세기 경, 중국 운남 지방에서 몽골의 압력으로 남하하기 시작한 타이족은 12세기 경, 현재의 태국 중북부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당시에는 독립국이 아닌 당시 최고로 융성했던 앙코르에 기반을 둔 크메르 제국의 속국으로 지배받다가 1238년 독립하여 태국 최초의 왕국, 수코타이를 건국하였다. 수코타이 왕조는 수코타이를 수도로 정하고 세력을 넓히기 시작하여,제 3대 왕 람캄행시대에는 북쪽으로 지금의 라오스,서쪽으로 안다만 해, 남쪽으로 말레이 반도까지 영역을 넓혔다. 당시 8만 정도의 인구가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고대도시는 시암 문명의 발상지가 되었다. 그러나 아유타야 왕국이 성하기 시작하면서 세력이 급격히 기울기 시작하여 1438년에 아유타야 왕국에 정복,합병되었다.

'행복의 새벽'이란 뜻을 가진 수코타이는 태국 최초의 국가로 수코타이가 번성했던 약 100년동안 태국의 문화적,사회적 기틀이 마련되었다. 태국의 종교, 불교가 융성하였으며 현재까지 태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법률과 문자가 이 시대에 완성되었다. 특히 태국의 문자는 1292년 3대 람캄행에 의해 한번 개량 되었을 뿐 현재까지도 개량 없이 사용되고 있다. 아유타야에 의해 멸망되면서 한때는 사람이 살지 않았을 정도로 황폐해진 수코타이가 근래에 태국의 관광명소가 된 것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되면서 교통이 개선되고 고대 수코타이의 유적들이 조금씩 복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태국의 중요한 역사적 배경으로 평가받고 있는 시사차날라이 역사공원 및 람캄행 국립공원,왕궁과 왓 마하탓 등 비록 폐허로 변해버렸지만 태국의 뿌리를 느낄 수 있는 많은 유적지들이 위치해 있다.

산업
쌀 재배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수코타이의 주요 생계수단은 벼농사이며, 이외에도 직조, 목공, 금속가공, 어업, 의류제조, 식량생산 등의 산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수코타이의 주변지역에서는 옥수수, 목화, 콩, 양배추 등의 재배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한때 중국 송나라의 영향을 받아 도자기로 유명했던 고대 성벽도시 사완칼로크가 자리잡고 있어 아직도 수코타이의 도자기는 품질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수코타이는 태국 국가의 최초 발생지로 현재 많은 관광객들이 태국의 문화유산을 보고자 몰려들고 있어 관광산업이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도시이다.




▶ 아유타야

태국 아유타야 왕국의 옛 수도이자 우리 나라의 경주와 같은 도시인 아유타야의 정식명칭은 프라나콘시아유타야(Phra Nakhon Si Ayutthaya)로 아유타야 주의 주도이다. 방콕에서 북쪽으로 약 64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아유타야는 사방이 차오프라야 강 하류에 전개된 삼각주 위에 발달해 있는 도시로 차오프라야 강의 지류인 파삭 강과 롭부리 강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도시는 현재 아유타야 주의 상업 중심지로서 도로와 철도,강을 통해 방콕과 연결되고 있으며,특히 강과 접해 있는 특성으로 많은 운하망이 종횡으로 교차하여,수상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주거용 배와 상점용 배들이 많다.

수코타이 왕조가 멸망한 후 1350년 타이족의 남하에 따라 라마티보디 1세에 의해 형성된 아유타야 왕국은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까지 세력을 확장하면서 약 400년간 33대에 걸친 아유타야 왕조의 강력한 통치가 이루어졌으며 1767년 버어마의 침공으로 멸망하였다. 그러나 아유타야 왕국은 당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강대한 국가로 정치적으로 오늘날 태국의 시초로 평가되고 있다. 종종 '쿠룽카오(고대의 중심지)'라고 불렸던 아유타야는 중국을 비롯한 페르시아,유럽과 외교통상 관계를 맺으면서 '세계 무역항의 중심지'라고 불렸을 만큼 국제적인 무역항이었으며,17세기 해양 실크로드의 주요 거점 지역으로 동남아시아 최대의 교역국이었다.

1989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유타야는 문화재의 도시이다. 417년간 태평성대를 구가했던 태국(당시 시암)의 두 번째 왕조, 아유타야 왕조의 도읍지로서 고대 왕궁과 수많은 사원 유적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400여 개의 사원과 19개의 성곽 등은 당시 버어마군의 침략으로 철저히 폐허로 변했지만 지금은 남아 있는 유적들을 보고자 하는 전 세계 관광객들로 항상 붐비는 관광도시이다. 아유타야 시대의 각종 궁전들과 사원,그리고 시가 건설될 때 만들어진 청동불상이 보관되어 있는 차오삼프라야 국립박물관과 석가모니의 유물들이 보존되어 있는 타이파빌리언, 왕족의 절로 사용되고 있는 왓 프라시산페트 등이 유명하다.

교육
아유타야는 태국의 벼농사 중심지대로 농업에 대하여 연구 및 학습 할 수 있는 아유타야 농업대학이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는 농업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산업
17세기 해양 실크로드의 동남아시아 거점 지역으로써 세계적인 무역항으로 알려진 아유타야는 차오프라야 강을 통한 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지던 도시이다. 그러나 열강제국들의 식민지화 정책을 피해 쇄국정책을 펼친 아유타야는 지금은 무역보다는 벼농사 생산이 주민들의 생계수단이다. 차오프라야 강의 삼각주 평야 위에 발달한 아유타야는 태국의 벼농사 중심지대로 차오프라야 강의 넓은 중류로부터 관개가 이루어져 벼농사가 집약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아유타야는 방콕과 철도와 고속도로로 연결되어 있어 이곳에서 생산된 쌀의 거래가 매우 활발히 이루어지는 도시이다. 또한 옥수수,잎담배,참깨 등의 농작물이 함께 재배되고 있으며,제재와 죽세공 등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아유타야에는 특이한 공예품이 많은데,골동품,칼,검,인형 등을 모방해서 만드는 사석공예품과 수공예품이 유명하다. 그러나 오늘날 아유타야의 주요 수입원은 관광산업으로 관광도시로 발전해감에 따라 관광산업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 치앙라이

태국에서 가장 먼 북부 지방인 치앙라이는 치앙라이 주의 주도로 치앙마이에 이은 북부 제 2의 도시이다. 치앙라이 주의 행정은 무앙, 치앙 콩, 치앙 센, 메 찬, 메 사이 등 13개의 군으로 분리되어 있다. 치앙라이는 북서쪽으로는 미얀마와 북동쪽으로는 메콩강과 라오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황금의 삼각지대를 이루고 있다. 긴 역사 동안 미얀마 북서부와 콕강을 통하여 교류하면서 생활한 관계로 치앙라이와 국경 인접 지역들은 현재도 라오스와 깊은 문화적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주변의 산악지대에는 마오족,야오족,이고족,카족 등 산악민족이 수세기에 걸쳐 살고 있다.

1262년 멩라이 왕에 의해 처음 발견된 치앙라이는 고도 치앙센 시대에 남쪽을 방어하는 요충지 역할을 하던 도시이다. 북부 지방 몽족의 드바라바티 왕국이 세력을 넓힐 당시 치앙센의 멩라이 왕이 치앙 콩과 메 찬, 팡 등의 북부 산간지역에 있던 소국을 통일하고 치앙라이에 그 도읍을 정한 란나 타이 왕조의 첫번째 수도였다. 1786년까지 약 200년간 미얀마의 지배를 받았으며,1910년 라라 6세 재위 기간에 태국의 도로 선포되었다. 오늘날 치앙라이는 맛 좋은 여지 열매와 치앙센과 연결되는 황금의 삼각지대(The Golden Triangle)로 유명하다.

치앙마이에서 3시간 거리에 있는 한적하고 조용한 작은 시골 도시인 치앙라이는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는 도시답게 15세기 이전에 지어진 사원들과 주변의 아름다운 시골 도시들이 인상적인 곳이다. 치앙마이 왕국을 건설한 5m 높이의 란나 타이 왕조의 멩라이 왕 동상이 거리 입구에 서 있으며 북부 트레킹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도시이다. 또한 치앙라이로 들어오는 입구에는 경찰이 상주하면서 아편 밀수 검문을 하는데 치앙라이의 현실을 엿볼 수 있는 모습이다.

산업
쌀과 담배가 주요 농작물로 도시 전체에 정미소가 매우 많다. 라오스와 티크,쌀,커피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교역의 중심지이다.




▶ 치앙마이 [ChiangMai]

800년의 긴 역사를 자랑하는 치앙마이는 태국 북부에 있는 치앙마이주의 주도로 북부 제1의 도시이자 태국 제2의 도시이다. 방콕에서 북쪽으로 710km 떨어져 있으며 핑 강(Mae Nam Ping)의 연안에 위치하는 치앙마이는 해발 고도 335m의 기름진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치앙마이는 13세기 말에 창건된 태국에서 가장 오래된 거주지 중의 하나로 오늘날 북부지역과 미얀마 샨 주(州)의 종교·경제·문화·교육·교통의 중심지로 발전해 가고 있으며 문화적으로는 라오스와 밀접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태국과 미얀마의 쟁탈전에 의해 양국의 문화를 동시에 간직하고 있는 역사도시이다.
북방의 장미로 알려져 있는 치앙마이는 방콕 면적의 1/7에 해당하는 작은 도시로 13세기부터 번창한 풍부한 역사 유적과 매력적인 자연경관을 간직한 태국의 관광명소이다. 1296년 멩라이 왕이 건설한 고대 란나 타이 왕국의 수도로 오래된 역사만큼 풍부한 고대 유적과 1,250여개의 사원들로 유명하다. 치앙마이는 4천명이 넘는 승려와 7천여명의 수도승이 있는 북부 불교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며,UN에서 지정한 세계 10대 관광지이기도 하다. 또한 현재는 관광과 휴양의 중심지로 발전하고 있으며 근처에 타이 왕족의 여름 별장인 푸핑 궁이 있는 곳이다.
치앙마이 주는 69.31%가 아름다운 산으로 둘러싸인 산림이고,긴 목으로 유명한 카렌족과 같은 1,050개에 달하는 고산족 마을이 위치해 있어 산악민족을 찾아가는 트레킹의 거점지역으로 유명하다. 깊은 산 속을 헤매고,원주민과 생활하고,코끼리와 뗏목을 타고 이동하는 정글 탐험은 치앙마이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요소이다. 다른 밀림들과는 달리 건조 지대에 형성된 치앙마이의 비경은 미얀마까지 이어져 있으며 아시아에서 가장 은밀한 황금의 삼각지대로 불리는 골든 트라이앵글의 교차 지역으로 많은 원주민들의 생활모습은 1년에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또한 치앙마이에는 북부 고원지대에서 살아가는 일곱 산악부족이 있으며 이들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목이 긴 카렌족(Karen)을 비롯하여,메오족(Meo),야오족(Yao),리수족(Lisu),라와족(Lawa),라후족(Lahu),아카족(Akha)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옷 색깔로 구분이 되며 그들만의 문화와 종교,언어 등 전통적인 생활양식을 고수하며 살아 가고 있다. 이들 원주민들의 생활양식 고수는 현대문명에 물들지 않는 주민들이 순수함을 간직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교육
치앙마이의 교육시설로는 1957년 설립된 북부기술연구소와 1934년 설립된 메조 농업기술연구소가 있다. 특히 1964년 설립된 치앙마이 대학교는 치앙마이 지역을 이끌어 갈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 종족 연구소와 란나타 이사회과학연구소,지역광물연구소,북부 타이 산업경제연구소,빈혈증 및 영양실조 연구소,다모작 연구소 등 대학교 부속 연구기관들이 위치해 있다.


산업
세계 최대의 가내공업 중심지인 치앙마이는 근처의 우알라이 로드(Wualai Road),보 상(Bo Sang),산 캄펭(San Kamphaeng),항 동(Hang Dong)에서 생산되는 은세공,목각,도기,우산,칠기 제조와 같은 수공예가 전문적으로 이루어 지며 산캄펭에서는 태국의 전통 견직이 생산되고 있다. 수공예는 수세대에 걸친 이 지역의 전통 가내공업으로 장인들의 솜씨와 공예품들의 아름다움으로 유명하다.
태국의 다른 지역보다 낮은 기온을 유지하는 치앙마이는 농업이 태국에서 가장 발달한 지역이다. 특히 핑강 유역의 쌀경작지에서는 2모작으로 벼농사가 가장 발달되어 있으며 과수재배에 가장 알맞은 기온으로 과일이 매우 풍부하게 생산되고 있다. 산악지대에 위치해 있어 주변의 산지에서 생산되는 각종 목재와 티크재는 제 2차 세계대전 전에는 태국의 주요 수출품이었으며 현재도 많은 채벌이 이루어지고 있다.
태국과 미얀마의 영향으로 독특한 문화 유산을 간직하고 있으며 고대 사원과 유적들은 치앙마이의 예술과 건축미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또한 울창한 밀림지대를 탐험하는 트레킹은 북부지역 트레킹의 메카로 불리는 이곳 치앙마이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치앙마이는 태국내에서 방콕 다음가는 관광도시가 되었으며,오늘날 관광산업이 매우 발달하게 되었다.


치앙마이는 해발 335m의 고지대로 연평균 기온이 26.5도로 태국내의 다른 지역보다 낮은 관계로 벼의 2모작과 과수재배가 발달해 있다. 12월부터 3월까지는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 맑은 날씨를 보이며 8월과 9월에 1년 중 가장 많은 강수량을 나타낸다. 평균습도는 25.9%로 매우 쾌청한 날씨를 나타낸다. 겨울은 10월말부터 2월말까지로 평균기온이 21도이며 특히 밤에는 기온이 10도 가까이 떨어지므로 일교차에 주의해야하며 12월과 1월이 가장 춥다. 여름은 3월초부터 5월말까지로 평균기온이 29.9도이다. 가장 더운달은 4월이다. 우기는 7월초부터 10월말까지 이어지는데 평균기온은 25.5도이며 강수량이 가장 많은 달은 9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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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차나부리

방콕에서 북서쪽으로 110km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칸차나부리는 태국에서 네 번째로 큰 태국 서부의 칸차나부리주의 주도이자,주의 행정 중심지이다. 1833년 라마 3세에 의해 건설된 이 도시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영화 '콰이강의 다리'의 무대가 된 도시로 서쪽으로는 미얀마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콰이 강의 두 지류인 콰이노이(Kwai Noi)와 콰이야이(Kwai Yai)의 메클롱 강이 합류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대부분이 산악지대로 18세기 라마 1세가 미얀마인들의 침략을 막기 위한 방어시설로 세운 성벽도시가 칸차나부리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으며,현재의 칸차나부리 시가지는 이곳에서 약 18km 떨어진 곳에 비교적 새롭게 생긴 도시로 셍츄토 거리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가늘고 길게 뻗어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산림과 더 넓은 평야지대로 조용하고 평화로운 칸차나부리는 현재 태국의 유명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는 도시이다. 1950년대 세계적으로 흥행한 미국 영화 '콰이강의 다리'의 무대로 세계에 알려지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제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이 태국과 미얀마 간 철도 건설에 영국,오스트리아 등 연합군의 전쟁포로를 사역하면서 많은 사망자를 낸 장소로 유명하다. 이외에도 수많은 아름다운 폭포와 동굴,국경 부근에 위치하면서 코끼리와 호랑이 등의 야생동물이 살고 있는 울창한 정글,선사시대 유적지 등이 매우 유명한 곳이다.


산업
미얀마인들의 침략을 막기 위한 방어시설로 세워진 칸차나부리는 대부분이 산악지대로 오늘날 2개의 커다란 제지 공장이 들어서 있으며,임업과 농업이 주요 생계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울창한 산악지대를 토대로 임업이 매우 발달해 있으며,넓은 대나무 밭이 위치하고 있어 칸차나부리 시에 있는 2개의 제지공장에 펄프를 공급하고 있다. 이외에 벼와 담배가 재배되고 있으며,북부의 보프로이에서는 루비 및 사파이어 등 품질 좋은 보석이 생산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또한 카오살로프 야생동물 및 산림보호구역 등이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 코사멧

백사장,야자수,산호초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섬이다.바위로 이루어진 해안선과 형형색색의 산호초가 만들어내는 바다 속 풍경이 뛰어나 허니문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코사멧은 바닷가를 가득 메운 희고 고운 백사장이 자랑. 길이 6km에 폭이 3km에 불과한 작은 섬이므로 각 해변은 도보로 닿을 수 있는거리에 있어 둘러보는 데 어려움이 없고
야자수가 늘어선 열대 해변을 걸으며 낭만을 만끽하기엔 손색이 없는 장소이다.
방콕에서 남쪽으로 2백km 거리에 위치한 코사멧은 지난 81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일체의 개발이 중지된 이후부터 주로 유럽과 일본인들이 많이 찾는 휴양지로 자리잡았다.
따라서 아직까지 국내에는 태국의 유명 관광지들에 비해 덜 알려져 있는 편이다. 이곳에서는 푸켓이나 파타야에서 볼 수 있는 현대적인 리조트 호텔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에 고풍스러운 멋이 있는 전통 건축양식의 리조트와 유리알처럼 맑은 바다,순박함이 묻어나는 사람들의 인간미 넘치는 따뜻한 미소가 있어 신혼여행지로는 손색이 없다.
코사멧으로 들어가는 관문은 두 가지. 나단 선착장이나 아오 윙드안을 통해 섬으로 들어오면 동쪽 지역에 몰려있는 해변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유일하게 서쪽에 있는 해변은 아오프라오 비치이다. 현지인들이 "파라다이스 비치"라고 부를 만큼 코사멧을 대표하는 해변으로 아름다운 경관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장소다.
개발되지 않은 자연 속에 파묻혀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코사멧섬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다.
불편 없이 각종 해양 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편의 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 코사무이 [KohSamui]

방콕에서 남쪽으로 약 560km 떨어진 사무이 섬(Koh Sumui)은 태국에서 3번째로 가장 큰 섬이며,타이만의 남동쪽에서는 가장 큰 섬이다. '코'는 섬이란 뜻으로 섬의 주변에는 86개의 섬들이 위치해 있는데 그 중에 사무이 섬(Koh Sumui)과 사무이 섬 가까운 곳에 위치한 코 팡간(Koh Pha-Ngan),코 타오(Koh Tao),코 탄(Koh Tan) 등 4개 섬에만 사람이 살고 있다. 사무이 섬은 푸켓과는 반대 방향인 태평양 연안에 접해 있어 약간의 거친 느낌으로 다가오는 젊은 여행자들의 천국으로 표현되는 섬이다. 폭 21km,길이 25km인 섬 내부는 수목이 무성하며 해발 600m에 이르는 언덕의 열대 정글로 되어 있으며 평지는 해안선을 따라 위치해 있다.
1979년 전까지만 해도 사무이 섬은 제대로 된 방갈로조차 없는 대륙과 격리된 한적한 곳이었으나 1979년 정부의 관광사업으로 개발되기 시작하여 현재는 섬 내부에 50km에 이르는 긴 주요 고속도로가 있는 관광섬으로 발전하였다.

우리말로 '깨끗한 섬'이란 뜻을 갖고 있는 사무이 섬은 열대의 정글에서 원시적인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 할 수 있는 섬으로 강렬한 태양과,고운 모래,맑고 투명한 마린블루 빛 바다,해변을 따라 늘어선 15m 이상의 야자나무는 남국의 풍경을 자랑하는 천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가장 인기있는 해변은 차웽 해변(Chaweng Beach),라마이 해변(Lamai Beach),메남 해변(Maenam Beach),보풋 해변(Borphud Beach) 등으로 전 세계 배낭여행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방문객의 90%가 유럽인들로 유럽에서 여행지 선호도 1위를 차지하는 남국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비밀의 섬으로 불리는 사무이 섬은 아직 전부 다 알려지지 않은 매력으로 전 세계 여행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사무이 섬의 북쪽으로 12k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팡간 섬은 섬의 중심 통살라(Thong Sala)에 여행객에게 편리한 지역으로 사무이 섬 다음으로 큰 섬이다. 사무이 섬은 큰 호텔들이 생기고,현대적인 관광섬으로 개발되고 있으나 팡간 섬은 원시의 자연 그대로를 간직한 여유로운 분위기의 섬이다. 모터보트를 타고 즐기는 팡가 만의 아름다운 비경은 사무이 섬을 방문한 방문객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산업
사무이 섬의 주요 생계수단은 섬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에서 얻어지는 해산물과 고기잡이이다. 섬 주민 대부분이 고기잡이에 의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현재는 관광산업이 활발히 개발중에 있다. 이외에는 원시적인 열대우림에서 자라는 코코넛 재배가 주요 생계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무이 섬의 코코넛은 맛과 당도 등 품질 면에서 태국 제일의 품질을 자랑하는 것으로 한달에 평균 약 2백만여개의 코코넛이 방콕으로 운송,판매되고 있다.

사무이 섬은 연평균 기온이 30도로 건기,하기,우기의 세 계절로 분류된다. 건기에는 비가 별로 오지 않고 바다가 잔잔한 1월~4월경으로 여행하기에 가장 적당하다. 비수기인 하기는 5월~9월 사이로 매우 덥고 습한 기온이 계속된다. 우기는 10월부터 12월까지로 1년의 반이 넘는 강수량을 차지한다.





▶ 코창 [Kohchang]

뜨랏(Trat)해안에서 8km 떨어진 곳에 30km(길이), 8km(폭)의 크기로 위치해 있는 꼬 창은 태국에서 푸껫 다음으로 가장 큰 섬이다. 이 메인섬을 중심으로 주변에 52개의 섬이 있는데, 이 일대가 1982년에 자연보존구역으로 지정된 '꼬 창 국립공원'이다.

이 국립공원 일대를 찾는 외국인 여행객들의 발길이 점점 잦아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에 맞춰 다양한 숙박시설과 관광시설이 이 일대에 속속 들어서고 있다.

꼬 창은 오랫동안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섬이었기에 아직도 인구가 드물고 내륙의 70%이상이 개발되지 않은 열대우림지대이다. 그 안의 야산과 절벽들이 돌출되어 있지만 흰 모래사장 해변이 원시 그대로의 매력을 지닌 채 길게 뻗어 있어 눈이 확 뜨일 정도로 아름답다. 아울러 청정한 녹지대가 넘쳐나는 이 섬은 열대의 낙원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꼬 창은 '코끼리 섬'이라는 뜻으로 섬 안쪽은 숲이 우거진 산악지역으로 돼 있는데 그 산등성이에서 섬 전체를 바라보면 마치 몇 마리의 코끼리 등을 보는 것 같다. 섬의 서쪽 면에 있는 최고의 해변들을 북쪽부터 남쪽으로 차례로 알아보면, 아오 클롱 손(Ao Khlong Son), 핫 사이 카오(Hat Sai Khao), 핫 클롱 프라오(Hat Khlong Phrao)와 핫 까이 배(Hat Kai Bae)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해변 인근에는 각각 어업, 코코넛 농사, 과수재배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작은 마을들이 있다.

비치와 주변의 산호초 풍경은 수려함을 자랑한다. 이 일대 섬들의 물 속에는 휘황찬란한 산호가 풍성하고, 전반적인 수질 조건과 환경에 있어서 스쿠버 다이빙 하기에 제격이다. 뿐만 아니라 스노클링을 하거나 배를 빌려 고기잡이를 나가는 등 다양한 해상레저활동을 즐길 수 있다.

해변에서 조금 벗아난 내륙지역 곳곳의 숨겨진 비경을 찾아 하이킹을 즐기기에도 좋다. 꼬 창의 자연경관 중에서 한폭의 그림과도 같은 몇몇 폭포를 빼놓을 수 없는데 그 중 여러 계단으로 된 폭포지대를 흘러내려 온 폭포수가 암벽 협곡을 지나 깊은 연못 속으로 급강하 하면서 장관을 이루는 '딴 마욤(Tan Mayom)폭포가 가장 압권이다.

코창은 태국의 다른 동남쪽 지역과 마찬가지로 11월부터 4월까지는 건기, 5월부터 10월까지를 우기로 나눌 수 있다. 건기의 낮평균 기온은 30도 정도이다. 우기에는 가끔 폭우가 내리는 스콜(소나기)현상이 있으나 맑은 날수가 많은 편이다.




▶ 크라비

면적은 4,708.5㎢, 인구는 2만 4700명(2003)이다. 북위 8.05˚, 동경 98.91˚에 위치하며, 수도 방콕에서 남쪽으로 814㎞, 타이에서 가장 큰 섬인 푸껫섬에서 동쪽으로 45㎞ 떨어져 있다. 동쪽으로는 니콘 시 타마랏, 서쪽으로는 푸껫섬, 남쪽으로는 트랑, 북쪽으로는 수랏 타니와 접한다. 기후는 12~3월은 건기이고, 5~9월과 열대 계절풍기후(열대몬순)가 시작되는 9월 말에서 11월까지는 비가 내린다.
끄라비주의 주도(州都)이자, 130여 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끄라비 군도의 중심지이다. 끄라비 군도 전체의 인구는 34만 9800명(2003)으로, 이 가운데 60%가 불교도, 40%가 이슬람교도이다. 이는 불교 국가인 타이의 다른 지역들과 달리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주요 산업은 수산업이며, 고무나무·야자나무 재배와 새우 양식도 활발하다.
타이 최대의 관광지인 푸껫섬에서 가깝고,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으로 인해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관광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카르스트 지형의 해안에는 7500만 년 전에 만들어진 조개화석층으로 인해 수백 미터까지 치솟은 기암괴석이 즐비하고, 인근에 2개의 큰 섬으로 이루어진 피피섬과 '치킨 아일랜드'로 불리는 코카이섬, 4개의 해양국립공원이 있다. 또 맹그로브가 가득한 정글, 수많은 석회암 동굴, 수천여 종에 달하는 열대어 등 곳곳에 볼거리가 있다.
대표적인 관광지로는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한 라이레이 비치, 프라낭만(灣)을 따라 펼쳐지는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을 들 수 있다. 그 밖에 100여 개의 빌라와 천연 원두막, 동양과 서양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 해양 스포츠 등의 시설을 갖춘 라야바디 리조트를 비롯해 각종 휴양·숙박 시설이 있다. 교통은 방콕에서 비행기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리고, 푸껫섬에서는 배로 2시간 정도 걸린다.




▶ 파타야 [Phatthaya]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부는 우기의 시작을 알리는 바람이란 뜻의 파타야는 타이만의 얼굴로 방콕에서 남동쪽으로 147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방콕에서 자동차로 약 2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세계적인 휴양지로 "아시아 휴양지의 여왕(Queen of Asia's Resorts)","동양의 하와이","타이의 리비에라"라고 불린다. 파타야는 연간 100만명 이상의 전세계 관광객이 몰려드는 동남아시아 최고의 해변 휴양지이다.
20년의 짧은 역사를 가진 파타야는 옛날에는 왕실 요트 클럽만 있는 한적한 어촌에 불과했으나 1961년 베트남 전쟁시 미국의 휴가병을 위해 나콧 랫차시마 지역을 방문한 미국의 관광 개발 그룹에 의해 세계적인 휴양지로 발전하였다. 최근에는 아시아 각지에서 몰려드는 많은 단체관광객들로 인해 화려한 숙박시설과 편의시설들이 확충되면서 여전히 해변 휴양지로써의 명성을 누리고 있다.

타이만을 향해 전체 3km의 기다란 해안선이 펼쳐져 있으며 그 해안선을 따라서 남북으로 두 개의 큰 도로가 있다. 두 도로 사이에 호텔들과,나이트클럽 등이 북적거리고 있으며 Soi의 작은 골목들로 이루어져 있다. 밤에는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깔의 유흥도시로 불야성을 이루고,낮에는 수영객들과 낚시,수상스키,수쿠버다이빙,윈드서핑 등과 같은 해양 스포츠의 낙원으로 변모하는 파타야는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위락시설과,아름다운 경치,방콕과 가까이 위치한 지리적 장점으로 인해 가족단위의 관광객들에게 최적의 장소를 제공한다.

고운 모래의 백사장과 따뜻한 바닷물,작렬하는 뜨거운 태양아래서 누구나 원하는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는 파타야는 어린이를 위한 오락시설과,한가로운 휴식을 즐기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주변의 코란섬과,코사멧섬,라용 등의 아름다운 경치를 갖고 있다. 그리고 연중내내 각종 해양스포츠와 승마,골프,사격,테니스 등 여가를 즐기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장비와 모든 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곳이다

연평균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파타야는 1년내내 해양 스포츠를 즐기기에 최적의 기후조건을 보이고 있다. 강수량은 5월과 10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내리고 있다.

라용 그린벨리 컨츄리 클럽 I 람차방 인터네셔널 컨츄리 클럽 I 바나나보트 I 시암 컨츄리 클럽 I 씨푸드 I 카오케오 컨츄리 클럽 I 크리스탈베이 골프 리조트 I 파타야 페스티벌 I 피닉스 골프 & 컨츄리 클럽




▶ 푸켓 [Phuket]

태국 남부,말레이 반도 서해안 안다만에 위치한 태국 최대의 섬으로 동남아시아의 대표적인 휴양지이다. 자연 진주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여 남쪽의 진주로 불리는 푸켓섬은 말레이어로 '부킷'에서 유래된 말로 산이 많은 아름다운 섬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넓이 약 20km,길이 약 50km로 남과 북으로 나뉘어진 태국에서 가장 큰 섬으로 자치권을 갖고 있으며,북쪽으로는 7개의 읍,45개의 면,남쪽으로는 8개의 읍,15개의 면으로 구분되며 중심지는 푸켓시이다. 푸켓시는 푸켓군의 행정중심지이자 주요 항구로 안다만 해의 상업 중심지 역할을 한다. 이 항구를 통해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미얀마 등과 교역이 이루어지고 있다. 푸켓섬은 대부분이 평지이지만 높이 520m에 이르는 언덕들이 드문드문 위치해 있다.

말레이인들에게는 살랑 곶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통가,중크실론,존살람이라는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 지금의 푸켓의 이름은 이곳에 풍부한 주석광산이 있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는데 타이 주석 생산량의 1/3가량이 생산되고 있으며 광산,농업생산물,해산물이 주요 생계 수단이다. 특히 관광산업과 어업이 주요산업으로 태국내의 73개 도시 중 2번째로 높은 국민소득을 올리고 있다. 주민의 약 70%가 불교도로 대부분 원주민과 바다 집시들,타이,인도,말레이,인도,미얀마 등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푸켓 시내의 도로는 방사형 도로로 일방통행이 많으며 주로 시내버스와 툭툭이가 대중 교통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방콕에서 862km 떨어져 인도양에 위치한 푸켓은 내륙과는 660m의 사라 센 다리와 1992년에 개통된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주위의 39개의 크고 작은 아름다운 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섬의 남쪽과 서쪽으로는 안다만 해가,동쪽으로는 크라비 해와 맞닿아 있다. 태국어로 아름다운 비치라는 뜻의 푸켓은 파타야의 화려함과 사무섬의 소박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매력적인 휴양지이다. 아름답게 펼쳐진 해안가와 그림 같은 수목이 우거진 언덕을 배경으로 연간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푸켓은 뜨거운 태양과 고운 모래사장 그리고 얕은 수심과 잔잔한 파도의 따뜻한 바다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섬이다. 아시아에서 가장 깨끗한 휴양지로 알려진 푸켓은 훼손되지 않은 순수한 자연미의 열대섬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세계 10대 섬 중 피피섬과 시밀란섬 2개를 보유하고 있다.

39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푸켓섬은 해양스포츠의 천국으로 불린다. 얕은 수심과 잔잔한 파도로 인해 스킨스쿠버,파라세일링,스노클링,윈드서핑,낚시 등의 낙원으로,특히 태국의 대표적인 골프장으로 각광 받고 있다.
열대성의 아름다운 풍경과 생물들은 해양스포츠의 낙원으로,팡아만와 피피 섬,시밀란 섬 등에서의 한적하고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해변 휴양지로,푸켓타운과 같은 번화한 장소에서의 나이트 라이프 등 푸켓섬은 관광의 모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태국 최고의 섬이다.


산업
오늘날 관광산업과 어업이 주를 이루고 있는 푸켓은 태국내에서도 73개의 도시 중 방콕 다음으로 높은 국민소득을 자랑한다. 아름다운 해안가는 연간 100만 이상의 관광객들로 붐벼 관광산업이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연안어업도 성행하고 있다. 특히 푸켓은 20세기 초부터 유럽 자본에 의한 주석채굴이 시작되어 방대한 주석 채굴로 유명하다. 이 주석광산에서는 저지대 사력층과 얕은 해양저에서 발견한 광석을 하천.해양용 준설선과 펌프로 캐내는데 현재는 태국 유일의 미국계 주석 제련공장이 위치하고 있어 태국 주석 생산량의 1/3을 생산하고 있다.

활발한 안다만해의 상업 중심지 역할을 하는 푸케타운은 푸켓섬의 행정 중심지이자 주요 항구로,이 항구를 통해 주석,고무,숯,목제,어류제품 등이 남쪽의 말레이시아,싱가포르,북쪽의 미얀마 등으로 수출되고 있으며,쌀과 제조품이 수입되고 있다. 이외에도 푸켓은 고무 재배가 성하며,광산,농업생산물,해산물 등으로 오늘날의 부를 이룩하였다.


푸켓은 매년 다른 북부지방보다 빠른 5월경에 몬순기후가 시작되어 보통 늦은 10월경에 끝난다. 비가 끊임없이 쏟아지는 9월 15일부터 10월 15일까지의 기간과는 달리 대개의 날들은 몬순기후를 보이고 있다. 가장 좋은 달은 주간과 야간에 낮은 온도를 나타내는 11월부터 2월까지이다. 연평균 기온은 27도로 높을 때는 34도까지 나타내지만 낮을 때는 21도까지 떨어진다. 또한 낮과 밤의 기온차가 심하므로 일교차에 주의해야 한다. 특히 물의 온도가 20도 아래로 떨어지는 경우가 절대 없는 것이 푸켓 날씨의 특징이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방콕에서 푸켓으로 들어올 경우에는 항공기나 버스,기차를 이용하면 된다. 항공기는 약 14편 정도의 정기노선이 있으며 시외버스는 방콕의 키오산로드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기차로 올 경우에는 방콕에서 푸켓까지 직접 오는 기차는 없고 수랏타니역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이외에 푸켓에 오는 방법에는 싱가포르에서 태국의 핫야이나 크라비를 거쳐 방문할 수 있으다. 푸켓에서 핫야이,페낭,쿠알라룸푸르,방콕,수랏타니 등으로 버스를 이용해서 갈 수 있으며 항공기를 이용할 수도 있다.

철 도
푸켓타운에는 기차역이 없기때문에 방콕에서 기차를 이용할 경우에는 회람퐁역에서 2등 침대칸을 이용하여 수랏타니까지 이동하여 버스를 이용해 푸켓에 오는 방법이 가장 좋다. 버스만 이용하는 방법보다는 편하다. 수랏타니 기차역에서는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하루 3대 푸켓행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시외버스
방콕의 남버스터미널에서는 매일 여러대의 푸켓행 버스가 출발한다. 시간은 약 14시간정도 소요되며,요금은 VIP가 570바트,에어컨버스가 378~450바트,일반버스가 210바트이다. 방콕의 키오산로드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이요할 경우에는 14~18가량 소요되며 요금은 250~330바트이다. 주로 야간에 출발하여 푸켓에는 다음날 아침에 도착한다.
푸켓에서 다른 지방으로 이동할 경우에는 시내 동쪽에 위치한 버스터미널을 이용하는 경우와 푸켓의 여행사 버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버스터미널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핫야이까지 8시간 소요로 로컬버스가 120바트,에어컨버스가 200바트이다. 정규 버스는 오전에만 있다. 페낭까지는 오전 8시와 오후 8시 30분에 출바하는 2대의 버스가 운행되며 요금은 550바트부터이다. 쿠알라룸푸르까지는 1일 1번 운행되며,방콕까지는 14시간 소요로 로컬버스는 210바트,여행사버스는 550바트부터이다. 파통,카론,카타비치까지는 30분이 소요되며 로컬버스로 요금은 20바트이다. 수랏타니까지는 4시간이 소요되며 요금은 에어컨버스가 120바트이다. 푸켓 행사버스를 이용할 경우에는 방콕까지가 550~750바트,핫야이까지가 300~450바트,쿠알라룸푸르까지가 650~950바트 등이다.

페리(배 등)
푸켓에서 배편으로 이동하는 경우는 주변의 섬들을 여행하는 경우로 피피섬까지 약 2시간 소요되며 매일 오전 8시에 출발한다. 또한 피피섬에서 크라비로,크라비에서 핫야이를 거쳐 페낭까지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크라비까지는 배편을 이용하고 핫야이부터는 버스를 이용한다.


[클럽메드] 사이몬 카바레 I 라구나 골프 클럽 I 로취팜 골프 클럽 I 반얀트리 푸켓 I 블루캐년 컨트리 클럽` I 수린비치 리조트 I 타이무앙 비치 골프 & 마리나 I 팡아베이리조트 I 푸켓 컨트리 클럽




▶ 핫야이

말레이시아로 가는 관문인 핫야이는 오랜 옛날 핫야이 강을 따라 모래사장이 있었다고 하여 '큰 해변'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주요 도로와 철도,항공로가 교차하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태국 남부의 최대 도시 핫야이는 매우 바쁜 상업 중심지로 태국인과 외국의 상인,여행자 등으로 항상 붐비는 도시이다. 우리 나라 서울의 세운상가나 용산 전자상가와 같이 생선,과일 등의 식품에서부터 라디오와 스테레오와 같은 공업제품까지 매우 다양한 상품들이 진열,판매되고 있다. 또한 주말이 되면 풍부한 쇼핑과 나이트 라이프를 즐기기 위해 국경을 넘어오는 말레이시아 사람들로 가득차기도 한다. 이러한 말레이시아와 태국 각지에서 풍부한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 몰려오는 사람들로 인해 핫야이는 태국 제 2의 경제도시로 성장하는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
방콕에서 약 954km 가량 떨어져 있는 핫야이는 철도역을 중심으로 건설된 도시이다. 동서로 뻗어 있는 주요 해안도로와 철도가 교차하고,국제 공항이 위치하고 있는 핫야이는 태국 남부의 최대 도시로 말레이시아의 페낭과 싱가포르,쿠알라룸푸르로 가는 관문이기도 하다. 철도의 선로와 평행하면서 건설되어 있는 3개의 큰 니팟우탓 거리(Niphat Uthit Road) 1st,2nd,3rd를 중심으로 사방 500~1,000m 내외에 중심 상가가 형성되어 있다. 또한 태국의 각지에서 국경을 넘기 위해 태국 현지인과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어 태국 남부의 교통 요충지 역할을 하고 있다.




▶ 후아힌

태국만의 동쪽에 위치한 차암과 후아힌은 방콕에서 남서쪽으로 약173km와 약 230km 가량 떨어져 있는 가족휴양지이다. 태국의 행정구역상 중부에 속하는 도시로 화려하고 다양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파타야와는 반대로 조용하고,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해변 도시이다. 또한 이곳은 강렬한 태양과 바다, 모래가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자연과 고급 리조트를 갖춘 곳이다. 차암과 후아힌은 약 25km 정도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으며 태국인들이 주말마다 찾는 휴양 명소이다. 오늘날에는 유럽인들에게 많이 알려지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세계적인 가족 휴양지로 발전하고 있다.

후아힌은 태국에서 가장 오래된 해변으로 유명한데 1920년대 라마 7세 국왕으로부터 '걱정은 저멀리'라는 뜻의 클라이 캉원(Klai Kangwon)이라는 특별칭호를 수여 받은 조용하고 아담한 항구도시이다. 길고 깨끗한 해변으로 유명한 후아힌은 방콕 사회의 상류계층 사람들의 휴양지로 유명해지면서 태국 현지인들이 동경하던 휴양지였다. 현재도 후아힌은 방콕 왕족이 1년 중 일정기간을 후아힌에서 휴가를 즐길 정도로 아름다운 해변이다. 태국어로 '돌머리'라는 뜻의 후아힌은 바위가 많기로 유명한 해변으로 한가롭게 휴가를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 몇년동안 많은 고급 호텔들이 개장하면서 후아힌은 현대적인 시설과 더불어 1920년대 건축물들이 원형 그대로 복원되어 현대적인 미와 과거의 웅장한 멋을 함께 간직하고 있는 작은 해변으로 세계적인 해변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다.

차암은 후아힌보다 더 작은 항구도시로 외국의 유명 관광지와는 전혀 다른 태국 고유의 분위기와 특성을 잘 나타내주고 있는 아름다운 휴양지이다. 내륙쪽으로 자리잡고 있는 파인애플 농장이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길게 뻗어 있는 깨끗한 해변이 자랑거리인 차암은 열대의 강렬한 태양과 모래사장,오염되지 않은 맑은 바닷물에서 평화롭고 여유로운 휴양과 다양한 수상스포츠,맛있고 다양한 해산물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또한 마을에는 차암 특유의 전통 생활 양식을 고집하고 살아가는 차암 현지인들의 생활모습이 매우 흥미롭게 다가오는 도시이다. 오늘날 차암은 현대적인 최고급 호텔들과 저렴한 방갈로,각종 오락 시설들이 들어서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산업
차암과 후아힌 주민들의 주요 생계수단은 아직까지도 어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후아힌의 명물로 꼽히는 오징어는 후아힌 어업의 주종으로 품질 좋은 많은 오징어와 건어물들이 태국의 각 지역으로 판매되고 있으며,후아힌 항구와 해변에서는 그날 잡은 물고기들이 수산시장을 통해 판매되고 있다. 또한 조개껍질로 만든 기념품과 이 지역 특산물인 나염 무늬 면인 파콤마팟(Pha Khommaphat),그리고 태국 전통과자인 카놈(Khanom)이 매우 유명한 특산물이다. 차암에서는 내륙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파인애플 농장에서 생산되는 맛좋은 파인애플은 태국 전역에서 알아주는 유명한 농산물이다.


연평균 기온이 27.3도인 차암-후아힌은 연중내내 20도 이하로 내려가는 경우가 없는 매우 따뜻한 날씨를 유지하고 있다. 강수량도 매우 적은 편으로 10월과 11월에 집중적으로 내리고 있다. 이러한 날씨로 인해 차암-후아힌은 해양 스포츠와 골프, 강렬한 태양아래 휴식을 취하기에 최적의 날씨를 갖추고 있다.

임페리얼 레이크 뷰 호텔 & 골프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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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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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밀도는 71.4명/㎢(2001)이고 공용어는 캄보디아어이다.
북동쪽으로 라오스,동쪽과 남동쪽으로 베트남,북쪽과 서쪽으로 타이에 접하며,남서쪽으로 시암만(灣)에 면한다.






면적 : 18만 1035㎢

수도 : 프놈펜(Phnom Penh)

인구 : 1272만 명

정치형태 : 입헌군주국

종교 : 캄보디아는 98%가 불교이며 정령숭배적인 요소가 매우 강하다. 소승불교가 캄보디아에서는 가장 널리 퍼져 있으며 1975년 까가지는 국교였다. 1980년대 후반 소승불교는 국교로 복귀했다. 1975-1979년 사이 수많은 캄보디아 승려들이 크메르루즈에 의해 살해 당했으며,3천개가 넘는 절들이 파괴되었다. 1990년대 많은 절들과 모스크가 복원되었으며 스님들의 탁발이 다시 일상적인 모습이 되었다. 대부분 크메르족은 불교 신앙에 곁들여 초자연적 존재인"네악 타"(neak taa)를 믿는다.'네악 타'는 죽음의 영도 될 수 있으나 항상 살아있는 영으로 간주된다. 그 영은 적절한 경의를 표하면 해를 받지 아니하나 그렇지 않으면 질병이나 가뭄을 가져온다고 믿어진다. 크메르족들은 석가의 생애를 경축하는 여러 가지 행사를 가지고 있다. 폴포트 정권의 붕괴이후 종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불교의 부흥이 일어나고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동남아의 여타 국가와 마찬가지로 모슬렘이 부흥하고 있고,힌두교도 서서히 증가하고 있다.
타일랜드에 있는 크메르 난민촌 피난민들이 기독교에 대하여 열린 자세를 취하고 있다. 지난 15년동안 캄보디아의 기독교인들은 박해를 받아왔다. 크메르족은 기독교를 서구의 종교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전쟁과 사회적 혼란으로 인한 민족주의와 불교사이의 괴리현상으로 인하여 학생들과 지식인들은 기독교에 대하여 개방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1954년에 전체 성경이 크메르 언어로 번역되었다. 크메르어로 된 신앙서적이 있으며 영화'예수'가 크메르어로 번역이 되어 있다. 크메르족에게는 무엇보다도 현재 그들의 육체적,정서적 요구를 채워줄 수 있는 사역이 요구된다. 20년이 넘도록 그들은 전쟁에 시달려 왔기 때문이다.

주요민족 : 캄보디아인(크메르족)이 전 인구의 95%를 차지하며 그밖에 중국인·베트남인(人)·참족(族)·고산족 등이 있다. 주로 상업에 종사하는 중국계는 5.1%를 차지하는데,출신지는 차오저우[潮州]·광둥[廣東]·푸젠[福建]·하이난[海南] 등이다. 베트남인은 1977년까지 4.5%를 차지하여 어업 외에 목수,미장이,이발,기계수리 등의 기술적 직업에 종사하였으나,1977년부터 베트남-캄보디아 분쟁으로 대부분 베트남으로 도피하였다.
이밖에 크메르이슬람이라는 소수의 참인(人)이 어업에 종사하며,크메르루(상부크메르)로 총칭되는 쿠이족·스첸족·프놈족·자라이족 등 소수민족이 화전농업을 영위하고 있다.

주요언어 : 크메르족의 공용어인 캄보디아어(語)를 사용하며 중국계는 여러 언어를 사용하나 중국인들간의 공통어로는 광둥어가 우세하다. 50대 이상의 장년층은 프랑스어,청년층은 영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경제
캄보디아는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중에 하나로,그들은 주로 공무원,어업,농업,소규모 무역상,식당경영,상점주인,자동 판매기업등에 종사한다. 인구의 80% 이상이 농업활동에 종사하며 15%가 경제분야에서 봉사한다. 주 수입원은 잉여농산물 판매,어업,원목,보석,채광 및 판매,소매사업등을 통해서 얻어진다. 생산물로서는 고무,쌀,콩,담배,시멘트,제지,생선,옷감,바스켓,비단생산과 직조등이며,무역상대국은 러시아 동구유럽,싱가포르,타일랜드,홍콩,일본,베트남 등이다. 고무,원목,콩,담배등은 수출하고 식량,원유,소비재,원자재등 수입한다. 현재 프놈펜에 4개의 전력발전소가 있고 그 외에 몇 개가 더 있다.
모든 연료와 대부분의 원료,자본재,소비재를 수입해야한다. 최근에 주 수출품이 고무에서 목재로 바뀌었다. 목재는 현재 캄보디아 수출액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이외 금과 담배의 적환이나 외국의 원조가 경제를 지지하는 주요 재원이 되고 있다.

기후
전형적인 열대몬순기후로 10월 중순∼5월 초의 건기와 5월 중순∼10월 초의 우기로 나누어진다. 건기는 비교적 서늘한 11∼2월과 더운 3∼5월로 나누어져 앙코르와트를 방문하는 관광객은 12∼1월에 많다. 강수량은 주변 산지에 많고 몬순의 영향이 미미한 중앙평원에서는 적다. 연평균강수량은 1,000∼1,500mm이나 남서부 산지의 바다쪽 경사면은 5,000mm 이상이다. 따라서 식생은 주변산지에 밀림이 우거져 있을 뿐 다른 지역은 관목과 초원이 혼합하는 사바나의 경관을 이룬다. 중앙평원은 제1의 농업지역으로 대부분은 논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기후가 자연식생에 적합하며 동물로는 코끼리,야생 물소,호랑이,퓨마,표범,곰 등과 수많은 작은 짐승들이 있으며 특히 코브라,왕코브라,줄무늬크레이트(코브라의 일종),러셀 등 위험한 독사가 많다.

사회문화
캄보디아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아시아에서 최저인 49.7세이다. 전 인구의 5%만이 안전한 식수를 공급받을 수 있다. 기본적인 에너지원은 땔 나무이다. 크메르 건축은 앙코르 시대에 그 정점에 이르렀다. 이 시대의 훌륭한 건축물들 중 일부가 앙코르왓 (Aagkor Wat)과 앙코르 톰 (Angkor Thom)이다. 뛰어난 크메르 조각품의 다수가 푸놈펜에 있는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타이댄스와 비슷하고 원류도 같은 앙코르 댄스로부터 채택된 전형화된 캄보디아의 고전춤이 전통악단과 여러 사람의 이야기꾼을 동반해서 공연되고 있다. 프놈펜과 시엠립 (Siem Reap)에서 고전춤을 볼 기회를 쉽게 가질 수 있다. 힌두 서사시에 기초한 민속무용,극,민속음악 등이 있다.

지리
캄보디아는 인도차이나 반도 남동부 캄보디아평원을 차지하며 메콩강(江)이 중앙을 관류하는 평원국가이다. 지형은 남쪽을 제외한 3방향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산지의 중앙에는 넓은 평원이 전개되어 있어 마치 얕은 대접 모양의 지형을 이룬다. 주위의 산지는 가장 높은 남서부의 카르다몸(크라반)산맥도 해발고도 1,000∼1,500m에 불과하다. 이들 산지는 중앙부를 향하여 완만하게 경사져 있으며,서부에서 가장 움푹 팬 부분이 톤레사프(‘큰 호수’라는 뜻)이다. 중앙의 캄보디아평원은 처음에는 해저지역이었으나 충적작용에 의해 평야로 바뀌었고,해발고도 20m부터 수백m에 이르는 작은 구릉(프놈)이 산재하여 단조로운 평야의 경관을 깨뜨린다. 국토의 약 3/4은 삼림으로 덮여 있다.

북부·서부·남서부의 산지에서 흘러내리는 강은 모두 톤레사프호(湖)로 유입하며 호수의 동쪽 끝에서 톤레사프강이 되어 남동쪽으로 향한다. 동부 구릉의 가장자리로는 메콩강이 흐르며 북동부 산지에서 흘러내리는 지류가 유입된다. 메콩강은 라오스 국경의 콘폭포로부터 캄보디아평야를 남쪽으로 관류하면서 세콩강·세산강의 지류를 합하여 강폭을 넓히고,다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톤레사프강과 합류한다. 갈수기에는 톤레사프호의 물이 톤레사프강으로 흘러 프놈펜 부근에서 메콩강에 합류하고 여름의 용수기에는 프놈펜으로부터 물이 역류하여 호수로 들어가 유량 조절지의 역할을 한다. 톤레사프호의 호안선(湖岸線)은 지도상에 나타난 것보다 훨씬 넓은 지역까지 확대된다.


간단한 현지어
현지어 : 초모리아푸 수아
의 미 : 안녕하십니까?
현지어 : 타라이 퐁만
의 미 : 얼마입니까?
현지어 : 솜투
의 미 : 실례합니다
현지어 : 오쿤 추란
의 미 : 고맙습니다
현지어 : 타라이 낫
의 미 : 비쌉니다


역사
BC이전 역사 개요

기원전 2000년에서 1000년사이에 현 캄보디아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했으며,1~6 세기경에는 중국과 인도사이의 무역로를 차지하고,번성을 구하하던 후난 (Funan) 왕국이 있었다. 건축과 조각에서 두각을 나타낸 앙코르 시대는 800년 경 자야바르만 2세(Jahavarman II)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의 재위 기간에 정교 일치의 권한을 가진 데바라자(Devaraja; (신왕) 의 크메르 통치가 성립되었다. 앙코르 주변에 관개 시설을 이용한 집약적인 농사가 이루어졌으며,그 결과 크메르 인들은 고도로 중안집권화된 국가에서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AC 1년 - 1900년 까지의 역사

1863년부터 90년 동안 프랑스가 캄보디아와 베트남을 식민지 통치했으며,1953년 캄보디아는 독립을 선언 했다. 그후 15년 동안 노로돔 시하누크(Norodom Sihanouk) 왕이 캄보디아 정치를 좌지우지 했다 (후에 그는 수상,국가 원수를 거친 다음 다시 왕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그는 좌우 세력을 오가며 연합전선을 펴는 변덕 스러움과 억압적인 정치 스타일 때문에 1970년 군부에 의해 쫓겨나 중국으로 망명했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1969년부터 캄보디아는 베트남 전쟁에 말려들었다. 미국은 캄보디아 내에 있다고 의심되는 공산군 기지를 부수기 위해 비밀 융단 폭격을 실시 했으며,1970년 쿠데타후에 미국과 월남군은 월맹군의 뿌리를 뽑기위해 캄보디아를 침공했다. 그들의 침략은 실패했지만 캄보디아의 자체 혁명 세력인 크메르루즈 (불어로 루즈는 붉은색을 뜻한다) 를 내륙 오지로 몰아내게 되었다. 이후 캄보디아는 전체가 참혹한 싸움에 빠져들었으며 사이공이 함락되기 2주 전인 1975년 4월17일 크메르루주가 프놈펜을 점령함으로써 전쟁이 끝났다. 곧 크메르루즈의 지도자 폴포트 (Pol-Pot)의 지휘아래 지금까지 행해진 것 중에서 그 어떤 것보다 급진적이고,잔인한 사회개조가 시도되었다. 목표는 캄보디아를 농민이 지배하는 사회주의 농업협동조합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후 4년동안 식자층을 포함한 대부준의 도시인들이 농촌 지역으로 재배치 되었으며,고문을 당해 죽거나 처형당했다. 크메르푸즈의 정책 때문에 적어도 백만명,많게는 2백만명의 캄보디아 인들이 1975-1979년 사이에 죽었다.
1978년 말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했으며,그 결과 크메르루즈는 태국과의 국경지대에 있는 캄보디아 서쪽의 정글로 쫓겨 갔다. 1970년대 후반 부터 1980년대에 걸쳐 크메르루즈는 중국과 태국 (간접적으로 미국이 지원)의 도움을 받아 베트남의 조종을 받는 프놈펜 정부에 대항하여 게릴라 전을 전개했다.
1993년 중순 유엔의 관리하에 캄보디아에서 선거가 치뤄졌다. 새로운 헌법에 의해 노로돔 시하누크가 다시 왕이 되었다. 현 정부는 독립연합전선 (United Front for an Independent)으로 노로돔 나나리드 왕자 (Prince Norodom Ranariddh) 가 이끄는 FUNCINPEC (Neutral and Free Cambodia) 당과 훈센 (Hun Sen)이 이끄는 캄보디아 민중당 (Cambodian People's Party)이 합쳐진 연정이다. 캄보디아 정부와 연정 수립을 위해 많은 협상에도 불구하고 크메르루즈는 여전히 제도권 정치 밖에 있으면서 캄보디아의 안정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러나 1998년 8월 UN의 감시하에 치른 선거에서 훈센이 승리를 거둠으로서 2원 집정체제의 문을 내리고 1원 집정체제로 정치적 안정을 되찾으면서,그동안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많은 혼란을 야기 시켰던 크메르 루즈군도 이제 거의 투항하여 극 소수의 일부를 제하고는 이제 정부군으로서 혹은 사회에 복귀함으로서 정치와 사회적인 안정을 되찾고 있다.


유용한전화번호
주 캄보디아 대사관
-주소:House No. 64,Street No. 214,Phnom Penh,ingdom of Cambodia
-전화:(855-23) 211 901/2,팩스:(855-23) 211 903
-E-mail 주소:embkorcam@bigpond.com.kh
-정무 통상:koreanemb@bigpond.com.kh
-비상시 연락처:영사 핸드폰 012-813422
-프놈펜 한국무역관(KOTRA):214465,982911

긴급연락처(경찰서,병원 등)
-경찰서
경찰 비상전화:117 / 366 842 / 720 235
교통경찰:722 067
-소방서:118 / 723 555
-병 원
구급차:119
SOS Clinic:216 911
Hospital Calmette:426 948
Raffles Medical Center:012-811 088
※ 경찰서 및 병원에 전화연결이 되지 않을 경우 또는 긴급사태 발생시 대사관이나 한인회로 연락 요망

주요기관 연락처
-한인회
사무실:300112
김용덕 회장:015-917 935
정한칠 총무:016-831 738
-외국 항공사
타이항공(TG):214394,214359
Royal Air Cambodge(VJ):428891 / 3
베트남 항공(VN):363396 / 7
실크에어(MI):364747,363443
방콕에어웨이(PG):426624
-아국인 경영 여행사
한신 투어 스타트:012-813 823
오픈 트레블:015-917 338

의료시설
이 나라의 보건 위생관계는 매우 빈약하다. 폴포트 정권(1975-1979)이 거의 모든 의사들을 죽였기 때문이다. 1989년 통계로는 1000명당 1.6개의 병원침대가 있고 10만명당 5,3명의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는 전국에 700명의 의사,치과의사,약사가 있을 뿐이다. 풍토병인 장티푸스,말라리아,이질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265명중 매달 지뢰로 인하여 지체를 잃어버린다.

치안
일반적으로 캄보디아내 치안상태는 양호하지 못하다. 관광객들이 준수해야 될 안전수칙은 다음과 같다. 1) 야간외출을 삼가고 단체행동을 하는 것이 좋다. 특히 야간에는 오토바이 택시 및 시클로(인력거) 탑승을 삼가야 한다.
2)범죄발생 빈도가 높은 후미진 지역 출입을 삼가야 한다.
3)집회,시위,정치적 성격의 회합장소 접근을 삼가야 한다.
4)고액권 화폐 과시하는 행위를 삼가도록 한다(범죄의 표적이 됨).
5)캄보디아는 AIDS 보균자가 증가추세에 있으므로 유곽출입을 삼가야 한다.
6)경찰복이나 헌병복장을 한 무장강도에게 폭행 및 강도를 당한 외국인이 많으므로 주의 요한다.
7)개인적으로 차량렌트 하여 관광할 경우,차량 운전자는 호텔 등에 알선을 부탁하여 신원 확실한 사람이어야 납치 등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
8)여권 및 귀중품 주의 참고로 캄보디아의 대표적 관광지인 시엠리엡(앙코르 왓트) 및 깜뽕솜(해수욕장)의 치안은 수도인 프놈펜에 비해 양호하며,외국인이 비교적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지역이다.

현재도 지방 오지로의 여행은 위험하며,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지역도 야간에는 통행을 삼가는 것이 좋다. 캄보디아에는 800만개 이상의 지뢰가 매설되어 있다고 추정되므로,인적이 드문 곳은 지뢰사고의 위험이 상존한다.

통화
리엘(Riel)
환율 : 3,835 Riel = 1달러


주의사항
현지 노천식당은 비위생적이므로 피하는 것이 좋으며,현지 식당에서 제공하는 얼음은 삼가는 것이 좋다. 수돗물은 삼가고 쉽게 구할 수 있는 미네랄 워터를 이용한다.
직사광선에 노출을 삼가고,모자 및 선글라스 착용한다.
말라리아 및 뎅기 열병의 위험이 있으므로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주의한다.
여행에 필요한 상비약 휴대 권장 1997년 WHO 발표에 의하면 주재국에는 에이즈 감염자가 10만 이상이라고 하므로 유곽 출입은 삼가야 한다.


비자
▣ 국내 비자발급처
기 관 명 : 종로구청4층 외무부 여권과
전화번호 : 731-0610-4
근무시간 : 09:00~18:00

▣ 비자신청시 유의사항
개인적인 일로 여행을 할 경우는 방콕이나 사이공 출발 적어도 60 일전에 모든 서류를 내어야 한다.  
입국시 공항에서 신청자의 요구에 따라 유효기간 30일의 여행자 및 비즈니스 비자 비자 수수료는 여행자 비자 20불, 비즈니스 비자 25불임 장기 체류시 반드시 비즈니스 비자 취득 요망(여행자 비자는 연장 불가)


전형적인 열대몬순기후로 10월 중순∼5월 초의 건기와 5월 중순∼10월 초의 우기로 나누어진다. 건기는 비교적 서늘한 11∼2월과 더운 3∼5월로 나누어져 앙코르와트를 방문하는 관광객은 12∼1월에 많다. 강수량은 주변 산지에 많고 몬순의 영향이 미미한 중앙평원에서는 적다. 연평균강수량은 1,000∼1,500mm이나 남서부 산지의 바다쪽 경사면은 5,000mm 이상이다. 따라서 식생은 주변산지에 밀림이 우거져 있을 뿐 다른 지역은 관목과 초원이 혼합하는 사바나의 경관을 이룬다. 중앙평원은 제1의 농업지역으로 대부분은 논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기후가 자연식생에 적합하며 동물로는 코끼리,야생 물소,호랑이,퓨마,표범,곰 등과 수많은 작은 짐승들이 있으며 특히 코브라,왕코브라,줄무늬크레이트(코브라의 일종),러셀 등 위험한 독사가 많다.




▶ 씨엠립 [SIEM REAP]

시엠립의 인구는 주 전체가 약 70만 시엠립 시가 약 7만이다. 시엠립 시내는 좁기 때문에 외각 지역을 제외하고 주요 시가지는 걸어서 20∼30분이면 이디든 갈 수 있다.
세기의 역사학자 토인비는 캄보디아 앙코르지역의 유적을 더듬어 보고는 감동을 감추지 못하고 “이곳에서 이 경이로운 유적과 더불어 남은 생을 살고 싶다”고 했다는 앙코르유적지. 인구 16만의 이 도시는 세계적인 유적지로 유명한 도시로 과거 앙코르왕국은 세계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엄청난 건축물을 조성하였다. 앙코르의 전성기에는 인구 1백만으로 추정되는 세계 최대의 대도시였지만 13세기 이후 쇠퇴의 길을 걸었다. 자야바르만 7세의 과중한 토목공사와 집권층의 부패로 점차 국력이 쇠퇴하였고 틈을 노리고 있던 태국의 야유타야족은 1431년 마침내 앙코르를 함락시켰다. 이에 앙코르왕국은 앙코르지역을 포기하고 수도를 프놈펜으로 옮겼다.
이후 태국의 영향을 받은 불교 스님들이 힌두교사원의 일부를 파괴하거나 불교사원화하여 유지하기도 하였다. 이후의 앙코르 유적들은 이곳에서 태어나서 죽은 원주민과 몇몇 승려와 더불어 정글에 묻혀 전설의 왕국이 되고 말았다. 이 묻혀진 왕국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점 벗어나다가 1860년 프랑스의 여행가 앙리 무오에 의해 탐험되고 보고된 이후 급격히 부상되기 시작하였다. 1908년부터 정글을 제거하고 부서진 건축물을 복구하기 시작하였다.
현재도 일반 농가에서는 야자 나뭇잎으로 지붕을 만들고 다리발을 세워 집을 만들고 있습니다. 도시지역의 경우에는 90여년간의 프랑스 지배의 영향으로 주택이 형성되어 있는데,내부는 더운 지방이니만큼 벽지와 장판의 개념이 없고 대부분 타일을 이용하여 마무리를 하는 형태입니다. 그러나 더욱 특이한 점은 화장실 구비의 미비로 외곽지역의 경우 집 앞마다 조그만 웅덩이를 만들어 놓고 있다는 점입니다.


산업
일반적으로 캄보디아의 제조업은 규모가 적고 영세한 실정으로 97년 기준 제조업이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8%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가운데 건설업은 GDP의 9.8%를 자치하고 있으며,97년 한해동안 11.4% 감소 성장한 바 있음. 97년 7월사태 및 IMF로 인한 인근국의 직접투자 감소등의 영향을 받습니다. 봉제.섬유업은 98년말 현재 약 111개사가 진출해 있으며,약 90,000명의 인력이 종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봉제업은 캄보디아의 전략산업으로 93-98년 기간동안 제조업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합니다.
97년 기준 서비스업이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7.2%에 달하고 있으며,93-96년 기간동안 연평균 8.5%의 성장율을 보인 바 있습니다. 운송 및 통신분야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7년 기준 3.5%이며,93-96년 기간 연평균 성장율은 9.9%에 달하고 있습니다. 관광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2%임. 92년 UNTAC이 들어오면서 290%에 달하는 급성장을 하였으나,95-96년에는 약 20%의 성장율을 나타냈습니다.
97년 기준 농업분야는 전체 GDP의 42.8%,총 고용인구의 85% 차지하고 있으나 93-96년 기간동안 성장율은 3.4%에 불과합니다. 주요분야별로는 쌀이 63%,축산업 25%,어업 8%,산림업 3.4%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의 농업발전 저해요인
①관개시설 및 영농기술 열악,②유통구조의 전근대화,③주요 경작지 지뢰(약 19억 S/M) 잔존 등


전형적인 열대몬순기후로 우기와 건기로 나뉘어진다. 우기는 5월에서 10월까지로 습도가 높고 무덥다. 습도가 가장 높은 곳은 태국만에 위치한 지대이다. 10월이 가장 습한 달로 월평균강수량은 256㎜이다. 건기는 11월부터 4월까지로 기온이 높고 1일 평균 8시간은 햇빛이 비치는 것이 특징이다. 가장 건조한 달은 1월로 월평균강수량이 8㎜에 불과하다. 중앙평원은 주변의 산지에 의해 남,서 몬순이 가로 박히기 때문에 연강수량이 1,500㎜ 전후이고 기온의 변화가 거의 없어 연평균 27∼37℃ 수준을 보인다. 10월부터 4월까지는 북,북동풍이 5월에서 9월까지는 남동풍이 분다.

씨엔립의 8월 기상은 평균 기온이 27.1℃로 우리나라의 한여름 기온이므로 일사병과 저체온증의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어 주의해야 하며,외출시에는 모자나 선그라스,햇빛가리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8월의 최고기온은 30℃이며,최저기온은 26℃이므로 온도차가 4℃이다. 따라서 큰 기온차가 아니므로 기온변화에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나이트시티투어




▶ 프놈펜 [PhnomPenh]

한때 인도차이나의 파리로 불린 프놈펜은 메콩강 줄기인 톤넬삽강에 연해 있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프놈펜은 캄보디아의 어두운 이미지와는 달리 밝고 산뜻한 느낌을 주는 도시이며,인구는 약 110만명이다.
프놈펜은 캄보디아의 수도이며 제1의 도시로,캄보디아 중남부의 바사크·사브·메콩 강 하계의 합류점에 위치하고 1434년 앙코르톰(앙코르)에 이어 크메르의 수도로 세워졌으나 여러 차례 버려졌다가 1865년 노로돔 왕이 재건했다. 전에는 직물·약품·기계 제조와 정미업 등의 가공업 중심지 역할을 했으나 이곳의 주요자산은 문화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15세기 이전까지는 전설의 왕국 앙코르가 캄보디아의 중심역할을 담당하지만,프놈펜은 15세기부터 캄보디아의 수도로 자리잡아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프놈펜은 앙코르처럼 웅장한 멋은 없지만,전통과 현대가 결합한 독특한 향기와 아름다움을 전해줍니다. 수십년간 내전을 거쳐왔지만,다행스럽게도 소중한 문화유산은 지켜온 것이다.
왕궁과 은(銀) 타일로 된 바닥으로 유명한 프레아모로코트 파고다를 중심으로 세워진 프놈펜 시는 경관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왕궁 단지는 왕궁(1919),왕궁 박물관,베알 미엔(왕의 평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베알 미엔에서는 1년에 2번씩 국회가 열린다. 자야바르만 7세 미술관에는 크메르 보석,국립박물관에는 크메르 예술과 역사적 문서들이 전시되어 있다.
시 북부지구의 유럽인 구역은 펜 구릉 기슭에 있으며,펜 구릉 꼭대기에는 전설상의 인물인 펜 부인의 사리를 담은 불탑이 있다. 펜 부인이 이곳에서 청동 불상을 찾아내어 이 정착지가 펜 부인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왕립 발레단이 있으나 오늘날까지도 캄보디아의 왕족 앞에서만 공연하도록 제한되어 있다. 왕립 발레단의 무용수들은 진짜 보석으로 치장을 하고 고대 불교와 힌두교 전설을 무언극으로 연기한다.


교육
고등교육기관으로는 1956년 왕립크메르대학교로 세워졌던 국립프놈펜대학교가 있다. 이 대학교는 공과대학·미술대학·기술대학·농과대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농과대학은 교외 참카르다웅에 위치한다. 그 밖에 왕립농경학 대학교와 프레크레아프 농업학교가 있는데,독립된 불교대학교와 불교와 팔리어를 연구하는 학회들도 있다.


전형적인 열대몬순기후로 우기와 건기로 나뉘어지며,우기는 5월에서 10월까지로 습도가 높고 무덥다.
습도가 가장 높은 곳은 태국만에 위치한 지대이며,10월이 가장 습한 달로 월평균강수량은 256㎜에 달한다. 건기는 11월부터 4월까지로 기온이 높고 1일 평균 8시간은 햇빛이 비치는 것이 특징이며,가장 건조한 달은 1월로 월평균강수량이 8㎜에 불과하다.

자격있는 여행전문가 - 모두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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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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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은 아시아의 중앙부에 위치하여 중국,러시아 및 회교권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는 자연 지리적 위치를 활용하여 이들 국가를 연결시켜주는 가교역활을 함으로써 중앙아시아의 새로운 지정학적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는 나라이다. 카자흐인들은 전통적인 유목민족으로서 중국 서부의 신장주와 카자흐공화국에 주로 거주하고 있다. 카자흐공화국은 카스피해와 천산산맥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데 북쪽으로는 거대한 초원지대가 남쪽으로 반 사막성의 저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그들은 13세기 징키스칸이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의 많은 지 역을 정복하는데 한 몫을 담당했던 몽고인의 후예이다. 그들은 아직도 반 유목생활을 하며 둥근 가죽 천막에 살고 있는데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생활양 식이 상당히 비슷하다. 카자흐란 이름은 '유랑자'또 는 '독립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유를 사랑하며 관대한 성품을 가진 민족이다.

카자흐스탄이 보유하고 있는 군사력은 기본적으로 카자흐스탄 영토내의 구소련의 군사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1991년 현재 전략핵무기에 있어서 104개의 핵발사장치와 1,040개의 핵탄두를 보유한 2개의 대륙간 미사일 발사기지를 보유하고 있고 320개의 폭탄을 적재할 수 있는 40대의 중전폭기가 있다. 전술핵무기로는 핵장착대포,핵지뢰,핵탄두적재 지상발사 전술로켓,방공로켓,핵폭탄 등이고 1개의 장거리 비행공군기지,2개의 기계화방어사단,2개의 포병사,1개의 기갑사단,1개의 전투비행기지,4개 사단의 내무부소속 병력,로켓공격 조기경보용 레이더시설 1개소 등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세미팔라친스크에는 300개,카스피해 주변에 40여개의 구소련의 거대한 지하핵실험장이 있으며 구소련 우주정책의 핵심본부인 바이코누르 우주발사기지가 있다. 94년 국방예산은 4억 5,000만 달러이고 방미중인 94년 2월 14일 나잘파에프 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과 회담하고 핵확산방지조약에 정식가맹한다는 서명문서를 전달했다. 정부는 동부 스치카메노골스크의 야금 공장에서 관리불충분으로 발견된 고농축 우라늄 600킬로를 미정부에 의뢰하여 11월 23일 까지 이송을 완료하였다.

1993년 초에 채택된 신헌법에 따르면 카자흐스탄의 사법체계는 다음과 같다. 법률이 정한 헌법재판소,대법원,고등중재재판소 및 보통법원으로 구성되고 헌법재판소는 카자흐스탄의 헌법수호를 위한 최고의 사법기관이다. 대법원과 고등중재재판소는 항고가 가능한 최고법원이며 하급법원에 대한 감독을 행한다. 카자흐스탄의 사법체계는 헌법으로 정하며 사법부의 조직과 운영절차는 법으로 정한다. 임시법원 또는 특별법원의 설립은 허용되지 않는다. 법원과 법관의 지위는 헌법으로 보장하며 그 조직과 활동절차는 법으로 정한다. 재판의 진행은 공개를 원칙으로 하되 국가비밀 및 상업적 필요에 관계되는 사건이나 시민 및 가족의 사생활에 관한 사건의 경우 이를 비밀로 진행할 수 있다. 법으로 규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법률의 심사는 합의제를 원칙으로 한다. 공소의 절차 는 법으로 정하며 특정형태의 소송절차를 이용하도록 규정하는 것은 불가하다. 법관의 임기는 10년이며 임무를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거나 본인의 의사에 따라 사임이 가능하며 신성불가침의 권한을 갖는다. 검찰은 법률의 엄격하고도 일관성있는 집행을 감독한다. 검찰은 형사소송을 수행하며 재판의 공소과정에서 법률을 심사하고 재판에 참여한다. 검찰총장은 검찰의 일원적이고 중앙집권적인 체계를 지휘하며 5년의 임기로 최고회의가 임명한다. 검찰총장은 하위직급의 검찰을 임명하고 해임한다.


항공
두개의 항공사가 서울과 알미티를 왕복한다. 우리나라 아시아나 항공(BOEING 767)과 카자스탄의 그라프로 항공이다. 모두 전세기이고 일주일에 1회씩 항공편이 있다. 아시아나 항공의 경우 1999년 3월부터 운항을 시작한다. 아시아나 항공보다는 덜 쾌적하지만 그라프로 항공의 경우도 서비스가 점차 개선되어가고 있다.서울에서 알마티까지의 비행 소요시간은 5시간 30분정도 이다. 그러나 알마티에서 서울까지는 기류상의 이유로 6-7시간 걸린다. 서울과 알마티의 시차는 -3시간이다.(서울이 오전 11시일때 알마티는 오전 8시) 하절기일 경우 썸머타임이 적용 될때는 -2시간의 시차가 난다. 동절기에는 알마타공항의 잦은 안개로 결항하거나 연착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스케쥴을 확인해야하며 아울러 비행일정이 달라질수 있으므로(출발요일과 시간이 변경됨) 확인하는 것이 좋다.



면적 : 272만 4900㎢


수도 : 아스타나


인구 : 1486만 8000명

정치형태 : 공화제

종교 : 오랫동안 소련의 공산통치를 받아왔을 뿐만 아니라 민족구성도 카자흐인,러시아인,독일인,위그르인,우크라이나인 및 한인 등으로 되어 있어 이슬람교는 그다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카자흐인들은 이슬람을 신봉하여 왔으며 민중사이에는 수세기동안 토테미즘적 종교의 전통도 전래되어 왔다. 1985∼1990년 동안 회교사원의 수가 25개에서 60개로 늘어났으며,이 가운데 12개는 신축된 것이다. 1991년 현재 카자흐스탄에는 230개의 회교단체가 활동하고 있으며,알마아타에는 회교대학이 설립되어 코란을 카자흐어로 번역하는 활동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1990년까 지 카자흐스탄의 이슬람은 우즈베키스탄의 타쉬켄트에 기반을 두고 중앙아시아와 카자흐스탄을 담당하는 교단의 영향권내에 있었으나,1990년 카자흐스탄의 회교당국은 독립교단을 설립하였다. 카자흐스탄에는 러시아인을 중심으로 한 러시아 정교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장로교와 같은 신교도 활동하고 있다.

현재 이슬람의 주요 종파는 온건한 수니파이다. 이슬람 근본주의의 부활이 카자흐스탄에 영향을 미쳤지만 카자흐스탄의 이슬람교는 중앙아시아에서 전통적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우즈벡과 타지크의 종교지도자들은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으나 타지키스탄의 미개상태는 오히려 카자흐스탄의 정치지도자들로 하여금 카자흐스탄에서 이슬람의 영향력을 제약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최근 카자흐스탄의 정치지도자인 대통령 나자르바에프는 카자흐스탄에서 종교의 정치활동을 엄격히 제한하여 아랍국가와 같은 종교의 정치 및 대중지배의 여지를 철저히 배제하였다. 알마아타를 비롯해 카자흐 공화국의 남부와 서부지역에는 이슬람종교의 5대 기둥이되는 금식,기도,믿음,자선,순례 등을 하며,특별히 라마다기간이나 기도중에 금식을 수행하는 회교도들이 많다. 이 지역에 사는 카자흐인들은 결혼이나 장례식(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할례등도 종교적으로 거행한다. 할례는 이슬람 민족공동체에 소속되는 나이인 7.8세의 소년에게 거행되는데,이때 철저한 금식이 수반되어야 한다. 카자흐인들이 훨씬 많이 살고있는 공화국 북부와 동부지역에서는 전통적인 관습들이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 대부분의 카자흐인들은 정령신앙과 결합된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그밖의 다른 사람들은 지금도 수피형제단을 따르고 있다. 카자흐인이 절기로 지키는 대표적인 의식으로는 이스마엘을 기념하는 희생제,라마단기간의 폐회축제,선지자 탄생 기념제등이다.


주요민족 : 전체인구의 40%가 카자흐인이며 38%가 러시아인 그리고 나머지가 독일인,위그르인,우크라이나인 및 한인 등이다.


주요언어 : 카자흐스탄의 공식어는 카작어이며,러시아어는 민족간 소통어로서 공식어와 마찬가지로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카작어는 카자흐탄내 카작인 뿐 아니라 중국과 몽골에 거주하는 카작인들도 사용하고 있다. 97년 2월에는 모든 공공 문서를 카작어로 작성해야 하며,모든 공무원들이 카작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법이 하원을 통과했으나 상원에서 거부되어 다시 하원으로 보내졌다. 그 법에는 카작인의 경우 2000년까지,다른 공무원의 경우 2003년까지 카작어를 배울 수 있도록 기한을 둔다는 것도 명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97년 여름 새로운 언어법은 러시아어를 카작어와 동등한 위치의 공식어의 수준에 올려놓았다.

현재 카자흐스탄 국민가운데 카작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45%정도이며,러시아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은 75% 정도이다. 역사적으로 대도시와 대도시에 인접한 중도시에 사는 카작인들은 러시아어를 배워야 했으며 카작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지 않았다. 따라서 20-40세의 나이에 있는 대부분의 카작인들은 카작어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이 없을 것으로 예측된다. 카작어는 카자흐스탄내 카작인 뿐만 아니라 중국 거주 약 50만 명과 몽고 거주 약 4만 명의 카작인이 사용하고 있다. 근대 카작어는 북동부,남부 및 서부 3개의 방언을 가지고 있으나 그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카작어의 주요 특징은 카작어의 s가 공식 터어키어의 c와 같다는 점 등이다.

전통적 카작인은 카작어와 러시아어를 다 하지만,그들의 주된 언어는 카작어이다. 그 중 어떤 사람은 러시아어를 할 줄 알면서도 러시아어로 말하기를 거절한다. 그들 대부분은 시골에 살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어를 배울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시골에서 성장한 젊은이들은 도시로 나와 생활할 때 다시 러시아어를 배워야 한다. 도시는 많은 부분에 러시아어를 필요로 한다. 그들은 강한 억양과 서투른 표현으로 인해 러시아어를 말하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를 꺼려하기도 한다. 시골의 전통 카작인의 가정에서 자랐지만,도시에서 학교 교육을 받고,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카작어와 러시아어를 똑같이 모국어 수준으로 구사한다. 그러나 도시내에서 이러한 사람을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다. 도시의 카작인들은 대부분 카작어를 잘 말할 줄 모른다. 방언 카작어는 다른 많은 언어들과는 달리 자체 방언이 거의 존재하지 않고 단일화되어 있다. 러시아어로부터 차용된 어휘가 많은 카작어는 튀르크계 언어이지만,음운 형태 변화가 심하여 아나톨리아 반도의 터어키 사람들과는 거의 40%정도 밖에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북동부,남부 및 서부 3개의 방언을 가지고 있으나 큰 차이는 없다. 이제 카작 사회에서는 카작어를 할 줄 모르는 러시아화된 카작인들은 압력을 받고 있다. 그들은 비록 모국어를 몇 마디밖에 할 줄 모른다 하더라도 체면을 세우기 위해 카작어를 집에서 사용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통적 카작인과 함께 있을 때에만 카작어를 사용한다. 현재 카작사회에서 카작어를 아는 것은 필수적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학교선생님을 비롯하여 많은 직장에서 사람들을 채용하는 첫 번째 조건이 되어가고 있다. 경제 불황으로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을 때 카작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먼저 해고당하고,교육 시스템에서도 카작어 시험을 대학 입학 때 반영함으로써 카작어의 사용이 강력히 시행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앞으로 카작어를 배우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은 나라를 떠나야 한다고까지 말하며 카작어를 모르는 카작인이나 러시아인들에게 조금의 관대함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많은 사람들은 카작어만이 공식언어가 되는 것에 반대한다. 그들은 카작어와 러시아어가 둘 다 공식언어가 되기를 바란다. 카작인의 정체성과 또한 무역상의 목적을 위해서이다. 러시아화된 카작인들과 다른 인종 사람들은 카작어만을 공식어로 하여 강제로 배우게 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경제
카자흐스탄 경제는 기본적으로 에너지,광업 및 농·축산업에 근간을 두고 있으며 독립 이후 카자흐스탄 경제는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와해로 인하여 94년 에는 93년대비 GDP가 34% 감소하였으며 심각한 인플레율을 보이고 있다. 카자흐 정부는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사유화,가격자유화,대외 교역제도 개선 등의 경제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나 경제는 여전히 어려운 상태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경제적 의존성은 증가하고 있어 러시아와의 경제통합을 강력히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기후
바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영토가 방대할 뿐만 아니라 산악지대가 많아서 기후대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대륙성기후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구름이 적고 남부에 위치해 있어서 일조량이 많은데 연간 일조량은 북부가 2,000시간이며 남부가 3,000시간이다. 겨울은 북부에서는 춥고 길며,중부에서는 추운 편이나 남부에서는 온난한 편이며 짧다. 1월 평균기온은 북부에서 -18℃,남부에서 -3℃이며,최저기온은 북부에서 -45℃,남부에서 -35℃까지 기록한다. 그 이유는 차가운 대륙성 대기가 북서쪽으로부터 불어오기때문이다. 여름은 보통 길고 건조한데 북부에서는 따뜻하며 중부에서는 덥고 남부에서는 무덥다. 7월 평균기온은 북부에서 19℃이나 남부에서는 28℃∼30℃이다. 산악지대에서 여름은 짧고 선선하며 겨울은 비교적 따뜻한 편이다.


정부
정부조직은 23개의 부와 11개의 국가위원회 및 8개의 기타 국가기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통령은 1992년 2월 7일 정부조직 관련 포고령을 발표했는데 이에 따르면 부통령은 경제개혁과 시장경제 발전을 위한 전략개발을 담당하고 카자흐스탄 경제의 세계경제 편입,외국인투자의 유치촉진,정치 및 사회·경제구조의 개선과 관련한 제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부통령은 관련 기관의 활동에 대하여 조정권한을 가진다. 부통령은 또한 정부 각부처,국가위원회 및 기타 행정기관을 구속하는 명령을 발령할 수 있다. 지방행정부는19개의 지역과 2개의 특별시를 합하여 총 21개로 구성되어 있고 현재의 지방행정조직은 구소련시절에 이루어졌으나 92년 말에 명칭변경과 함께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카자흐스탄의 전국에 걸쳐 구역은 220개,시는 84개,시산하의 구역은 24개,노동부락은 213개 그리고 농촌 및 촌락 소비에트는 2,470개가 있다. 헌법에 명시된 지방행정에 관한 규정에 의하면 각 지방은 법률이 정한 범위내에서 자율성을 가진다. 지방의 주요 사안은 지방정부와 지방의회가 해결하며 이들은 상위의 국가법을 준수해야 한다. 지방의회의 선거는 5년마다 실시하며 의회의 구성과 선거에 관한 구체적 사항은 관련 법으로 정한다. 지방행정기관의 장은 지방행정 단위내에서 대통령을 대변하며 국가운영에 관한 업무를 행한다. 지방행정기관의 장은 대통령 및 상위의 지방행정기관의 장이 임명 및 해임한다.


지리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의 북부지역에 위치하고 있고 영토의 가장 서쪽은 동경 50°,가장 동쪽은 동경 90°이며 영토의 가장 북쪽은 북위 55°,영토의 가장 남쪽은 북위 40°에 걸쳐있다. 그 주위에 접한 국가들은 서쪽으로는 러시아와 카스피해와 접하고 있고 동쪽으로는 중국과 접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러시아와 그리고 남쪽으로는 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키르기즈스탄과 접경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의 면적은 271만 7천㎢로서 서유럽 전체의 면적과 비슷하고 구소련 영토의 12%로 구소련 공화국 가운데 러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영토가 넓으며 한반도의 11.6배,남한의 약 27배에 해당한다.


역사
BC이전 역사 개요
약 30만년전인 초기 구석기 시대에 현재 카작스탄 지역에 원시인이 정착하였고 초기 석기시대의 유적은 카라타우 산맥의 동굴과 시스발카시 지방에서 발견되었다. 카자흐스탄 북부지역 카나이마을에서 발견된 부싯돌과 다른 유물들은 원주민들이 중기 구석기 시대에 이 지역에 정착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신석기 시대에 원주민들은 활과 토기 및 다양한 석기제품을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는 청동기초기문화의 유물은 andronovo문화의 유물이 대표적이다. 안드로노보 부족은 가축의 방목,괭이를 사용한 경작,사냥,낚시에 종사했고 청동무기와 도구의 생산이 발달하였다. 구리와 청동제품의 생산 및 목축과 농업의 발전은 모계사회의 부계사회로의 변화와 가부장적 가정의 탄생과 같은 중요한 사회적 변화를 가져왔다.

청동기 후기에 정착 원주민들은 흩어지기 시작했고 기원전 500년쯤에 초원지대에 거주하는 부족들은 대부분 유목민으로 전환하여 이후 수세기 동안 카자흐스탄의 사회,경제발전의 특징을 결정짓게 되었다. 헤로도투스와 다른 고대인들은 이 시대의 부족들을 아세아적 Scythians라 불렀다.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시대에 쓰여진 설형문자의 기록에 의하면 이들 부족은 Sacae라는 집단명으로 불리었고 이란어를 구사하는 사카에 부족이 정착하여 유목생활을 하였고 철제기구를 사용했으며 주변 부족들과 상업 및 문화유통을 하고 있었다. 각 부족장은 부족집단을 이끌었고 사케아문화를 계승한 부족연합체가 수립된 것은 기원전 2∼3세기였다. USUN이라는 부족 연합체가 세미레체 지역과 캉주이 지역에 거주하는 부족들을 물리치고 시르다랴 중부지방과 카라타우 지역에 정착하였으나 귀족간의 치열한 투쟁과 알타이 투르크 의 공격으로 인해 USUN연맹은 붕괴되었다.

AC 1년 - 1900년 까지의 역사
카자흐스탄은 노예 소유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중세의 봉건단계로 발전하였고,최초의 봉건국가는 6세기 중엽에 성장한 투르크 카나테이다. 8세기에서 10세기에는 이슬람이 남부 카자흐스탄을 지배하였고 8세기에서 11세기까지 카작스탄의 북동부와 중부지역은 투르크키마크와 키프차크 부족이 정착하였고 이 지역에 현재까지 남아있는 수많은 건축물들은 10∼12세기동안 카자흐스탄의 경제와 문화가 높이 발전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1219년∼1221년동안 카자흐스탄은 몽고의 침입에 의해 분열되어 징기스칸 후손들 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고 민족적으로는 이들 국가가 터어키어를 구사하는 지방부족 들을 통일하였으나 단일민족을 형성하지는 못했다.

카자흐 민족은 카자흐 공화국과 중국 신강 위그르 자치구의 우르무치 지역에 거주하는 터키계 민족으로 15세기 중엽 우즈백족과 분리되어 키르기초원에서 유목생활을 시작함으로써 형성되었으며,카자흐스탄은 원래 '역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카자흐인은 유목 대신 농경생활을 시작하였으며 그후 일부는 러시아에,다른 일부는 중국에 종속되었다.

18세기초에 카자흐스탄은 크나큰 공경에 처하게 되었다. 카자흐 카나테는 분열되었고 봉건적인 전쟁은 끊이지 않았으며 러시아의 축산물 공급지화,곡물 및 공업제품의 시장화 등 러시아의 경제적 착취에 항의하는 반러시아 폭동이 계속되었다. 1824년 소호드에서 칸의 권력은 사라지고 호드의 영토는 3개의 부분으로 분할되고 각 지역에 술탄 관리자가 임명되어 관리하게 되었고 지방행정체계가 도입되고 부족장의 권한이 제한되었다. 1860년대에는 러시아가 카자흐스탄을 완전 병합,유목지에 러시아 농민을 대량으로 이주시키고 행정개혁을 실시하였다. 모든 토지는 국가소유였고 법절차에서도 변화가 생겼다. 이에 모든 계층은 불만을 표시했으나 진압되었다. 1891∼1904년 사이에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건설되고 난 후 특히 무역과 화폐를 통한 상거래가 크게 발전하였다. 1987년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카자흐스탄에서는 40,000명이 무역에 종사했고 파로파블로브스크에서만도 446개의 무역관련 기관이 활동하고 있었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러시아 국내의 심각한 농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환으로 짜르정부는 대규모의 러시아 농민을 카자흐스탄으로 이주시켰다. 1906∼12년 동안 스톨리핀의 농업개혁하에서 438,000명 이상의 농민이 아크몰린스크,투르가이,우랄스크 및 세미팔라친스크 지역으로 이주했다. 카자흐스탄에서 카자흐 주민들이 오랫동안 개간해온 약 1,740만 데시아티나의 농토가 러시아로부터의 이주민에게 양도되었다. 짜르정부의 이주정책은 아울의 농업관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고 짜르정부의 지원을 받은 바이 집권층은 공동체의 토지를 장악하여 사유재산으로 소유하였다. 이같은 이중의 토지착취는 카자흐 빈민대중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하였고 철도 노동자,빈농,병사등이 주축이 되어 공산당 조직인 투르키스탄 위원회 설립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동안 농업과 축산업 생산의 급격한,조세와 기타 징수금의 증대,물가인상 및 1916년 저항작전에 대규모 주민이 동원된 점 등은 농민봉기를 촉발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1917년 2월혁명 이후 러시아 일부 지역에서 처럼 카자흐스탄에는 이중권력구조가 수립되었다. 투르가이와 세미팔라친스크 지역에서는 소비에트 군력이 무력투쟁을 통해 수립되었고,1917년11월 알라시-오르다,멘세비키 및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지지를 받고 오렌브르그에서 코사크 족장 두토프가 일으킨 반소 폭동이 발생하였으나 신속히 진압되었다. 1918년 1월 18일 발틱함대와 페트로그라드,볼가지역,중부아시아 및 카자흐스탄으로부터 파견된 붉은 군대에 의해 오렌부르그는 해방되었다. 소비에트 권력의 수립 이후 구권력기구는 해체되고 새로운 소비에트 국가기구가 창설되었고 군과 지역에 소비에트가 설치되었다. 토지명에 따라 대규모의 토지가 몰수되어 카자흐인과 러시아인에게 분배되었고 1918년 5월 11일 레닌이 서명한 러시아공화국 인민위원회의 재호명에 의하여 대기업은 국유화되었다. 카자흐 소비에트 자치정부가 발족되었고 남부의 시르 다랴와 세미레체 두 지역은 1918년 4월에 건설된 투르크스탄 자치공화국에 편입되었다. 반동주의자와 백군 및 카자흐 부르조아 민족주의자들이 연합하여 카자흐 영토의 대부분 지역을 장악하였다. 1918년 7월 3일 오렌부르그 를 다시 장악한 코사크 족장 두토프의 군대는 카자흐스탄의 일부와 투르크스탄 자치공화국을 러시아로부터 완전 분리시켰다. 오렌부르그,세리레체 및 우랄스크 지역에서 관합전선과 시르 다야,세미레체,투르가이 및 부케이 스테페 지역에서 적군이 결성되었다. 러시아인,카자흐인 및 위그르인 들은 각각의 입장에서 싸웠으며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의 이념을 위해 투쟁하였다. 백군은 악티우빈스크를 재장악하여 카자흐스탄 중부지역으로부터 카자흐스탄의 소비에트 지역을 2차로 분리시켰다. 1919년 봄 백군에 대항하는 볼세비키 지도하의 대중봉기가 마린스코에 마을과 아크몰린스크 지역에서 발생하였다. N. M. Irchenko는 반란군의 사령관으로 선출되었으며,여러 마을의 농민들이 이 봉기에 합류하였다. 세미레체 북부지역에서 백군에 의해 포위당한 12개 소비에트의 주민들은 1918년 10월부터 1919년 10월까지 1년동안 항거하였다. 세미레체전선은 1920년 3월에 외해되었고,백군의 잔류병력은 중국 서부지역으로 쫓겨났다. 억압하에 있던 카자흐스탄 국민의 지원하에 적군은 베르니시,세미팔라친스크,우스치-카메노고르스크 및 기타 지역에서 발생한 반란을 진압하였다. 카자흐 소비에트국가의 건설과 발전은 불가피하게 레닌과 연관되어 있다.1919년 7월10일 레닌은 1925년 4월까지 카자흐스탄 건설을 위해 키르기즈지방 혁명행정위원회를 창설한다는 러시아공화국 인민평의회의 포고령에 서명하였다. 1920년 8월 26일 전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와 러시아공화국의 인민평의회는 러시아공화국의 일부 지역에 오렌부르그를 수도로하는 카자흐스탄을 건설한다는 내용을 담은 레닌과 칼리닌이 서명한 키르기즈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공화국의 창설에 관한 포고령을 채택하였다. 1920년 10월 4∼12일 동안 오렌부르그에서 카자흐스탄 소비에트 입헌의회가 열렸고 이 회의에서 카자흐스탄 공화국의 중앙집행위원회와 인민평의회가 선출되었다. 1921∼1922년내전으로 인해 카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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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관/영사관 관련사항
주 카자흐스탄 한국대사관
-전화:7-3272-532660,532691,FAX : 7-3272-507059
-주소:2/77,Jarkent Street,District Gornyi Gigant

긴급연락처(경찰서,병원 등)
화재시 소방서는 01,경찰서는 02이며,병원은 03번을 사용하면 된다.


전압 및 주파수
110V,240V 겸용이나 우리 전기용품과는 콘센트의 모양이 틀려서 사용이 불가능하므로 건전지를 이용하는 제품을 휴대하거나 호텔의 HOUSE KEEPING에서 어댑터를 빌려 사용하여야 한다.


통화
통화단위는 텡게 (Tenge)

한국으로 전화
10(국제전화서비스)-82(우리나라국가번호)-2(서울지역번호,0을 뺀다)-전화번호


현지로 전화
국제전화서비스-7(카자흐국가번호)-지역번호-전화번호


주의사항
외국인 금기사항
기본적으로 이슬람 문화지역에 속하므로 지나친 선교 활동은 자제해야한다.
카자흐스탄내 고려인 동포 접촉시 부의 과시나 과격한 언동은 회피해야 한다.

상품구입시 유의사항
외국인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경향이 있다. 여러 군데를 돌아다녀 보고 사는 것이 좋다.

복장 및 의복 관련사항
여행객의 경우,짧은 옷차림을 해서는 안된다. 이 지역사람들의 의복은 농촌의 지식층들과 젊은이들은 서구식의 옷을 많이 입고,집단농장에서 일하는 일반 서민과 공장노동자들은 넓은 스커트와 짧은 품의 바지와 깃없는 느슨한 셔츠로 된 약식 전통의상을 많이 착용했다. 도시의 여성들은 통이 넓은 바지보다 짧고 폭 넓은 스커트와 짧은 자켓을 잘 입으며 농촌의 여성들은 끼지 않는 옷을 잘 입고 일할 때는 바지를 입는다. 잔치집에 갈 경우 바지를 입어서는 안되며 치마나 원피스를 입고 간다. 카작의 도시사람들은 서구화되었다. 유럽과 미국으로부터 온 유행의 모습들을 알마타에서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의 옷차림은 더 보수적이다. 젊었을 때는 서구식으로 옷을 입었다 하더라도 나이가 들수록 전통의상을 선호하게 된다. 전통적으로 카작여성은 위아래가 붙은 원피스같은 옷을 가운처럼 겉에 두르며 머리에는 수건을 쓴다. 할머니들은 흰색 수건으로 머리가 보이지 않게 두른다. 나우르즈나 축제,학교행사,전통 음악회와 같은 특별한 행사기간과 지방 마을에서 전통의상을 볼 수 있다. 여성의 민속의상은 길고,폭이 넓은 드레스에 목이 선 깃과 발목에 부름이 모아진 형태의 바지를 함께 입으며 목도리(수건),면으로 된 머리장식물 팔지,귀걸이로 멋을 돋운다. 남성들의 복장은 넓은 흰색 셔츠와 넓은 바지,면이나 모로 만든 헐렁한 겉옷을 입는다. 많은 카작남성들은 '타키아'라는 조그만 테없는 모자를 머리 뒷부분에 쓰는 것이 공통이다. 이것은 중앙아시아 전체에 걸쳐 공동적으로 착용하는 전통적 모습을 가진다. 기후는 사계절용 의복을 필요로 한다.


비자
▣ 국내 비자발급처
기 관 명 : Embassy of the Republic of Kazakstan(주한 카자흐스탄 대사관)
주 소 :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32-15
전화번호 : 02-548-1415,02-516-1440
팩스번호 : 02-548-1416
근무시간 : 월요일-금요일 09:00-12:30 & 14:00-18:30,토요일 09:00-12:30

▣ 비자신청시 유의사항
비자는 초청자가 최소한 2주일전 주재국 외무부에 비자 발급 신청, 서울 주재 카자흐스 탄 대사관에서 입국 비자를 취득하는 방법이 있으며, 러시아비자로 입국하는 경우 도착 즉시 외무부 영사처에서 비자신청을 해야 하며, 비자처리 기간은 1주일(러시아 비자로 입국하는 경우 3일간 체류 가능하며 카자흐 비자취득시까지 공백기간에는 외무부에서 발급하는 비자 신청 증명서를 지참하고 활동가능) 정도 소요된다. 비자발급의 경우는 보통 여행사에 맡기면 별 무리없이 받을수 있다. 여행 목적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대개 일주일간 알마티에 머무르려면 해당기간동안의 여행 비자를 받으면 된다. 일체의 업무를 대행해주는 곳이 있어 소개한다. (주)윌즈오브런던이란 여행사로 현재 이 여행사에 의뢰할 경우 자사에서 항공권을 구입시 VISA 수수료와 초청장 수수료 그리고 대행료를 무료로 해주고 있고, 타여행사에서 항공권을 구입하고 VISA등의 업무를 대행할 경우는 비자기간 일주일에 35-50불, 초청장 수수료 25,000원, 대행료 20,000원을 받고 있다. 비자의 경우는 기간을 정확히 잘 맞추어야 한다. 1주간 머무를 계획이라면 10일정도의 비자를 받는 것이 안전하다. 괜히 비자 기간을 1주만 내었다가는 항공스케줄상 비자기간이 지나버릴수 있다(특히 아시아나로 왕복여행을 할경우 1주 비자만 받아왔다가는 낭패를 본다) 정확한 비행스케줄과 비자기간을 알고 있어야 한다.
비자신청시 방문객을 초대하는 사람이나 호텔 측에서 방문객의 비자를 신청할 수 있으며, 이 경우 방문객은 도착해서 비자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자동차로 카자흐스탄을 여행하는 경우, 비자를 신청할 때, 다음의 서류를 동봉해야 한다. 자동차 등록증, 보험 증명서와 차종에 대한 자세한 서류가 필요하며, 비자는 오로지 비자에서 지정하고 있는 도시에서만 유효하다. 72시간 이상 체류하려는 비CIS국적의 여행자는 OVIR에 등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출발시 불이익을 받게 된다. CIS국적의 여행자는 내무행정사무소에 등록하면 된다. 불법(무비자 입국)으로 구소련 영내에서 카자흐스탄으로 입국하려는 외국인은 미화 250달러의 벌금형에 처해지고 추방된다.

▣ 비자신청시 구비서류
비자를 신청하기 위한 서류로 먼저, 관광비자는 6개월 이상 남은 여권, 여권용 사진 1장, 신청서, 정식으로 허가를 받은 카자흐스탄 내의 여행사에서 작성한 자세한 호텔 예약과 여행 계획에 대한 확실한 서류와 3개월 이상 체류 시에는 에이즈검사서류가 필요하다. 상용비자의 경우는 6개월 이상 남은 여권, 여권용 사진 1장, 신청서, 정식으로 허가를 받은 카자흐스탄 내의 여행사에서 작성한 자세한 호텔예약과 여행계획에 대한 확실한 서류, 3개월 이상 체류시에는 에이즈검사서류 및 초청장이, 그리고 경유비자는 6개월 이상 남은 여권, 여권용 사진 1장, 신청서, 정식으로 허가를 받은 카자흐스탄 내의 여행사에서 작성한 자세한 호텔예약과 여행계획에 대한 확실한 서류와 3개월 이상 체류 시에는 에이즈검사서류가 필요하다.
비자종류는 관광, 상용 및 경유비자가 있으며, 단수와 복수가 있다. 보통 단수비자는 기간에 따라 22파운드(7일), 35파운드(14일), 47파운드(1개월), 66파운드(1개월 이상) 등이 소요되며, 복수비자의 경우 128파운드(6개월-1년)가 든다. 한편, 두번입국 또는 세번입국하는 비자의 경우는 단수비자 수수료의 2배 및 3배를 지불하면 된다.


바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영토가 방대할 뿐만 아니라 산악지대가 많아서 기후대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대륙성기후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구름이 적고 남부에 위치해 있어서 일조량이 많은데 연간 일조량은 북부가 2,000시간이며 남부가 3,000시간이다. 겨울은 북부에서는 춥고 길며,중부에서는 추운 편이나 남부에서는 온난한 편이며 짧다. 1월 평균기온은 북부에서 -18℃,남부에서 -3℃이며,최저기온은 북부에서 -45℃,남부에서 -35℃까지 기록한다. 그 이유는 차가운 대륙성 대기가 북서쪽으로부터 불어오기때문이다. 여름은 보통 길고 건조한데 북부에서는 따뜻하며 중부에서는 덥고 남부에서는 무덥다. 7월 평균기온은 북부에서 19℃이나 남부에서는 28℃∼30℃이다. 산악지대에서 여름은 짧고 선선하며 겨울은 비교적 따뜻한 편이다.




▶ 알마티 [Alma Ata]

"사과의아버지"라는의미로 불리는 알마티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발달된 도시이다. 알마티의 문자적 의미는 "사과의 아버지"이나,이것은 "이름(은) 사과"라는 알마아트(Alma Ati)에서 와전된 것이다. 알마티는 천산산맥의 줄기인 알라토산맥이 가로지르고 있으며 나무들이 울창하게 심어져 있는 도시이다.주위가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공기와 대기가 청정하다.민족 구성은 러시아인,카자흐인,우크라이나인,타타르인 ,한국인 등이며 유럽풍의 도시이다. 주요산업은 공업이며,광산 야금용의 발전장비,농업용 기계공업,포도통조림 등의 식품공업,면공업이 발달하였다.

그리고 알마티는 1997년 11월까지 카자흐스탄의 수도였으나,97년 12월에 아크몰라로 옮겨졌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적인 역활을 수행하고 있다. 신시가는 근대적 도시계획에 의한 바둑판 모양이며,가로수가있고 도로를 따라 가로수와 과수원 관개를 위한 수로가있다. 타슈겐트 도로는 고대 실크로드가 지나는 지점으로,지금은 고층 건물이 줄지어 서 있다. 시가제에서는 만년설이 덮인 톈산산맥 일부가보인다.

또한 알마티는 학술 문화의 중심지로서 카자흐종합대학이 있고,교외의 스케이트링크인 메디오는 국제적으로도 유명하다. 인구의 급증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도시계획에 의해 공원이 정비되었고,도로는 넒고 가로수가 무성하다.그 밖에 중요한것으로 알마티에는 우주개발기구가 있고 인공위성 등 최첨단 과학 연구가 활발히 행해지고 있으며,중국과 투르크시프 철도가 연결되어 새로운 도시 발전의 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알마티는 지진과 진흙사태가 자주일어나는,지질학상 매우 위험한 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1887년과 1911년에 큰 지진으로 어려움을 격었고,1939년에는 말라야알마틴카를 덮친 진흙사태로 대규모 파괴와 인명손실을 경험했다. 진흙사태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1966년 메데오 협곡 부근에 댐을 건설하면서 폭파작업을 벌여 인공 진흙사태를 유발시켰다. 이렇게 해서 건설된 높이 100m의 댐은 1973년 큰 재앙을 가져올 뻔했던 진흙사태를 막아내어 그 가치를 입증했고,뒤에 140m 높이까지 개축되어 시의 안전성이 한층 더 높아지게 되었다.

그 밖에 이도시의 근교 메데오(Medeo,해발 1,529m)스케이트장은 빙질이 좋아 스피드경기의 기록을 낼 수 있는 경기장으로 알려져 있다. 알마티는 고구려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으며,잘 꾸며진 도시로서 독립국가연합 창설 회담장소이기도 하다.


산업
이 곳의 주요산업은 공업이며,광산 야금용의 발전장비,농업용 기계공업,포도통조림 등의 식품공업,면공업이 발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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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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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상의 일본은 우리나라의 동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가장 극동에 자리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은 크게 4개의 큰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 가장 북단의 홋카이도가 있고, 가장 큰 섬이자 동경, 오사카등 주요 도시가 있는 본섬이라 불리는 혼슈, 그 아래 시코쿠와 큐슈가 자리잡고 있다. 그 외에 오키나와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섬이 4천여개가 있으며 국가의 모양이 북에서 남으로 비스듬하게 길게 뻗어 있는 모양으로 최북단과 최남단의 기후가 큰 차이를 보인다.

항공
일본으로 가는 방법 중 가장 빠르고 편리한 교통 수단이 항공편이다. 양국간의 활발한 교류 덕에 인천, 부산, 제주등지에서 일본의 여러도시로 다양한 항공편이 운항되고 있다. 거리상으로도 가까워 대표적으로 인천에서 도쿄는 2시간, 오사카는 1시간 30분 후쿠오카는 1시간 10분이면 갈수 있는 거리다.

우리 나라에서 일본으로 취항하는 항공사는 대한항공, 아시아나 항공을 비롯하여 일본의 일본항공(JAL), 전일본공수((ANA)와 미국의 노스웨스트 항공(NWA), 유나이티드 항공(UAL) 등이 있고, 서울을 경유하는 다른 나라의 항공편도 있다. 그리고 최근에 취항한 것으로 스카이마크항공이 인천과 동경 하네다 공항을 연결하고 있다.

훼리
배를 이용해 일본으로 가는 경우 항공편에 비해 노선이 한정적인데 주로 부산에서 후쿠오카, 시모노세키, 히로시마등을 연결한다.
선박회사와 노선에 따라 이용하는 배의 이름이 달라 후쿠오카를 운항하는 선박은 카멜리아, 비틀, 제비호 등이며 시모노세키는 카멜리아와 하마유, 성희호가, 히로시마는 은하호가 운항한다. 각 선박의 운항일정은 시즌과 날짜에 따라 조금씩 달르긴하지만 이 중 후쿠오카를 운항하는 비틀, 제비호를 제외하고는 저녁이나 밤에 출발해 목적지에는 다음날 아침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부산에서 조금 더 멀리 가는 것으로는 팬스타가 오사카까지 운항하며, 역시 다음날 아침에 도착한다. 그 외에 고쿠라, 히타카츠, 이즈하라 등을 비정기적으로 운항한다.


면적 : 377,819㎢

수도 : 동경(東京,Toyko)

인구 : 약 1억 2,770만명 (2003년 기준)


정치형태 : 일본은 입헌군주제로 천황이 최고 통치자 이지만 막부시대 이래로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하고 전체적인 정치형태는 영국식의 내각을 본따 만들었다. 국회가 총리를 인준하며 국가를 대표한다.

종교 : 95% 이상이 불교를 믿는데 일본의 토속신앙이라고 할 수 있는 신교가 혼용되어 있다. 따라서 집안에 조상이나 토속신앙을 상징하는 작은 사당이 마련되어 있는 가정도 많은 편이다. 그 외에 기독교나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은 적은 편이다.

주요도시 : 수도인 도쿄를 대표로 하여 제 2의 도시인 오사카, 나고야, 후쿠오카, 삿포로, 도야마, 센다이, 나가사키, 구마모토,오키나와등이 대표적인 도시이다. 그 외에도 일본은 우리나라와 교류가 빈번해 각 지역의 대도시로 인천공항에서 직항으로 항공편이 운항하고 있다.

주요민족 : 일본인의 혈통을 알기란 힘들지만, 신체적 특징에서 몇 개 종족의 혼합으로 여겨진다. 한반도를 거쳐 온 퉁구스계 종족과 동남아에서 온 아이누계 종족이 일본 민족을 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인이 99%이며, 한일기본조약 협정 규정에 재일 한국인에 대한 거주권을 인정하여 약 69만 명, 귀화한 사람이 약 12만 명이고 중국인이 많으며 약 5만 명 정도이다.

주요언어 : 주요언어는 일본어로 1억 이상이 사용하고 있으며, 방언은 류큐 방언과 본토 방언으로 나누어지며 본토 방언은 다시 동부, 서부, 규슈 3대 방언으로 나눠진다. 도쿄지방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중심으로 표준어를 삼고 있다.
일본은 우리와 비슷하게 한자를 혼용하여 사용하므로 한자를 많이 알면 일본어를 모르더라도 크게 도움이 된다. 영어의 보급은 도시가 아니면 그다지 원활하지 않은편이다.


기후
일본의 기후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온대 기후로 사계절이 뚜렷한데 우리가 대륙성 기후인 반면 일본은 섬나라인 덕에 여름엔 우리보다 습하고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태풍과 장마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일본의 지형이 북동에서 남서로 길게 뻗어 있어, 눈이 많이 오는 최북단의 홋카이도에 비해 최남단의 오키나와는 아열대 기후로 현격하게 다른 자연과 날씨를 보인다. 따라서 일본여행을 계획할 때는 여행의 시기 못지 않게 지역도 배려하여 준비해야한다.


간단한 현지어
- 인사-

1. 안녕하세요
(아침) おはようございます。 오하요우고자이마스 / (점심) こんにちは。 곤니치와 / (저녁) こんばんは。 곰방와

2. 안녕히가세요. さようなら。 (사요-나라)
감사합니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아리가또-고자이마스)
미안합니다. すみません。 (스미마셍)
실례합니다. しつれいします。 (시츠레이시마스)
괜찮아요 だいじょうぶです。 (다이죠부데스)

-숙소에서-

1. 이 짐을 맡아주세요
この にもつを あずかって ください。 (코노 니모츠오 아즈캇떼 구다사이)

2. 맡긴 짐을 주세요
あずげた にもつを ください。 (아즈게따 니모츠오 구다사이)

3. 방에 열쇠를 두고 나왔어요
へやに かぎを おきわすれました。 (헤야니 카기오 오키와스레마시타)

-숙소-

1. 예약 담당자를 부탁합니다.
よやくがかりを おねがい します。 (요야쿠가카리오 오네가이시마스.)

2. 체크인을 부탁합니다.
チェックインを おねがい します。 (체----크인--오 오네가이 시마스)

3. 9시에 체크아웃하겠습니다.
9じに チェックアウトします。 (쿠지니 체---크아우토시마스)

4. 열쇠를 맡아 주십시오.
かぎを あずかって ください。 (카기오 아즈캇--테 쿠다사이)

5. 계산을 하려는데요.
かんじょうを しはらいたいですが。

6. 호텔에 있습니다.
ホテルに います。 (호테루니 이마스.)

1. ~ 부탁합니다. :
おねがいします。 (오네가이시마스)

2. ~ 됩니까 :
できますか。 (데끼마스까)

3. ~을 가지고 오세요 :
~ を もってきて ください。 (~ 오 못-떼키떼 구다사이)

4. 국제전화를 걸고 싶습니다만 :
こくさいでんわを かけたいのですが。 (고쿠사이뎅와-오 카케따이노데스가)

5. 크레디트카드로 지불하고 싶습니다만 :
クレジットカ-ドで したいのですが。 (크레짓토--카-도데 시다이노데스가)

-교통-

1.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みちを おしえて ください。 (미치오 오시에떼 쿠다사이)

2. ~ 는 어느쪽입니까?
~ は どちですか。 (~ 와 도찌데스카)

3. ~ 는 어디에 있습니까?
~ は どこに ありますか。 (~ 와 도코니 아리마스카)

4. 시간은 어느정도 걸립니까?
じかんは どのぐらい かかりますか。 (지캉--와 도노구라이 카카리마스카)

5. 택시를 불러주세요
タクシ-を よんで ください。 (타쿠시-오 욘--데 쿠다사이)

6. ~ 까지 가고 싶습니다만
~ まで いきたいのですが 。 (~ 마데 이키타이도데스가)

7. 요금은 얼마입니까?
りょうきんは いくらですか。 (료----킹--와 이쿠라데스카)

-식당-

1. 메뉴를 보여주세요
メニュ-を みせて ください。 (메뉴---오 미세테 쿠다사이)

2. ~ 을 주세요
~ を ください。 (~ 오 쿠다사이)

3. 이건 맛있습니까?
これは おいしいですか。 (코레와 오이시이데스카)

4. 이것은 어떤 요리입니까?
これは どんな りょうりですか。 (코레와 돈--나 료----리데스카)

5. 잘먹겠습니다.
いただきます。 (이타다키마스)

6. 잘 먹었습니다.
ごちそうさまでした。 (고치소--사마데시타)

-음식-

냉수 おひや (오히야), 식당 しょくどう (쇼쿠도우), 식사 しょくじ, (쇼쿠지),
조식 ちょうしょく (쵸오쇼쿠), 중식 ちゅうしょく (츄우쇼쿠), 석식ゆうしょく (유우쇼쿠),
냄비요리 なべ( 나베), 생선요리 さかなりょうり (사카나료리), 고기요리 にくりょうり (니쿠료리), 불고기やきにく (야키니쿠)

- 날씨 -

1. 오늘은 날씨가 좋군요.
きょうは てんきが いいですね。 (쿄--우와 텐--키가 이이데스네.)

2. 오늘 날씨는 별로 좋지 않군요.
きょうの てんきは あまり よくないですね。 (쿄--우노 텐--키와 아마리 요쿠나이데스네.)

3. 대단히 따뜻하군요.
とても あたたかいですね。 (토테모 아타타카이데스네.)

4. 아주 춥군요.
たいへん さむいですね。 (타이헨-- 사무이데스네.)

5. 비가 내리는군요.
あめが ふりますね。 (아메가 후리마스네.)

6. 바람이 세군요.
かぜが つよいですね。 (카제가 쯔요이데스네.)

7. 하늘이 흐립니다.
そらが くもっています。 (소라가 쿠못--테이마스.)

8. 눈이 올 것 같습니다.
ゆきが ふりそうです。 (유키가 후리소우데스.)

- 물어보기 -

1. 이것은 무엇입니까?
これは何ですか。 (코레와 난데스까)

2. 이것은 얼본어로 뭐라고 합니까?
これは にほんごで 何といいますか。 (고레와 니혼고데 난또 이-마스까)

3. 화장실은 어디입니까?
トイレはどこですか。 (도레이와 도꼬데스까)

4. 언제갑니까?
いつ 行きますか。 (이쯔 이키마스까)

5. 지금 몇시입니까?
いまなんじですか。 (이마 난지데스까)

6. 얼마나 걸립니까?
どの くらい かかりますか。 (도노 구라이 카카리마스까)

7. 무슨 뜻입니까?
なんの意味ですか。 (난노-이미데스까)

8. 어느 쪽입니까?
どちらですか。 (도찌라데스까)

9. 왜 그렇습니까?
なぜですか。 (나제데스까)

-사진찍기-

1. 미안하지만 셔터 좀 눌러 주십시오.
すみませんが シャッタ-を おして ください。 (스미마셍가 셔터----오 오시데 구다사이)

2. 나와 함께 찍을까요?
わたしと いっしょに とりましょうか。 (와다시또 잇-쇼-니 토리마쇼---까)


3. 사진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しゃしんを おくって あげます。 (샤싱---오 오꿋데- 아게마스)


여행계획
▣ 여행계획
일본은 길게 뻗은 나라이므로 국토 면적에 비하면 한 번에 전체를 다 돌며 여행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따라서 대부분의 여행객은 홋카이도 주변, 동경주변, 오사카/교토/나라를 중심으로 한 중부지방, 후쿠오카/나가사키를 중심으로한 큐슈지방, 오키나와 지방으로 나누어 여행을 하거나 몇개의 지역을 묶어 여행하는 형태를 띈다.

▣ 비싼 교통비와 여행구역
일본을 여행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살인적이라고 부르는 일본의 물가다. 때문에 일본여행의 기간은 그리 길지 않게 잡는 경우가 많고, 아침 일찍 도착해서 오후 늦게 혹은 밤에 돌아가는 낮 시간을 최대한 활용한 일정을 많이 이용한다. 개별 여행객들은 그 중 비싼 교통요금을 절약하기 위해 JR 철도패스를 이용할 수 있는 지역 위주로 여행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동경주변, 오사카 주변, 후쿠오카 주변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 숙소
일본은 다른 여행지와 달리 일본 전통의 숙박시설인 여관이 있다. 주로 역사 유적이나 온천이 많은 도시에서 볼 수 있으며 그외 관광객이 많은 곳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다다미 방에서의 숙박과 일본 전통식사등을 맛 볼 수 있어 색다른 여행이 될 수 있다. 객실은 싱글로도 사용할 수 있지만 2인 혹은 4인을 기준으로 객실 시설이 구비되어 있다. 고급스러운 곳으로 비싼게 흠이다.
일본만의 독특한 숙소중의 하나로 비지니스 호텔이 있다. 주로 대도시에서 볼 수 있으며 객실은 비교적 작고 최소한의 부대시설만 갖춘 호텔이다. 일반호텔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여 여행자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다.

▣ 여행시기와 기후
여행을 계획하는데 있어서 기후적면에서 본다면 봄, 가을이 가장 적당한데 이 시기는 우리나라 국내관광과 마찬가지로 벚꽃과 단풍놀이로 인해 숙소 요금이 비쌀수도 있다. 또한 남북으로 긴 나라이므로 같은 계절이라도 최북단의 홋카이도와 최남단의 오키나와는 전혀 다른 날씨를 보인다.

▣ 여행의 목적
어디에 가서 무엇을 보고 즐길 것인가를 대략적으로 나누어 본다면 대 도시외에 휴양지인 오키나와, 일본의 지난 역사와 고유 문화를 엿 볼 수 있는 곳으로는 교토, 나라, 가나자와등이 있고 온천 휴양지가 많은 큐슈 지방, 울창한 자연의 홋카이도 지방등으로 그 구분이 가능하겠다. 일본의 테마파크는 대표적인 곳은 도쿄의 디즈니랜드, 오사카의 유니버샬 스튜디오, 큐슈의 하우스텐보스 등이 있다. 그 외의 크고 작은 테마파크에서 일본인의 섬세한 손길을 느낄 수 있다.


역사
▣ 고대
구석기 이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BC 4500년 ~ BC 2세기 경의 조몬문화를 이들에 의한 최초의 문화로 보고 있다. 이후 농경생활과 토기, 금속기 등의 사용 흔적이 보이는 야요이 시기가 BC 3세기 부터 AD 3세기까지 계속되었으며 약탈을 위한 전쟁이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4세기 말부터는 백제와 교류하면서 한자와 유교 이후엔 불교가 전래되어 점점 국가다운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야마토 정권이 성립, 아스카 문화를 꽃 피웠다. 이때의 유적이 남아 있는 곳이 지금의 나라이며 이후 교토로 천도할 때 까지 나라에 문화유적을 남겼다.

하지만 749년 당시의 간무왕은 수도를 나라에서 교토로 이전하여 나라는 역사의 뒤편으로 남고, 천년이 넘는 동안 교토는 문화의 전성기를 맞게된다. 현재 교토에 남아있는 문화 역사 유적들은 이 당시에 만들어져 지속되거나 혹은 재건된 것들이다.

▣ 중세
지속되던 교토의 천황체제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병폐가 생기고 이 혼란을 틈타 귀족들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무사계급이 정권을 잡아 12세기 말 가마쿠라에 최초의 막부가 개설되었다. 이때부터 막부 세력에 눌린 천황은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했다고 볼 수있는데, 반면에 경제 문화적으로는 큰 성장과 변화를 겪었다. 화폐가 발달하면서 상업이 번성하였고 무사와 집권층등 귀족 중심의 문화이긴 하지만 다도, 꽃꽂이등의 문화가 새롭게 형성되었다.
하지만 그후 빈번한 무사계급들의 정권 찬탈로 무로마치 막부를 거치면서 일본은 혼란한 전국 시대로 접어들면서 실제 집권세력이 사라지는 혼란한 시대를 맞게 된다.

▣ 근대
일본 3대 영웅중의 하나로 꼽히는 오다노부나가가 교토에서 무로마치 막부를 멸망시키고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하지만 내부의 소행으로 암살당하고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그 세력을 잡아 통일한다. 도요토미는 내부의 혼란을 외부로 돌리기위해 임진왜란을 일으켰지만 이로 인해 세력이 급속히 약해지면서 사망, 그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잡아 에도 막부를 열고 막부체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1800년대 후반부터 지속된 서구열강의 문호개방 요구와 전국 농민의 봉기로 1868년 메이지 유신을 단행, 근대의 체계로 변화를 꾀하게 된다. 서양의 여러제도를 본 따 산업화와 도시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제국주의 정책을 추진, 아시아 각지역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대륙 침략하면서 2차 세계대전에 참가하여 대동아제국을 꿈꾸지만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두 개의 원자폭탄으로 패망, 미국에 항복하였다.

▣ 패망 ~ 현대
패망 후 점령군 하에서 추진된 개혁은 신 헌법 제정, 농지개혁, 지방자치의 확충 등을 기반으로 하여 천황은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하고 총리가 통치하는 입헌 군주국의 체계를 갖추었다. 중국과 구 소련의 공산세력을 의식한 미국의 적극적인 원조와 지원에 힘입어 일본의 경제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나갔으며, 특히 한국전이 일본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이 후 일본은 꾸준한 경제발전으로 아시아 내에서는 물론 세계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강대국의 하나가 되었다.


공휴일/축제
일본은 공휴일이나 국경일이 일요일과 겹치면 그 다음날인 월요일이 공휴일이 되고 공휴일 사이에 평일이 끼어있으면 자동으로 연결되어 공휴일이 된다. 12월 29일 ~ 1월 3일까지 관공서는 업무를 하지 않으며 4월 말에서 5월 초사이는 연휴가 연결되어 Golden Week라 불린다.

1월 1일 : 정월 초하루
1월 둘째 월요일 : 성인의 날
2월 11일 : 건국 기념일
3월 20일 : 춘분
4월 29일 : 녹색의 날
5월 3일 : 헌법기념일
5월 5일 : 어린이 날 (5월 4일은 자동으로 공휴일이 된다)
7월 세째 월요일 : 바다의 날
9월 세째 월요일 : 경로의 날
9월 23일 : 추분
10월 둘째 월요일 : 체육의 날
11월 3일 : 문화의 날
11월 23일 : 근로 감사의 날
12월 23일 : 천황 탄생일

유용한전화번호
경찰 110
사건사고 상담 (도쿄) 3-3501-0110
행방불명 03-3592-2440
화재, 구급차 119

▣ 주일 한국 대사관
전화번호 : 03-3452-76111~9 주소 : 도쿄토 미나토쿠 미나미 아자부 1-2-5
▣ 주일 한국 대사관 영사부
전화번호 : 03-3455-2601~4 주소 : 도쿄토 미나토쿠 미나미 아자부 1-7-32 거류민단 중앙빌딩
▣ 주일 한국 대사관 문화원 (한국문화원)
전화번호 : 03-5476-4971~4 주소 : 도쿄토 미나토쿠 미나미아자부 1-7-32
▣ 주일 한국 거류민단 중앙본부
전화번호 : 03-3454-4901 주소 : 도쿄토 미나토쿠 미나미아자부 1-7-32
▣ 주일 한국 영사관 (오키나와)
전화번호 : 0988-67-6940

전압 및 주파수
일반적으로 100V를 사용한다. 우리나라 전자제품을 가져가서 사용하려면 110V, 220V 혼용이 가능한 것인지 확인하여 사용한다. 콘센트는 우리나라에서도 쉽게볼 수 있는 110V 모양의 11자형으로 아답터 필요시 호텔에 문의하면 대여가 가능하다.

체험물가
일본의 물가는 살인적이라고 할 만큼 비싸다. 우리에겐 10배정도의 환율이 적용되어 더욱 실감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비싼 것은 교통비다. 가장 짧은 구간의 지하철 요금이 도시에 따라 다르지만 160엔 정도이고 심바시에서 국제 전시장으로 가는 모노레일의 경우엔 300엔이 넘는다.

비싼 일본의 물가 속에서 100엔 샾, 1,000엔 샾 하는 것들이 생겨났는데, 각종 생활용품 이나 팬시 용품, 의류 등을 100엔, 1,000엔의 균일 가격으로 판매한다.

통화
일본의 통화 단위는 엔(円, ¥로 표시)이며, 2003년 12월 현재 환율은 100엔이 1,134원(현찰 살 때)이다. 동전에는 ¥1,¥5,¥10,¥50,¥100,¥500이 있으며. 지폐는 ¥1,000,¥5,000,¥10,000 권이 있다.

일본의 엔화는 우리나라 은행에서 쉽게 환전할 수 있으므로 여행시 엔화로 준비하면 되고 미국 달러는 공항이나 호텔등 국제적인 장소에서만 사용 가능하다. 엔화와 함께 신용카드를 손 쉽게 사용할 수 있으므로 충분히 환전하지 못했을 경우엔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여행자 수표도 사용할 수 있지만 지방이나 작은 상점에서는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한국으로 전화
공중전화는 어느 거리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으며,국제전화를 걸 수 있는 전화는 골드패널이 부착된 녹색전화와 국제전화 전용 전화기를 사용하면 가능하다.
001(국제자동전화식별번호)+82(국가번호)+0을 뺀 지역번호+상대방전화번호
수신자 부담 전화는 00539-82 혹은 0066-77-822를 이용하면 된다.

▣ 현지에서 현지로 전화하기
우리나라와 비교해서 특별히 다를 것도 어려울 것도 없다. 앞에 0과 함께 있는 것이 지역번호이므로 같은 지역에선 누를 필요없이 전화번호만 누르면 되고 타지역으로 걸때는 0을 포함한 지역번호를 누르고 전화번호를 누르면 된다.

현지로 전화
001(국제자동전화식별번호)+81(국가번호)+지역번호+상대방전화번호


주의사항
▣ 출입국 시
2006년 5월 24일 '출입국 관리 및 난민 인정법의 일부를 개정하는 법률'이 공포되었으며, 올해 11월 20일부터 시행하게 되었습니다. 이 법률을 통해 테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규정이 정비되었고, 그 일환으로서 입국심사시에 개인식별정보를 이용한 테러대책을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입국심사수속은, 입국 신청시에 지문 및 얼굴사진을 제공한 다음 입국심사관에 의한 심사를 받게 됩니다. 개인식별정보 제공이 의무화된 외국인이 지문 및 얼굴사진을 제공할 것을 거부한 경우, 일본 입국이 허가되지 않으며 일본으로부터 퇴거를 명령 받게 됩니다.

▣ 교통편 주의사항
일본에서 차의 통행방향은 우리와 반대로 좌측통행이다. 따라서 차문도 차량의 왼쪽에 있으므로 택시나 버스를 탈 때 혼동될 수도 있다. 특히나 길을 건널 때 잘 살피고, 만일 렌트카를 이용할 경우엔 차량의 통행방향에 더욱 주의해야 한다.


비자
일본비자

한국인 일본출입국에 대하여

외국인이 일본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유효한 여권을 소지하고 그 여권에 유효한 사증(비자)을 받아야 한다. 단, 2006년 3월 1일 이후 일반여권을 소지한 한국인은 단기체재 목적으로 일본에 입국하는 경우 사증이 면제 된다.
또한, 외교여권 또는 관용여권을 소지한 한국인에 대해서는 다음의 경우 사증이 면제된다.
① 외교 또는 공무 목적으로 일본에 입국하려고 하는 경우
② 단기체제 (90일 이내) 의 목적으로 일본에 입국하려고 하는 경우

한국인에 대한 무기한 사증면제조치실시

일본정부는 아이치 엑스포개최기간에 맞춰, 2005년 3월 1일부터 9월까지 기간한정 사증면제조치를 실시하고 이것을 2006년 2월 28일까지 잠정적으로 연장하는 조치를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간을 한정하지 않고 사증면제 조치를 실시하기로 했다.
일본정부는 2006년 3월 1일 이후 90일이내의 단기체재를 목적으로 일본에 입국하기를 희망하는 한국인 (취직 또는 취업할 의도를 갖고 입국하는 자는 제외)에 대해 사증을 취득하지 않고 입국을 인정하는 조치를 취하게 되었다. 구체적으로는 아래 1 ~ 12 에 해당하는 자가 사증면제 대상이 된다.
한편, 한국에 단기체재를 하려고 하는 일본인에 대한 사증면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는 관광 · 통과 등을 목적으로 한 경우에만 사증면제대상으로 되어있지만, 3월 1일부터는 한국인에 대한 사증면제 조치와 기본적으로 같은 범위에서 사증면제의 대상이 된다.
○ 사증면제 조치 대상자

1. 통과, 관광, 오락, 보양을 목적으로 하는 자
2. 협의회, 콘테스트 등에 아마추어로서 참가하려고 하는 자 (아마추어로서의 참가라는 뜻은 참가자가 아마추어로 보수를 받지 않는 경우를 말합니다. 주최자가 부담하는 도항비, 체재비 및 입상자에 대한 상품 등은 보수로 간주 하지 않습니다.)
3. 지인, 친구, 친족 등을 방문하려고 하는 자 (병문안, 관혼상제 등의 출석을 포함.)
4. 견학, 시찰 등의 목적을 가진 자 (예를 들면, 공장 등의 견학, 모범 시 등의 시찰을 행하는 자.)
5. 민간단체 주최의 강습, 회의 등에 민간인으로서 참가하는 자
6. 일본에 기반을 갖지 않은 상태로 상담, 계약조인, 업무연락, 에프터서비스, 선전, 시장조사, 기타 모든 단기상용의 목적을 가진 자
7. 단기 사내 강습을 받으려고 하는 자
8. 참배, 종교회의참가, 교회설립에 관한 업무연락 등을 행하려는 목적으로서 단기간 체재하려고 하는 자
9. 보도, 취재 등의 일시적 용무 (일본에 방문하는 국, 공빈 또는 스포츠 선수 등과 동행해서 행하는 취재활동 등)를 목적으로 하는 자
10.자매도시 또는 학교의 친선 방문 자 (친선사절이 행하는 홍보, 선전을 포함.)
11.단기간의 어학연수 (어학연수를 90일 이내에 수료하고 또한 해당 연수 수료 후 계속해서 상급코스 등을 수강할 예정이 없는 경우에만 가능 합니다 (그러한 예정이 있는 경우에는 '취학'의 재류자격을 취득하기위한 수속을 해 주십시오.).)
12.기타 단기체재를 하려고 하는 자. 예를 들면 회사의 설립준비를 목적으로 하는 자, 단기간 병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자, 대학 수험자, 외국법사무변호사가 되기 위한 승인을 받는 등의 수속을 위해 체재하는 자 등

한일 Working-Holiday 사증 안내

한국과 일본의 보다 긴밀한 우호관계를 촉진한다는 취지하에 양국의 청소년들에게 쌍방 의 문화 및 일반적인 생활양식을 이해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1999년 4월부터 양국 간의 Working-Holiday제도가 실시되었다. 2005년, 일본국정부는 심사를 통과한 1,800명에게 Working-Holiday사증을 발급 했지만 2006년 발급분부터는 3,600명으로 확대하였다. 또한 이전에 사증을 발급 받은 경우에는 다시 신청해도 사증을 발급받을 수 없다.

1 . Working-Holiday 사증에 대해서
사증 발급일로부터 1년간 유효한 단수 입국사증으로, Working-Holiday 사증으로 입국하는 한국의 청소년은 일본에 입국한 후, 최장 1년간의 체재가 허가되고, 휴가의 부수적인 활동으로서 여행자금을 보충하기 위한 취업이 인정된다. (단, 바, 카바레 등 유흥업 또는 그에 관련된 영업을 하고 있는 업소에서 일하는 것은 제외)


2 . 한일 Working-Holiday 사증 발급요건 (2006년 제 1 사분기부터 새로워진 ⑧의 요건이 추가된다.)

①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국민일 것.
② 주된 목적이 휴가를 보내기 위해 일본에 입국할 의도를 가질 것.
③ 사증 신청 시점에서 원칙적으로 18세 이상 25세(부득이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는 30세)이하일 것.
④ 자녀를 동반하지 않는 자일 것.
⑤ 귀국 시 비행기 표를 구입하기에 충분한 자금 및 일본에서의 체재 초기에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자금을 소지할 것
( 약 2 5 0 만원).
⑥ 건강할 것.
⑦ 이전에 본 건 Working-Holiday 제도를 이용한 적이 없을 것.
⑧ 일본에서 생활하기 위해 필요한 최저한도의 일본어 능력을 갖고 있거나 혹은 습득할 의욕을 가질 것.

【 사증에 자세한 관한 문의 】

○ 전화 : 02-739-7400 (주대한민국 일본국대사관영사부대표)
월~금 9 : 30 ~ 12 : 15, 13 : 15 ~ 18 : 00
(주) 토, 일, 한국의 공휴일, 12월 29일~ 1월 3일은 휴관일
(임시휴관일은 홈페이지에서 확인)

출처: http://www.kr.emb-japan.go.jp/2006년 9월14일 현재-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


버스
일본의 버스는 시내버스라 하더라도 시간을 잘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노선이 많고 복잡하다. 시내버스는 버스 앞에 표기된 번호로 노선을 구분하는데 전철에 비하면 외국인 관광객이 이용하기에는 언어의 불편이 따른다. 요금은 거리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며 뒷문으로 타면서 문 옆에 있는 승차장의 번호가 써진 표를 받아서 내릴 때 운전석 옆의 요금함에 표와 요금을 넣으면서 앞 문으로 내린다. 요금은 버스 정면 위의 전광판에 표기된다.

장거리 버스는 항공편이나 신간센보다 저렴하긴 하지만 시간이 오래걸리는 단점이 있다. 밤에 출발해 아침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야간버스도 많이 운영되므로 여행경비를 줄이고자 하는 배낭여행객들의 이용이 많은 편이다. 주요 도시간 버스 이동시간을 보면 동경-센다이는 5~6시간, 교토는 7시간, 오사카는 8시간, 후쿠오카는 14~15시간 정도 걸린다.

전철
일본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 교통수단 중 하나가 바로 전철인데 이용객이 많아 특히 출퇴근 시간에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매우 붐비며 노선도 복잡한 편이다. 전철은 국가가 운영하는 국철인 JR과 개인이 운영하는 사철이 있으며, 각 노선은 색깔로 구분된다.

이용방법은 우리나라의 전철과 거의 비슷해 매표 창구에서 목적지를 말하고 표를 구입하거나 자동 판매기에서 돈을 넣고 목적지 버튼을 눌러 표를 받는다. 개찰할 때는 자동 개찰기를 통과하거나 역무원이 표에 펀치를 눌러주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표를 내고 나온다. 영어 요금표가 없을 경우에는 자판기에서 가장 싼 표를 구입하고 목적지에 도착하여 먼저 정산소에서 차액을 지불하고 나오면 된다.

일본의 전철이 우리와 다른 점은 갈아탈 경우 인데 노선이 다르면 환승역이 없고 개찰구를 통해 나와 다시 표를 구입하고 새로운 노선의 전철로 갈아타야 한다는 점이다.

철도
국가에서 운영하는 Japan Rail(JR)이 동경을 중심으로 전국 곳곳을 골고루 연결하고 있다. 역마다 영어와 일본어, 한자가 혼용 표기되어 있어 외국인 관광객이 이용하기에 별 불편이 없다.

일본 철도는 빠르고 경제적어이어서 대도시 주변도시에서는 대도시로 출 퇴근하는 통근객의 이용이 많으며 장거리 노선은 신간센으로 대표되는 특급 열차가 주요 도시를 연결하고 있다. 신간센이 지나는 철도 역은 일반역과 달른 곳이 많은데 역명에 '신'이 붙으면(예-신오사카 등) 신간센이 지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장거리 열차는 목적지, 좌석이 지정석인지 자유석인지, 급행인지 아닌지등의 여부에 따라 요금이 다르게 책정된다.

▣ JR PASS (2004년 3월 현재)
외국인 여행객을 위한 철도 탑승권으로 정해진 기간동안 일정한 지역 내에서 일본의 국철과 관련회사에서 운영하는 버스나 배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외국인 여행객만을 위한 것이므로 일본 내에서는 구입할 수 없어 여행 전 미리 구입해야 한다. 철도 패스는 일본 전 지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과 일부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되어진 패스가 있으며 나이에 따라 그리고 이용할 수 있는 좌석에 따라 요금이 다르다.

• JR PASS 이용시 주의사항
- JR 패스는 일본에서 구입할 수 없으므로 미리 여행 전 구입하도록 하고, 여권 상의 영문이름과 동일하게 예약해야한다.
- 패스는 일본 도착 후에는 정해진 기간(패스 종류에 따라 1개월, 3개월등 다르다) 안에 패스로 교환하여 사용하여야 한다. 패스 구입시 교환 장소와 이용할 수 있는 교통편, 노선도 등이 첨부된 지도를 구할 수 있다.
- 패스의 교환은 교환소에서 가능하며 여권과 관광비자를 확인한 후 패스를 이용해 차량을 탑승할 첫 날짜의 도장을 찍는 것으로 개시를 표시하며 표기 후 날짜의 수정은 불가능하다.
- 사용하지 않은 패스는 일정의 수수료를 제외하고 환불 받을 수 있지만 사용개시일이 지난 패스는 환불이 불가능하다. 또한 도난이나 분실시 재발급 받을 수 없다.
- 패스의 종류에 따라서 그 세부 이용규정이 다를 수 있으므로 주의사항을 충분히 숙지한 후 예약, 이용하도록 한다.

• JR PASS
일본 전 지역에서 이용할 수 있는 패스로 국철과 신간센(노조미 제외), 특급열차, JR(Japan Rail)에서 운영하는 JR 지역버스, 고속버스, JR 페리(미야지마-미야지마 입구)를 이용할 수 있다.
일반석 기준으로 7일간 이용할 수 있는 어른용 패스는 28,300엔 14일간은 45,100엔, 21일간은 57,700엔이며 11세 미만은 위 금액에서 50% 할인된다.

• JR EAST PASS
일본 동부의 주요 도시인 도쿄, 니카다, 센다이, 아키다, 모리오카, 후쿠시마, 나가노, 야마가타 지역에서 이용할 수 있다. 1등석과 2등석, 5일권, 10일권으로 구분되며 어른은 26세이상, 청년(Youth)는 12세-26세, 어린이는 12세 미만으로 나누어 요금을 책정하고 있다. 2등석 기준으로 보면 어른은 5일권이 20000엔, 10일권이 32,000엔이며 청년은 각각 16,000엔, 25,000엔이며 어린이는 어른 요금의 50%로 적용된다.

• JR WEST RAIL PASS
서일본 지역인 산요(Sanyo)와 간사이(Kansai) 지역에서 이용할 수 있는 패스로 Kansai Area Pass와 Sanyo Area Pass가 있다.
Kansai Area Pass는 오사카, 교토, 나라, 고베, 히메지 등 관서지역에서 이용할 수 있다. JR WEST 철도회사에서 운행하는 열차를 정해진 기간동안 이용할 수 있으며 신간센은 이용할 수 없다. 1일권은 2,000엔, 2일은 4,000엔, 3일은 5,000엔, 4일은 6,000엔이며 어린이는 반액이다.

Sanyo Area Pass는 오사카, 오카야마, 히로시마, 하카다(후쿠오카) 지역에서 이용할 수 있으며 West Japan Railway에서 운영하는 페리인 히로시마의 미야지마 페리와 노조미와 같은 신간센도 이용할 수 있다. 4일권은 20,000엔, 8일권은 30,000엔이며 11세까지의 어린이는 50%가 적용된다.

• HOKKAIDO RAIL PASS
일본의 최북단 섬인 홋카이도에서 이용할 수 있는 패스로 3일간 이용할 수 있으며 1등석은 20,000엔, 2등석은 14,000엔이며 어린이는 반액이다.

• JR KYUSHU RAIL PASS
일본의 남부지역 큐슈에서 이용할 수 있으며 대표적인 도시로는 후쿠오카, 사가, 나가사키, 구마모토, 가고시마, 오이타, 미야자키, 벳부등이다. 5일권 16,000엔이고 어린이는 어른 요금의 50%다.

택시
택시의 기본 요금이 전철의 4∼5배에 달할 정도로 비싼 편이지만 짐이 많을 경우 혹은 3-4명이 단거리를 동시에 움직일 경우 이용하면 편리하며, 서비스도 좋다. 기사는 영어를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한자나 일본어로 된 주소를 보여주거나, 인식이 될 만한 대형 건물등을 말하면 쉽게 찾아간다.

택시 이용은 호텔에서의 경우 벨보이에게 택시를 불러달라고 하면되고 역이나 터미널에서는 별도의 택시 승강장이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운전석 위에 불이 들어와 있는 것은 빈 택시 이므로 적당한 장소에서 손을 들어 세워 탄다. 택시는 기사가 뒷 문을 자동으로 열고 닫을 수 있으므로 탈 때 너무 가까이 다가서지 않도록 한다. 물론 성격 급한 사람들은 손들어 세우고 바로 열고 타기도 한다.

기타
일본의 특이한 교통수단의 하나로 모노레일을 들 수 있는데 전철보다 규모가 작으며 비교적 짧은 구간을 운행한다. 모든 것이 자동, 무인으로 운영되므로 표는 자동판매기에서만 구입할 수 있고 모노레일역시 무인으로 움직인다. 전철보다 늦게 만들어진 덕에 역사와 내부는 훨씬 깨끗하고 쾌적하지만 요금은 조금 더 비싼 편이다.


일본의 기후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온대 기후로 사계절이 뚜렷한데 우리가 대륙성 기후인 반면 일본은 섬나라인 덕에 여름엔 우리보다 습하고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태풍과 장마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일본의 지형이 북동에서 남서로 길게 뻗어 있어, 눈이 많이 오는 최북단의 홋카이도에 비해 최남단의 오키나와는 아열대 기후로 현격하게 다른 자연과 날씨를 보인다. 따라서 일본여행을 계획할 때는 여행의 시기 못지 않게 지역도 배려하여 준비해야한다.




▶ 가가와 [Kagawaken]

가가와 현은 시코쿠 지방의 북동부에 위치한다. 가가와 현은 남쪽으로 1,060 미터의 류오산을 정점으로 1,000 미터 높이의 산들이 즐비한 사누키 산지와 북쪽으로 펼쳐진 광대한 사누키 평야, 그리고 쇼도 섬을 시작으로 한 110 여 개의 크고 작은 섬이 떠있는 세토 내해로 구성되어 있다.

세토 내해에 면한 690 킬로미터에 달하는 해안과 넉넉한 바다에 떠있는 그림같은 섬들을 거느린 "비산세토 해역"은 1934년에 국립공원 제 1 호로 지정될 만큼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 가고시마 [Kagoshima]

일본 규슈(九州)의 최 남단에 있는 가고시마 현의 현청 소재지가 위치하고 있는 곳으로 가고시마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가고시마는 우리나라에 그리 많이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이미 14세기 경에 작은 성곽도시로 출발해 한창 격동기인 1800년대 후반 메이지 유신을 기도한 지식인들이 이곳 출생인 일본 근대사에서 중요한 곳이다.

가고시마를 비롯한 큐수 남부 도시들의 첫 인상은 야자수와 같은 이국적인 가로수로 인해 기존의 일본에 대한 선입견을 확 바꿔준다. 가고시마의 자연은 여러가지 얼굴을 갖고 있어 우리나라보도 오히려 현지의 일본인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데 온화한 바다와 아름다운 산호초, 요트 항해를 즐길 수 있는 해안으로 인해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기도 한다.
또한 아직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활화산 사쿠라지마는 이방인에게는 낯설고 불안한 모습이지만 시민들은 그리고 일본 관광객은 아주 편한 마음으로 유람을 하는 곳이다. 사쿠라지마에서는 아직도 화산재가 흩날리고 있지만 이런 모습 덕에 더 많은 관광객이 몰리고 가고시마 역에는 날리는 화산재 때문에 스프링 쿨러가 항상 돌아가고 있다. 가고시마를 중심으로 남부의 가오몬 산, 이케다 호수, 사쿠라 섬등 다양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한 관광장원이 풍부하다.

가고시마는 4계절을 가진 온대기후에 속하지만 비교적 남쪽에 위치해 온화한 면을 보인다. 과거 몇년간의 통계에 의하면 여름 최고 기운은 35.1℃, 겨울 최저기온은 -1.4℃로 정도다. 연중 일조량도 충분한 편으로 따뜻한 날이 많아 일본 내에서도 겨울 여행지로 꼽히고 있다.
연간 평균 강우량은 2,0560㎜ 로 5월부터 7월에 걸쳐 가장 많은 비가 내리는데 연 강우량의 3분의 1일 이 기간에 내리는 셈이다. 또한 일본 열도의 남부에 위치해 여름철 태풍이 지나가는 길목이 되기도 한다.

가고시마 공항 36 컨트리 클럽 I 그린힐골프클럽 I 기리시마 골프클럽 I 다카치호 C.C I 미조베 컨트리 클럽 I 이브스키 골프클럽 I 인터내셔널 골프 코스




▶ 가나자와

에도시대 문화유산으로 가득한 카나자와 시(金?市)는 이시카와현의 현청소재지가 있는 중심 도시로 이시카와현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다.

에도시대부터 카가햐쿠만고쿠(加賀百万石)의 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시가지로, 이시카와 현, 후쿠이 현, 도야마 현으로 구성된 호쿠리쿠 지방의 으뜸 도시였던 만큼 잘나가던 시절의 문화유산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수식어
에도시대 문화유산으로 가득한 카나자와 시(金?市)는 이시카와현의 현청소재지가 있는 중심 도시로 이시카와현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다.

에도시대부터 카가햐쿠만고쿠(加賀百万石)의 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시가지로, 이시카와 현, 후쿠이 현, 도야마 현으로 구성된 호쿠리쿠 지방의 으뜸 도시였던 만큼 잘나가던 시절의 문화유산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 가마쿠라

가마쿠라(鎌倉)는 일본 혼슈(本州) 동경 근처의 가나가와 현(神奈川縣)에 있는 도시로서 요코하마 남쪽 태평양 연안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가마쿠라는 조그만 어촌이었으나 1180년 미나모토(源氏)가 막부의 근거지를 세우면서 발전하기 시작하여 이후 300여년 동안 일본 제2의 수도라는 정치적 지위를 누렸으며, 가마쿠라 시대(1192-1333년)의 실질적 행정수도였다. 가마쿠라는 끊임없는 내전, 해일, 화재 등으로 인해 쇠퇴하다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이곳에 궁궐, 절, 귀족저택들을 만들면서 지금과 같은 역사 유적지가 되었다. 이후 1939년과 1948년에는 인근 마을들을 합병하였다.

가마쿠라는 현재 교토나 나라만큼 역사적 유물이 풍부하지는 않지만 많은 사찰과 신도(神道)의 신사들이 있는 곳이어서 교토나 나라 쪽으로 가기 힘든 사람들이 즐겨 찾고 있는 곳으로, 사적지, 휴양지로서의 성격이 강한 한편, 요코스카 선(橫須賀線)을 따라 주택지구가 발달하였다.




▶ 고베 [Kobe]

고베(神戶)는 긴키(近畿)지방에 위치하고 있으며, 효고켄(兵庫縣 효고현)의 현청 소재지이다. 그리고 고베는 교토, 오사카와 더불어 교한신(京阪神)의 산업/문화/교통권을 형성하고 있을 만큼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과거 한때 고베는 일본의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교토를 대신하여 일본의 수도 역할을 하였는데 이때부터 항구도시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고베는 3세기 경 당시에도 지금과 같은 항구의 모습을 갖고 있었다고 하며, 이미 무코노미나토(務右水門)라는 이름으로 항구 역할을 했었다고 한다.

또한 오사카가 국내항의 성격이 강하다면 고베항은 국제항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고베는 서일본 최초의 국제 항구 도시이며, 1868년 개항된 이래 지금까지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으며, 현재는 일본에서 요코하마 다음으로 큰 국제항이며, 긴키(近畿) 지방경제의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는 수출입항구이기도 하다.

고베는 국제항의 성격이 강한 탓에 서양식 레스토랑이나, 외국인 거주지 등이 매우 많이 있으며, 이러한 이국적인 분위기는 일본의 젊은 세대들에게 무척 인기가 있다. 시가지는 롯코산(六甲山)을 뒤로하고 동서로 길게 위치한 형태인데, 항구 일대는 임해공업 지대이며, 롯코산 기슭 일대는 고급 주택가이자 이국적인 정서가 강한 곳이다.

고베는 1981년에 고베 포트 아일랜드 박람회(포트피아 81)가 개최됨으로써 세계 최초의 인공 해상도시가 탄생되기도 했으며, 우리에게는 95년 대 지진으로 인해 더욱 익숙해진 곳이기도 하다.

고베의 기후는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온화한 것이 특징이다. 7월 기상은 평균 기온이 26.4℃로 우리나라의 한여름 기온이므로 일사병과 저 체온증의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어 주의해야 하며, 외출시에는 모자나 선그라스,햇빛가리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7월의 최고기온은 29.9℃이며, 최저기온은 22.8℃이므로 온도차가 7.1℃이다. 따라서 큰 기온차가 아니므로 기온변화에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 교토 [Kyoto]

교토(京都)는 긴키(近畿)지방에 위치해 있으며, 794년부터 1868년까지 약 1,100년 동안 일본의 수도였던 곳이다. 천년 고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교토는 긴키 지방의 다른 어떤 도시보다도 일본의 역사와 문화 유적지가 많은 곳으로 나라와 함께 일본 관광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곳이다.

시내 골목 어디에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찰과 사적이 옛스러운 풍경을 담고 있다. 교토는 16세기에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교토를 새로이 재건하면서 현재의 모습이 갖춰지게 되었다.

교토는 제 2차 세계대전 중에도 그 문화적 가치로 인해 폭격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고 할 만큼 유서깊은 도시이며, 전후에는 정밀, 전자 산업이 발달하여 일본경제에 큰 보탬이 되기도 하였다. 현재 교토에는 2개의 옛 궁성을 비롯해 2,000개가 넘는 절과 400개에 달하는 신사,수십 개의 정원 및 궁궐 등이 있다. 또한
히가시야마(東山), 기타야마(北山), 아라시야마(嵐山)등에 둘러싸여 있어 봄가을의 계절의 변화도 볼 만하다. 한마디로 도쿄가 일본의 정치, 경제의중심지라면 교토는 일본의 역사, 문화의 중심지이라고 할 수 있다.




▶ 구마모토

일본 규슈(九州) 중부에 있는 구마모토현(熊本縣)의 현청 소재지가 위치하고 있는 곳으로 규슈 지방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며,아마쿠사 해(天草海)에 접해 있는 곳이다. 구마모토 시는 규모가 크고 중요한 도시로,17세기에 세워진 유명한 구마모토 성(熊本城)과 스이젠사(水前寺) 공원이 있다.

구마모토는 물과 바다를 통해 규슈(九州)의 모든 현과 접해 있기 때문에 교통의 요지일 뿐만 아니라 규슈의 중심적인 관광지 역할을 하고 있으며,동쪽으로는 벳푸(別府)와 서쪽으로는 운젠(雲仙)·나가사키(長崎)에 이르는 규슈(九州) 횡단도로가 지나고 있으며,또한 규슈 남부와 북부를 잇는 교차점이기도 하다.
즉,규슈는 지리적으로 보면 넓은 평야와 시라가와(白川)등 여러 물줄기가 도시를 흐르고 있는 곳이다

특히 옛날부터 일본에 성(城)이 있는 도시는 역사상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지방이었는데 구마모토에도 역시 일본 3대 성의 하나인 구마모노조(熊本城)가 우뚝 솟아있어 옛 구마마토의 번영을 상징하고 하고 있으며,시 외곽으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소(阿曾)가 있다.

또한 규슈에는 많은 온천과 우리나라 옛 백제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고적과 유물들도 볼 수 있으며,유흥가 등이 형성되어 있는 관광 도시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으며,아소(阿曾)국립공원이 있는 아소산(1,592m)의 거대한 분화구는 관광명소 중의 하나이다.

여행계획
JR 구마모토역은 시의 외곽인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구마모토의 상징인 구마모토 성은 전차로 15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구마모토 시는 구마모토 성을 중심으로 하루에 모두 둘러 볼 수 있다.

구마모토의 중심 도로는 구마모토 성 남동쪽의 시타도리(下通り)와 선로드 신시가이도리(Sunroad 新市街通り)등이며, 이 길을 중심으로 쇼핑가와 유흥가가 자리잡고 있고, 구마모토 역에서 전차 2호선을 타고 구마모토조마에(熊本城前), 가라시마초(辛島町). 시야쿠쇼마(市役所前) 등에서 내리면 갈 수 있다.
즉 구마모토 성과 겐리쓰비주쓰칸·시리쓰하쿠부싸칸·덴토코게이칸(傳統工藝館) 등을 구경한 뒤 스이젠지코엔(水前寺公園)으로 가면 된다.

JR 구마모토역의 전타 타는 곳 앞 작은 건물에 있다. 이곳에서는 구마모토와 아소산에 대한 정보 및 지도를 얻을 수 있다. 한국어판 안내 팜플렛도 있다.

구마 컨트리 클럽 I 구마모토 공항 컨트리 클럽 I 구마모토 중앙 컨트리 클럽 I 츠카사 로얄 골프클럽 I 큐슈 골프 클럽 쇼타이잔 코스 I 크라운 골프클럽 I 타마나 컨트리 클럽 I 히토요시 치산 컨트리 클럽




▶ 나가사키 [Nagasaki]

나가사키(長崎)는 일본 규슈(九州) 북서부 나가사키 현(長崎縣)의 현청 소재지이자 현 최대도시로 나사사키 항으로 흘러 들어가는 우라카미 강(浦上川) 어귀에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나가사키항은 남쪽의 노모(野母) 곶과 북서쪽의 니시소노기 반도가 만나는 지점에 형성된 좁고 깊게 패인 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이 도시는 만의 안쪽을 에워싸고 있는 언덕을 따라 구불구불한 길과 집들이 계단식으로 들어서 있어 원형 경기장을 연상시킨다. 또한 해안의 간천지와 우라카미 분지는 평지를 이루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나가사키는 1571년 포르투갈을 기수로 하여 영국·네덜란드·미국·러시아·프랑스 등 서방 선진국들이 밀어닥친 곳이다. 즉,일본에서 최초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개항 도시며,1542년 다네가시마(種ヶ島)섬에 표류하던 포르투갈 배가 정박하면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나가사키항(長崎港)은 히라도항(平戶港)에 이어 일본이 2번째로 외국과 무역을 개시한 역사적 의의가 깊은 항구이다. 또한 나가시키항은 다른 항구들이 외국에 대하여 문을 닫고 있었을 때 도쿠가와 막부에 의해 1639∼1859년에 개방되었고 이곳을 통해 당시 포르투갈 인들은 조총과 기독교를 일본에 전해주었다.

나가사키는 제 2차 세계대전중인 1945년 8월 9일 원폭의 표적이 되어 큰 피해를 당하기도 했다. 이로인한 인명과 재산 피해는 히로시마(廣島)에 비해 덜했으나 나가시키 시가지 건물 중 40% 정도가 완전히 파괴되거나 파손되었고,인명은 약 6만 5,000여명 정도가 죽거나 부상을 당한 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이에 나가사키의 우라카미 강변의 원자폭탄 투하 지점에는 평화 공원이 조성되어 있기도 하다.

공항안내
나가사키 공항은 시내에서 약 40㎞ 지점에 있는데, 인공섬에 조성된 해상 공원 이다.
나가사키 공항에서 나가사키 역까지 공항 셔틀버스가 운행하고 있으며, 소요시간은 약 1시간 정도된다.
나가사키 역에서 공항으로 가고자 할 때는 역 건너편에 있는 켄에이(縣營) 버스 터미널 4번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면 된다.

버스
▣ 시내버스
나가사키현에서 운영하고 있는 영버스와 나가사키 버스의 두 개 회사가 나가사키 시내 곳곳을 운행하고 있으며,중심부에서 우라카미 방면으로는 한 자리 숫자의 버스가 운행하고 있으며,오우라 방면으로 두자리 숫자의 버스가 운행하고 있으므로,쉽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 시외버스
하카타에서 고속 버스를 이용할때 나가사키까지 약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되고,요금은 약 3,000엔 정도든다. 구마모토로 갈때는 약 4시간 소요,하루에 10여편 운행한다.

철도
도쿄에서 나가사키로 가려면 신칸센을 이용하여 하카타까지 간 후 다시 급행을 타고 나가사키까지 이동 할 수있다. 또한 같은 노선이더라도 타는 열차의 종류에 따라 소요시간이 다르고 금액도 다르다.

페리
나가사키항 순환 유람선이 운항되고 있다. 하루에 3회정도 운행되고 있으며,소요시간은 약 1시간 정도이다.

쇼핑
▣ 데지마(出島)
데지마는 에도(江戶) 시대 때 외국과의 유일한 창구 역할을 하던 곳으로 현재는 매립되어 버렸지만,나카노가와(中島川) 하류 부근에는 옛날의 모습이 남아있다.
데지마에서는 오란다교칸세키·데지마 자료관·미니 데지마·데지마 교회 유적을 돌아본 후 하마마찌(浜町) 주변에서 쇼핑을 즐기는 것이 좋다.

▣ 마루야마 유흥가
전차역인 시안바시(思案橋)역의 남쪽 일대인 시안바시도리(思案橋通り) 주변에는 나가사키 최대의 유흥가가 형성되어 있으며,특히 밤이 되면 많은 술집과 레스토랑·나이트클럽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밖에 시안바시 역 북쪽의 오마루(大丸) 백화점 부근에는 쇼핑가가 형성되어 있는데 하마마치와 칸코도리 부근이 특히 번화가이며,쇼핑할 수 있는 가게들이 몰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행계획
나가사키 시내여행은 크게 세 지역으로 나누어 돌아볼 수 있다.
첫째는 시 북쪽의 JR 우라카미(浦上)역 부근에 있는 원폭 투하 지역이고, 둘째는 시 중심가와 그 동쪽의 나카시마가와(中島川) 주변의 절이 모여 있는 지역이다. 마지막으로는 나가사키에서도 가장 이국적인 분위기가 남아 있는 시 남쪽 지역이다. 나가사키의 중심 번화가는 하마노마치(浜の町)아케이도와 마루야마(丸山)지역과 차이나타운·오란다자카(オランダ坂)·그라바소노(グラバ園)등이 있으며, 번잡하고 화려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반면, 데라마치(寺町)에 있는 도데라(庫寺)나 스와진자(諏訪神社)등지에서는 차분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이나사야마(稻佐山)에서는 나가사키 항구의 야경을 즐길 수 있다.

여행 정보센타는 JR 나가사키 역 안에 관광 안내소가 있다. 숙소 예약 등을 도와주며, 관광안내 컴퓨터를 이용하여 숙박·식당·지도 등의 자료를 프린트로 뽑아볼 수 있다. 이 밖에 역 건너편에 나가사키켄 칸코쿄가이칸(長崎縣觀光協會)이 있다.

즐길거리
▣ 오쿤치 마쯔리(おくんち 祭)
매년 10월 7~9일까지 개최되고 있으며,스와진자 부근에서 개최되고 있다. 이 축제는 나가사키에서 가장 중요한 축제이다.

▣ 운제다케
시마바라 반도 중앙부에 솟아 있는 해발 1,359미터의 후케다케를 중심으로 한 묘켄,구니미 등의 화산군을 운제다케라고 하는데,이곳은 철쭉을 비롯하여 단풍과 겨울 서리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또한 이곳은 니타 순화 유료 도로에서 가장 높은 해발 1,080미터의 니타토게에서 보는 아마쿠사 방면의 전망이 좋으며,이밖에 이곳에서 우젠 로프웨이를 이용하여 묘켄다케(1,333미터)까지 오를 수 있으며,후켄다케(1,359미터)로는 걸어서 약 1시간 정도가 소요되고 있다.

▣ 나가사키항 해상유람
나가사키에서는 나가사키 항을 중심으로 배를 타고 미쓰비시 조선 등을 돌아보는 해상 유람 코스가 있다. 요금은 유료이고,하루에 3~5회 정도 운행되며 야간코스도 즐길 수 있으며,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 이나사야마의 철쭉제
이나사야마는 나가사키시의 서쪽에 위치한 해발 332m의 산으로 일대가 공원으로 개방되고 있다. 이나사야마는 벚꽂과 철쭉의 명소로 유명하며,이곳에서는 매년 4월 27일~5월 5일에 이사야마 철쭉제가 열리고 있다.

오션팰리스 골프클럽 I 파사쥬 킨카이 컨트리 클럽 I 페니슐라 오너즈 골프클럽 I 하우스텐보스 컨트리 클럽





▶ 나고야 [Nagoya]

나고야(名古屋)는 긴키(近畿)지방에 있는 아이치현(愛知縣)의 현청 소재지이며, 일본 열도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일본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이다. 나고야는 도쿄(東京)에서 약 350㎞의 거리에 있고 신칸센(新幹線)으로 2시간 거리에 있다. 동쪽은 완만한 구릉, 북서쪽은 노비(濃尾)평야, 남쪽은 이세 만(伊勢)에 임해있다. 지형적으로는 동부를 제외하면 대체로 평탄하여 예로부터 해로와 육로의 교통요지였다.

나고야는 일본 중세 역사의 3대 인물인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토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을 모두 배출하였으며, 나고야 성과 함께 한때 정치/문화의 중심지로 군림했고, 2차 대전 이후 도시 재건과 함께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였다.

나고야는 나카 구의 녹음이 어우러진 관청단지, 나고야 역 주변의 현대적 고층빌딩지역, 시가지를 달리는 고속전철, 메이시(名四)국도의 개통, 나고야 항의 정비와 임해 공업지구 조성 등 거대 도시로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나고야의 메이조(名城)공원과 쓰루마이(鶴舞)공원의 푸르름, 그리고 에도 시대의 잔영이 남아 있는 시케마치(四間道)나 교외의 나루미(鳴海), 아리마쓰(有松), 야고토코쇼지(八事興正寺) 등 유서깊은 곳도 아주 많다. 특히 텔레비전 탑과 나고야조(名古屋城)의 덴슈가쿠(天守閣)는 나고야의 상징이자 주요 관광 대상이다.

나고야의 기후는 연중 따뜻한 편이다. 년 평균 기온은 30℃가 넘지 않으며, 한 겨울에도 영하로 떨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여행계획
나고야의 도시는 마치 바둑판처럼 잘 정비되어 있기 때문에 지도를 가지고 찾아다니기가 쉽다. 나고야 역에 도착해서 동쪽으로 나오면 거대한 TV 탑이 보이는데, 그 부근이 쇼핑과 유흥의 중심지인 사카에(榮)이며, 사카에 일대는 나고야의 대표적인 번화가이다.
또 나고야역의 북동쪽으로는 나고야조(名古屋城)가 있고, 이 두 볼거리를 중심으로 방향감각과 여행계획을 잡을 수 있다. 나고야의 신칸센(新幹線) 플랫폼은 서쪽에 위치하며, 긴테스(近鐵)나 메이지테스(名鐵) 플랫폼은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관광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여행 안내소나 지하철·메이테스 버스터미널 등은 역의 동쪽으로 나와야 갈 수 있으며, 시내 중심가도 이곳을 따라가야 한다.

그러나 나고야에는 나고야 역과 신나고야 역이 있으며, 신나고야(新名古屋)역은 신칸센과는 무관하며 메이데스 전철이 서는 역이기 때문에 꼭 주의 해야 할 것이다.
특히 나고야는 재팬 알프스나 다카야마(高山), 이누야마(犬山)등지로 가는 교통의 관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다카야마나 재팬 알프스 지역을 여행할 계획이라면 나고야의 관광은 간단히 끝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조금만 부지런하면 미에켄(三重縣)의 이세진자(伊勢神社)나 다카야마까지도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을 것이다.

여행안내소는 나고야 역의 북쪽 출구에 있으며, ☎052-541-4301번으로 이용할 수 있으며, 이밖에 나고야 고쿠사이 센터(名古屋 國際センタ-)에서는 나고야 외에도 츄부(中部)지방의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즐길거리
• 아쓰타(熱田) 축제
아쓰타 축제는 매년 6월 5일에 아쓰타 진자(熱田神社)에서 열린다.

• 덴노(天皇) 마쯔리
덴노 마쯔리는 매년 6월 첫째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데키마치에서 열린다.

• 나고야 마쯔리(名古屋祭り)
나고야 마쯔리는 나고야에서 열리는 가장 큰 축제로 매년 10월 중순에 열리고 있다.

히라야 컨트리 클럽




▶ 나라 [Nara]

나라(奈良)는 일본의 중부에 위치하고 있으며,교토에서는 30분 거리에 있는 작은 도시로 차분하면서도,역사의 체취가 느껴지는 곳이다. 나라는 같은 역사 도시이면서도 해도 관광 도시화된 것 같은 분위기가 짙은 교토(京都)와는 달리 꾸미지 않은 자연과 시골풍경이 곳곳에 남아 있고,나라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역사의 흔적이 있다.

나라는 사계절마다 각기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는 곳이어서 찾을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게다가 나라 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에는 우리나라와 관련된 역사가 많이 있으며,우리나라 삼국시대의 문화를 받아들였으며,우리나라의 "국가"를 뜻하는 순수 우리말의 "나라"가 이곳의 지명으로 비롯된 것이다.

나라는 서기 710년부터 784년까지 일본의 수도였으며 이 시기를 아스카(飛鳥) 시대라고 부른다. 또한 나라는 교토에서 42㎞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조용한 전원 풍경 속에 고대의 분묘와 폐허 그리고 국보급의 불상과 고대로부터 내려온 예술품들이 살아 숨쉬고 있는 곳으로 불교가 천황의 보호 아래 처음으로 융성한 곳이다. 752년에 도다이지(東大寺)의 거대한 부처 동상인 다이부스(大佛)가 완성될 무렵,불교 문화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후 오랜 세월이 지났으나 1,200년 전이나 다름없이 문화재가 잘 보존되어 있어 마치 박물관과 같은 느낌마저 준다.

나라의 또 다른 이름은 야마토(大和)이며,아름다운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 수려한 자연경관 속에 수많은 옛 사찰과 미술품들이 어우러져 있다. 또한 나라는 동양적인 미와 일본적인 정취를 물씬 풍기는 곳이다.

나라는 우리나라의 역사와도 관계가 깊은데,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동생 제명여제(劑明女帝)가 활동무대로 삼았던 곳으로 제명여제는 백제인으로서는 을 마지막으로 일본을 다스렸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후 제명여제의 둘째 아들인 대해인(大海人)은 백제와의 인연을 끊고,국호를 일본이라 칭함으로써 나라는 우리나라 역사와는 인연이 단절된 것이라고 하겠다.

공항안내
비행기를 이용해서 나라까지 가려면 오사카 공항을 이용해야 한다. 오사카 공항에서 나라까지는 직항 노선이 없으므로 오사카나 교토에서 기차를 이용해야 한다.

버스
▣ 시내버스
나라에서는 걸어다니는 것이 가장 좋다.
물론 시내버스가 잘 연결되어 있어서 이동에는 전혀 불편함을 느낄 수가 없다. 버스 안내 방송도 영어로 나오고,시내 곳곳에는 가는 목적지와 요금·버스 번호·도착시간 등을 알려주는 기계도 설치되어 있다.
1번과 2번 버스를 타면 나라 공원을 돌아볼 수 있다. 운행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다.

▣ 시외버스(야간버스)
숙박비와 이동하는데 드는 시간을 동시에 절약하고 싶으면 야간 버스를 이용해 보는 것도 괜찮다.
도쿄와 나라를 연결하고 있는 야간 버스가 있으며 도쿄 역에서 밤 11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면 다음날 아침 6시 50분에 나라에 도착하게 된다. 나고야 역에서 교토 역까지 JR하이웨이 버스와 일본 급행 버스 및 名阪近鐵 고속버스가 떠나며,소요 시간은 2시간 25분에서 2시간 50분 정도이다.

전철
JR선은 간사이혼센과 교토~나라를 연결하는 나라센,사쿠가이센,와카야마센이 현재 운행되고 있으며,오사카 미나토마치에서 나라을 경유해서 나고야로 운행되는 간사이혼센 이외에는 1시간에 1~2회밖에 다니지 않는다.

철도
교토에서 나라까지는 긴테쓰(近鐵) 교토센(京道線)의 특급 전차가 30분 간격으로 출발하며, 소요시간은 33분이다. 이 밖에 JR보통 열차, 나라센(奈良線)은 30∼60분 간격으로 떠나고 있으며, 약1시간 소요된다.

오사카에서 나라까지는 긴테쓰 나라센의 특급 전차가 60분 간격으로 출발하고 있으며, 소요시간은 31분다. 아니면 오사카 텐노지 역에서 JR 간사이센(關西線)을 탄 후 나라의 호류지 역에서 내린다.

긴케쓰센은 나라 역과 오사카의 나니와(浪速) 역 사이를 30분만에 갈 수 있고, 나고야에서는 JR 나고야 역에서 간사이혼센(關西本線) 급행인 가스가(かすが)호를 타면 나라(奈良)역까지 2시간 30분 걸리다. 긴테쓰 사철은 오사카센(大阪線) 특급으로 1시간 58분 걸린다

기타
나라는 도시 자체가 워낙 작아서 자전거 여행으로도 대부분의 명소를 돌아볼 수 있다,따라서 나라에서는 필히 자전거를 이용해 여행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자전거를 대여하는 곳은 긴테쓰 렌트 사이클 센터이다. 나라 시 여행자 센터 부근에 있다.
정기 관광버스는 6가지 코스가 있다. 단 계절에 따라 약간씩 바뀌며,문의는 나라 교통으로 알아보면 될 것이다. 이밖에 케이블카나 로프웨이가 있다.

쇼핑
• 겐린도(玄林堂)
도다이로(登大路)에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유서가 깊은 먹 전문점이다. 이곳은 가게 자체부터가 고풍스러우며,매우 고급스럽다.

• 나라현 상공 관광관(奈良縣商工觀光館)
나라 현 상공 관광관은 도다이로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나라의 명산공예품이 즐비하게 있기 때문에 나라 관광 시 나라 특유의 선물을 고르기에 가장 알맞은 곳이기도 하다.

• 고바이엔(古海園)
고니시(小西)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이곳 또한 겐린도와 같이 먹 전문점이다. 또한 이곳의 특징은 부탁을 하면 먹을 만드는 과정도 관람할 수 있다.

• 이케다강코도(池田含香堂)
이케다강코도는 산조(三條)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이곳에서는 일본 특유의 부채 및 아름다운 나라 부채를 팔고 있다.

• 기쿠오카(菊岡)
기쿠오카는 산조 거리에 있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가게로,이곳에서는 한약과 일본 전국의 민예품을 팔고 있다.

• 이마니사 본점(今西本店)
산조 거리에 있으며 순수한 나라쓰케를 팔고 있으며,깊은 향기가 일품이다.

• 다이와 차(大和茶)
다이와 차는 산조 거리에 있으며,야마토(大和) 고원에서 따온 차를 파는 가게이다. 차로는 오우조(王朝),마호로바(まほろば) 같은 차가 있다.

• 모리로우호(森老)
모리로우호는 다이부쓰 앞에 있는 유명한 나라쓰케 전문점으로 다이부쓰를 구경하는길에 둘러보면 좋을 것이다.

여행계획
나라는 시내 전역에 절이나 신사가 산재해 있으므로 가볼 곳을 미리 정한 뒤에 여행하는 것이 좋으며, 나라는 도시 전체가 문화와 유적의 도시이므로 몇 군데쯤 놓치고 지나가도 일정이 빡빡하다.
나라는 근교까지 합쳐서 전부 돌아보려면 3, 4일은 걸리나, 교토를 돌아보았거나 방문할 예정이라면 나라에서 3, 4일이나 머물러 있지 않아도 된다. 나라는 교토와 비슷한 분위기이기 때문에 중요한 몇 곳만 둘러보면 2일 정도면 적당할 것이다.

특히 나라 동쪽 야규(柳生)의 엔조지(円城寺)부터 신야쿠시지(新藥師寺)까지의 다키사카미치(瀧坂道)나 나라 남쪽 텐리(天理)부터 사쿠라이(櫻井)까지의 야마노베노미치(山の道)나라의 한적한 관광지이자 하이킹 코스로도 알려져 있다. 단, 시내에서 조금 멀기 때문에 이동시간에 신경을 써야한다. 그러나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시 동쪽에 있는 니가쓰도(二月堂) 또는 다무케야마코엔하치만쿠(手向山八幡宮)가 있는 고지대 정도만 돌러보아도 좋을 것이다.

나라 시의 구조는 바둑판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여행하기에 아주 편하다. 즉, 첫날은 긴테쓰 나라(近鐵奈良) 역 근처의 시내 중심가를 도보로 돌아보고, 둘째 날은 버스나 자전거를 타고 호류지(法隆寺)와 주변 관광 명소를 돌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특히 긴테쓰 나라(近鐵奈良) 역을 중심으로 걸어다니면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단 나라에는 긴테쓰나라역과 JR나라역이 있으므로 혼동하지 말아야 하며, 두 역 사이는 도보로 10분 정도 거리이다. 여행 안내소는 나라시 관광센터(奈良市觀光センタ-)에서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긴테스 나라역의 나라 종합관광안내소를 이용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즐길거리
나라는 일본이 최고의 국가를 세웠던 곳으로 1200년 이상의 오랜 세월을 묵묵히 버티어 온 수많은 옛 사찰과 미술품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역사의 깊이를 대변해 주고있는 곳이며, 축제로는 와카쿠사야마야키,만토오로,오미즈토리등 여러 사찰 및 신사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 와카쿠사야마야키 : 1월 15일 나라 코엔에서
• 만토오로 : 2월 2,3일과 8월 15일 가스가다이샤에서
• 오미즈토리 : 3월 1일~14일 도다이지
• 하나에시키 : 매년 3월 30일과 4월 5일
• 온 마쯔리 : 매년 12월 15일~18일
• 다키기노 : 매년 5월 11,12일 고후쿠지와 가스가다이샤에서
• 시카노쓰노키리 : 매년 10월의 일요일과 공휴일

▣ 일본의 춘화, 마쿠라에
일본의 에러티시즘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신사에 버젓이 남성과 여성의 상징물을 모셔놓고 있는 곳이 있는가하며,그와 관련된 축제를 개최하고 있으며,더구나 이 축제때는 성기 모양의 소시지를 넣은 도시락까지 판매되고 있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심지어는 섹스 박물관까지 세웠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외국인들의 입장에서나 놀라움이지만,일본인 그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오히려 감추지 않는다. 그들의 병평인 마쿠라에 역시 마찬가지이다. 마쿠라에는 베개라는 뜻이며,에는 그림이라는 뜻인데,이 둘을 합치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무엇을 뜻하는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역시 일본인들은 어떤 민족보다도 성에 솔직한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 아카하다야키(赤膚燒)
아카하다야키는 나라 시 교외의 아카하다야키(五條山) 및 야마토코리야마(大和郡山)에서 구워지고 있는 도자기를 말하는데,점토가 산출되는 땅 표켠이 철분을 많이 함유하고 붉은 색을 띠고 있어서 아카하다야키라고 불리고 있다. 아카하다야키의 특징은 사슴과 숲,새둥우리,신사 등을 단순화한 奈良繪 이라고 불리는 도안을 그려넣는 것인데 그것은 무게있는 그럿에 솩한 그림이 조화를 이루어 풍아한 맛을 풍기고 있다.





▶ 노보리베츠 [NOBORIBETU]

1858년에 연 노보리벳츠 온천은 홋가이도에서도 손꼽히는 온천으로 아이누어로 '하얗고 탁한 강'이란 뜻인데, 이는 유황, 황산나트륨 등이 들어있어 물이 짙은 색을 띠는데서 유래한 것이다.




▶ 니이가타

니이가타(新潟)는 츄부(中部)지방의 니이가타켄(新潟縣)에 위치하고 있으며 니이가타항(新潟港)을 중심으로 발달한 항구 도시로서 일명 물의 도시라고도 불리운다. 항구와 접하고 있는 바다 외에도 시나노가와(信濃川)와 아가노가와(阿賀野川)등의 시내가 도시를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니이가타는 니이가타켄(新潟縣)의 현청소재지이자 츄부(中部)와 도호쿠(東北)지방의 교통 요충지이기도 하다. 인구는 약 48만 명 정도이며,현재 혼슈(本州) 서해안에서 으뜸가는 항구 도시로 성장하였다. 도쿄 수도권에서도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았으며,도쿄에서 출발하는 조에쓰신칸센의 종착역이기도 하다.

니이가타시는 니아가타 역이 있는 신시가지(東新潟)와 구시가지(西新潟)로 나뉘며 구시가지는 관공서와 번화가가 조성된 곳이다. 이들 지역은 반다이바시(萬大橋)를 비롯하여 야치요바시(八千代橋)·쇼와오바시(昭和大橋)·치요세오바시(千歲大橋)등이 연결되어있다.

니이가타는 옛날부터 술과 쌀,그리고 싱싱한 해산물 등이 유명했으며,또 에도(江戶) 중기에는 서쪽 해운의 기항지가 되었다. 1955년의 대화재와 1964년의 대지진때문에 옛 모습들이 많이 파괴되었으나,이후 신도시 건설 계획에 따라 도로가 확장되고 현대적인 빌딩들이 들어서면서 완전한 현대 도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 닛코

닛코(日光)는 일본의 국립공원이면서 세계적인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다.
닛코 국립공원은 해발 2,000m가 넘는 4개 현에 드넓게 펼쳐져 있어 계절마다 그 경관이 다채롭다. 화산 폭발이 만들어 낸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계절의 변화에 따른 색다른 풍경 등이 수려함을 자랑한다.
특히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당인 도쇼구를 비롯하여 웅장한 폭포 겐곤노타키,신교(神橋),주젠지코(中禪寺湖),린노지(輪王寺) 등과 2,000m가 넘는 닛코의 산봉우리들,수많은 온천,고원 등이 유명 관광지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닛코를 보지 않고 일본의 아름다움을 말하지 말라"는 말이있을 정도이다.
닛코는 도쿄 근교서 가장 먼곳에 위치해 있지만,도쿄에서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닛코 자연 국립 공원은 규모가 커서 다 돌아보려면 이틀정도가 소요된다.




▶ 도야

오시마(大島)를 중심으로 작은섬 3개가 위성처럼 박혀 있는 그럼같이 아름다운 도야코, 멀지않은 곳에는 1943~1945년에 형성된, 일본에서 가장 어린화산인 쇼와신잔과 지금동 활발하게 활동중인 우스잔이 있다. 2000년 3월에는 우스잔 화산이 활동을 개시해 이일대에 큰 피해가 입었으나, 지금은 대부분의 시설이 평상시처럼 업무를 재개했다. 산 사이로 산책로도 잘닦여 있고, 산 정상에는 내려다보는 경치도 장관이라 많은 사람이 찾는다.

도야 선팔레스 호텔 I 도야레이크힐 골프클럽





▶ 도쿄 [Tokyo]

도쿄(東京)는 일본 제일의 대도시로서 에도 시대부터 일본의 중심지였다. 메이지 유신 후에는 에도 성의 성 밑에 형성된 작은 도시에 불과했지만,현재의 도쿄는 국제도시 Tokyo로 세계의 대도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또한 세계 각국의 대사관이나 외교 기관이 집중되어있으며,일본 경제를 움직이는 금융기관이나 대기업의 본사 등이 자리잡고 있다.

도쿄는 토후켄(道府縣)에 해당하는 도쿄토(東京都) 중의 도쿄시(東京市)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도쿄도쿠부(東京都區部)이다. 일반적으로 토쿠나이(都區內)라고 불리는데 23쿠(區)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서부의 대지부를 야마노테(山の手),도쿄 만 안에 있는 저지부를 시타마치(下町)라고 부른다. 이들 지역은 대부분 도쿄의 중추부분에 해당되며,고쿄(皇居)를 비롯하여 입법,사법,행정의 중앙기관이 밀집되어 있다.

도쿄는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대학의 숫자만도 약 130개교를 헤아리고,학술,예술,스포츠,시설 등이 곳곳에 산재되어있다. 신문,출판,방송등과 관련된 시설들도 도쿄에 자리하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기능의 도시이다 보니 도쿄에는 일본 인구의 10분의1 이상이 생활하고 있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 나리타공항(成田空港)에서 시내까지
도쿄의 국제공항으로 치바현에 위치하고 있어 길이 막히지 않아도 동경 시내에서 1시간이 넘게 소요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국제선이 도착하는 공항이다.
• 리무진버스 : 도심의 각 터미널과 연결되어 있으며, 짐도 싣을 수 있어 편리하나, 가끔 교통이 막히면 시간 많이 소요되는 단점도 있다.
• 나리타 익스프레스(成田 Express) : 쾌속 전철로서 공항과 도심을 잇고 있으며,현재 가장 빠른 교통편이다. 운행은 1시간에 1대 꼴로 출발하며 좌석은 예매해야 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 단점이다.
• 특급열차(Liimited Express) : 나리타(成田)공항에서 우에노(上野)까지 연결되며, 시내로 갈 때 가장 저렴한 교통편으로 공항 로비에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있으며,우리나라의 지하철과 같은 구조이며,20분 마다 떠난다.
• 특급 전철 스카이라이너(Sky Liner) : 30분간격으로 출발하며 비교적 이용하기 쉽다. 단,좌석은 지정석이며,게이세이 우에노(京成上野)역까지는 연결하며, 우에노역에서는 긴자센(銀座線)이나 히비야센(日比谷線)을 이용하여 도쿄의 주요 지역으로 갈 수 있다.
• 택시(タクシ) : 가장 편리한 교통 수단이지만 요금이 가장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기본 요금이 전철의 4∼5배에 달할 정도로 비싼 편이지만 짐이 많을 경우 이용하면 편리하며, 서비스도 좋다. 뒷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므로 너무 힘껏 닫지 않도록 주의한다.

▣ 하네다(羽田) 공항
주로 일본의 국내선이 발착하며, 도쿄 시내까지 오려면 모노레일을 이용해야 한다. 모노레일을 타면 야마노테센(山ノ手線)의 하마마쓰초(浜松町)역까지 15분 정도 걸리며 요금은 300엔 정도다. 요즘엔 김포에서 하네다 공항을 운항하는 항공편도 많이 생겨 나리타 보다 시내와 상대적으로 가까운 하네다 공항을 이용하는 것도 일정상 편리할 수 있다.


버스
▣ 시내버스
도쿄의 시내버스는 도시의 규모에 비해 의외로 노선도 적은 편이며,보통 밤 10시면 운행이 중단된다. 도쿄에서는 운영회사가 다른 지하철이나 전철을 갈아타서 한 정거장만 가도 요금을 다시 내야 하는 단점이 있는데,이때 버스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버스 정거장에 가면 정류장마다 정차하는 버스 노선 지도와 시간표가 붙어 있어서 이용하기 쉽다. 자기가 타야할 버스 번호만 알고 있으며 된다. 단,도로 사정에 따라 소요 시간은 조금씩 다르며,요금은 버스를 탈 때 내고 잔돈과 지폐를 모두 사용할 수 있다.

▣ 시외버스
도쿄로 오는 또 하나의 교통수단으로 버스를 들 수 있는데,야간 버스도 이중 하나이다. 야간 버스는 늦은 밤에 출발하여 이른 새벽에 도착하므로 야간버스를 이용하면 숙박비를 절약할 수 있는 장점은 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배낭 여행 시 숙박비 절약을 위해 한번쯤 이용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버스는 JR 버스가 운행되고 있으며,나고야 역에서 도쿄까지는 6시간 10분 정도가 소요되며,오사카 역에서는 8시간 40분,야마가타에서는 6시간에서 9시간이 소요된다.

전철
도쿄의 전철(JR)은 야마노테선(山ノ手線)을 비롯하여 약 15개의 노선이 있다.
• 야마노테선(山ノ手線)
가장 중요한 노선으로 연두색으로 되어 있으며,우리나라 지하철 2호선과 비슷한 순환선이며 지상으로만 달린다. 또한 왼쪽으로 도는 우치마와리(內回り)와 오늘으로 도는 소토마와리(外回り)가 있으므로 잘 구분해서 타야한다. 이 노선을 한바퀴 도는데 약 한시간 정도가 걸리며,이 야마노테선은 도쿄의 주요 관광지인 메그로,시부야,하라주쿠,신주쿠,다카다노바바,이케부쿠로,우에노,간다,아키하바라,고탄다,시나가와 등으로 연결되어 있다.

• 주오센(中央線)
도쿄 시내를 동서로 가르는 노선으로,주황색으로 되어 있으며,쾌속 전철이기 때문에 역마다 정차하지 않는다. 주요 역으로 가고자 할 때 이용하면 편리하며,주오센은 나카노,기치죠지 등으로 연결되어 있다. 소부센(總武線) 역시 도쿄 시내를 동서로 가로지르며 노란색이며,일부 구간은 주오센(中央線)과 만나며,역마다 정차하는 노선이다.

• 케이힌도호쿠센(京浜東北線)
도쿄를 남북으로 연결한다. 일부는 야마노테센과 겹치기도 하며,하늘색이다. 시간별로 낮에는 쾌속 운행을 하고 있다. 이밖에 도쿄 도심을 달리고 있는 전철로는 게이바센(京葉線)·사이타마센(埼玉線)·도호쿠혼센(東北本線)·무사시노센(武歲野線)·요코스가센(橫賀線)·난부센(南武線)·나리타센(成田線)·우치보센(內房線)·소토보센(外房線)·조반센(常磐線)·가와고에센(川越線) 등이 있다.

• 시테쯔(私鐵)
주로 야마노테센(山ノ手線)의 역 ~ 도쿄의 시외곽
대부분 JR보다 요금도 싸고 서비스도 좋은 편이다. 주요 사철로는 게이오센(京王線)·도부토조센(東武東上線)·오다큐센(小田線)·세이브이케부쿠로센(西武池袋線)·세이브신주쿠센(西武新宿線)·게이세이센(京成線)·게이오이노카시라센(京王井の頭線) 등이 있으며 그중 몇 개는 모노레일이며,전철과 연결된다.
도쿄에는 총 12개의 지하철 노선이 운행되고 있으며,이들 지하철은 데이토와 도에이(都營) 소속으로 나뉜다.

• 데이토 소속의 지하철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지하철인 긴자센(銀座線)을 비롯하여 8개 노선인데 즉 치요다센(千代田線:녹색)·마루노우치센(丸ノ內線:빨강색)·도사이센(東西線:엷은 청색)·히비야센(日比谷線:은색)등이 있다.

• 도에이 소속의 지하철
도에이 아사쿠사센(都營淺草線:분홍색)·도에이 신주쿠센(都營 新宿線:연두색) 등이 있다

철도
도쿄까지 오는 방법은 여러 방법이 있으나 신칸센(新幹線)을 이용하는 방법과 보통 전철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물론 신칸센은 편리하고 가장 빠르다는 장점은 있지만 요금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나고야에서는 1시간 55분이 소요되면 신오사카는 3시간,하카타에서는 6시간,센다이에서는 1시간 50분 정도가 소요된다. 그러나 기차를 이용할 경우는 여러번 갈아타야 하는 단점도 있다.

택시
택시는 택시 표면에 기본 요금이 적혀 있는데 택시에 따라 다르다. 도쿄 시내의 택시는 거리 시간 병산제이며,오후 11시부터 오전 5시까지 30%의 할증료가 붙는다. 또한 주말이면 택시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택시 잡기가 힘들다.

여행계획
보통 하루동안 도쿄를 구경하고 싶다면 도쿄 역(東京驛)주변과 신주쿠(新宿)주변, 우에노(上野) 주변 등을 중심으로 돌아보면 된다. 도쿄의 많은 것을 보고자 할 때는 보통 2박 3일 이상 도쿄에 머물면서 대체로 6개 지역으로 나누어 돌아보면 된다. 즉, 고쿄(皇居)와 기타노마루코엔(北の丸公園)을 중심으로 한 구역, 도쿄 역·긴자(銀座)·니혼바시(日本橋)를 중심으로 한 구역, 신주쿠(新宿)·이케부쿠로(池袋)를 중심으로 한 구역, 아사쿠사(淺草)를 중심으로 한 구역 등이다. 여기서 더 가능하다면 도쿄 근교의 동경 디즈니랜드까지 다녀오는 것도 괜찮다.

또한 도쿄에는 대규모 번화가가 곳곳에 형성되어 있으며, 특히 도심부에서는 신바시(新橋)·긴자(銀座)·유락쵸·쿄바시·니혼바시·간다·우에노 등이 대표적인데, 주오도리(中央通り)를 따라 약 6㎞에 걸친 대 상업 지역이 발달되어 있다.
주변에 텔레비젼 방송국이나 각국 대사관이 많이 모여 있는 아카사카·아오야마·롯폰기 등이 가볼만한 지역이다. 이들 지역은 국제색이 짙은 새로운 번화가로 부상했는데, 특히 아오야마로 이어지는 하라주쿠는 우리나라 신세대에게도 잘 알려진 새로운 패션거리로 유명하며, 매년 12월이면 가로수에 수만개의 안개등을 설치하는데 이또한 볼거리로 유명하다.

도쿄돔 I 디즈니 랜드 I 디즈니 씨 I 요네하라 골프클럽 I 죠타로 골프장





▶ 마쯔야마 [MATSUYAMA]

마쯔야마는 일본 시코쿠(四國) 북서부 에히메 현(愛媛縣)의 현청 소재지로,시코쿠 최대의 도시이다. 마쯔야마는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와 접해있고,기름진 도고 평야(道後平野)에 있는 해항이다.
또한 직물·석유화학 제품·종이·기계 등을 생산하여 선박과 비행기로 혼슈(本州)와 규슈(九州)에 수송하고 있다. 마쯔야마는 지방에서 생산된 수공예품(도자기·수직물·인형)과 온주 밀감의 교역 중심지이기도 하다.

마쯔야마의 중심부에는 가쓰야마 (勝山)가 우뚝 솟아 있는데,산 위에는 7세기에 쌓은 성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 안에는 현재 군사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다. 이는 일본 봉건시대(1185∼1867)동안 주요 무사가문의 본거지였으며 훌륭한 하이쿠(俳句)시인들을 많이 배출했기 때문이다.
또한 마쯔야마의 북동쪽에는 일본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온천 휴양지 중 하나인 도고 온천이 있다.

마쯔야마시의 기후는 온화한 해안성 기후로 년평균 기온이 15.8℃이다. 년간 평균 강수량은 1,286mm이고 6월에 많이 내리는 것이 특징이다.

마쯔야마 국제 C.C I 썬셋힐즈 C.C I 에리얼 G.C




▶ 미야자키 [Miyazaki]

미야자키는 일본의 4개의 큰 섬 가운데 가장 남단에 위치한 큐슈의 남단에 위치해 있어 다른 어느지역보다 온화한 날씨를 보인다. 미야자키 현의 현청 소재지로 근방 여행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특유의 아열대성 기후에서 다양한 식물의 생태를 볼 수 있다. 따라서 여느 일본에서와 달리 야자수와 같은 열대의 수목이 쉽게 눈에 띈다.
미야자키 부근은 온천과 다양한 자연을 볼 수 있는 곳으로 특히나 최근들어 골프여행이 많아지고 있다. 미야자키는 일본 역사에서 초대 천황인 '진무 천황'이 있는 미야자키 궁이 있으며 오션돔이라는 거대한 실내 수영장이 유명하다. 오션돔은 지붕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개폐식으로 4계절 수영이 가능하다.

레이크사이드 골프클럽 I 미야자키 골프클럽 I 미야자키 국제공항 컨트리 클럽 I 미야자키 컨트리 클럽 I 아오시마 골프클럽 I 카메노코 컨트리 클럽 I 하이비스커스 골프클럽 I UMK 컨트리 클럽





▶ 벳부

일본 규슈(九州)의 오이타현(大分縣)에 속해 벳부(別府)는 쓰루미다케(鶴見岳)와 유휴(由布)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관광지이며,벳부만에 접해 있다. 벳부는 화산성 조립질 암편으로 이루어진 대칭형의 가파른 선상지 기저(基底)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19세기 말부터 온천 휴양지로 알려졌다.

벳부에는 크고 유명한 온천 리조트가 있고,3,000개가 넘는 온천이 있으며 대중탕만도 약 170여 개에 이른다. 이곳에서 솟아나는 온천물은 하루 100,000㎘가 넘으며,특히 지코쿠온센(地獄溫泉)이 유명하고 이 온천은 '지옥'이라 불리며,끓는 온천은 온천수와 함께 진흙까지도 하늘 높이 뿜어 올리기도 한다.

벳부는 도쿄 근교의 이즈 반도에 있는 아따미와 더불어 온천 관광의 명소로,해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무려 1,300여만 명이나 된다. 벳부는 멀리서 보면 도시 전체가 뿌옇게 보일 만큼 수증기가 끓어오르는 모습이 이채롭다.

벳부는 온천도 즐기고 해수욕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여행하는 데 있어서 벳부는'보는 도시'가 아니라'즐기는 도시'로 알려져 있다. 관광지로는 이밖에 쓰루미 산,시다카 호(志高湖),기지마 고원(城島高原)이 있다.

여행계획
벳부 대부분의 볼거리는 시 외곽에 흩어져 있으나 벳부 시의 중심은 벳부 역 주변이며, 에키마에초(驛前町)일대에 많은 숙박업소와 레스토랑·식당·패스트푸드점·은행·여행사 등이 밀집되어 있다. 또 유명 온천들이 몰려 있어 일대 환락가를 이루기도 하는데, 그중 긴자(銀座) 아케이드 부근이 제일 번화하다

벳부에서 가장 유명한 온천 지코쿠(別府地獄)는 벳부 역에서 북쪽으로 약 5㎞ 정도 거리에 있으며, 그밖에 볼 것들은 대부분 시 외곽에 있다. 벳부는 일본 국내에서는 물론 외국인도 저마다 한번씩 이곳을 들러가기 때문에 일본 최고의 온천 도시답게 매우 북적거린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요금이 만만치 않아서 여행 계획을 잘 짜지 않으면 경비 지출이 심하므로, 사전 준비는 잘해야 한다. 벳부 근교에 있는 유후인(湯布院)은 벳부보다는 덜 붐비는 곳이나 벳부 시내의 온천 관광은 하루 정도면 되지만 근교의 명소까지 둘러보려면 2일 이상이 소요된다.

여행상식
벳부를 둘러볼 때 버스할인 티켓을 이용하면 좀더 경제적으로 절약할 수 있다. 이 티켓은 Discount Bus Tickets로 1일 미니패스(ミニパス)는 유효기간이 1일이며 벳부에서 사용할 수 있고 요금은 800¥이다. 또 1일 와이드패스(ワイドパス)는 1일 유효기간에 벳부 시내 및 근교와 유후인(湯布院)과 쓰루미다(鶴見岳)의 로프웨이도 이용할 수 있다.

벳부에는 온천장이 많이 있다. 따라서 숙소와 온천을 따로 하는 것이 아니라,온천장이 있는 숙소를 구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며,잘 찾아보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곳도 많이 있다.
뱃부 온천의 화학성분은 일본 후생성의 규정함유량 분석 결과 단순천,중타산토류천,철천,명반천,유황천 등 9가지 종류가 포함되어 있어 모든 질환의 온천 치료장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즐길거리
• 히나 마쯔리 : 매년 3월 3일에 개최되고 있는 인형 마쯔리이다.
• 부쓰다 탄생 마쯔리 : 매년 4월 8일에 각 사찰에서 행해지는 부쓰다 탄생 마쯔리를 말한다.
• 다나바타 마쯔리 : 매년 7월 7일에 행해지고 있는 마쯔리로 칠석을 기념하는 마쯔리이다.

▣ 벳부의 1일 모델 관광 코스로 먼저,JR 벳부 역을 출발하여,가메가와 역,벳부 지옥 순례,기지마코겐,유토피아 랜드,시다카코,벳부 역,다카사키야마 원숭이 공원,벳부 시내,온천 욕의 순으로 관광을 해 보는 것도 벳부를 아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벳부 골프클럽 I 키지마 고라쿠엔 컨트리 클럽




▶ 부관훼리

일반공모로 지어졌던 가련한 이름처럼, 바닷가에 희고 우아하게 피는 꽃의 이미지로서, 여행인의 마음을 아름답게 간직하는 배 여행입니다. 유럽의 호화 여객선을 모방한 인테리어, 빛이 내리쬐는 나선계단의 홀, 게임, 비디오, 노래방 등 즐기는 시간도 지루하지 않으며, 산책길과 레스토랑, 바 코너 등 밝고 화려한 휴식 분위기를 느끼실 수 있습니다. 물론, 스위트룸을 비롯한 모든 객실에서도 최고의 휴식을 가지실 수 있습니다.




▶ 사세보

유럽형 테마파크




▶ 삿포로 [Sapporo]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의 도청소재지이며, 홋카이도(北海道)의 관문인 삿포로(札幌)는 일본의 5대 도시 중 하나이며, 홋카이도의 행정, 경제, 문화,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삿포로는 1871년 넓은 가로수 길들이 직각으로 교차하도록 도시계획을 했고, 1972년에는 스키를 비롯한 겨울 스포츠의 중심지로 제 11회 동계 올림픽이 열렸으며, 1980년대에 쓰가루(津輕) 해협 밑으로 해저 터널이 건설되었다. 1886년에 도청 소재지가 되었으며,정부의 개척사(開拓使)가 설치되면서 발전하기 시작했고,지금은 동해에 있는 외항 (小樽)과 함께 상업 중심지로 발전했다.

삿포로란 지명은 아이누 족의 말로'오랫동안 메마른 강바닥"이란 뜻으로,오래 전부터 아이누 족이 살던 땅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한 것인데,메이지유신 이래 개발에 박차를 가해왔다. 특히 옛 아이누민족쿠(アイヌ民族)는 미국 건축기사까지 동원하여 일본 정부가 의욕적으로 도시 개발을 추진한 결과 오늘날 신도시로 바뀌었다. 이후 1950년부터 삿포로의 눈 축제가 세계에 알려져 명성을 얻기 시작했으며,해마다 열리는 눈 축제 때는 눈을 뭉쳐 조각한 거대한 조각들이 선보이고 있다.

삿포로 사람들이 눈 축제를 개최하기 시작한 동기는 전쟁의 상처와 폐허를 조금이나마 잊기 위해서였던 것이 오늘날에는 어둠을 밝히는 32만 여 개의 등불과 함께 삿포로의 최대 행사가 되었고,일부러 이 축제를 보러 오는 관광객들도 있을 정도다.

삿포로는 홋카이도를 들어가는 항공로의 관문이기 때문에 이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한번쯤 거쳐가게 되는 곳이다. 삿포로에는 치토세(千歲)와 오카다마(丘珠) 등 2개의 공항이 있고,혼슈와 홋카이도의 주요 도시를 연결하고 있다. 또한 하코다테와도 기차로 연결되며,특급열차로 약 4시간 소요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치토세 공항으로 직항편이 떠나고 있다.

여행계획
일본은 삿포로를 포함해 어느곳이나 주소가 번호순이므로 주소만 있으면 어느 곳이든 쉽게 찾아갈 수 있고, 거리 표지는 영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길을 잃거나 헤매일 경우가 별로 없다. 삿포로의 주로 볼거리는 삿포로 역 남쪽에 대부분 위치하고 있으며, 오도리코엔(大通公園)·다누키고지 쇼핑아케이드·스스키노(薄野)환락가 등이 대표적이다. 오도리코엔 부근에는 노점 스낵코너가 많이 있어 경제적으로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고, 이밖에 싼 음식점은 다누키고지 쇼핑아케이드에도 많이 있다. 도케이다이(時計臺) 맞은편의 시야쿠쇼(시청:市役所) 건물 지하에는 점심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이곳 역시 유명하다. 또한 주요 호텔과 숙소도 삿포로 역 남쪽에 집중되어 있어서 숙소는 이곳에 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홋카이도지방은 특히 눈이 많기로 유명하며, 삿포로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삿포로에서는 이 눈을 이용해 세계적인 눈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홋카이도의 여행 시즌은 5∼10월이 최적이다. 눈 축제는 2월에 열리지만, 겨울에 가면 여러 지역을 돌아볼 수 없게 된다. 여름 방학이나 휴가철을 피하려면 9월 중순부터 11월초까지가 적당하며, 홋카이도 전체를 관광하는데는 최저 5일 정도가 소요된다. 여행 안내소는 삿포로고코사이코류(札幌國際交流 Plaza)는 삿포로의 시계탑 앞 MN 빌딩 3층에 있으며, 외국 여행자들을 돕고 있고, 다양한 안내서가 갖추어져 있다. 이외에도 삿포로칸코쿄가이(札幌觀光協會), 삿포로시칸코카(札幌市觀光果), 삿포로 역 서쪽 홀의 여행안내센터 등이 있으며, 이곳에서는 지도와 숙소 위치를 얻을 수 있다.

즐길거리
삿포로에는 1972년 제 11회 삿포로 동계 올림픽 알펜 경기의 주경기장이었던 데이네야마의 중턱에 3.3㎢의 광대한 부지를 지닌 종합 레저랜드인 데이네 올림피아가 있는데,이고은 겨울의 스키를 비롯해각종 필드 경기시설과 위락 시설을 갖추고 있어 일년 내내 이 곳을 찾는 방문객이 끊이질 않는다.

▣ 삿포로 눈 축제(세계 3대 축제중 하나)
홋카이도 최대의 동계 행사라면 역시 매년 2월 초 1주일에 걸쳐 펼쳐지는 삿포로의 유키마쯔리(雪祭り)눈 축제)를 꼽을 수 있다. 눈 축제의 장소는 오도리(大通)공원과 마코마나이에 있는 자위대 주둔지 두 곳으로,중심 대회장은 오도리 공원을 송신탑 바로 아래의 西1丁目에서 12丁目에 이르는 11블럭에 높이 10m이상 되는 대형 작품에서 1~2m 정도의 작은 것까지 다양하게 200개가 넘는 눈 동상과 눈 조각이 세워진다.
대형 눈 조각 테마는 시민들에게 공모해서 채택하는 것이 관례화 되어 있는데,동화나 만화의 주인공이나 세계의 유명한 건축물,그 해에 화제가 되었던 인물과 사건 등이 눈 동상으로 재현되고 있다. 매년 눈 축제 기간에는 일본 국내는 물론 약 200만 명의 관광객이 이곳으로 몰려들어 눈 조각의 장관을 만끽한다. 대설로 인한 피해를 극복하여 오히려 관광 자원화 함으로써 막대한 관광 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또 이 기간 동안에는 스키 쇼나 일본 패션 쇼,레이저 광선 쇼,외국인 가라오케 콘테스트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 오비히로 얼음 축전
이 축제는 삿포로의 축제는 아니지만 홋카이도에서 꽤 유명한 축제이다. 아카(阿寒) 국립공원과 다이세쓰산(大雪山) 국립공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동쪽 입구에 해당되는 오비히로 시를 거치게 되어 있는데,이곳에서도 매년 1월 말에 눈 축제가 열리고 있으며,그때는 시내 곳곳에 시민들의 공예품과 얼음 조각등이 전시된다.

▣ 시레토코(知床) 눈 페스티발
이 축제는 삿포로의 축제는 아니지만 홋카이도에서 꽤 유명한 축제이다. 매년 2월 2일부터 3월 21일까지 시레토쿠 국립공원에서 열리고 있으며,홐쿄쿠 공원에 설치되는 거대한 유빙과 레이저 광선을 이용한 오로라 쇼가 볼만하다. 눈 자동차 경주도 개최되고 있으며,이 축제가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축제이다.

▣ 아바시리(網走) 노토리랜드
이 축제는 1월 26일부터 3월 10일까지 꽤 오랫동안 열리는 축제로,JR아바시리(網走) 역에서 버스로 15분 거리에 있는 노토리 포인트에서 개최되고 있다. 이 축제에서는 얼음집이나 썰매를 타는 등 관광객들이 직접 참가할 수 있다.

▣ 시코쓰코 (支笏湖) 아이스 페스티발
1월 26일∼2월 17일까지 열리는 축제로 시코쓰 호수에서 벌어지는 얼음축제이다.

▣ 소운쿄 얼음폭포 축제
2월 2일∼24일까지 계속되는 얼음 폭포를 이용한 축제로,다이세쓰잔(大雲山) 국립공원의 이시카라(石守) 강변에서 개최되고 있다.

오도리공원




▶ 야마가타

일본 혼슈(本州)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현의 현청 소재지로 대부분 산악지대이다. 야마가타의 남북으로 뻗은 반다이-아사히(盤臺朝日) 국립공원에는 불교의 한 교파인 슈겐도(修驗道)에서 신성하게 여기는 '데와 3산'【出羽三山:갓산 산(月山),유도노 산(湯殿山),하구로산(羽黑山)】을 비롯하여 높이 1,870m인 아사히 산(朝日山)과 잇닿아 있는 화강암질 산맥,높이 2,105m인 이데 산 등이 있으며,북서부에는 조카이(鳥海) 국정 공원이 있고,아키타 현(秋田縣)과의 경계부분에는 높이 2,230m인 조카이 산이 자리잡고 있다. 남동부에는 자오(藏王)국정 공원이 있으며,그 한가운데는 높이 1,841m의 사화산인 자오 산이 솟아 있다.

또한 야마가타는 모가미 강(最上川)이 흐르며 강유역을 따라 고속도로와 철도 간선이 지나가고 있으며. 유역에는 주요내륙도시들도 자리잡고 있고,좁은 해안평야는 대부분 모가미 강 삼각주로 이루어졌다.

또한 야마가타 시는 현내에서 가장 큰 도시로,내륙의 산간 분지에 자리잡은 이 도시는 다이묘(大名)미즈노(水野)가문의 조카마치(城下町)로 발달했다. 야마가타대학(1949)의 소재지로서,많은 소비재와 주물제품 등 다양한 공산품이 생산되고 있다. 그 밖의 중요한 내륙도시로는 요네자와(米澤)를 들 수 있다. 해안지역에는 공업 중심지인 쓰루오카(鶴岡)와 주요 항구인 사카타(酒田)가 자리잡고 있다.




▶ 오사카 [Osaka]

긴키(近畿)지방에 위치한 오사카(大阪)는 도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로서 문화, 행정, 비즈니스의 중심지이다. 또한 오사카는 행정상으로는 가장 작지만 인구는 도쿄 다음으로 많으며 일본의 상업, 산업의 메카라고 할 수 있다.

오사카(大阪)는 도쿄에 이은 일본 제 2의 도시로서 서부 일본의 상업과 산업의 중심지이며, 1500년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운하의 도시라고도 잘 알려져 있다. 오사카는 요도가와(淀川)와 야마토가와(大和川)하구의 삼각주 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오사카 평야가 펼쳐져 있으며,서쪽으로는 오사카만이 자리잡고 있다.

오사카는 7세기경 일본의 수도였으며, 16세기에서 17세기 경 제후의 성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오사카는 4세기부터 나니와(難波)라는 이름으로 여러 차례 일본의 수도가 되었으며, 특히 1583년 우리에게도 잊을 수 없는 인물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오사카 최고의 실권자가 되면서 오사카성(大阪城)를 쌓고 새로운 정치체제를 형성한 뒤 급격히 발전했다. 다시 말해, 오사카 성을 쌓기 시작하면서 성 주위에 상인들이 모여들게 되어 일본의 베니스라 불리고 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와 중국 대륙을 왕래하는데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오사카는 상업 도시로서만이 아니라, 현대에 와서는 새로운 공업 도시의 성격을 추가해 '동양의 맨체스터'로도 불리웠다. 현재 오사카의 경제 규모는 호주 등지 같은 웬만한 선진국 수준이라고 한다.

오사카는 매우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으며, 오사카에는 옛 일본의 모습에서부터 현대 유럽의 모습까지 다양한 모습들이 어우러져 있는 도시이다. 오사카는 화려하지만 서정적인 다리 아래로 도심을 가로지르는 운하가 발달되어 있으며 이 운하는 오사카의 낭만을 더해준다. 또한 이 운하가 오늘날 오사카의 풍요를 만들었던 원동력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오사카는 최근 대규모 시가지 정비사업이 벌어지면서 오사카의 모습도 날로 달라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전통 예술인 분라쿠(文樂: 인형극)를 지키고 야스타쿠(安宅) 컬렉션을 선보이기 위한 미술관도 만들었으며,1970년에는 일본 만국 박람회가 개최되어 또 한번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간사이 신 국제공항에서 오사카 시내 곳곳으로 연결되는 공항 리무진 버스가 수시로 있다. 신 오사카 역 행 버스는 06:50∼20:15 사이에 10분∼15분 간격으로 운행되고 있으며 오사카까지는 25분 소요되며, 우메다(梅田)역이나 지하철 나니와(難波) 역까지의 소요시간은 30분 정도이다.
전철이나 지하철을 이용해서도 갈 수 있으며 종류에 따라 대략 40분 ~ 1시간 정도 소요된다

공항안내


버스
▣ 시내버스

오사카에서는 버스를 탈 때 먼저 목적지가 맞는지 확인해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정류장 표시가 일어와 한자로 같이 되어 있어 혼동하기 쉽기 때문이다. 운행 횟수는 많은 편이며,시내버스는 크림색 바탕에 녹색 줄이 그어져 있다. Osaka City Buses패스는 하루 동안 오사카 지역의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는 프리패스다.


▣ 시외버스

도쿄 역에서 밤에 출발하는 야간 버스가 있으며,도착시간은 다음날 아침 일직 오사카 역 터미널에 도착한다. 도쿄에서 오사카까지의 소요 시간은 9시간 20분

전철
오사카의 교통은 사철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터미널은 우메다(梅田), 나니와(難波), 텐노지(天王寺), 요도야바시(淀屋橋)등으로 분산되어 있다. 모든 사철은 지하철과 연결되어 있으며, 1일 프리 티켓을 사면 JR선만 빼고 지하철, 트램, 버스를 하루 동안 자유롭게 탈 수 있다. 이 밖에 한큐교토주오센(阪急京都中央線)과 지하철 사카이스지센이 연장 운행되고 있으며, 긴테쓰(近鐵), 교사카(京阪) 등이 시내 곳곳을 연결하고 있다. 교토, 나라 방면으로 갈 때도 유리하다. 단, 지하철 역에서는 사철과 연결표를 팔지 않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지하철은 각 노선마다 요금이 약간씩 다르지만 보통 기본 요금이 160¥∼170¥ 정도이다. 오사카의 지하철은 남북을 관통하는 4개 노선과 동서를 횡단하는 2개 노선 등 6개 노선이 운행되고 있으며, 미도스지(御堂筋)라인, 요쓰바시(四つ橋)라인, 사카이스지 라인, 센니치마에 라인, 주오(中央)라인, 다니마치(谷町)라인 등이 그것이다. 미도스지 라인은 오사카 도심을 북에서 남으로 가로지르는 노선으로, 우메다(梅田)여과 나니(難波)역, 덴노지(天王寺) 역 등 오사카의 핵심 지역을 있는 주요 노선이다.

철도
오사카 칸죠센(環狀線)이 오사카 역와 텐노지(天王寺) 역의 남북 끝을 연결하면서 시 둘레를 순환하며 운행하고 있다.
오사카에서 기차를 이용하면 교토(京都)·나라(奈良)까지는 50분 정도가 소요되며, 고베(神戶)와는 30분정도 소요된다. 나라에서 긴테쓰(近鐵)사철을 이용하면 나니와(難波)까지 40분이면 갈 수 있다. 신칸센으로는 도쿄에서 신오사카 역가지 3시간 정도가 걸리고, 신오사카에서 규슈(九州)의 하카타(博多) 역까지는 약 3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되며, 교토에서 오사카까지는 신칸센으로 17분 거리이고, 사철인 한큐센(阪急線)을 이용하면 오사카의 우메다(梅田)역에서 내리게 된다. 특급으로는 약 40분 정도가 걸린다. 긴키 지역 안에서는 JR보다는 킨테쓰 사철이 오히려 이용하기 편리하다.

페리
오사카에서 규슈(九州)나 시코쿠(四國)방면으로 갈 때는 페리를 이용하면 일본 내륙해의 아름다움을 한껏 느낄 수 있다. 또한 요금도 비교적 싸고 시간을 절약할 수도 있다. 출발과 도착항은 난코·카노메후토·벤텐후토 항 등이다. 배편은 오사카↔규슈의 벳푸, 휴가, 가고시마, 시모지,·오사카↔시코쿠의 이마바리, 고치, 마쓰야마, 다카마쓰, 오사카↔오키나와 나하 항으로 이동하는 배편이 있으며, 자세한 문의 사항은 여행자 협의에 문의해 보는 편이 좋다.

쇼핑
▣ 미코 (美光)

미코은 우메다 지하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필기도구 전문점으로 특히 만년필 종류가 많이 있으며,이밖에 일본 제품 뿐만 아니라 몽블랑·파커 등 외국의 만년필까지 모두 갖추고 있다.


▣ 부티크 릴리

한큐파이브 3층에 위치하고 있으며,20대에서 50대에 이르기까지 여성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옷가게이다. 이곳에는 다양한 사이즈와 디자인이 있어서 까다로운 고객들이 많이 찾고 있는 곳이다.


▣ 오오키스토아 (オオギストア)

물건을 많이 갖추고 있는 슈퍼마켓으로 영업은 오후 1시부터 다음날 오전 4시까지 하고 있으며, 마치 우리나라의 동대문에 위치하고 있는 쇼핑타워들을 연상시키고 있다. 이곳은 주로 심야족이 이용하기에 편리하며, 우치와 회관 1층에 위치하고 있고, 연중 무휴이다.


▣ 도신 (東信) 스포츠 우메다 점

이곳은 스포츠라면 무엇이든지 갖추고 있는 점포로 전국에 42개의 체인점을 갖고 있다.


▣ 마루 빌딩 쇼핑가

오사카 역에서 보면 한신 백화점 과 다이이치 생명 빌딩 사이에 보이는 둥근 빌딩이 마루 빌딩인데, 이곳의 지하 1층에서 3층까지가 쇼핑가이다. 이곳은 외국에서 직수입한 고급 상품들을 중심으로 많은 물건들을 판매하고 있으며, 아이쇼핑만으로도 즐겁다.


▣ 타니카 (Tanika)

여러 가지 물건이 있으며,전통적인 물건도 많이 구비되어 있는 곳으로 1,000엔,5,000엔,10,000엔 짜리의 모조 지폐도 있다.


▣ 후지야 (富士屋)

후지야는 장난감 가게로 800엔 정도면 적당한 것을 구입할 수 있다.


▣ 세계의 초콜릿 1번관

이곳은 넘버 city 본관 지하 1층에 위치하고 있는 곳으로 세계 1백여 개국의 초콜릿 1천여 종을 전시하고 있으며,판매도 하고 있어 선물용으로 적당하다.


▣ 덴덴타운 (デンデンタウン)

덴덴타운은 니혼바시스지 양편에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곳을 말하는데, 이곳 대부분 가전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따라서 덴덴 타운은 가전제품 거리로도 알려져 유명하다. 이곳은 도쿄의 아키하바라와 쌍벽을 이루는 곳으로 가전제품이면 무엇이든 있으며, 가격도 저렴하다.


▣ 구로몬 (黑門)

구로몬은 니혼바시 역에서 니혼바시스지의 남쪽으로 내려가면 왼쪽 일대가 구로몬 시장이다. 미나미 번화가 주변 음식점의 어패류를 중심으로 식료품을 일괄 취급하고 있으며,신선함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이곳은 아침과 저녁때의 도매시간에는 재료를 사려는 요리사의 모습이 많이 보이는데,그밖의 시간에는 소매도 하고 있으므로 주부들이 많이 몰리고 있다.

여행계획
오사카(大阪)는 도쿄와 비슷한 면이 많은 곳이지만 하루 정도면 대충 둘러볼 수 있으며, 오사카는 크게 기타구(北區)와 미나미구(南區)의 두 개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기타오사카(北大阪)가 JR오사카 역을 중심으로는 비즈니스 및 쇼핑 지역으로 이제는 역전의 상점가가 아예 빌딩가로 변했으며, 미나미오사카(南大阪)는 오락과 저렴한 쇼핑을 즐길 수 있는 유흥 지역이면서 식도락을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오사카에는 후지산과 더불어 일본의 상징인 오사카 성을 비롯한 많이 명소들이 위치해 있으며, 또한 동양 최대의 수족관 가이유까항이 있어 관광객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오사카에는 포트피아 81박람회를 개최하기 위해 만든 인공섬과 포트 아일랜드가 위치해 있으며 인공 해상 도시인 롯꼬 아일랜드가 동서남북 2㎞로 조성되어 있고, 이 두 곳은 국제회의장, 전시장, 스포츠 센타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어 이용하기에도 매우 편하다.


신오사카(新大阪)는 1964년에 신칸센(新幹線)이 지나면서 신오사카역이 생겨났고 계속해서 지하철까지 연결되자 북오사카의 주요 터미널이 되었으며, 신오사카 역은 오사카 역에서 미도스지센으로 두 정거장 떨어져 있는데, 신칸센을 타고 오면 신오사카에서 내리게 되며, 이곳 역시 번화가로서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다. 여행 안내소는 신오사카(新大阪)역과 오사카(大阪)역에 위치하고 있는 여행자 협회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이곳에서는 지도 및 한국어판 팜플렛을 무료로 얻을 수 있으며, 각종 숙소 및 관광지, 숙당을 찾아가는 방법까지 안내해 주고 있다. 신오사카 역 사무소는 ☎06-305-3311번이며, 오사카역 사무소는 ☎06-345-2189번으로 이용할 수 있다.

여행상식
▣ 오사카에서는 교통 이용 시 1일 프리 티켓을 사면 JR선만 빼고 지하철·트램·버스를 하루 동안 자유롭게 탈 수 있다. 요금은 약 1,000¥정도면 구입할 수 있다.


▣오사카 중앙 우체국은 오사카 역과 우메다 역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텔렉스나 팩스는 주요 호텔이나, Interational Giligraph & Office(KDD)에서 이용할 수 있이다. KDD 사무실은 우메다의 신한신 빌등에 위치하고 있다. 비즈니스차 오사카에 방문했다면 이곳을 알아두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 일본의 모든 도시에서 식당을 이용할 경우 외국인 여행자를 위해 식당 전면에 Tourist Restaurant 라고 적혀 있는 곳을 이용하면 좀더 편하게 식당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은 바로 외국인을 위한 식당이기 때문이다.


▣ 오사카의 Travel Agincies 안내는 여러곳이 있는데 그 중 한곳은 Amnet Travel World(アムネット 株式會社)이 바로 그곳이다. 업무는 19:15~18:00까지 이면 이곳에서는 여행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즐길거리
▣ 샹하이(上海)는 일본 젊은이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자주 찾고 있는 곳으로,입구에 록 포스터가 많이 붙어 있다. 이곳은 밤 12시 전후에 가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다. 피그 앤드 휘슬을 지나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위치하고 있다.

▣ 기린 시티바(Kirin City Bar)는 기린 플라자 1층에 위치하고 있으며,1층은 다방이고,2층은 술집,꼭대기 층은 전시관으로일본 젊은이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

▣ 제트 스트림(The Jet Stream)은 닛코 호텔 32층에 있는 나이트 클럽으로 이곳에서 전망하는 오사카의 야경은 멋진 추억이 될 것이다. 입장료는 요일마다 다르며 일∼수요일에 한해 1,000엔 이고,나머지 요일은 4,000엔 이상이다. 이곳은 신사이바시 역에서 서쪽으로 위치하고 있다.

▣ 문화, 축제
• 스미요시다이샤 오도리
스미요시다이샤 오도리는 스미요시다이샤에서 매년 1월 1일~3일까지 열리고 있다.

• 다카에비스
다카에비스는 이마미야에비스진자에서 매년 1월 9일~11일까지 열리고 있다.

• 도아도야
도야도야는 시텐노지에서 매년 1월 14일 오후3시에 개최되고 있다.

• 오타우에노신지
오타우에노신지는 시므요시다이샤에서 매년 6월 14일에 개최되고 있다.

• 덴진 마쯔리
덴진 마쯔리는 덴민구진자에서 매년 7월 24일,25일에 개최되고 있다.


레이크 포레스트 리조트 CC




▶ 오이타 [Oita]

일본 규슈(九州) 북동부에 있는 현(縣)이며, 이 현의 현청 소재지가 위치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이타는 스오나다(周防灘) 및 태평양의 분고 수도(豊後水道)와 접하고 있으며, 내륙 지방은 복잡한 산계(山系)로 이루어졌으며, 주민들은 대부분 조그만 해안 평야에 집중해 있다. 깊숙히 팬 벳푸 만(別府灣)과 둥근 구니사키(國東) 반도는 길고 불규칙한 해안선이 특징이다.

오이타 대부분은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식 기후지역이며 산악지대는 저온지이다. 주민의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고 자급자족용 작물과 담배·갈대·밀감 등 환금 작물 재배와 함께 가축을 기르고 있다. 또한 산악지대는 울창하며, 주요 해안도시에서는 직물·금속·시멘트·화학제품 제조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오이타는 16세기에는 그 명성이 최고에 이르렀으나 도쿠가와 시대(德川時代:1603∼1867)에 쇠락했으며, 세토나이카이를 오가는 배들이 이용하는 교역 항이며 규슈의 중공업 중심지로 발달했다. 간척지에는 정유 공장과 석유 화학 공장이 있다.

오이타는 한국의 남부지방과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년 평균 기온이 15.2℃이며, 최저 일때도 영하로 내려가는 일의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오이타 중앙 골프 클럽 I 히타 국제 골프클럽 I 히타 로레루 컨트리 클럽




▶ 오키나와 [Okinawa]

오키나와(沖繩)는 동중국해에 면한 일본의 현(縣)으로써 류큐 제도(琉球諸島)로 이루어져 있으며, 류큐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이다. 오키나와 현에 속한 섬들은 편의상 다시 4개 지역으로 나누어지는데, 그 중 관광지로 잘 알려진 곳이 바로 오키나와(沖繩)이다. 이밖에 야에야마레쓰토(八重山列島)가 위치해 있고, 오키나와와 야에야마레쓰토(八重山列島)사이엔 미야코레쓰토(宮古列島)가 있으며, 그 동쪽으로는 다이토에쓰토(大東列島)가 위치하고 있다.
그 중 오키나와는 난세이쇼토(南西諸島) 의 각 섬들로 가기 위한 관문에 속하며 과거 류큐(琉球)라고도 불렸다. 또 오키나와는 혼토(本島)로 분류되고, 나머지 섬들은 리토(離島)라고 불리고 있다.

류큐 제도에서 가장 큰 오키나와 섬은 길이 112㎞,너비 11㎞,넓이 1,176㎢이다. 해안에는 산호초가 발달했고 감청색 바다와 흰 모래밭이 특징이다. 오키나와는 2개 국정 공원과 아열대라는 기후조건이 독특한 전통적인 문화 유적과 어우러져 관광산업이 급성장했다. 오카나와는 메이지 시대(明治時代 : 1868∼1912)초기 현이 되기 전까지는 일본과 중국의 영향을 받는 반(半)독립적인 왕국이었다.

오키나와 섬은 태평양전쟁 때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 중 하나이다. 1945년 4월 미군은 오키나와에 대한 육군, 공군, 해군 합동 상륙 작전을 감행했고, 일본군은 이에 대해 강력한 방어전을 벌였다. 미군은 이 섬을 완전히 장악할 때까지 3개월 동안 벌인 전투에서 전사 1만 2천명, 부상 3만 6천명의 피해를 입었고,일본군은 10만 명 가량이 전사했을 정도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1972년 오키나와 섬은 일본에 반환되었으나 광범한 미군시설은 계속 작전용으로 남아 있다.

오키나와가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는 것은 아열대라는 따뜻한 기후조건과 매력적인 해안, 그리고 한때 제 2차 세계대전의 격전지였으며, 류큐(琉球) 왕조의 독특한 전통적인 문화 유적지가 남아 있다는 것 등을 이유로 들 수 있다. 또한 오키나와에서는 아열대라는 기후조건으로 스킨스쿠버를 비롯한 해상 스포츠를 본격적으로 즐길 수도 있다.
특히 오키나와 이외의 섬들은 때묻지 않은 원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데,구메지마(久米島)와 다케토미지마(竹富島),이리오모테지마(西表島) 등이 그런 곳이다. 또 케라마지마(ケラマ島)와 이리오모테지마(西表島) 주변도 스킨스쿠버를 즐길 수 있다.

벨비치 골프클럽 I 슈레이 컨트리 클럽 I 아라시야마 골프클럽 I 오키나와 로얄 골프클럽 I 유니마트 컨트리 클럽 I 자앗타 테라스 골프 리조트 I 카누챠 골프코스




▶ 오타루

하코다테에 이어 개항항 항구마을 오타루는 19세기말~20세기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운치있다. 마을에는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이 많고, 오타루 운하를 따라 석조 창고가 늘어서 있다. 우리에게는 영화 [러브레터]의 배경지로 잘 알려져서, 영화에 나온 눈 덮인 오타루의 풍경을 보러 오는 한국인 관광객도 종종 만날 수 있다.




▶ 운젠

운젠은 옛부터 관광지로서 국립공원 제 1호로 지정받은 대자연의 혜택속에서 성장해 온 국제관광지이다. 그 중심적 역할을 해 온 온천은 운제가쿠의 남서쪽에 위치해 있는 고겐온천으로서 후루유, 신유, 고지고쿠온천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호화로운 호텔과 여관등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더불어 골프장, 테니스장, 캠프장들의 설비도 잘 갖추어진 손색없는 관광지다.




▶ 유후인 [yuhuin]

벳부의 번잡함과는 다르게 조용하고, 편안한 목가적인 분위기를 주는 온천 마을로, 중심가에서 땅을 파보면 어디든 물이 솟아나온다고 말 할 정도로 온천이 발달되어 있고, 쓰카하라(塚原)온천과 유노히라(湯平)온천 그리고 유후인(由布院)온천의 3개 온천군(群)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유후다케(由布院岳) 남서쪽 기슭의 분지에 펼쳐져서 자리잡고 있는 유후인은 아침안개로도 무척 인상적인 곳입니다. 일본 여성들이 가고 싶은 최고의 휴양지로 손꼽히며,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많아 한적하게 구경하기 좋고 특히 긴리코, 마키노토 등지에 있는 노천 온천이 유명합니다. 역에서 깨끗하게 정돈된 마을을 따라 10분쯤 걸어가면 ‘유후인 미술관’이 나오는데 이곳은 방랑시인이며 화가인 사토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여기서 10분정도 걸어서 ‘유후인 민예촌’을 지나면 유후인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자그마하고 아름다운 긴린코(金鱗湖) 호수가 보입니다.

긴린코 호수는 주위 약 400m의 작은 호수. 겨울의 아침 안개가 낀 아름다운 경치가 유명합니다. 호수에 도착하면 마치 호수면을 떠도는 것 같이 안개가 올라가고 있어 정말 환상적인 분위기. 작은 호수이기 때문에 산책하면서 호수를 한 바퀴 돌 수가 있습니다. 주위의 자연이나 빛의 정도와 보는 각도에 따라 호수의 표정이 변하는 것 역시 매력적입니다. 호수 바로 옆에는「시단 탕」이라고 불리는 초가 지붕의 소박한 공동탕도 있어 누구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 호수 근처의 소박한 욕탕에 들어가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이지요. 유후인에는 그 밖에도 손쉽게 들어 갈 수 있는 공동탕이 12개나 있어 수백엔 정도의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것도 기쁜 일 입니다.

규슈 유후인전통마을 민예촌에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초 경의 서민들의 도구를 전시한 민구관 외에, 전통공예 장인이 손으로 만드는 일본 종이나 죽세공, 유리 공예의 실연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습니다. 남빛 염색이나 일본 종이 등은 체험제작도 할 수 있기 때문에 기념품 대신에 오리지널을 만들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입니다. 마을에 있는 수차나 흙벽으로 만든 곳간 등이, 옛날 그리운 산속 마을의 분위기를 보여주어 어딘가 마음이 안정되는 곳입니다.

일본은 4계절이 뚜렷하며, 계절마다의 매력이 있다. 여행의 베스트 시즌은 봄과 가을이다.

공항안내
후쿠오카 공항은 국토교통대신이 설치・관리하는 제2종 공항이다.
후쿠오카시 중심에서 상당히 가까운 곳에 위치하는 교통이 매우 편리한 공항으로 알려져 있다. 공항에서 바로 후쿠오카시로 가는 지하철을 탈 수 있어 JR하카타역까지는 약5분, 덴진까지는 약11분이다. 이에 따라 「세계에서 제일 교통이 편리한 공항」이라고도 불린다.




▶ 치바 [chiba]

나리타 공항이 있는 현. 동경 시내까지는 대략 전철로 1시간 정도 걸린다.

글렌무어 컨트리 클럽 I 일본PGA C.C I 카노잔 C.C I 카메야마코 C.C I 하쿠호 컨트리 클럽




▶ 카미수와

*이시카와 현*
중부 일본에 위치하고 있는 이시카와현은 인구 약120 만 명, 면적 4,197.65 ㎢규모이다.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해안선의 전장은 582.4 ㎢에 달하며, 북쪽은 동해에 돌출된 노토반도가 있다. 또한 가가해안 국립공원도 그 아름다운 해안선이 부근의 가가온천과 더불어 인기를 얻고 있다. 일본 3대 명산의 하나인 학산은 신비적이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으며 그 기슭에는 많은 온천이 산재하고 있다

*가나자와 시*
이시카와 현의 현청 소재지인 가나자와 시는 “아사노 강”과 “사이 강” 사이에 끼어 있으며 남북으로 뻗은 “고다쓰노 대지”, 그 양측에 펼쳐지는 “우타쓰 산”과 “데라마치다이”라고 하는 3개의 구릉으로 이루어진 곳으로,호쿠리쿠 지방의 경제와 상업, 문화의 중심적 역할을 하는 도시이다. 16세기 말엽에 무장 마에다 도시이에가 성을 축조한 이래 약 300년에 걸쳐 번영해 왔다.


산업
*전통온천*
이시카와 현 남부의 가가 시를 중심으로 가나자와 평야 남단부에 있는 가가
온천향은 야마시로, 아와즈, 야마나카, 가타야마즈의 4개의 온천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간사이의 안방이라고도 불리운다.
야마시로 온천은 약 1300년전에 발견되었다고 전해지는 유서깊은 온천으로
호화시설을 갖춘 공동욕탕 소유·요쿠덴을 중심으로, 붉은 격자창의 전통여관이 모여서 형성된 온천인 구루와라고 불리는 거리풍경으로 유명하다.
유서깊은 아와즈 온천은 구타니 도자기, 와지마 칠기, 가가유젠, 금박공예 등 이시카와 현의 전통공예를 즐길 수 있는「유노쿠니 모리」가 관광객들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
주변이 미즈나시 강, 야쿠시 산, 히가시 산으로 둘러싸인 야마나카 온천과
하루에 일곱번 색깔이 변한다고 하는 시바야마가타 인근에 위치하며 맑은 날에는 하쿠 산 연봉을 볼 수 있는 가타야마즈 온천은 그 아름다운 경관에
매료되어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야마나카 칠기 등
독자적인 전통문화가 뿌리내리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 쿠사츠

동경에서 약 180킬로. 해발 1000미터 고산지대에 만들어진 온천지이다. 카루이자와라는 동경부근 유수의 별장지와도 가까우며, 쿠사츠 주변은 스키장, 골프장도 많다. 벳부와 어깨를 나란히하는 초유명 온천지로 온천물이 뜨겁고 진하다는 특징이 있다. 진하다는 것은 광물질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다. 초유명 온천지인데도 전혀 시끌벅적하지 않으며, 차분하고, 동네 또한 아담하다. 이곳에는 '지칸유'라는 지역 고유의 전통 온천법이 있어, 병을 앓고 난 후 몸조리에 많이 이용되고 있다. 또한 유명도에 비해 한국에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아마 교통편이 불편한 점이 요인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곳도 차 없이는 돌아보기 불편하지만,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만큼 느긋하게 보낼 수 있다.




▶ 하우스텐보스

하우스텐보스는 네덜란드를 형상화 해 만들어놓은 일종의 대형 테마파크다. 이곳에서는 장식을 좋아하는 일본인의 습성을 잘 볼 수 있는데 사진만으로는 네덜란드라고 해도 속아 넘어갈 정도다.

네덜란드가 주 테마인 만큼 이곳은 튜울립과 풍차를 흔하게 볼 수 있다. 하나의 도시로 이루어진 하우스텐보스는 도시를 운하가 가로지르며 운하에는 유람선이 다닌다. 바다와 연결된 운하에는 바닷물에서도 살 수 있도록 훈련된 백조가 노닐고 운치 있는 운하 옆으론 아름다운 레스트랑이 자리 잡고 있다. 건물 하나하나 길거리 조형물 하나하나 마저 장식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이며 큐슈지역에서 가장 재미있는 놀이동산의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하우스텐보스를 단순히 놀이 동산으로 꼽기에는 그 범위가 너무나 넓다. 하우스텐보스에 들어서면 잘 가꾸어진 거리와 식당, 가게, 시장, 박물관, 호텔, 커피숍들이 갖춰져 있어 작은 네덜란드이 마을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하다. 또한 놀이기구들은 네덜란드의 자연과 역사를 알 수 있는 것이 주를 이루며 무서워 할 정도의 놀이기구는 하나도 없는 일종의 가족형 놀이공원이다.

하우스텐보스는 놀이공원도 있지만 항구 쪽으로로는 요트를 가진 일본의 부유층의 별장도 있어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또한 범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 볼 수 도 있다.

철도
하우스텐보스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알록달록한 기차가 하우스텐보스까지 운행한다. 후쿠오카의 하카다 역에서는 대략 1시간 40분, 나가사키에서는 1시간정도가 걸리며 하우스텐보스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는 사세보다. 사세보에서는 하우스텐보스 역까지 20분정도 걸린다.

만약에 후쿠오카에서 하우스텐보스 행 열차를 탈 때는 하우스텐보스까지 가는 객차임을 확인해야한다. 열차에 따라서는 객차가 분리되어 중간에 다른 곳으로 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하우스텐보스 역은 매우 작은데 역을 나오면 멀리 하우스텐보스가 보이고 다리 처럼 연결되어 있다. 걸어서 5분 내외.

여행계획
하우스텐보스는 꽤나 큰 부지에 조성되어 있어 적어도 하루 이상은 투자해야 넉넉하게 볼 수 있다. 자융이용권을 이용하는 것이 경제적이며 편리하다.
자유 이용권은 하우스텐보스를 하루만 볼 수 있는 것과 이틀간 하우스텐보스와 네덜란드 촌이라는 또 다른 테마파크를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자유이용권으로는 입장과 내부 시설을 이용할 수 있으며 입장만 가능한 입장권도 별도로 판매하고 있다.

또한 가능하면 하우스텐보스 내에서 숙박해 보는 것이 좋다. 야경이 훌륭할 뿐만아니라 시즌에 따라서는 레이져 쇼도 벌어지기 때문이다.





▶ 하코네

하코네(箱根)는 닛코(日光)와 함께 가장 인기 있는 휴양지 중 한 곳으로 해발 800m에 위치해 있으며, 여름에는 도쿄보다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며 온천 지역으로 유명한 곳이다. 더구나 하코네는 일본 최대도시인 도쿄와 가까워 도쿄인들이나 도쿄를 찾는 여행객이 들러가기 좋은 온천지역이다. 하코네는 도쿄 신주쿠(新宿)에서 약 90㎞ 떨어진 곳으로 열차로는 1시간 30분 정도 걸리며 신간센으로는 약 40분정도 걸리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하코네는 연간 약 2,000만 명의 관광객이 몰리는 유명 온천 관광지로 동경에서 당일 여행도 가능하지만, 진정 온천지역의 여행을 원한다면 온천욕과 함께 여유롭게 1박을 하면서 주변 경관을 둘러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코네는 또한 후지(富士)-하코네(箱根)-이즈코쿠리쯔코엔(伊豆國立公園)의 중심지로서 각종 문화 시설과 역사적 유물을 함께 갖춘 곳으로, 국 시대의 유적이 남아 있는 오다와라(小田原), 대한 습원이 펼쳐진 센고쿠바라, 산의 흔적과 아직도 유황가스가 뿜어 나오는 온천지로 유명한 오와쿠다니(大涌谷), 코네의 절경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고마가다케(駒ケ岳)가이린잔(外輪山)의 녹음이 우거진 아시노코(芦の湖) 호수를 꼽을 수 있다.

행정 구역상 하코네는 시나카와겐(神奈川縣)에 속하고 이즈 반도는 시즈오카겐(靜岡縣)에 속에 있다.


공항안내
하코네에는 공항이 위치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하코네를 방문하려면 외국에서는 국제 공항인 도쿄 나리타(成田)공항을 이용해서 하코네까지 들어와야 하며, 일본 내에서 오려면 하네다(羽田)공항을 이용해서 하코네까지 들어와야 한다.

버스
▣ 시내버스
하코네 등산버스는 5∼20분 간격으로 운행되고 있으며, 오다와라↔센고쿠, 오다와라↔미야노시타, 오다와라↔하코네우모토, 하코네우모토↔도오겐다이, 하코네우모토↔센고쿠, 하코네 유모토↔미야노시타, 미야노시타↔도오겐다이, 미야노시타↔도오겐다이, 미야노시타↔센고쿠, 센고투↔도오겐다이 등이 있으며, 이즈하코네(伊豆箱根), 하코네등산버스는 오다와라↔하코네마치(箱根町), 오다와라↔모토하코네(元箱根), 오다와라↔아시노유(芦ノ湯)등이 운행되고 있다.

▣ 시외버스
오다큐 고속버스(小田急 高速)가 있으며 JR 신주쿠 역 니시구치(西口)의 시주쿠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다. 하루에 8∼9편이 운행되며,도오겐다이와 모토하코네 행의 두가지 노선이 있다.
오타와라 또는 아타미(熱海)에서는 정기 관광 버스가 운행되고 있으며 요금은 다양한 편이다.

철도
도쿄에서 하코네까지 오는 방법은 여러 방법이 있으나 전철을 이용하는 방법으로는 하코네역에서 오다와라(小田原)까지 신칸센 고다마(新幹線 こだま)로 42분이 소요되며, 30분 간격으로 운행되며 JR패스를 가진 사람에게 유리하다. 도카이도혼센(東海道本線)으로는 1시간 30분이 소요되며 운행횟수는 시간마다 3∼6회 정도이다.
JR 패스가 없다면 도쿄에서 하코네까지는 사철인 오다큐센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유리하며, JR보다도 요금이 싸고 시간도 더 절약되기 때문이다. 오다큐센은 신주쿠의 오다규신주쿠(小田急新宿)역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종류로는 오다큐 로망스카(특급열차)와 오다큐급행(보통열차) 등이 있으며,소 요시간은 약 1시간 30분 정도이다.
이밖에 동경 이외의 지역(교토, 오사카, 나고야)에서 오는 방법으로는 JR신칸센을 타고 미시마(三島), 아타미(熱海), 오다와라(小田原)까지 와서 이동하는 방법이 있다.

기타
하코네 등산철도(箱根登山鐵道)케이블카는 고라(强羅)와 소운잔(早雲山) 사이를 연결하며, 15분 간격으로 운행되며, 소요 시간은 9분이다. 하코네(箱根) 로프웨이는 소우잔에서 도오겐다이 사이를 연결하며, 약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되며, 소요시간은 오와쿠다니까지 10분 소요되며, 우바코까지는 9분, 도오겐다이까지 9분정도이다.

이즈하코네철도(伊豆箱根鐵道)로프웨이는 하코네엔(箱根園)↔고마가다케 사이를 연결하며, 소요시간은 8분정도이며, 13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여행계획
하코네는 도쿄(東京)의 신주쿠(新宿)에서 오다큐 덴데쯔(小田急電鐵)로 1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이즈(伊豆)반도 쪽의 유가와라(湯河原)나 아타미(熱海)까지 들러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후지산을 갈 계획이라면 출발하기 전에 일기예보를 잘 체크한 후 여행 계획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코네 여행은 계획만 잘 세운다면 하루동안 충분히 둘러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신주쿠 역에서 오다큐센으로 오타와라(小田原)까지 가서 거기서 하코네 등산철도로 갈아타고 조고쿠노무리(彫刻の森)역에서 내린다. 하코네 조고쿠노모리 미술관에 들른 후, 고라역까지 10분 정도 걷는다. 고라에서는 고라 공원관 하코네 미술관을 관람하되, 주의 할 점은 고라에서는 여러 군데의 미술관을 돌게 되므로 시간이 많이 소비될 수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너무 지체하게 되면 하코네의 주요 명소인 오와쿠다니(大涌谷)나 아시노코(芦ノ湖)를 볼 수 없게 된다.


이곳에서 소운잔(早雲山) 역까지 케이블 열차로 오른 후 다시 공중 케이블카로 오와쿠다니 역으로 간 후, 거기서 한번 더 케이블카를 탄 후 도오겐다이 역에 내리면 아시노코(芦ノ湖)이다. 아시노코는 해발 723m지점에 위치한 칼데라호로, 유람선을 타고 하코네마치(箱根町)에 가면 하코네 세키쇼아토(箱根 關所跡)를 구경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하코네 마치로 돌아와 버스를 타고 오다하라 역으로 온다. 그렇치않으면 유람선을 타고 모토하코네(元箱根)로 와서 버스로 오다와라까지 올 수도 있다. 오다와라에서는 다시 오다큐 전철을 타고 신주쿠로 돌아오면 된다.


여행 정보센타는 하코네마치(箱根町) 관광과와 하코네마치(箱根町) 관광협회를 이용할 수 있으며 이용 전화는 하코네마치 관광과 ☎0460-5-7111번과 하코네마치 관광협회의 ☎0460-5-5700번이 있다.

여행상식
▣ JR 패스 없이 하코네를 여행하려면 하코네 프리패스(箱根 フリ-パス)를 구입하는 것이 좋다. 오다큐데쓰(小田急電鐵)에서 발행하는 티켓으로 도쿄에서 하코네로 여행하고자 할때 이용하면 아주 편하다. 신주쿠에서 하코네유모토 사이의 왕복 교통편은 물론이고 하코네 현지의 등산 교통 이동수단을 모두 이용할 수 있으며, 광 시설을 이용할 경우 할인 혜택까지 있으며, 유효기간은 4일이다.

▣ JR패스가 있는 사람은 JR패스로 오다와라까지 온 후에, 코네 프리패스(箱根 フリ-パス)를 이용해서 여행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일 것이다. 이 패스는 하코네 등산 철도에서 발행하며, 다쿠덴데쯔(小田急 電鐵)에서 발행하는 하코네 프리패스와는 달리 도쿄와 하코네 사이으 교통 요금이 제외되어 있으며, 그 밖의 사항은 오다큐의 패스와 같다. 이 역시 경제적이다.

▣ 하코네 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하코네 와이드프리(箱根 ワイドフリ)는 유람선, 버스, 케이블까, 로프웨이 등을 이용할 수 있으며, 관광 시설의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이밖에 하코네 버스 프리(箱根バスフリ)가 있다.

즐길거리
▣ 다이묘 마쯔리 : 매년 11월 3일에 개최되고 있는 다이묘 행렬 마쯔리이다.
▣ 히나 마쯔리 : 매년 3월 3일에 전국적으로 개최되고 있는 인형제이다.





▶ 후쿠오카 [Fukuoka]

후쿠오카(福岡)는 일본의 4개 큰 섬중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규슈(九州)섬의 북부에 자리잡고 있으며,후쿠오카현(福岡縣)의 중심지로 규슈(九州)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일본에서는 8번째로 큰 도시이다. 흔히 규슈의 수도라고도 불리우며, 하카다(博多)라고 불리는 경우도 많다.

후쿠오카 시(福岡市)는 원래 나카가와(那珂川)를 중심으로 동부 지방을 하카타(博多 : 상인의 도시), 서부 지방은 후쿠오카(福岡 : 무사의 도시)라고 불렀으나 1889년 이 두 도시가 합쳐지게 되면서 후쿠오카(福岡)로 지칭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후쿠오카'는 공항으로 '하카타'는 도카이도신칸센(東海新幹線)의 마지막 종착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후쿠오카는 규슈의 중추관리기능의 집접과 활발한 민간 투자 등의 뒷받침되어 상업, 서비스 산업을 중심으로 한 3차 산업이 집중적으로 발달된 서 일본의 중심도시다. 자신들의 수도인 동경보다 우리나라의 부산과 더 가까운 이곳은 일본 전체에서도 가장 활기찬 도시 중 하나이다.

후쿠오카는 혼슈(本州)와 규슈(九州)를 연결해 주는 교통의 요충지이면서 동시에 한반도와 아시아 문화를 잇는 교류 창고로써 역할을 하고 있으며, 나라(奈良), 헤이안(平安) 시대부터 무역항으로 발달해 외국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후쿠오카는 국제노선의 남쪽 출구이며 규슈 여행의 첫 입구이기도 하다. 국제 항공노선은 물론, 국내선과 철도편이 통과하는 중심지역 중의 하나이다. 후쿠오카(福岡)란 지명에는 행복의 언덕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일본의 어느 곳보다 저렴한 배편과 항공편으로 여행자들에게선 일본 여행의 출발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여행상식
▣ 규슈 지방의 한국 관련 명소를 한번 찾아보면서 둘러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쿠다라노사토는 미야자키 시 북서쪽 내륙의 지방이며,미야마는 가고시마 북서쪽 25키로미터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인 도공이 14대째 도자기를 만들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 워터 프론트는 현재 후쿠오카에서 주목받고 있는 장소로, 하카다 항구에 매력이 넘치는 놀이 장소가 속속 등장해서 바닷 바람을 맞으며 파도 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즐길거리
▣ 하카타 기온야마가사 (博多 祇園山笠)
매년 7월 1일∼15일에 행해지고 있으며, 700년 이상의 전통을 지닌 하카타 최대이 축제이다. 이때에는 시내 중심가의 상점가에 높이 16m의 호화찬란한 '가자리야마가사(飾り山笠)'가 장식되어지며, 특히 15일 04:59에 시작되는 오이야마가사는 정말 장관이다. 이 축제는 가마쿠라(鎌倉) 때 하카타에서 유행했던 병마 퇴치를 기원했던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 하카타오쿤치 (博多おくち)
매년 10월 하순에 개최되며, 이는 하카타의 수소 신사인 구시다 진자이 가을 축제이다. 축제일은 10월 23일과 그 날에 가까운 토, 일요일에 행해지고 있다. 미코시(御輿)를 선두로 10세 전후 아이들이 유아 행렬과 구로다 나가야마(黑田長政)의 무사 행렬, 그리고 밴드가 새내 중심부를 행진하고 있다.

▣ 하카타돈타쿠
하카타돈카쿠는 매년 월 3~4일에 개최되고 있는 하카타시의 개항축제이다. 샤미센, 민요, 밴드 행렬이 시내를 행진하고 여러 곳에 설치된 가설 무대에서는 노랭 춤 솜씨가 선보이는 것은 물론, 돈타쿠 음악에 맞춰 시민 모두가 함께 즐기는 축제이다.

▣ 후쿠오카의 식문화
후쿠오카는 바다, 산 강 등 풍부한 자연 환경에 둘러싸여 있어 독창적인 음식 문화가 발달하였다. 특히 나카스, 텐징 지구를 중심으로 230개 이상이 늘어서 있는 포장마카는 후쿠오카를 대표하는 풍경 중의 하나이다.

▣ 전통공예
예로부터 해외 무역의 창구로 번영했던 후쿠오카는 긴 역사와 전통 속에서 생겨난 다양한 특색을 지닌 수많은 공예품이 있으며, 쿠루메가스리(짙은 남빛 바탕에 흰 무늬 천), 아가노야키(궁중용 도자기), 야메후쿠시마불단(옻칠과 금박으로 채색한 웅장하고 화려한 불단), 하카타 인형(초벌구이 토기 인형), 고이사와라 야키(생활 도자기), 히카타 오리(750년 전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것으로 독특한 줄무늬와 광택있는 미묘한 색의 배합이 아름다움)는 국가 전통 공예품으로 지정되어 있다.

레이크사이드 컨트리클럽 I 미션발리 골프클럽 I 선레이크 골프클럽 I 아리아케 컨트리 클럽 I 아소이즈카 골프클럽 I 큐슈 골프클럽




▶ 히로시마 [Hiroshima]

히로시마(廣島)는 서부 혼슈(本州)의 주고쿠(中國) 지방에 위치하고 있으며 히로시마 현(廣島縣)의 수도이다. 히로시마는 주고쿠(中國)산지에서 발원하는 오타가와(太田川) 하구의 삼각주에 위치한 도시이며,오타 강의 소로들이 이 도시를 6개의 작은 섬 모양으로 나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과거 2차 대전 당시 세계 최초로 원자 폭탄이 투하된 도시로 더 잘(?)알려진 곳이다.

히로시마는 1589년 모리데루모토(毛利輝元)가 자신의 성을 지으면서 발달했으며,2차 대전 당시에도 공습이 전혀 없던 도시였으나,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45년 8월6일 오전 8시 15분,USAF B-29 Enola Gay에서 투하된 TNT 38㏏급의 원자탄이 터진 순간 히로시마의 역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폭탄이 투하된 중심지에서 반지름 2㎞이내는 전면 파괴·전소되었고,무려 27만 이상이 죽었으며,아직까지도 방사능에 의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 그후 이곳 나카지마구(中島區)는 평화기념공원이 되었으며,이 사건을 계기로 매년 8월 6일마다 평화기념공원에서 희생자 추모제 등이 열리고 있다.

히로시마는 이나리교(稻荷橋)를 재건한 1950년경부터 도시계획 아래 복구가 시작되었으며,1957년에 복원된 히로시마 성에는 역사 박물관이 있다. 평화기념 공원에는 원자폭탄으로 죽은 사람들에게 바쳐진 기념비들과 박물관이 있다. 원폭 희생자들을 위한 기념탑은 거대한 안장 모양으로 생겼으며 고대 일본 무덤에 있는 조그만 진흙 안장과 닮았다. 원폭 기념 돔은 원폭에도 건재한 유일한 유물이다.

히로시마는 평화 기념 공원을 중심으로 주고쿠 지방의 정치·경제의 중심지인 곳이기도 하다. 또한 시내 중앙에는 폭 100m의 헤이와도리(平和大通り)를 중심으로 도로가 넓게 뻗어 있으며,6개 노선의 노면 전차와 버스가 달린다. 히로시마는 6개의 강과 많은 다리가 아름다운 도시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으며,북쪽으로는 현의 경계선을 따라 주고쿠 산맥과 남쪽으로는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를 따라 광활하게 발달된 삼각주 평원이 있다. 히로시마 현 앞바다에는 이쓰쿠시마 신사와 그밖에 신사로 유명한 이쓰쿠시마 섬(미야지마 섬(宮島) 또는 미야시마라고도 함)등 여러 개의 섬이 있다.

현재의 히로시마는 주고쿠(中國)지방과 시코쿠(四國) 지방으로 둘러싸인 지역에서 가장 큰 공업도시로서,많은 행정관청과 공익 시설 외에 종합 대학이 있다. 산업으로 철강·고무·화학제품·선박·수송기계 등을 생산하며 일본의 주요한 바늘 생산지이다. 그리고 주민 대부분이 쌀·오렌지·국화·골풀 등 농업에 종사하며,구레(吳),오노미치(尾道),인노시마 섬(因島)에는 조선소가 있다.

이쯔구시마 신사





▶ 히메지 [himeji]

효고현의 남서부에 위치한 히메지.
역에 내리면 정면에 백로성이라고도 불리는 히메지성이 서있다.
주변에는 일본 정원과 미술관 등 문화시설들이 점재. 붕장어 등 하리마 바다에서 잡힌 어패류는
이곳의 명물로, 이곳에 가면 꼭 한번 맛보고 싶은 음식입니다.

자격있는 여행전문가 - 모두투어

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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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의 정치체제는 현재 많은 대내외적 문제를 겪고 있다. 정치 노선이 한국과 많이 닮아 있는데 인도네시아는 판차실러(Pancasilla)라는 5개항의 기본이념을 정치적 바탕으로 삼고 있다. 이는 신앙의 존엄성, 인간의 존엄성, 통일, 인도네시아 대의 정치, 사회정의 구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혼합경제체제를 가지고 있는 인도네시아 경제는 농업과 광업에 바탕을 둔 개발도상국으로 국내총생산 1/4를 차지하는 농업부문에 노동력의 절반이 종사하고 있다. 또한 천연고무의 주요생산국으로서 고무가 주요수출품이며, 커피ㆍ차ㆍ담배ㆍ향신료ㆍ기름야자나무제품 등이 주요 수출품이다.

교통·통신 및 우편제도를 살펴보면 교통수단으로 택시 및 버스 그외 특색있는 바자이나 베짜라는 삼륜 자동차와 마차 수준의 교통편이 있는데 택시는 타기 쉬운 편이며 요금도 그다지 비싸지 않으나 간혹 외국인에게 미터기가 있는데도 흥정을 하려 들기도 하고 바가지 요금이 많다. 버스는 요금에 따라 여러 레벨에 버스가 있는데 간혹 강도들이 외국인들을 노리는 경우가 있어 현지사정에 밝은 사람들조차 대부분 버스는 이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외 한 지역이나 구역 내에서만 운행하는 바자이라는 재밌는 교통수단이 있는데 싸고 빠르고 조금은 위험하다. 현지인들은 중산층 정도 돼야 이 교통수단을 이용한다. 그러나 사고가 나면 하늘에 맞길 수 밖에 없다.

인도네시아에는 염색이나 회화 등의 유적관련 관광상품들이 굉장히 많다. 회화역사는 약 5쳔년 이상된 것으로 추정되는 인간과 동물의 형상을 그린 동굴벽화가 남부 술라웨시 이라얀자야 등에서 발견되었고, 남부 수마트라 등지의 대규모 고분에서도 AD 100년경의 천연색 벽화가 발견된 점으로 보아, 인도네시아 회화 역사는 아주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고 생활 속에도 많이 찾아 볼 수 가 있다. 특히 양초와 염색을 이용한 바틱기법은 일종의 그림장르로서, 초기 자바인 문학에서는 바틱을 만드는 사람들이 화가로 명명되고 있으며, 현재 중부 족자와 발리가 바틱으로 유명하며 장인으로 칭송 받는다.

2억 2백만명의 인구를 가진 인도네시아는 중국, 인도, 미국에 이어 세계 4위이며, 300여 종족이 사용하는 언어도 500여종에 이르고 종족별로 상이한 문화와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면적 : 1,919,317㎢
-국가대비 면적비교: 남한의 약 19.30 배

인구 : 201,300,000명('1997)
-국가대비 인구비교: 남한의 약 4.234 배

종교 : 인도네시아는 무슬림 국가이지만 다양한 종교를 가지고 있다. 네덜란드 통치 하에 띠모르, 플로레스, 수마트라, 또라자 지역에 기독교가 전파되었고, 이슬람이 퍼지기 전 수마트라에 불교, 자바에는 힌두교를 신봉하고 있다. 무슬림을 믿는 자바인들은 아직도 힌두의 전통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국민의 약 4/5가 이슬람을 믿고, 힌두교, 불교, 전통적 애니미즘 등의 색채를 가지고 있다. 중국인들은 불교와 유교를 믿고 있다.

종교적으로는 이슬람교를 비롯한 불교,힌두교,기독교가 서로 충돌과 갈등을 빚기도 하나 상당히 안정적이며,인니 국민의 9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이슬람 문화가 사회생활의 저변을 이루고 있다

주요민족 : 민족은 250여 종으로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300여 개의 민족집단들로 이루어져 있으나 국민 대부분은 말레이인이다. 그 다음 큰 민족집단은 자바인이다. 인도네시아는 세 집단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 자바와 발리 섬 내륙에서 벼농사를 짓는 자바인ㆍ순다인ㆍ무두라인ㆍ발리인등을 포함하여 인구 전체의 2/3을 차지하고, 두 번째, 수마트라 섬의 말레인과 셀레베스 남부의 마카사르족 세 번째, 다야크족ㆍ소수 부족 집단들이 있고, 최대 민족집단은 중국인이다.

주요언어 : 많은 종류의 언어와 방언이 있으나 말레이 인종이 사용하던 바하사 인도네시아어로서 수마트라 섬 동부의 잠비 지역에서 사용되는 말레이어 방언에서 유래한 것이다. 인도네시아어는 세계에서 가장 배우기 쉬운 언어로 손꼽고 있는데, 시제와 성의 구분이 없고, 한 단어로도 의미가 전달되기 때문에 배우기 쉽다

기후
인도네시아는 적도를 둘러싸고 있어 1년 내내 더우며, 우기에는 고온다습, 건기에는 고온건조한 기후를 나타내며 해안지방이 보통 23-31℃를 나타내며 가장 높은 기온을 보이고, 산간지역은 매우 추운 곳도 분포하여 있다. 1년 내내 비가 많이 내리는데, 우기는 남동쪽으로 갈수록 늦게 시작되며 수마트라 북부에서는 9월달에 비가 시작, 띠모르는 11월에도 비가 오지 않고 1-2월중에는 어디든지 비가 온다. 국토의 7%가 목초지이며 열대우림이 인도네시아 전국토의 2/3정도를 녹색 산림으로 뒤덮여 있다.

지리
남태평양ㆍ인도양을 동ㆍ서로 끼고 아시아대륙과 호주대륙의 중간지대에 위치한 인도네시아는 크고 작은 섬들이 약 1만 3,670개의 섬들로 이루어진 동남아시아의 섬나라로 자바와 마두라 두 섬에 총인구 65%가 집중되어 있다. 정식명칭은 인도네시아 공화국(Republic of Indonesia)며 부를 때는 Indonesia라고 부른다. 면적은 1,919,317㎢로 서쪽의 수마트라 섬에서 동쪽의 뉴기니 섬까지 약 5,100km, 남북으로 약 1,600km로 펼쳐져 있다.

지형 구조는 복잡하고 산계는 화산활동이 빈번하고, 토양은 비옥하여 곡물재배에 적합하다. 주요 섬들은 열대림으로 덮여 있고 화산성 산들로 이루어져 있다. 남쪽부터 수마트라ㆍ발리ㆍ자바ㆍ발리ㆍ롬보크ㆍ숨바와ㆍ플로레스ㆍ티모르섬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줄지어 있다. 열도 북쪽에는 "칼리만탄" 즉 보르네오 섬으로 세계3번째로 큰 섬으로 구릉과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간단한 현지어
• 아빠 까바르: 안녕하세요.
• 아빠 이니: 이것은 무엇입니까?
• 아: 예.
• 띠닥: 아니오.
• 브라빠 이니?: 이것은 얼마입니까?


역사
▣ BC이전 역사 개요
최초 인도네시아 거주인은 4백만년 전 직립보행 원인 피테간트로푸스 에렉투스(일명 자바인)인 것으로 추정되며, 그 이후 BC 3000년경 부터는 아시아대륙에서 이 주해온 몽골계 말레이인이 원주민을 구축하고 인도네시아에 정착했다고 한다. BC 1000년경 부터는 이들 몰골계 말레이인들은 인도네시아 원주민 뿐아니라 인도아리안 이주민들과도 혼인 들을 통해 자연스럽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인니에서 확고한 지위를 확보해 나갔다.

▣ AC 1년 - 1900년 까지의 역사
인도네시아 민족의 대부분은 인도 지역에 근거를 둔 말레이계에 속한다. 기원 후에는 중국과의 교역이 시작되었고, 인도로부터 힌두교와 불교가 인도네시아 여러 섬으로 전파되어 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 5세기에 서부지방에서 다르마왕국을 필두로 6세기 중국 자바, 7세기에 수마트라섬의 팔렘방에서 불교를 통하여 스리비자야왕국이 발흥되었다. 스리비자야왕국은 8세기 샤일랜드라 왕조시대 때에 동서교통의 요충지인 중부자바를 장악, 10세기까지 번영을 누렸으며, 이러한 유적으로 세계초대의 불교유적지 보로부두르사원이 남아 있다. 11세기에는 문화중심지가 중국자바에서 동부자바로 옮겨지고, 이를 계기로 불교왕국 대신 힌두계 왕국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13세기에는 인도에서 온 이슬람교도 상인들에 의하여 이슬람교가 수마트라 북부에 전래되어 2세기 동안 힌두교와 고유문화를 고수한 발리 섬을 빼고 다른 선들로 전하여졌다.

인도네시아는 다민족 국가답게 여러 종교가 유입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공존하고 있는데 1세기경 인도상인이 향료 금속 등의 통상을 위해 왕래함으로써 힌두문화가 자연스럽게 인니에 유입되기 시작했으며 5세기경부터 칸타리,쟘비 및 말라유 힌두 왕 국이 번성했다고 한다. 7세기 후반경 불교를 신봉하는 이주민들은 힌두왕국인 말라유 왕국을 멸망시킨 후 수마 트라 팔렘방을 중심으로 스리위자야 불교왕국을 건설, 수마트라, 말레이반도, 자바섬까지 지배권을 확장하는 한편 중국 및 인되와의 교역을 활발히 함으로써 불교문화와 상업 및 무역의 중심국가로 번성하였다. 9세기 전후 중부 자바의 족자카르타에 건립된 보르부드르 불교 사원은 1000여년 전에 새로이 발국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인 불교유적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슬람교는 13세기초 말라카를 중심으로 수마트라,자바 등 해안지방에 근거를 둔 인도 및 아랍 향료상인들을 통해 유입되었다. 15세기 초 말라카 왕국이 출법, 그후 말라카는 물론 북부 수마트라,자바등 인근 도서지역 에서 가장 중요한 무역중심지로서 이슬람 전차의 주요 역할을 했는데 인니의 이슬람교는 기존 힌두.불교문화 터전위에서 수세기에 걸쳐 정착되었기 때문에 중동 이슬람교와는 달리 다소 세속적인 특징을 띠고 있다. 13세기 말경 인니 역사상 최대의 힌두왕국인 마쟈파히트 왕국이 동부자바 중심으로 출범 전성기에는 현재 전인니 군도는 물론 말레지아와 필리핀 남부지역까지 그 영토를 확장했다. 그러나 힌두교는 15세기 후반기에 접어들어 마쟈파히트 왕국이 왕위 쟁탈전으로 쇠퇴하게 되고 신흥 이슬람교가 세력을 확장함에 따라 점차 세력이 약게 되었으며 현재 힌두문화가 지배하고 있는 유일한 지역은 발리섬으로 힌두문화가 많이 남아있다. 1602년 부터 1942년까지 인도네시아는 화란 식민지 시대를 겪는데 1511년 포르투칼이 말라카제도의 향료무역을 독점하기 위해 서구열강중 가장 먼저 말라카 왕국을 점령하였으나 말라카가 지배하고 있었던 거대한 아시아 무역망은 장악치 못하였다. 화란은 포르투칼 세력을 말라카제도로 부터 축출하고 1602년 동인도회사를 세워 향료무역 의 전권을 장악하였으며,그 이후 화란은 동인도회사를 거점으로 하여 3400여년 동안 인니 전역에 대한 식민통치를 실시하였다.

▣ 1991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1942년 부터 1945년 동안 일본 점령하에 들어 가는데 1942년 3월 일본은 화란과 전쟁상 태로 돌입,인도네시아 수도인 바타비아 (현 자카르타)를 점령,3년 반 동안 군정통치를 실시하였다. 2차 대전이 일본의 항복으로 끝나자 1945년 8월17일 인니공화국의 독립이 선포되고, 수카 르노와 하타가 인도네시아공화국의 초대 대통령,부통령으로 각각 취임하게 되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인도네시아는 4년간에 걸쳐 대화란 독립 무력항쟁을 계속해 오던 중 1949년 11월 2일 화란은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인정하는 협정에 서명하였으며 1950년 9월 인니는 유엔회원국이 되었다. 수카르노는 대통령의 건강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자 1965.9.30 인도네시아는 공산당 은 수카르노 사후에 예상되는 정세에 대처하기 위해 군부에 기선을 제압할 목적으로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당시 수하르토 전략사령관을 중심으로 하는 군부의 신속한 진압때문에 실패하고


유용한전화번호
•주인도네시아공화국 한국대사관(57, Jalan Gatot Subroto, Jakarta Selatan, Indonesia): (62-21) 520-1915
•한인회:(021) 521-2515, 527-2054
•K A L:(시내) 521-2180, (공항) 550-2394, 2389
•경 찰 서:110
•화재신고:113
•앰블런스:118, 119
•안 내:시내(108), 시외(105), 국제(102)
•국제전화신청:104

전압 및 주파수
220V/50사이클. 우리나라와 플러그 모양이 다르기 때문에 별도로 어댑터를 준비해야 한다.

통화
인도네시아 통화 단위는 루피아(Rupia)이며, 지폐 종류로는 Rp100ㆍ500ㆍ1,000ㆍ10,00ㆍ20,000ㆍ50,000의 7종류가 있으며, 동전은 Rp1ㆍ5ㆍ10ㆍ25ㆍ50ㆍ100ㆍ500ㆍ1,000로 8종류이다. 지폐의 색과 모양이 각각 다르고, 동전의 표기는 숫자로 표기되어 있다. 크기도 여러 가지로 나누어진다.
환율은 US$1= Rp8,335 정도 된다. Rp100=원화 14.20원(2004. 1월 현재)


주의사항
▣ 외국인 금기사항
머리에 손을 대는 것은 영혼의 안식처를 침범하는 행위라고 생각하며, 물건을 줄 때에는 오른 손을 이용한다. 왜냐면 왼손은 화장지 대용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열대기후에 속한 나라인데도 위생시설에 대한 관념이 희박하므로 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 편이므로 음식ㆍ물을 먹을 때 가장 조심하는 것이 좋다. 끓이지 않은 물을 먹어선 안되며 물을 생수를 사서 먹도록 한다. 왼손은 부정한 것이므로 악수를 하거나 물건을 받을 때에는 오른손을 사용하여야 하며, 대화중 허리에 손을 얹으면 안 되는데, 이는 화가 난 태도인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도네시아인들은 일본인에 대한 감정이 매우 좋지 않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인들과 외모가 비슷하여 오해 받기 쉬우므로 행동에 조심해야 한다.

▣ 상품구입시 유의사항
인도네시아에서 물건을 살때, 바가지를 부과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여러 곳을 돌아보고 사며 흥정을 하면 싸게 살수 있다.

▣ 복장 및 의복 관련사항
열대성 기후를 보이는 인도네시아의 옷차림은 티셔츠ㆍ반바지ㆍ샌들을 준비하여 가져가지만 노출이 심한 옷은 피하는 것이 예의상 좋다. 관공서, 공항 등 국가기관, 공공장소는 정장차림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자
▣ 국내 비자발급처
기 관 명 :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관
주 소 :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55
전화번호 : 783-5675/7, 783-5371/2
팩스번호 : 780-4280
근무시간 : 09:00-12:30 & 13:30-17:00 토요일 휴무

▣ 비자신청시 유의사항
2004년 2월이후 시행되는 비자법에 의하면 관광비자일 경우에는 30일이내 머물경우 도착비자로 가능하며 3일이내 미화10불, 4일~30일은 미화25불만 내면 비자를 받을수있다.

▣ 비자신청시 구비서류
30일미만 입국비자시 별도의 서류는 필요없고 미화 10불 또는 25불만 있으면 된다.
그외의 상용비자신청시는 비자 신청서, 6개월 이상 유효한 여권, 여권용 사진 2장, 출장증명서, 항공권 사본, 자국에 있는 회사의 재정보증서 2장(체류이유, 초청이유 명시) 등이 필요하며 여권의 유효기간이 최소한 6개월이상 유효하여야 한다.

-관광목적인 경우 2개월간 무사증 체류할 수 있으나, 이 경우 반드시 여권 유효기간이 최소 6개월 이상 남아 있어야 하고 귀국 항공권을 소지해야 함. 법령상으로는 잔여 유효기간 6개월 미만인 여권을 소지한자에게 5일간의 경유비자를 부여토록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입국을 허용하지 않고 있음.
-방문 및 상용 목적인 경우 해외에 있는 인니공관을 통해 2개월 체류허가를 받을 수 있으며, 인니 입국 후 추가로 2개월씩 2회 연장도 가능(최장 6개월까지 체류 가능)함.
-장기 체류 목적의 외교관, 관용 여권 소지자 또는 취업자는 무사증 입국을 할 수 없으며, 사증 없이 입국할 경우 공항에서 2개월간의 관광비자는 부여받을 수 있으나, 2개월 이내에 출국하여야 함.
-언어 소통의 어려움, 관행의 무지로 인해 사증 관련 불필요하게 금전을 제공하는 사람이 종종 있으나 인니의 사증관련 규정을 준수하여 금전제공을 삼가는 것이 바람직함.


인도네시아는 적도를 둘러싸고 있어 1년 내내 더우며, 우기에는 고온다습, 건기에는 고온건조한 기후를 나타내며 해안지방이 보통 23-31℃를 나타내며 가장 높은 기온을 보이고, 산간지역은 매우 추운 곳도 분포하여 있다. 1년 내내 비가 많이 내리는데, 우기는 남동쪽으로 갈수록 늦게 시작되며 수마트라 북부에서는 9월달에 비가 시작, 띠모르는 11월에도 비가 오지 않고 1-2월중에는 어디든지 비가 온다. 국토의 7%가 목초지이며 열대우림이 인도네시아 전국토의 2/3정도를 녹색 산림으로 뒤덮여 있다.




▶ 바탐

바탐은 현재까지도 매우 빠른 속도로 개발·발전되고 있는 곳으로 계획적으로 정비되어 있는 근대도시 국가 싱가포르와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약 2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에서는 이러한 지리적인 이점을 잘 살려 제 2의 싱가포르를 만들기 위해 계획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바탐은 독일에게 배운 헬리콥터를 만드는 기술을 인도네시아에게 처음으로 전해준 하비비가 관리하고 있다.
바탐은 1989년 자유무역지대로 선언되기 전까지는 습지 주변에 자리하고 있는 나고야의 판자 집들과 몇 개의 어촌만이 해안에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몇 년 동안 건물이 들어선 지금은 이전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는 곳으로 완전히 변해버렸다. 북부해안을 따라 고급 골프 리조트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지만,이에 비해 대부분의 다른 지역은 비싼 물가와 급조된 흉한 건물 등이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국경도시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 때문에 배를 갈아타는 이외에 다른 시간을 이곳에서 보낼 이유가 없기도 하다.
항구인 Batu Ampar,Nongsa,Sekupamg과 Hang Nadim 국제공항 등 네 곳이 모두 비자 없이 출입국할 수 있는 곳으로 되어 있는 등 바탐은 현재 이웃하고 있는 빈탄이 가지고 있었던 군도의 전통적인 교통 중심지 역할을 크게 빼앗고 있다.
현재 바탐에는 일본·네덜란드·싱가포르의 기업들이 진출하여 있고,현재 인도네시아 각지에서 노동자들이 계속 모여들고 있다. 또한,주말이 되면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에서 많은 관광객이 밀려들고 있으며,싱가포르와 마찬가지로 자유무역항이기 때문에 공업제품의 가격이 매우 싸다.




▶ 발리 [Bali]

발리는 "지구상의 마지막 낙원", "세계의 아침"등으로 불리우며 남태평양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인 인도네시아 군도를 구성하는 수천개 섬가운데 하나이다. 발리의 크기는 제주도의 약 2.8배 정도이며 전국토의 약 0.29%의 크기이다. 인구는 현재 약 300만 정도로 이중에 약 30%가 이방인이다. 적도에서 약간 남쪽으로 남위 8도와 115도에 위치해 있으며 열대우림 기후로 건기와 우기로 나뉘어진다. 우기인 11월에서 3월말까지는 비가 많이 오지만 대개 소낙비(스콜)가 하루에 1-2시간 정도 내린다.(넓은 지역이기 때문에 지역에 따른 편차가 있음)
발리는 "산스크리트어"로 와리(Wari)라는 말이 변형된 것으로 제물을 의미하며, 신들의 섬들로 불리기도 한다. 이슬람화된 인도네시아 지역 중에서 아직도 힌두 문화의 전통을 남기고 있는 섬으로 유명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인디아 힌두교와는 다른 형태로 지구상에서 유일한 발리 힌두교이다. 한 마을에 창조의 신, 모호의 신, 그리고 파괴의 신등을 모시는 3개의 사원이 있고 크고 작은 사원이 2만 이상이다. 또한 실제로는 주민들이 사는 집 자체가 많은 사당으로 되어 있어 소규모의 사원역할을 하고 있다.
섬의 모양은 병아리 모양과 비슷하며, 가장 신성한 장소로 추앙받는 아궁산(3.142m)을 최고봉으로 하는 산맥이 동서로 길게 펼져져 있으며, 화산지역으로 양분된 평야에서는 쌀 등의 주요 농산물이 경작된다. 발리에서의 촌락이 생활의 터전 역할을 하고 가족들의 그룹인 "반자르"는 발리 사회의 기본단위이다.
북부는 토질이 불량하지만 남쪽 비탈면에는 많은 강이 흘러내려 덴파사르에 이르는 비옥한 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발리섬 인구의 대부분이 이 비탈면에서 논농사에 종사하고 있고, 일부는 관광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발리섬은 이미 오래 전부터 관광지로 주목되어 왔으며, 현재도 세계 각국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아든다. 덴파사르는 이 곳의 중심지로 발전했으며, 서쪽 교외에는 국제공항도 있어 발리에의 입구가 되어 왔다. 경치가 아름다운 사누르 해안을 비롯하여, 북부의 바투르 화산에 있는 피서지인 킨타마니, 아궁화산의 중턱에 있는 브사키 사원, 전에 왕성이었던 쿨룽쿵, 목각의 중심 우부드, 발리 회화의 중심 마스 등이 주요 관광지이다.

교육
발리의 교육은 우리나라와 같은 6.3.3제로 1984년 7월에 초등학교까지를 의무기간으로 정하여 문맹률을 많이 낮추었으나 아직도 경제적인 형편이 좋지 않아 학업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
발리의 대표적인 학교로는 1960년에 정부의 예술 문화 협회 후원으로 설립된 3년제 국립 음악 예술 고등학교인 코카르 무용 학교가 있다. 이 곳에서는 발리 댄스를 비롯해 자바댄스까지 다양한 무용을 가르치고 있다. 각지에서 재능 있는 소년·소녀들을 뽑아 가르치는데, 이들은 졸업 후 다시 출신지로 돌아가 무용 선생님이 된다고 한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꾸따 해변에서 가장 가까운 응우라 라이공항 Bandar Udara Ngurah Rai로부터 꾸따&러기안까지는 차로 약 15분정도 걸리고 누사 두아·사누르·덴빠사르까지는 약 20분이 소요된다. 공항에서의 교통편으로는 택시와 베보(합승 미니버스) 두 가지가 있다.

발리는 적도 부근에 위치한 연중 20-30도를 유지하는 전형적인 열대성 기후의 섬으로 일년 내내 무덥다. 하지만 깐따마니나 브두굴 등의 고지대에서는 아침과 밤의 기온이 생각보다 낮아서 스웨터가 필요하다. 11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는 몬순 기후인 우기로서 다습하고 소나기인 스콜이 내리며, 6월부터 9월 또는 10월까지는 건기로서 밤에는 서늘함을 느낄 수가 있다. 우기에는 두리안이나 망고 등의 열대과일을 맛볼 수 있으며, 비 갠 후의 청명함과 화창함으로 일부러 우기 때 방문하는 관광객들도 있다.




▶ 빈탄

인도네시아의 리아나주에 속해 있는 약 3,200개의 섬들 중 하나인 빈탄은 평화와 휴식의 낙원이며 싱가포르의 해협에 면해 있어 해상교통로의 요충지라 할 수 있다. 또한 싱가포르로부터의 이러한 짧은 접근성 때문에 인도네시아 관광객들보다는 싱가폴의 관광객들이 더많이 몰리는 휴양지다. 싱가폴에서 페리로 40분밖에 소요되지 않고 거리도 45km안팎이라 좁은 땅의 싱가폴 정부가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임대하여 세계적으로 세계적인 휴양지 리조트로 개발이 한참인 곳이다.

소박하고 서정적인 휴양지인 빈탄은 특히 고요함을 필요로하는 비지니스맨들에게 최적의 장소이다. 울창한 숲과 깍아지른듯한 절벽이 있으며, 하얀 모래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열대구릉위로 아름다운 건축물과 짙푸른 목초지, 그리고 맑은 해안은 마치 한폭의 그림과 같다. 또한, 건축물은 울창한 수림과 이국적인 동식물군, 그리고 휘청거리는 코코넛, 야자수들을 배경으로 한 최신식 건축양식이다.

지형적으로는 말레이반도의 연장부에 해당되며 해안선이 복잡하고 산호초가 발달해 있으므로 비지니스와 휴가를 함께하기에 더없이 안성마춤이다. 더욱이 북쪽으로 130km에 이르는 해안은 아직도 개발되지 않은 자연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도시생활의 압력으로부터 짧은 휴식을 찾는 이들에게 아주 매력적이다. 그래서인지 고풍스러운 이국의 역사광을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약간 실망스러운 곳인지도 모르지만 깨끗한 해변과 투명한 물, 이국의 태양을 원하는 관광객들에게는 분명 파라다이스 같은 곳이다.

무엇보다도 이곳의 매력은 순진하고 겸손한 사람들이다. 타고난 친절함이나 부드럽고 여유있는 삶의 방식들은 관광객들에게 엣 시절로 돌아간듯한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현재 빈탄은 싱가폴과 인도네시아 양국가의 관광진흥국에 의해 운영되고 있으며 땅은 인도네시아이지만 경영은 싱가폴에서 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싱가포르와 빈탄은 둘이자 하나이다. 싱가포르는 빈탄으로 가는 관문이자 빈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코스다. 싱가포르를 체험하지 않았다면 빈탄 여행의 재미 절반은 놓친 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소 빡빡한 일정이 되더라도 꼭 짬을 내 싱가포르 여행을 즐겨보길 바란다. 중국인, 말레이인, 인도인 등 다양한 인종이 어울려 사는 나라, 싱가포르의 독특한 문화와 화려한 명솓ㄹ에 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자카르타 [Jakarta]

자카르타는 1,000만 명 이상의 인구가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 공화국의 수도로서, 권력과 부의 중심지이며, 현재 동남아 최대 도시로 급부상하고 있다. 정식 명칭은 자카르타 수도 특별지구(Daerah Khusus Ibukota Jakarta)이며, 줄여서 DKI(디까이) 라고 부르기도 한다. 행정상으로는 '대 자카르타 수도 특별지구'를 형성하고 있다.
시가지는 북쪽의 리웅강 하구로부터 남쪽으로 약 25km에 걸쳐 길게 뻗어 있으며, 해발고도가 매우 낮다. 그리고 머르데카 광장을 중심으로 한 주변의 관청 가, 북쪽으로 계속되는 주택 가, 문교 지구의 3개로 나뉘어져 있다. 또한 상업·금융 지구는 꼬따 글로독 거리를 중심으로 구시가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곳에는 화교의 상점과 창고 사이에 큰 저택들과 빌딩이 빽빽이 얽혀있다. 시가지에서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 보면 일반 서민이 사는 미로 같은 마을이 있으며, 운하에서 목욕을 하는 여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자카르타는 원래 순다 끌라빠라고 불리는 작은 항구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이슬람 상인과의 교역으로 번성하게 된 이슬람 왕국 스루딴이 건설되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또한 그 영향을 받은 인도네시아의 연안 지대는 점차 이슬람화 되었다. 이슬람 세력이 항구를 손에 넣자 자카르타는 자야까르따(위대한 승리)로 개칭하였다. 그 후 네덜란드가 동인도 회사의 거점을 현재의 꼬따 주변에 두자 바따비아로 개칭되었고, 인도네시아 식민지의 중심이 되고 나면서 급속히 발전했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점령에 의해 자야카르타와 비슷한 자카르타로 다시 개칭되어 현재의 대도시 자카르타에 이르고 있다. 꼬따 주변의 건물이나 운하에서 번영했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잔재를 볼 수 있으며, 현재 자카르타의 근대적인 빌딩 숲은 스디루만 거리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원래 자카르타 주변에는 부따위족이 살고 있었는데, 급작스러운 인구팽창으로 지금은 부따위 문화를 발견하기 어려워 졌다.
자카르타는 인도네시아의 정치·경제·산업·문화의 중심지로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새로운 고속도로, 대형 업무용 빌딩, 고급호텔, 쇼핑몰들이 허름하던 자카르타 시가지에 엄청나게 들어서고 있기 적어도 부분적으로 자카르타는 현대화된 아시아의 신흥 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러한 한길의 현대적 도시경관과는 대조적으로 뒷길에는 원주민이 밀집 거주하는 농촌적 경관이 나타나며, 물론 양쪽 사이에는 생활 수준의 격차도 현저하다.
자카르타는 아시아에서 가장 혼잡한 교통량과 과잉인구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도시이다. 몇 개의 흥미로운 박물관과 기묘한 공공 기념물을 제외하고도 네덜란드의 오래된 건축물을 볼 수 있으며, 항구에서는 범선 시대를 연상시켜 줄 훌륭한 선박들이 있다.


교육
자카르타의 문화생활은 많은 고등 교육기관에 의해 크게 향상되고 있다. 가장 크고 유명한 교육기관은 인도네시아대학교이다. 인도네시아대학교는 중요한 신문발행 중심지이며, 국영 라디오 및 텔레비전 방송국도 갖추고 있다.

산업
자카르타는 산업적으로는 거대한 소비도시지만, 근래에 들어서면서 외국자본의 원조에 의한 방직·식품·전기기계·약품 등의 근대공업을 시작하고 있다. 또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한 육·해·공의 교통로도 잘 정비되어 동남아시아 일대의 중심으로서 그 기능을 다하고 있다. 따라서 인도네시아 무역의 절반은 자카르타를 통하여 행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도네시아의 최대 항구인 시 동부의 탄중프리오크는 자와바라트 주의 수출·수입 품목들을 취급하며, 이 품목 대부분이 다른 여러 인도네시아의 섬으로 선적되어 옮겨진다. 금융업과 상업은 도심지에 밀집해 있고, 주요 공업시설로는 주철공장, 마라린·비누공장, 양조장 등이 있다.

자카르타의 기후는 열대성 기후로서, 높은 기온과 많은 강우량이 특징적이며, 이에 따라 습도도 연평균 75∼85%로 상당히 높다. 연평균 기온은 26.9℃로 연교차가 1℃에 불과하지만 1월과 2월에는 20℃이하가 되는 날도 있다.




▶ 족자카르타

족자카르타는 행정구역상으로 자카르타, 아쩨와 함께 인도네시아의 세곳의 특별구로 분류된 곳으로 자바 문화의 중심적 역할을 해왔던 곳이다. 자바 섬 남해안으로부터 내륙쪽으로 29km들어간 지금도 활동중인 메라피 산(2,891m) 가까이에 있다.
인도네시아를 구성하고 있는 300종족 중에서 가장 큰 그룹의 종족인 자바족의 본고장과 같은 곳으로 바른 예절과 화합이 중요시되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말을 할 때 직접화법보다는 간접적인 표현을 많이 한다. 여자들은 비교적 현실적이어서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남자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농담을 하며 지내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정확하게 일을 하려고 할 때에는 농담 때문에 당황하는 경우가 있다. 작은 일에 구애받지 않는 열대적 문화의 한 예라 할 수 있다.
족자카르타는 오랜 역사가 있는 도시이다. 불교나 발리섬에서 신봉하고 있는 힌두 문화의 전성, 이슬람교 개종(현재 90%이상이 이슬람교를 신봉하고 있음), 네덜란드에 의한 식민지 지배 등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으므로 각 시대마다의 흔적을 족자카르타와 그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도시는 조용하고 깨끗한 역사의 도시로 표현함이 어울릴 듯 하다.
족자카르타는 오랜 역사가 있는 도시이다. 불교나 발리섬에서 신봉하고 있는 힌두 문화의 전성, 이슬람교 개종(현재 90%이상이 이슬람교를 신봉하고 있음), 네덜란드에 의한 식민지 지배 등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으므로 각 시대마다의 흔적을 족자카르타와 그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도시는 조용하고 깨끗한 역사의 도시로 표현함이 어울릴 듯 하다.
족자카르타는 바틱, 그림자놀이나 인형극의 와양, 가믈란 음악, 자바 무용 등과 같이 자바 예술을 완성하고 전승해온 도시로서 잘 알려져 있으며, 편의시설, 저렴한 경비, 자바문화의 중심지 등 여러 가지 장점들이 복합되어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로 각광 받고 있다.


교육
족자카르타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교육수준이 높은 일명 교육도시이다. 이 작은 도시안에 국립대·사립대 등 모두 16개의 대학이 밀집해 있다. 그래서 족자카르타에는 대학을 다니기 위해 인도네시아 각지에서 온 지방 학생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으며, 그 숫자도 100,000명 이상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인도네시아 곳곳에서 시위 또는 데모가 있을 때에도 다른 도시와 비교해서 족자카르타는 비교적 조용히 지나갔던 것 같다.
1949년 세워진 동남아 최대의 국립대학이 바로 가자마다 국립 대학교이다. 약자로서 많이 알려졌는데 읽을 때는 영어식 발음처럼 "유지엠"이라고 하면 잘 알아듣지 못하고 인도네시아 발음으로 "우게엠"이라고 읽어야 알아듣는다. 학생수가 약 35,000명을 넘고 있으며, 모두 12개 학부에서 수학하고 있다.크기가 엄청나기 때문에 깔리우랑 거리(JI. Kaliurang)를 달리다보면 대학 캠퍼스 안을 통과하게 되는데 양쪽 모두 캠퍼스 단지이다. 술탄 하멩꾸부워노 10세(Sultan Hamengkubuwono X), 현재 국회의장인 아미엔 라이스를 비롯하여 많은 유명인사들이 이곳 출신이라고 한다. 가자마다 대학교에서는 인도네시아 어를 배우려는 외국인들을 위한 인도네시아어 연수 코스(LBIFL : Learning Bahasa Indonesia as Foreign Language)가 개설되어 있으며, 한국어학과는 아직 미개설 되어 있지만 한국학 연구센터(PSK : Puast Studi Korea)에서 한국어를 교양과목으로 수업하고 있다.


산업
족자카르타의 해안 저지대 주민들의 주요산업은 농업과 어업이며 쌀·고무·코프라·설탕을 생산한다.
인도네시아에서도 공업이 상당히 발달한 지역으로서 철도공작창·인쇄소·방직공장·무두질공장 등이 있으며, 가공식품·수송장비·종이·화학제품·전기제품을 생산한다.

자격있는 여행전문가 - 모두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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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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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아시아 히말라야산맥이남,인도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한 인도는 우리에게 "매혹과 신부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신들과 신앙의 나라"라고 하는 반면 "소음과 빈곤의 나라"라고 불린다. 인도란 말은 "힌두"의 어원으로 알렉산드로스의 군대가 인더스강 연안에 도달했을 때,그 곳에 살던 "힌두(인도)"라고 부른데서 유래되었다. 당시 인도인들은 자신들의 땅을 "바라트(Bharat)로 불렀다. 바라트라는 의미는 북인도인 갠지스강 중류지역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현재의 공식 국명으로는 인도(Republic of India)로 지정되었다.

인도의 미래를 이끌고,정치의 중심지인 뉴델리는 인도의 수도로 영국 지배시절에 건설된 신시가지이다. 국토 면적은 3,165,596㎢로 세계에서 7번째로 넓으며,인구는 967,613,000로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나라로도 유명하다. 인종은 많은 이주민이 정착하여 산 후 섞인 결과 현재,백인종·황인종·흑인종·오스트랄로이드로 구성되어 있다. 북서쪽으로는 파키스탄,북동쪽으로는 중국ㆍ네팔ㆍ부탄,동쪽으로 미얀마,북동부는 방글라데시를 3면으로 둘러싸여 있다. 남동쪽 면은 벵골 만,남서쪽 면은 아라비아 해와 접하며,남동쪽 앞바다에 섬나라인 스리랑카가 있다.



면적 : 316만 6414㎢


수도 : 뉴델리

인구 : 10억 2999만 1000명

정치형태 : 공화제

종교 : 힌두교 80.3%,이슬람교 11.0%,그중 수니파 8.2%,시아파 2.8%,그리스도교 3.8%,그중 개신교 1.9%,로마 가톨릭교 1.7%,정교회 0.2%,시크교 2.0% 불교 0.7%,자이나교 0.5%,조로아스터교 0.01%,기타 1.7%로 구성된다. 인도는 힌두교ㆍ불교ㆍ자이나교ㆍ시크교의 발생지이고,회교와 배화교 그리고 기독교가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어 다양한 종교를 가지고 있어 종교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많다.


주요민족 : 인도는 유럽인의 모습을 한 아리안계인과 신드와 푼자비,두툼한 느낌의 용모를 지닌 벵갈리,중앙 아시아 사람들과 비슷한 카시미리,작고 검은 비하리,몽골리언계인,티벳과 네팔의 혈통을 이어 받은 나닥과 씨킴,포르투갈 피가 섞인 고아 사람들,흑인을 방불하는 검은 피부의 까랄라 사람들,용모가 좋은 드라비디언족인,타밀 나두 일대의 사람들로 많은 인종으로 구성된다.


주요언어 : 공용어로는 영어와 힌두어로 지정하였으나 아삼어·벵골어·구자라트어·힌디어·칸나다어·카슈미르어·말라얄람어·마라타어·오리야어·펀자브어·산스크리트·신드어·타밀어·텔루구어·우르두어 등 15개 주요 지방어로 구분하지만 세분하면 1,652종의 언어가 있는 것으로 예상한다.


경제
인도 경제성장은 느린 편이나 정교한 행정조직ㆍ관료제도ㆍ양호한 교통ㆍ통신망ㆍ우수한 인력ㆍ정비된 공업기반으로 일반적인 개발도상국들과는 달리 현재 20위로 다른 공업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인도는 농림ㆍ수산업에 GNP의 약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약 80%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수산업은 해안선과 큰 강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발전하지 못한 가운데 있다.

기후
인도인들은 6개로 기후를 나누는데 봄철은 바산타로 3월 중순-5월 중순,무더위철 그리쉬마로 5월 중순-7월 중순,장마철은 바샤로 7월 중순-9월 중순,가을철은 샤라다로 9월 중순-11월 중순,겨울철을 헤만타로 11월 중순-1월 중순,선선한 철을 쉬쉬라로 1월 중순-3월 중순으로 나누고 있다.

3월이면 뜨거워지기 시작하여 4월이면 절정에 달하여 45℃에 이르며,6월이면 남쪽으로부터 장마철이 시작되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큰 재해를 가져온다. 그러나 나닥 지역은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다. 9월초에는 북쪽에서 장마철이 벗어나,선선한 기후를 보여 푸른색의 초목과 산천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히말라야산맥은 이 시기에 아주 멋있는 경관을 볼 수 있다. 10월초에는 델리 등의 산지라도 11월부터 일교차에 의해 밤에 서늘한 기온을 보이고,12-1월경에는 얼어죽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지리
인도 북부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고산지대인 히말라야 산맥지역이 있으며,해발 8,000m이상인 수십 개의 봉우리들이 자리잡고 있으며,눈으로 뒤 덮여 있다. 그리고 인도 갠지스 평원으로 길이는 2,400km,너비 240∼320km로 면적 100만㎢인 충적평야지대로 인더스ㆍ갠지스ㆍ브라마푸트라 강이 북쪽 산지와 남쪽 고원지대에서 많은 토사를 운반하여 퇴적하여 넓은 평야지대로 저지대가 위치하고,인도에서 오래된 지층으로 데칸고원이 있는데 동고츠ㆍ서고츠 산맥은 서쪽 끝에서 남북으로 뻗어 아라비아 해 사면과 벵골 만 사면의 분수계를 이룬다.


간단한 현지어
현지어 : namaste 나마스떼
의 미 : 안녕하세요.
현지어 : han ji/ji ha 한 지/지 하
의 미 : 네.
현지어 : ne hin/ne hi 네 힝/네 히
의 미 : 아니요.
현지어 : kam karo,na 깜 까로,나
의 미 : 깍아주세요.
현지어 : kon hai? 꼰 해?
의 미 : 저것이 무엇이에요?


역사
BC이전 역사 개요
인도는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 중의 하나로 기원전 3000년부터 모헨조다로와 하라파 등지의 유적들을 통하여 인더스 문명은 약 500여년간 메소포타미아나 수메르에 버금가는 세련된 청동기문명을 꽃피운다. 그러나 인더스문명은 전설처럼 전해진다.

기원전 100년경 북방유목인아리아인들이 이란 고원을 넘어 인도로 침입해 왔다. 이들은 갠지스 강 유역,지금의 델리 근처에 정착하여 도시를 건설하여 가기 시작하였다. 베다 신앙에서 힌두교가 파생되었고,산스크리트가 발전해 2000여 년 동안 인도의 언어로 사용되었다. 그 후 자신들의 문화적 우월성을 보였고 "카스트"라는 계급제도를 도입,토착민과의 혼혈을 통해 인도민족의 중심으로 형성된다. 기원전 3세기경 마가다국의 찬드라 굽타의 통치 하에 최초의 힌두 왕조인 마우리아 왕조로 통합되었고,불교진흥과 세계화에 공헌하였던,아소카왕이 죽자 급속하게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AC 1년 - 1900년 까지의 역사
기원전 2세기 멸망하고 12세기까지 인도는 강력한 통일 국가를 형성하지 못하며 왕조의 흥망을 되풀이한다. 이슬람교도들의 침입은 AD 1000년경에 시작되어 14세기초에 모하마드 이븐 투글루크가 델리 술탄국의 세력을 확장하는 등 이슬람 지배는 16세기 초까지 계속되었고,남인도에서는 이슬람계인 바만 왕조가 성립되어 1527년까지 명맥을 유지와 함께 힌두 왕국인 비자야나가르가 1336-1556년에 남부지방을 양분하여 통치하였다.

16세기 초에 이슬람계 왕조인 무굴 제국이 인도 전역을 지배하였고,1526년 티무르의 5대 손인 바베르에 의해 회교왕국인 무굴제국이 건설되었으며 150여 년 간 구가하며 인두역사의 중세를 장식한다. 16세기 초 바바아낙에 의해 이슬람과 힌두교의 절충형인 시크교도 바로 이 때의 산물이다.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여행을 기점으로 포르투갈인들이 상륙하여 인도와 유럽 사이의 무역을 독점하였으며 17세기 포르투갈인ㆍ영국인ㆍ프랑스인ㆍ네덜란드인들 간에 경쟁관계를 형성하다가 세력을 키워온 영국동인도회사는 차츰 경쟁관계에 있던 식민 세력을 몰아내고 영국의 식민지 진출이 본격화되었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영국동인도회사를 통한 영국의 통치는 세포이항쟁 이후인 1858년에 영국정부가 인도를 직접 통치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하지만 인도민중들은 국민회의를 중심으로 반영독립투쟁에 돌입하여 간두와 네루를 대두로 국민회의 과격파들은 1919년을 기점으로 "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여 커다란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영국은 1919년과 1935년 인도 행정법을 통해 인도에 제한된 범위의 자치권을 허용하였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로 영국의 애틀리 노동당정부는 인도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약속하였다. 간디를 비롯한 인도인들은 완전독립을 요구하였고 그 계기로 1947년 8월 15일 독립을 획득하였으나 힌두교와 이슬람교도 사이에서는 통합을 이룩하지 못하였다.

이런 분열은 힌두교의 인두와 이슬람교도 대다수인 파키스탄으로의 분열을 일으켰다. 펀자브와 벵골은 주민들의 종교성향에 의해 2개로 분해되어 양국에 포함되었으며 카슈미르는 아직도 분쟁이 계속되는 상태에 있다. 인도는 자와할랄 네루를 총리로 1952년 선거를 통하여 국회를 구성하였다. 하지만 확정되지 않은 국경선을 두고 중국과 파키스탄은 구경분쟁을 일으켰으나 1967년 네루의 딸 인디라 간디가 의회에서 지지를 받고 취임하였고 인디라 간디가 암살된 다음해 라지브간디가 총리에 취임하였다. 1971년 파키스탄은 국경 2곳에 전쟁이 일어났으며 그 결과 동 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독립을 하였다.


유용한전화번호
대사관/영사관 관련사항
주인도 대사관
-주소 : 9 Chandragupta Marg,Chanakyapuri Extension,
New Delhi - 110021,In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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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뉴델리 코트라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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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뭄바이 총영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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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mbai 400 026,In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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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캘커타 명예총영사관
-주소 : Nicco House,Hare Street,Calcutta - 700 001
-전화 : (91-33) 248-8220/Fax : (91-33) 220-9443

긴급연락처(경찰서,병원 등)
경찰서 : 100
소방서 : 101
앰블런스 : 102,1099
전화안내 : 197


전압 및 주파수
220V,50HZ,3P콘센트를 사용하자 전선은 상태가 좋지 않으며 전압의 변화가 심하다.


치안
대도시의 버스ㆍ기차 등 대중교통을 이용 할 때에는 소매치기와 날치기에 항상 주의해야 한다. 날치기는 기차를 무대로 일어나고 있는데,잠든 사이 창문으로 물건을 집어내고,기차가 출발할 때 물건을 잡아채는 경우가 많이 있다. 버스에서는 짐을 어디에 두었는지 확실히 확인한 후 항상 주시하거나 잡고 있어야 한다. 또한 의자나 고정물에 쇠줄이나 줄을 연결하여 들고 갈 수 없게 한다. 화장실이나 잠시 자리를 비울 경우 같이 여행 간 동행한테 짐을 맡긴 후에 다녀오도록 하자.

캐시미르,푼잡,아쌈주를 중심으로 도처에서 종교 및 종족 분쟁,지역갈등 등 국지적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미치기 어려운 일부 내륙 및 국경지역 여행시 주의를 해야 한다. 잠무.캐시미르 지역 -파키스탄과의 휴전선에 가까운 Kashimir Vally 지역은 인도 군대가 주둔하고 있으며 양측 군에 의한 소규모 접전이 산발적으로 벌어지는 한편,무장요원들이 출몰하여 민간인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테러를 일삼고 있어 특히 외국인 관광객은 표적이 되기 쉽다. 99.12월 인도기 납치사건이래 인.파간의 긴장고조로 폭발물 테러가 빈번하며 치안이 매우 불안한 바 우리국민은 이들지역 여행을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동북부 국경지역 -Hill States 라고 불리우는 동북부 8개주 (Arunanchal Pradesh,Assam,Sikkim,Nagaland,Manipur,Tripura,Mizoram,Meghlaya)는 분리주의자들 및 반정부 무장단체들의 소요와 테러가 빈번하므로 여행지의 정세를 사전 점검함이 필수적임. 여행제한지역 -상기 동북부 8개주중 Nagaland,Manipur,Mizoram 3개주는 사전 내무부 허가를 얻어야 하며 기타 특별사건 발생 지역 경우 외국인 여행시 내무부 허가를 요하는 경우가 있음. 기 타 -일반 지역의 경우도 종교,종족 또는 계급간 분쟁이 유혈충돌로 발전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여행전 치안상태를 사전 확인할 필요.


통화
인도 통화단위는 루피(Rupee=Re)와 파이사(Paisa=P)로 부르며 루피는 단수로 Re,복수로 Rs로 쓰이며,파이사는 P로 사용하고 있다. 동전의 종류는 1,2,3,5,10,25,50파이사가 있으며 지폐는 Re1,Rs2,Rs5,Rs10,Rs20,Rs50,Rs100,Rs500가 있는데 500Rs는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1997년 말 기준으로 1USD=36.17Rs이다.


한국으로 전화
전국 어느 지역에서나 STD/ISD라고 TM여진 가게들이 있는데 여기는 국제전화,시외전화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이것은 전화시간과 요금이 자동적으로 인쇄되어 나오므로 편리하다. 00+82(국가번호+0을 뺀 지역번호+상대방번호 수신자 부담 전화를 이용할 때는 000-8217을 이용한다.


현지로 전화
001+91(국가번호)+지역번호+상대방전화번호 수신자 부담 전화를 이용할 때는 000-8217을 이용한다.


주의사항
외국인 금기사항
악수를 할 때나 선물을 줄 때에는 반드시 오른손을 사용하고 식사 전후에는 손을 씻도록 한다. 힌두사회는 쇠고기를 먹지 않고,음주ㆍ도박ㆍ마약ㆍ싸움을 부정시 여기고 있으며,이슬람교도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주의하여야 한다. 사원에 들어 갈 경우에는 신발을 벗은 후 들어가야 하는 것이 예의이다. 물은 석회질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생수를 사거나 호텔에서 정수 된 물을 마시도록 하자. 인도인들은 화장지를 사용하지 않기에 화장지를 준비하여 가져가는 것은 필수 준비물이다.

복장 및 의복 관련사항
여행하기 편한 옷을 준비하여 가져가는 것이 좋다. 인도는 형식을 따지지 않으므로 간편한 복장도 괜찮지만,노출이 심한 옷은 피하는 것이 좋으며,남성들도 털난 정강이를 보이는 것도 별로 바람직하지는 않다. 인도는 더운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여름옷을 준비하여 가져가는 것이 좋다. 두툼한 옷은 부피만 차지하고,필요 이상의 옷은 준비하지 않도록 한다.


비자
▣ 국내 비자발급처
기 관 명 : 주한 인도 대사관
주 소 :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37-3
전화번호 : 02-798-4257
팩스번호 : 02-796-9534
근무시간 : 09:00-13:00 & 13:30-17:30 토요일 휴무

▣ 비자신청시 유의사항
인도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하다.

▣ 비자신청시 구비서류
비자 신청시 구비서류로서 관광비자는 비자 신청서, 6개월 이상 유효한 여권, 여권용 사진 2장이 필요하며, 상용 비자일 경우 비자 신청서, 6개월 이상 유효한 여권, 여권용 사진 2장, 출장증명서를 구비하여야 한다.


인도인들은 6개로 기후를 나누는데 봄철은 바산타로 3월 중순-5월 중순,무더위철 그리쉬마로 5월 중순-7월 중순,장마철은 바샤로 7월 중순-9월 중순,가을철은 샤라다로 9월 중순-11월 중순,겨울철을 헤만타로 11월 중순-1월 중순,선선한 철을 쉬쉬라로 1월 중순-3월 중순으로 나누고 있다.

3월이면 뜨거워지기 시작하여 4월이면 절정에 달하여 45℃에 이르며,6월이면 남쪽으로부터 장마철이 시작되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큰 재해를 가져온다. 그러나 나닥 지역은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다. 9월초에는 북쪽에서 장마철이 벗어나,선선한 기후를 보여 푸른색의 초목과 산천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히말라야산맥은 이 시기에 아주 멋있는 경관을 볼 수 있다. 10월초에는 델리 등의 산지라도 11월부터 일교차에 의해 밤에 서늘한 기온을 보이고,12-1월경에는 얼어죽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 뉴델리 [New Delhi]

뉴델리는 인도의 수도로서 야무나강을 동쪽에 끼고 있으며 올드델리와 뉴델리 지역으로 크게 나뉘운다. 올드델리는 인도가 회교군주에 의해 다스려지던 13-19세기에 중심이었다. 뉴델리는 1911년 인도를 통치하던 영국이 수도를 캘커타에서 델리 일대로 옮기며 개발한 곳이다. 인도에 들어서는 주요관문 중의 하나인 뉴델리는 인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여주는 서로 다른 면모를 지닌채 어우러져있다.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인 뉴델리는 인도의 야심가들이 꿈을 펼치는 무대였다. 거대한 대륙위에 군림함으로서 뉴델리를 장악하기 위해 펼치는 갖가지 연극들이 밤 낮을 가리지 않고 줄을 잇고 있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 뉴델리의 비중은 봄베이에 비해 떨어진다. 올드델리의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구 시가와 뉴델리지역의 도시계획에 의한 시가지가 이국의 여행자들에게 색다르고 강렬한 느낌으로 선뜻 다가서는 곳이다.

뉴델리 구역엔 2개의 기차역이 있고 올드델리 구역에도 1개의 기차역이 있다. 가장큰 기차역은 뉴델리 기차역이지만 델리 기차역이나 뉴델리의 남부에 있는 니자무딘 역을 시발역이나 종착역으로 삼고 있는 기차도 많다. 샤자한에 의한 우람한 유적들인 레드포트 등이 있고 인터스테이트 버스터미너스 등을 끼고 있는 올드델이의 기차역은 델리역이라고 지칭되고 있다.

6월에서 9월까지 우기가 집중되고 4월부터 10월까지 최저기온이 20도가 넘는 더운 기후이다.




▶ 님나라

자이푸르와 델리 사이에 위치한 님나라는 고성호텔을 소유하고 있으며 특히 고성은 호텔로 개조되어 사용되고 있다.




▶ 다람살라

티벳 망명정부가 있는곳으로 달라이라마가 거처 하는곳이며, 인도속의 티벳을 느낄수 있는 독특한곳으로 한국,일본 식당등 한국인에게는 많이 친숙한 곳이다. 고산지방이어서 날씨가 매우 선선하여 뜨거운 여름의 피서지로 유명한 곳이다.




▶ 라마유르

레에서 서쪽으로 125km떨어진 곳의 작은 마을. 나무 한 그루 없는 척박한 산등성이 위에 그림처럼 서 있는 라마유르 곰파로 유명하다.
티베트사원인 라마유르 곰파는 여행자들 사이에 일명 달나라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사원. 비하르 주에 있던 날란다 대학의 마지막 학장 나로빠가 10세기 말 경에 방문해, 토굴 수행을 통해 도를 이루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면서 부터 신비롭고 인상적인 곳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한때는 티베트의 토속 종교였던 뵌포교사원이지만 현재는 티베트불교의 한 종파인 켈룩파의 사원으로 사용된다.




▶ 마드라스 [Madras]

인도 남동부 타밀나두주(州)의 주도이며,벵골만에 면한 코로만델해안에 있는 항구도시로,남 인도를 넓은 범위에 걸쳐 여행하고 싶어하는 여행자는 마드라스를 기점으로 여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타밀나두 지방의 주도에 있는 마드라스에는 국제 공항과 항구 외에 주변의 주요 도시로의 철도망과 도로망이 완비되어 있다. 이 도시가 속해 있는 남부 타밀나두주는 서부와 동부로 나뉘어 지는데,마치 우리나라의 강원도처럼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영서/영동이 갈라지듯이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서쪽은 서고츠 산맥을 비롯한 분지로 구성되어 있으며,동쪽은 바다를 가까이하고 있어 상당히 풍요로운 평야지대를 이룬다.

인도 남부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서 이곳은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인 마드라스대학교를 비롯하여 영국식 건축물도 많이 있다. 이 도시는 다시말해,인도의 4대 도시중에 하나로서,큰 도시로 성장하게 된데에는 그리 시기적으로 오래되지는 않았다. 원래는 바다를 끼고 있는 작은 어촌마을에 불과했던 마드라스에 가면 성(聖) George fort가 있는데,이곳을 영국이 무역기지로 만들므로 해서 마드라스가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현재 국제공항까지 갖추고 있는 마드라스는 남인도를 대표하는 도시로 손색이 없으며,많은 해외 공관과 기업,은행들이 진출해 있거나 지점을 두고 있을 정도이다. 또한 뭄바이와 더불어 영화산업의 중심지로 힌디영화와는 다른 타밀영화를 제작하고 있고,그럼으로써 남부지역은 볼리우드 스타 군단과는 또 다른 스타 군단들이 만들어져 있다. 더우기 재미있고 흥미로운 사실은 이 주는 여자들을 위해서 버스운전사 뒤에 2자리를 특별히 남겨두는 배려를 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또 여자 경찰들이 많다는 것도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산업
지금은 철도· 공항로의 중심으로 면화· 면제품· 피혁· 커피 등을 수출하고 있다. 한편 자동차· 철도차량 등의 공장이 집중되어 있다.


인도의 다른 곳과는 달리 이 타밀나두주에 속한 이 도시는 여름 한차례 그리고 가을무렵에 한차례 장마가 있다




▶ 뭄바이

인도에서 가장 분주한 국제공항과 항구를 지니고 있는 뭄바이는 명실공이 인도 최대의 관문이다. 또한 인도대륙의 남서부에 위치하고 있는 뭄바이에는 인도에서 가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경제적으로 뭄바이는 인도의 최대 중심지이다.

뭄바이는 인도의 어느 도시보다 서구적인 곳이다. 중심지에 늘어선 건물들의 서구적인 면모도 그렇지만 이곳에 사는 중산층 정도의 사람들이라면 인도의 여느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다르다. 인도의 여러곳을 다녀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뭄바이는 인도가 아니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뭄바이는 인도인들이 사는곳이 분명하다. 도심에서 멀지 않은곳에 장마철이면 그 존재가 부각되는 빈민가가 자리하고 있고 그곳을 터전삼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있고 활기차게 살아가고 있다.




▶ 바라나시

바라나시는 시바신과의 연관으로 해서 더욱 성스럽게 여겨지는 갠지즈강을 끼고 3천여년 이전에
형성된 이후 오늘날까지 던절됨 없이 번잡한 도회지로 이어져 오는 곳으로 원래 '빛나다'라는 뜻인 카쉬로 불리어 온 곳이다. 바라나시라는 오늘날의 이름은 시의 북쪽과 남쪽에서 각각 흐르고 있는 바루나강과 아시강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영국이 통치하던 시절엔 베나레스라고 영어식으로 표기되어 지금도 카쉬와 함께 이곳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종종사용되고 있다.
강물에 목용함으로써 죄가 씻겨지는 것이라면 물 속에 사는 고기야 말로 최고의 성자가 아니겟냐는
빈정거림에도 불구하고 갠지즈 강가에서 정화의 의미를 품고 목용하는 사람들이 3천여년을 이어가며 매일같이 재현되고 있는 핸두의 성지로서 바라나시, 세계 그 어느 도회지도 주민들의 일상 생활이 이곳 처럼 종교적인 관습이나 의식과 완벽하게 뒤섞여 있는 곳은 없을 것이다.
종교를 토대로한 도회지로서 오랜역사를 지닌 바라나시는 따라서 학문과 예술의 중심지로 자리하여
오며 많은 인물들의 일화를 간직하고 있다. 복잡하고 어려운 범어의 단어 변화를 외우느라 고생하는
학자를 목격하게 된 상카르차르야가 그 학자에게 범어에 능통하게 되는 것은 신과의 합일을 이루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냉엄하게 일깨웠다는 일화나 깔리다사가 범어를 익히기 위해 이곳 바라나시로 유학을 왔었다는 일화 그리고 이곳에 머물며 현대 인도의 범국가적 언어가 된 힌디어의 테계를 잡고 발전시켰던 툴시다스 등의 일화는 이곳이 오랬동안 학문의 중심지였음을 말하는 것으로 널리 인용되는 것이다. 인도의 고전음악을 서구에 알리고 널리보급시킨 최고의 유공자로 꼽히는 라비상카르로 대변되는 이곳의 예술적 전통은 오늘날에도 활발하다. 해마다 겨울철이면 음악과 춤을 공연하는 크고 작은
연주회가 끊임없이 진행되며 뿌리 깊은 예술의 고장으로서의 맥을 잇고 있는 것이다.

산업
석존의 호사스러웠던 왕자 시절을 묘사하는 문헌에 그가 카시 비단으로 만든 옷만을 입었다는 대목이 나올 정도로 그 옛날부터 바라나시는 전통의 비단 산업을 위주로 하는 무역의 중심지였다. 바라나시의 이 유명했던 비단산업은 지금도 변함없이 바라나시를 방문한 사람이라면 비단접에 고용된 호객꾼들로 부터의 유혹을 한번이라도 받지 않고서는 바라나시를 떠날 수가 없을 정도이다.




▶ 방갈로르 [Bangalore]

방갈로르는 비록 인도의 남부 지방에 속해 있지만 해발 920m에 이르는 고지대인 관계로 연중 쾌적한 기후를 유지하는 곳으로 항공산업을 비롯한 첨단산업체와 연구소가 집중되어 있어 인도의 미래를 대변하는 도시로 손꼽히는 대도시이다. 그러나 카르나타카 주의 수도인 이곳 방갈로르가 처음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깊은 역사의 인도와는 달리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방갈로르에는 인도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많은 유학생들뿐 아니라 주로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온 해외 유학생들도 많이 있는데,세계각지에서 찾아드는 사업가들도 이들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갈수록 국제도시의 면모를 띠어가고 있는 방갈로르는 짧은 역사를 지닌 젊은 도시 답게 밝고 발랄한 분위기가 역력한 곳이다.

컴퓨터의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인도는 확실한 자리를 점하고 있다. 소프트웨어의 연구를 위해 이곳에 와 있는 한국 출신의 학생들도 있고,기독교 선교를 목적으로 왔는다는 사람들도 있는 등 한국인들도 상당수가 자리잡고 있어,방갈로르는 인도에서 최초의 한국음식점이 생긴 곳이기도 하다.


산업
잘 가꾸어진 가로수를 낀 널찍한 도로,도심에 자리잡고 있는 넓은 공원등을 지닌 방갈로르는 인도의 여느 도시와는 확연히 다른 면모극 보여주는데 원래 이곳의 전통적인 산업은 커피중개업과 공예산업이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항공산업체를 비롯 각종 기계,전자 그리고 컴퓨터 산업체들이 들어서고,이에 관련된 연구단체들이 자리잡게 되어 방갈로르는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고 있다.




▶ 아그라 [Agra]

16세기 중엽 무굴제국(이슬람 왕조)의 악바르 대제가 이곳을 수도로 정해,짧은 시간인 약 1세기동안 영화를 누렸던 곳이 바로 아그라이다. 악바르 대제의 아들 샤자한이 델리로 수도를 옮기면서 쇠퇴했지만,아그라는 힌두 대서사시 가운데 하나인 "마하바라타"에서도 천국의 정원이라는 뜻을 가진 아그라바나 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을만큼 그 역사가 깊은 도시이기도 하다.

이 도시는 17세기의 타지마할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며,뿐만 아니라 인도의 최대 관광지이면서,지독한 릭샤왈라며,악덕 상인들이 붐비는 곳이기도 한다. 아그라와 그에 이웃한 파테푸르는 델리에서 당일 여행도 가능하지만 숙박하는 것도 좋다. 아그라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타지마할이지만 그 외에 아그라 성과 시칸트라,람바그,이토마드,우드 다울라 묘라고 하는 것들을 볼 수 있다. 또한 아그라 남서쪽으로 무갈 제국의 유적과 파테푸르 시크리가 있다. 아그라와 파테푸르 시크리는 무갈 역사의 유산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힌두와 이슬람의 요소가 융합된 건축물의 최고 걸작으로서도 평가되고 있다.

이곳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에는 세자한기리마할과 악바르 황제가 건설한,흰 대리석의 진주(眞珠)사원(Moti Masjid)을 포함하고 있는 16세기 성채이다. 또한 대사원(Jami' Masjid)과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잘 알려진 훌륭한 능묘인. 북서쪽으로 시칸드라에는 악바르의 무덤도 명소이다.

도로와 철도의 주요 교차점으로 상업과 산업 중심지인 아그라에는 아그라대학교(1927)와 6개 부속대학이 있으며,교외에는 주립정신병원과 라다소아미 교파의 거주지인 다얄바그가 있다. 야무나 강과 아그라 운하에서 물을 공급받으며 주요농작물로는 기장·보리·밀·목화가 손꼽힌다. 아그라 시에서 남서쪽 37㎞ 지점에는 폐허가 된 무굴 제국의 도시인 파테푸르시크리도 유명하다.


교육
초등5년,중등 7년(3/4년)과 의무교육은 8년인 이곳은 영어·힌디어 및 주(州)의 공용어 등 3개 언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고등학교 교육은 주정부의 반 이상이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아그라에는 1927년에 설립되어진 아그라대학교와 6개의 부속 대학이 자리하고 있다.




▶ 아마다바드

아마다바드는 사바르마띠 강을 끼고 1411년 회교군주 아메드 샤에 의해 건설된 곳이다. 아마다바드는 인도의 아버지로 추앙되는 간디 선생이 설립하고 또 오랫동안 버물렀던 아쉬람을 지니고 있는 등 간디 선생과 많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종교간의 화합을 역설했던 간디 선생의 당부와는 달리 이곳의 회교도와 힌두교들은 충돌요소가 있을 때마다 인도에서도 손꼽히게 큰 소요사태를 일으키는 답답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화려했던 과거의 도시답게 아름다움 인도 사라세닉 건축물들이 시가지 곳곳에 자리잡고 있고 직물 산업도시의 면모를 내보이는 풍부한 색감의 풍경들 펼쳐지는 구시가지의 풍물들이 있어 인사에 남는 아마다바드는 나름대로의 매력과 활력이 넘치는 곳이다.

아마다바드 시는 사바르마띠 강을 경계로 동,서로 구분되어 있는데 동쪽은 구시가지 이고 서쪽은 신시가지이다. 기차역에서 보았을때 강을 향하여 양쪽으로 길이 뻗어나가고 있는데 3km 정도에 이르는 이 두길이 구시가지의 중심도로이다.




▶ 아우랑가바드

아우랑가바드는 뭄바이, 푸네(Pune)와 도로와 철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뉴델리와 같은 기타 도시들과도 항공연결이 가능하다. 아우랑가바드는 마지막 무굴제국 황제 아우랑제브(Aurangzeb)를 따서 붙여졌으며 원래는 카드키(Khadki: 암석지대)로 불리웠었다.

아우랑가바드에는 아우랑제브황제의 아들이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비-카-막바라(Bibi-Ka-Maqbara)와 판차끼(Paan-Chakki:물방아갓) 등의 유적지와 볼거리들이 있다.




▶ 아잔타

아잔타는 뭄바이로부터 400 킬로 미터 떨어진 아우랑가바드에서 버스로 갈 수 있으며,석굴사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바위산 전체를 뚫어서 만든 세계 최고의 조각으로 알려져 있는 이 석굴 사원은 세계적인 보고로도 알려져 있으며,최고의 미술사적인 측면에서도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이 지역에는 찬란한 종교 문명의 유적이 남아있는 엘로라도 있다. 엘로라의 34개의 동굴사원은 10세기 이상 지난 것으로서,힌두교,불교,자이나교의 신앙을 보여주는 정교한 조각이 새겨져 있다.

특히 불교의 석굴 사원이 가장 많은 곳인 이곳 아잔타는 벽화와 조각 등 최고의 예술 작품 들을 감상할 수 있으며,까마득한 옛날에 구도자들이 어떤 환경 속에서 수행에 몰두했는지 짐작해볼 수 있는 곳이다. 이 독굴사원은 오래된 것은 5세기에 만들어 진 것으로 부처의 생애가 벽화나 조각으로 묘사되어 있아 큰 가치를 지닌다.




▶ 자이푸르 [Jaipur]

구시가지를 채우고 있는 분홍색 건물들로 해서 핑크시티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자이푸르는 라자스탄 주의 수도이다. 라자스타니와 힌두어를 주언어로 한다. 언덕으로 둥러 싸여 있어 아늑한 느낌과 함께 좋은 경관을 갖고 있는 자이푸르 성안 건물들의 벽이 온통 분홍색으로 칠해지게 된것은 18세기말 웨일즈 왕자가 이곳을 방문하였던 것이 그 계기이다. 당시 마하라자가 웨일즈의 방문을 기념하여 라지푸트들에 의하여 전통적으로 환영한다는 뜻으로 사용되던 분홍색을 온 시가지에 칠해버린 것으로 지금은 핑크시티로서의 성가를 지키기위한 당국의 강제적 규정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달 밝은 밤이라면 정취가 더욱 뒤어나지만 전등불에 의해 밝혀지는 밤의 정취도 분홍빛 일색의 시가지가 주는 분위기를 색다른 것으로 만들기에 족하여 이곳을 잊혀지지 않는 곳으로 만든다.




▶ 잔시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 주 잔시 행정구의 행정 중심도시로서,주요도로와 철도의 교차점에 자리잡고 있다. 잔시 행정구는 북쪽의 갠지스 평원과 남쪽의 빈디아 산맥 사이에 있는 분델칸드 구릉지대에 위치한 길고 좁은 지역으로 지면이 울퉁불퉁하다. 비옥한 흑색토가 넓게 펼쳐져 있는 북부 지방에서 목화·유료종자·곡물 등이 재배된다. 베트와 강과 그 지류들이 흐른다
아쇼카왕의 스투파로 유명한 잔시는 보팔에서 46km떨어진 아주 한적한 시골마을이다. 지나 다니는 릭샤도 드물만큼 한가한 이곳은 여러 시설들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로 지친 여행자들의 마음을 편안히 달래준다. 마을 야산위에 있는 스투파 유적지에서 조용히 자신을 돌아볼 수도 있으며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며 즐기는 자전거 하이킹도 기대할 수 있다. 잔시 시 외에도 규모가 비슷한 두 도시가 합쳐져 형성된 마우라니푸르(Mau-Ranipur)가 있는데,이곳에서 카르와(Khrw) 천이 생산된다.


교육
이곳에는 분델칸드대학교가 있다. 분델칸드의 짠델라 왕조 하에서 10,11세기에 뛰어난 건축물들이 지어졌는데,대표적인 것이 카주라호에 있는 아름다운 사원들이다. 이처럼 분델칸드 왕조 시대에 설립되어진 오래된 전통을 자랑하는 대학 교육기관이 바로 이곳이다.


산업
오늘날 농산물 시장인 이곳에는 약간의 제조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강철압연공장과 철도공작창이 있다.




▶ 카주라호

카주라호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유물들은 찬델라 왕조때 세워진 사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85개의 사원중 현재 22개만이 남아 있으며 카주라호를 유명하게 만든 미투나 상이 사원벽면에 장식되어 있다.




▶ 쿠시나가라

쿠시나가라는 고락푸르(Gorakhpur)의 동쪽 55㎞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석가모니가 열반한 곳으로 유명한 니르바나 사원과 열반에 이른 석가모니를 화장한 장소로 추정되는 람바르 스투파(Rambhar Stupa)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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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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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의 땅,아프간은 파쉬툰 종족의 이름이다. 아프가니스탄은 북위 29도와 38도 사이에 위치하며 서남아시아에 속한 나라로서 서쪽의 이란 동쪽의 파키스탄 그리고 위쪽에 중앙아시아의 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중국 등의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면적은 683,760 평방Km이며,인구는 약 2000만 정도이다. 종교는 회교(다수파 수니),국가의 공용어는 아프간의 페르시아어인 다리어와 다수종족의 언어인 파쉬투어이며,수도는 카불(Kabul)로 1828m의 고지에 자리잡은 인구 약 200만의 도시이다. 국토는 한국의 2.9배로 전 국토의 75% 가 고산 지대,인구의 9% 가농,목축업에 종사하고 있다.

수도 카불은 한때 아름다운 도시였으나 지금은 폭격으로 황폐화되고 지뢰가 집 근처에 묻혀 있는 것으로 유명한 도시가 되었다. 수도 카불외에 각 도마다 도청소재지가 있는데 그 중 동서남북의 4개 도시가 유명하다. 남쪽의 칸다하르(Qandahar)는 현대 아프간의 첫 번째 수도였으며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탈리반의 본부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며 파쉬툰족의 중심부와 같은 곳이다. 북쪽의 마자리 샤리프 (Mazar-i-Sharif) 이슬람의 성도(聖都)로 선지자 모하메드의 사위인 알리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이곳은 우즈벡 민족이 살고 있으며 98년 8월 탈리반이 점령하기 전에는 현 반탈리반 연합세력 가운데 하나의 주축세력인 도스텀(우즈벡족)장군의 지역으로 알려져 있었다.

1997년 5월에는 탈리반 4000명이 집단 살해되어 한 웅덩이 속에 공동 매장되었던 것으로 그리고 최근 탈리반 점령시는 탈리반에 의해 하자라족 8000명이 학살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도시이다. 서쪽의 헤라트(Herat)는 이란과 가까운 도시로 카페트로 유명하다. 95년 9월 큰 도시로는 처음으로 탈리반에 점령당하여 탈리반의 정책이 외부세계로 알려지기 시작한 도시이다. 동쪽의 잘랄라바드(Jalalabad)는 96년 9월 탈리반에 의해 점령당하기 전까지는 정치적으로 비교적 중립을 지키는 세력이 차지하고 있고 파키스탄과 가까운 지리적 요소 때문에 많은 외국 NGO들이 사무실을 두고 있던 곳이다. 공용어인 다리어와 파쉬투어가 함께 쓰이던 곳이나 현재 파쉬투어로 Language shifting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예로부터 아프카니스탄은 유라시아 대륙의 동서를 연결하는 요충지였으며 기원전부터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알렉산더 대왕의 원정으로 전파된 그리이스 문화,인도로 부터 전래된 불교 등에 의해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 1세기에 쿠샨왕조가 건국되어 불교 문화를 형성하였고 그 후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3세기 이후 이르칸국,티무르제국,무갈제국의 지배하에 있다가 18세기 초에 독립했다. 19세기에 영국 의 보호국이 되었고 1921년 재 독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면적 : 64만 7,500㎢


수도 : 카불


인구 : 2681만 3000명

정치형태 : 공화제

종교 : 99%가 보다 자유로운 하나피 수니(Hanafi Sunni)이슬람교도이다. 전통적인 이슬람교의 휴일과 축제들이 있다. 많은 지엽적인 전 이슬람교적 관습과 믿음들이 그들의 이슬람교에 널리 퍼져 있다. 그들에겐 많은 성자들의 사당이 있다. 물라(Mullahs)라 불리는 이슬람교 선생들은 종교적 지도자로서 여러 전통적 예식들과 축제들을 집례한다. 이들 물라들은 정치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행 사한다. 어떤 유목민들은 그들 자신의 물라들을 갖기도 한다. 대부분의 아프칸 사람들처럼 그들은 외세의 도전을 받을 때까지는 그들의 종교적 신념에 무관심하다.

그러나 AP통신은 최근 ‘아시아내의 이슬람’이라는 제목으로 특집을 내고,우즈베키스탄에서 필리핀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에는 이슬람이 광범하게 분포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보도했다.아시아에서 이슬람이 이토록 확산된 것은 각국의 문화에 타협하는 현지 토착화 전략으로 수세기동안 생존을 모색했기 때문이라고 AP는 분석했다.실제로 이슬람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아시아 각국별로 다르다.엄격한 종교주의자,세속적인 신자,독재자,반군,민주주의자 등 실로 다양하다.최근 간음죄를 범한 여인을 숨질 때까지 돌로 쳐죽이도록 한 아프가니스탄은 대표적인 엄격한 종교주의 국가다.아프가니스탄은 코란에 위배된다며 최근 공중 목욕탕 폐쇄조치를 내릴만큼 체제가 경직됐다. 그런 반면 아시아에서 이슬람교도 수가 가장 많은 인도네시아의 경우 나이트클럽의 출입은 물론,공공장소에서의 음주가무가 허용된다.이슬람반군이 6개월 넘게 서방인을 상대로 인질극을 벌였던 필리핀에서는 이슬람은 반군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이슬람 자치사회 건설을 위해 30년 넘게 대정부 투쟁을 벌이고 있는 이들은 16세기에는 스페인 정복자에 싸웠던 반골들이다.아시아의 이슬람은 이처럼 다양한 형태를 띠고 확산돼 있지만 그동안 세계는 물론,아시아 각국으로부터도 별달리 주목을 받지 못해왔다.발원지인 중동 지역이 아랍 이스라엘 분쟁,이란 이슬람혁명 등 세계의 화약고로 떠오르면서 아시아의 이슬람은 주목받을 틈이 없었다.사실 세계 이슬람 교도의 절반 이상이 파키스탄 카라치 동쪽인 아시아에 모여 있다.세계에서 이슬람 교도 수가 많은 나라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인도 등으로 죄다 아시아 국가다.이슬람 문제에 정통한 조지 조페 영국 런던대 교수는 “아시아에서 이슬람이 별다른 마찰없이 이처럼 급속히 확산된 것은 정복자가 아니라 문명 전달자로서 파고 든데다 힌두 불교 등 기존 토착신앙과도 잘 융합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하고 있다.실제로 최근 인도네시아 중앙정부로부터 분리투쟁을 하고 있는 아체주의 경우 이슬람 특유의 복장이나 이슬람법이 없지만 주민들은 하루 세 차례 빠짐없이 기도하고 있으며 다른 신앙을 지닌 이들과도 큰 마찰없이 지내왔다.외신들도 아시아에서 이슬람이 강세를 보이는 이유가 바로 현지화라고 지목하고 있다.일단 현지화 전략으로 적응한뒤 어느 정도 뿌리 내리면 바로 그들만의 이슬람 사회 건설을 꿈꾸거나 사회를 이슬람 분위기로 변화시키려 한다는 것이다.그 대표적인 국가가 바로 인도네시아다.압둘라흐만 와히드 대통령은 지난해 인도네시아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적 절차에 따라 대통령에 선출됐다. 기실 와히드는 이슬람 성직자이자 3000만 이슬람 당원을 대표하는 정치인이기도 하다.지난해 인도네시아 이슬람교도들은 서방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소화해내는 선진국민으로 칭송받았다.중동의 이슬람이 과격하다는 선입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과 너무도 다르다.아시아의 이슬람 확산은 아시아선교의 사명감을 가진 한국교회에 도전이 아닐 수 없다.(국민일보)


주요민족 : 1993년 인구를 약 2170만으로 추정하는데 그것은 300만의 유목민과 600만의 난민을 포함한다. 파쉬툰-Pashtun or Pakhtun (50%): 아프간의 가장 강력한 종족으로 인도와 파키스탄에서는 파탄족으로 알려져 있다. 파쉬툰 전설에 의하면 그들은 카이스(Qais)라는 사람의 후손인데 이 카이스는 사울왕의 후손이라고 한다. 사울왕이 그의 아들 40명을 데리고 고르(Ghor)로 왔는데 이 고르가 지금의 아프간 가운데인 하자라잣이며 카이스는 아프간에 모슬렘을 전파하도록 모하메드로부터 선택받은 자라고 한다. 이들은 아리안 민족의 일파로 키가 크고 이목구비가 또렷한 것이 특징이다. 이들의 언어인 파쉬투어는 다리어와 함께 아프간의 공용어이며 탈리반이 정권을 잡는 한 점점더 이 언어의 영향은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타직-Tajik (25%): 이란계 민족으로 북쪽의 타직은 몽골인종의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들은 아프간 도시의 중류층을 이루고 있으며 이들이 사용하는 다리어(아프간 페르시아어)가 공용어이며 종족간에 사용하는 Lingua Franca이다. 하자라-Hazara (9%): 징기스칸의 후손으로 알려진 이들은 몽골인종으로 아프간 중앙의 하자라잣 산 을 중심으로 살고 있으며 유목민이다. 이들이 사는 버미얀에는 세계최대의 석불이 있다. 이들은 시아 파 모슬렘으로 파쉬툰족과는 오랜 세월 원수지간으로 지내오고 있다. 탈리반이 국토를 점령하면서 가 장 고통을 받고 있는 종족이다. 북쪽 마자르에서는 8000명이 집단 학살당하기도 했고 현재 파키스탄 으로 나가려던 하자라 난민이 잘잘라바드에서 붙잡혀 감금되어 있다. 우즈벡-Uzbek (9%): 우즈베키스탄과 국경을 대고 있는 북쪽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종족이다. 투르크 계열의 종족으로 막강한 군벌인 도스텀 장군이 이 우즈벡인으로 최근까지 반탈리반의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나 그들의 중심도시인 마자르가 탈리반에게 함락되고 나서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전까지는 우즈벡과의 국경이 열려있어 왕래가 가능했으나 현재는 우즈벡을 통한 길이 폐쇄되어 있다. 누리스타니-Nuristani: 1896년 압둘 라흐만왕이 점령하기 전까지 비모슬렘으로 남아있던 북동쪽 산 지에 사는 종족이다. 물론 이 누리스탄안에도 많은 소수종족으로 나누어진다. 이들은 이방인을 표시하 는 Kafir 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들의 언어는 Dardic계열에 속하는 언어이기 때문에 Ethnologue에는 파샤이에 함께 속하여 설명되었다. 이외에도 파샤이 아이막등 여러 소수종족이 있으며,언어로는 약 49개(Ethnologue,1996)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프가니스탄 인구는 전쟁과 난민들의 대대적인 탈출로 1980년부터 1985년에 걸쳐 연간 약 2%씩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198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인구성장률이 중앙 아시아 국가들의 평균수준으로 돌아왔다. 1994년까지 총인구는 16,903,400명이며 출생률과 사망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하는데 인구의 45%가 15세 이하의 연령층에 집중되어 있어 비교적 인구 층이 젊기 때문에 출생률은 높고 사망률이 떨어지고 있다. 인구의 4/5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며 나머지는 유목민이 차지하고 있다. 도시 거주지는 대부분 카불에서 남서쪽으로 칸다하르,북서쪽으로 헤라트,동쪽으로 마잘에샤리프를 거쳐 다시 남쪽 카불로 돌아올 수 있도록 건설된 주요 순환도로를 따라 자리잡고 있다. 농촌인구는 주로 강변에 집중되어 있다.


주요언어 : 다리어(Dari)는 아프간의 페르시아어로서 법정언어로 쓰여왔다. 종족간의 대화에 쓰일 정도로 넓게 퍼져있는 언어이며 수도 카불에서 사용되어 왔던 언어이다. 1936년 파쉬투어가 아프간의 국가어 로 선포되었으나 다리어가 문학과 무역어로 너무나 중요하게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결국 그 일은 실패로 돌아갔다. 현재 이 언어로 신구약 성경이 이란어 성경으로부터 개역되었다.

파쉬투어(Pashtu)는 파쉬툰족의 언어로 각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게 사용되고 있다. 특히 파키스탄의 파 쉬투와 아프간의 파쉬투는 점점 그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 이 언어는 1964년 다리어와 함께 공용어로 선포되었다. 신약만 번역되어 있고 현재 구약성경번역을 위한 위원회가 구성되어 있다.


기후
아프가니스탄은 몬순 아시아보다 이란이나 중부아시아의 기후와 흡사하다. 이 기후의 특징은 건조한 여름과 극히 작은 강우량에 기온차가 큰 편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인도와 매우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인도와는 달리 폭우가 내리지 않는다. 연중 강수량은 서부와 북부 저지대,사막지역인 경우 100∼150mm 정도이며,동부지역은 250∼400mm 정도가 내린다. 수도인 동부지역 전형인 카불에는 연평균 330mm 정도 내리며 서부지역의 전형인 헤라드에는 연평균 125mm 정도인데 거의 4월에서 12월 사이에 내린다.

아프가니스탄의 중부 산악지대는 아(亞)북극기후로 겨울에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 아주 춥고 여름에 는 더운 반건조 스텝지대이거나 사막지대이다. 연 강수량은 남서부 사막지대의 75mm 미만부터 힌두 쿠시 산맥의 1,270mm 이상에 이르기까지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분포한다. 저지대는 6월 평균 기온이 43℃에서 49℃까지 이르며 해발고도가 1,800m인 수도 카불은 평균 38℃이 다. 고원지대에서 겨울은 매우 춥고 건조하며 -22℃에서 -26℃까지 내려가며 많은 산에는 눈보라가 친다. 이때 카불의 기온은 -4℃ 정도이다.


지리
아프가니스탄은 아시아 중남부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내륙국가로 남북으로 약 970km,동서로 와칸지역을 포함해 1,300km가량 뻗어 있다. 와칸은 북동쪽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중국을 잇는 약 241km에 이르는 좁다란 회랑(回廊)지대로 남쪽과 남동쪽은 파키스탄과 면해 있고 서쪽은 이란,북쪽은 투르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을 경계로 한다. 1979년 소련군 침공 이후 약 500만 명의 주민이 이웃나라로 망명했다. 면적은 652,225㎢이다.


역사
BC이전 역사 개요
BC 6세기경에 페르시아 키루스 2세(아케메네스 왕조의 일부)의 지배를 받았으며,BC 4세기에는 알렉산드로 3세에게 정복되었다. 알렉산드로가 죽은 후 일부 지역은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또 일부는 인도 북부에 근거를 둔 마우리아 제국에 넘어갔다. 셀레우코스 왕조의 박트리아(지금의 '발흐' 지방) 총독통치령에서 박트리아 왕국이 생겨나 그리스와 인도의 문화가 융합된 독특한 문화를 선보였다. BC 2세기에는 쿠샨 왕조의 카니슈카 왕(78∼144경)에게 정복되었다.

AC 1년 - 1900년 까지의 역사
에프탈 왕조와 사산 왕조를 거치면서 힌두교의 영향권에 들어섰으며,870년경 사파르 왕조시대에는 이슬람교가 튼튼히 뿌리내렸다. 1219년에는 칭기즈 칸이 이끄는 몽골족의 침략을 받았으며,몽골 제국이 무너짐에 따라 독립된 제후국들로 분리되어 18세기에 이르기까지 부분적으로 인도 무굴 제국과 페르시아 사파위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1700년대초 페르시아 군주 나데르 샤에 의해 무굴 제국으로부터 벗어났으며,나데르의 경호대장 아흐마드 칸 아브달리가 아흐마드 샤 두라니라는 이름으로 아프가니스탄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굳히고 왕위를 계승하면서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었다. 1772년 두라니가 죽은 후 부족 또는 종족 단위 사회로 회귀하려는 경향과 러시아·영국의 제국주의적 음모로 제국은 붕괴되었으나 여러 차례 전쟁(1839∼42,1878∼80,1919)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 점령을 시도한 영국에게 항복하지 않음으로써 기본적으로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군주제 아래 1930년대부터 계속 신중하고 온건한 정부가 들어섬으로써 정치적 안정을 이룩했으나,1970년대 정당정치가 안정을 잃게 되고 1973년 좌익 파르캄('깃발'이라는 뜻)당이 지원한 군사혁명이 성공하면서 군주제가 종식되고 공화국이 성립되었다. 1977년 파르캄당과 좌익 칼크('대중'이라는 뜻)당이 연합하여 PDPA를 결성했고,1978년에는 함께 정권을 잡기도 했으나 두 정파 사이에 분열이 일어나고 이들의 마르크주의적인 개혁정책으로 농촌에서 큰 반란이 여러 차례 일어나자 1979년 기존정권 수호라는 명분 아래 소련군이 침공했다.

1979년 소련의 침공으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은 80년 무자헤딘이라 불리는 이슬람교도들이 성전(Holy War)을 선포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잇는 아라비아해의 항구를 확보하기 위한 소련의 남진정책이 미국의 대소봉쇄정책과 충돌한 지역이 바로 아프가니스탄이 되었다. 무자헤딘의 계속적인 항쟁과 국내외 압박에 못 이겨 결국 88년부터 소련은 굴욕적인 철수를 단행하여 89년 12월 완전 철수하게 된다. 아프가니스탄에 친소정권인 나지불라 정권을 세우고 철수를 했다. 이것은 베트남 전쟁과 더불어 강대국의 패전 가능성을 알려주는 20세기 전사의 유명한 사건이 되었다. 소련은 결국 사회주의 체제 붕괴로 이어지며 소수 공화국들이 독립하는 상황을 맞게되었다. 아프간의 무자헤딘 동맹군은 92년 나지불라 괴뢰정권을 축출하고 라바니 대통령을 선출하면서 평화가 오는가 했더니 수상으로 선출된 굴부딘(Gulbuddin Hekmatyar)이 불복하면서 종족,종파,정파가 복잡하게 얽힌 내부 문제를 풀지 못하고 결국 내전에 돌입하게 된다. 작게는 수많은 정파가 있었지만 큰 정파로는 4개를 들 수 있다. 타직족을 중심으로한 라바니 대통령과 대소련항쟁의 영웅 마수드 장군이 이끄는 세력,총리로 내정되었으나 받아들이지 않고 내전의 불을 당긴 헤그마티야르의 파쉬툰족 중심의 정파,회교 시아파인 하자라족을 중심으로한 정파,그리고 소련군의 장군이었던 우즈벡족의 도스텀 장군이 이끄는 세력이었다. 이들은 수도 카불을 분할한 채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러한 무자헤딘의 정권다툼이 지속되자 94년 9월 아프간의 남부 도시인 칸다하르를 중심으로 '이슬람 신학생'이라는 이름의 '탈리반'(Taliban)그룹이 생겨나 정권 다툼에 끼여들게 되었다. 이들은 주로 아프간의 다수종족(50%)인 파쉬툰(Pashtun)족으로 구성되었다. 이 젊은 학생그룹은 그 동안 일종의 무정부 상태와 같은 전쟁에 싫증난 파쉬툰 지역 주민의 지지와 이들의 순수한 열정 및 결연한 의지에 힘입어 전투에서 혁혁한 성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 결과 마침내 96년 9월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계속해서 북진하여 국토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가장 큰 세력이 되었다. 97년 4000명의 탈리반 포로들이 처형되어 한 곳에 공동 매장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점령한 지역에서 이슬람법을 과도 적용하면서 시민들로부터 차츰 외면 당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남자들에게 턱수염을 길게 기르는 것과 모자를 반드시 쓸 것을 명령하고 여학교를 폐지하고 과거 공산정부시대에 직업을 가졌던 사람들은 모든 공직에서 쫓아내고 여성의 외출을 통제하는 등 서방세계로부터 인권을 유린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아프간의 주요 공용어인 다리(Dari)어 사용지역에서조차 자신들의 언어인 파쉬투어를 사용함으로 언어 및 종족상의 이질감을 나타내므로 파쉬툰지역을 제외한 다른 종족지역에서는 많은 문제를 가져왔다. 한편 이 탈리반에 의해 수도에서 쫓겨난 세력과 그 외의 여러 세력은 서로의 싸움을 멈추고 탈리반에 대항하는 연합전선을 구축하여 지금도 심각한 내전을 벌이고 있다. 이 반탈리반 연합세력은 북쪽의 마자리 샤리프에 본부를 두고 연합해 있었으나 98년 8월 결국 탈리반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결국 연합전선은 무너지고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국외로 탈출했으나 마수드 장군만이 자기의 본거지인 판쉬르 계곡을 거점으로 계속적인 전투를 벌이고 있다. 탈리반은 아프간 중심부의 하자라 본거지인 버미얀마저 점령하여 현재 전투는 탈리반과 마수드 세력간에 치러지고 있다. 지금 탈리반은 90% 이상의 국토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의 내전상황은 다음과 같다. 1994년 11월에 회교 급진 원리주의자들인 탈리반 세력이 남부지역 최대 도시인 Kandahar를 점거하고 북쪽으로 세력 확장을 펴기 시작하였으며,1995년 3월에 탈리반 세력이 남부 지역 Provinces를 점거하고 수도인 Kabul외곽까지 밀고 올라갔으나 Jamiat세력의 화기에 밀려 사정거리 밖으로 퇴각하였다. 1995년 9월에는 북부 주요 도시인 Herat을 점령함으로써 14개 주가 Taliban의 통치하에 들어왔으며,1996년 6월에는 Iran측의 주선으로 이루어진 Jamiat과 Hezb-i-Islami의 협상 결과에 의해 Gulbuddin Hekmatyar가 Prime Minister로 취임했다. 1996년 9월에 탈리반이 동부 지역으로 급진전하여 퇴각하는 Jamiat세력으로부터 Kabul을 점령하였으며,1996년 10월에 SCDA (The Supreme Council for the Defence of Afghanistan)라는 반 탈리반 연합이 Jamiat,Rashid Dostam's Uzbeks,Shia Hezb-i-Wahdat 세력에 의해 결성되었다. 1997년 5월에는 탈리반이 Mazar-i-Sharif와 많은 북부 지역을 점령하였으나 곧 이어 퇴각하였으며,1998년 8월에 탈리반이 반탈리반 세력의 본부인 Mazar-i-Sharif와 주요 북부 도시들을 점령하였다. 1998년 8월에 Saudi출신 테러리스트 Osama bin Laden의 테러리스트 거점 도시들로 알려진 곳들이 미국 Cruise Missile의 공격을 받았으며,1998년 9월에 Wahdat세력의 본부로 봉쇄되어 있던 Bamiyan이 Taliban에게 함락되었다. 1998년 8월에는 반 탈리반 세력(Iran의 지원을 받은 Shia militant소행으로 봄) Kandahar에서 Truck Bomb공격--Taliban지도자 Omar Mohammad의 형제들과 수명의 탈리반 지도자들이 살상되었으며,2001년 1월에는 탈리반 대통령이 파키스탄 군부 지도자와의 정상 회담차 Islamabad를 방문하였다.


전압 및 주파수
1 Afghani = 100 puls. 환율 : Af 3,000 : U$ 1 (Official Rate) Af 4,679 : U$ 1 (Spot rate as of End October 1999)

치안
전쟁으로 치안상태는 예전부터 나빴지만 상황이 호전되지 않고 더 나빠지고 있다.


통화
1 Afghani = 100 puls. 환율 : Af 3,000 : U$ 1 (Official Rate) Af 4,679 : U$ 1 (Spot rate as of End October 1999)


주의사항
외국인 금기사항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불법 약물 흐름을 제거하기 위해 UNDCP는 올해 이란에 사무실을 개소하였고 이란 정부와 공동으로 미화 1300만 달러의 집중적인 약물통제프로그램을 착수했다. UNDCP는 또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중앙아시아로 밀반입되는 마약류를 감소시키기 위해 타지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서 마약통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상품구입시 유의사항
샤리나우외 시내 곳곳에 있는 노천시장에서 일용품,보석 등 각종 직물을 살 수 있다

복장 및 의복 관련사항
여성은 스카프로 얼굴을 가리고 온 몸을 덮는 옷을 착용해야 한다


비자
▣ 비자신청시 유의사항
비자 면제조건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발행한 재입국허가를 지니고 있는 여행자와 유효 비행기표를 지니고 2시간 이내에 같은 비행기로 제3국으로 여행을 계속하려는 경유 여행객에 한하고 있다. 비자 종류와 비용을 보면, 단수(20 파운드), 복수(30 파운드)와 상용( 30 파운드)비자가 있다. 비자유효기간은 발급일로부터 3개월이며, 체류기간은 방문목적에 따라 달라진다.
비자 신청시 유의사항으로는 근로비자는 무료로 발급되며, 관광비자와 경유비자는 발급되지 않는다. 언론인, 사업차 방문객, 적십자 회원, 자선 단체 대표, 의학 단체 대표는 입국이 허가되며, 상용비자는 아프가니스탄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방문 목적을 적어서 제출해야 한다. 또한 출국과 재입국 비자는 아프가니스탄을 떠나기 전에 발급받아야 한다.

▣ 비자신청시 구비서류
구비서류로는 상용비자를 발급받는데 6개월 이상 유효한 여권, 신청서, 여권용 사진1장과 의뢰인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사업주의 서류가 필요하다.



▶ 카불

아프가니스탄 중동부에 위치한 카불은 1776년 이후부터 아프가니스탄의 수도로서,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경제,문화의 중심지이다. 1815m의 고지에 자리잡은 인구 약 200만의 도시인 카불은 한때 아름다운 도시였으나 1979년에서 198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오랜 내전으로 도시는 파괴와 재건을 반복하고 있다. 카불은 주로 레이온,울 등의 섬유,가구,설탕,식품기계 등의 산업 발달하였으나 전쟁으로 1979년 이후 경제적 활동이 주춤한 상태이다. 카불은 대부분의 지방 도시 및 북부 및 동부의 인접 국가와 육로에 의해 연결돼 있다. 특히 카불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산악지역을 연결하는 Khyber Pass에 근접해 있어 오랜 동안 매우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회교 근본주의 집단인 탈레반이 1996정권을 이후 수도 카불을 포함해 전국토의 70% 정도를 장악하고 있어 회교 율법을 사회 전반에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특히 여성들에 대한 차별과 탄압은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데 여성들의 취업을 일체금지 했으며 남성들도 턱수염을 자르는 것이 금지돼 있다. TV가 사회를 부패시킨다 하여 아예 소유·판매를 금지시킬 정도로 엄격한 회교 근본주의에 따르고 있다.

카불은 오랜 세월동안 경제적,정치적,문화적으로 전략상 중용한 위치에 있었으며 매우 아름다운 경관을 가지고 있었다. 카불은 과거에 무역의 중심지 였으며 다양한 종교가 만나는 곳이기도 하였다. 또한 인도로 통하는 관문이었기 때문에 무역상과 침략자들에게 항상 주목을 받았기도 했다.

흰눈으로 덮인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특히 계곡과 푸른 언덕이 있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카불은 현대적인 건물과 역사적 유물들이 공존하고 있는 도시로 과거 제왕들의 무덤을 비롯한 많은 역사적 기념물들이 있으며,시내의 바자는 관광과 쇼핑의 명소로 이름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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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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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폴은 동남 아시아 말레이 반도의 최남단에 있는 작은 나라이다. 공식 이름이 싱가포르 공화국(Republic of Singapore, Republik Singapura)이고,중국 표준어로는 신자포(新加坡), 타밀어로는 Singapore Kudiyarasu이다.

싱가포르는 옛날 수마트라의 왕자가 이 곳을 찾았다가 낯선 동물을 보고, 이를 사자로 오인하여 이 곳을 '사자의 도시'라는 뜻에서 '싱가푸라'(Singa Pura)라고 부르게 된 데에서 유래한다.
동,서양의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공존하는 뉴아시아 싱가포르는 녹색의 정원도시로서, 세계로 향해 열려 있는 아시아의 관문이다. 'Clean City', ‘작지만 큰 나라’, ‘아시아의 용’ 등의 수많은 미사어구가 항상 따라 다니는 싱가포르는 매일 다채로운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아시아의 관광 대국이다.

'Garden City' 라는 이름 그대로 곳곳에 열대의 녹음과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며 세계 각지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요리의 천국이다.

태국,필리핀과도 항공편으로 단시간에 닿을 수 있고,취항 항공사만도 57개가 넘는 싱가포르는 명실공히 동남 아시아의 관문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싱가포르는 아시아 네 마리 용의 선두로 1인당 국민소득도 일본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데, 이러한 급속한 성장과 곳곳에 들어선 고층 빌딩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는 녹음이 우거진 깨끗한 도시 환경을 지켜냈다. 선진화된 시설과 교통, 우수한 호텔과 훌륭한 음식, 관광객들을 매혹시키는 다양한 문화와 축제 등을 바탕으로 싱가포르는 연간 600만에 이르는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관광왕국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이른바 ‘Clean & Green’ 정책을 추구하는 싱가포르의 도시환경을 높이 세울 수 있는 데, 이는 가히 최고의 수준이다. 싱가포르 국민보다 많은 수의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는 이유 또한 바로 그 점에서 비롯된다. 깨끗한 거리와 맑은 공기, 편리한 교통과 선진화된 제반 시설 등을 갖추고 있어, 싱가포르는 외국인 관광객들로부터 다시 찾고 싶은 나라 1순위로 뽑히고 있을 정도이다.

싱가포르는 오래전부터 쇼핑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대규모의 냉방시설과 편의시설을 갖춘 쇼핑몰, 백화점, 부띠크 등에서 연중 쇼핑을 즐길 수 있으며, 이곳을 빈손으로 떠나는 방문객들이 거의 없을 정도로 싱가포르의 쇼핑환경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항공
싱가포르로 매주 40여편의 항공기가 운행되고 있다. 주요 항공사로는 싱가폴항공(SQ), 대한항공(KE), 아시아나(OZ)로 서울/싱가포르간 직항편 및 또는 중간에 방콕 또는 대만을 경유하는 항공 스케쥴은 운행하고 있다.

서울/싱가포르간을 직항으로 운행하는 경우에 소요되는 시간은 6시간 10분이며 방콕 등을 경유하는 항공편의 경우 방콕경유 싱가포르까지의 운행시간은 총 9시간 25분이다. 서울 출발시간은 오전 09:00부터 오후 21:05까지 다양한 출발편으로 이용 선택의 폭이 넓다.
싱가포르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항공편 역시 30여편이 운행되며 현지 출발시간은 새벽 2시부터 오후 23:50까지 있다.
상기 항공외에 홍콩항공(CX),태국항공(TG) 등을 이용해 각각 홍콩,태국등을 경유해 싱가포르로 운행하는 항공편을 이용할수 있다.

면적 : 685.4㎢


수도 : 싱가포르 [Singapore]


인구 : 약 448만 3900명(2006년 기준)


정치형태 : 공화국(의원내각제)

종교 : 싱가포르가 다민족 국가인 것처럼 종교 역시 다종교이다. 싱가포르 거리를 걷다 보면 첨탑 모양을 한 기독교 교회, 화려한 채색을 한 힌두사원, 이슬람교의 둥근 모스크사원, 거대한 불교사원이 있고, 용이 승천하는 그림이 있는 도교 사당이 있다. 각각 전통적인 종교 행사를 열고 있다.

헌법에도 국민의 종교 자유라고 제정되어 있다. 말레이인의 99%가 모슬렘을 비롯하여 중국인의 경우 도교37%, 불교34%이고, 아시아인과 유럽인의 혼혈인 유라시안들은 61%가 기독교 신자이다.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인들은 힌두교가 57%이고 모슬렘이 22%, 기독교 신자가 12%이다. 또한 전체 13%을 차지하는 무종교자인 사람은 학력이 높은 사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도시 : 싱가포르

주요민족 : 중국인이 싱가포르 인구의 77.7%를 차지하고 이들은 푸젠 성과 광둥성 출신이 많지만, 같은 민족이지만 서로 다른 방언을 사용하기에 의사소통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토착 말레이시아계 14.1%, 인도계 7.1%, 서양인과 동양인 사이에서 태어난 유라시아인이 1.1%를 차지한다.

주요언어 : 중국어·말레이어·타밀어·영어를 사용하는 싱가포르는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살기 때문에 언어 역시 다양하여 중국계는 중국어를, 말레이시아계는 말레이지아어, 인도계는 타밀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영어를 공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싱가포르의 영어는 다민족으로 독특한 방언이 혼합되어 있다.


경제
싱가포르는 한국.홍콩.대만과 더불어 아시아의 용으로 불리며 고속으로 경제성장을 이룩한 나라이다. 20년이산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룩해 온 싱가포르는 세계적인 경기 침체 시기인 90년대에도 흔들리지 않는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경공업 우선 정책을 수립하고 무역, 선적, 금융, 관광을 주력사업으로 성장시켰다. 동남 아시아에서 소요되는 상당량의 석유를 공급하는 정유사업, 조선업, 전자 제조업이 그 뒤를 잇는 사업들이다. 홍콩과 함께 자유관세지역인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가장 바쁜 항구 가운데 하나이다.

수출감소로 외채가 늘고 있는 서구 국가들의 눈에는 싱가포르의 이러한 모습은 자유시장경제의 전형으로 비쳐질 것이다.

그러나, 세율이 낮고 외국 자본에 대한 제재가 없어서 자유롭게 보이는 실상 뒤에는, 자국 기업에 대해서는 철저한 통제와 개입을 하는 또다른 얼굴이 있다. 정부가 개발 주력 산업과 세금 특혜 산업을 직접 선정하는 한편, 기업을 지도하는 역할까지 담당한다.

조합과 노동 시장까지 정부의 조정 아래 있어 파업 관련법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금융 서비스 부문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MAS(Monetary Authority of Singapore)를
정부가 인수하기도 했다. 싱가포르의 금융시장을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도록 만든것은 MAS 덕택이라한다.

기후
싱가포르의 기후는 온난다습하며, 낮 평균 최고 기온은 32˚C, 저녁 최저기온은 24˚C로 일교차가 비교적 적은 편이다. 월평균기온은 높은 편으로 25˚C이고 6월의 27˚C이다.

연중 고르게 비가 내리며, 몬순기후인 11월부터 1월까지 강우량이 보통 때보다 많고 스콜이 자주 내리는 우기이다. 연평균 강우량은 2,400㎜이나 물 공급의 2/3 이상을 말레이시아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연 강우량은 고르게 분포되나 북동 계절풍이 부는 11-3월 사이에 월평균 250㎜, 남쪽 계절풍이 부는 5-9월 사이에는 178㎜로 차이를 보인다

싱가포르 기후의 장점은 태풍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주변의 다른 섬들로 둘러싸인 안전한 지형 덕분에 쓰나미 피해도 발생한 적이 없다.

사회문화
싱가포르는 중국인·말레이인·인도 파키스탄인·유럽계인 등이 저마다 다른 언어·풍속·습관·문화·종교를 가지고 있으며, 서로 섞여 사는 일이 거의 없다. 인종에 따라 직업도 다르다. 중국인은 서비스 부문과 제조부문에 종사하고, 말레이인은 하급공무원과 하급노동자로 일하며, 인도인은 공무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복합사회는 인종간의 대립을 불러일으켜 정치적 불안정을 야기함으로써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또 중국인 사이에는 푸젠[福建]·광둥[廣東]·커자[客家]·차오저우[潮州]·하이난[海南] 등 출신지에 따라 서로 다른 사회적 결합관계인 방(幇)이 있는데, 상업활동은 이 방을 중심으로 행해지며 다른 방과의 관계는 희박하다. 이처럼 인종적으로 분단되는 데다가 방 등으로 다시 분단되기 때문에 계층 문화가 표면화되지는 않는다.

학제는 초등 6년, 중등 4년, 대학전교육 2~3년, 대학 3년제로 모든 학생은 초등학교 6년, 중등학교 4년의 의무교육을 받아야 한다. 교육과정은 언어교육을 중시하며 각 인종의 고유 언어 외에 영어를 필수언어로 하여 반드시 2개 언어를 이수해야 하는 2중 언어정책을 시행하며, 1997년 홍콩의 중국 본토 복귀 이후 중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중국표준어 배우기를 권장한다.

산업
싱가포르의 산업구조를 보면,서비스업이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2%에 달하고 제조업의 비중은 28%이다.
농지는 전국토의 1%이며 주요 농산물로는 자체시장의 내수를 위한 코프라(copra: 야자열매를 말린 것)과 과일·채소,닭·계란·돼지고기가 있다. 싱가포르는 수출용 원자재와 산업용 기계류 등을 수입한다. 수출품에는 컴퓨터 부품,고무와 고무제품,석유제품 등이 있다.

지리
북위 1˚09'과 1˚29',동경 103˚38"와 104˚06'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지형은 낮게 굽이치는 평탄한 지역으로 해발 15m 미만의 평지가 약 2/3이고,섬 중앙의 울퉁불퉁한 화강암 고지에 있는 최고봉 티마 산도 높이가 165m에 밖에 되지 않는다.

언덕과 침식 계곡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낮은 지역인 동부 지역과 낮은 벼랑과 얕은 계곡을 이루는 급경사면이 펼쳐진 해안지역인 남쪽과 서쪽으로 급경사면이 이루어져 있다.


방문적기
연중 언제든지 가능하다. 싱가폴은 연중 안정된 강수량을 보이기 때문에 기후는 크게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매달 열리는 다양한 축제 중에서 2월에 열리는 타이푸삼(Thaipusam)축제가 가장 볼 만하며,쇼핑이나 먹을 것이 여행목적이라면 싱가포르 음식축제(Singapore Food Festival)과 싱가포르 대 세일(The Great Singapore Sale)이 열리는 7월이 최적이다.

쇼핑
싱가포르는 오래전부터 쇼핑의 도시로 알려져있고, 자유관세 지역으로 홍콩과 더불어 아시아 최고의 쇼핑관광국가이다. 세계유명 브랜드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싱가포르의 쇼핑센터들은 매년 여름휴가 시즌(6월말~7월말)과 크리스마스 시즌(11월~1월)에 년2차례의 정기세일을 갖는다.

세일기간을 이용하면 10~20% 싸게 물건을 구입할 수 있고, 가짜가 많이 유통되는 홍콩에 비해 제품의 가격은 비싸지만 오리지널 제품을 믿고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역사
▣ AC 1년 - 1900년까지의 역사
인도네시아의 스리비자야성 왕자가 폭우를 만나 이 섬에 표류하게 도었는데,섬 전체에 괴이한 동물들을 사자인 줄 알고 '싱가프라(Singapura)'란 이름을 짓게 되었다. 12세기 수마트라섬 출신의 왕족에 의하여 건설되었고,이 일대의 해상권을 장악,왕래하는 선박을 제압하며 상업적으로 대단한 번영을 누렸다. 그 후 14세기 무렵에 싱가포르는 스리비얀(Sri Vijayan) 제국의 일부가 되면서 '해상도시' 즉 테마색(Temasek)로 알려지게 되었다.

15세기 초에는 말라카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고,16세기에는 포르투갈 뒤이어 17세기에는 네덜란드인들에게 지배를 받았고,1819년 영국령 동인도회사의 행정관 스탬퍼드 래플즈(.Stamford Raffles)경이 싱가포르를 무역항으로 세워 영국 동남아시아 식민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1832년 싱가포르는 영국령 말라카 해협 식민지의 행정중심지가 되었으며 1870년에 수에즈 운하 개통과 함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 1991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싱가포르는 말레이 반도의 주석과 고무의 수요증가에 따라 말레이 반도는 천연항으로 성장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후에 영국이 싱가포르에 해군기지를 세우면서 동남아시아 내 영국 세력을 상징하게 되었다. 그러나 1942년 1월에 일본이 말레이 반도를 침략함으로 싱가포르와 영국 주둔군으로부터 항복을 받았다. 그 후 1945년까지 일본이 지배하다가 1945년에 다시 영국이 점령하게 되었다.

1957년에는 말레이시아 연방으로 독립하였고 1959년에 이광요 초대 수상으로 한 말레이시아 자치주의 지위를 얻게 됨으로서 140년 동안의 영국 지배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의 말레이시아인 우대정책과 이광요를 당수로 하는 인민행동당의 인종 차별로 인해 말레이시아 연방의 라만 정권은 싱가포르를 분리하기로 결정하였다. 8월 9일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게 되었고 이광요 수상의 지도로 경제 대국이 되었다. 그때부터 20세기 후반까지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해 1인당 국민소득이 동남아시아 국가 중 가장 높아졌다. 영국은 1971년 싱가포르에서 군대를 철수시켰다.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EAN)에서 큰 권력을 가지고 있다.


공휴일/축제
•1월 1일 신정
•1월 19일 하리라야 포사
•2월16~17일 구정
•3월28일 하리라야하지
•4월 2일 성 금요일
•5월 1일 노동절
•5월 29일 베삭 데이
•8월 9일 건국 기념일
•11월 7일 디파벨리
•12월25일 크리스마스

국제전화
호텔이나 국제전화용 공중전화를 이용한다. 국제 전화 안내는 104번.
예) 서울 123-4567번으로 직접 통화할 경우
• (001) - (82) - (2) - (123-4567) → 국제전화코드-한국국가번호-0을 뺀 지역번호-번호

국제전화카드(SingTel World Card)의 종류로는 S$10,S$20 짜리가 있으며 창이공항과 모든 우체국에서 구입할 수 있다. 호텔에서 IDD 통화를 할 경우 추가 부담이 없다.


미용실
대부분의 호텔에는 모든 종류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용사가 있다. 쇼핑센터에도 미용실이 있는데 커트 뿐 아니라 퍼머나 얼굴 마사지,매니큐어,패디큐어 등 디테일한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세탁
대부분의 호텔에서 당일 세탁 서비스가 가능하다. 보통 셔츠 세탁비는 S$5,드레스는 S$10,양복 드라이크리닝은 S$14이다. 개인 드라이크리닝 업체는 싱가포르 전화번호부의 Yellow Pages편을 찾아 보면 된다.

우편
싱가포르 곳곳에 1300개의 우체국이 위치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우편,전화 및 대행서비스를 하고 있으며 대부분 우체국의 업무시간은 월요일에서 금요일,오전 8:30에서 오후 5시까지 토요일 오전 8:30에서 1시까지이다.

다음의 장소에서도 우편을 취급한다.
• 싱가포르 추체국 (Singapore Post)
Robinson Road Branch
71 Robinson Road #01-00
Singapore 068895
업무시간 : 오전 8:30am 오후 6시 (월-금)
오전 8:30am 오후 2시 (토)
일요일 및 공휴일에는 문을 닫습니다.
인터넷 : http://www.singpost.com.sg

유용한전화번호
▣ 대사관/영사관 관련사항
• 주 싱가포르 대사관
-주소 : 101 Thomson Road,#10-02/04(대사관)
#13-05(영사과),Singapore 307591
-전화 : 256-1188
-팩스 : 254-3191

▣ 긴급연락처(경찰서,병원 등)
• 경 찰: 999
• 화재/병원 앰블런스: 995
• 국립대학병원: 779-5555,
• Mt. Elizabeth 병원: 737-2666
• Singapore General Hospital: 222-3322

의료시설
좋은 의사와 치과의사들을 갖춘 싱가포르의 의료시설은 세계 수준급이다.
약국은 슈퍼마켓이나 백화점, 호텔, 쇼핑센터들에서 찾을 수 있는데, 약사는 오전 9시에서 오후6시까지 근무한다.


전압 및 주파수
220-240V. 50HZ로서 한국의 110/220V 겸용 전자제품을 대부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지만 110V 전용 제품은 사용이 불가능하다. 문제는 싱가포르는 3개의 구멍이 있는 방식의 플러그를 사용한다는 것인데 호텔 같은 곳에서 보조장치(어댑터)를 빌려주기도 하지만 충분치 않을 경우에는 구매해서 사용해야 한다.

체험물가
싱가폴은 다른 동남 아시아의 어떤 나라보다 물가가 비싼 편이다. 여관에서 숙박하고 싸게 먹는다면 하루에 20달러 이하로 체류가 가능하다. 만약 중급의 호텔과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다면 최소한 70달러 이상이 든다.

주요 신용카드는 널리 사용되며 자동 현금 인출기도 곳곳에 많이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비상시를 대비하여 여행자용 수표와 약간의 현금은 가지고 다녀야 한다. 그리고 싱가폴의 모든 쇼핑 센터에는 환전기가 구비되어 있다.

치안
싱가포르는 여타국가보다는 강력한 법체계를 유지하고 있고 사회 제반제도 및 국민의식이 비교적 선진화되어 있어 치안상태는 상당히 양호한 편이다. 그러나 공항 식당, 호텔 로비 등에는 우리 여권을 절취하려는 날치기 및 소매치기가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통화
▣ 통화단위
싱가포르 달러이며 S$,S¢(달러와 센트)로 구분된다.
(미국달러,말레이시아 달러와 구분하기위함이다.)

▣ 통화종류
• 지폐 : S$2,S$5,S$10,S$50,S$100,S$500,S$1000로 7종류
• 동전: S¢1,S¢5,S¢10,S¢20,S¢50,S$로 6종류


한국으로 전화
공중전화는 카드 전용전화가 일반적이다. 흰색은 텔레폰카드,노란색은 신용카드 용이며 국내 통화,국제 통화가 가능하다. 국내전화는 10S¢로 3분 통화가 가능하며,동전 전용전화는 10S¢용 동전밖에 사용 할 수 없다.

• 콜렉트콜을 이용한 전화 : 8000-082-820(한국통신 접속번호)+0을 뺀 지역번호+상대방 전화번호
8000-821-821(데이콤 접속번호)+0을 뺀 지역번호+상대방 전화번호
• 입력카드 전용전화 : 001(국제자동식별번호)+82+0을 뺀 지역번호+상대방 전화번호

현지로 전화
001(국제자동식별번호)+65(싱가포르 접속번호)+0을 뺀 지역번호+상대방의 전화번호 입력


주의사항
▣ 외국인 금기사항
싱가폴은 벌금제도가 활발한 나라이다.
담배는 흡연구역에서만 피워야하고 쓰레기를 길거리에 그냥 버린다거나 무단횡단을 할 경우 벌금을 지불해야한다.

▣ 복장 및 의복 관련사항
남쪽으로 80마일 적도에 위치하고 있기에 싱가포르는 매우 덥다. 일일 평균 기온은 26도시이나 11-1월까지 북동 계절풍이 부는 기간 동안에는 선선한 편이다. 일일 평균 습도는 약 85%이며,비가 자주 오는 편이나 해가 다시 떠오르면 빨리 마르는 편이다.

무덥고 끈적거리는 기후이므로 반바지,티셔츠,바지 등을 입는 것이 좋으며 지나치게 노출되는 복장은 빈축을 사므로 피한다. 에어컨이 완비된 호텔이나 식당에서는 다소 춥기 때문에 걸칠수 잇는 스웨터,자켓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고급 호텔의 만찬장에서는 정장을 입어야하나 대부분의 레스토랑에서는 캐주얼한 복장이 일반적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장을 요구하는 업소가 있으므로 사전에 복장에 관한 조건을 체크해 보아야 한다.


비자
▣ 국내 비자발급처

기 관 명 : 주한 싱가포르 대사관

주 소 : 서울시 중구 태평로2가 310 태평로빌딩 19층

전화번호 : 02-774-2464-7

팩스번호 : 02-773-2464

근무시간 : 08:30-12:30 13:30-17:00, 토요일 휴무


▣ 비자신청시 유의사항

싱가포르와는 3개월 무비자 협정이 체결되어 있으나 입국 시에는 통상 30일간의 체류비자를 부여한다. 30일 이상 체류코자 하는 경우에는 이민국(T:65 6391-6100)으로부터 체류기간 연장을 받아야 한다. 기간연장 은 하루정도 소요된다. 또한 임신한 여성이 싱가포르에 입국하고자 할 때에는 가까운 싱가포르 해외 공관이 나 싱가포르 이민국에 사전 신청을 해야 한다. 입국을 위해서는 여권 만기일이 6개월 이상 남아있어야 한다.


현지교통

렌터카
차량 임대시에는 국제 면허증이나 싱가폴내 운전 면허증을 제시하여야 한다. 하루에서 일주일 단위로 임대하는데 가격은 회사마다 다르다. 운전기사까지 빌릴 때는 3시간 단위로 계산된다. 개인이 렌터카로 여행할 때에는 각별히 주의 해야할 점은 핸들이 오른쪽에 붙어 있어 한국과는 다른 운전 방향에 어느 정도 익숙해 지도록 천천히 감각을 익히는 것이 필요하다. 또하나 주의 할 점은 일방도로가 많으므로 조급하게 운전하지 말고 한바퀴 돌아서 간다는 생각으로 여유를 가지고 해야한다.

버스
노선이 다양하며, 기본요금은 60¢이다. 시내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동전을 준비하여 두는 것이 좋다. 싱가폴에는 붉은 색이 그어진 SBS버스와 노란색과 오렌지색으로 도색한 TIBS버스의 두 가지 버스 회사가 있다.

요금은 거리에 따라,냉방여부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관광객은 하루에 $5, 3일에 $12하는 'Singapore Explorer Ticket'을 구입하면 제한 없이 버스를 이용 할 수 있으며 이 승차권을 구입하면 싱가폴 안내 지도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전철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싱가폴 지하철은 기본요금이 60¢로 4정거장 마다 10¢씩 추가 된다. 요금이 저렴하며 시내 중심지에 지하철역이 많으므로 이용이 편리하다. 2개의 노선이 동서,남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총 연장이 70㎞이 넘으며,48개의 역이 있다. 운행시간은 오전 6시부터 자정까지 3-8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요금은 60¢에서 $ 1.50까지 적용된다.

택시
싱가폴에는 5개의 택시회사에 약 1만대의 택시가 운행하고 있으며,깨끗하고 친절하다. 기본요금은 1㎞에 $ 2.40이며,240m당 10¢씩 추가되는 거리,시간병산제로 운행되고 있다. 또한 혼잡한 시간대에는 시내지역을 통과할 경우 추가 요금이 올라가며,무거운 짐이나 큰 가방을 트렁크에 실을 경우 개당 50¢씩 가산금이 더해진다.

실제의 미터기 요금과 요구하는 금액의 차이가 있을 때에는 이를 먼저 확인한 후 지불하도록 한다. 공항에서 출발하는 경우$ 3이 추가되며 크레디트 카드로 계산 할 경우 10%의 추가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또한 전화로 택시를 부를 경우에는 $ 2.20,예약을 할 경우에는 $ 3.20가 부가된다.


싱가포르의 기후는 온난다습하며, 낮 평균 최고 기온은 32˚C, 저녁 최저기온은 24˚C로 일교차가 비교적 적은 편이다. 월평균기온은 높은 편으로 25˚C이고 6월의 27˚C이다.

연중 고르게 비가 내리며, 몬순기후인 11월부터 1월까지 강우량이 보통 때보다 많고 스콜이 자주 내리는 우기이다. 연평균 강우량은 2,400㎜이나 물 공급의 2/3 이상을 말레이시아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연 강우량은 고르게 분포되나 북동 계절풍이 부는 11-3월 사이에 월평균 250㎜, 남쪽 계절풍이 부는 5-9월 사이에는 178㎜로 차이를 보인다

싱가포르 기후의 장점은 태풍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주변의 다른 섬들로 둘러싸인 안전한 지형 덕분에 쓰나미 피해도 발생한 적이 없다.




▶ 싱가포르 [Singapore]

싱가포르는 옛날 수마트라의 왕자가 이 곳을 찾았다가 낯선 동물을 보고,이를 사자로 오인하여 이 곳을 '사자의 도시'라는 뜻에서 '싱가푸라'(Singa Pura)라고 부르게 된 데에서 유래한다.
'Garden City'라는 이름 그대로 곳곳에 열대의 녹음과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며 세계 각지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요리의 천국이다.

선진화된 시설과 교통, 우수한 호텔과 훌륭한 음식, 관광객들을 매혹시키는 다양한 문화와 축제 등을 바탕으로 싱가포르는 연간 600만에 이르는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관광왕국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이른바 ‘Clean & Green’ 정책을 추구하는 싱가포르의 도시환경을 높이 세울 수 있는 데, 이는 가히 최고의 수준이다. 싱가포르 국민보다 많은 수의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는 이유 또한 바로 그 점에서 비롯된다.
깨끗한 거리와 맑은 공기,편리한 교통과 선진화된 제반 시설 등을 갖추고 있어,싱가포르는 외국인 관광객들로부터 다시 찾고 싶은 나라 1순위로 뽑히고 있을 정도이다.

싱가포르는 오래전부터 쇼핑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대규모의 냉방시설과 편의시설을 갖춘 쇼핑몰, 백화점, 부띠크 등에서 연중 쇼핑을 즐길 수 있으며, 이곳을 빈손으로 떠나는 방문객들이 거의 없을 정도로 싱가포르의 쇼핑환경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교육
싱가폴은 안전하고 학습에 도움이 되는 환경을 제공하는 편인데,안정적인 정부,편안한 교통시설,훌륭한 주거시설을 자랑하며,세계적인 문화와 교육의 중심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싱가폴의 의무 교육 제도는 없고,6. 4. 2. 3 제를 채택하고 있다.
6세에 국민학교에 입학하여 졸업한 다음 취직하는 학생이 30%,초급 중학 4년을 마치고 취직하는 학생이 40%,고급 중학2년 졸업 후 취직하는 학생이 2.5%,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학생은 전체의 5%에 불과하며,대학은 싱가포르 국립 대학 1개 뿐이다. 철저한 능력주의로서 성적이 나쁘면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없을 뿐아니라,대학에서도 학점 미달이면 가차 없이 유급 시킨다.


북위 1°20'의 위치에 있는 싱가포르는 적도를 바로 아래에 두고 있기 때문에, 기온의 변화가 적은 편이다. 기온은 23.8-30.8℃ 사이이며, 가장 많은 비가 내리는 달은 11-1월경으로 이 시기는 북동 몬순의 영향을 받아 소나기(스콜현상)가 잦다. 또한 7-8월은 기온이 가장 높다. 그 외에는 따뜻하고,맑은 날씨가 많아 일광욕 ,수영,해양 스포츠를 즐기기에 좋다. 전반적으로 기후는 계절의 변화가 뚜렷하지 않고, 온난 다습하며, 낮 최고 기온은 32℃, 최저기온은 24℃로 일교차가 적은편이다. 최고 평균 기온은 31 ℃,최저 평균기온은 24℃,평균 강수량은 2,500 mm로 생활하기에 알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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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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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양 위에 떠 있는 섬나라 "인도가 망고를 떨어뜨렸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스리랑카는 북위 5∼10°(남북길이 약 437km),동경 79∼82°(동서길이 약 225km) 사이에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푸른 자연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곳,천혜의 자연 환경으로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넉넉한 마음씨 인도양에 있는 섬나라이다. 옛 이름은 실론(Ceylon)이었는데,1972년 새 헌법을 공포하면서 스리랑카로 바꾸었다. 스리랑카는 "찬란하게 빛나는 섬"이란 뜻이다. 면적은 65,610㎢으로 한국의 2/3정도 크기로 100㎞이상 이어지는 해안과 키작은 관목들이 무성한 정글을 이루며 해발 1000m의 높은 산들은 이 곳이 작은 섬이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수도 콜롬보는 식민지시대에 외국인들이 건설하였기에 "스리랑카답지 않은 도시"라고 일컫는다. 주요 도시는 카타라가마,스리 파다,도시라고 부르기 어색할 정도로 작고,귀여운 도시 캔디가 있다. 인구 18,663,000명이고 주요 민족은 신할라족으로 약 70%을 차지하며,타밀족,이슬람교도가 구성되어 있다.


면적 : 6만 5610㎢


수도 : 콜롬보


인구 : 1939만 9000명

정치형태 : 공화제

종교 : 전체 인구 중 69.31%로 2/3(대부분 신할라족)이 불교도이며,인구의 1/6인 15.46%가 힌두교로 타밀족이 많으며,이슬람교도가 7.46%,기독교도가 7.49%정도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다수 민족인 신할라족은 소승불교를 믿고 있어 자신의 구제를 구하는 개인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잇다. 힌두교는 타밀족이 주로 믿고 있으며 드라비다 계통의 남인도 힌두교에 속한 신들은 신전에 상주하면서 소원을 들어 준다고 믿는다. 이슬람교는 동서 무역의 중심지였던 관계로 아라비아 상인으로 인해 전해졌다. 그리스도교는 대부분이 유럽인과 현지인의 혼혈인 버거들이 믿고 있다.


주요민족 : 스리랑카는 여러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가장 큰 인종집단은 인구의 약 70%를 차지하는 신할라족이다. 그 외에도 타밀인,버거라 불리는 유럽와의 혼혈인,아랍 선원들의 후손인 무어족,말레이인 등 소수 민족도 있다.


주요언어 : 공용어는 신할라어(스리랑카어)와 타밀어이다. 그러나 여러 해 식민지배를 받았던 사람들 중 엘리트들은 영어로 이야기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신할라어와 타밀어모두 할 줄 알지만 영어로 얘기한다. 관공서,고급관리,의사,변호사,호텔 등 외국인의 출입이 많은 지역은 대부분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


기후
인도의 끝 동남쪽에 위치해 있는 스리랑카는 지형에 따라 기온 차이는 다르다. 해안 지방,낮은 지역은 열대 지역답게 일년동안 연평균기온이 27∼28℃에 이르며 대부분 지역에서 상대습도가 매우 높다. 중앙고원 지대인 누와라 엘리야 같은 지역은 연평균 16℃의 기온으로 항상 봄같은 날씨를 보인다.

스리랑카 전 지역은 열대성 몬순 기후에 속하여 적도에서 불어오는 남서 몬순과 뱅골 만에서 불어오는 동북 몬순으로 우기와 건기가 찾아온다. 몬순을 4기로 나눌 수 있는데 남서 몬순기(5-9월)는 적도에서 습한 공기의 계절풍으로 남서쪽 해안지대에서 고원지대로 비를 내리지만 동북부에는 비가 오지 않는 건조한 날씨를 보인다. 인터 몬순기(10월)은 저기압 영향으로 비가 오거나 천둥ㆍ번개가 친다. 동북 몬순기(11-3월)은 뱅골 만에서 섬의 북동부를 중심으로 전체에 비를 뿌리는 몬순이다. 인터 몬순기(4월)을 가장 무더운 시기로 가끔 저기압으로 해양풍에 의한 비가 온다. 남서부는 습한지역,북부와 동남부는 건조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강우량은 북부와 동부 건조지대는 1,000㎜미만,남서부 습지대는 5,000㎜이상 비가 온다.


산업
개발도상국 수준의 혼합경제 체제를 유지하며 농업,서비스업,경공업 위주로 발전하였다. 농업은 GNP의 약 1/5,노동력의 2/5를 고용하였고,환금작물과 소농들이 재배하는 주식작물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토지개혁으로 인해 약 1/3의 경작지에서 고무와 차를 생산한다.

지리
스리랑카는 지형상 중부 고지와 남서부,동부,북부 저지의 4개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평균고도 1,500m 이상인 중부 고지가 섬의 중심을 이루며 높은 산과 고원들,좁은 협곡들,깊은 하곡들로 이루어져 있으며,스리랑카에서 가장 높은 피두루탈라갈라 산(2,524m)이 중심부에 솟아 있다. 이 지역은 열대 지방이라 생각 못할 만큼 서늘한 기후로 실론티,즉 홍차의 산지가 되었다. 대규모의 차밭이 곳곳에 펼쳐 있어 산마다 옅은 녹색으로 덮여 있다. 중부 고지 산악지대의 라크와나 산맥 줄기가 남서부 지역으로 뻗어 있다. 동부 지역은 잔구들이 산재하여 파랑의 평원을 이루고 북부 저지대는 평평하고 넓은 비옥한 평야를 이루며,여러개의 하천들이 흐르고 있다.


간단한 현지어
현지어 : ayubovan? 아유 보완
의 미 : 안녕하세요?
현지어 : halo 할로
의 미 : 예,그렇습니다.
현지어 : nama mokak da? 나마 목악 다?
의 미 : 이름이 무엇입니까?
현지어 : ov/ehemayi 오브/에헤마이
의 미 : 예,그렇습니다.
현지어 : meka mokak da? 메카 목악 다?
의 미 : 이것 무엇입니까?


역사
BC이전 역사 개요
아시아 남부지역에서 이주해온 원시 오스트랄로이드 종족에 속함 원주민으로 보고 있다. BC 5세기경 인도 북부 지역에서 들어와 신할리족으로 발전한 인도유럽어족에 흡수되었으며,타밀족은 초기 1200년경에 드라비다족이 지배이던 인도에서 이주한 이주민인 것으로 보인다.

BC 3세기에 불교가 전파되었고,정치적ㆍ종교적ㆍ문화적 중심지로 발전하여 아누라다푸라 시가 건립된다. 불교가 널리 퍼지면서 아누라다푸라 왕국이 스리랑카를 지배하게 되었다. 스리랑카 남서부지역에서 신할리족의 지배가 확대되었고 인도 남부지역의 한 왕조가 북부지역을 지배하여 14세기에는 타밀 왕국을 세웠다. 13,14,15세기에 인도ㆍ중국ㆍ말라야에게 침략을 받았다.

AC 1년 - 1900년 까지의 역사
1505년부터 포르투갈,네덜란드의 통치에 있었고 1796년 영국의 식민 경영을 받았다. 1830년부터 잎마름병으로 농장이 황폐할 때까지 커피 산업이 눈부신 경제 발전을 했으며 1880년에는 농장재배작물로 차가 개발되어 주 작물로 재배되었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1919년 국민의회를 통한 신할리족ㆍ타밀족이 연합하였고,영국은 민족주의를 총족시켜주기 위하여 1920년 헌법을 공포하였고 1948년 영연방의 자치령으로 주권국으로의 지위를 식민지 스리랑카에게 돌려주었다.

1956까지 국민연합당이 정권을 유지하다가 신할리족의 주체성을 지키기 우하여 힘쓴 자유당에게 패하였는데,타밀족은 신할리 민족주의에 대하여 반대하였으며 1965년에 국민연합당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1970년 마르크스주의 정파들과의 연합으로 선거에서 큰 성과로 승리하였다. 1972년에 신헌법을 채택한 후 국명을 스리랑카공화국으로 완전 독립을 선언하였다. 1977년 국민연합당은 헌법을 개혁하여 대통령제를 수립 다시 정권을 장악하였고 스리랑카 공화국은 스리랑카 민주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명칭을 변경하엿고 자야와르데네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1981년 신할리족ㆍ타밀족은 민족적 감정이 쌓여 1981년 폭동을 일으켰으며 타밀족 영토의 분리를 주장하고 있으며,스리랑카 북동부지역에서 타밀족 자치국가를 세우기 위한 게릴라전이 1990대까지 벌어지고 있다.


유용한전화번호
대사관/영사관 관련사항
주 스리랑카 한국대사관(Embassy of the Republic of Korea in Sri Lanka)
-주 소:No 98,Dharmapala Mawatha Colombo 7.
-전화:(94-1) 699036-8
주 스리랑카 KOTRA 사무소
-주 소:No 1,Spathodea Avenue,Thimbirigasyaya Colombo 5.
-전 화:(94-1) 597494-5
스리랑카 한인회
-전화:(94-1) 574930,577405-6

긴급연락처(경찰서,병원 등)
경찰 비상 전화번호:433333
외국인이 주로 이용하는 병원
-Nawaloka Hospital (Colombo 8,Tel:691111)
-Joseph Fraser Hospital (Colombo 2,Tel:588385)


전압 및 주파수
230V-250V 50Hz

치안
불교를 믿고 있는 나라로서 치안사정은 안전한 편이다. 하지만 전혀 발생하고 있지는 않고 있기 때문에 귀중품을 소지하고 있을 때는 주의하여야 할 것이다.


통화
통화 단위는 스리랑카 루피로 Sl Rs로 1Rs=Re로 줄여 쓴다. 보조 단위로는 스리랑카 센트(CtS(1센트Ct)로 줄여 쓴다. 1Re=100CTS이다. 지폐의 종류는 5,10,20,50,100,500,1000Rs가 있으나 2,5Rs는 보기 힘들고 동전의 종류는 2,5Rs,1Re와 1Ct,2Cts,5,10,25,50Cts가 있다1USD=60.00SL Rs.(1997년 말 기준)

한국으로 전화
스리랑카의 전화 사정은 국내 30분,국외는 1시간 정도 기다려야 하며,호텔ㆍ게스트 하우스ㆍ우체국ㆍ전보국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공중전화는 보급이 많이 되지 않았고 전화 사정도 좋지 않다.

00(스리랑카의 국제 전화 접근 코드)+82(한국국가번호)+0을 뺀 지역번호+상대방 전화번호 한국에서 스리랑카로의 전화


현지로 전화
001(국제자동전화식별번호)+94(스리랑카국가번호)+지역번호+상대방 전화번호 콜랙트 콜(콜롬보)445-404


주의사항
외국인 금기사항
스리랑카는 사원이 많은데 이곳에 들어갈 때에는 모자와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것이 예의이며 허락없이 사진을 찍어서는 안된다. 또한 스리랑카인들은 카레를 먹을 때 오른손으로 음식을 먹는데 이 모습을 보고 더럽다는 인상을 표현해 서는 안 된다. 그들의 문화도 존중해 주어야 한다.

상품구입시 유의사항
스리랑카는 보석이 유명해서 보석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필히 영수증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교환이 가능하다.

복장 및 의복 관련사항
스리랑카는 년 간 여름의 기온을 보이므로 티셔츠,반바지 등 세탁하기 쉬운 순면으로 된 가벼운 옷들을 가져가는 것이 좋다. 또한 고원지대,즉 산악지대에 오를 때에는 영하로 떨어지므로 스웨터,재킷을 준비 할 필요가 있다.


출입국 정보
비자
▣ 국내 비자발급처
기 관 명 : 주한 스리랑카 대사관
주 소 : 서울시 종로구 종로 1가 교보빌딩 20층
전화번호 : 02-735-2966~7
팩스번호 : 02-737-9577

▣ 비자신청시 유의사항
스리랑카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합니다. 단. 관광목적으로 입국시 14일까지는 무비자 입국이 가능합니다.

▣ 비자신청시 구비서류
관광 비자 구비서류는 비자 신청서, 6개월 이상 유효한 여권, 여권사본, 여권용 사진 2장, 왕복항공권 사본 준비, 상용비자는 비자신청서, 6개월 이상 유효한 여권, 여권 사본, 여권용 사진 2장, 출장증명서를 구비하여야 한다.


인도의 끝 동남쪽에 위치해 있는 스리랑카는 지형에 따라 기온 차이는 다르다. 해안 지방,낮은 지역은 열대 지역답게 일년동안 연평균기온이 27∼28℃에 이르며 대부분 지역에서 상대습도가 매우 높다. 중앙고원 지대인 누와라 엘리야 같은 지역은 연평균 16℃의 기온으로 항상 봄같은 날씨를 보인다.

스리랑카 전 지역은 열대성 몬순 기후에 속하여 적도에서 불어오는 남서 몬순과 뱅골 만에서 불어오는 동북 몬순으로 우기와 건기가 찾아온다. 몬순을 4기로 나눌 수 있는데 남서 몬순기(5-9월)는 적도에서 습한 공기의 계절풍으로 남서쪽 해안지대에서 고원지대로 비를 내리지만 동북부에는 비가 오지 않는 건조한 날씨를 보인다. 인터 몬순기(10월)은 저기압 영향으로 비가 오거나 천둥ㆍ번개가 친다. 동북 몬순기(11-3월)은 뱅골 만에서 섬의 북동부를 중심으로 전체에 비를 뿌리는 몬순이다. 인터 몬순기(4월)을 가장 무더운 시기로 가끔 저기압으로 해양풍에 의한 비가 온다. 남서부는 습한지역,북부와 동남부는 건조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강우량은 북부와 동부 건조지대는 1,000㎜미만,남서부 습지대는 5,000㎜이상 비가 온다.




▶ 시기리야

스리랑카 중부에 있는 유적지로 이 곳은 6세기경 절벽 위에 세워진 사자산이라는 고대 성채의 유적들로 이루어져 있다. 성채가 세워진 암석절벽은 경사가 급하며 상단부가 양쪽으로 돌출되어 있다. 정상부의 해발고도는 349m이며,주변 평야를 기준으로 한 높이는 180미m에 이른다.

477년에 카시야파 1세는 적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정사우의 평지에 궁전을 세웠다. 정상에 오르려면 거대한 사자의 벌어진 입처럼 생긴 입구와 목구멍처럼 생긴 좁은 통로를 거쳐야만 한다.
시기리야라는 이름은 사자산 꼭대기로 연결되는 통로 모양에서 유래되었다.




▶ 아누라다푸라

스리랑카의 첫번째 수도였던 아누라다푸라는 인도 남부에서 이주한 싱할리 세력의 유력한 상징이었으며 가장 큰 규모의 그리고 가장 중요한 스리랑카의 고대도시였다.  서기 380년에 수도로 지정된 후, 1000년 이상 싱할리 왕들이 이 위대한 도시를 지배했었다. 인상적인 유적지들이 19세기 초 발견되었는데 아직까지 복원 중에 있고, 시 북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 캔디

캔디의 시가지는 표고 304m(해발 600m)의 완만한 산들로 둘러싸인 작은 분지에 위치하고 있는 수천 년에 이르는 스리랑카 왕조의 마지막 도읍이다. 지리적으로 이곳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이 적으로부터의 침략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영국에게 멸망하기 전까지 약 300년 이상의 긴 세월동안 신할라 문화의 꽃을 피웠다.

스리랑카 사람들만의 특유한 온화하고 차분한 분위기는 '스리랑카에서도 가장 스리랑카다운 도시'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캔디는 결코 콜롬보처럼 소란스러운 도시가 아니다. 시가지의 중심지는 소란스럽지만 콜롬보와는 어딘가 다른 면이 있다. 게다가 시가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끝도 없을 것같은 숲들이 펼쳐진다. 최근 스리랑카인들이 캔디로 계속 모여들고 있어 새로운 주택지가 들어서고 잇지만 여전히 자연과의 조화는 잃지 않고 있다. 주변의 산들이 일찍이 북으로부터의 침략을 막아 주었듯이 지금은 도시화로부터 캔디를 지켜주고 있다.

캔디의 자랑인 불치사는 석가의 치아를 안치하고 있어 불교도인 신할라인에게 있어서 민족 최고의 성지이다. 캔디의 시가지 중심부에 있는 이 절에는 신할라 민족 최고의 성지인만큼 참배자가 끊임없이 방문하고 있어 조용한 가운데 늘 붐비고 있다.

북에서 번성했던 신할라 왕조가 남인도에서 건너온 침략자들에게 쫓겨 남하를 계속하다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곳이 바로 이곳 불치사이다. 그러나 이곳의 특유의 맑은 공기와 캔디 호에 비치는 불치사의 단아한 모습은 도피처로서의 긴박감보다는 안식처로서의 평온함이 느껴진다. 해질 무렵이 되면 캔디 호에 비치는 불치사의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 캔디 호에 비치는 이 절의 모습은 고요하고 유난히 아름다워서 굳이 불교도가 아니더라도 평온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콜롬보 [Colombo]

국제공항에서 약 34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콜롬보는 수세기 동안 번영한 항구로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해상 수송의 중계지로서 발전해 왔다. 콜롬보는 스리랑카 최대의 도시로 15개의 지역으로 구분되고 있으며,지금은 이 나라의 경제·문화의 중심지이다. 즉,스리랑카의 도시이자 외국인에 의해 발견되고 발전되어진 곳이 바로 스리랑카 최대의 항구 도시 콜롬보인 것이다. 1985년 1월,콜롬보에서 동쪽으로 약 10km 떨어진 곳에 스리 자야와르다나푸라 Sri Jayawardenepura라는 새로운 수도가 생겼지만 실질적인 수도는 아직까지 콜롬보라고 할 수 있다.

식민지 시대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가로수와 도시 중심에 서 있는 시계탑 그리고 오랜 전통을 지켜오고 있는 호텔 등 콜롬보를 대표하는 이러한 풍경은 매우 이색적이다. 스리랑카의 다른 도시들과는 다르게 콜롬보는 아침·저녁의 러시아워 때문에 교통 정체가 다반사일 뿐만 아니라 그 소란스러움도 엄청나다. 이곳의 사람들도 다른 도시에 비해 세련된 젊은이들과 부유해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콜롬보는 스리랑카에서 '가장 스리랑카답지 않은 도시'라고 불리고 있다.

스리랑카 사람들의 생활모습은 매우 평온하고 충실하다. 콜롬보 또한 그런 모습으로 변화되고 있다. 이 도시가 외국인에 의해 생겨났기 때문에 서양적인 관습이나 풍습이 널리 퍼져 있다고 하더라도 스리랑카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이다. 노점상에서 손님을 부르는 소리,만원 버스 등 도시에 있는 모든 것이 이곳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교통체증으로 이곳을 빠져나가려고만 하면 콜롬보 시를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여유있게 여행하면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콜롬보는 대도시이지만 주변에 볼거리가 많아서 오래 체류하다 보면 상당히 재미있는 곳으로 도심을 빠져나와 조금만 나가보면 고대의 숨결을 느껴 볼 수 있는 갖가지 관광지들이 있다. 많은 유적들,야자수가 늘어서 있는 해변,나무가 우거진 숲을 비롯해서 매력적인 다양한 장소들이 많으며,'아시아의 정원도시'라는 별칭에 어울릴 만큼 초록색이 많다.

콜롬보에는 스리랑카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식민지적인 분위기가 가장 짙게 남아 있는 관청가 포트와 스리랑카 최고의 바자르(노천 시장) 그리고 번성해서 활기가 넘치는 서민의 거리 펫타가 있다. 전혀 다른 모습의 이 두 지역은 아주 작은 운하를 사이에 두고 이웃하고 있으며,이 모습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잘 조화되어 공존하고 있다.

콜롬보의 기후는 고온 다습한 열대성 기후이며,12∼2월의 2기에 몬순이 분다. 연평균 기온은 섭씨 27℃이며,연 강우량은 2,365mm이다. 콜롬보는 기온이 가장 낮은 12∼1월 평균기온이 29℃로서 한서(寒暑)의 차이가 3.5℃밖에 되지 않는다.



▶ 폴론나루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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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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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나이의 국어인 말레이어로는 Negara Brunei Darussalam('평화의 집'이라는 뜻)이라 칭하며,말레이이슬람왕조를 국가 이데올로기로 하고 있다. 이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들 중의 하나이지만 새롭게 부각되는 가장 부유한 나라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막대하게 매장된 원유와 천연 가스는 이 나라를 부유케 하여 세계에서 국민 소득이 두번째로 높은 나라를 만들었다. 작은 브루나이 다루살람(평화의 거처)은 철저한 모슬렘 국가로 현재 29대째 왕권을 잇고 있으며 술탄의 권력은 절대적이다. 브루나이는 보르네오 북쪽 해안에 둘러 싸인 두 개의 해안과 정글로 구성된 작은 나라이다 한 때는 사람의 머리를 모으는 사람 사냥꾼들이 살았다고 전해오지만,현대의 브루나이에서는 이런 미개함의 자취를 찾아 볼 수 없다. 델라웨어 정도의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국가 건설은 엄청난 규모로 이루어졌다. 공항은 브루나이보다 열배는 더 큰 나라에나 알맞을 만큼 크고,일반 건물도 화려하다. 최근 지어진 술탄의 궁전은 천8백개에 이르는 방으로 인해 벌써 기네스북에 올랐다. 아마 세상에서 제일 부유한 술탄에게 걸맞는 일인지 모른다. 수도와 다른 몇몇 해안가 도시를 제외하고는 브루나이는 인적이 드문 삼림으로 메워져 있다. 브루나이에는 원유 사업을 위해 머무르는 미국과 유럽의 '오랑 푸테' (백인)들의 사회가 형성되어 있다. 높은 생활 수준과 이국적인 기후로 인하여 사람들은 종종 브루나이가 가장 이상적인 열대의 낙원이 라고 생각한다. 영국은 말레이 반도와 브루나이를 백년이 넘도록 식민통치를 하다가 1984년에야 독립을 허락하였다.

이 나라는 말레이시아와 남지나해를 경계로 동남아시아에 위치해 있으며 또한 인도네시아령 북부에 말레이시아령 사라왁과 사바 및 라부안섬으로 둘러싸여 있다. 브루나이의 종족 구성비는 말레이계가 64%,중국계가 20%,기타가 16%이며,종교 구성비는 무슬림 63%,불교 14%,기독교 및 카톨릭 8%이다. 국토의 72%가 산림지역이며 경지면적이 4%에 불과한 동 국가는 식량자급도를 높이는 문제에 가장 역점을 두고 있다. 현재 동 국가의 식량 자급도는 약 10% 정도이며,이것을 35% 수준까지 끌어 올리기 위해 호주 중북부의 월러루(Willeroo)지역에 국토면적보 다 28평방킬로미터나 더 넓은 경지면적을 소유하고 있다. 브루나이의 면적은 작지만 원유와 천연가스가 풍부하여 석유로부터 얻는 수입이 GDP의 40%를 넘고 있으며,또한 GDP의 일부는 해외 투자에서 얻는 수익을 포함한다. 이 국가는 원유와 액화 천연가스 등을 일본(50%),영국(19%),태국(10%),싱가포르(9%) 등에 수출하고 있으며,총 수출액이 2백40억달러에 이르고 있다. 반면,기계류,수송장비,제조상품,식량,화학제 품 등을 싱가포르(29%),영국(19%),미국(13%),말레이시아(9%),일본(5%)에서 수입하고 있다. 정치제도는 국가원수(국왕:Sultan)제를 지니고 있으며,현재는 제 29대인 하싸날 볼키아국왕(68.8.1 즉위)이다. 국왕의 공식명칭은 매우 길은데,His Majesty Paduka Seri Baginda Sultan Haji Hassanal Bolkiah Mu'izzddin Waddaulah,Sultan and Yang Di-Pertuan of Brunei Darussalam이며,약칭명칭은 His Majesty Sultan Haji Hassanal Bolkiah이다. 정부조직은 수상실과 12개 부처로 구성되어 있는데,국왕은 수상과 국방장관,재무장관 겸임하고 있다. 또한 입법부는 없으며,정당활동도 형식상 보장되어 있지만 현실적으로 의회가 없고 또한 모든 정치활동이 엄격히 규제되고 있어 정당의 존재는 유명무실하다. 현재 유일합법정당으로 86.2 창당한 브루나이 국민연합당(Brunei National United Party)가 있으나 활동이 전무하다. 사법부는 형식상 독립기구이나 국왕에 종속되며(고위직 법원장은 국왕이 임명),최고법원(Supreme Court),중급법원(Intermediate Court),하급법원(Subordinate Court) 및 종교 법원(Islamic Court)로 구성되어 있다. 지방행정 구역은 4개로 구성되어 있는데,Brunei/Muara지역(지방청 소재지:Bandar Seri Begawan),Tutong지역(Tutong),Belait지역(Kuala Belait),Temburong지역(Bangar)이 있으며,지방청의 산하에는 Mukim(장:Penghulu) 및 Kampong(장:Ketua)가 설치되어 있다. 정치정세는 말레이 회교왕정 개념(MIB)을 기본통치 철학으로 채택하고 있어 절대왕정체재가 강화되고 있으며,금주령 유지,회교 교육강화,회교 교리의 생활화,공무원 및 군경우대 정책이 실시되고 있다. 또한 전국민 의료보험,연금제도,정부주택제공,무상교육 등 각종 사회복지정책을 통하여 국민의 생활수준 향상을 도모함으로써 절대왕정제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부의 편중(국왕 및 왕실,일부 왕족,고위공무원 등) 및 최근 경제위기로 계층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편이다.


면적 : 5,770㎢


수도 : 반다르세리베가완


인구 : 34만 4000명

정치형태 : 입헌군주제


종교 : 1984년에 비로소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 조그만 나라 또한 남동 아시아에서 이슬람교가 가장 왕성한 나라이다.

주요민족 : 브루니아의 종족 구성비는 말레이계가 64%,중국계가 20%,기타가 16%이며,종교 구성비는 무슬림 63%,불교 14%,기독교 및 카톨릭 8%로 구성되어 있다. 인구의 64%를 차지하는 브루나이 말레이족은 모슬렘으로 이 나라 역사의 대부분을 다스렸으며,분별력 있고 강력한 공안 경찰력을 보유하고 있다. 국민들은 이슬람은 국교로 메카를 순례한 사람이 갖고 있는 자부심은 대단할 정도이다. 인구 20%에 달하는 중국계는 대부분 무역과 사업에 종사하는데 이들 중 대부분이 무국적의 영구거주자들이다. 중국인들에게 있어 시민권 획득은 거의 불가능하여 이들은 무료 의료 혜택 등의 특권에서 제외되고 있다.


주요언어 : 말레이어가 공용어이나 관공서나 지식층에서는 일반적으로 영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화교들은 중국어를 사용하고 있다.
브루나이는 말레이어를 국어로 사용하고 있으며,전체적으로도 말레이어가 통용되고 있 으나 최근 들어서는 영어도 많이 보급되고 있는 편이다. 공식 행사대나 거리의 표지판은 말레이어로 표기하는 것이 의무화 되어 있다. 또한 학교교육,TV,라디오 등에서는 표준 말레이어가 사용되고 있으나 일상생활에서 사용되고 있는 말레이어는 단어와 억양에 있어 표준 말레이어와 약간의 차이가 있다.
브루나이에서의 언어 비율을 말레이어가 50%로 가장 많이 쓰이고 다음으로 브루나이어가 19%,중국어가 13%이고 영어가 3%이며 기타언어가 15%를 차지한다.


경제
부르나이는 풍부한 석유와 LNG 수입(GDP의 약 52.3%,브루나이 총수출액의 91%) 및 보유외환(약 300억불 규모)의 해외운용을 통한 수익금 등으로 안정된 경제 유지해 오고 있으나 경제의 석유산업 의존도가 높으며 제조업 등 국내산업 기반이 취약한 편이다(보유 외환은 대부분 국왕의 재산). 제7차 경제개발계획(1996-2000)을 통해 산업다각화 추진을 시도하고,BIMP-EAGA(동 아세안 성장지대) 개발사업 추진과 연계,Muara 항만시설의 대대적인 확장사업등 기간산업을 발전시켜 나가면서,자유무역 지대 설치 등 무역추진 등을 통한 적극적인 경제발전 모색중 경제개발증진을 위해 외국인의 대 브루나이 투자,특히 최근에는 high-tech산업투자를 적극 장려하고 있고,투자상 각종 혜택을 부여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나 실질적이고 규모있는 투자 미미 최근 동남아를 위시한 아시아 외환 및 금융위기 여파로 98년말 현재 브루나이 화폐가가 15.5%(97.7 대비) 하락하고 석유수입 감소,정부재정 축소 및 건설경기 저조라는 연쇄적인 파급효과 초래했다. 최근 석유 수입감소,최대기업 Amedeo사의 파산 여파,계층간 소득격차 심화,경기 침체등 경제적 불안이 지속되고 있는 바,경기회복은 국제석유가가 현상태로 유진된다는 전제하에 내년 하반기에나 가능할 것으로 전망 브루나이의 경제 회복 및 발전을 위해서는 정부 및 관료 부문의 개혁,고급 인력의 개발,지속적인 고유가 유지,Amedeo사 파산 수습과정에서 초래된 실추된 신뢰도 회복이 관건이다.


산업
주요산업으로는 원유 및 천연가스가 있는데,원유는 929년 발견후 1932년부터 상업생산을 개시했으며,매장량은 약 14억배럴(최근 추가 발견)에 달하고 1일 생산량(98년도)은 158,451배럴 정도이다. 생산량은 거의 전량 ASEAN(27%),일본(19%) 및 한국(29%)에 수출(98년도)하고 있다. 천연가스는 1974년에 생산을 개시(매장량 14조 입방피트)했으며,1998년도에 연간 약 620만톤 생산하고 있으며,수출량은 연간 500만톤 중 일본(89%) 및 한국(11%)에 전량 수출하고 있다. 건설분야는 석유산업 다음가는 주요산업으로 정부의 공공개발사업이 주도하고 있는데,최근의 재정적자 누적으로 인한 공공개발 예산축소 및 아시아 경제위기 여파로 전반적인 건설경기가 침체현상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제7차 경제개발계획에도 불구하고 상당기간 동안 중대형 공사의 추가발주 가능성이 희박하다. 공업분야는 미미한 편이며,아직 초보단계로서 경제개발계획에서는 수개 공업분야(예 : 식품가공,가구)가 잠재력이 있다고 보고,개발부문으로 선정하고 추진하고 있으나,실적은 미미한 편이며,공산품,식료품 등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부르나이는 산림이 전국토의 75%,경작지는 5%에 불과해 브루나이인은 농업에 대해 매우 관심이 부족해 대부분의 농작물은 수입(쌀의 경우 80%)에 의존하고 있다.


지리
브루나이는 남중국해를 해안선으로 북위 4。 2´에서 5˚ 3´,동경 114。 4´에서 115。 2´,보르네오 섬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말레이시아의 사와라크주를 사이에 두고 나누어져 있다


역사
AC 1년 - 1900년 까지의 역사
브루나이는 말레이국가 형성시,즉 6세기에 중국과의 교류를 시작한 기록이 중국의 고문헌에 기록되어 있으며,15세기경에 현재 왕실의 선조 무함마드가 초대 술탄에 즉위하였으며 브루나이 이슬람 왕국이 세워졌지만 그 이전에는 마쟈파힛 왕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힌두교의 영향이 강하였다. 그 후 제 5대 술탄시대에까지 번영하여 2~3세기 동안 브루나이 왕국은 보르네오섬 전역과 남부 필리핀의 섬들을 통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16세기에 들어와 서구제국의 아시아 진출과 동시에 브루나이 침입,영토 할량이 시작되고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였으며 브루나이가 지배하고 있던 술루군도의 술루족에게까지 정복당하였다. 17세기에는 브루나이의 동.남부지방을 네덜란드에게 통치권을 내어주고 더욱더 어려움을 겪으면서 브루나이는 오늘날 보르네오섬의 북부지방 일부만을 영토로 하고 있다. 마닐라 점령기간 중에 스페인에 포로로 잡혀있는 술루왕국의 전 술탄을 석방시켜 술루왕국으로 보내자 왕은 이에 대한 대가로 술루왕국의 북보루네오 지역을 영국 동인도회사에 양도해 주었다.

1877년 영국은 북보르네오 회사를 새롭게 설립하고 술탄으로부터 지배권을 이양 받아 1882년부터 동인도회사가 영국국왕의 허가 하에 북보르네오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1928년에는 세리아 지역에 유전이 발견되어 1932년부터 원유생산이 개시되었으며,1941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군에 의해 3년반동안 점령되었었다. 1950년에는 28대 국왕인 Omar Ali Saifuddin(현국왕의 선친)가 즉위하였고,1959년 9월 29일 자치정부 헌법제정이 공포(외교,국방 및 안보는 영국이 관장)되었다. 1968년 8월 1일에는 제29대 국왕인 Hassanal Bolkiah가 즉위하였으며,1971년 11월 23일에 영국과의 조약개정으로 내정은 완전 자치를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외교관계는 영국이 계속 관장하고,국방 및 안보는 상호협의에 의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로 부터 약 14년이 흐른 후에야 비로서 브루나이는 1984년 1월 1일 영국으로부터 완전독립을 얻어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유용한전화번호
대사관/영사관 관련사항
주 브루나이 한국대사관
-주 소:No. 17,Spg 212-28,Kg. Rimba
Jln. Kampoag Rimba. BSB BE 3119
-전화:(673) 2-426038/9/0
-위치:공항에서 서남쪽으로 15Km,차로 10분 또는
도심에서 서쪽으로 12Km,차로 10분이다.

긴급연락처(경찰서,병원 등)
전화안내번호는 113번,경찰서는 993번,앰블런스는 991번,그리고 소방서는995번을 사용하면 된다.


전압 및 주파수
220V,50HZ

치안
이슬람 왕국으로 치안상태 양호하다. 여행자들은 아직은 특별한 신변상의 안전 조치 없이 자유로이 여행할 수 없으나 최근 외국인에 의한 범죄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있으므로 늦은 시간의 단독여행은 주의가 필요하다.


통화
브루나이 달러로 B$로 표시한다. 브루나이는 1967년 6월 이래 싱가포르달러와 등가자유교환협정을 맺고 있다. 미 달러화대 공식환율은 B$2.1이다. ASEAN(1997)자료에 의하면,브루나이의 96'년 국민총생산은 61.2억 달러로 같은 해 라오스가 15.9억,미얀마가 143.1억,베트남이 190.8억 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대단히 높은 수치이다.


한국으로 전화
한국으로 전화할 때는 IDD(직통)는 0082-(지역번호)-(가입자 번호)를,STD(교환대)는0182-(지역번호)-(가입자 번호)를 이용하면 된다. 한국으로의 통화요금은 보통 1분당 브불 2.60 정도이다.


현지로 전화
001 또는 002(국제전화 서비스업체)-673(국가 코드)-2(지역번호)-상대방 전화번호


주의사항
외국인 금기사항
회교이외 종교의 전도활동,주류반입 및 판매,마약 거래는 금해야 하며,회교사원에 들어갈 때는 존경과 청결의 표시로 신발을 벗어야 한다.

사람,물건 등을 지적할 때 손가락 사용을 하면 안되며,반드시 오른손 주먹을 쥐고 엄 지손가락을 검지 위쪽으로 하여 지적해야 한다. 앉는 자세에 있어서도 서양식으로 다리를 꼬고 앉으면 불경스런 행위로 간주된다. 인사할 때는 오른손으로 악수를 한 후 오른손을 자기 가슴에 갖다 대는 습관이 있으나 외국인의 경우 반드시 이에 따라야 할 필요는 없으며,이슬람국가이지만 아랍권에서와 같은 껴앉는 습관은 없다.

복장 및 의복 관련사항
노출이 심한 웃옷이나 짧은 바지는 입지 않는 것이 좋다.


비자
▣ 국내 비자발급처
기 관 명 : Embassy of Brunei Darussalam(주한 브루나이 대사관)
주 소 :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211, 광화문빌딩 7층
전화번호 : 02-399-3707, 02-399-3708
팩스번호 : 02-399-3709
근무시간 : 09:00-12:30 & 13:30-17:00, 토요일 휴무

▣ 비자신청시 유의사항
부루나이는 14일간 범위내에서 무사증 체류할 수 있다. 현지 체류연장은 불가능하니 장기체류 예정자는 반드시 입국전에 입국목적별 사증을 받아 입국하여 2주내 장기체류사증을 신청하여야 한다. 단, 신부, 목사 등 성직자와 스님의 입국은 목적을 불문하고 사전에 입국허가를 받아야 한다(주한 브루나이대사관에 문의).


▶ 브루나이 [Bandar_Seri_Begawan]

아주 깨끗하고 짜임새가 있는 현대적인 도시인 반다르세리버가완(Bandar Seribegawan)인 부루나이의 수도이다. 이곳은 관광객들에게 BSB 또는 반다르로 불리운다. 브루나이에서 도시 형태를 갖춘 유일한 곳은 이곳 반다르 뿐이며,볼거리가 있는 몇 안되는 여행지 중 한 곳이지만 조금은 지루한 곳이기도 하다. 간단하게 이야기 하자면 반다르는 이슬람과 오일머니의 도시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우리가 쉽게 알아 보기 힘든 아랍 문자로 쓰여진 표지판들이 거리를 장식하고 있으며,회교 사원의 돔과 뾰족한 탑이 하나의 도시풍경을 나타내고 있다.

브루나이의 수도인 반다르에는 안드라대학교에 속한 여러 개의 단과대학들이 있으며 기술연구소도 이곳에 있다. 이곳 반다르에서의 주요산업은 양탄자 짜기,정미(精米),종자유 생산 그리고 과학기재 제작과 같은 것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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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의 끝’이라는 뜻을 가진 부탄 왕국은 광대한 히말라야의 중심부에 있다. 북쪽으로는 티베트,남과 동쪽으로는 인도,서쪽은 네팔과 경계를 이룬다. 부탄 왕국이 서방 세계에 처음 문호를 개방한 것은 1974년이다. 부탄은 영국 보호하에 있던 중 국가가 성립되었다. 입헌군주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의회는 단원제로 정원은 150명이며,임기는 5년이다. 유엔에는 71.9.21 에 가입했으며,국가 총병력은 7천-1만명이다. 특이할 만한 사항으로는 대외적으로 비동맹 중립외교노선을 견지 하고 있다.

부탄사람들은 자연과 깨끗한 환경만이 인류 최대의 보물이라고 믿고 있으며,실천이라도 하듯 자연과 사람이 가장 친밀한 관계 속에서 삶이 이어지고 있다. 일상 생활에 깊이 스며있는 종교는 그들의 도덕성과 윤리를 규정하고 자연과의 친화로 자연을 닮은 그들의 정신은 순수 그 자체를 의미한다. 또한 이나라는 현대문명이 미치지 못하는 소왕국이지만,이들의 평등주의는 선진국을 앞서고 있을 정도이다. 또한 전체 면적 47,000Sq km에 인구 60만명의 작은 나라로 수정처럼 맑은 히말라야산에 무한정으로 자생하는 대부분의 약초를 식용으로 사용 하고 있으며,눈 속의 야생 동물 표범,고산지대의 염소,검은 목 두루미는 이곳의 명물이기도 하다.

부탄을 대표하는 것으로는 선명하고 다양한 색조로 단장돼 히말라야 구릉마다 박혀 있는 그들의 사찰과 높은 장대 끝에 사람을 부르는듯 휘날리는 깃발,그리고 붉은 가사를 걸친 승려들이다. 목탁 대신 기도 바퀴(Prayer wheal)를 들고 대중들과 어우러져 함께 숨쉬고 있는 붉은 승복의 스님들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문화는 수세기를 거치는 동안에도 그대로 전승 되어 내려오고 있다.부탄은 오래 전에 살아진 밀교 탄트라의 사상을 간직 하고 있는 지구상의 유일 한 곳이기도 하다. 또한 집들은 대개 벽화와 단청으로 아름답게 채색된 3층 목조건물이 많다.

그들의 의복은 지금도 전통으로 이어 내려오는 기법의 수 작업을 통해 제작 되고 있다. 그들의 언어 역시 긴 세월을 통해 변천의 과정도 있었을 법한데,지금도 그들은 그들의 선조들이 사용 하던 그대로의 고어를 사용하고 있다.


면적 : 4만 6500㎢


수도 : 팀부


인구 : 69만 2000명

정치형태 : 입헌군주제

종교 : 8세기 경에 불교가 전파되었으며 13세기 경에는 "드룩"파의 라마교가 전파되어 불교를 압도하고 있다. 현재는 라마교(티베트불교)가 국교로 지정되어 있는데 라마교는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의 장점을 따서 생성된 종교이다. 부탄 남부에 다수 거주하면서 부탄인구의 25%를 차지하고 있는 네팔계인들은 힌두교를 신봉하고 있지만 부탄의 문화,의식,풍속 등의 전반적인 면에 있어서는 라마교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승려들은 이러한 종교문화적인 배경으로 인해 사회적 위치와 신분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보장되며 팀푸시에 있는 팀푸 왕성이 라마교의 총 본산이다. 외국인의 국내포교 활동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주요민족 : 보태족 60%, 네팔계 25%,티벳계, 몽고족


주요언어 : 종카어(Dzongkha), 영어

경제
국내 경제는 자급 자족적인 농업 부문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1961년부터 학교 및 도로 건설,농업 등의 국가 기간 산업 정비에 중점을 둔 5개년 계획을 실시하였다. 1997년 7월부터 실시되고 있는 제8차 계획에서는 인구증가와 고용문제,민간부문개발,도시화,개발 관리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리
서남아시아의 내륙국이며 히말라야 산맥을 끼고 북쪽과 서쪽으로는 중국의 티벳고원,남쪽과 동쪽으로는 인도와 국경을 사이에 두고 자리잡고 있으며 인도와 중국의 중간이다. 부탄왕국은 동히말라야 산맥의 남부 경사지역에 자리잡고 있으며 브라마푸트라 강의 지류에 의해 형성된 계곡으로 깎여 있고,남쪽은 울창한 밀림이 있다.


역사
AC 1년 - 1900년 까지의 역사
17세기에 이 지역에 이주한 티벳의 고승가원 남겔이 각지에서 할거하는 군웅을 정복하고,현재의 국토에 상당하는 지역에서 실권을 장악했다. 19세기말에 토부톤사군의 호족우겐 왕축이 지배적 군장으로서 대두하였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1907년에는 왕축이 라마승과 주민에게 추대되어,초대 세습 번왕에 취임하였으며,현 왕국의 기초를 확립했다. 현 국왕은 1972년에 16세로 즉위한 제 4대 국왕이다.
부탄왕국은 3대 국왕에 이르러 1952년의 즉위 이후 농노를 해방하고,교육보급 등의 제도개혁을 수행하였으며,근대화 정책을 개시하였다. 1964년에 지방 호족간의 분쟁으로 당시의 수상이 암살되고,그 후에 임명된 수상에 의한 궁정 구테타 움직임이 발각되어 수상직이 폐지되고 국왕의 친정이 시작되었다. 현 국왕은 전 국왕의 정책이던 근대화 민주화 노선을 열심히 추진하는 한편,국가개발계획에 의욕적으로 임해 일반 국민의 신망은 두텁고 정국은 안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최근 부탄정부는 국가의 아이덴티티 강화를 위한 시책을 추진하고 있지만,이것에 반발한 남부의 네팔계 주민이 난민으로 네팔에 유입하여 부탄과 네팔간의 외교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1998년 6월말 국왕은 내정의 대폭적인 개혁을 단행 국왕의 권한을 내각에 위양하는 것과 동시에 26년간 외무장관을 근무한 다와 트린을 포함하는 각료를 교체시키고 새롭게 6명의 각료가 국회에서 선출되었다.


유용한전화번호
주인도대사관
-전화:(91-11) 688-5412
한국 명예영사관
-주소:Honary Consulate of the Republic of Korea
Wodzin Lam,P.O. Nos. 176 &423(Opp.Clock Tower)Kingdom of Bhutan
-전화:(975) 2-23027


전압 및 주파수
220V,50HZ

치안
부탄은 면적 4만 7천 평방키로미터,인구 약 60만명의 소국가로 치안이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그러나 소매치기나 지갑을 낚아채는 범죄꾼에 유의해아 한다. 중부,동부로의 여행할 때는 치안상의 문제가 없지만 남부지방의 국경근처 도시는 다소 불안한 곳이 있기 때문에 항상 주의 하는 편이 좋다.


통화
부탄의 환율은 눌트룸(NU)을 사용하며,인도 루피화와 연동되어 있다. 보통 1NU=1인도 루피(2000년 10월 현재)이며,미화 1달러가 약 35눌트룸 정도이다.


주의사항
상품구입시 유의사항
부탄 사람들은 아주 정직하다. 외국인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일도 거의 없다. 따라서 흥정을 하려하거나 해서 마음상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


비자
▣ 국내 비자발급처
기 관 명 : 관광객 비자 신청은 부탄 관광 당국을 통해 여행사에서 처리된다

▣ 비자신청시 유의사항
현대 문명에 오염되는 것을 꺼려하는 이 나라는 관광객의 입국을 1년에 2천명으로 제한한다. 또 하루에 3백20달러씩의 공탁금을 지불해야 비자를 얻을 수 있다. 관광객 비자 신청은 부탄관광당국을 통해 여행사에서 처리된다. 비자는 파로공항이나 푼토숄링에서 발급받을 수 있다.또한 모든 서류는 인도어로 번역이 되어야 하며, 비자신청서는 부탄 관광회사에 연락해서 받으면 된다.

▣ 비자신청시 구비서류
관광비자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신청서(부탄 관광청으로부터 승인받은 것), 6개월 이상 남은 여권, 여권용 사진2장, 인도경유를 위한 제반서류, 왕복항공권과 충분한 체류비용을 증명할 서류가 필요하다.




▶ 팀부

부탄의 문화와 정치,종교의 중심지인 수도 팀부(Timpu/Timbu/Timphu)는 남아시아 불교의 중심지이기도 한 곳으로 아름다운 사원들과 성채를 중심으로 도시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기독교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불교가 국교인 곳이다. 정부청사로 사용되고 있는 최대 규모의 타쉬초종과 1627년에 세워진 심토카종을 비롯한 많은 문화유적과 부탄의 서민도시생활을 접할 수 있다. 이곳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교통신호가 없는 수도로 관광객을 당황하게 하는곳이다.


산업
팀부의 주요산업은 농업이다. 이러한 사실은 부탄의 팀부에 있는 왕궁 주변에 형성되어진 계단식 농경지를 본다면 이 나라의 경제활동 중 농업의 중요도가 어느정도 인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팀부에서 생산되는 농작물로는 벼·옥수수·밀 등이 있다. 또한 이곳 팀부는 제재업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시내의 여러곳에서 제재소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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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차이나반도 동부에 S자 모양으로 길게 자리하고 있는 베트남은 서북쪽에서 동남쪽까지 최대길이는 약 1,650km이고,동서의 최대 너비는 북부 550km,남부 340km 정도이다. 지도의 모습을 보면 거꾸로 서있는 용의 모습에 비유한다.

정식 명칭은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Socialist Republic of Vietnam)이다. 인도차이나란 인도와 지나의 문화가 공존하는 땅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남북으로 길게 추옹송 산맥을 국경으로 하여 북으로 중국,서로는 라오스ㆍ캄보디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고,남서쪽으로 타이만 남동쪽으로 남중국해와 통킨 만에 접하고 있다.

베트남은 인간의 손때가 묻지 않은 깨끗한 나라이며 울창한 파파야나무 숲과 끝없는 백사장,열대과일과 해산물은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면적은331,041㎢이며,수도는 정치ㆍ문화적 중심지인 하노이이다. 인구는 75,124,000로서 베트남인 87.1%,토족(타이족) 1.8%,중국인(호아족) 1.5%,타이족 1.5%,크메르족 1.4%,무옹족 1.4%,눙족 1.1%,기타 4.2%로 구성된다.

베트남은 개발도상국으로 중앙계획경제체제를 실시하며 농업에 바탕을 두고 있다. 국내총생산의 1/4을 차지하고 있으며,총노동력의 약 3/4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작지에서 벼농사에 이용된 후 2모작이 이루어진다. 사탕수수ㆍ땅콩ㆍ수수ㆍ옥수수 등이 주요 농작물로 국영농장에서 콩ㆍ사탕수수ㆍ코코넛ㆍ고무ㆍ커피ㆍ차 등이 생산되고 있다.

가축인 돼지ㆍ소 사육도 많이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광업과 제조업은 국내총생산의 1/5을 차지하고 총노동력은 1/10을 차지한다. 수입품목은 연료ㆍ기계류ㆍ원자재ㆍ식품이며,수출품목으로 원자재와 수공예품 등이다.


종교 : 철학 및 종교가 베트남 인들의 정신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데 유교,도교,불교,기독교로 구분할 수 있다. 유교,도교,불교는 중국인 민간신앙 및 베트남 인들의 고대 정령 신앙과 융화되어 3개의 종교로 땀짜오를 형성하며,베트남 불교라고 불린다. 크메르나 참 족이 신봉하는 무슬림은 전체 인구의 0.5%를 차지하고 있다. 로마 가톨릭교,이슬람교,호아하오교,카오다이교,개신교를 믿고 있는 사람이 있다.

주요민족 : 베트남인 87.1%,토족(타이족) 1.8%,중국인(호아족) 1.5%,타이족 1.5%,크메르족 1.4%,무옹족 1.4%,눙족 1.1%,기타 4.2%으로 구성된다.

베트남인이 전체 인구의 90%을 차지하고 있으며,대표적 소수민족은 북부의 중국인,몽족,타이어를 사용하는 여러 민족,눙족,타이족 등과 남부의 고산족ㆍ크메르족ㆍ찬족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언어 : 북베트남의 하노이어가 공용어이나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있으며,남베트남에서는 프랑스어와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 공용어로는 베트남어이다. 최근 경제가 성장하면서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기후
베트남은 열대계절풍 기후를 나타내어 겨울에 남부는 덥고 북부는 서늘한 편이다. 베트남은 몬순지대에 속하여 중부에 걸친 온습한 열대기후,남부 저지대의 몬순기후,습기가 많고 서늘한 산지기후,약간 건조한 적도기후 등으로 구분된다. 남부는 우기와 건기가 있고 북부에는 사계가 있다. 연평균기온은 북부 하노이 23℃,남부 호치민 시티 27℃이다. 연평균강우량은 1,500∼2,000㎜로 5∼10월에 집중적으로 내린다. 베트남의 기후는 건기와 우기로 나눌수 있는데 우기 때에는 강물이 범람하여 농민생활에 커다란 위협이 되며,건기는 11-4월,우기는 5-10월까지이다. 이 기간에 강우량 차이가 심한 편이다.

지리
베트남은 동경 103˚27'-109˚28',북위 8˚30'-23˚24'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은 한반도의 1.4배로 남한의 약 3.5배에 해당한다. 국토의 3/4가 산악ㆍ고원ㆍ구릉지대이다.

홍하강 하류의 박끼,안남산맥 동편의 쭝끼,평야지역인 남부 메콩강 하루의남끼로 각 지역을 구분하여 불르고 있다. 하노이를 중심으로 하는 북부는 수목이 거의 없고,남부는 진흙 같은 느낌의 대지와 웅대한 뱀모양의 대하,메콩이 끝없이 펼쳐진다. 중부는 해안선까지 추옹송 산맥이 뻗어 있어 서쪽에는 산,동쪽에는 바다라는 지형이 형성되어 남부와는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삼림이 빽빽하고 바위투성인 안남 산맥은 원난고원의 남쪽 연장부분에 전 국토의 약 2/3을 차지하며,북반구의 나란히 뻗은 해발 1,830m가 넘는 봉우리가 여러 개 솟아 있다. 심한 침식이 남반부로 뻗어 내린다.


간단한 현지어
현지어 : Chao 짜오
의 미 : 안녕.
현지어 : Khoe khong 괘 컴
의 미 : 반갑습니다.
현지어 : Cam on 깜 온
의 미 : 감사합니다.
현지어 : Vang 방,Da 다
의 미 : 예.
현지어 : Khang 콩
의 미 : 아니오.


역사
BC이전 역사 개요
기원전 2세기경 통킹만과 북부 안남 일대에 살던 베트남어부족들이 중국 진나라의 멸망으로 남베트남이라는 남월국을 세우면서 시작된다.

AC 1년 - 1900년 까지의 역사
이들은 베트남 북동부와 중국 남부를 지배하였으나 BC 111년 중국의 전한에 점령되었고 AD 1세기에 인도와 교역을 통하여 인도 문화의 영향을 받은 푸난 오아국이 메콩 강 삼각주의 대부분을 차지하나 6세기에 멸망한다. 또한 한동안 광동지방의 호족과 결합하여 중국의 남부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하였으나 후한의 제갈량에 의하여 정복당한 뒤 약 1,100년간 중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939년에 코켄이 지역주민들을 규합하여 중국을 격파함으로서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통일왕국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968년 딩보링이 북부지역을 평정 대구월이란 국호로 베트남 초대와조인 딩왕조를 일으켰으며 리왕조,친왕조,레왕조를 거치면서 중국의 정벌군에 맞서 강력하게 저항하고,안으로는 국가다운 면모를 갖춰 간다. 13세기에는 3차례 몽골 침략을 받았지만 물리쳤다. 1407년 중국에게 다시 정복되었으나 저항운동으로 1428년 중국인을 몰아낸 후 레왕조 치하에 중국식 관료주의 정부가 수립하였고 15세기에는 남방으로 세력을 뻗어 인도네시아계 참족이 세운 참파왕국을 정복하기도 하였다.

1757년인 16세기에 레왕조의 쇠퇴로 베트남 왕국은 남북으로 나누어 양분되었다가 1802년 구엔왕조에 의하여 통일되었다. 19세기에 프랑스를 비롯한 외세 견제 목적으로 프랑스선교사 처형사건을 일으켰으며,이로인하여 프랑스는 베트남에 대한 무력침공을 하여 1884년 텐진조약을 통해 1939년까지 전베트남 지역이 식민지화 되었다. 이로인하여 베트남 내에서 항불독립조직이 탄생하면서 왕조복귀를 목적으로 한민족주의진영과 민족해방을 내세운 공산주의 그룹이 1930년 정식 공산당을 결성 호치민을 중심으로 독립투쟁을 전개한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1945년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들이 호치민의 영도아래 베트남 독립을 선언하나 프랑스에 대항해 게릴라전을 벌이면서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벌어진다. 그리고 4년간 격전 끝에 일본군이 퇴각한 후 정치적 공백을 이용하여 베트민은 민족주의자들을 규합하여 1948년 9월 2일 하노이를 중심으로 베트남민주공화국을 선포한다. 그러나 프랑스군은 공화국 성립을 부정하면서 인도차이나로의 복귀를 시도하나 베트민과 군사적 충돌을 야기시킨다. 제 1차 인도차이나전쟁으로 호치민군은 7년 간의 게릴라전을 전개한 끝에 1954년 5월 7일 디엔비엔푸에서 베트남이 승리하자 프랑스군은 축출하기에 이른다. 7월 21일에 제네바 협정으로 베트남은 북위 17도를 경계로 남북으로 분할한다. 하지만 북베트남의 게릴라 활동과 남베트남 친공산주의자들의 반란으로 미국의 개입으로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인 베트남 전쟁(1955-1975)이 일어난다. 1973년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에 전명공격을 개시하였으나 남베트남의 붕괴로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고,1976년 7월 2일 두 베트남은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통합된다.

1978년 베트남과 캄보디아 군 사이에 국경분쟁을 일으켜 캄보디아는 베트남을 탈출하면서 캄보디아와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1979년 베트남은 캄보디아를 침공 폴 포트 정부를 무너뜨리고 친베트남 정권을 수립한다. 이에 중국 군이 베트남의 북쪽을 경계로 공격을 하여 베트남 군사시설을 파괴하고 캄보디아로부터 군사를 끌어오지 못하고 중국군과 싸웠으나 9일간 계속되는 전쟁으로 큰 경제적 손실을 맛보았다. 1980년 베트남은 캄보디아와 라오스에 자국 군대를 보내어 인도차이나 반도를 장악하였다. 폴 포트의 추종자들은 캄보디아 베트남군에 대항하여 전투를 벌임으로 베트남은 군대를 철수하면서 1989년 철군을 종료시켰다. 1980년 심각한 경제상황으로 민간기업들에 대한 자유화 조치를 단행하였으며 경제개혁을 감행하였다.


전압 및 주파수
전기는 110V와 220V 50Hz 두 가지 모두 사용할 수 있으며 대부분은 220V을 사용한다. 남베트남의 콘센트는 미국 스타일의 편편한 형태,북베트남은 콘센트의 모양이 소련스타일의 동그란 형태이다. 사용하기 전에 확인후 전기제품을 사용하도록 하자.

치안
베트남은 사회주의 체제의 특성상 강력한 경찰 조직을 통해 타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호한 치안 상태를 유지하고 있음. 다만,최근 경제 개방 정책 추진 성과로 일반 국민의 생활 수준이 향상됨과 더불어 소규모의 강.절도,주거.상가 침입,소매치기 등 각종 범죄 발생이 늘어가는 추세임. (특히 호치민 지역은 각별한 주의가 요망됨) 특별히 우범 지역으로 지목된 곳은 없으나 야간에 혼자 돌아다니는 여행자들을 노리는 소매치기,날치기가 많다. 주간에도 혼잡한 도심 지역에서는 여행자들의 지갑,특히 벨트쌕을 노리는 소매치기들이 있고 최근들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여행자의 핸드백,카메라,목걸이,귀걸이 등을 날치기해 가는 유형의 범죄가 발생되고 있다.

또한 1975년 이래로 많은 베트남인들이 지뢰,포탄 등 전쟁의 잔여물들에 의하여 불구나 목숨을 잃는 사고를 많이 당하고 있기 때문에 전쟁 전해물들을 건드리지 않도록 하자.

통화
베트남 통화의 기본 단위는 동(Dong)이다. 베트남을 여행하려면 소액 지폐를 소지하는 것이 좋다. 왜냐면 거액 지폐를 내면 거스름돈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지폐는 찢어지지 않은 깨끗한 것을 준비한다. 더러운 지폐는 받지 않기 때문이다. 베트남에서 사용하는 지폐는 100ㆍ200ㆍ500ㆍ1,000ㆍ2,000ㆍ5,000ㆍ10,000ㆍ20,000ㆍ50,000 동으로 9종류를 가지고 있다. 동전은 사용되고 있지 않다.

한국으로 전화
국제전화를 걸때에는 유니폰 카드(Uniphone Card)을 사서 국제직통전화를 이용한다. 카드는 전화국에서 팔고 있기에 호치민이나 하노이 호텔에 있는 전화기를 통하여 사용할 수 있다. 국제전화를 이용할 때는 우선 00을 누른 다음+82(국가번호)+0을 뺀 지역번호+상대방전화번호 수신자 부담을 이용한 전화는 120-82-002을 이용한다.

현지로 전화
001(국제자동전화식별번호)+84(국가번호)+지역번호+상대방전화번호 수신자 부담을 이용한 전화는 120-82-002을 이용한다.

주요 지역번호: 하노이(Hanoi) - 4
호치민(Hochiminh) - 8
다낭(Danang) - 51


비자
▣ 국내 비자발급처
기 관 명 : 주한 베트남 대사관
주 소 :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28-58
전화번호 : 02-739-2065 738-2318/9
팩스번호 : 02-739-2064
근무시간 : 09:00-12:00 & 13:30-17:00 토요일 휴무

▣ 비자신청시 유의사항
베트남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15일이내 머물시 비자가 필요없다
그외의 경우는 따로 비자를 받아야 입국이 가능하다.

▣ 비자신청시 구비서류
<사증>
외교관, 관용여권에 대해서는 비자면제 협정이 체결되어 있다. 주한 베트남 대사관:02) 738-2318관광비자 구비서류는 비자 신청서, 6개월 이상 유효한 여권, 여권용 사진 2장, 초청장이 필요하다. 상용비자는 비자신청서, 6개월 이상 유효한 여권, 초청장, 출장증명서 서류가 필요하다.


베트남은 열대계절풍 기후를 나타내어 겨울에 남부는 덥고 북부는 서늘한 편이다. 베트남은 몬순지대에 속하여 중부에 걸친 온습한 열대기후,남부 저지대의 몬순기후,습기가 많고 서늘한 산지기후,약간 건조한 적도기후 등으로 구분된다. 남부는 우기와 건기가 있고 북부에는 사계가 있다. 연평균기온은 북부 하노이 23℃,남부 호치민 시티 27℃이다. 연평균강우량은 1,500∼2,000㎜로 5∼10월에 집중적으로 내린다. 베트남의 기후는 건기와 우기로 나눌수 있는데 우기 때에는 강물이 범람하여 농민생활에 커다란 위협이 되며,건기는 11-4월,우기는 5-10월까지이다. 이 기간에 강우량 차이가 심한 편이다.




▶ 나트랑

이곳은 베트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을 끼고 발달되어 있으며 고대 참 왕국의 유적이 많아 관광도시로 유명합니다.그리고 이곳은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 야전사령부와 십자성부대가 주둔했던 곳이로 인연이 깊은 도시이기도 합니다.중심가의 동쪽에 있는 산책로를 따라 해변이 계속 이어지고 하얀 모래사장과 푸른 야자나무의 가로수가 리조트 기분을 한층 더 북돋워 줍니다.나트랑 해변은 6km쯤 펼쳐진 고운 모래사장에 야자수들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베트남에서 수영을 즐기기에 가장 알맞은 곳입니다.
주변에는 낭만적인 노천카페들이 많아 그야말로 여행자들의 천국이 형성됩니다.이곳은 한국군이 주둔했던 곳이라 해변도로인 Tran Phu거리를 따라 가다보면 아직도 태권도 간판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야자나무 그늘 밑에는 알록달록한 파라솔이 있고 일광욕을 하는 외국인과 아침, 저녁으로 해수욕이나 낚시를 하러 오는 이 지방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나트랑은 또 이 지방 최대의 어항을 가지고 있는데, 카이 강 하구에 있는 항구에는 파란색과 빨간색 칠을 한 어선이 수백 척이나 모여 있습니다.

통화
기본단위는 동(DONG)이다. 지폐는 200, 500, 1.000, 2.000, 5,000, 10.000, 50,000 100,000이 있으며현재 인플레이션이 심하고 환율변동도 심하여, 달러가 강세이므로 달러로 지불을 요구받는 경우가 많아 외국인으로서는 달러의 소지가 절대필요하다. 은행, 특급호텔등에서는 여행자수표나 신용카드(마스타,비자)도 통용된다. 여행자수표의 수수료는 1%정도. 베트남 여행에는 1달러 지폐를 많아 소지하는 것이 좋다. 고액의 지폐는 거스름돈이 없기 때문이다




▶ 다낭

다낭은 쾅남 다낭성(省베)의 성도로서 남중국해에 돌출한 투렌곶에 둘러싸인 다낭만 깊숙한 캄레강 하구 왼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아름답고 볼거리가 많은 도시이다. 또한 다낭은 호치민,하노이 다음으로 큰 도시로 베트남의 그 어떤 지방 도시보다도 번잡한 도시이며,예전에는 투렌이라 불렸었다.

다낭항은 월남전 당시 미군기지로 쓰였으며,이 항구는 베트남 중부지방에 배치되어 있던 청룡부대 장병들이 철수명령을 받고 귀국선 기다렸던 항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군함이 정박해 있던 다낭항은 이제 화물선 고동소리가 울려 퍼지고 하역 작업으로 분주한 어엿한 무역항으로 변모하였다.

중부 최대의 상업도시 다낭은 송차 반도로 둘러싸인 천연항(港)이 있어서 예부터 동서 무역의 중계지 역할을 했으며 중요한 국제 무역항으로서 번영하였다. 또 2∼15세기에 걸쳐 세력을 과시했던 참족의 나라인 찬파 왕국의 왕도가 현재의 시가지 근교인 차큐에 있었던 때도 있어 주변에는 미선 등 찬파의 유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시내 중심부에는 1천여 개의 점포가 밀집된 번화한 시장이 있으며,제화점,의류상 등은 취급품목이 같은 점포끼리 옷골목,꽃거리 등을 만들어 냈다. 젊은이들로 가득찬 노천 카페에서는 락 뮤직이 흘러나오고 있으며,가라오케가 한참 인기 있다.




▶ 붕타우

붕따우 시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발 모양의 조그마한 반도이다. 크게 구 붕따우와 신 붕따우 2지역으로 나뉘고 있는데,구 붕따우는 티우 전 대통령의 별장을 중심으로 호텔과 도로가 전개돼 있는 곳을 뜻하며,신 붕따우는 커다란 예수님 상이 있는 산을 지나 붕따우에서 가장 긴 해변이 펼쳐져 있는 지역까지를 뜻한다. 붕따우 시 앞쪽으로는 한국군의 베트남 참전을 주제로 한 영화 하얀 전쟁을 촬영한 곳롱 하이라는 작은도시가 있기도 하다.

붕따우 항에서 남쪽으로 약 15시간쯤 배를 타고 가면 콘다오란 섬이 나온다. 이 섬은 14개의 작은 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수려한 경관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또한 이 섬에는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이 공산군 포로를 수용했던 포로 수용소가 있었으나 월남 패망 이후로는 반체제 정치인,반공주의자,전월남군 간부 등을 수감하고 있다.

호치민 시에서 붕따우로 가는 길에는 베트남 특유의 시골 전경과 베트남인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고무나무 농장이나 시골 휴게소 등에서는 천연 야자 같은 열대 과일을 맛볼 수 있다.

붕따우는 가장 더울 때의 기온이 31∼32℃,가장 추울 때가 24∼25℃로 사계절 내내 해수욕이 가능한 도시로 새파란 하늘에 화염수(火炎樹)의 붉은 꽃이 선명하게 비치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게다가 호치민에서 가까우므로 주말이 되면 수많은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이 외에도 붕따우는 야시장으로 유명하다. 단,붕따우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미개발 지역이 많은 휴양도시이기도 하다.  


산업
붕따우는 인도네시아의 석유 산업의 요지이다. 붕따우의 약 40km 앞의 바다에 15∼30억 배럴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베트남과 러시아와의 합작 석유회사인 비에트 소브피트로社가 이미 채굴 작업에 들어갔으며,쉘,로열더취 등 굴지의 석유회사들도 경쟁적으로 탐사작업에 나서고 있다. 베트남은 현재 개발되고 있는 10개 탐사구역 외에도 20개의 유망한 탐사구역을 더 있다.

베트남에서 현재 유일하게 생산 중인 유전은 남동해안에서 약 200km 정도 떨어진 박호(Bach Ho)인데,이 해안설비를 붕따우에서 충족하고 있다. 베트남은 현재 러시아로부터 해마다 2백 50만톤의 석유제품을 수입하고 있으며,소비량는 하루당 5만 배럴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석유는 그 대부분이 싱가포르와 일본에 수출되고 있으며,역으로 그곳에서 가공 석유제품을 수입하고 있다.  




▶ 하노이 [Hanoi]

현재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의 수도 하노이는 베트남 민족의 젖줄 강하강변에 위치한 베트남 정치,역사,문화의 중심도시로써,지리적으로 홍강(홍하)을 낀 삼각주 델타지대로 비옥한 평야가 많아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한 하노이는 인구 220만명에 면적 934km2로 연강수량 1763mm,연중 평균 기온 23.3℃,1월 평균 기온 16.6℃로,1월 중순에도 낮기온이 30℃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를 보이는 호치민에 비해 춘하추동의 4계절이 뚜렷한 호수와 숲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도시이다. (하노이의 호수는 무려 3백여개)

하노이는 천년의 역사를 지닌 고도에 걸맞게 유서깊은 사찰도 많고 식민지풍 교회나 건물이 많은 데 무채색의 건물들이 빚어내는 조화와 좁고 아기자기한 골목,그리고 포장마차와 가게들이 몰려 있는 거리 풍경은 운치가 있다.

남부 베트남의 호치민이 경제 중심지라면 하노이는 명실상부한 정치 중심지이다. 그 때문에 시내 여기저기에서 구 소련의 영향과 사회주의 냄새가 느껴진다. 남성들이 쓰고 있는 짙은 녹색의 모 자,레닌 공원에 있는 미그 전투기 놀이 도구.... 사람에 따라서는 그것을 어두운 이미지 로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활기가 넘치는 호치민과 비교하면서 하노이를 여행하면 조용 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이 도시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교육
하노이 국립대학
1.학교의 명칭 : 하노이 국립대학 - 인문과 사회과학대학.
2.연락처  
-주소 : 336 NGUYEN TRAI,THANH XUAN,HA NOI
-전화 : 04-8383799 -팩스 : 8583821        
3. 해당 학교의 조직 및 기구 : 하노이 국가대학 부속.     
4. 해당 학교의 기본 정보 :
1) 학과의 수 : 14    
2) 학생 총 수 (정규)-1학년 : 1243 명. 2학년 : 1837 명. 3학년 : 2493 명. 4학년 : 2262 명. (비정규) 8000명이상.    
3) 간부/직원 : 총 411명-박사: 12명,부박사 : 102명,석사 : 67명,교수 : 15명,부교수: 44명 
4) 총장 성명 : PHAM QUANG LONG 부박사,부교수 
5) 부총장 성명: PHAM XUAN HANG 부박사,부교수  NGUYEN MINH THUYET 부박사,교수     5. 학교의 학과 내용 : 문학학과 역사학과 신문학과 국제학과 동방학과 여행학과 법학과 철학학과 심리학과 사회학과 언어학과 외국인을 위한 베트남문화와 베트남어학과 군사학과 정보처리학과 




▶ 호이안

호이안은 다낭 남동쪽 30km 지점에 있으며,다낭과는 수로로 연결되어 있다. 투봉 강이 남지나해로 흘러드는 삼각주에 형성된 해안도시로 전에는 파이포(Faifo)라 불렀다.

찬파 왕국 시대에는 중국과 인도·아랍을 연결해주는 중계 무역 도시로 번영했으며,그 후 16∼17세기에 걸쳐서는 원조(院朝) 교역의 중심지로서 무역항으로 크게 번창하였다. 17∼19세기에 걸쳐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 중 하나였던 곳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이곳을 중심으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한편 일본인 거리가 존재했었지만 쇄국정책으로 점차 쇠퇴한 후에는 많은 화교들이 이주해 왔다. 따라서 호이안은 남부 베트남에서 중국인들이 처음으로 정착한 곳이 되었으며,오래된 도시의 분위기는 점차적으로 중국 남부의 색채가 짙어지게 되었다.

이곳의 모습은 1세기 전이나 50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옛 베트남의 전형적인 시골모습을 연상케 한다. 또한 과거에 번영했던 무역항의 모습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호이안 남동쪽의 여러 섬에서는 제비집을 생산하고 있으며,농산물 거래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 호치민 [HOCHIMINH]

베트남은 남북으로 길게 위치한 나라이고,호치민시는 그 남쪽에 자리하고 있으며,3개 특별시중의 하나이다. 이 지역은 예전에는 남베트남의 수도였으며,사이공으로 불리웠었다. 북쪽의 하노이가 베트남의 정치적 수도라면 호치민시는 베트남 정부의 '도이모이'정책으로 인해 급격한 발전을 거듭하여 베트남 최대의 경제도시가 되었다. 호치민시에는 각국의 공장과 사업장들이 많이 진출해 있어 여느 선진국의 도시 못지 않은 발전상을 보이고 있다. 반면에 과거 80년 동안의 프랑스 식민지배로 말미암아 거리 곳곳에는 유럽식 건물과 거리들이 고풍스런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또한,과거 베트남 전쟁의 흔적도 찾아 볼 수 있다. 물론 도시명과 같은 인물로 베트남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중의 하나인 호치민은 30여 년 동안 베트남 민족운동의 지도자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뒤 아시아의 반식민지 운동을 이끈 인물로 가장 영향력 있는 20세기 공산주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호치민은 경제면에서 볼 때,베트남에서 가장 발달한 도시로 이곳에서는 적어도 베트남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것을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번화한 거리는 서방세계를 닮아 가는 모습을 느낄 수 있다. 호치민 시가지를 끼고 도는 사이공강은 잘 정비되어 있으며,바다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배들도 정박해 있는 것으로 미루어 강의 깊이를 매우 깊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각국 기업들의 거대한 광고판들 중에 우리나라 기업들의 것도 상당수 볼 수 있으며,밤이 되면 호치민은 유람선에서 나오는 불빛과 더불어 도시야경이 더할 나위없이 매력적인 도시가 되고 있다.

호치민시는 베트남의 역동적 상업 중심지로,베트남 국토의 0.6%와 인국의 6.5%가 베트남의 GDP의 18%와 산업생산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호치민시는 베트남의 가장 큰 도시이고 공식적으로 등록되거나 등록되지 않은 인구가 5백만에서 7백만으로 추정되며,베트남 투자가들은 1996년과 1997년에 호치민시의 GDP성장률은 거의 10%로 튼튼한 나라의 성장률을 앞선 30% 이상이었다고 한다. 오늘날,호치민시 지역은 베트남의 총 외국투자의 33%를 받아왔으며,1997년 호치민 도시의 1인당 GDP는 국민평균의 3.5배 가량인 US$ 1119로 보고되고 있다. 또한 이 도시는 라오스,캄보디아,타일랜드에 국제적 상업적 동맥으로의 역할 뿐만 아니라 거대한 식량자원의 생산 자원인 메콩강 삼각주 지역은 호치민시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을 아닐 것이다.

최근에 호치민시의 새로운 지구로 이름지어진 제 7지구 - 뉴시티센터는 사이공사우스의 상업적,주거 중심지이다. 뉴시티센터는 몇몇의 뚜렷한 지역으로 나뉜다. - 즉 재정,중심타운,거리,수로,남부지역,경주장,의과대학,Hillview이다. 각각의 지구는 그들 자신들의 컨셉을 가지고 있으며,그것들은 마스터플랜 목적의 공동의 지원과 최대효과를 위해 디자인되었다. 예를 들어 크레슨트 지역은 싱가폴 만의 강기슭 개발로 부터,Canal지역은 오락을 위한 지역으로 계획되었고,산 안토니오의 강변로에 의해,그리고 경기장은 홍콩의 해피벨리에 의해 영감받아 건설된 것이다.

호치민시는 약 2,056㎢의 넓은 도시면적을 가지고 있으며,해발 10m내외의 낮은 평야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수도인 하노이에서 1,738km 떨어져 있으며 하노이,하이퐁과 함께 자치행정 즉,특별구로 되어 있는 세 도시 중 하나이다. 남쪽과 북쪽은 운하로 동쪽은 사이공강으로 둘러싸여 있는 이 도시는 인구가 약 540만명으로 베트남 최대의 도시이며,경제의 중심지이다. 호치민시는 12개의 도시지역지구와 6개의 농촌지역지구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호치민시는 사이공,촐롱,탄빈,구찌 등으로 구분되는데 사이공은 행정구역상 1,3,10구역으로 시의 중심지역이며,특히 1구역에는 인민위원회(시청)를 중심으로 호텔,각국 대사관,은행,음식점 등이 몰려 있어 가장 번화한 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사이공(Saigon)지역은 구엔훼(Nguyen Hue)거리와 레로이(Le Loi)거리를 중심으로 하는데 월남전 당시 미군 장교클럽이었던 렉스호텔이 이 두 거리의 교차지점에 있어 이곳을 찾아가는데 이정표 구실을 하고 있다. 촐롱(Cholon)지역은 차이나타운으로 5구역을 중심으로 6,8,11구역까지 펼쳐진다. 사이공 중심지역에서 짠홍다오(Tran Hung Dao)거리를 따라 5km쯤 가다보면 한자 간판이 많이 나오는데 이곳이 촐롱 지역이다. 동남아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부가 집중되어 있어 활기가 있고,특히 사원이 많아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탄빈 지역은 탄빈,푸념,반툰구를 통틀어 부르는 것으로 탄손낫트 공항을 포함한 사이공 북부의 외곽지역을 말한다. 구찌 지역은 호치민시의 북서쪽 외곽지역으로 땅굴과 카오다이교의 본산으로 유명하다.


열대몬순기후로 비가 많지 않은 건기(11-4월)와 열대성 스콜 현상이 많은 우기(5-10월)로 나뉘어진다. 이곳은 거의 평탄한 지형 조건으로 치수에 대한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타인과 가까이 접하지 않고 조금은 멀리 떨어져 살아가는 개인적 경향이 있으며,상대적으로 풍족한 자원들로 인해 다른 지역과는 차이가 있는 문화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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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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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1948)이전 영국에 대한 공업용 원자재의 안정적 공급원 겸 영국상품의 시장으로서 전형적인 식민지적 경제구조로 출발하였다. 19세기부터 홍차와 황마(쥬트)의 플랜테이션 경작이 확대됨으로써 근대공업이 시작하였으나,서파키스탄의 차별정책으로 세계최빈곤지역으로 전락하게 되었고 이러한 차별정책이 파키스탄으로부터 분리독립하게된 주요원인의 하나가 되었다. 전형적인 저개발농업국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세계 1위의 인구 조밀국으로서 전체인구의 약 67%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농업부문이 국내총생산중 35%를 차지하고 있다. 제조업부문이 낙후하고 부존자원이 빈약하다.

또한 소수민족 구성비가 낮아 비교적 문화적 동질성을 유지하고 있다. 소수민족으로는 치타공 구릉지대(Chittagong Hill Tracts: CHT)에 독특한 문화를 보존하고 있는 12개의 소수부족들이 거주하며 이들의 총인구는 70만정도 (방글라데시내 소수민족은 약120만)로 추산되고 있다. 문맹율(1991년)은 전체인구의 67.6%에 이르며,노동력의 약 5%정도만이 고졸이상 과정을 이수할 정도이나 방글라데시 정부의 노력으로 90년초부터 초등학교 취학율이 높아져 82%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전반적인 교육수준은 매우 낮다고 보면 된다.

방글라데시의 대외정책은 비동맹.중립외교노선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방글라데시는 자주독립 및 주권의 확보.유지,국내정치.사회발전을 위한 다양한 우호협력관계 증진,평화.자주.진보를 위한 국제협력증진 등을 외교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헌법 제25조는 주권평등,내정불간섭,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유엔헌장 및 국제법 준수(민족자결주의,반식민,반제국,반인종주의),회교적 결속에 기초한 회교국가간 형제관계의 유지 및 강화를 외교원칙으로 천명하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회교국의 일원으로서 회교국가간의 협력과 발전이 주요외교시책의 하나이다. 중동지역에 대한 방글라데시의 노동력 수출은 국가경제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주요 원조국의 하나인 사우디와도 74.11월 국교수립 이후 양국수뇌의 빈번한 상호교환방문 등을 통해 경제원조증대를 도모하고 있다.

나라 전체적으로 볼 때는 높은 인구밀도(세계 1위),여전히 높은 인구증가율(1.78%),높은 문맹율(67.6%),낮은 국민자본 축적 및 기술수준의 낙후,합리적 경제정책을 추진할 정치사회적 기반 취약,농업에 대한 높은 의존도에도 불구하고 농업생산의 불안정(기후조건에 좌우),부존자원 빈약 등이 경제발전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잦은 홍수로 인한 농업생산 부진과 공업생산의 완만한 증가로 경제성장이 저해되고 있으며,대부분의 비농업 원료,기계,장비 등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천연가스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으나 아직도 에너지 수입이 과중한 실정이다. 또한 경제발전의 투자재원을 주로 외자에 의존하고 있으나 최근 무상원조의 감소로 상환 부담이 높아지고 있으며,잦은 정치적 파업은 수출산업등 제조업 분야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구매력을 보유한 인구비율이 낮다. 또한 복잡한 법이 개인의 제조업 등 투자에 방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로 해외원조(연간 약 $ 20억 규모)와 해외취업노동자들의 송금에 의해 만성적인 무역수지적자를 일부 보완하고 재정의 약 60%를 동 기금에 의존하고 있다. 주요 개발사업은 국외자본을 주요재원으로 하여 추진되며,원조국의 영향력이 크다. 시장규모는 매년 높은 인구증가로 확대되고 있지만 낮은 국민소득으로 유효수요 및 구매력은 미미하다. 다카,치타공,쿨라,라샤히 등이 주요상업도시이나 다카 및 치타공에 대부분의 상업활동이 집중되어 있다. 국가기업체를 제외하고는 대규모 도소매상이 없으며 대부분 가족경영 형태로 소규모 영업을 하고 있다. 회교국가로서 종교의식이 소비패턴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내구소비재 시장형성은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어려운 형편이다.

관광지는 회교 및 동국의 경제현황 등의 이유로 거의 개발이 안된 상태이다. 주요관광지는 Cox's Bazar 해안(치타공 남부지역 위치,세계최장 해안선),Kaptal Lake(Rangamti 지역소재),Chittagong Hill Tracts 족촌,서남부 Khulna 자연림지역 및 북남부 Sylhet 차농원 등이 있다.


종교 : 회교도가 전체 인구의 약 87%를 차지하는 회교국가로 코란에 의한 회교율법이 일상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 및 역사적 특성에 따라 중동지역 정통 회교국에 비하여 다소 완화된 현상을 보인다.
회교도들은 하루에 5-6번씩 기도생활을 하고 있으며 휴일인 금요일에는 사원에서 집단 기도를 한다. 1년에 두차례 이드(EAD)축제 기간은 정부에서 공식 공휴일로 지정하여 국가 전체적으로 명절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데 가족과 친인척끼리 한자리에 모여 율법에 따른 각종 의식을 행한다.
이 때는 귀성객들로 버스나 기차 터미널이 매우 붐비고 모든 관공서 및 상점들도 문을 닫는,우리나라로 치면 구정이나 추석 명절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회교도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다음과 같은 다섯까지 율법을 지켜야 하는데,즉 알라 등 회교에서 정하는 대상과 율법을 철저히 믿어야 하며(IMAN),매일 5차례의 기도를 해야하고(PRAYER),자기소유의 최소 2.5%를 거지에게 나누어주어야 하고(JAKAT),라마단 기간중에는 금식을 해야 하며(FASTING),능력이 있는 사람은 일생동안 한 번 이상 회교성지인 메카를 방문해야(HAJJ) 한다는 것이 그 것이다. 모든 능력자(신체적 정신적 금전적)는 반드시 결혼을 해야하고,죽은자는 반드시 매장해야 한다는 규칙을 지키고 있다.


주요민족 : 방글라데시는 여타 인근 국가와는 달리 국민의 대부분이 단일민족인 뱅갈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뱅갈족 자체는 오랜 역사과정에서 형성된 Proto-Aust-raloid(호주 원주민계),드라비다족,아리안족,몽고족 등 여러 종족간의 혼혈족이다. 이밖에 방글라데시 국경지역에는 지역간의 고립에 의해 비교적 고유의 혈통을 보존해 오고 있는 hakma,Mogh,Mru,Bom,Mizo,Pankhu족 등 소수 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 소수 부족들은 치타공 Hill Track 에 거주하고 있으며 불교,힌두교,기독교 및 무속신앙을 믿으며 매우 온순하다. 또한 고유의 풍습을 지키고 사냥이나 농사를 짓고 있는데 여자가 남자보다 훨씬 일을 많이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이들 소수 종족들과 방글라데시인 사이의 인종간 마찰은 없다.


주요언어 : 문화적으로 동질성을 유지하고 있고 언어는 대부분의 국민(전체의 98%가량)이 인도. 아리안어족에 속하는 뱅갈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지역에 따라 방언이 많음. 따라서 뱅갈어(BENGAL)를 공용어로 하고 있으며 지식인들이나 비즈니스 종사자는 대부분 영어를 상용어로 사용한다


기후
방글라데시의 기후는 아열대 몬순기후(Sub-tropical monsoon)로 고온다습하며,겨울(11월-2월),여름(3월-6월),우기(7월-10월)로 구분된다. 연평균 강우량은 보통 1,902-4,842mm 정도를 보이며,도시별로 보면,다카 2,186mm,실렛 4,842mm 그리고 치타공이 약 3,310mm 정도이다. 그러나 7월에서 9월사이에 연강우량의 약 75%가 집중되며,이 시기에 홍수가 자주 발생한다. 연평균기온은 겨울이 약 20℃(11-29℃)정도이며,여름은 36.7℃(21-38℃)이다.

습도는 일년 내내 80-90%로 매우 습하며,몬순계절의 연례행사인 홍수와 싸이클론(태풍)으로 매년 곡물 및 인명피해가 크다.


지리
국가 전체 면적은 144,000 KM2로 남한의 약 1.5배이며,한반도 전체의 2/3정도이다. 북위 20도 34분과 26도 38분,동경 88도 10분과 92도 41분 사이에 위치하며,나라의 3면이 인도와 접경을 이루고 있다. 동남부 일부가 미얀마와 접경을 이루고 있으며,남부는 벵갈만에 속해 있다. 충적평야지대로 국토의 90% 이상이 평지로,매년 많은 비가 내려 홍수의 피해가 극심하다. 국토의 고도는 1마일당 5인치 정도에 불과하여 바다로부터 약 300Km이상의 내륙의 고도가 3m에 불과한 점도 특이한 사항이다.

방글라데시는 5개의 성(Division) 즉,Dhaka,Chittagong,Rajshahi,Khulna 그리고 Barisal로 나누어져 있다. 성 밑에는 21개의 현(Region,또는 Greater District),64개의 Zila(또는 Sub-division),489개의 군(Thana),4,451개의 촌(Union) 과 59,990개의 촌락(Village 또는 Mauzas)으로 구성되어 있다.


간단한 현지어
현지어 : Hello /앗살라무 알라이꿈/ 무슬림
의 미 : 인사. 안녕하세요?
현지어 : Excuse me /Forgive me /맙 꼬룬/
의 미 : 용서하세요.
현지어 : How are you? /께몬 아첸?/
의 미 : 어떻게 지내세요?
현지어 : Do you smoke? /씨가렛 칸?/
의 미 : 담배 피우세요?
현지어 : My country is Korea. /아마르 데시 꼬리아/
의 미 : 한국에서요.


역사
BC이전 역사 개요
선사시대부터 뱅갈지역(인도의 West Bengal주 포함)에는 선주민인 드라비다족이 살고 있었으나 BC 6세기경 부터는 인도등지로부터 아리안족이 침입하여 곳곳에 정착하기 시작함. 또한 가까운 티베트,미얀마 등지로 부터는 몽고족,터어키족등이 이주해 와서 종족간의 혼혈이 이루어졌으며 뱅갈인이 형성되었다. BC 5세기 중엽부터 뱅갈지역(브라마트라강 서쪽지방)은 마가다왕조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이 무렵부터 불교가 전파되었음. 이어 마우리아왕조와 쿠샨왕조로 이어지면서 불교가 이지역에서 교세를 크게 떨쳐 불교문화가 융성하였다.

그러나 AD 4세기 굽타왕조가 인도를 재통일하면서 부라만교를 국교로 정하자 불교는 일시 쇠퇴하였으나 AD 8세기경 팔라왕조가 성립되면서 불교는 비로소 전뱅갈지역에 퍼지게 되었다.

AC 1년 - 1900년 까지의 역사
1204년 회교도의 침입으로 팔라왕조가 멸망하고 터키계의 고리왕조가 성립되면서 터어키계 회교도들에 의해 지배되어 왔음. 그러나 1576년 무갈왕조의 아르바르대제가 뱅갈지역을 정복하고 이 무갈왕조는 영국식민통치와 대체될때까지 계속된다. 아크바르대제는 행정기구를 중앙집권적으로 정비하는 한편 토지의 사유를 금지하고 왕이 토지를 소유하면서 궁정회교 귀족에게 하사하였으며 귀족들은 토지를 지방호족(힌두교도)에게 세습적으로 관리하게 하였음. 이에 따라 궁정귀족을 중심으로 문화가 번성하였고 수공업과 상업업이 발달하였다. 상공업의 발달로 도시직인의 지위가 향상되고 비회교도에 대한 인두세 부과등 차별정책이 시행되자 카스트제도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회교로의 개종이 시작되어 오늘날 회교국의 계기가 되었다.

1600년 영국의 인도경영이 시작된 이래 1757년 프랑스와의 싸움에서 승리함에따라 영국은 뱅갈지역을포함한 인도전역에 대한 배타적인 지배권을 갖게 되었으며,1773년부터 총독에 의한 영국의 직접통치는 회교도에 의한 등용의 차별(힌두교도 우대)정책과 수탈정책으로 뱅갈 회교도들은 영국인과 힌두교도의 이중적인 지배를 받게 되었고 농촌은 황폐화 되었다.

1815년 이래 영국으로부터 기계와 제품이 수입됨에 따라 번성하던 면공업도 완전히 파멸하였으며 이를 대체할 수출품 생산을 위해 쥬트와 차재배가 시작되었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19세기 초엽부터 반 힌두교 성격이 강한 회교부흥운동이 일기 시작되었으며 20세기에 들어와서 회교 엘리트들의 방영운동이 뱅갈지역 전역으로 확산되었으며,2차대전의 종료와 함께 종교적인 공통성 때문에 뱅갈지역은 파키스탄의 1개주인 동파키스탄으로 1947년 8월 24일 독립하였다. 종족,언어 및 역사와 문화적 배경이 서로 다른 동,서지역이 한나라로 독립되고 서파키스탄 정부의 차별정책으로 1952년 동파키스탄의 저항운동은 뱅갈어 운동으로부터 시작되었음. 중앙정부가 주정부를 해산하고 대통령의 직접통치하에 두어 아유부 칸 장군의 군정에 의한 통치와 1962년 퇴역한 후의 민정통치에 대해 뱅갈인들의 거족적인 데모로 1969년 10월 야야 칸 장군에게 정권이 이양 되었다. 1970년 총선에서 동파키스탄 분리를 주창헤 왔던 아와미 연맹당의 압승으로 중앙정부의 국회개회 무기한 연기에 대항하여 무지브르 라만 당수가 전면파업과 함께 동파키스탄의 독립을 선언함으로써 동,서의 대립은 내전을 거듭하게 되었으며,동파키스탄 해방운동을 중앙정부가 무력으로 진압하려 하였으나 인도의 참전으로 실패하고,1971년 12월 동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로 독립하게 되었다.

독립후 무지브르 라만당수가 귀국하여 1972년 1월 11일 잠정헌법을 선포하였음. 라만은 A.S.쵸드리를 대통령으로 추대하고 자기는 수상으로서 국방,내무,공보상을 겸하고 사회주의 경제방식과 비동맹 중립노선을 견지할 것을 선언했다. 1972년 12월에는 헌법제정에 이어 1973년 3월에 실시된 최초의 총선에서 무지므르 라만이 이끄는 아와미당이 압승하여 라만체제가 더욱 공고화 되었으나,1974년 대홍수와 석유파동 등에 의한 경제의 혼란과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겹쳐,야당에 의해 주도된 반정부 활동으로 국내치안이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1974년 12월말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1975년 1월 대통령중심제로 하는 헌법을 개정하였다. 1975년 8월 계엄령의 선포로 정당활동의 금지와 일당통치를 기도하던 중 무지므르 라만 대통령이 청년장교들에 의해 피살됨을 계기로 쿠테타가 발생하여 동년 12월 지아울 라만 장군이 정권을 장악하고 1977년 7월 정식으로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그러나 1981년 5월 31일 쿠데타가 발생하였으며,지아울 라만 대통령이 치타공에서 육군장군이었던 General Manzoor에게 암살당했다.

1982년 3월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ERSHAD중장이 무혈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계엄령하 통치를 계속하였으며,1986년 5월 7일 민정이양 첫단계로 국회의원선거를 실시하여 Ershad가 만든 정당인 JATIYA PARTY가 압승하였다. 1986년 10월 15일 민정이양을 위한 대통령 선거에서 ERSHAD가 대통령에 당선,1986년 11월 10일 계엄령 철폐하였다. 1987년 11월 11일-26일(17일간) 야당측은 ERSHAD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대정부 강경투쟁(Dhaka Siege Program)을 벌이자 정부는 1987년 11월 27일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1987년 12월 6일 국회를 해산했다. 1988.3.3일 정부는 국회의원선거를 실시하여 여당인 ATITY PARTY가 83%의석(300석중 250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에 정부는 동년 4. 25일 국회개원과 더불어 비상사태를 해제하였으며 4.28일 개각을 단행하였다. 1989년 7월 대통령임기 5년으로 1회 연임가능,부통령은 국민투표로 직접 선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헌법을 개정하였으나 야당연합 주도 정권 퇴진운동으로 1990.12.6일 어샤트 대통령의 하야 및 JATITY PARTY정권이 붕괴하였다. 1990.12.7일 전임 대법원장 샤하부인이 야당연합의 추천하에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취임,과도정부를 구성하고 총선에 의한 신의회 구성 및 민선정부에 권력이양을 약속했다. 1991.2.27일 총선결과 방글라데시 국민당(BNP : Bangladesh Nationalist Party)이 승리하여 기타 군소정당과 연정으로 Ziaur Rahman 전 대통령의 미망인인 Khaleda Zia여사가 수상에 취임하였으며 동년 9월 15일 내각책임제로 개헌을 하였다. 이후 5년간 방글라데시를 통치하던 Khaleda Zia 총리는 지난 6월 실시된 국회의원 총선의 공정을 기하기 위해 총선전 총리 사임을 주장하는 야당의 집여한 투쟁에 굴복 "96.3.31일 사임하였으며 이어 전 내각이 총 사퇴함으로써 BNP정권이 막을 내렸다. 이에 따라 대통령은 3.31일 전직 대법원 판사였던 Muhammad Habibur Rahman을 과도정부 수반에 임명하고 동인은 각정당의 추천을 받아 10명의 과도정부 각료를 임명하여 과도내각을 구성하였다. 1996. 6.12일 과도중립내각하에 제7대 총선이 실시되어 제1야당이었던 Awami League가 300석의 총 의석중 146석을 차지하여 제1당으로 등장하였으며,이에 따라 Awami League는 32석을 얻은 제2야당인 Jatiya Party와 연합으로 신정부를 구성하고 "96.6.23일 Awami League 당수인 Sheikh Hasina가 새로운 총리로 취임하게 되었다.


유용한전화번호
<주 방글라데시 한국대사관>
:Tel. 8812088-9 Fax 9882613
:Tel. 8824218,8813153 Fax 8823068
<한인회관 및 한인학교>:Tel. 602721
<공항>
-다카지역:Tel. 894350,894870,894771
-치타공지역:Tel. 500171-4,500651,500660
<호텔>
-다카지역
Sonargaon:Tel. 811005,812011-9
Sheraton:Tel. 863391
Purbani:Tel. 9563624
-치타공지역
Agrabad:Tel. 500111-20
<한인 운영 게스트 하우스>(Guest House)
-서 울 게스트:Tel. 601253,602324 Fax 8823482
-아 리 랑 게스트:Tel. 600050,602636 Fax 8823619
-한국의집 게스트:Tel. 606915,604713 Fax 8710578
-서울가든 게스트:Tel. 8828499,605782 Fax 8828400
-새 한 게스트:Tel. 9886208,855551 Fax 9886209
-리 게스트:Tel. 8823412,8826221 Fax 9882017
<한국음식점>
-아 리 랑:Tel. 606046,606236 Fax 8823619
-서울가든:Tel. 8828499,605782 Fax 8828400
-영 빈 관:Tel. 8824004,8829001 Fax 8829001
-신 라:Tel. 8810448 Fax 8916638
<경찰서>
다카지역:Tel. 9880234,600486,600510
치타공지역:Tel. 220691,222319
<병원>
다카지역-내과:
박상원 의사(KOICA 협력의):Tel. 8814036
Dr. Islam:Tel. 9333420,602323
Dr. Wahab:Tel. 881454,605125
외과,정형외과:
정현근 의사(KOICA 협력의):Tel. 9114075
Dr. Rahman:Tel. 600317,605120
치과:
Dr. Jhonson:Tel. 604415,882849
산부인과:
Dr. Ershad:Tel. 509560,327943
치타공지역-
Genedral Hospital:Tel. 220536
Medical College:Tel. 206891
전화안내:17,18



전압 및 주파수
220∼240볼트 50Hz

치안
민족자체는 온순하나,경제불황으로 인해 거리의 아이들이 많아지고 그에 따른 소매치기가 급증하고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한국인이 주로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거주지역의 치안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며,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외국인에 임대되는 집들은 창문마다 철제 방범망이 설치되어 있으며,야간 절도에 대비하기 위해 경비원을 고용하거나 용역회사와 계약을 맺고 경비를 세우고 있기도 하다. 일부 가정에서는 도난을 당한 경우도 있으나 그리 잦은 편은 아니다. 빈민층 불량조직의 피해를 피하기 위해서 가급적 야간 산책은 삼가하는 것이 좋고,교통질서가 잡히지 않는 시내나 시외지역을 불문하고,자가용차량의 직접 운행을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좋다.

삼륜 자전거들의 무질서가 심하고 현지인이 운전하는 차량들의 과속과 중앙선 침범이 다반사이므로 운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외국인에 대체로 호의적인 방글라데시인들의 한국인에 대한 인식도 매우 양호한 편이다. 현지의 상류층 사람들은 하층사람들을 무척 가혹하게 대하지만,인정이 많고,좀 잘못이 있더라도 쉽게 용서하는 한국인들의 가정이나 업체에서 일하는 현지인들의 경우 다른 곳에 취직하려 하지 않고 다시 한국인 사회에서 일하려 하는 경향도 있다.


통화
공식 화폐단위는 타카(Taka)이며,1타카는 100파이사(Paisa)이다. 지폐는 TK 1,2,3,4,5,10,20,100,500을 사용하며,동전은 P5,10,25,50,100가 있다.

한국으로 전화
우리나라로의 국제전화방법은 자동전화의 경우,0082(한국코드) + 2 (서울 지역번호) + 전화번호의 순으로 누르면 되며,교환을 이용할 경우,152번이나 162번으로 신청하면 된다.


현지로 전화
우리나라에서 방글라데시로 전화하기 위해서는 국제전화사업자 번호 즉,001(또는 002등)을 누른후 8802(국가번호)-지역번호-전화번호의 순으로 하면 된다.


주의사항
외국인 금기사항
회교국으로서 여성이 매우 보수적이므로 유심히 바라보거나 말을 거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타인과 발을 부딪히는 것을 극도로 꺼림도 유의할 사항이다. 대부분이 수저를 사용치 않고 오른손으로 식사를 하기 때문에 현지인과 식사시 가급적 왼손은 사용치 않는 것이 좋다.

상대에게 약점을 보이는 것은 치명적이 될 수 있으므로 자신에 대해 자세히 알려 줄 필요가 없다. 현지에서의 한국인끼리의 과당경쟁으로 우리 스스로의 손해를 자초하는 사례가 많고 또한 현지인들도 이러한 한국인의 특성을 잘 알고 있어 우리 스스로 자제하는 자세가 절실히 요구된다.

상품구입시 유의사항
바가지가 많고 물건중 파손된게 더러 나오는경우가 있으니 꼼꼼히 살펴야 한다

복장 및 의복 관련사항
항상 우기이니 이점을 유의해야 한다.


비자
▣ 국내 비자발급처
기 관 명 : 주한방글라데시대사관
주 소 : 서울시 용산구 동빙고동 1-92, 1-67
전화번호 : 02-796-4056/7, 02-795-6535
팩스번호 : 02-790-5313
근무시간 : 09:00-13:00 & 13:00-17:00, 토요일 휴무

▣ 비자신청시 유의사항
비자는 주한 방글라데시 대사관에서 발급받을 수 있는데, 수수료는 52,000원이며, 유효기간은 단수 및 더블 비자는 6개월, 복수비자는 6-12개월이다. 비자발급시간은 단수비자인 경우 24시간이며, 나머지는 48시간 걸린다. 우편신청의 경우는 보통 7일에서 10일정도 소요된다. 방글라데시 입국시 유의사항으로는 이스라엘을 경유하여 입국하거나 이스라엘 입국경험이 있으면 입국이 거절된다.
비자면제조건은 첫째,안티구아바부다, 바하마, 부탄, 도미니카, 피지, 감비아, 그레나다, 기네비소, 자메이카, 온두라스, 레소토>레소토, 말라위, 몰비드, 파푸아뉴기니아, 세인트루시아, 세인트빈센트, 솔로몬제도, 우루과이 국민일 경우, 90일간 방글라데시 입국시 비자가 면제되며, 방글라데시를 경유할 때 공항을 떠나지 않고, 첫비행기로 출발시에 비자가 면제된다. 또한 이민국직원에 의해 체류허가를 받고 리턴 티켓을 가지고 있는 관광객이나 비즈니스맨은 비자가 면제된다.

▣ 비자신청시 구비서류
비자신청구비서류로는 관광비자의 경우 신청서 2장, 3개월 이상 남은 여권과 여권용 사진 2장이 그리고 상용비자의 경우는 신청서 2장, 3개월 이상 남은 여권, 여권용 사진 2장과 초청장이 필요하다.
양국간 사증면제협정이 체결되어 있으나, 일반여권 소지자의 경우 현지 관행은 공항에서 입국비자(45일 이하)를 발급해준다.


방글라데시의 기후는 아열대 몬순기후(Sub-tropical monsoon)로 고온다습하며,겨울(11월-2월),여름(3월-6월),우기(7월-10월)로 구분된다. 연평균 강우량은 보통 1,902-4,842mm 정도를 보이며,도시별로 보면,다카 2,186mm,실렛 4,842mm 그리고 치타공이 약 3,310mm 정도이다. 그러나 7월에서 9월사이에 연강우량의 약 75%가 집중되며,이 시기에 홍수가 자주 발생한다. 연평균기온은 겨울이 약 20℃(11-29℃)정도이며,여름은 36.7℃(21-38℃)이다.

습도는 일년 내내 80-90%로 매우 습하며,몬순계절의 연례행사인 홍수와 싸이클론(태풍)으로 매년 곡물 및 인명피해가 크다.




▶ 다카 [Dakar]

방글라데시의 수도로 방그라데시 중남부 달레슈와리 강의 지류인 부리강가 강 바로 북쪽에 있다. '다카'라는 이름은,한때 이 지역에 많이 자라던 다크나무에서 따왔거나 다케슈와리('숨은 여신')와 관계가 있다고 한다. 이 도시 서쪽에 다케슈와리 사원이 있다. 다카의 역사는 1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무굴 제국의 벵골 주의 주도(1608~39,1660~1704)가 된 17세기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중요한 도시로 떠올랐다. 해상무역의 중심지로서 영국,프랑스,네덜란드의 무역상들이 모여들기도 했다.

다카시에는 이슬람 시대에 지은 유서깊은 건축물로 많이 있다. 벵골 주 총독의 아내였던 비비 파리의 묘지,바라카트라,랄바그 요새,초타카트라,후사이나 달란 등이 있다. 그 밖에 17세기 건물로 다케슈와라 힌두교 사원과 포르투갈 사람이 지은 테지가온 교회가 있다. 바이트울무카람을 비롯하여 700개가 넘는 이슬람 사원들의 건축 시기는 1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미얀마와 타이의 종교적 건축물도 있다.

벵골 주의 주도가 무르시다바드로 옮겨지고 모슬린 산업이 기울어지자,다카도 쇠퇴기에 접어들었으며 1765년에는 영국이 지배하게 되었다. 1864년 자치시가 되었지만 동벵골아삼 주의 주도로 정해질 때 까지 쇠퇴를 거듭했다. 20세기초에는 상업중심지이자 교육도시였으며 동벵골 주의 주도였다가 파키스탄이 독립하자 동파키스탄 주의 주도가 되었다. 1971년 독립전쟁 때 심한 피해를 입었지만,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분리해나오면서 방글라데시의 수도가 되었다.

현재의 다카는 남쪽으로 16Km 떨어져 있는 외항 나라 양간지와 더불어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큰 산업 중심지이다. 잠다니(고급 모슬린),자수제품,견직물,보석이 전통적인 생산품이다. 교육기관으로는 다카대학교와 이대학교에 속하는 많은 공립대학이 있으며,공과대학교와 농과대학교,원자핵연구소,도서관 등이 있다. 다카의 주변지역은 메그나 강과 파드마 강,자무나 강으로 둘러싸인 평탄한 평야로 되어 있다. 이 평야에는 수많은 시내와 강이 거미줄처럼 흐르는데,주요 강으로는 달레슈와리 강,부리강가 강,라키아 강이 있다. 쌀,황마,사탕수수,유료종자 등을 주로 재배한다. 정부가 운영하는 목장이 있으며 황마 가공고 밧줄,노끈,바구니,면직물,소형선박 등의 제조업이 발달해 있다. 일찍이 벵골 지방을 다스리던 팔라 왕조의 수도였던 고대도시 비크람푸르도 이곳에 있다.


교육
의무교육제가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취학률이 낮고,문맹률도 매우 높은 편이다. 다카에는 공립 대학교인 다카 대학교(university of dhaka)가 있고 2년제 대학도 있다. 사립대학교도 있지만 등록금이 매우 비싸다.


산업
한 나라의 수도라고는 하지만 방글라데시가 세계 3대 빈국인 만큼 도시의 산업 발달도 미약한 편이다. 쌀,밀 등의 작물 농업가 주를 이루며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등 타산업의 비중은 그리크지 않다.


강우량의 계절적 변화가 무척 심한 이 곳은 비교적 온난하고 습도가 높은 전형적인 아열대 몬순기후이다. 3월에서 6월은 스콜이 많이 나타나며,강우량이 가장 많고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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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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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얀마는 1988년 군사 쿠데타 이후 헌법이 정지된 상태에 있다. 헌법을 대신하여 슬록 강령이 국가최고법 역할을 하고 있고,이들은 국민회의를 개최하여 신헌법 제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국민회의는 헌법 15개 장(Chapter)의 제목을 선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헌법의 기본원리는 장래 국명으로 미얀마연방공화국으로,대통령제 도입,최고사령관에게 비상시 전권 장악권 부여,군의 정부 및 회의 참여 보장,복수정당제 등의 민주주의 실시,시장경제체제 확립 등 6가지로 이들의 목표로 국민단합,다당제 민주주의,정의,자유,평등,미래의 어떤 정권 아래에서도 타트마아두(Tatmadaw:미얀마 군부)의 지도적 역할에 대한 헌법상 보장 등이다. 신헌법 체제의 특징은 간접선거에 의한 대통령제,일부 의원을 국군통수권자가 임명하는 양원제 국회,외국인 부모나 배우자를 가진 자에게 피투표권 거부,국가 위급시 군통수권자에게 비상대권을 참여,시장경제체제의 도입 등이다.

항공
미얀마를 가는 방법은 크게 서울에서 방콕으로 가서 방콕에서 미얀마로 가는 방법과 서울에서 오사까를 경유해서 양곤으로 가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서울-방콕(OZ,KE,TG 이용),방콕- 양곤(TG,UB,PK,LH),서울-오사카-양곤(ANA 항공)이다.

관광객을 위한 전세기는 현재 미얀마에서 방콕, 싱가포르, 홍콩을 운항중이다.

면적 : 67만 6577㎢


수도 : 양곤(Yangon)


인구 : 4199만 5000명

종교 : 미얀마의 종교적 관습은 독특하다. 미얀마의 대다수 사람들이 불교도이고 많은 사람들이 부처와 같은 고행을 따르는데 충실한다. 특히 우기 중에 3개월간의 특계기간에는 음주를 삼가고,결혼,이사 등도 하지 않으며 대부분이 불교적 생활을 하며 보낸다. 또,미얀마 불교도 남자들은 일생에 적어도 한 번은 수도승이 되어 사원에 들어가 수행한다. 여자의 경우,불문의 입문이 허락되지 않지만 여자 어린이가 귀를 뚫는 것이 남자가 수도하는 경우와 같은 사회적 관습으로 되어 있다. 또 여자는 수도사원에서 종교적 수업을 받을 수 있다.


주요민족 : 1984년 추정 총인구 376l만 명 중 약 2200만 명이 미얀마의 중심 민족인 버마족이고,나머지는 여러 소수민족으로 나뉘어 있어,이 민족구성의 복잡성이 미얀마 정치의 중요 문제의 하나이다. 소수민족으로는 예로부터 미얀마에서 거주했던 종족과 최근의 1세기 동안 미얀마로 유입한 종족이 있다.

전자에는 샨족(약 190만)·카렌족(약 220만)·카친족(약 110만)·친족(약 60만)·몬족 등이 있는데,각기 고유의 언어를 갖고 있다. 샨족은 샨 고원에,카렌족은 타이와의 국경 산악지대와 이라와디강 삼각주 지역에,카친족은 북쪽 고지에,친족은 인도와의 국경 방면에 살고 있다. 몬족은 중세까지 이라와디·시탕 두 강의 하류 유역을 지배하였던 민족으로 페구 등의 성시(城市)를 중심으로 세력을 떨쳤으나 중세 이후에 남하해 온 버마족과의 싸움에서 패배하고 인구도 감소하여,지금은 물메인 지방의 소수민족으로 전락하였다.

근래에 미얀마로 유입한 민족으로는 인도인·중국인이 있는데,미얀마가 영국의 식민지가 된 19세기 후반부터 유입하기 시작하여 상공업·서비스업 종사자,농업 노동자,금융업자,지주 등이 되었다. 특히 인도인은 최근까지 백수십 만을 헤아리며,미얀마 경제의 중심세력이었으나,1962년 성립된 네윈 군정의 미얀마화정책으로 수십만 명으로 감소하였다. 그 밖에 약 40만 명의 중국인이 거주한다. 중심 민족인 버마족은 몽골티베트계 민족으로,10세기경 북쪽에서 남하하여 이라와디 중류 유역에 세력을 뻗치고,18세기 중엽에는 미얀마 전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였다. 영국지배하에서는 심한 탄압을 받았으나,제2차 세계대전 후 다시 지배민족이 되었다. 주요거주지는 이라와디 중·하류 유역과 시탕강 유역이며,언어는 버마어,문자는 남인도계의 파리 문자를 쓴다.


주요언어 : 공용어는 미얀마어 이며,통용가능어는 영어,인도어(힌디어),광동어를 사용한다.


기후
국토의 대부분이 북회귀선 이남에 위치하고,여름에 계절풍이 발달하는 벵골만에 면하여 열대 계절풍 기후가 지배적이며,원식생(原植生)은 상록 관엽수림 또는 건기에 낙엽하는 열대 우록림(雨綠林)이다. 북부의 카친 산지와 동부의 샨 고원은 고도가 높아서 온대적이며,겨울에 눈과 서리를 볼 수 있는 곳도 있다.

이라와디강 중류의 상부(上部) 미얀마는 아라칸산맥의 배후에 있기 때문에 강우가 적어,사바나의 경관을 보이는 건조지역이다. 이 두 지역을 제외하면,기온은 1년 내내 높고,대량의 비가 여름에 집중적으로 내린다. 연강수량은 산을 배후에 두고 해안에 위치하는 시트웨와 모울메인에서 약 5,000mm에 이르고(80%가 6∼9월),이라와디강 삼각주에서 2,000∼2,500mm,바다에서 먼 샨주에서 1,200mm 정도이다. 이라와디강 중류 유역은 800mm 이하,파코쿠는 620mm밖에 안 되어,아카시아 등 건조기후에 강한 수목만이 자란다. 우록림에서 자라는 티크·핀카드 등 단단한 수목은 재목용으로 벌채되며,대나무는 종류가 많고 용도가 다양하다.


정부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슬록,SLORC)가 정권을 잡고 있는 미얀마는 복수정당제를 채택하여 총선거를 실시하고,그 후 신정권이 수립될 까지 잠정적으로 정권을 유지한다는 입장을 표하고 있다. 슬록군사정부는 1990년 5월 27일 93개의 정당이 참여한 총선거를 실시하였다. 선거결과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민주국민연합이 압승을 거두었으나 정권이양을 위해서는 헌법이 필요하며,그 헌법은 현재의 미얀마 국회가 정한다는 원칙하에 현재까지 정권을 이양하지 않고 있다. 현재 선거에서 선출된 일부 의원을 포함한 국민 각층의 대표들이 국민회의를 개최하여 신헌법의 기초에 대한 기본적 사항을 협의하고 있다. 현재 미얀마 국가조직은 국민의 최고의사결정기관으로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SLORC)하에 내각(수상은 평의회의장을 겸함) 및 사법기관 등이 조직되어 있지만 입법기관은 인민회의가 해산되어 슬록이 대신하고 있다.

미얀마 정부는 독립이후 지정학적 위치와 경제,군사적인 약소국 및 자기 방어를 의식하여 비동맹 중립주의를 주창하고 있다. 또한 강대국에 대한 불신으로 미국과 구소련 등과의 관계는 일정거리를 유지하였으나,최근 민주화항쟁과 관련한 일련의 사태로 미국과의 관계 악화가 심각한 상태에 있다. 그러나 국제적인 고립과 경제난 타개를 위해 국제사회 협력의 절대적 필요로 중국과의 관계 개선과 인접국 및 아세안(ASEAN)과의 관계 증진을 중요시하고 있다.

또한 아시아개발은행과 스캅(ESCAP)이 주관하여 시행중인 메콩강유역개발계획에 적극 참여하기 위해 인도차이나 국가와의 관계개선에도 노력하고 있다. 이 처럼 타국가와의 관계 개선은 미얀마 군사정부의 주요 외교성과로 평가되고 있고,아세안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미얀마 입지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 평가되고 있다.


지리
미얀마 지형은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형국으로 국경을 따라 위치한 산맥과 고원이 많다. 인도 및 방글라데시와의 국경지역에 파트카이산맥과 라카인산맥이 있고,양 산맥 사이에 친(Chin)고원이 있으며 중국과의 국경지역인 샨(Shan)고원을 비롯해 쿠몬(Kumon),강오(Gangaw),망인(Mangin)산맥이 있다. 태국과의 국경지역에는 빌로크 웅(Bilauk Taung),도나(Dawna),타닌타리 코스트(Tanintharyi Coast) 등의 산맥이 있다. 미얀마 최고봉은 파트카이산맥에 위치한 높이 5,881m의 카카보라지산으로,이 산은 동남아시아 최고의 높이이며 정상은 만년설로 덮혀 있다. 태국,라오스,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황금의 삼각지대(Golden Triangle)라고 일컬어지는 샨고원은 해발 2,400∼2,500m의 산들로 이루어져 있다. 미얀마에 있는 두 개의 긴 하천 중의 하나인 이라와디강(2,179㎞)은 중국과의 국경지역인 파트카이산맥에서 발원하여 지류인 친드윈(Chindwin)강을 합류하고 있고 만달레이와 고도 파간(Pagan)주변을 가로지르고 있다. 이 강이 흐르는 중부와 강하류인 삼각주는 세계적인 쌀생산지이다. 또 하나의 하천인 살윈강(1,274㎞)은 중국 운남성에서 발원하여 샨고원을 가로질러 마르타반만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외에도 칼라단(Kakadan)강,싯타웅(Sittaung)강 등 많은 강이 있다.

미얀마에는 다양한 토양이 지역별로 분포되어 있다. 주로 높은 산맥 주변과 고원(샨고원,친고원 등) 주위의 고지대 토양,중부에서 남부에 이르는 이라와디강 주변의 토양,벵골만 및 마르타반만 주변의 토양으로 구분된다. 고지대 토양으로는 친고원복합성 토양,산맥 주위의 적갈색림 토양,산지갈색림 토양이 분포하고 있다. 이라와디강 주변에는 황갈색림 토양,열대와 아열대 지방에 분포하며 나무가 없는 사바나 토양,회색늪지와 충적토야의 혼합지 등이 분포해 있다. 벵골만 및 마르타반만 주위에는 홍수림 토양과 늪지,충적토양 등이 분포하고 있다.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는 식물은 미얀마 중서부 및 이라와디강 주변 낙엽수로 전체의 39%를 차지하고 있다. 그 다음은 북부산간지역과 친고원,샨고원지역에 분포해 있는 고원 및 온대상록수림으로 전체의 26%를 차지하고 있다. 해안지대 및 샨고원,북부산간지역 일부에 열대우기상록수림과 열대성상록수림이 16%정도 있으며,그 외 침엽수림과 건조림이 10%,방조림과 늪지를 포함한 기타 식물이 4%를 차지하고 있다. 버마가 원산지인 버마나무(Burmese Lacquer Tree:Melanorrhoea Usitata)는 옻나무과의 교목이다. 높이는 20m에 달하며 잎은 홀잎이며 크고 끝이 둔하게 생겼다. 우기에는 줄기에 V자형의 상처를 내고 수액을 채취한다. 우리나라 옻보다 건조하는 데 시간이 더 많이 걸리고 질이 좋지 않으나 버마에서는 많이 심고 있다. 수액을 채취하기 위하여 10일 간격으로 상처를 내고 대나무통으로 수액을 수집한다.


유용한전화번호
주 미얀마 한국대사관
-전화:(95-1) 527142∼4
-주소:97 University Avenue Road,Yangon,Union of Myanmar

대사관저
-전화:(95-1) 549219,546657
-주소:No.96-98,Natmauk Road,Yangon,Union of Myanmar

KOTRA
-전화:(95-1) 253496∼7,256190∼1
-주소:No.408/410(3F),Samsung Plaza,Mahabandoola
street,Yangon,Union of Myanmar

경찰서:199번

소방서:191번

앰블런스(양곤):295133번



전압 및 주파수
220V,50HZ

치안
한때 민주화 사태로 치안이 불안하였으나 군사정부의 강력한 통치로 치안에는 큰 문제가 없는 상태다. 1992년 9월 4년 동안 실시해 오던 통행금지 및 계엄령이 해제되어 좀도둑이 늘어나고 있으나 많은 외국인이 거주하는 수도 양곤에는 안전한 편이다. 그러나,국경지역 및 지방은 미얀마 반군의 잦은 출몰로 치안이 불안한 상태이므로 여건상 단독 지방여행은 불가능하다. 수도 양곤은 밤 10시 정도에는 인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혼자 늦게 배회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

시장경제체재로 전환됨에 따라 양곤,만달레이 등 주요 대도시에 유흥가 등이 새로이 등장함에 따라 동 지역에서 패싸움,택시 운전 기사에 의한 강도행각 등이 발생하고 있다.


한국으로 전화
국제전화번호(00번)+국가번호(한국 82번)+지역번호(앞자리의 0은 제외)+가입자번호


주의사항
외국인 금기사항
수도원과 사리탑 경내에 들어가는 경우 반드시 신발을 벗어야 하므로 슬리퍼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미얀마에서는 불교관련 유적지를 방문하는 경우 입구에서 무조건 신발을 벗고 입장해야 한다. 불교사원내에서 사진을 쵤영하는 경우 소정의 비용을 납부해야 하는데,특히 양곤의 쉐다곤 파고다나 불교성지 바간의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사원 등에서는 필수적이다. 또한 승려의 그림자를 밟으면 안되며,여성이 승려의 몸에 손을 대서도 안된다. 승려나 수도승에게 악수를 청해서도 안된다. 어른이나 어린아이의 머리를 함부로 만지지 말고 어떤 경우에도 여성의 몸에 손을 대서는 안되는데,미얀마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정숙함을 매우 중시하므로 물론 악수도 좋아하지 않느다. 현지인들은 일을 빨리하기 보다는 일을 천천히 추진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미얀마의 주요도시나 관광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경우 주문한 음식이 늦게 나오는 경향이 있으므로 여유를 갖고 차분히 기다려야 한다.

현지 여행중에 쇼핑을 하는 경우 부르는 대로 값을 주어서는 안되고 요령있게 값을 적게 지불하여 구입한다. 현지에서 구입하는 골동품은 원칙적으로 반출이 금지돼 있으므로 너무 비싼 물건을 구입하지 않는 것이 좋다. 미얀마 여행시 안전문제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세계 어떤 나라보다 안전하고 불교성지로 인기가 있는 바간과 만달레이는 안전한 여행목적지이다.

상품구입시 유의사항
미얀마는 루비,사파이어,제이드 및 남양 진주 등의 세계적 산지이며,정부직영매점("인야레이크 호텔" 로비 및 시내의 "외교관 전용 매점 Diplomatic Shop" emd) 이나 아웅산 마켓 안의 개인 소매점 등에서 구입할 수 있다. 정부매점의 경우 "달러"로만 구입이 가능하며,개인상점의 경우 현지화로 구입할 수 있으나 원칙적으로 정부지정 공식 환전소에서 환전한 금액 범위내에서 구입한 물품에 대해서만 반출이 인정된다. 각별히 유의해야 할 사항으로 루비 등의 보석류는 모조품도 있으므로 주의를 요한다.

은제품으로 미얀마 특유의 디자인으로 된 커피세트,쟁반,담배함 등이 있는데,인야레이크호텔 로비 등에서 구입이 가능하다. 락커제품은 대나무로 제품모형을 만들고 그 위에 칠을 입힌 것으로,다양한 디자인의 제품이 있으며 일반 가게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골동품류로는 중국산 차,램프류,부처상 등 각종 골동품을 취급하는 상점이 외국인 주택주변 등에 다소 있으나 모조품이 많이 있으며,원칙적으로 부처상은 해외반출이 금지되어 있다. 그림류는 유화와 수채화를 전문취급하는 화랑이 서너군데 있으며(골든벨리 지역의 "골든 벨리 아트센터" "트레저리" 등과 아웅산 마켓내의 상설 화랑 등),그림가격은 보통 2000 챠트에서 10,000 챠트 수준이다. 그림의 수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관심있는 수집가라면 비교적 싼 값으로 특색있는 그림을 구입할 수 있다.

복장 및 의복 관련사항
열대기후이므로 1년 내내 덥기 때문에 면으로 만든 가벼운 캐주얼 옷이 적당하다. 단지 건기에 만달레,버간,삥우루잉,밋찌나등 상부미얀마를 여행할 경우면,따뜻한 스웨터나 가벼운 자켓을 준비하는 것도 좋다. 미얀마는 사원의 나라이므로 종교적인 장소를 방문할 때는 말끔한 복장을 갖춰야 하며,반바지나 나시티는 착용금지되어 있다.


비자
▣ 국내 비자발급처
기 관 명 : Embassy of the Union of Myanmar(주한 미얀마 대사관)
주 소 :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723-1, 724-1
전화번호 : 02-792-3341, 796-9858/9
팩스번호 : 02- 796-5570

▣ 비자신청시 유의사항
미얀마를 여행하려면 주한 미얀마 대사관에 비자를 신청해야 한다. 비자를 신청하면 3일 이내에 나오고, 신청서에 본인이 서명하면 대리인도 가능하다. 비자 접수 및 발급 시간은 비자접수시간이 9:30-12:00까지이며, 비자발급시간은 13:00-16:00까지이다. 현지체류 가능기간은 관광비자의 경우 유효기간 1개월에 최대 28일까지 체류가 가능하며, 상용비자의 경우는 유효기간 3개월에 최대 4주까지 체류할 수 있으나 현지에서 3-12달까지 연장이 가능하다.

▣ 비자신청시 구비서류
관광비자, 방문 및 상용비자 모두 재외 미얀마공관을 통해 발급 받으며, 체재기간은 4주(28일). 7세 이상 어린이는 부모와 여권을 분리하여 비자발급을 받아야 한다.
구비서류로는 관광비자의 경우 6개월 이상 남은 여권, 신청서 2장, 여권용 사진 3장,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 여행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하는 것과 왕복항공권이 필요하며, 상용비자의 경우는 6개월 이상 남은 여권, 신청서 3장, 여권용 사진 3장, 출장증명서(신청인의 방문 목적과 미얀마 정부 부소 혹은 법인, 서비스 제공 기관의 이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스폰서 단체나 회사, 부서의 서류, 서류에는 정확한 사업 목적과 신청인의 재정 상태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어야 함)와 왕복항공권이 있어야 한다.




▶ 만달레이

상(上)미얀마 중앙에 있는 만달레이 주의 주도. 상미얀마의 옛 수도로 이라와디 강변에 자리잡고 있다. 미얀마에서 양곤 다음으로 큰 제2의 도시이며,중앙부에 위치한 덕분에 철도,도로,비행기,강을 운항하는 기선 등을 이용한 내륙교통과 교역로의 중심지가 되었다. 만달레이는 1857년 민돈왕이 아마라푸라를 대신하는 수도로 건설한 도시이다. 미얀마 왕국의 마지막 수도였으며 1885년 11월 영국군에게 함락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일본군에게 점령되어 거의 전부가 파괴되었고,윌리엄 슬림 경의 지휘 아래 영국 제14군단이 재점령했던 1945년 3월,12일 포위기간 동안 최악의 손상을 입었다. '미얀마 불멸의 심장'을 뜻하는 만달레이에는 불교신자가 많으며 중요한 불교중심지로서 수많은 승려들의 본고장이다. 시 중심부에는 해자(垓字)로 둘러싸인 뒤프랭 요새,왕궁(Nandaw)의 폐허,수많은 불교사원과 수도원,옛 영국 관청이 있다. 이라와디 강 근처 영국 병영지 북동쪽에 있는 만달레이 구릉에는 비교적 최근에 지은 수도원·탑·기념비 등이 있다. 구릉 기슭의 730개 파고다로 이루어진 왕실지정유적(Kuthodaw)에는 미얀마 불교도들이 개정·정선(精選)하여 정통경전으로 받드는 불교경전들이 기록된 729개의 흰 대리석 서판이 있다. 제5차 불교도회의에서 민돈 왕이 공인한 이 서판들은 하나하나 탑 같은 형태의 소형구조물로 보호되어 광장에 세워져 있으며 광장 중심부에는 전통사원인 730번째 파고다가 자리잡고 있다. 만달레이 최고의 명물은 시 남쪽에 있는 마하무니(또는 아라칸) 파고다이다. 1784년 보다우파야 왕이 아라칸 해안에서 가져온 수많은 전리품들 가운데 하나로 이 파고다에 안치되어 있는 높이 3.6m의 황동불상도 걸작품으로 꼽히는 유물이다.

1167년 민신사우 왕이 세운 슈웨키이미인트 파고다를 비롯한 아름다운 파고다가 상당수 있다. 만달레이 시에서는 차〔茶〕 도매,견직조,술의 양조 및 증류,비취세공,황동 및 구리 주조,금박업 같은 산업을 하며 성냥·목공품·금은그릇도 생산한다. 철도와 비행기편으로 남쪽에 있는 양곤,북쪽에 있는 미치나와 미얀마로드의 출발점인 라시오까지 연결된다. 가까이 있는 아바·아마라푸라·사가잉 시가 만달레이 도시권에 속한다. 박물관과 현대식 병원도 하나씩 있다. 양곤을 제외하고 전국에서 유일하게 일간지가 발행되는 곳이기도 하다. 대나무숲이 우거진 주변지역은 미이틍게 강과 마기이(마다야) 강에서 물을 공급받는다. 마다야 가까이에 있는 사이긴 구릉지대에서는 설화석고가 나며 이것은 만달레이에서 제작하는 불상(佛像) 재료로 쓰인다. 평원지대는 미얀마의 건조지대 일부이지만 길이 67㎞인 만달레이 운하를 통해 3만 6,400㏊나 되는 지역에 대규모로 관개가 이루어지고 있다. 만달레이 바로 북쪽의 밍군에는 무게 약 70t인 세계에서 가장 큰 종 가운데 하나가 있다.

교육
양곤대학교에 속해 있다가 1958년 독립한 문리과 대학교를 비롯해서 사범대학 1개교와 농업·의학·기술 전문학교,기술고등학교,예술학교 등의 교육기관이 있다.


산업
만달레이는 미얀마의 전통 예술과 장인의 기능으로 유명하다. 두개의 고대 조각물이 있는데 하나는 돌 부처를 직접 깍아 만든것이고,다른 하나는 특별한관심을 모으고 아직까지도 따라하고 있는 금으로 만든 잎의 제조법이다. 만달레이 남쪽에 있는 마하무니 파고다 근처에는 모든 길이 다 혼신의 힘을 다해 돌을 깍아 만든 길이다. 금으로 만든 잎사귀 제조에 대한 관심은 도시의 남동쪽으로 모아진다. 금덩어리를 필름처럼 얇게 만드는 것은 정말 힘든 작업이다. 이러한 작업들은 남녀가 힘을 모아서 해야되는데 남자는 금을 얇게 만들고 여자는 그 얇은 금에 무늬를 넣는다. 이러한 금으로 만든 잎사귀는 파고다를 도금하거나 예술작품에 사용되는데 신봉장들이 패킷 단위로 산다. 이러한 제조 판매 분야에서 만달레이는 미얀마에서 중심을 이루고 최고이다. 인도,태국,중국 등과의 경계이면서 미얀마의 다른 주를 가기위해서는 미얀마를 거쳐서 가야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만달레이는 이러한 상업과 무역의 중심이다.




▶ 바간

상(上)미얀마 중부에 있는 도시. 만달레이 남서쪽으로 약 145㎞ 떨어진 지점,이라와디 강 왼쪽 기슭에 있다. 미얀마의 옛 수도였으며 현재는 순례 중심지로서,고대 불교사원들이 복원되고 다시 꾸며져 현재 사용되고 있다. 그밖에 형태만 남은 사원들의 유적과 탑들도 넓은 지역에 산재해 있다. 1975년 7월 8일 지진으로 중요한 건축물 가운데 절반 이상이 심한 피해를 입었으며,그중 상당부분은 복구할 수 없을 만큼 파괴되었다. 900년 동안 뱃사공들의 표지물 구실을 한 부파야 탑 전체가 이라와디 강으로 굴러떨어져 강물에 떠내려갔다. 특산품인 칠기를 만드는 기술을 가르치는 학교가 있다.

파간은 지금의 모습보다는 과거의 유산에 그 중요성이 있다. 849년에 처음 세워진 것으로 추측되며,11세기 부터 13세기말에는 대체로 지금의 미얀마와 일치하는 지역의 수도였다. 1287년 대대적인 정복전을 벌이던 몽골족의 침략을 받았으며,그뒤로 불교사원 건축은 산발적으로 계속되었지만 옛 지위를 되찾지는 못했다. 옛 파간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였으며,서쪽 측면에 이라와디 강을 끼고 있었다. 간선도로망의 중심지로,통치자들은 그 도로망을 통해 기름진 평원으로 이루어진 광대한 지역을 차지하고,페구와 같은 다른 미얀마 왕조의 도시들을 지배할 수 있었다. 강 하류의 티리피이사야 항은 인도·실론 및 다른 동남아시아 지역들과 해외무역이 성행했던 곳이다. 오늘날 도시의 상당 부분을 포함하는 옛 도시의 성벽 내에는 원래 왕궁·귀족들의 저택,불교사원,행정사원이 있었던 듯하며,주민들은 성 밖에서 지금의 미얀마인들이 살고 있는 가옥과 매우 비슷한 허술한 가옥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성벽 도시는 이라와디 강물로 채워진 해자로 둘러싸인 왕조의 신성한 요새였으며,성벽 둘레와 강변 임계지는 약 4㎞에 이른다. 옛 도시 가운데 1/3가량이 강물에 떠내려간 증거가 있다. 건물은 주로 벽돌로 지어졌으며 조각된 벽돌,회반죽,테라코타로 장식되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건물은 10세기에 건축된 나트 라웅 기아웅으로 추정된다. 동쪽 성벽 사라바 문(門) 옆에 있는 사원들은 인접한 성벽보다 나중에 지어졌지만 역시 오래된 건물이다. 이 사원들은 애니미즘을 신봉하는 미얀마인의 전통적인 신인 나트(nats) 신들을 모시는 곳이다.
중요한 탑과 사원들을 중심으로 부수적인 건물들이 모여 있다. 이 건물들 주변으로 작은 탑과 건물들이 흩어져 있는데 그 가운데 일부는 한때 귀족들의 저택이나 별채였다가 뒤에 사원의 용도에 맞게 도서관이나 법당 등으로 개조된 것으로 보인다. 모든 건축물은 인도 표준양식에 바탕을 두고 있으나 뒤이은 발전기 동안 몬족에 의해 부분적으로 변형되었다. 건축의 주요주제는 높은 종루 모양의 불교 사리탑이다. 이것은 원래 그 꼭대기 부근에 불교 성인들의 신성한 유물을 모시기 위해 설계된 것이었다. 또다른 주제는 성스러운 산을 상징하는 높은 계단식 대좌(臺座)로 계단·출입구·사리탑이 딸린 경우도 있었다. 예술양식의 발전 과정에서 여러 주제들이 서로 결합되어 나타났고,그 결과 양측에 주랑이 늘어선 직4각형의 복합건물이 생겨났다. 이 건물의 꼭대기에는 사리탑이 있으며 때로는 현대 인도의 힌두교 사리탑을 생각나게 하는,몸체 외곽이 곡선으로 처리된 직4각형 탑이 있는 경우도 있다. 둥글고 뾰족한 내부의 아치 및 천장은 인도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던 순수한 방사형 아치 모양으로 건축되었다. 파간 시 유적은 연속되는 주제의 다양성과 조화를 보여준다. 특히 더이상 사용하지 않아 복원되지 않은 많은 건축물들의 외부에는 회반죽과 테라코타 장식이 많이 남아 있어 멋지게 균형잡힌 직4각형 구조물에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고,내부에는 불교 전설과 역사를 기록한 그림들과 테라코타들이 있다. 아나우라타 왕은 슈웨지곤 탑을 세웠고,그 부근에 나트 신상이 있는 사원을 지었다. 슈웨지곤 탑은 밑부분은 직4각형이고,윗부분은 원형인 거대한 계단식 피라미드로,꼭대기에 몬족의 전통적인 양식인 종 모양의 사리탑이 있으며,층계,문,장식용 첨탑으로 꾸며져 있다. 이 탑은 보석으로 꾸민 거대한 황금 우산 모양의 첨탑 꼭대기 양식으로 유명하며,숭상을 받고 있다. 1975년의 지진으로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다. 그밖에 부처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해지는 인도 부다가야에 세워진 사원을 본떠 12세기에 지은 피라미드형의 마하보디 사원,동쪽 문 바로 너머 산에 있는 키얀지타 왕 시대에 아난다 사원(1091)도 유명한 건축물이다. 탓피인니우 사원(1144)이 세워질 무렵에는 몬족의 영향은 희미해지고 미얀마 양식의 건축이 발달해 있었다. 2층식 피라미드를 닮은 4층의 탓피인니우 사원은 새로운 양식으로,내부의 방들은 초기의 양식처럼 산같이 육중한 구조물 안에 있는 희미하게 빛이 드는 공간이 아니라 매우 넓은 공간으로 되었으며,사리탑·사원·수도원의 기능을 결합하고 있었다. 미얀마 건축 양식은 거대한 술라마니 사원에 이르러 더욱 발전한 모습을 보이고,12세기 후반 왕조의 조상신들에게 헌정된 가우다우팔린 사원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가우다우팔린 사원 외부는 작은 탑으로 장식되어 있으며,내부는 매우 사치스럽고 화려한 표면 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 시리암

16세기 포르투칼에 의해 무역항으로 개발되었고 한때는 포르투칼인이 이지역의 왕이 되기도 하였다. 양곤에서 차량으로 한시간정도 걸린다.




▶ 양곤

미얀마 남부 마르타반 만 북쪽으로 40㎞ 떨어진 양곤 강,즉 흘라잉 강(이라와디 강 동쪽 어귀)의 동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미얀마에서 가장 큰 도시로서 산업 및 상업 중심지이다. 삼각주 충적지대로 둘러싸인 낮은 산마루에 자리잡고 있다. 원래 주거지는 산마루 쪽에 있었으나 오늘날의 시가지는 충적지대에 위치했으며,그이후 충적지대와 삼각주 양쪽으로 계속 뻗어나가며 성장했다.

병영지(Cantonment)라 불리는 도시 중심지는 1852년 건설계획을 마련해 세우기 시작한 곳이다. 각각 너비 245m,길이 262m의 일정한 구획을 지은 거리들이 사방으로 뻗어 있다. 양곤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축물은 금을 입힌 거대한 불탑인 슈웨다곤 탑(112m)으로,북쪽으로 51m 떨어진 언덕에 우뚝 솟아 있다. 도시 중심지 대부분은 3,4층짜리 벽돌건물로 되어 있지만,변두리지역에는 전통적인 목조건물들이 흔하다. 정부청사(옛날의 구사무국〔Old Secretarat〕),법원,양곤 종합병원,세관 등은 식민지시대에 지은 붉은 벽돌로 된 낡은 건물이다. 현대식 건물로는 서기국 건물,병영지 안에 있는 백화점,기술전문학교,미얀마방송국,제1약품연구소 등과 인세인에 있는 양곤 기술연구소가 손꼽힌다. 도시 중심지 북쪽 지역에는 나무가 우거진 공원으로 둘러싸인 로열 호(칸다우기이)가 있으며,근방에는 시립동물원과 식물원이 있다. 보기오케 아웅산 박물관과 국립미술고고학박물관을 비롯한 박물관이 여러 군데 있으며,운동경기장과 체육행사장도 몇 곳 있다. 1920년에 세운 양곤대학교는 1964년 문리과 종합대학이 되었다. 양곤은 미얀마의 무역 중심지로 해외무역의 80%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쌀·티크·금속광석을 주로 수출하며 전국의 철도·수상교통·도로·항공 중심지이기도 하다. 북쪽 밍갈라돈에는 국제공항이 있다.

양곤 강을 따라 자리잡은 정미소와 제재소들은 미얀마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주요산업(직물·비누·고무·알루미늄·강철판 등 제조)은 국영이지만,양곤의 소규모 업체들(식품가공,의류 생산시설) 대부분은 개인이나 협동조합 소유이다. 도시 중심지는 상점,중개인 사무실,잡화상들을 비롯해 은행·무역회사·사무실이 있는 상업지역이다.




▶ 짜익티오

11세기경 이 지역의 왕이 한 수도승으로부터 부처의 머리카락을 받았다. 왕은 자신의 머리와 비슷하게 생긴 바위를 찾아 산 꼭대기에 그 바위를 안치하려는 뜻을 품고, 연금술사와 해룡의 도움을 받아 바다속에서 바위를 찾아 지금의 위치에 옮긴 뒤 부처의 머리카락을 바위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짜익티오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하였고, 해발고도가 높고 산이 험해 오르기가 만만치 않지만 연중 많은 불교신자들이 방문한다.




▶ 페구

미얀마어로는 Bago. 하(下)미얀마 페구 주와 페구 군의 행정중심지인 항구도시. 양곤에서 북동쪽으로 76㎞ 떨어진 페구 강 연안에 있다. 일찍이 몬 왕국의 수도였던 이곳은 왕국시대에 한 변이 2.4㎞인 정4각형을 이루고 있었던 성벽과 해자 유적으로 둘러싸여 있다. 양곤-만달레이를 잇는 철도가 지나며,벵골 만 안에 있는 작은 마르타반 만을 따라 남동쪽으로 뻗어 있는 철도 지선의 시발지이다. 또한 사방으로 이어진 광범위한 도로망을 갖추고 있다. 페구는 쌀과 목재의 주요집산지로 많은 정미소와 제재소가 들어서 있다. 많은 건축물들 가운데서도 높이 88m의 고대 사원 슈웨마우다우(황금 사원)가가장 훌륭한 것으로 꼽힌다. 석가모니의 머리카락 2개가 보존되어 있는 이 사원은 몬 왕국 시대에 건축되었으며,1930년 지진으로 심한 손상을 입었다가 1954년에 완전히 복구되었다. 새 시가지 서쪽에 있는 길이 55m인 거대한 불상 슈웨탈리아웅 와상은 모든 와상들 중 가장 사실적이라는 평판을 받았다. 994년에 만들었다는 이 불상은 1757년 페구가 파괴되었을 때 없어졌는데 1881년에 밀림 속에서 다시 발견되었다. 또한 근처의 칼리아니시마(성직자 임명실)는 몬 왕국의 담마제디 왕(1472~92)이 세운 것으로,미얀마의 불교 역사상 가장 큰 개혁운동이 시작되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 이야기는 담마제디 왕이 칼리아니시마 근처에 세운 10개의 돌 비석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밖에도 마하제디·슈웨구갈레·키아익피엔 등이 유명하다. 페구는 삼림지대인 페구 산맥(서쪽)과 시탕 강(동쪽)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관개시설이 잘 되어 있으며,유일한 농작물인 쌀이 양곤을 통해 각지로 수출된다. 이 지역을 가로지르는 페구 시탕 운하는 수문을 통해 64㎞ 정도 항해할 수 있다.




▶ 헤오

해발 1300m의 헤오는 바간과 만달레이에서 유서깊은 파고다만 순례로 지친 몸을 풀수 있고, 볼거리도 즐길수 있는 곳이다. 낭만적인 수상방갈로식 호텔과 거대한 수상마을 수상시장 등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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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은 중앙아시아에 위치하고 있으며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이다. 이 나라는 북쪽에 러시아와 서쪽과 남동쪽에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이나라의 총면적은 1,565,000 ㎢(605,000 square miles)로서 인도의 1.5배,일본의 4배,한반도의 7배에 해당하는 넓은 국토를 가지고 있다. 몽골은 아시아에서 가장높은 인구 자연증가율을 가진 나라중의 하나로 1960년 이래 2배이상의 인구증가율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평균인구밀도는 매우 낮다(1.3 person/㎢). 1995년말,전체인구는 2,317,500명이며,전체의 75%가 할흐몽골인이다. 지난 20년동안 시골로부터 도시로의 이주가 가속화되어 1969년 도시 거주자가 전체의 44%였던 것에 비해 1995년에는 60.1%로 증가하였다. 몽골은 1689년부터 1921년 정치적 자립을 이룰때 까지 만주(Manchu) 제도하에 있었다. 1921년 공산당에 의해 주도된 인민혁명이 승리하여 사회주의 공화국이 설립,그때부터 1980년말까지 사회의 발전은 철저히 Soviet model을 따랐다. 1990년초 학생들의 민주화 항거와 공산주의의 몰락과 더불어 몽골은 자유시장경제를 추구하는 나라로 변신을 하였다. 현재,몽골에는 민주연합과 인민혁명당등 8개의 정당이 있다. 1996년 6월30일의 총선에서 76석의 의석중 민주연합이 50석을 확보했고,몽골 인민혁명당이 나머지 좌석을 얻었다. 몽골의 주요종교는 라마불교이다. 1992년 몽골의 새로운 헌법은 인간의 기본권리와 개인의 자유뿐만 아니라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면적 : 중앙아시아 고원지대에 위치한 내륙국가로 1,566,00km로 한반도의 약 7.4배의 크기이다.

수도 : 몽골의 중앙 북부, 오르혼 강의 지류인 톨라강 북안에 위치해 있는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는 1,300m의 고원도시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이다.
울란바토르의 옛 이름은 우르가 이다. 1649년 이 곳에 라마교의 본산이 들어서면서 우르가는 급속도로 발전하였다. 18세기에 러시아, 청나라 양국의 중계무역지가 되어 더욱 번창한 우르가는 1911년 외몽골의 독립과 함께 몽골의 수도가 되었다. 1921년의 혁명으로 옛 라마교 국가가 무너지고 사회주의 국가가 되면서 1924년에 인민 혁명의 영웅 수흐바타르를 기념하여 도시의 이름을 몽골어로 "붉은 영웅"을 뜻하는 울란바토르로 바꾸었다. 중심에 울란바타르의 상징인 공산혁명의 영웅 수흐바타르 기념광장이 있고 그 주변에 정부 청사, 의회 건물, 문화의 궁전, 독립 영웅들의 묘등이 있다. 공룡의 화석으로 유명한 자연사박물관, 몽골의 레오나르도다빈치라는 자나바자르를 기념한 자나바자르 박물관, 나이람달 공원 등이 있다. 또한 몽골 유일의 종합대학인 울란바타르대학교와 농업, 의학 등의 전문학교, 사범학교 등이 있다.

인구 : 약 280만명

종교 : 몽골의 생활속에는 샤머니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고, 3번에 걸쳐 불교를 받아들여 자녀 3명중 1명이 라마승일정도로 불교 국가였던 몽골은 사회주의인 악박속에서도 명맥을 지켜냈으며 현재 다시 불교의 성장을 이루고 있지만 샤머니즘과 혼합된 모습들도 볼 수 있다.
라마불교 90%이상, 이슬람교 5%, 기독교 1%

주요도시 : *중앙 몽골
울란바트로를 중심으로 근교를 다니는 여행을 하게 된다. 여행 기간이 짧다면 울란바트로를 중심으로 근교를 다니는 여행을 계획하면 된다. 70km 떨어져 있는 테를지 국립공원, 몽골 최대의 불교 대학터가 있었던 만치르 사원, 약 100km 떨어져 있는 호스테이 국립 공원에서 야생말 감상, 몽골 제국시대 때의 수도였던 하르호름(360km)과 온천으로 유명한 첸헤르 온천지역을 방문할 수 있다.
*동부 몽골
징기스칸의 탄생지와 유적지를 방문하는 여행코스가 일반적이다. 징기스칸의 탄생지인 다달솜, 왕으 로 등극을 한 후흐노르 등을 방문을 하고 초원과 끝없이 이어지는 야생화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아직 개발이 많이 되지 않은 곳이므로 짚으로 여행을 하여야 한다.
*서부 몽골
알타이 산맥이 지나가는 곳으로 해발 4,000m 이상의 설산들이 있는 지역이고 몽골에서 가장 추운 지역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가는 길이 멀고 험해서 일반 여행자들은 거의 찾지를 않지만 산악인들이 원정을 위해서 찾고, 모험여행을 좋아 하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서부 몽골은 거대한 반사막 지역, 소금 호수, 모래언덕등이 있고 사람이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엔 야생동물과 희귀한 식물들이 있다. 이 지역은 특히 무슬림을 믿는 카자흐 민족들이 많이 거주를 하고 있다.
*북부 몽골
북 몽골은 초원뿐만이 아니라 울창한 산림 지역이 있다. 특히 홉스골 호수를 중심으로 많은 천혜의 자연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주변에 많은 호수들이 있고, 방문객이 적어서 자연을 느끼기에는 좋은 곳 이다. 하지만 이동이 길고, 편의시설이 다른 곳에 비하여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남부 몽골
몽골 여행 코스 중에서 가장 매력 있는 지역이 남부 몽골의 고비 사막 지대이다. 고비 사막은 세계에 서 가장 큰 야생동물 보호구역이고 자연 그대로를 간직한 곳이다. 특히 공룡화석들이 많이 발굴되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티그리깅시레)이다. 특히 알타이 산맥의 끝자락에 위치를 하고 있는 오믄고비는 여름철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끝없이 보이는 황폐한 땅과 이국적인 모습, 하늘의 수많은 별들과 은하수는 대자연의 감동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주요민족 : 몽골족89% 카자흐족6% 전체의 약 90% 정도가 몽골족이다. 몽골인들은 여러개의 부족으로 나뉘는데 전체인구의 약 75%가 할하 몽골족이고 브리야트,다리강가,다르베트,카자흐 몽골족등이 있으며 가장 작은 종족은 주로 서쪽끝에 살고 있는 투르크 민족인 카자흐족 으로서 5% 정도를 차지한다. 러시아인과 중국인들 소수도 몽골에 살고 있다.그리고 약 400만명의 몽골인들이 러시아등 몽골 밖에서 생활하고 있다.


주요언어 : 현재 몽골의 공용언어는 할하몽골(khalkha momgol)어 이다. 지방에 따라 방언이 많이 쓰이고 있으며,터키(Turkic)계의 카자흐(kazakhs)어 등도 사용되고 있다. 90% 이상이 몽골어(할하 몽골)를 사용하고 있으며 바양울기등 카자흐족이 살고 있는 일부지역에서는 카자흐어와 몽골어가 혼용되고 있다.

제 2외국어는 70여년간 러시아의 지배를 받은 덕에 관료들이나 엘리트 세력 및 어느정도의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 그리고 대개 3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넓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요즘은 서구 자본주의의 유입과 더불어 영어가 그 자리를 대신해 가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독일어가 종종 사용되나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어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몽골의 문맹율은 20% 정도이다.


경제
몽골의 인구는 1980년에서 1990년까지 매년 2.5%의 성장을 계속해왔다. 국가전반의 경제의 어려움으로 1994년도에는 인구증가율이 1.3%로 떨어졌는데 경제가 회복이 되면 다시 인구증가율은 오를 전망이다. 몽골의 경제는 1980년대에는 3.5%로부터 9.4% 혹은 평균 6.3%로 꾸준히 성장해왔는데 이는 CMEA국가들과의 밀접한 유대관계에 의한 원조때문이었다. 그러나,많은 국내외적인 압박의 결과 움츠리기 시작했다. 가장 큰폭의 경제하락은 1992년으로 GDP의 9.5%까지 떨어졌다. 4년간의 마이너스 성장과 높은 인플레이션 후의 몽골의 경제회복은 1994년에 시작되어 1995년까지 계속되었으며 이때 GDP는 6.3%까지 성장하였다. 그러나,이회복은 안정된 것이 아니고 단지,1995년 동과 캐시미어 및 몽골의 주요수출품목의 국제적가격의 상승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1996년 1월부터 6월사이에 이들품목의 가격하락과 함께 경제성장률은 1%미만으로 떨어졌다. 1996년 몽골 국립통계청에 따르면 1996년의 몽골경제는 1995년의 GDP성장률 6.3%에 반도 못미치는 2.6%의 GDP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1996년 ADB(Asian Development Bank)에 따르면 1997년과 1999년 동안에 해마다 3~4%의 GDP성장률로 몽골경제는 회복될것이라고 전망했다. 1996년 경제감소의 주요원인은 산업수출(1995년의 14.8%에 비해 0.5%의 성장률)에서의 수익의 감소와 관광수입의 감소등이다. 그러나,농업분야는 1995년의 3.8%에서 1996년 4.2%로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개인분야의 성장은 관광관련 서비스와 소매무역에 있어 높은 성장을 했다. 개인 서비스분야의 성장과 그에 영향을 받은 GDP의 성장은 같은기간 서비스분야를 지배한 금융분야에서의 손실에 의해 무색해졌다. 1995년에는 현금 사유화 프로그램에 진전이 있었지만 1996년 전반기 동안에 별로 진전이 없었다. 새정부는 현금 사유화의 가속화를 수행했다. 거시경제의 안정은 1995년 후반기에 강력한 정부의 행동의 결과로서 이루어졌다. 수출은 1995년 32%가 증가했지만 1996년 1월에서 6월까지의 수출은 1995년 동기간보다 13% 감소했다. 1995년 35% 성장한 수입은 1996년 전반기동안 21% 의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1996년 전반기 동안 6백만달러의 무역적자와 1,500만달러의 통화회계손실이 있었는데 이는 전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비록,구조적 정책의 개혁을 개선하는데 있어서 1990년부터 1994년동안 주요한 진전이 일어났지만 이러한 과정은 1995년과 1996년 상반기동안에는 그 속도가 감소되었다. 6.30일 선거후 새정부를 형성했던 민주연합은 개혁대안으로 중요한 방안을 개선해왔다. 그 대안은 a) 천연캐시미어의 수출 금지조항을 폐지하고 b) 전기세와 난방세를 60% 올리며 c) 석탄값을 45%,석유값을 29~60% 인상하며 d) 중앙은행과 커머셜 뱅크의 운용에 관한 새로운 법률의 제정등이 포함된다. 이 새로운 법률로 몽골은행은 파산은행들을 정리하는 인수자로 지정되며 몽골은행의 원칙에 동의하지 않는 은행들에 대해 조치를 취하는 적절한 조항과 행사력을 갖게 되었다.

몽골의 경제 개혁을 위해 정부는 다음과 같은 광범위한 개혁의 대안들을 발표해왔다. 현금사유화의 가속화/생산자들에게 부과되는 세금의 30% 감소/세무행정의 향상과 세금기반의 확충/외국투자의 증진/외국원조의 조정/사회보장제도의 목표 재설정 특히 교육과 보건분야의 고용을 줄임으로써 정부의 지출을 감소 1996년의 예상되었던 경제성장의 둔화는 주로 33%의 국제 동가격의 하락과 10%의 국제 캐시미어 가격의 하락의 결과 산업 생산의 성장률의 감소되업다고 본다. 관광수입의 하락 ,전기공급의 분열 ,금융분야의 심각한 파산문제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의 비율은 에너지 가격의 인상,재정확충,투그릭(몽골의 화폐단위)의 가치하락 때문에 1996년 하반기에 증가할것으로 예상된다. 1996년도 전체재정적자는 GDP의 12%에 해당하며 이는 외부원조의 유입에 의해 융자될것이다. 1997~1999년에는 3~4%의 GDP성장률이 기대되고 인플레이션은 10~15%로 진정될것며 투자는 GDP의 23%로 유지될 전망이다. 또한,통화예산 과잉(currency budget surplus)은 GDP의 5%,전체 재정적자는 약 10%로 예상된다. 다른 과도기적 경제와는 달리 몽골은 monobanking 시스템을 유지해왔다. 1991년에 시작된 현대의 커머셜 뱅킹분야로의 변천의 과정은 어려움을 겪어왔으며,현재도 많은 문제를 안고있다. FSPL(Bank's Financial Sector Program Loan) 하에 금융개혁 프로그램이 금융분야의 갑작스런 문제들을 다루기위해 은행과 IMF의 협력으로 새정부에 의해 취해져 강화되어왔다. 국가전반의 실업률은 아르항가이,웁스,호브트,흡스걸 아이막과는 달리 전년의 5.9%에서 1996년에는 6.5% 증가하였다. 여러 자료에 의하면,빈곤은 몇년동안 증가되었다. UNDP는

기후
몽골은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인 건성 냉대기후(Foreal realm)지대에 속하여 연평균 기온 이 영하 2.9c 이다. 일년중 6개월이 평균온도 0c 이하이고 가장추운 1월은 전국 평균-15c - -33c 이다. 반면 가장더운 시기는 7월이며 14c-23c 이다. 생활하기가 가장 좋은 계절은 여름부터 가을까지로 습기가 없고 상쾌한 날이 이어진다. 일년중 맑은날이 250일 정도이고 흐린날은 9-23일 정도이다. 또한 평균 기온이 0 이상 되는 기간이 전국평균 170-190일 정도인데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많아져 남부 및 동남지방은 200-215일 정도가 된다. 겨울은 낮에도 사당히 추우며 야간의 경우 영하 50c 내려갈때도 많다. 그러나 체감온도는 생각보다 춥지않은데 그이유는 습도가 낮아 건조하기 때문이다. 봄(4-5월)에는 돌풍,사풍이 불거나 기압이 갑자기 떨어지는 변화가 자주 일어난다. 몽골의 강수량은 매우 적으나 5월 중순 경에는 비와 눈이 자주온다. 연평균 강우량은 208mm 로 매우 적은 편이다. 또 몽골의당수량은 계절에 따라 매우 불규칙하다. 가장 추운 시기인 10월에서 다음해3월 까지는 년 강수량의 8-10% 정도 밖에 내리지 않는다. 반면 여름인 6월에서 8월 까지는 년 강수량의 67%-78%가 집중적으로 내린다. 일년중 가장 많은 강수량을 기록한 달은 7월이고 가장 적은 달은 1월이다. 사실상의 여름인 7,8월에 년간 강수량의 약 70% 내린다. 눈은 10월에서 다음해 4월까지 주로 내리며 산간 지방에서는 5월 까지도 내린다.

1년에 250여일 정도 구름이 없는 맑은 날씨를 볼수가 있다. 또한,몽골은 연평균 100~200㎜ 의 강우량을 기록하면서 풀이 자라는 최적의 조건이 형성되며 바람의 연간 평균속도는 2~3m/sec 이다.


사회문화
인구는 280만명인데 그 중 100만명이 수도 울란바타르에 몰려 살고 있다. 군대는 징병제로 복무기간은 1년이다. 몽골민족은 수많은 종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할흐족이고 나머지 종족을 모두 합쳐서 몽골족이 89%, 카자흐족이 6%, 중국계가 2%를 이루고 있다. 종교는 라마불교가 주류이고 이슬람교와 기독교도 급속도로 전파되고 있다. 시차는 한국보다 1시간 늦지만 4월초 썸머타임을 실시하면 한국시간과 같아진다. 음력 정월 초하루를 차간사르라 하여 한국인의 설과 같이 크게 지낸다.

산업
농업은 대규모적인 기계화농업을 실시하며 그 주체는 국영 농목장인데,밀·보리·콩 등의 곡류와,감자·토마토·오이·수박 등의 채소,사과·귤 등의 과일이 수확된다. 중공업은 발전소를 제외하면 거의 미숙한 상태이고,식품공업,축산가공,피혁가공,직물제조 등 콤비나트를 포함하는 각종 공업이 발달되어 있다.


정부
정부형태는 인간의 권리와 개인의 소유권을 보장하는 새로운 헌법이 1992년 1월 과도 의회에 의해 적용되어 새로운 헌법에 의거한 최초의 의회선거가 1992년 6월 28일 열려 국가최고회의가 1992년 6월 30일 형성되었다. 이때,민주연합이 총 76석중 50석,인민혁명당이 25석,보수연합당이 1석을 차지하였다. 국가최고회의는 몽골 국가권력의 최고 조직으로 76명의 의원들이 4년마다 비밀투표에 의해 보통,평등,직접선거로 18세 이상의 모든 시민에 의해 선출이 된다. 현재 국가최고회의에는 7명의 기본위원과 2명의 특별위원이 있다. 대통령은 국가의 우두머리로서 상징이다. 대통령은 국가 안전 위원회의 의장으로서 국가 최고회의에 책임을 지며 4년마다 비밀투표로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이 되며 한번 재임이 가능하다. 45세 이상인 모든 몽골 사람들은 대통령 후보가 될수 있다. 대통령 부재시에는 국가최고회의장인 수상이 전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가진다. 정부는 수상과 장관들로 구성이 되며 국가최고회의의 질의에 응답해야 하며,자신들의 일을 국가대의회에 정기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수상은 대통령의 추천으로 국가최고회의에 의해 선출된다. 수상은 장관들에 대한 자신의 제안을 국가최고회의에 제출하며 국가최고회의는 4년마다 장관들을 임명한다. 재판은 몽골의 대법원에 의해 통치되며 법원은 헌법질서를 보장하고 시민의 권리와 법적 관심을 보호하며 죄를 집행하고 법 행정의 해결에 의한 불만등을 감시한다. 대법원장은 대통령의 추천으로 국가최고회의에 의해 선출되며 부대법원장은 대법원장의 추천으로 대통령에 의해 임명이 된다. 이들은 정치활동이나 다른 정당에 가입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몽골의 사법제도는 대법원,아이막 과 시,솜 및 구역의 법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尹酉?의해 임명되는 6년임기의 재판장과 羚품活막?구성된 대법원에 의해 이루어진 결정은 바꿀수가 없으며 모든 법원과 다른 사람들에게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 몽골은 65년이상 공산당이라고 알려진 인민혁명당이 지배해 왔으며,다른 모든 정당은 금지되었었다. 1990년 초 정치제도의 민주화와 시장경제로의 전환으로 정당활동은 1992년초 채택된 새로운 헌법에 의해 합법적으로 보장되었다. 현재 인민혁명당,사회민주당,국민민주당,보수연합당,녹색당,종교당,국민당,노동당,르네상스당,브르조아당등 12개의 정당이 있으며 계속해서 새로운 정당이 생겨나고 있다.


지리
몽골은 북쪽의 러시아와 동,서,남쪽의 중국 사이에 있는 중앙아시아의 심장이며 국경의 총길이가 8,161.8 km이고 총면적은 한국의 17배에 해당하는 1,566,500 평방 km(프랑스,독일,스페인,포루투칼등,네덜란드,벨기에를 합친 면적)로서 세계에서 17번째로 큰 국가이다. 또한 동서의 길이가 2,392 km,남북의 길이가 1,259 km 이며 서쪽에는 1,500 km에 달하는 알타이 산맥이 위치하고 있어서북쪽에는 산림이 많고 남쪽에는 사막,나머지는 평지가 공존하는 나라이다. (국토의 90%가 목초지,사막,산,10%가 산림)몽골은 수도인 울란바타르가 해발 1,350 미터,전체 평균해발 1,580 미터의 고산지대로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알타이 산맥에 있는 해발 4,374 미터의 후이튼 산이고 가장 낮은 곳은 해발 552미터의 후흐 호수이다.


간단한 현지어
현지어 : 사이항 아마랄라레
의 미 : 편히 쉬십시요
현지어 : 아마라 밴오? 혹은 사이항 시넬쯔 벤오?
의 미 : 마주 안고 얼굴을 갖다 대면서 서로에 옆볼에 키스를 한다.
현지어 : 바야르랄라
의 미 : 감사합니다
현지어 : 사잉 밴오
의 미 : 안녕하세요
현지어 : 바야르테
의 미 : 안녕히 계십시요


관광제안
몽골은 인간이 만든 조형물이 관광자원이 되고 있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21세기를 맞이한 현대에도 13세기의 대자연을 간직하고 있는 몽골 그 자체입니다.
어디를 가나 바다 같이 드넓은 푸른 대초원과 빨려 들어갈 듯 짙푸른 끝없는 하늘, 대초원과 쪽빛 하늘이 만나는 지평선,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보이는 밤하늘의 빛나는 별들, 세계를 제패했던 칭기스 칸이 질주했던 초원에서 한가롭게 폴을 뜯어먹고 있는 말 떼, 소떼, 양떼, 유목민들의 하얀 천막집 겔, 길을 떠날때 그 주위를 세번 돌아야 한다는 토속신앙의 상징 어워가 있는 곳.
옛 생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순박한 유목민, 씨를 뿌리지도 땅을 경작하지도 않는다는 유목민, 가축과 천막 외에는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다는 유목민.
몽골 여행에서 꼭 보아야 하고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바쁜 일상 생활과 물질 문명에 지친 현대인들이 동경하는 아름다운 자연이 바로 몽골 그 곳에 있기 때문이다.
*여행시기
6월-9월
몽골을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이다. 훼손되지 않은 자연과 맑은 공기, 몽골 초원을 뒤덮는 야생화, 해가 늦게 지는 백야현상, 그 뒤에 이어지는 쏟아지는 별과 줄지어 늘어선 은하수, 유목민에 의해 방목되는 초원의 가축들을 보면 마음에 쌓였던 스트레스를 모두 지워버릴 수 있을 것이다. 몽골 전통가옥 게르에서 하룻밤 지내며 몽골 전통요리들과 마유주를 맛보는 것도 몽골여행의 또 하나의 즐거움이며 7월에는 몽골 최대 축제인 나담이 열리기 때문에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관광객들을 위한 승마 트래킹, 등산, 낚시, 래프팅, 야생동물 사파리 프로그램등이 준비 되어 있으며 짧은 몽골의 여름이지만 이 기간 동안은 세계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자연의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 이다.
11월-3월
몽골의 겨울은 자유롭게 여행을 하기가 어려운 계절이다. 날씨가 -20도에서 가장 추울 때는 -40도 까지 떨어지며 교통편이나 각 지역의 캠프들도 문을 닫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곰사냥이나, 가젤, 산양등 을 사냥투어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그 수요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방문적기
여행시기
6월-9월
몽골을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이다. 훼손되지 않은 자연과 맑은 공기, 몽골 초원을 뒤덮는 야생화, 해가 늦게 지는 백야현상, 그 뒤에 이어지는 쏟아지는 별과 줄지어 늘어선 은하수, 유목민에 의해 방목되는 초원의 가축들을 보면 마음에 쌓였던 스트레스를 모두 지워버릴 수 있을 것이다. 몽골 전통가옥 게르에서 하룻밤 지내며 몽골 전통요리들과 마유주를 맛보는 것도 몽골여행의 또 하나의 즐거움이며 7월에는 몽골 최대 축제인 나담이 열리기 때문에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관광객들을 위한 승마 트래킹, 등산, 낚시, 래프팅, 야생동물 사파리 프로그램등이 준비 되어 있으며 짧은 몽골의 여름이지만 이 기간 동안은 세계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자연의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 이다.
11월-3월
몽골의 겨울은 자유롭게 여행을 하기가 어려운 계절이다. 날씨가 -20도에서 가장 추울 때는 -40도 까지 떨어지며 교통편이나 각 지역의 캠프들도 문을 닫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곰사냥이나, 가젤, 산양등 을 사냥투어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그 수요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쇼핑
*캐쉬미어
특히나 몽골의 주요 수출품목중의 하나인 캐쉬미어는 몽골의 어디에서나 값싸고 저렴한 가격에 구입을 할 수 있다. 캐시미어 옷, 숄, 머플러, 장갑, 모자등 다양한 제품들과 낙타털, 야크털로 만든 제품도 저렴하게 만날 수 있다.
또한 동물의 털로 만든 털 목도리, 모자등도 구입 가능하다.
*기념품과 전통악기
한눈에 봐도 몽골을 느낄 수 있는 민속 공예품들이 많다. 특히 몽골의 전통악기인 마두금은 장식으로서의 인기가 높다. 그밖에 전통가옥인 겔(Gel), 전통 복장을 입은 인형, 몽골 병사들의 모습 등 많은 제품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가죽제품
몽골엔 질 좋은 가죽제품이 많다. 다소 디자인에서 떨어지는 면이 없지 않으나 잘 고르면 좋은 제품을 찾을 수 있다. 가죽의 질은 상당히 좋은 편이고 가격적인 면에서도 저렴하다.
*그림과 예술품
몽골을 배경으로 하는 그림들이 유명하다. 푸른 초원을 뛰어 다니는 말의 모습과 징기스칸의 초상화와 병사들의 모습등이 단순하지만 몽골의 특유한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
몽골은 티벳불교의 영향을 받아들인 오랜 역사를 가진 불교국가이다. 때문에 불상, 탕화 등 오래된 문화재들이 많으며 역사,문화적으로 그 가치가 높다. 하지만 이미 많은 문화재가 도굴되거나 외국으로 밀매 되었고 정부관리 소홀로 인해 상점에서도 문화재급 물건들을 심심치않게 볼 수가 있다. 백화점북쪽 모비콤본사 근처에 골동품상점이나 앤틱샾이 많이 있으니 골동품에 별로 관심이 없더라도 한 번쯤 들려 눈높이를 한 단계 올리는 것도 여행이주는 즐거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차가버섯
북위 45도 시베리아에서 자라는 검은 자작나무에 기생하는 차가 버섯은 나무줄기 수액을 빨아먹고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성장하면서 석탄 모양의 검은 덩어리(균핵)가 되어 결국 나무를 고사시켜 ‘자작나무 암’ 으로 불리기도 한다. 러시아, 일본에서 암, 당뇨, 고혈압, 위암 등 각종 성인병이나 질병 인상실험에서 그 효능이 밝혀졌으며 상황버섯의 10배에 해당하는 항암효과를 지녔다고 한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몽골의 북쪽에서 많이 채굴되고 있으며 관광객들뿐만 아니라 현지인들의 관심도 늘어가고 있다. 현재 원형의 차가버섯은 외국으로 반출이 안 되며 국가에서 인증 받은 회사의 분말 티백형태의 가공 상품만이 반출 가능하다.



역사
AC 1년 - 1900년 까지의 역사
몽골은 징기스칸으로 인해 세계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였고 그의 손자 쿠빌라이 칸이 원(元)나라를 세워 비로소 국가를 이루게 되었다. 원나라(1279-1368년)는 순제를 마지막으로 1368년 한(漢)민족 계인 명에 의해 멸망했고 그 후 몽골은 고비 사막 너머로 쫓겨가서 13세기의 모습을 갖춘 채 신비한 고립 국가로 남게 되었으며 이후 1616년에 성립한 만주계 청나라의 속국이 되었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청나라는 비옥한 땅을 모두 빼앗고 몽골인들은 황폐한 초원지대로 밀려나 유목민으로서의 삶이 더욱 고착되었다. 1911년 한민족 계의 사람들이 청을 타도하고 중화민국을 세웠을 때 외몽골은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중국이 외몽골은 원래 중국의 고유 영토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에 외몽골은 러시아에 원조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러시아가 국내의 혁명으로 힘을 쓰지 못하자 중국이 침공을 시작하였고,결국 외몽골은 독립을 취소하였다. 동시에 러시아의 반혁명 세력도 침입해와서 라마교의 달라이 라마를 수반으로 하는 정부를 수립하였다. 나라를 다시 찾아야 겠다고 생각한 외몽골은 러시아 혁명 세력의 원조를 받아 중국군과 활불 정부군과 맞서 싸워 1921년 수도를 점령하였다.

활불 정부군으로부터 정권을 인수받은 날이 7월 11일로 현재의 독립 기념일(나담)이 되었다. 1924년 11월에는 몽골 인민공화국의 완전한 독립을 선포함으로써 세계에서 2번째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 1939년 이후에는 일본과 제 2차 대전에서 연합군 측에서 러시아와 함께 싸워 승리하였다. 1961년에 유엔에 가입하였고,1964년 중·몽 국경이 확정되어 내·외 몽골의 분열이 고착되었다. 1956년 체덴발이 인민혁명당 서기장이 된 후 당내 친 중국 파를 숙청하고 친 소련 정책을지속적으로 펼쳐왔고 소련 식 사회주의 경제 발전을 위하여 힘써왔다. 대부분 국민들은 중국에 대한 국민 감정은 썩 좋은 편이 아니지만 정치,경제,문화적 측면에서 중국의 영향은 매우 깊다. 한편으로는 지난 70년 동안 소련 연방(USSR)의 사회주의 제도 아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현대 몽골인의 생활 양식이나 사고 방식은 러시아를 본받은 서구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다.


공휴일/축제
신년 1월1일
매년 새해가 시작되는 0시에 몽골 전통의상을 입은 대통령이 텔레비젼에 나와 신년사를 낭동하는것으로 시작한다. 울란바트로의 정부청사 건물앞의 수흐바타르 광장에 소나무에 오색전구를 달아 밤새 빛을 내고 울란바타르의 중심가는 새해를 맞아 광란의 현장으로 변한다. 젊은이들이 밤새 춤을 추고 술을 마시고 광란에 가까운 광경들이 펼쳐진다.
신년 음력 1월1일
우리나라의 설날과 유사하며, 우리와 같이 친인척끼리 새해인사를 나누고 이웃과 어른들을 찾아 인사를 나누면서 아랫사람이 어른들에게 새뱃돈을 드리고 어른들은 아랫사람에게 선물을 준비한다.
차강사르는 ‘하얀 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흰색은 몽골인들이 파란색과 함께 신성시하는 색이기도 하다.
행복과 맑고 청명함을 뜻하는 흰색은 가축들이 새끼를 낳고 젖이 나옴과 번식의 시작이라는 큰 뜻을 내포하고 있다. 몽골사람들은 이 축제를 위해 한달전부터 음식과 선물을 준비하며 바쁜 날을 보내게 된다. 새해 첫날 모든 사람이 일출을 보는 것이 이들의 전통이며 한해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뜻 깊은 날이다.
여성의 날 (3월8일)
세계적으로 여성의 날은 3월8일이다. 그러나 몽골에서는 1995년부터 어린이 날과 같은 날로 지정했지만 몽골인들은여전히 3월8일을 여성의 날로 여긴다. 여서의 날에 남자들은 애인이나 주변의 여성들에게 쵸콜릿이나 , 사탕, 꽃, 반지등을 선물하며 이날동안은 여성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어린이 날 (6월1일)
몽골의 6월은 청명하고 좋은 날씨가 이어지는데 바로 6월1일은 몽골의 4대 명절의 하나인 어린이 날이다. 이 날은 모든 가족들이 모여 나들이를 하며 아이들에게 선물 주머니를 주고 쇼핑센터나 수흐바타르 광장에서 많은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나담축제 (7월11일-13일)
매년 7월11부터~13까지 몽골 국립경기장에서 대통령 축사와 함께 시작되는 나담축제는 그야말로 몽골 최대 축제이다. 이 축제를 보러 전 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몽골을 찾으며 축제 기간 전후 일주일간은 울란바타르 시내 호텔 구하기가 어려울정도이다. 씨름, 경마, 활쏘기, 3가지 종목과 각종 쇼가 펼쳐지며 나담이란 말은 몽골말로 “놀다” 라는 뜻이며 징기스칸 시대 정복전쟁에서 승리한 군사들에게 축하연을 벌여주었던 것이 나담 축제의 기원이다.
나담개막식에는 몽골 대통령이 참가하여 개회를 선언하고 스테디움을 가득매운 관중들과 많은 공연들이 행하여진다. 각 지역에서 승리를 한 참가자들이 씨름, 활쏘기, 말타기등의 경주를 해서 최고의 우승자를 가리게 된다.
기타 겨울 축제
고비사막의 낙타 축제 (매년 12월-2월)
흡스골 호수의 얼음축제 (매년 12월-2월)
알타이 독수리 축제 (매년 12월-2월)

유용한전화번호
주 몽골 대한민국 대사관 : TEL)32-1548
재 몽골 한인회 : TEL)45-0778
사건 사고 긴급 연락처 : TEL)9911-4119
범죄신고 : TEL)102
연세친선병원 : TEL)31-3321 / 9909-8483
대한항공 : TEL)31-7100
몽골항공 : TEL)1980

전압 및 주파수
미터법과 220~240V/50Hz를 사용하며 콘센트와 플러그가 유럽형이다. 전압이 매우 불안정하며 자주 단전이 되기 때문에 전기변동에 민감하지 않은 구조의 단순한 전자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하며,민감한 제품을 사용할 때에는 전압기를 사용해야 한다.


치안
몽골은 현재 마약범죄나 조직범죄 등이 거의 발생치 않고 있다. 다만 백화점 및 노상에서 핸드백,지갑 등의 날치기 및 소매치기 사 례가 많으니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또한 인구밀도가 낮아 낮에도 인적이 드문 곳이 많기 때문에 외국인이 이러한 곳을 지나치게 되면 노상강도에게 봉변을 당하는 경우가 있어 야간 단독 외출을 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대부분 유흥 업소에는 외국인들이 바가지를 쓰는 경우가 많으며 시비가 발생시 경찰이 출동해도 외국인에게 불리한 판단이 내려지는 경우도 많이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통화
몽골의 화폐단위는 투그릭이며 영문으로는 TG로 표기하며 몽골의 화폐는 주화가 없고 모두 지폐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1$당 약1,160 투그릭정도 이다.
한국의 원화와 몽골화폐인 투그릭은 몇몇 한국식당, 환전소, 백화점등에서 환전이 가능하지만 장소가 많지 않아서불편하다. 따라서 원화를 달러로 환전을 하고 몽골현지에서 투그릭으로 재 환전 하는 것이 유리하며 발행년도가 10년 이전인 달러는 환율이 낮아지거나 아예 받지 않으니 한국 출발 전 잘 확인하자. 찢어지거나 지저분한 지폐 역시 잘 바꾸어주지 않고 고액권(100$)와 소액권(1$-20$) 환전시 환율 차이가 있으니 고액권으로 준비하는 것이 유리하다.
환전은 환전소마다 조금씩의 차이가 있다. 플라워 센터 2층 환전소가 이용하기 편리하며 환율도 높은 편이고 그 밖에 스카이쇼핑센터 2층, 백화점, 고급 호텔, 은행에서도 환전이 가능하다. 사용하고 남은 몽골 화폐는 국내 은행에서 환전이 쉽지 않기 때문에 달러로 바꾸어서 환전해야 한다.
몽골에서는 여행자 수표를 사용하기가 쉽지 않으며 은행 수수료가 만만치 않다. 가급적이면 현금으로 여행경비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신용카드 사용은 백화점, 쇼핑센터, 대형 슈퍼마켓, 상점, 대형식당, 호텔정도에서만 한정적으로 사용이 가능하며 일반가게들은 보통 카드를 받지 않기 때문에 항상 현금을 준비를 한다. 관광지의 투어리스트 캠프나 시골마을 역시 신용카드 사용이 안 되기 때문에 장기간 도시를 벗어나는 여행을 계획할 때에는 현금(tg,$)을 충분히 준비하여야한다. 비상시를 대비해 카드 하나정도는 소지하는 것은 좋다.

한국으로 전화
국제 전화는 중앙우체국에서 지역 전화카드와 국제 전화카드를 구입할 수 있고 바로 옆의 공중전화 부스에서 할 수 있다. 보다 편하게 하는 방법은 거리에 있는 인터넷 카페에서 인터넷 폰을 이용하여 국제전화를 하는 방법이 있다. 거리에 많은 인터넷 카페들이 있으며 쉽고 저렴하게 전화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울란바타르를 벗어나 작은 도시에서는 우체국을 이용할 수 있으나 초원으로 장시간 여행하는 중에는 전화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몽골에서 한국으로 전화를 할 경우 : 001 or 002 + 82(국가번호) + 2(0을 제외한 지역번호) + 전화번호
한국에서 몽골로 전화를 할 경우 : 통신회사 + 976(몽골 국가번호) + 11(울란바타르 지역번호) + 전화번호

현지로 전화
우리나라에서 현지로의 전화방법
001(또는 002등)-976(국가번호)-지역번호-전화번호


주의사항
외국인 금기사항
문턱이나 부뚜막 밟는 것,서북쪽에 앉는 것,담배대나 손가락으로 다른 사람의 머리를 가르키는 것,텐트 안에서 쪼그리고 앉는 것,가래침 뱉는 것,앞에 노끈이 매여 있거나 텐트 천장의 덮개가 열려져 있으면 출입금지 표시로 병자가 있거나 사람이 사망,또는 산부가 있음을 나타낸다. 문에 붉은 천이 달려 있으면 우두를 앓는 어린이가 있음을 가르킨다. 급한 사정으로 주인을 만나야 할 경우 주인을 텐트 밖으로 불러 내어 상담해야 하며,입주시 채찍이나 방망이를 들고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으며,그렇지 않을 경우에 이는 주인에 대한 최대의 불경을 표시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피하는게 좋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언가를 가리킬때 검지손가락을 사용하는데 이는 몽골에서는 대단히 실례되는 행동으로써,상대방을 죽이겠다는 뜻이다. 따라서,본인 모르게 이러한 행동을 했다면 즉시 사과를 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좋다. 무언가를 가르킬때는 손바닥을 펴서 가르킨다.

상품구입시 유의사항
몽골에서는 아무리 물건을 많이 산다해도 깍아주거나 덤으로 서비스를 주는 법이 없으므로 애석해 하지 말기를 바란다. 또한,하르자흐나 텀자흐처럼 사람이 아주 많이 몰려드는 곳에 갈 때는 도둑을 맞기가 쉬우니 돈 간수를 잘해야 하며 그들과 부딪힌다 해도 화를 내거나 신경질을 낼 필요가 없다.

복장 및 의복 관련사항
정장은 양복과 흰색 긴팔 와이셔츠에 넥타이 차림이며,명절때는 몽골 전통옷인 델을 입는 것도 괜찮다.평상시에는 너무 어리게 입거나 추잡하게 입지 않도록 하며,명절때(신찔,차강사르) 방문할 때는 항상 모자를 착용하도록 한다. 이들은 명절때 손님이 올 경우 주인이나 손님이나 모자를 쓰고 상대방을 맞는것이 예의로 알고 있다.
몽골인과 밖에서 만날때는 절대로 반바지를 입지 말며,부득이한 경우에 츄리닝을 제외하고는 삼가는 것이 좋다.


비자
▣ 국내 비자발급처
기 관 명 : Embassy of the Mongolian People's Republic(주한 몽골 대사관)
주 소 :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33-5
전화번호 : 02-794-1350
팩스번호 : 02-794-7605
근무시간 : 월 -금 08:00-12:00 & 13:00-17:00, 토요일 08:00-14:00

▣ 비자신청시 유의사항
카자흐스탄 공화국, 라오스, 유고슬라비아(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폴란드 국적을 가진 사람은 90일 동안 무비자가 가능하고, 쿠바, 이스라엘, 말레이시아 국적인은 30일 동안 무비자가 가능하다. 또한 필리핀 국적을 가진 사람은 21 동안, 홍콩, 싱가포르 국적을 가진 사람은 14일 동안 무비자 가능하며, 인도 국적을 가진 사람은 특별 비자협정으로 비자가 아예 면제되고 있다.

▣ 비자신청시 구비서류
몽골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먼저 관광비자의 경우 신청서, 3개월 이상 유효한 여권, 여권용 사진 1장과 인적사항(자택주소, 전화번호)이 필요하며, 상용비자는 신청서, 3개월 이상 유효한 여권, 여권용 사진 1장, 출장증명서와 인적사항(자택주소, 전화번호, 직장주소, 전화번호)이 있어야 한다.


몽골은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인 건성 냉대기후(Foreal realm)지대에 속하여 연평균 기온 이 영하 2.9c 이다. 일년중 6개월이 평균온도 0c 이하이고 가장추운 1월은 전국 평균-15c - -33c 이다. 반면 가장더운 시기는 7월이며 14c-23c 이다. 생활하기가 가장 좋은 계절은 여름부터 가을까지로 습기가 없고 상쾌한 날이 이어진다. 일년중 맑은날이 250일 정도이고 흐린날은 9-23일 정도이다. 또한 평균 기온이 0 이상 되는 기간이 전국평균 170-190일 정도인데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많아져 남부 및 동남지방은 200-215일 정도가 된다. 겨울은 낮에도 사당히 추우며 야간의 경우 영하 50c 내려갈때도 많다. 그러나 체감온도는 생각보다 춥지않은데 그이유는 습도가 낮아 건조하기 때문이다. 봄(4-5월)에는 돌풍,사풍이 불거나 기압이 갑자기 떨어지는 변화가 자주 일어난다. 몽골의 강수량은 매우 적으나 5월 중순 경에는 비와 눈이 자주온다. 연평균 강우량은 208mm 로 매우 적은 편이다. 또 몽골의당수량은 계절에 따라 매우 불규칙하다. 가장 추운 시기인 10월에서 다음해3월 까지는 년 강수량의 8-10% 정도 밖에 내리지 않는다. 반면 여름인 6월에서 8월 까지는 년 강수량의 67%-78%가 집중적으로 내린다. 일년중 가장 많은 강수량을 기록한 달은 7월이고 가장 적은 달은 1월이다. 사실상의 여름인 7,8월에 년간 강수량의 약 70% 내린다. 눈은 10월에서 다음해 4월까지 주로 내리며 산간 지방에서는 5월 까지도 내린다.

1년에 250여일 정도 구름이 없는 맑은 날씨를 볼수가 있다. 또한,몽골은 연평균 100~200㎜ 의 강우량을 기록하면서 풀이 자라는 최적의 조건이 형성되며 바람의 연간 평균속도는 2~3m/sec 이다.






▶ 남고비

드넓은 광야와 광야 어디서든 볼수 있는 알타이 산맥이 지나가며,골이 깊어 여름에도 얼음이 녹지 않는다는 독수리계곡(욜링암)이 있습니다. 독수리 계곡은 바로 이루어져 있고산이 높아 우리나라 말로는 수염수리라는 귀한 새가 절벽에 많이 살고있어 붙여진 이름입니다.




▶ 울란바타르 [Ulaanbaatar]

몽고의 수도인 울란바토르(ULAN BATOR)는 정치,상업,문화의 중심지이다. 울란바토르란 이름은 몽골어로 '붉은 영웅'이라는 뜻이다. 외국인들에 의해 흔히 UB로 불리는 울란바토르는 1950년대 유럽의 한 도시를 생각나게하는 모습과 느낌을 보여준다. 이곳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구소련제 차들은 점차 최신형 일제 모델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가축들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염소들이 쓰레기통을 뒤지는 모습이 발견된다. 또한 몽골의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과 서구화되어 세련된 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함께 지나다니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몽골은 세계 역사상 가장 많은 땅을 소유했던 나라이다. 하지만 몽골에 이러한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역사유적을 비롯한 문화 관광자원이 터무니 없이 부족한 이유는 몽골족이 유목민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수도인 이곳 울란바토르에는 문화관광 요소로 라마불교사원, 예술박물관, 하라호름, 고비사막, 바이칼호등의 볼거리가 있다.

울란바토르는시의 공업화는 1934년 러시아의 원조로 공업 콤비나트가 건설된 데서 비롯하며,제2차 세계대전 후,피혁,제화,모직물,등의 공장이 중국,체코 등 여러나라의 원조로 그 면목을 일신하게 되었다. 이외에도 울란바토르에는 식육,유제품,제분 등의 식료품 공업 콤비나트가 러시아의 원조로 건설되어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또한 이곳에는 몽골 유일의 종합대학인 울란바토르대학과,농업 및 의학 등의 전문학교,사범학교 등이 있다.


사회
몽골인의 전통적 주거인 '파오'는 시가지에서 그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그 대신 근대적인 대건축물,노동자주택, 넓은 포장도로 등이 건설되어 청결한 도시로 변모하였다. 수흐바토르 광장을 중심으로 정부청사, 독립 영웅들의 묘, 국립극장, 호텔 등이 늘어서 있다. 1995년 서울특별시와 자매결연을 맺었으며 1996년 7월에는 몽골의 독립기념일을 맞아 나트사그도르지의 거리 1km 정도를 서울의 거리로 지정하였다.

산업
1924년 울란바토르로 개칭하고 몽골의 정치,경제,문화면에서 새로운 중심지가 되었다. 공업화는 1934년 러시아의 원조로 공업 콤비나트가 건설된 데서 비롯하며, 제 2차 세계대전 후 ,피혁,제화,모직물 등의 공장이 중국과 체코슬로바키아 등의 원조로 그 면목을 일신하였다. 또한 식육,유제품,제분 등의 식료품공업 콤비나트가 러시아의 원조로 건설되었다.

건성냉대기후 :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로 겨울이 길고 추우며, 여름이 매우 짧음.

1년에 구름이 없는 날이 약 257일이나 되어 맑고 높은 하늘을 항상 볼 수 있다.
평균기온 11월부터 3월까지는 영하를 옷도는 날씨이며 특히 1월-2월은 영화 20ºC가 보통이며, 겨울철 야간에는 영하 40ºC이하까지 내려가는 반면, 여름에는 33-38ºC로 무더운 날씨이다.





▶ 테를지

몽골에서 실제적으로 관광객들이 가장많이 방문하는 곳으로 이곳은 바위산과 드넓고 아름다운 초원 그리고 강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관광지로 몽골을 방문한 여행객이 필수코스로 여기는 곳이며 몽골을 몇 번이나 방문하는 관광객들이라도 두세번씩 찾게 될만큼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여름에는 각종야생화와 여러가지 많은 들꽃들이 초원에서 피어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한다. 테렐지에서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설악산 계곡의 청수만큼 맑은 물이다. 여름에도 밤에는 추운 날씨 때문인지 발을 담고 있기가 차가울 정도로 시원하고 맑은 물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는 바위산의 계곡을 따라 흐르는 냇물을 보며 1~2시간 정도의 승마를 즐길수 있으며,공원내 숲속에서 돌훈제식 양고기 등 몽골 전통식 바베큐를 야외에서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이곳에서 보는 거북바위는 자연의 걸작품이다. 거북바위는 햇빛의 방향에 따라 다양한 색깔을 연출하는,자연이 창조한 거대한 걸작품이다. 이곳까지 올라가는 등정은 사람들에게 매우 인기있다. 또한 공룔화석들이 많이 발굴되는 나라인 몽골의 테렐지 국립공원내 공룡공원을 돌아보고 전통가옥인 하얀색의 겔에서 말젖 요구르트(타라크)와 빵 그리고 몽골 전통이 버터와 치즈 등의 전통음식을 맛볼 수 있으며,전통 가옥 겔에서 누워보는 밤하늘의 별들은 매우 아름답다. 이 지역에는 곳곳에 겔,코지,게스트룸등 다양한 형태의 리조트와 현대식으로 지은 작은 호텔도 있다.




▶ 하르호름

하르호린은 몽골의 옛 수도로 울란바토르에서 서쪽으로 약 4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하르호린까지는 도로가 포장이 되어있어 자동차로 약 5~6시간 정도면 갈 수 있다. 청나라의 침공으로 완전히 파괴되어 폐허들만이 남아있었으나 1586년 티벳의 건축양식을 본 뜬 라마사원(엘튼죠사원)이 지어졌다. 양쪽의 길이가 400m나 되는 이 사원은 몽골 라마교의 중심지로 만여명의 라마승들이 생활하고 있었으며 몽골라마의 생불인 잔바자르의 유품과 사리가 소장되어있다.
1930년 민족주의 말살정책에 의해 폐쇄되었다가 관광객을 위해 현재 다시 개장을 한 상태이다.
앞으로 2050년 몽골의 수도를 울란바토르에서 이 곳으로 옮길 예정이다. 관람 포인트는 옛 성터, 얼튼죠사원, 거북바위, 남근상, 헬랭강 등이 있다.




▶ 흡수골

울란바타르에서 600km 거리에 있는 몽골의 가장 유명한 관광명소이다. 세계에서 현존하고 있는 가장 맑은 호수로 알려져 있으며, 몽골의 가장 신비로운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사시사철 경이로움과 신비로 가득차 있다.
호수의 길이는 136Km, 깊이는 244m에 넓이는 2,620 평방 Km에 달하여 조그마한 바다를 연상케 한다. 홉스골의 면적은 경기도와 충청도를 합한 크기이며,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다.
홉스골은 '몽골의 스위스'라고 불리울 만큼 몽골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역으로 손꼽히며, 연어가 헤엄치는 수정처럼 맑은 호수와 고라니와 사슴이 뛰어노는 자연경관은 지금까지 느낄 수 없었던 때묻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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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몰디브 [MALDIVES]

몰디브 공화국은 1,200개의 산호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중 202개가 사람이 사는 섬이다. 스리랑카에서 남서쪽으로 600km 지점에 위치해있는 몰디브는 19개의 행정조직으로 나뉘어진다. 전 국가가 해발 2미터도 채 안되기 때문에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받기 쉽다. 어업과 관광이 중요한 산업이다. 몰디브는 오랜 전통의 격리된 독립을 가져왔다. 이 나라는 1965년까지는 영국의 독립 보호령이었고 1968년 이후로는 정당이 없는 민주 공화국이다. 몰디브는 적도를 가로지르는 인도양의 한가운데 흩뿌려진듯 보석같은 몰디브의 섬들은 열대의 천국이라 할 만큼 그 모습이 희귀하고 아름답다.야자수로 장식된 섬들과 눈에 띄게 흰모래톱,터키색의 환초에 둘러싸인 바다,바닥까지 보이는 따뜻한 바닷물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아름다운 산호군과 물고기는 여행자를 유혹한다. 섬의 높이가 2미터에 미칠까 말까하는 1,19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이공화국은 26개의 군도가 사방 약90,000평방킬로미터에 펼쳐져 있다.몰디브의 섬들은 물이 앝고 크리스탈처럼 투명한 라군에 둘러 싸여있고 라군 주변에 산호군들이 산재하여 발달해 있다.

이 독특한 섬들은 여행자들에게 해저의 숨막힐 것 같은 장관을 제공한다.남북으로 820킬로미터,동서로 120킬로미터인 이 나라의 가장 가까운 이웃은 인도와 스리랑카이다.인구는 238,363명,유인도인 199개의 섬을 제외하고 74개의 섬은 전문적인 휴양지로 개발되어 있다. 언어는 인도,이란 계통의 디베히어로 강한 아라비아의 영향을 받았다.영어 및 다른 외국어도 관광산업분야에서 자주 사용되며 몰디브는 16세기 중엽 포르투갈의 지배아래 15년 반동안의 시기를 제외하고는 독립국가였으며 1887년에서 1965년 사이에 영국의 보호령이었다. 1965년 주권국이 되었으며 1968년 11월 11일 군주국에서 공화국으로 바뀌었다.

적도를 가로지르는 인도양의 한가운데 빛나는 산호 보석을 뿌려 놓은 듯한 아름다운 섬들로 일찌기 마르코 폴로는 몰디브를 “인도의 꽃”이라 표현했으며,아이반 바투다는 "세상의 경이중의 하나" 라고 표현했다. 섬의 높이가 2m에 미칠까 말까하는 1,19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공화국은 26~29개의 군도로 이루어져 있다. 이 지구의 외딴섬,환상의 휴양지에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2년 남짓하지만 유럽사람들에게는 휴가기간 동안 지내는 휴양지로서 최상의 지역중 하나이기도 하여 연중 객실 예약을 미리하지 않으면 객실확보가 쉽지 않다

남북으로 820Km 동서로 120Km인 몰디브의 가장 가까운 이웃은 인도와 스리랑카이며,유인도인 199개의 섬을 제외하고 74개의 섬은 전문 휴양지로 개발되었다. 여기에는 원주민들이 있지 않고 섬에 체류하는 모든 사람의 관계는 손님과 종업원의 관계 뿐이다. 한편,몰디브의 수도는 1.77평방Km가 조금 넘는 면적으로 6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주하며,몰디브에서 가장 큰 회교사원이 있는 말레(MALE)이다.

따라서 몰디브는 일년내내 따뜻한 몬순 기후로 계절의 변화가 거의 없고 빠듯한 여행 일정에 끌리듯이 다니는 다른 여행지 에 비해 한가롭고,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적인 틀에서 벗어나 그야말로“자유”를 만끽 할 수 있다는 점이 젊은 신세대 신혼 여행자,가족 휴양여행객에게 각광을 받고 있다.


면적 : 298㎢

수도 : 말레(Male)

인구 : 27만 5000명

정치형태 : 공화제

종교 : 이슬람-회교(Sunni파)가 몰디브의 국교이며,몰디브인 거의 대부분이 회교도들이다. 즉,이스람의 법이 이 나라의 법이다. 어느 누구도 합법적으로 비회교도와 결혼할 수가 없으며,어린아이들은 아랍식의 이름을 갖는다. 한 섬의 우두머리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사항 중의 하나는 그는 반드시 능력있는 종교 지도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슬람 종교는 모든 사람이 따르는 실제적으로 의식적인 전통뿐이다. 어린이들은 코란의 말씀을 암송하기 위해 아랍어 발음법을 배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전 내용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암송한다. 다수의 사람들은 회교철학의 다양성과 깊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의식이 구원을 가져다 줄것으로 맹목적으로 믿고 따른다. 금식할 동안에는 음식을 삼가할 뿐만 아니라 마실 것도 삼가한다. 심지어 침조차도 삼키지 않을려고 한다. 영적 갈급함을 충족시키기위해 많은 몰디브인들은 펜디타스(교육받은 사람)라는 병치료,문제해결,성공을 위한 의식을 수행하는 사람을 찾는다. 펜디타스는 이슬람 용어와 아랍어 노래를 부르며 임무를 수행한다.

주요민족 : 몰디브인 98.4%,신하래세 0.6%,구자라티 0.2%,마라야 0.1%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언어 : 공식언어는 디베히어이며,아랍어도 사용된다.

기후
몰디브의 기후는 1년내내 따뜻하며,계절의 변화가 거의 없는 편이며,기온은 연 평균 최고 30.4도에서 최저 25.4도까지로 큰 변화를 보인다.

지리
스리랑카 남서부 지점에 위치하였으며 섬의 높이가 2m에 미칠까 말까 하는 1,19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이 공화국은 26개의 군도가 사방 90,000여 평방km에 펼쳐져 있다. 몰디브의 가장 가까운 나라는 인도와 스리랑카이며 몰디브의 수도는 말레로 1.77평방Km가 조금 넘는 면적에 약 6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간단한 현지어
현지어 : 아흘란 와 싸흘란
의 미 : 환영합니다
현지어 : 케이파 할루쿰?
의 미 : 안녕하십니까?
현지어 : 아나 비카이르
의 미 : 잘 지내고 있습니다
현지어 : 싸바할 카이르
의 미 : 좋은 아침입니다
현지어 : 투스비흐 알랄 카이르
의 미 : 안녕히 주무세요


역사
AC 1년 - 1900년 까지의 역사
작은 섬 나라인 몰디브는 인도와 스리랑카 그리고 기타 여러 나라들에서 온 선원들에 의해서 세워졌다고 여겨지고 있다. 1,192개의 섬 대부분이 단지 해발 1~2미터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고대 신전 유적지들이 이슬람교 사원들로 바뀌어 왔다. 세계의 대부분 이슬람교 사원들에는 이슬람교의 성지인 메카를 향하고 있는 벽이 만들어져 있는데 몰디브에서도 이슬람교 사원들의 옛 토대가 태양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이슬람교도들은 기도할 때 사원의 모퉁이를 향한다. 아랍 상인들과 북아프리카 상인들이 이 섬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한 12세기에 이슬람교가 이곳에 들어왔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16세기경에 포르투갈인들은 동인도 무역에서 좀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하여 몰디브의 수도인 말리에 하나의 요새를 세웠다. 이곳에서 그들은 기존 이슬람교의 술탄(이슬람교국의 군주)을 대신하여 이곳을 통치했고 그들의 지배력을 확장시켰다. 그러나 곧 술탄의 후계자들은 반란을 일으켜 포르투갈인들을 학살했다.

술탄은 이슬람교를 이곳의 국가종교로 확립시켰고,이슬람교는 계속해서 이 지역의 유일한 종교로 남아 있다. 말리는 여러 통치자들에 의해 보호되어 왔지만 결코 외부의 세력에 의해서 완전히 지배되지는 않은 나라이다.


전압 및 주파수
110-220볼트를 사용한다.

치안
몰디브는 완전한 이슬람 사회로서 마약범죄는 중죄에 처하고 있으며 정치범은 유배형에 처한다. 한편 재판관과 행정관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1990년 현재 범죄율은 약 3%정도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통화
몰디브의 통화는 루피야로 지폐로는 2,5,10,20,50,100,500루피야 등이 있으며,1루피야는 100라리로 나뉘어진다. 쓰이고 있는 동전은 1,2,5,10,25,50라리스와 1루피야이다. 세계의 주요통화는 은행,관광휴양섬 호텔과 주요 상점 등에서 현지통화로 환전된다. 달러는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외국통화이며,호텔에서의 지불은 현금이나 여행자수표,신용카드 등으로 할 수 있다. 개인수표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은행의 보증카드가 있을 때 사용할 수도 있다.

한국으로 전화
최신 기술과 국제 인공위성을 통해 통화가 가능하다. IDD 설비를 모든 리조트에서 사용할 수 있으며,카드폰도 모두 가능하다. British Cable과 Wireless의 합자회사인 Dhiraagu가 이동통신 장비를 하루 단위로 제공하며,Dhiraagu를 통해 인터넷도 이용할 수 있다.


주의사항
상품구입시 유의사항
외국인이라해서 바가지를 씌우지 않는 것은 아니나 대체로 정직하게 상거래를 한다. 하지만 기념품은 거의 대부분이 바가지이기 때문에 주의하여야 한다.

복장 및 의복 관련사항
중요한 사업상의 회의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캐주얼한 옷차림이 평이롭다. 나체는 금지되어 있다. 유인도를 방문할 때 남자는 반바지와 티셔츠에 치마나 반바지가 허벅지를 가리는 정도면 무난하다.


비자
30일내 체류시 무비자로 입국이 가능하다

여권
여권 유효기간 6개월이상 남아야 입국이 가능하다.


몰디브의 기후는 1년내내 따뜻하며,계절의 변화가 거의 없는 편이며,기온은 연 평균 최고 30.4도에서 최저 25.4도까지로 큰 변화를 보인다.





▶ 말레 [malle]

인도양에 있는 몰디브의 수도. 스리랑카에서 남서쪽으로 약 670Km 떨어져 있는 환초섬이다. 몰디브의 행정중심지인 말레에는 중앙 법원들과 국립병원,영어 교육을 공·사립학교들,공학에 중점을 두고 있는 직업훈련학교가 있다. 말레는 무역의 중심지로서 기선항로와 훌룰레 성(말레 환초 안에 있는 말레 섬 근처)의 활주로를 통해 스리랑카·인도와 연결된다. 말레의 주여산물은 코코넛,빵나무,물고기(가다랭이와 참치),종려나무 잎으로 짠 돗자리 등이다.

말레에 사는 소규모 엘리트 집단이 정치,경제,사회를 지배하고 있으며,정당,자유언론,노조 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편,말레로의 인구집중이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며,사형제도 및 정규감옥은 없고 가택연금 또는 유배형에 처하고 있다.


산업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몰디브는 어업·관광·해운업을 기반으로 경제를 꾸려가고 있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세계에서 가장 낮다. 주민들은 대부분 화폐경제와는 무관하게 어업과 야자 채집,기장·옥수수·참마·사탕수수 재배로 살아간다. 작은 섬들에 흩어져 있는 경작지는 극히 적으며 주식은 거의 전부 수입된다. 예부터 경제의 기반이 되어 온 어업은 아직도 가장 중요한 분야로서 외화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전체 노동력의 약 절반이 여기에 종사하고 있다. 참치가 가장 많이 잡히는데 어선의 상당수가 기계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낚시로 잡는다. 어획고의 대부분은 냉동과 수출용으로 외국회사들에게 판매한다.

몰디브 국영 선박관리회사는 국가가 운영하는 선박 회사로 몰디브 최대 영리단체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관광업은 급속도로 발전하는 경제부문이다. 수많은 섬 휴양지와 말레에 있는 현대식 호텔에는 겨울철에 찾아오는 서유럽 관광객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공업은 대체로 수공업이나 가내공업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야자 껍질로 만든 섬유와 그 제품의 제조·선박건조·건설이 있다. 수입품으로는 식품(주로 쌀)과 같은 소비재와 직물,의약품,석유제품이 있다. 물고기가 수출품의 태반을 차지하는데,주로 가다랭이를 산 채로 또는 말려서 수출한다. 싱가포르·타이·스리랑카·일본·미국이 주요 교역상대국이다. 예부터 무역수지의 적자가 극심했다. 선박이 환초 사이의 중요한 수송수단이 되고 있으며 스리랑카·싱가포르·인도로 가는 정기선박편이 있다

적도상에 있기 때문에 연중 따뜻하고 습도가 높다. 5월~10월에는 남서풍이 불며 북서풍이 부는 11월~4월보다는 비가 자주 온다. 낮에는 지나가는 소나기지만 밤에는 폭우가 내린다. 년 평균 강수량은 2433mm이다. 연중 25~30도까지 연중 기온의 변화가 없고,바다에서 부는 산들 바람이 저녁을 한층 상쾌하게 한다. 새로 지어진 모든 리조트는 에어컨 시설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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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말레이시아 [MALAYSIA]

말레이시아는 적도 바로 북단인 북위 7도의 동남아시아 중심부에 위치한 열대의 낙원이다. 말레이 반도의 서말레이시아와 사바,사라왁 두 개주의 동말레이시아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면적은 이들 모두 합쳐 329,758㎢이다. 기후는 연중에 걸쳐 온난다습하며 고지대 휴양지의 기온은 서늘하다. 온도 승강 편차는 21°C에서 32°C이다. 연간 평균 강우량은 2,000mm에서 2,500mm이며 일년내내 습도가 높다. GMT(그리니치 표준시)보다 8시간 빠르며 미국의 태평양 표준시 보다는 16시간 빠르다

말레이시아는 참으로 다양한 얼굴을 지니고 있다. 사람이든 경치든 시가지든 저마다 매력을 달리하며 고유색을 띠고 있다. 총 인구 약 2,130만명의 다인종 국가로 구성인종을 살펴 본다면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의 주 인종그룹과 사바와 사라왁주의 다양한 토착민들로 구성되어 있다.

국어는말레이시아어이며 영어 또한 널리 통용되고 있다. 이슬람이 공식국교이나 불교와 힌두교,기독교 그리고 다른 종교들의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다.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 크고 작은 섬들과 식민지 시대의 모습이 남아 있는 항구, 정글로 뒤덮인 산악지대가 있는가 하면 휴양지로 유명한 고원지대, 최첨단의 화려한 도시까지 말레이시아에는 다양한 매력이 공존해있다.


항공
말레이지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는 국적기인 말레이지아 항공(MH), 대한항공(KE)이 매주 8편 오전 10:50부터 오후 20:10까지 운항한다. 소요시간은 직항편이 6시간 50분이고, 타 지역을 경유해서 가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면적 : 33만㎢

수도 : 콸라룸푸르 (Kuala Lumper)

인구 : 약 2,020만명

정치형태 : 말레이시아는 13개 주와 두 개의 연방정부 - 쿠알라룸푸르와 라부안(사바주 해안가에 위치해 있는 한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13개주 가운데 9개주에는 각각의 세습 통치자가 있으며 이들 가운데 국가의 최고 통치권자인 양 디 뻐르뚜안 아공(국왕)이 5년마다 선출되고 있다.

의회는 하원과 상원으로 구성되며,하원의원들은 전적으로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반면 상원 의원들은 공적이 뛰어나거나 특정분야에서 공로를 인정받았거나 소수 민족들의 지도자 격이거나 토착 주민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시민들중에서 왕이 직접 임명한다. 정부의 수뇌인 수상은 하원의원 중에서 선출되는데 그는 여러 장관들로 구성된 내각을 대표한다. 한편 말레이시아 13개 주에는 각 주마다 선거로 선출되는 수석 장관과 주의회가 있다.

종교 : 말라카 왕국 시절 무역이 활발했던 아랍 상인에 의해 전해진 이슬람교가 말레이 반도 전역에 폭넓게 자리잡았다. 현재 이슬람교는 국교로 지정되어 국가의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중국계는 불교와 도교, 인도계는 힌두교를 믿는 전통이 강해 종교 또한 민족의 특성을 강하게 반영한다.

타민족의 종교적 영향력도 강하기 때문에 민족 구분과 종교 구분은 아직도 뚜렷한 편이다.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어 중국인은 불교,인도인은 힌두교를 많이 믿는다. 이슬람 사원을 방문할 때는 복장과 행동을 신중히 해야 한다.

주요도시 : 쿠알라 룸푸르(Kuala Lumpur), 페낭(Penang)

주요민족 : 말레이계 55%, 중국계 35%, 인도 및 기타 10% 등 여러 인종이 공존하는 복합 민족 국가를 이루고 있다. 말레이계와 중국계는 경쟁 의식이 치열해 말레이계는 정치 분야에서, 중국계는 경제 분야에서 각각 주도권을 쥐고 있다.

주요언어 : 공용어는 말레이어지만 각 민족이 고유한 언어를 지켜가고 있고, 영어는 민족을 뛰어 넘어 폭넓게 사용된다.

경제
말레이지아는 1차 산업에 기반을 둔 자유 기업 경제 체제의 개발 도상국으로서 점차 산업화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말레이지아는 주석, 고무, 야자유의 세계적 생산국이며 다른 주요 산물로는 목재, 후추 등이 있다.또한 말레이지아 산업개발청(MIDA), 말레이지아 중공업공사(HICOM), 국가경제개발공사(SEDC)이 설립되어 산업화를 장려하고, 새로운 경제 정책(NEP)을 후원하고 있다.

말레이지아에서 급속한 성장을 보이고 있는 운송업의 경우, 말레이지아 항공이 항공 서비스 분야를 이끌어 가고 있으며 관광 산업의 발전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또 관광진흥을 위하여 관광개발공사(TDC)를 설치, 운영하고 있는데 현재 TDC는 싱가폴, 방콕, 홍콩, 도쿄, 시드니, 프랑크프루트, 런던, 로스엔젤레스 등지에 지사를 두고 있다.

기후
말레이시아는 일년내내 여름만 있는 나라이다. 기온의 변화가 거의 없으며 고온다습하고 낮과 밤의 길이가 거의 같다. 평균기온,강수량 모두 거의 변하지 않는다. 일부 지역에서는 짧은 건조기가 있는데 동말레이시아의 사바와 사라와크 주 등지에서는 4~5월이 이에 해당한다.

말레이 반도의 동해안 지방은 10~3월에 걸쳐서 북동 몬순이 찾아오는데 남지나 해에서 습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다량의 비를 몰고 온다. 이 기간중에는 기온이 낮은데다 비도 많아서 도로교통이 차단되는 곳도 있다.
이때 몸의 조절기능이 떨어지기 쉬우므로 여행자에게는 최악의 시기이다. 한편 말레이 반도의 서해안에도 남서몬순이 찾아오지만 그다지 습하지 않다. 인도양에서 오는 습한 남서 몬순이 수마트라 섬에서 대량의 비를 쏟아붇기 때문에 말라카 해협을 넘어 말레이 반도에 도달할 무렵에는 습기가 많이 줄어든다.

사회문화
말레이시아는 다양한 인종과 공동체들의 집산이다. 인종별로 살펴보면 말레이인(말레이시아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며 이슬람교 신봉), 중국인과 인도인, 사바주와 사라와크주의 토착민들(카다잔, 바자우, 무루트, 켈라비트, 다야크, 이반 등 다수)을 들 수 있다. 이러한 3부류의 주요 인종 집단과 4개의 주요 종교군, 그리고 다수의 토착민 집단들로 이루어진 말레이시아에는 당연히 많은 축제들이 열린다.
주요 축제들로는 하리 라야 푸아사 - 단식원(라마단)의 종교를 기념, 중국인의 신년축제, 디파발리(힌두교의 등불 축제), 크리스마스 이 밖에 타이푸삼이라고 불리는 힌두교 축제와 중국인의 한가위 축제, 사바주 와 사라와크주의 많은 축구 감사제들도 빼놓을 수 없다.

어린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말레이시아 국민들은 스포츠와 그에 따른 각종 행사들을 즐기고 있다. 특히 축구는 인기있는 종목이며, 테니스, 골프, 스쿼시, 자동차 경주 또한 널리 사랑을 받고 있다. 윈드서핑, 요트 경기와 같은 수상 스포츠들도 점차 그 저변을 확대해 가고 있으며, 말레이시아 전통 오락인 세팍 테크로, 거대한 팽이 돌리기, 연날리기 등이 꾸준히 행해지고 있다. 그리고 조깅과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도 나날이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말레이시아의 음식은 인도네시아에서도 먹을 수 있는 사떼(고기꼬치구이), 나시고랭(볶음밥), 미고랭(볶음국수), 중국식 닭고기 덮밥 등은 가격이 싸고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다. 그러나 이곳도 팍취라는 향료를 음식에 넣어서 먹는 만큼 외곽지역에서는 모르는 음식을 주문할 때는 이걸 빼달라고 하는 것이 좋다.

산업
말레이지아는 1차 산업에 기반을 둔 자유기업 경제체제의 개발 도상국으로서 점차 산업화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말레이지아는 주석,고무,야자유의 세계적 생산국이며 다른 주요 산물로는 목재,후추 등이 있다. 또한 말레이지아 산업개발청(MIDA), 말레이지아 중공업공사(HICOM), 국가경제개발공사 (SEDC)이 설립되어 산업화를 장려하고,새로운 경제 정책(NEP)을 후원하고 있다.

말레이지아에서 급속한 성장을 보이고 있는 운송업의 경우,말레이지아 항공이 항공 서비스 분야를 이끌어 가고 있으며, 관광 산업의발전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또 관광진흥을 위하여 관광개발공사(TDC)를 설치,운영하고 있는데, 현재 TDC는 싱가폴,방콕,홍콩,도쿄,시드니,프랑크프루트,런던,로스엔젤레스 등지에 지사를 두고 있다.

지리
말레이시아는 말레이 반도(서말레이시아)와 보르네오 섬 북부(동말레이시아) 2개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도 콸라룸푸르를 비롯한 11개 주로 구성된 서말레이시아는 북으로는 타이, 남으로는 싱가포르와 접하고 있으며, 사바·사라와크 주로 이루어진 동말레이시아는 남으로 인도네시아와 국경을 마주하면서 소국(小國) 브루나이를 감싸고 있다.

총면적은 33만㎢로 한반도의 1.5배인데 그 가운데 70%가 열대 우림으로 뒤덮인 정글로 되어 있다. 인구는 약 1,750만 명으로 그 가운데 85%가 말레이 반도에 집중해 있다.


간단한 현지어
•현지어 : Ya(야)
의 미 : 예.
•현지어 : Tidak(티닥)
의 미 : 아니요.
•현지어 : Dimana?(디마나)
의 미 : 어디로?
•현지어 : Terima Kasih(테리마 카시)
의 미 : 감사합니다.
•현지어 : Berapa Harganya?(베라파 하간야)
의 미 : 얼마입니까?

방문적기
말레이시아는 연중 무덥기 때문에 특별히 골라서 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비치에서 햇볕을 즐길 사람들은 말레이 반도 동해안이 우기인 11월에서 1월 사이는 피하는 것이 좋다. 동해안에서 거북을 관찰할 수 있는 시기는 5월에서 9월 사이이다.

쇼핑
여행자들은 값싼 기념품과 수공예품을 파는 노점상이나 고급 물건들을 파는 백화점에서 원하는 물건을 고를 수가 있다. 정찰 가격이 붙어 있지 않은 한 대부분은 디스카운트가 가능합니다.
라부안, 랑카위섬은 면세지역이며 쿠알라룸푸르와 페낭 공항, 그리고 도시 중심지에서도 면세 쇼핑이 가능하다.

말레이시아만의 독특한 상품을 원한다면, 주석 공예품, 송켓(금,은사로 수놓은 피륙), 바틱, 보석, 은세공품, 놋쇠 공예품, 도자기류 등을 고르면 좋다.


역사
인도양과 남지나해 사이에 위치한 말레이시아는 옛부터 동,서양의 무역상인들과 여행자들이 모이는 만남의 장소가 되어왔으며 이러한 전략적 위치 때문에 말레이시아의 역사는 끊임없는 외세와의 상호작용으로 특징지워진다.

이슬람이 들어 오기전 힌두, 불교문화는 말레이시아 북서부 지역에 큰 영향을 끼쳤다. 케다주의 부장 밸리에 있는 고고학적 발견물들은 서기 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힌두, 불교문명의 흔적을 보여 주고 있다. 이 곳은 식민열강들이 향료가 풍부한 말라카에 눈독을 들이기 전 13세기 까지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로 번성하였다. 1511년 마라카는 포르투칼 수중에 넘어갔으며 이어 1641년에는 네덜란드에, 마지막으로 1815년에는 영국의 손에 넘어갔다.

영국은 1786년 프란치스 라이트가 페낭에 도착한 이후 말레이시아반도 전 지역을 장악하였다. 바다건너 보루네오 섬에 있는 사라왁주는 1841년 이후 영국 모험가인 제임스 부룩(James Brooke)과 그의 후손들에 의해 통치되었다. 1888년 사라왁주와 북 보루네오(차후 사바로 개칭됨)는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1930년대에 이르러 말레이시아 민족주의 의식이 고무되기 시작하였고 제 2차 세계대전 종식 후 민족주의 운동이 재기되어 1957년 8월 31일 말라야 연방으로 독립하였다.

1963년 동말레이시아와 싱가폴(1965년 분리,독립)을 포함한 현재의 말레이시아 연방이 성립되었고 오늘날 말레이시아는 브루네이 다룻 살람, 인도네시아, 필리핀, 상가폴, 태국, 베트남으로 구성된 동남아시아 국가연합 9개 회원국 중 유력국가이다.


공휴일/축제
* 주말:토(오후)/일
1월
28∼29일 CHINESE NEW YEAR'S DAY (음력 설날)
30∼31일 HARI RAYA AIDIL FITRI

4월
7일 HARI RAYA HAJI
28일 MUSLIM NEW YEAR

5월
1일 LABOUR DAY (노동절)
10일 WESAK DAY

7월
6일 PROPHET MUHAMMAD'S BIRTHDAY

8월
31일 NATIONAL DAY (독립기념일)

10월
19일 DEEPAVALI (힌두축제)

12월
25일 CHRISTMAS DAY (성탄절)

우편
한국으로의 항공우편요금이 엽서는 M$0.40, 봉함편지는 10g까지 M$0.60이다. 한국까지 3∼5일이 소요되며 받는 사람의 주소와 이름은 한글로 써도 되지만 국가명은 꼭 'KOREA'라고 영문 표기를 하여야 한다. 그리고 항공편인 경우는 'AIRMAIL'을 명기하여야 한다. 호텔 프런트나 우체국에서 처리하면 된다.


유용한전화번호
주말레이 한국대사관 03) 262-2377/2378
대한무역진흥공사 03) 242-0756/9939
한국외환은행 03) 261-1966∼7
대한항공 03) 242-8311
경찰 999


의료시설
거의 모든 도시에 국립병원과 사설의료원이 있으며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처방전이 필요치 않는 약품은 약방이나 수퍼마켓,호텔,쇼핑센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전압 및 주파수
240V/50Hz

체험물가
물가는 태국보다 약간 비싼 정도이고 한국보다는 확실히 싸다. 가벼운 식사를 RM 2-3이면 해결할수 있고 게스트하우스의 숙박비 더블기준 RM 15-20, 버스기본요금은 40-70 CEN이다. 이곳 또한 동남아 다른국가와 같이 식료품비(특히 빵)는 싸며 공산품값은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다.


치안
대부분의 말레이시아의 여행에 관한 소개책자에 말레이시아는 정치 및 사회적으로 매우 안정되어 있는 나라라는 소개가 주류를 이룬다. 확실히 다른 동남아 국가와 비교해 볼 때 말레이시아는 종교적,인종적 그리고 정치적 불안요소를 내재하고 있는데 반하여 상당히 안정되어 있는 것만은 틀림 없다.

그러나 최근 경기침체와 더불어 인근 동남아 국가들로부터 유입되는 불법체류자들로 인하여 치안상태가 다소 불안해 지고 있다. 또한 말레이시아 현지 신문의 단골 제호가 'Unity'이듯이 인종간의 단결이 이 나라의 제일 큰 과제이며 이슬람, 힌두교, 도교(중국계), 기독교도 등이 혼합되어 있어 종교적 문제에서도 불안요소를 갖고 있다.

통화
말레이시아의 화폐단위는 링깃(RM)이며,1링깃은 약 350원이다. 1US=3.5RM 말레이시아는 고정 환율제로 현지에서만 환전이 가능한 나라이다. 국내에서 US달러나 싱가폴 달러를 준비하고 공항, 은행, 환전소 등에서 바꾼 후 쓰다 남은 링깃은 돌아오기 전 재환전 하는 것이 좋다.

한국으로 전화
▣ 호텔에서 전화를 이용할 경우는 다일얼링 순서는
"0또는9번(외부전화 접속,호텔마다 확인요) + 007 + 82 + 2(0을 뺀 지역번호) + 전화번호"

▣ 공항또는 시내의 국제전화가 가능한 공중전화를 이용할 때
" 007 + 82(한국 국가번호) + 2(0을 뺀 지역번호) + 전화번호) "
ex) 서울 725-6000 으로 전화할 경우 : 007 + 82 + 2 + 725-6000

▣ 말레이지아에서 한국으로 수신자 부담전화 : 1-800-80-7537

현지로 전화
시내전화는 M¢10 경화를 넣고 다이얼을 돌린 후 상대가 나오면 전화기에 부착되어 있는 버튼을 누르고 통화하면 된다. 시외통화는 101 오퍼레이터를 통해 상대의 전화번호와 자기번호를 말하고 기다린다. 호출되면 요금을 얘기해주면 해당 동전을 넣고 통화한다.


주의사항
말레이시아는 다민족으로 구성되는 국가로서 종교, 생활습관이 다양하다. 그래서 문화적 금기사항을 알아두는 것이 좋다. 회교도들은 돼지고기나 함유되어 있는 식품은 일체 먹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흡연은 개인 취향에 따라 즐기는 회교도인들도 많다.

사물 또는 지역 등을 가리킬 경우에는 엄지손가락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회교도들은 왼손이 화장실을 사용하는 등의 이유로 왼손이 청결치 못하다고 생각하여 선물, 서류, 명함 등을 줄 때에는 왼손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또한 오른손을 사용하여 음식을 먹기에, 이 모습을 보고 불결하거나 청결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얼굴 찌푸리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비자
▣ 국내 비자발급처
기 관 명 : 주한 말레이시아 대사관
주 소 :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4-1
전화번호 : 02-794-0349/795-9203
팩스번호 : 02-794-5488
근무시간 : 09:00-12:00 & 13:00-17:00, 토요일 휴무

▣ 비자신청시 유의사항
말레이시아는 우리나라와 무비자 협정 국가로서 출입국 할 때에 비자를 발급 받지 않고 여행이사 업무상 90일(3개월)동안 체류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 이상 머무를 경우에는 노동부에서 노동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필요한 사항은 여권을 꼭 소지해야 하며 그 여권의 유효기간이 6개월 이상이어야 한다.


현지교통

버스
수도 쿠알라룸푸르와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정기 장거리 버스편이 매일 있다. 주요 도시에서 주변의 작은 도시를 오가는 중거리 버스도 있다. 간혹 일정이 틀어지는 수가 있으니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이용하는 것이 좋다.

전철
1996년부터 운행을 시작한 경전철은 출퇴근용으로 시내와 외곽의 베드타운을 연결하고 있다. 전체가 지상구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쿠알라룸푸르 시내를 관광하는데 편리하다.

철도
국내에는 남북으로 2개의 철도가 부설되어 있다. 싱가포르에서 타이와의 국경도시인 페당베사루로 이어져 다시 타이의 국철로 연결되어,방콕에 이르는 철도이다. 이것은 말레이 반도의 서해안을 달리는 루트이다. 다른 하나는 게마스에서 말레이 반도 중부를 지나 동해안을 달리는 철도이다. 이 중에서 연변에 대도시와 관광지가 많은 서해안을 달리는 철도가 편리하다.

말레이 철도 여행자 특별 티켓이 있으면 추가요금 없이도 급행열차나 1등차를 탈 수 있다. 10일권(US$40)과 30일권(US$85)이 있다.

기타
▣ 항공
말레이시아는 전세계 110개 노선을 운항하는 말레이시아 항공을 포함하여 40개 이상의 세계 항공사에 편의시설을 제공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항공사 외에도 펄랑이 항공,버르자야 항공,모파즈 항공을 포함한 다수의 항공사들 또한 국내 여러 관광지와 도시를 운항하는 정규노선을 제공하고 있다.
1998년 수방(Subang) 국제공항에서 세팡(Sepang) 국제공항으로 이전을 하였다. 세계 각국에서 20개 이상의 항공사가 들어와 있다. 페낭,쿠칭,코타키나바루에도 국제공항이 있다. 쿠알라룸푸르와 주변의 주요 도시로 매일 항공편이 운항된다.


말레이시아는 일년내내 여름만 있는 나라이다. 기온의 변화가 거의 없으며 고온다습하고 낮과 밤의 길이가 거의 같다. 평균기온,강수량 모두 거의 변하지 않는다. 일부 지역에서는 짧은 건조기가 있는데 동말레이시아의 사바와 사라와크 주 등지에서는 4~5월이 이에 해당한다.

말레이 반도의 동해안 지방은 10~3월에 걸쳐서 북동 몬순이 찾아오는데 남지나 해에서 습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다량의 비를 몰고 온다. 이 기간중에는 기온이 낮은데다 비도 많아서 도로교통이 차단되는 곳도 있다.
이때 몸의 조절기능이 떨어지기 쉬우므로 여행자에게는 최악의 시기이다. 한편 말레이 반도의 서해안에도 남서몬순이 찾아오지만 그다지 습하지 않다. 인도양에서 오는 습한 남서 몬순이 수마트라 섬에서 대량의 비를 쏟아붇기 때문에 말라카 해협을 넘어 말레이 반도에 도달할 무렵에는 습기가 많이 줄어든다.

시차 : -1시간





▶ 데사루 [DESARU]

조호 바루에서 북동쪽으로 98km에 위치한 데사루는 26km에 이르는 긴 해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해변 앞에는 훼손되지 않은 매력적이고 조용하기로 이름난 시부섬,버사르섬,팅기섬과 라와섬 등이 있습니다. 데사루 임피앙은 최신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모든 객실이 해안을 향해 바다의 전경을 볼 수 있게 설계한다는 주제를 가지고 만들어진 말레이시아 최초의 리조트입니다. 또한 리조트 안에서는 즐거움이 끊이지 않고 모든 연령대와 어떠한 성향을 지닌 손님이라도 흥겨움과 모험을 제공할 수 있게 구성되어 말레이시아에서 자랑하는 복합 리조트단지라 할 수 있습니다.
고온 다습의 열대성(21℃~34℃)




▶ 띠오만

메르싱 바다에서 50여 km 떨어진 지점의 남지나 해상에 떠 있는 산호 섬으로, 태양·바다·모래사장의 절묘한 조화가 자연미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띠오만 섬은 지리적으로 고립되었고 교통편이 좋지 못했던 과거에는 부유한 층의 여가공간으로 인식되었지만, 오늘날은 많은 대중인파가 몰리고 있다.

띠오만 섬에는 높이가 1,037m의 카장산(Gunung Kajang)을 선두로 한 푸른 산들이다. 바다와 산이 어울어진 이곳에서의 즐거움은 다른 해변이나 섬에서의 그것보다 한층 더할 것이다. 띠오만 섬은 해양스포츠의 천국이다. 바다와 모래사장, 그리고 바닥까지 보이는 맑은 물과 자연의 물고기. 그 중에서도 산호초 사이를 헤엄치며 다니는 스노클링은 가장 인기있는 레포츠가 되었다.




▶ 랑카위

눈부신 태양이 선사하는 황홀함과 떠나야함을 더욱 아쉽게 만드는 석양을 바라볼 수 있는 곳 - 랑카위

랑카위제도는 크고 작은 99개의 섬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썰물 때가 되면 섬이 105개로 늘어나는 군도로서 말레이시아 반도 북서쪽인 태국과 말레이시아 국경에 위치하고 있으며 일찍이 유럽인들과 전세계 요트광들에게 먼저 알려지기 시작하여 최고의 휴양지로 떠오른 곳이다. 수 많은 섬 중에서 단 3개의 섬에만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도시에서 벗어난 천연의 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아름다운 섬이다. 1987년 말레이시아 정부가 섬 전 지역을 면세지역으로 지정한 이후 말레이시아 어느 곳에서보다 저렴한 쇼핑이 가능하며 덕분에 자연의 아름다움과 쇼핑의 즐거움을 함께 맛 볼수도 있다. 총 5만여명의 인구 중 90%가 말레이인으로 구성되어 있어 말레이시아인들 특유의 심성 깊고 소박한 생활상을 엿볼 수도 있다. 주민들 대부분이 어업을 하지만 코코넛과 고무 등의 다른 농작물도 재해하고 있다. 남쪽 해안에 자리잡은 섬의 중심지 카우는 아이르항가트와 파당마시라트 같은 다른 해안마을까지 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말레이시아 본토에 있는 콸라케다까지 연락선이 왕복하고 있다.

근래에 관광 명소인 페낭이 좀 침체하고 있는 반면, 명성을 점차 떨치고 있는 곳이 바로 이 곳 랑카위이다. 안다만해가 품은 섬 가운데서도 유난히 빛나는 보석 같은 섬인 랑카위는 수많은 섬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섬과 섬 사이를 일주하는 아일랜드 호핑투어의 인기가 높다. '전설의 섬'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배를 타고 여러 섬들을 둘러보며 그에 얽힌 전설을 듣는 재미를 느껴보자.




▶ 레당

해양공원으로 지정된 레당섬은 트랭가누 바닷가에서 4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섬으로 부근에 있는 섬들 중에서 가장 큰 섬이다. 햇살이 잘게 부서지면서 비추는 투명한 바닷물과 그 속에 보이는 형형색색의 산호초를 볼 수 있는 스쿠버 다이빙과 수영이 레당섬의 아름다운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한때 캠핑 여행자들의 여행지였던 곳이 이제는 호텔과 휴양지 개발,골프코스,말 목장과 스포츠 콤플렉스를 구비한 대규모 관광개발계획의 현장이 되었다.

레당섬(Redang Island)은 어촌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한산한 편이다. 이 섬에는 개발이 거의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곳의 수중세계에 매료된 사람들 사이에서 여전히 인기가 매우 높다. 쏘는 듯한 햇빛이 투명한 수면밑의 산호,말미잘,대합조개를 비추는 한낮에,바다는 무수한 색깔을 발하며 반짝인다.




▶ 말라카

옛 이름은 Malacca로 서말레이시아에 있는 항구 도시이다. 흐름이 원만한 멜라카 강 어귀 말라카 해협에 접해 있다.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 도시는 수마트라에서 추방당한 힌두 왕자 파라매스와라에 의해 1400년대 세워졌다. 그 후에 지리적 요건 때문에 동남아시아의 대규모 무역 시장으로 발전하였다. 하자만 열강들의 침입과 더불어 포르투갈,네덜란드,영국의 식민지로 지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말레이시아의 첫 수상인 퉅쿠 압둘 라만 푸트라 알-히지에 의해 역사적 독립 선언이 말라카의 파당 팔라완 반다르 힐리르(전사의 광장)에서 이루어졌다.

말라카는 도시의 중앙부를 관통하는 말래카 강을 사이로 양쪽으로 퍼져있다. 도시는 생각보다 크지않으므로 한나절이면 주요 관광지는 돌아볼 수 있을 정도이다. 말라카 시에서는 조용하고 느긋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도심지 단층건물 가운데는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식민시대에 지은 것이 많으며,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인들 중 상당수가 결혼을 통해 말레이인의 복식과 언어를 받아들인 상태이다. 바바 중국인(Baba Chinese)으로 알려진 이 혼혈인종은 말레이인,포르투갈인,네덜란드인의 혼혈과 함께 말레이시아의 독특한 민족집단으로 꼽힌다.

멜라카 강 남쪽 둑에 면한 낮은 구릉에는 알부케르케가 설계했던 올드포트의 유적와 마찬가지로 포르투갈인이 세웠던 산토파울 교회의 잔해가 남아 있다. 이 교회에 보관되었던 성 프란키스쿠스 하비에르의 유해는 1553년 인도 고아로 옮겨졌다. 이외에도 17세기 중엽 네덜란드 건축양식의 특징을 보여주는 시청건물을 비롯해서 그리스도 교회,성요한 성채,문화박물관,정훙덩 묘,중국인 공동묘지가 있다.

포르투갈시대의 유적인 산티아고 요새에 오르면 멀리까지 얕은 물이 이어진 말라카 해협이 한눈에 볼 수 있는데 말라카해를 보면서 화려했던 역사를 간직한 말라카 왕국을 상상해보는 것 또한 말라카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역사가 깊은 도시인 만큼 도시 구석구석을 걸어다니는 것 또한 흥미로울 것이다.




▶ 미리 [MIRI]

말레이시아 사라와크주(州)에 있는 도시.

위치 : 말레이시아 사라와크주
인구 : 241,943명(2006)

보르네오섬의 북서쪽 남중국해 연안에 있다. 예전에는 어촌이었으나 1910년 유전개발이 시작되면서 발전한 석유의 적출항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에 의해 파괴되었으나 그후 복구되었으며, 인구가 급격히 확산되었다.

현재의 유전은 난바다의 해저에 있으며, 송유관을 통해 앞바다에 있는 유조선으로 옮겨졌다. 석유생산은 셸오일사(社)가 독점하고, 주민의 3분의 2는 화교이다. 교외에 영국인의 고급주택가가 있고, 주변 구릉지에는 대규모의 공설(公設) 기름야자 농원이 펼쳐져 있다.




▶ 베라호 [Lake Bera]

베라호수는 자연적인 민물호이며 그 길이는 35km,너비는 20km에 이르며 북부지역의 주요수로인 베라강을 경유하여 파항강으로 흘러들어간다. 말레이지아 반도에서 가장 큰 늪지인 타세크 베라(tasek bera) 또는 베라호수는 독특하면서 고립되어 있어서 야생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다. 건조한 저지대 삼림의 덤불에 둘러싸여 있는 호수의 생태환경은 이탄늪지대 삼림까지 뻗어있다. 야생생물과 초목이 풍부한 베라호수는 동식물 군의 다양성뿐만 아니라 세메 라이(Semelai) - 이 지역에서 살고 있는 토착민 - 의 생계 활동을 능케 해주는 생태계이다. 다른 습지대처럼 베라호수도 홍수조절,수량조절 및 정화 등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지역사회에 많은 천연자원을 제공해 주고 있다. 따라서,타세크 베라(Tasek Bera)는 1994년 11월에 람사 늪지보호지역으로 선포되었고 중심지 26,000헥타아르,주변지역 27,000 헥타아르를 포함한다. 타세크 베라의 생태다양성을 보존하고 강화하며 이 지역의 현명한 개발을 장려하기 위하여 파항주정부는 DANCED 계획(Danish Cooperation for Environment and Development)하에 덴마크 정부의 재정적 지원 을 받으며 3개년 개발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 사바

보르네오 섬 북부지방을 차지하고 있다. 남서쪽으로는 사라와크,남쪽으로 칼리만탄(인도네시아령 보르네오)과 경계를 이루며 남중국해,술루 해,셀레베스 해에 걸쳐서 둘쭉날쭉한 해안선이 1,290~1,450㎞쯤 뻗어 있다.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던 시기에는 북(北)보르네오라고 불렀다. 키나발루 산(4,101m)이 우뚝 솟아 있다. 크로커 산맥,테루스마디 산맥,위티 산맥이 크게 뒤엉켜 해발 1,200~1,500m의 봉우리들이 여기저기 솟아 있는 험준한 내륙지방을 형성한다. 크로커 산맥과 서해안 앞바다 사이에는 인구가 밀집한 해안평야가 널리 펼쳐져 있으며 테놈·탐부난·케닝가우 등의 평야가 내륙의 산괴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동부 저지대는 부분적으로 개석(開析)된 준평원이다.

1천4백40Km의 해안선을 갖고 있는 사바는 동쪽으로는 술루해와,서쪽으로는 남지나해와 접하고 있는 세계에서 세번째로 큰섬인 보루네오섬의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태풍의 띠 아래에 놓여있기 때문에 '바람 아래의 땅(Land Below The Wind)'으로 잘 알려져 있는 사바는 대부분 산악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열대 우림기후에 속한다.


산업
20세기초 대농장 농업이 시작된 이후 셈푸르나 반도와 세그마 계곡에서는 담배를,쿠다트 지구에서는 코코넛을,산디칸 지구에서는 기에나 기름야자 등을 재배하고 있다. 서해안 평야에서는 쌀과 고무를 재배하고 있다. 쌀을 생산하는 논이 상당히 많고 관개도 하고 있으나 수요를 충당하지 못해 타이 등으로부터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수출품으로는 목재·고무·코프라·마닐라삼이 손꼽힌다.

사바는 삼림 벌채와 환경문제로 유명하다. 1970년대에는 사바 숲의 나무가 대량으로 벌채되어 일본으로 수출되었다. 삼림 벌채와 목재의 수출로 인해 사바는 일시적으로 윤택하게 생활했지만 현재는 삼림자원도 바닥을 보이고 있어 사바의 산업이 위기에 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근래에는 사바를 경제적으로 살리기 위해 관광산업을 육성시키고 있다. 공업으로는 재재업과 고무제품 제조가 이루어지고 있다.




▶ 세렘방

이 도시에는 서해안의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중국계 사람들이 많다. 버스스테이션에서 교회와 학교 사이의 길을 따라 내려가면 왼쪽으로 골드 쇼핑 센터 건물이,오른쪽에는 오리엔탈 은행이 인접해 있는 거대한 빌딩이 보인다. 오른쪽 빌딩은 미낭카바우 양식을 모방하여 지붕 양쪽 끝을 물소뿔처럼 지었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펼쳐진 일대가 세렘방의 중심지로 영화관·레스토랑·쇼핑·은행 etc 등이 집중되어 있다. 도시 동쪽으로 조금 높고 완만한 언덕이 펼쳐져 있는데 주립모스크와 관공서가 모여 있다. 그 바깥쪽에는 레이크 가든이 있어 시민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산업의 개요를 보면,1840년대에 주석 광산촌으로 시작된 이 도시는 오늘날 고무생산을 주로 하며 주석을 캐내는 한편,배수가 잘 되는 동쪽의 메인 산맥 골짜기에서는 논벼를 재배한다.




▶ 이포

이포는 킨타계곡의 주석광산지대로 인하여 콸라룸푸르·페낭·조흐르바루를 잇는 말레이시아 제4의 도시로 성장하여 페라크(Perak)주의 주도로 번성하고 있다. 킨타계속은 세계 제1위의 주석 산출고를 자랑하는 곳으로 여기저기에서 배오 같은 기계가 떠 있는 채광장을 볼수 있다.1890년대 전후부터 유럽게 기업이 주석 채광에 착수하게 되자 광산에서 일자리를 얻고자 많은 중국인이 이주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중국게 말레이시안이 광산 노동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주석의 마을 이포는 이른바 중국인 마을이라고도 할 수 있다.(중국계 인구는 이포 시 전체인구의 63%에 달한다) 그중에서도 광동 지방 출신자가 많으며 이포의 공동요리는 유명하다 남쪽만 빼고 사방이 가파른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으며,킨타 계곡의 평평한 충적평야에 자리잡고 있다. 이포라는 이름은 이 지방에서 자라는 나무에서 나왔는데,옛날에 원주민들은 독성이 있는 이 나무의 진액을 뽑아 사냥에 이용했다.

이포는 말레이시아 광업의 중심지로 주석과 철 등이 풍부하다. 그러나 오늘날 광물의 생산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며,광산업은 퇴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산기슭의 농장에서 나는 고무도 중요한 산물중 하나이다.




▶ 조호바루

서말레이시아에 있는 조호르 주의 주도로 JB라는 애칭을 가진 말레이 반도 최남단에 자리잡은 도시이다. 또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의 국경도시로 싱가포르와 조호르해협을 가로지르는 약1km 가량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일명 이 다리는 코즈웨이로 불리기도 한다. 조호르바루는 조호르의 통치자 테맹공 이브라힘이 세웠으며,원래 탄중푸트리라고 불리다가 1866년에 동쪽으로 30km 떨어진 곳에 있는 조호르라마를 대신하게 되면서 조호르바루로 이름이 바뀌었다.

조호르바루는 오랫 동안 말레이 반도에서 생산된 상품들이 수출되는 주요무역항이었던 이 도시는 고무,기름야자,파인애플 농장들로 둘러싸인 낮은 구릉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섬유산업이 발전했으며,남동쪽의 텔루크라무니아에서는 보크사이트가 채굴된다. 주민 중 상당수가 싱가포르 시의 문화,오락 시설을 이용하는 등 싱가포르 시의 위성도시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사용되는 말레이 방언은 말레이시아 국어인 바하사말레이시아어의 표준으로 여겨진다. 대체로 중국풍을 띤 이 도시에는 이스타나베사르,아름다운 모스크인 아부바카르 사원,술탄이 살고 있는 부키트세레네 궁,공공동물원 등이 들어서 있다.

JB는 신흥공업국 싱가포르에 인접해 있으므로 말레이시아의 다른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번화함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싱가포르에서 입국해서 말레이시아의 민속 의상인 사롱을 걸친 여성이나 조호르바루 역사등 이슬람 양식의 건물을 보면 이슬람교 나라라는 것이 느껴진다.




▶ 코타키나발루 [Kota Kinabalu]

동말레이시아 보르네오 섬 북서 해안에 있는 사바 주의 주도로 옛 이름은 Jesselton이다. 비지니스 도시로 번화가에는 중국어로 써있는 간판이 줄줄이 들어서있다. 이 중 특히 '亞比'라는 한자가 눈에 띄는데 이 곳의 옛 이름으로 말레이어로 '불'을 뜻한다. 이 거리는 제셀튼이라는 또 하나의 오래된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이것은 영국인이 코타키나 발루를 식민지의 거점으로 개발하던 시점에 불리던 이름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완전히 파괴되었으나 남중국해 연안의 가야 만에 심해 정박지가 있다는 이유로 1946년 영국령 북보르네오 주의 새 주도로 선정되어 '가야 만' 갯벌간척사업을 비롯한 재건 및 확장 공사가 이루어졌다. 현재는 1줄로 길게 늘어선 앞바다의 산호섬들과 크로커 산맥 사이의 부지에 주거 및 상업용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근처 가야 섬에 있던 원래의 거주지는 1897년 반영 이슬람 폭도인 마트 살레의 방화로 불타버렸는데,이 사건 이후 현지에서는 이곳을 아피아피('불의 장소'라는 뜻)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 섬에는 주로 중국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으며,불규칙하게 외곽으로 뻗은 시가지를 중심으로 주요 활동인 행정업무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북쪽으리 테놈에서 뻗은 철도가 '가야 만' 항구에서 중형 선박들을 통해 수출되고 있다. 또 보르네오 섬에서 도로망이 가장 잘 갗추어진 교통 중추 도시이며,국제공항도 있다. 위성도시인 캄풍탄종아루는 해변 휴양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 쿠알라룸푸르

'흙탕물이 만나는 곳'라는 뜻인 쿠알라룸푸르 시는 1857년 87명의 중국인 주석 광부들이 지금은 교외지구가 된 암팡에 부락을 건설한 것이 시초였다. 이 취락은 말라리아가 만연하는 밀림에 입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강 유역을 낀 지리적 이점 때문에 주석 중심지로 번창했다. 1880년 클랑을 대신하여 주도가 되었으며,그 후 1882년에 이 곳 주재 영국 외교관으로 부임한 프랭크 스웨튼엄 경의 노력으로 급속히 성장했다. 그는 클랑-콸라룸푸를 철도 건설을 주도했으며,화재예방과 위생대책의 일환으로 건물을 지을 때 벽돌과 타일을 사용하도록 권장했다. 이 나라 영토의 중심부에 있는 지리적 여건에 힘입어 1895년에는 말레이 연방의 수도로 선정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구가 급속히 늘어났다. 1948~60년 공산주의자들이 주도했던 게릴라 폭동기간 동안에 시행되었던 재정착사업으로 도시 외곽에 새로운 마을들이 세워졌다. 1957년에 독립 말라야 연방의 수도가 되었으며,1963년 말레이시아의 수도가 되었다.

이 도시에는 무어 양식의 현대적인 건축물,전통적인 중국인 가게,무허가 오두막,말레이의 지주촌이 있다. 제방 시설이 갖추어진 케랑 강을 따라 형성된 중심부는 혼잡한 반면,자치구역과 외곽지대는 잘 정비되어 있다. 강 동쪽에 집중되어 있는 상업지구에는 현대식 은행,보험회사,호텔 등이 밀집되어 있다. 구릉진 서쪽 강 기슭에는 무어 양식의 영향을 받아 지은 정부청사와 훌륭한 철도역이 있다. 중심지구 주변으로 중국시 2층 목조상가 지역과 말레이 촌락,현대시 방갈로,중산층 벽돌 아파트 등의 복합주거지가 형성되어 있다. 외따로 떨어진 고급 주거지역인 케니힐은 국내 건축전시장과도 같다.

이슬람 양식의 돔과 미나레트가 널리 퍼져 있으나,도시와 경제는 사실상 중국인이 주도하고 있다. 그 밖에 소수인종으로 인근 고무재배단지에서 일하는 인도인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말레이인은 주로 공무에 종사한다. 캄퐁바하루는 이 도시에 몇 안 되는 말레이인 집단 주거지구의 하나이다. 베시 강유역의 공업지대에는 주물공장,기계공장,식품.비누 가공공장들이 들어서 있다. 센툴과 이포로드 지역에는 철도 작업장,기계작업장,목공소 등이 있다. 북쪽의 라왕에서는 시멘트가 제조가 이루어지며,주석과 고무 제련업이 소규모로 전역에서 이루어진다. 콸라룸푸르에서 다양한 제조업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공업은 인접한 페탈링자야와 바투티가에 집중되어 있다. 켈랑 부근의 바투아랑 탄전과 카노트브리지 화력발전소에서 도시의 연료와 전력의 대부분을 공급한다.

현대식 결핵 센터와 훌륭한 시설이 갖추어진 의학연구기관을 비롯한 몇몇 종합병원과 국립진료소가 있다. 고무연구소와 말레이시아의 라디오.텔레비전 본사도 이 곳에 있다.1962년에 말라야대학교가 설립되었으며,1970년 말레이어를 가르치는 케방산대학교가 문을 열었다. 그 밖에 연방공과대학,언어연구소,툰쿠아브둘라만대학 등의 교육기관이 있다. 시내에는 말레이시아 국립박물관,현대식 국립 모스크,국회의사당,호수 공원,국가원수의 궁전,국립동물원,부키트나나스 삼림보호구역,2개의 경기장 등이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다. 옛 술탄의 사원은 도심에 있는 한 반도에 위치한다. 시 외곽에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긴 활주로를 갖춘 수방 국제공항과 템플레르 공원이 있다. 수백 개의 계단과 연결되어 있는 122m 정도의 높은 노천 석회석 지대인 바투 ('바위'라는 뜻) 동굴에는 힌두교 사원이 있으며,이 동굴은 이 지역 힌두교 신자들이 정성껏 디파빌리 새해축제 의식을 지내는 곳이기도 하다.

Kuala Lumpur의 머리글자를 따서 KL이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이 곳은 말레이시아의 교통,정치,경제,문화,국제적인 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도시이다. 위성도시인 페털링자야,외항 포트쿠란,수방 국제공항까지 갗추고 있어 국제적 도시로서의 위상을 한껏 떨치고 있다. 또한 도시에 심어진 많은 나무들과 현대적인 고층빌딩과의 멋진 조화로 '정원 도시'로서의 이미지를 물씬 풍기고 있다. 회교 문화권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가 여행자들을 매료시킬 수 있는 곳이다. 회교국가인 만큼 엄격한 규율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음주금지인데 이로 인하여,흡연 비율도 매우 적은 편이다. 이런 고전적인 분위기가 현대적인 이미지와 어울려 관광 도시로서의 매력을 더욱더 고조시켜 주고 있다.

교육
쿠알라룸푸르의 학교들은 서로 다른 민족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에게 공동체의식과 가치관을 개발시키고 국가적 통합을 위해 동일한 교과 과정을 택하고 있다.

적도 바로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열대 기후 지역으로 일년내내 여름 날씨가 계속된다. 기온의 변화가 거의 없고 고온 다습하며,낮과 밤의 길이가 비슷하다.




▶ 쿠칭

말레이사아 사라와크 주의 주도이자 주요항구이다.보르네오 섬 북서부에 자리잡고 있다. 1839년 제임스 브룩이 이 도시를 세우고,사라와크의 통치자가 되어 '라자'라는 칭호를 얻었다. 브룩은 악어가 들끓는 밀림의 진흙투성이 강인 사라와크 강 연안,남중국해에서 24㎞ 떨어진 곳에 최초의 유럽식 주택을 세웠다.오늘날 번화한 행정중심지가 되었으며 중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지만,교외에는 말레이인,육지 다야크족,이반족 등이 모여 산다. 세계에서 가장 신선한 산소를 공급해주는 지구의 허파로서 쾌적한 환경과 편안한 시설을 갖춘 사라왁주의 수도 쿠칭은 말레이시아어로 "고양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개보다 고양이를 좋아해 세계적으로도 드문 고양이 박물관이 만들어져 있고 세계의 고양이 용품을 수집해 놓은 사람들의 힘에 감탄하게 되는데 박물관 견학후 주변을 마음대로 돌아 다니는 고양이들과 노는것도 즐겁다. 또한 이곳 쿠칭은 도시 중앙에 푸르는 강을 따라 현대와 옛 전통이 어울어져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해상과 육로를 통해 오래전부터 야생의 세계,험난한 정글,무시무시한 원주민 그리고 가장 힘들고 위험한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들만 찾는 곳으로 알려진 보르네오의 관문을 탐험하러 떠나보는것도 멋있다. 25개의 종족의 풍부한 문화 유산과 천혜의 자연 조건과 그 속에서 펼치는 수많은 페스티벌과 다양한 생활양식을 흠미롭게 느껴보는 여행을 떠다보는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도시외의 교통개요 쿠칭에는 근대식 항구와 공항이 갖춰져 있고,동남동쪽으로 128㎞ 떨어진 스리아 만까지 도로가 뻗어 있는 등 사라와크 주에서 가장 좋은 교통망을 갖추고 있다.




▶ 팡코르

팡코르는 말레이시아 지역 중 연중 기후변화가 가장 적은 곳으로서 말라카로 향해하던 뱃사람들이 휴식처로 머물렀던 섬으로,맑고 파란하늘,남국의 태양이 반짝이는 깨끗하고 푸른바다와,야자숲이 드리워진 아담한 해변,무성한 정글등이 이국적인 멋과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판코(Pan Ko)는 태국말로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으로,인류가 찾아낸 또 하나의 파라다이스이다. 나그네들이 쉬어갈 수 있는 완벽한 은신처로 해적,모험가,상인,직업군인들이 이곳에서 평화와 안식을 구했던 곳이다. 열대의 작렬하는 태양이 금빛으로 물드는 해변을 강하게 흡수하고,투명하고 푸르름의 잔잔한 수면위로 유유히 떠가는 고기잡이 배의 풍경은 우리가 그리워 하는 "여유"의 모습이다. 또한 인류가 찾아낸 또 하나의 파라다이스로 급속하게 변화하는 정보화 시대와는 정반대로,팡코르섬은 도시생활의 복잡함과 번잡함에서 탈출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천국과도 같은 곳이다.




▶ 페낭

'동양의 진주'혹은 '인도양의 에메랄드'라고 불리는 이 곳은 말레이시아에 있는 섬으로 말레이 반도의 북서해안과 최소너비가 4km인 해협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다. 화강암으로 형성된 이 섬은 타원형으로 내륙에는 산지가 많고 해안에는 좁다란 해안평야가 있다. 섬의 북동쪽에는 말레이시아 주요 항구인 페낭이 있다. 오랜 기간 아시아에서 가장 분주한 항구였던 이 곳은 20세기 후반에 말레이시아의 주요 관광 중심지가 되었다. 호화로운 관광 호텔들은 대부분 북해안의 바투페링기에 자리잡고 있다.

말라카 해협 북부에 자리잡은 이 섬의 전략적 중요성에 주목한 영국 동인도회사의 프랜시스 라이트 선장이 18세기말 이곳에 영국 식민지를 건설했고 후에 말라카 및 싱가포르와 합병되어 해협식민지가 되었다. 프린스오브웨일스 섬이라 불리던 이곳이 말레이시아 서부 중요 무역항이 되었다. 후에 유통의 중심지 주석,고무 교역의 장소로 되었다. 시골 지역은 여전히 말레이시아의 전통을 간직하고 있지만 도심지역과 항구지역에서는 말레이시아의 영향과 전통,경제 생활이 거의 사라지고 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인들이 유럽의 생활양식과 경제생활을 누리고 있다.

영국의 왕,조지 3세의 이름을 딴 조지타운은 상업,교육,사회 활동,문화의 중심지이면서 주행정부의 소재지이다. 해안 도로가 섬을 둘러싸고 있으며,본토와는 페리호와 8.4km 길이의 다리(글루고-페라이)로 연결된다. 섬의 남동쪽 끝인 비얀레파스시 부근에 국제공항이 있다.

페낭은 여러 가지 해양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해변으로 명성을 얻어왔다. 국제적인 수준의 리조트들이 해안가를 따라 산재해 있으며 휴양과 오락을 위한 완벽한 시설을 제공하고 있다. 이외에도 페낭힐,켁록시 사원,나비 농장,식물원,뱀사원,페낭 조류 공원 등이 있어 페낭에 온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계절마다 북동풍과 남서풍이 번갈아 불어 내륙 고지 '비그늘'의 강우량에 영향을 미친다. 5,10월에 최대강우량을 보이는 페낭의 연평균 강우량은 2700mm 이며 매달 76mm 이상의 강우량을 보인다. 해안지역의 월평균기온은 27℃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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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마카오 [Macau]

동양의 작은 포르투갈이라 불리는 마카오는 그 이국적인 이름에서 풍겨나오는 분위기에서 알수 있듯이 여러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다. 마카오라는 이름은 중국 남부 지역의 뱃사람이 숭배했던 "아마"라는 여신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중국어로는 아오먼〔澳門〕이라 하며 주장강 서안에 있는 마카오반도와 타이파,쿨로아네의 2개 섬을 포함하며,주도(主都)는 마카오반도의 마카오시(市)로 인구는 여기에 집중되어 있다. 항상 주변 지역과는 구벽되는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 마카오는 오늘날에도 중국과 포르투갈의 문화가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거의 5세기 동안 전쟁을 겼지 않은 마카오는 이지역 사람들에게 이 사실은 매우 자랑스러운 점으로 여겨지고 있다.

카지노의 나라로 유명한 마카오는 1999년 12월 20일 0시에 1997년 홍콩 회귀에 이어 중화민족의 조국 통일의 대업을 실현하며 포루투칼의 식민지에서 중국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이날 중국은 마카오를 특별행정구로 선포했으며,포르투칼과 중국 양 정부는 정권을 이양하는 의식을 치르며 양국의 우호와 발전을 기원했다.

마카오는 홍콩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일국양제(一國兩制) 정책에 따라 마카오 특별 행정구로 지정되어 향후 50년간 국방과 외교를 제외한 정치,행정,사법,경제,재정 등 전 부문에서 고도의 자치권을 누리게 된다. 마카오 GDP의 43%를 차지하는 관광 산업 역시 반환 이전과 마찬가지로 마카오 경제의 중심축 역할을 담당하게 되며,마카오 정부에서도 관광 산업의 지속적인 진흥을 위해 교량을 건설하고,테마 공원과 관광 조형물 등의 관광 인프라 시설을 건설하는 등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광동성과 가깝고 홍콩에서는 38해리(70km) 떨어져 있으며,광주에서는 45km 떨어져있는 마카오는 과거 광동성 중산시 남단의 작은 섬이었다. 그러나 서강(西江)의 진흙이 끊이지 않고 충적되면서 마카오와 대륙 사이의 작은 제방을 형성하였고,이 제방으로 인해 대륙과 연결된 반도를 형성하였다. 남고북저의 지세를 갖고있는 마카오는 주로 해발이 높지 않은 저구릉 지대와 평지로 되어있다.


교육
마카오 정부는 일반예산의 약 1/3을 사립과 종교교육기관에 투자할 정도로 교육에 대단한 관심을 기울여 왔다. 사립학교의 경우 지난 수년동안 교실,실험실,강당 등의 교육시설 보에 주력해왔고 공립학교도 교육여건 개선과 학교증설에 노력해왔다. 교육은 주로 중국어로 이루어지는데 사립학교 가운데 중국어로 가르치는 곳이 약 83%에 이를 정도로 압도적이고 포르투갈어와 포르투갈 교육체계에 따라 학생을 가르치는 곳은 5%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비율은 마카오의 중국반환을 앞두고 더욱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교사들에 관한 상황을 살펴보면 700여명이 공립학교에서 일하고 있고 약 3천명이 사립학교에서 근무한다. 교사양성기관의 약 절반은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고 있다. 한편 최근에는 직업교육도 강화되어 지역주민을 교육하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산업
마카오 정부는 공산품 위주의 수출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1985년 7월에 '공업화 촉진법'을 제정하였으며 현재 산업의 다각화,사회간접자본의 확충,관광산업의 개발 등에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서부지역인 중국의 주해경제 특구와 연결하기 위해 도로를 개설하고 항만을 정비하는 등 산업기반시설과 공공서비스 근대화를 위한 건설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주력산업이 중국의 경쟁력에 밀리는 양상을 보이자 섬유,완구,조화산업 등 경공업위주의 산업구조를 첨단기술에 비중을 두는 쪽으로 전환해나가고 있다. 천연 자원은 거의 없는 마카오의 경제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나가는 수입원은 관광산업이다.

자원이 거의 없는 마카오는 국내총생산(GDP)의 70%가 3차산업에,40%가 도박사업에 몰려 있는 기형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마카오가 96년부터 연속 3년간 평균 1.5%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도 이같은 구조 탓이다. 그러나 마카오 특구정부는 자신있다는 표정이다. 우선 도박업과 유흥업을 중심으로 한 독특한 경제구조가 앞으로도 계속 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눈치이며 한편으로는 싼 인건비를 바탕으로 한 제조업의 발전에 대한 기대도 만만치 않다.


평균기온이 16-25℃,습도는 73-90%이고 강우량은 연간 100-200cm 인 마카오는 홍콩과 같이 아열대 기후에 속한다. 맑게 갠 날이 많고 따뜻하며 습도도 낮은 10-12월 사이의 가을이 마카오를 여행하기에는 가장 좋은 계절이며,1-3월의 겨울도 조금 추우나 비가 적고,쾌청한 날이 계속되어 여행하기에 그리 나쁜 계절은 아니다. 그러나 4월이 되면 습도가 높아지기 시작하여 여름인 5-9월 사이는 덥고 습하므로 마카오를 여행하는 시기로는 피하는 것이 좋다.


여행가이드

관광제안
린제수 박물과 황제 특사인 린의 활약상을 담은 테마 박물관으로 1830년대에 광동 및 주강에서의 아편 거래를 차단하기 위해 광동성으로 간 린제수의 활약상들이 소개되어 있는 곳이다. 그의 활동은 서양인들과 충돌을 야기하였으며 결국은 첫번재 아편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이 박물과은 사원 앞쪽에 위치하고 있다. 관음당 마카오에 있는 가장 큰 사원으로 13세기에후에 지언진 건물로는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자그마한 건물들이 연이어져 하나의 사원을 이루고 있는 이곳은 화려하게 장식된 도금 부처상이 있는 제단을 포함하여 세개의 주요 제단이 있다. 다른 하나는 부처상이 연꽃위에 앉아 해탈의 형상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또다른 하나는 그 위에 자비의 여신이 나들이 옷을 입고 있는 것이다. 관음당의 중심방에는 마르코 폴로의 상을 18명의 중국 현자상들 사이에서 발견할수 있는것이 매우 흥미롭다. 마르코 폴로는 왼쪽 끝에 있는 동상이다. 이 사원에 있는 정원들 역시 매우 흥미로운 곳인데 진귀한 식물 뿐만 아니라 1844년 미국과 중국이 첫 무역 및 우호 협정을 체결한 화석암 탁자오 같은 역사적인 유물도 전시되어 있다. 또한 수십년가 갈고 다듬어 장수를 뜻하는 한자 모양을 한 분재가 있는데 자연적인 모습을 인위적으로 이끌어낸 인간의 인내심에 감탄을 그지 못하게 된다.

레드 시장 30년대에 지어진 건물로 아베니다 오르따 이 꼬스따와 아베니다 알미란뜨 사이에 지어진 상업 지역막?시장 및 그 지역 부근의 거리에서 온갖 종류의 물건을 파는 상점이 밀집된 곳이다. 까모에스 정원과 그로토 오래된 탑 나무사이에 좁은 길콕을 두고 있는 낭만적인 정원으로 아침 일직 노인들이 새와 새자을 들고 산책하는 것을 볼수 있는 곳이다. 이 낭만적인 정원에는 1557년 한때 마카오에 거주하였던 유명한 포르투갈 시인인 까모에스 그로토를 기리는 동상이 있다. 망토를 쓰고 있는 흉상과 함께 이주위로는 그의 가장 유명한 시인들이 중국어와 포르투갈어로 새겨져 있다.

까사 정원과 신교도 묘지 영국 동인도 제도의 전 본부였던 이 곳은 현재 마카오의 풑다차오 오리엔떼의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는 곳이다. 마카오 및 해외 문화활동을 지원하고 있는 이곳은 앞쪽에 위치하고 있는 신 고전주의 풍의 아름다운 저택은 신교도 묘지로 동부 및 마카오에서 명성을 날렸던 사람들이 안식을 취한 곳이다. 까모에스 정원을 산책하면서 오래된 건물에 들어선 가게에서 물건을 파는 모습도 구경하고 성 안토니 교회 앞 항구지역에서 바다를 생활 근거지로 한 사람들의 특이한 삶의 형태와 사는 보습도 살펴 볼수 있는 곳이다. 타이파 섬 타이파 섬은 최근 가장 많은 발전을 한 지역으로 최상급 호텔과 마카오에서도 가장 중요한 단체나 협회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또한 마카오 대학을 비롯,마카오 국제 공항도 이곳에 있다. 바다위에 지어진 유도로와 활주로가 매우 인상 깊다. 쟈키 클럽을 바라보는 광장에 있는 유명한 사면 여신상은 이곳 사람들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온 사람도 기도를 올릴만큼 비중있는 것이다. 아베니다 다 쁘라이야 타이파 섬에 위치한 이곳은 20세기로 넘어 오면서 조성되 도시로 이곳의 모든 집들과 빌라들의 신고전주의 풍 건축물과 주변의 나무,강과 함께 어울어진 멋스러운 경치가 매우 유명한 곳이다.


쇼핑
마카오에서의 쇼핑은 즐거움과 실속을 한꺼번에 느끼게 할 것입니다.
마카오는 여러분이 원하는 모든 물품을 구입할 수 있는 쇼핑의 메카입니다. 고가의 품목들도 다른 어떤 도시보다 저렴하게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의류-할인매장: 마카오에는 수 백개의 의류관련 공장들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상품들은 미국, 유럽,호주지역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시장이나 상점에서 마카오가 자랑하는 의류들을 저렴하게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가구 및 골동품: 마카오 곳곳에는 오래된 골동품 및 재활용 가구를 파는 상점이 있습니다. 특히, 꼴로안 빌리지에는 전문화된 상점들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마카오 반도 중심부인 성바울 성당유적 근방의 사오 파울로, 에스탈라젠스, 세인트안토니오 지역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벼룩시장&야시장:마카오에서 가장 인기 있는 벼룩시장은 성바울 성당 근처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사오파울로를 따라 에스탈라젠스로 이동 후 언덕을 내려오면 좁은 길을 만나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마카오의 벼룩시장이 펼쳐지는데, 다양한 골동품점,의류상품점뿐만 아니라 작은 상점들이 다양한 물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마카오의 쇼핑 중심지:세나도광장과 레드마켓
세나도 광장의 시장은 가장 최근에 생긴 마카오 시장 중 하나입니다. 아베니다 알메이다 리베히로 거리와 주 광장에서 좁은길로들어서면 매우 다양한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레드마켓은 Avendia Almirante Lacerda와 Avenida Horta e Costa 거리의 코너에 위치 한 곳입니다. 이곳에서는 매우다양한 종류의 식재료 및 음식을 파는 상점들을 거리 곳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여행상식
여행상식 1
마카오에서는 다른 특별한 팁이 필요 없지만 택시의 경우 트렁크에 짐을 실었을 때에는 짐 1개당 3 파타카의 추가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여행상식 2
전반적인 치안상태는 좋으나 소매치기를 주의해야 한다. 만약 사고가 생기면 주위의 경찰서나 신고소에 연락하거나 긴급전화 999를 이용하면 된다.



즐길거리
즐길거리/활동거리 1
마카오를 찾은 이들이 빼놓지 않고 呪穗?것이 있다면 바로 카지노 일것이다. 마카오의 대표적인 카지노로는 마카오와 타이파에 있는 4층짜기 리스보아 호텔을 들수 있다. 이곳외에도 9개의 카지노가 있다. 이곳의 카지노는 24시간 운영되며 가 테이블의 딜러에게 팁을 따로 줄필요는 없다.

즐길거리/활동거리 2
판탄 세계 어디서도 찾을 수없는 중국 정통 게인으로 사기로 만든 단추와 은으로 된 컴을 이요하여 게임을 하는 경기에다. 딜러는 컵으로 단추들 중에 몇개를 덮는다. 단추들이 담긴 컵을 한쪽으로 옮긴 후 플레이어들은 베팅을 할수 있다. 베팅이 끝나면 컵을 들어내고 단추가 4개 이하로 남을 때까지 단추들을 4개씩 제거해 나가는데 최종적으로 1,2,3 혹은 0개의 단추가 테이블 위에 남게 된다. 베팅은 4개씩 제거한 후에 얼마나 남았는지를 알아보는 것으로 한다. 이 게임에서는 자신의 돈이 어디에 놓이는가를 잘 관찰해야 하는데 자신이 지정한 곳이 아닌 다른곳에 돈이 놓이게 되었을때 이기면 돈을 따지만 지게 되면 돈을 돌려받지 못한다.

즐길거리/활동거리 3
다이슈(빅앤스몰) 또 다른 중국 전통 게임으로 뚜껑이 덮힌 유리컵 안에 던져진 3개의 주사위로 한다. 플레이어는 세 주사위의 수를 합한 숫자를 예상하여 배팅을 할수 있는데 돈은 번호에 놓을 수도 있고 지정한 수보다 크다 혹은 작다에 놓는다.

즐길거리/활동거리 4
마카오에서 맛볼 수 있는 포르투갈 요리는 해물을 재료로 한 포르투갈식 카레를 비롯해 머리까지 붙어 있는 비둘기구이와 토끼요리 등이 유명하고 올리브기름을 풍부하게 넣고 만든 채소와 쇠고기가 든 스프도 정평이 나있다. 포르투갈 요리는 여럿이 조금씩 나누어 먹는 것이 특징인데 이런 것에서 남국의 따스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중국요리는 광동요리가 주류를 이루며 맛은 홍콩과 거의 비슷하지만 값은 싼 편이다. 주강 연안과 남중국해에서 잡히는 게와 새우 등의 해산물이 먹음직스럽고 빵과 초콜릿,우유푸딩 등의 디저트도 식탁을 풍성하게 한다. 그 외 세계적으로 유명한 포르투갈 와인도 싼 값에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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